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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2,056 : 사점...사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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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점: →윷점
사점리(沙店里) [古洞] : 임진왜란(1592) 직후 예천군 동로소면(醴泉郡冬老所面)의 행정 동리 중의 하나로, 1906년 문경군 동로면 생달리(聞慶郡東魯面生達里) 사점(沙店, 藥師亭이), 1914년 문경군 동로면 명전리(聞慶郡東魯面鳴田里) 새점이 되었다. 무쇠 그릇을 만들었다. 황장산의 작성산성(鵲城山城)이 있다.(慶北마을誌 下卷 1992)
사접산(謝接山) [山] : 예천읍 왕신리(旺新里)에 있는 산으로, 속칭 새립산이라고도 한다.
사접산 : [우리 마을 이장님]인심좋고 살기좋은 마을 만들겠습니다...왕신1리 김재덕 이장!/ 있다[참고자료] 경로회관 준공기념비 : 이곳 예천읍 왕신리는 새터신기와 무심바우(無心岩)로 이루어... 정산(正山)을 이루었고 다시 남으로 사접산(射接山)이 에워싸며 그 기슭에 마을을 이루었다.../ www.ycinews.co.kr/ArticleView.asp?intNum=53722&ASection=001002 예천인터넷뉴스(daum 2017)
사정(沙井) [마을] : 풍양면 와룡1리(臥龍一里)에 있는 마을로, 사신기동(沙新基洞, 新基洞), 사동동(沙東洞, 東洞), 심천동(深川洞), 상리(上里, 一部)로 나뉘어지나 사실은 단일 마을이다. 원래 모라물을 사정(沙井)이라고 하였으나, 1914년 당시 동장 김진태(洞長金振泰)가 현 와룡1리 전체를 사정(沙井)이라고 개칭하였다. 경주인 이진남(李振男)이 경기도 포천 영평(抱川永平)에서 임진왜란(1592)을 만나 피난을 하다가 그의 손자인 이시선(李時善)이 1620년 경에 이 곳에 이거하였다. 김해 김씨 석송공파(石松公派)인 김성윤(金聖胤)이 병자호란(1636) 등으로 경기도 장연(長湍)에서 피란 생활을 하다가 아들인 김양하(金樑夏)가 용궁군 남상면 몽미촌(龍宮郡南上面夢味村)에 정착하고, 그 후손인 김제옥(金濟玉)이 몽미(夢味)에서 이 마을로 이거하였다. 또 김해 김씨 안경공파(安敬公派)가 1800년대 말에 상주시 사벌면 퇴강(尙州市沙伐面退江)에서 이거하였다. 상산인 김중정(金重鼎)이 1780년 경 상주 은척 원당(尙州銀尺院堂)에서 효제(孝堤)를 거쳐 이 마을로 이거하였다. 94가구 514명(1980) 중 김해 金 20가구, 파평 尹 17가구, 부림 洪 13가구, 인동 張 6가구, 경주 李 4가구, 기타 34가구가 살다가, 104가구(1992) 중 파평 尹 18가구, 김해 金 석송공파 17가구, 김해 金 안경공파 13가구, 부림 洪 10가구, 나주 丁 6가구, 인동 張 6가구, 남양 洪 5가구, 상산 金 3가구, 경주 李 2가구, 기타 24가구가 살고 있다. →모라물
사정(思亭) [亭子] : 보문면 간방2리(澗芳二里) 꼭두바우(福岩) 북쪽 산 중턱에 있는 정자로, 원래 마을의 남쪽에 순흥인 사정 안수인(思亭安壽仁, 縣監)이 수양하여 여생을 보내려고 띠집을 세웠다. 그 후 그를 위하여 그의 5세손 승청(承淸)이 세조 때 장대 미려(壯大美麗)하게 수축하고 정자 앞의 암석에 '사정(思亭)'이라고 새겼으나, 또 2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1908년에 중건하기는 하였으나, 풍우로 정자는 무너지고, 암각만 옛터(舊基)의 황진란초(荒塵亂草) 속에 남아 있다. 1966년에 중극(重極), 중창(重昌), 승근(承根), 순창(順昌) 등의 후손들이 현 위치에 중건하였다.
사정(思亭) [亭子] : 보문면 간방리 복암(福岩)마을에 있는 정자로, 순흥인 안수인(安壽仁)의 후손들이 세조 때 지은 것을 1908년에 중수하고, 1966년에 중건했다. 정면 4칸, 측면 1.5칸, 목조와가 팔작지붕이다.(醴泉鄕校誌 2004)
사정(思亭) [亭子] : 보문면 간방2리 산39번지 소재, 순흥인 안수인(安壽仁)을 추모하기 위하여 1933년에 건립한 정자로, 1966년에 중건하였다. 복암 마을 뒷산의 복암 위에 자리잡고 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어칸의 마루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인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을 설치하였으며 툇간의 주위에는 계자각(鷄子脚)을 세웠다. 기둥은 전면에만 원주를 사용하였는데, 전면주의 하부에는 하층주를 세워 전면의 툇간은 누마루를 이루게 하였다. 기구는 오량가(五樑架)의 소로수장집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醴泉郡誌 2005)
사정(醴泉澗芳里 思亭) : *위치 : 예천군 보문면 간방리 산39, *연대 : 1966년, *규모 : ‘-’자형 정자 1채, 사주문 1채/ 사정은 보문면 간방2리 복암(幞巖 혹은 福岩) 위에 있다. 이 정자는 사정 안수인(安壽仁)이 건립하였다. 그는 계유정란(癸酉靖亂)을 만나 수양대군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는 절의로 대정현감(大靜縣監)의 관직을 버리고 예천 보문면 간방동으로 은거하였다. 그 후 정자를 건립하여 음풍농월(吟風弄月)로 즐거움을 삼았다. 5대손 안승청(安承淸)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정자를 수리하고 바위에 ‘思亭’이라 새겼다.
또 다시 200여 년 방치하다가, 1966년 후손들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중건하였다. 마을은 동네 서쪽에 복두바위(幞岩)가 있어 동네명을 복암(幞岩)이라 하였으나 언젠가부터 복암(福岩)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복암 마을은 대략 300년 전에 순흥안씨들이 입향하여 동성마을을 이루었으나 현재는 25호 중 9호가 순흥안씨이다. 사정은 원래 마을 서쪽에 건립되었다가 이건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원래 있던 정자터 앞 바위에는 ‘思亭’과 ‘安氏墓所‘라는 두 글귀가 음각되어 있다. 따라서 1966년 건립된 것이 아니라 당시에 이건 내지는 중수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여겨진다, 현재의 정자 앞 아래쪽에는 재사가 있었으나 20여 년 전 허물어져서 없어진 상태이다. 정자에는 ’幞巖書堂‘이라는 현판도 함께 있어 한 때는 서당 기능도 겸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사정이 있는 간방리는 예천읍과 보문면을 연결하는 928번 지방도로 보문로에서 북측으로 난 수락대로를 따라 접근하며, 수락대로는 예천읍과 감천면을 연결하는 충효로와 석관천 앞에서 만난다. 간방리 사정은 수락대로에서 서측을 향한 후 북측 산자락으로 향한 덕거리길을 따라 접근한다. 사정은 마을의 가옥과 떨어져 남측으로 경사진 산 중턱에 터를 마련한 후 동남향을 하고 있다. 사정의 터는 ‘복암’이라 불리는 바위 위에 터를 마련했다. 사정은 정면과 좌우측면에 시멘트블럭 담장을 두르고 있으며, 정면 담장의 좌측 모서리에 사주문을 세워 출입하고 있다. 배면에는 바위가 있으며, 바위는 우측 담장 너머까지 연결되어 있다. 우측 담장 너머에는 평지가 있으며, 정자는 이 평지와 사주문을 통해 진입한다. 사주문은 자연석 주초 위에 사각기둥을 세워 상부 가구와 지붕을 받도록 했다. 지붕은 한식기아를 올린 홑처마 맞배지붕이며 처마 끝은 와구토로 마감했다. 사정은 전면에 툇마루를 꾸민 '-'자형 누정건축물로 정면 3칸, 측면 1.5칸이다. 전면 툇마루는 기둥 밖으로 확장한 후 정면과 측면 마루 끝에 계자난간을 둘렀다. 내부로의 출입은 좌우측 기단과 난간이 없는 툇마루 좌우측면을 이용한다. 평면은 중앙 마루간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있다. 마구간은 우물마루 구조이며, 후면에만 두 짝 여닫이 우리판문을 달아 전면으로 열린 공간 구조를 하고 있다. 좌우 온돌방은 마루간 쪽에 두 짝 여닫이 띠살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했으며, 전면 툇마루 쪽에도 두 짝 여닫이 들창을 달아 외부 경관을 즐기도록 했다. 우측 온돌방은 우면에 외여닫이 창문을 달았다. 사정의 기단은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하 기단은 자연석으로 축조하고 흙으로 마감했다. 좌우 온돌방의 아궁이는 툇마루 밑 기단에 있으며, 굴뚝은 후면 기단에 있다. 하단의 기단 높이는 지면과 거의 같으며, 기단 위에는 자연석 주초를 놓고 누하주를 세워 상부 툇마루의 원기둥을 받도록 했다. 상단 위에도 자연석주초를 놓고 사각기둥을 세웠다. 전면의 원기둥 상부는 직절익공방식으로 창방과 보아지가 짜 맞춤을 한 후 주두를 놓고 보와 도리받침장혀, 납도리가 짜 맞춤을 하였으며, 주간의 장혀와 상방 사이는 소로를 끼워 장식했다. 나머지 사면의 기둥 상부는 납도리방식을 보아지와 도리받침장혀, 납도리가 짜 맞춤을 했다. 가구는 오량이며, 대청 상부는 연등천정으로 열려 있다.
내부 공간은 전면 툇마루를 넓게 사용하기 위해 내부 고주를 중도리 열보다 안쪽으로 옮긴 이주법으로 간잡이를 했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추녀마루의 용마루, 내림마루 끝은 망와로 마감했다. 처마 끝은 와구토로 마감한 후 차양과 물홈통을 달았다. 목재는 토육색으로 가칠단청을 했다. 벽체와 앙토는 회바름으로 마감했다. 처마도리에는 ‘思亭’ 편액이 걸려 있으며, 툇마루간에는 ‘幞巖書堂’, ‘思亭重建實記略錄’ 편액이 걸려 있고, 마루간에는 ‘思亭上樑文’, ‘思亭重建記’ 편액이 걸려 있다. 상량대인 종도리 받침장혀 밑에는 ‘思亭重修幞巖北山辛坐檀紀四二九九丙午年開基二月十八日午時立柱三月十七日午時上樑三月十八日午時伏願上樑之後永世無窮子孫昌成富貴華榮’ 이라고 쓰여 있다. 사정은 이건된 이후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지만 현재 사용하지 않고 있어 퇴락 및 훼손이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사정은 현재 처한 상황을 고려한 활용 및 유지관리계획을 세운 후, 이에 따라 적극적으로 활용을 한다면 건축문화유산으로서 기존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예천군 건축문화유산 조사연구 2013년, 177-179쪽)
사정지(沙井池) [못] : 풍양면 와룡1리(臥龍一里) 사정에 있는 저수지로, 저수량은 40,000t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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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