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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2,071 : 산성...산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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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 : 산성수련원/ 연수원, 예천군 보문면 산성길 654-22(daum 2017)
산성 : 산성/ 지명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daum 2017)
산성 : 산성노인회관/ 노인정,노인회, 예천군 보문면 산성길 643(daum 2017)
산성 : 보문면한마음윷놀이대회/ 2015.02.27./ 코드를 자유자재로 변환하며 새로운 화음을 만들어 냈다. 본래 보문면의 지역으로서, 산성이 있으므로 산성동이라 하였다. 골 마 : 산성 북쪽골짜기에 있는 마을 느리.../ blog.naver.com/khj392700/ 현중농원 (daum 2017)
산성 : 보문면 지명유래/ 2011.12.22./ 김저, 김전, 김두 등을 배양 하였다. ◦ 산성동《山城洞》 ▪ 본래 보문면의 지역으로서, 산성이 있으므로 산성동이라 하였다. ▪ 골 마 : 산성 북쪽골짜기에 있는.../ blog.daum.net/ibjc115/ 새천년 희망의 땅 웅...(daum 2017)
산성 : 경북 예천 보문면 유래/ 2014.08.10./ 보문(普門)이라 불렀다. 그리고 1914년 보문면의 마촌(馬村), 옥천(玉泉), 어등(魚登...平古), 문래(文來), 우평(友坪), 산성(山城), 신운(信云), 오류(五柳), 수양.../ blog.daum.net/si7239/ 사랑(daum 2017)
산성 : 경북의 鶴駕山(870m)/ 2012.09.15./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몇 번이고 길 찾기를 하여 간신이 도착한 곳은 예천군 보문면 산성 느릿치 마을 13가구의 벽지농촌이였다, 양지진 언덕 밑에 20여 마리나 될법한.../ blog.daum.net/ahhsan/ 문수산 할 배(daum 2017)
산성 : 문수기맥06구간(학가산)/ 2014.06.25./ 지나 보문산 오르다가 뒤돌아보니(산성마을과 과수원 그 너머 학가산 모습) 보문산... 폭의 그림 같습니다. 오치고개(예천군 보문면과 안동시 풍산면의 경계) 아스팔트 위.../ blog.daum.net/yeob45/ 행소리(daum 2017)
산성 : 학가산 등산로(보문 느리티- 국사봉) 트랙/ 2016.02.12./ ㅇ예천군 보문면 산성마을 트랙 들머리 : 산성리 버스종점->학운사->시멘트 도로 끝/ blog.naver.com/kth4831/ 스렁스렁님의 블로그(daum 2017)
산성 : 문수기맥 4구간(학가산-보문산-검무산-비접고개)/ 2016.08.06./ 41)→산성마을재(08:23)→갈마령(08:54)→보문산/ 삼각점(09:22~10:22)→좌측꺾임/좌측바위/알바(10:26~38)→좌측꺾임(10:46~49)→중대바위(10:59~11:04) →좌꺾임/알바.../ blog.naver.com/2byoung9/ 六德(daum 2017)
산성: →부로산성, →어림성, →원산성, →흑응산성
산성동 미군 오폭 희생자 위령비(美軍 誤爆으로 犧牲된 '普門面 山城洞 美軍誤爆 犧牲者 慰靈碑(花崗巖)' 除幕!) [記事] : 예천군은 2010년 6월 24일 오후 4시 보문면 산성리 현지에서 "산성동 미군 오폭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김수남 군수를 비롯해 안태기 유족회 대표와 유족회원, 마을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해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의 넋을 위로하고 유가족의 아픔을 달랬다. 이번 위령비는 가로 1.8m, 높이 3.5m의 화강석 구조이며 미군오폭사건으로 희생된 안인모 외 50명의 이름을 새겨 넣고 위령비를 제막하여 60년 전 일어났던 안타까운 사건으로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의 영령들을 추모하게 됐다. "산성동 미군 오폭사건"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19일 오후 4시경 백두대간 학가산 서쪽에 위치한 산성마을에 미군 폭격기 6대가 네이팜 등의 폭탄을 투하 사망·실종 64명, 중경상 72명, 가옥 70여 채 파괴 등 마을 전체를 폐허로 만든 사건이다. 10여 년 전인 1999년 희생자 유족회가 발족되어 언론 및 관계 기관 등에 탄원 등 꾸준한 진실 규명에 나서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예천 산성리 미군 오폭 사건"으로 규명 받아 2009년 11월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합동 위령제를 지냈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0-06-24)
산성동제: →동수나무
산성동제나무: →동수나무
산성리(山城里) : 본래 보문면의 지역으로서, 산성이 있으므로 산성동이라 하였다.(普門面홈페이지 2013)
산성리(慶北 醴泉 住民들, 美軍 良民 集團 虐殺 主張) [記事] : 경북 예천지역에서도 6.25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한 마을 주민 50여 명이 집단 학살되고 9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주장이 주민들에 의해 제기됐다. 순흥 안씨 집성촌인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 주민들은 1999년 10월 6일, "지난 51년 1월 19일 낮 12시쯤 마을 상공에 아군 정찰기 2대가 저공으로 선회한 뒤 잠시 후 미군 전투기 6대가 날아와 폭탄을 대량 투하해 마을이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당시 폭격으로 이 마을 130여 가구 가운데 80여 가구가 불에 타고 주민 50여 명이 숨지고 9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당시 부상을 입고 남편에 의해 구출된 이 마을 이기매 씨(71. 여)는, "미군 폭격으로 시어머니와 아들, 질녀 등 가족 3명을 한꺼번에 잃었다"고 증언했다. 미군 폭격을 목격했던 안석기 씨(74)는, "안동시 북후면과 경계 지역인 이 마을 부근에서 국군과 인민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미군이 인민군 낙오병이 마을에 남아 있는 것으로 오인하고 폭격을 한 것 같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문종규 記者 世界日報 1999-10-07)
산성리(韓國戰爭 때 네이팜彈 使用했다) [記事] : 한국전쟁 때 미군이 한반도에서 3만2천여 톤이란 엄청난 양의 네이팜탄을 사용한 사실이 미 중앙정보국(CIA) 기록을 통해 최초로 밝혀졌다. 게다가 네이팜탄을 동원한 무차별 폭격으로 수 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사실이 미국 기밀문서를 통해 공식 확인됐다. 본보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한국전쟁 중 미군의 네이팜탄 사용과 관련한 기록을 발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우선 CIA가 1966년 작성한 '베트남전을 위한 한국전쟁의 교훈'이란 보고서를 보면, 미군은 50년 6월부터 53년 7월까지 3년 동안 한반도에서 네이팜탄을 3만2천357톤이나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군이 네이팜탄을 사용한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는 50년 12월 말에서 51년 1월 말 사이 강원․충북․경북 일원에서 전개된 '싹쓸이'(wiping out)작전. 이 작전의 실체는 본보가 NARA에서 입수한 미 국립전쟁대학의 한 문건에서 드러났다. 문건에 따르면, 미 10군단에 군단 후방 지역에서 활동 중인 인민군을 섬멸하라는 특별 임무가 주어졌다. 작전에 나선 미군은 해당 지역에 네이팜탄을 쏟아 부었고 강원도 영월에서만 무려 4,440명을 죽였다. 또 충북 단양과 경북 예천 사이에 네이팜탄을 퍼부어 해당 지역의 75%를 불태웠다. 무차별 폭격에 따른 민간인 희생이 잇따라,경북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에선 51년 1월 19일 무려 16시간에 걸친 폭격으로 주민 64명(여성 42명․미군 조사보고서 기준)이 사망․실종됐고, 충북 단양군 영춘면에서는 바로 다음날, 동굴 속에 있던 피란민 360여 명(유족 주장)이 네이팜탄 폭격으로 불에 타거나 질식해 숨졌다. 특히 보문면 사건의 경우 폭격 직후 미 제5공군 등이 실시한 합동조사에서 인민군이 단 한 명도 발견되지 않아 오폭이었음이 드러났다. 영춘면 경우에도 51년 1월 20일 미 10군단 작전일지를 통해 이 지역에 대한 폭격 사실이 확인됐다. 박명림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한국전쟁 중 미군의 네이팜탄 사용에 대한 일부 연구가 있었지만 구체적인 실체가 드러나기는 이 번이 처음"이라며, "중요한 계기가 마련된 만큼 사건의 진상과 피해 실태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쿠키뉴스 2005.6.22)
산성리(民間人 130餘 名 誤爆 死傷 : 最初 公開 山城里 爆擊의 眞實) [記事] :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 미 공군 공중 폭격, 작전․정보일지․임무수행기록 등 증거자료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1월 19일 경북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에서 있었던 미 공군에 의한 공중폭격 진상이 공개된다. 안동MBC는 2005년 6월 28일 밤 11시최초공개 산성리 폭격의 진실이란 특집 프로그램 통해 한국전쟁 55년만에 130여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낳은 산성리 공중폭격의 진상을 방송한다. 사건은 1951년 1월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급격하게 불리한 상황으로 놓이면서 미 10군단 사령관 알몬드 장군에 의해 이 지역 일대에 대한 대대적인 폭격으로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는 적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폭격을 받아 13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오폭사건이다.
안동MBC 강병규 프로듀서는 지난 1년 6개월 간 미국 현지 취재와 사건 당시 생존자들과 관련자들의 증언을 확보해 지금까지 한 번도 알려지지 않았던 공군 폭격 희생과 관련된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밝혀냈다. 지상군의 공격에 의한 민간인 희생과는 달리 공중 폭격은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전혀 밝혀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으로 산성동 폭격은 미8군과 제5공군이 자체 조사를 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한 사건으로 드러났다. 중요 자료로 정찰 임무 수행 기록, 미 187공수전투여단 작전․정보일지, 10군단 작전․정보기록, 특수전부대 기록, 군사고문단 기록, 감찰기록 등 많은 양이 남아 있다. 따라서 폭격 당시의 전투기 기종, 대수, 폭격 시간, 탑재 무기 그리고 어떠한 명령에 의해 전투기 출격이 이루어졌는지 등 가해자 측의 정보와 계통을 충분히 추적할 수 있는 사건이다. 둘째, 지금까지 공군에 의한 폭격 희생은 학살이 아니라는 통념이 지배적이었으나 이 번 사건 취재를 통해 최초로 한국전의 여러 가지 문제 중공군의 전쟁 범죄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셋째, 산성리 폭격은 단순히 조종사나 정찰기 관측관의 오류로 인한 오폭이 아니라 당시 이 지역을 관할하고 있던 미 10군단 사령관 알몬드 장군의조직적 폭격 정책에서 비롯된 불행한 사건이라는 사실이다. 자료에 따르면, 폭격 전 적정이 보고되었던 학가산 북동면의 안동군 신전리의 경우 폭격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적정 보고가 되지 않았던 남서면의 산성리에는 무자비한 폭격이 자행됐다. 당시 충북 제천-단양 등지에 가해졌던 폭격으로 인해 10군단 예하 7사단장 데이비드 발 장군이 반발하고 뉴욕타임즈 등 미 언론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반대 여론을 제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넷째, 지난 60년대 초반부터 문제제기를 해왔던노근리 사건과는 달리 산성리 주민들은 폭격 이후 최근까지 단 한 번도 정부 당국에 대한 청원이나 보상 요구 등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반공주의가 만연해 있던 한국의 상황에서 좌익으로 몰려 두 번의 억울한 희생자가 되기 싫었던 생존 주민들의 아픔이 지난 55년의 세월을 짓눌러 왔다는 증거다. 이 밖에 비밀문서를 찾던 중 또 하나의 중요한 문건으로 산성동 사건과는 무관한 것이지만 한국전에 투입되었던 187공수전투여단의 전쟁범죄를 고발하는 군목 샘슨 신부의 서신은 아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이라는 전쟁범죄의 생생한 장면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부녀자를 강간하고 민간인들의 목을 베어 죽이는 등 만행을 저질렀던 187공수부대원들을 질타하고 지휘관들의 헤이해진 기강을 문책하라는 내용의 서신은 당시 8군 사령관이었던 리지웨이 장군에게 보내진 것이다. 한편 강 프로듀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가 차원의 과거사 진상규명 작업에 보탬이 될 수 있고,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는 보편적인 진실을 전 인류에게 알려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김우섭 기자 慶北日報 2005/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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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