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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 2,072 : 산성리...
작성자이춘우 @ 2023.02.09 06:22:49

  도청신도시 예천 2,072 : 산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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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리(民間人 130名 犧牲山城里 爆擊'誤爆' 아닌 '作戰'이었다) [記事] : 지난 19511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공중 폭격으로 130여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낳은 경북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 사건은, 미군의 '조직적 작전'에 따른 결과임이 드러났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 당시 공군 조종사의 실수에 따른 오폭으로 알려졌다. 안동MBC는 지난 2004년 초부터 16개월 동안 미국 국립문서기록소에 보관된 한국전쟁 관련 문건을 검토하고 당시 참전 군인들을 만나 취재해 이와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이런 내용이 담긴 <최초 공개, 산성리 폭격의 진실(프로듀서 강병규)>은 안동MBC에 의해 2005628() 11시에 방송될 예정이다. 산성리에 미군 폭격이 가해진 19511월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불리해진 유엔군이 후퇴를 거듭할 때였다. 또한 북한군 10사단 병력 18000여 명이 충북 제천과 경북 풍기예천 일대까지 침투한 상황이었다. 이때 알몬드 미군 10군단 사령관에 의해 이 지역 일대에 대대적인 공중 폭격이 가해졌다. 그러나 안동MBC가 밝혀낸 바에 따르면, 당시 폭격은 북한 인민군이 아닌 민간인만 있다고 보고된 보문면 산성리에 집중됐다. 반면 북한군이 머물고 있던 안동군 신전리에는 폭격이 없었다. 이는 오폭이 아닌 알몬드 사령관이 주장했던 '지구 초토화 작전'에 따른 것이었다. , 적군의 은신처가 될 만한 곳을 미리 네이팜탄으로 불태워 버리는 작전인 것이다. 당시 이 폭격에 대해 미 10군단 예하 7사단장 데이비드 발 장군이 반발했고,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에서도 문제를 제기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산성동 폭격은 미8군과 제5공군이 자체조사를 할 정도로 심각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 사건은 지금까지 단순한 오폭으로만 알려졌다. 피해 주민들도 단 한 번도 정부에 진상조사와 보상 요구를 하지 않았다. 지난 60년대 초반부터 문제 제기를 해왔던 '노근리 사건'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이는 지금까지 공군에 의한 폭격 희생은 학살이 아니라는 통념과 깊은 반공주의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또한 안동MBC, 한국전쟁 당시 미 187공수전투여단 부대원들의 부녀자 강간과 민간인 학살 내용이 담긴 문서를 찾아냈다. <최초 공개, 산성리 폭격의 진실>의 강병규 피디는, "이 번 취재를 통해 한국전쟁에서의 공군 전쟁 범죄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진행 중인 국가 차원의 과거사 진상 규명 작업에 보탬이 돼 무고하게 죽은 사람들의 명예가 회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2005622일자 <부산일보>는 미군이 195012월 말에서 19511월 말 사이에 강원충북경북 일대에서 일명 '싹쓸이(wiping out) 작전'을 전개하며 네이팜탄 3만여 톤을 투하했다고 보도했다.(박상규 記者 오마이뉴스 2005.6.26)

 

  산성리(醴泉 美軍 無差別 爆擊 眞相調査 着手) [記事] : 주민 60명이 숨지고 90여 명이 부상을 입어 제2의 노근리로 불리는 경북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 학가산 자락 마을에 대한 1951119일 미군 폭격의 진상이 이 번에는 밝혀질까. 정부는 그 동안 마을 주민들의 억울함 호소에도 외면하다 한국전쟁 발발 55주년을 맞아 20055월 진상조사 활동에 들어갔다. 주민 안식모(76) 할아버지는, "그 날 주민들이 아침식사를 마치고 목화씨를 고르는 작업 중 오전 11시쯤 아군 정찰기 2대가 나타나 아주 낮은 고도로 마을 상공을 3, 4차례 비행한 뒤 사라졌는데 오후 130분쯤 미군 폭격기 4대가 나타나 마을을 향해 포탄을 투하하고 기관포를 무차별 난사해 아수라장이 됐다"50여 년 전 참상을 증언했다. 안 할아버지는, "잠시 폭음이 멎어 비행기가 사라진 것으로 생각하고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려 하는데 다시 폭격기 2대가 날아와 기름을 투하한 다음 폭격을 가해 마을이 불바다가 됐다"면서 몸서리를 쳤다. 이기매(76) 할머니도, "당시 이웃집에서 목화를 잣던 중 섬광이 비치면서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순간 정신을 잃고 한참 뒤 깨어나 보니 허벅지에 포탄 파편이 박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이 날 폭격으로 즉사하거나 후유증으로 2년 이내 숨진 사람은 70, 부상자는 90여 명이었다. 마을 전체 가옥 160여 동 중 절반이 완전히 불탔고 가축도 떼죽음을 당했다. "미군기가 폭격한 게 분명했다"는 안 할아버지는, "폭격 뒤 마을 여기저기 나뒹굴었던 불발탄에 'USA'라는 글자가 선명히 찍혀 있었다."고 기억했다. 실제 이 마을에선 80년대 초반까지 '1945. USA'란 표시가 있는 불발탄이 수차례 발견, 수거됐다. 하지만, 폭격이유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주민들은 산성리와 같은 학가산 자락인 안동시 북후면 신전리에 당시 인민군 패잔병 수 백여 명이 들어온 것을 알고 미군이 마을 위치를 오인해 산성리를 폭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추정이다. 당시 피해 주민 60여 가구 중 24가구가 남아 있다. 제삿날도 음력 섣달 열이틀 날로 같은 산성리 사람들은 정부 과거사 정리 기본법 제정으로 다시 시작된 진상조사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다. 주민들은 조사단에 당시 폭격 3일 뒤 미군 6명이 찾아와 사진을 촬영하고 돌아갔고 당시 현장에서 수거한 미군용 기름통과 탄알 등을 미군기 폭격 증거물로 제시했다. 또 정찰기가 폭격 대상 지점(신전리)의 군사 좌표를 폭격기에 잘못 전해 오폭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도 전했다. 주민모임 대표 안태기(58)씨는, "미군 폭격이 분명한데도 우리 정부도, 미국 정부도 진실을 감추고 있다"면서, "산성리가 노근리보다 피해가 대수롭지 않다는 것인지 아니면 주민들이 목청을 높이지 않아서 인지, 이제는 울분이 터진다." 고 목청을 높였다.(정경구 記者 每日新聞 20050627)

 

  산성리('지구燒却作戰'... 誤爆으로 點綴小白山脈) [記事] : 한국전쟁 중인 1951119일 경북 예천군 보문면 학가산 자락의 산간마을 산성리에 무차별 폭격이 있었다. 안동 MBC의 강병규 PD, 진보적 미국 지식인 션 매크로혼과 같이 이 사건을 깊이 추적한 도진순 창원대 교수가 3회에 걸쳐 쓴 '특종 자료로 보는 산성리 오폭의 진실'<오마이뉴스>에 연재한다.

 

  이 사건과 관련해 2005628일 안동 MBC에서는 '산성리 폭격의 진실'을 소개했으며, 도 교수의 논문은 <역사비평> 가을호에 수록될 예정이다. <오마이뉴스 편집자 주> 19511월 미 10군단이 관할하던 충북-경북 경계선의 소백산맥 지대에서 수 없이 발생했던 무차별 폭격 및 공격의 사례들은 상급 부대의 지시나 정책 없이 단위 부대 차원에서 우연히 공통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지시나 정책은 1951년 초 리지웨이 8군 사령관의 정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다음은 195113일자 미 8군의 명령(CX 10025)을 복창한 10군단의 명령(CX 16220)이다./ CX 16220(195113) 상자 안 문장 : (이하 생략)"/ 메시지에서 알 수 있듯이, 리지웨이는 휘하 군단장에게 해당 지역의 주민들의 이동을 통제할 뿐 아니라 그들에게 사격하고 폭격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했다. 작전 지역 민간인에 대한 이러한 정책은 물론 '전시 민간인 보호에 관한 제네바협약'(1949.8.12)을 명백하게 위반한 것이다. 이 협약은 주민들이 점령국의 안전에 유해한 활동을 하지 않는 한, 점령 당국은 이러한 민간인들을 보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알몬드의 조직파괴 정책과 지구소각 작전] : 그러나 리지웨이의 정책은 소백산맥 지대를 관할하고 있는 미 10군단장 알몬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알몬드는 안동예천풍기단양 등에서 본격적인 작전을 전개하기 위해 1951114일 명령 CX 17230을 내렸다./ CX 17230(1951114) 상자 안 문장 : ...명령을 수신한 부대들은 작전 지역에서 우군으로 확인되지 않는 모든 집단, 군대, 장소에 대해 지상 무력과 공중 폭격을 동원해야 한다./ 이 메시지는 우군이 아니면 민간인을 포함해 모든 것을 적군으로 간주해, 지상 무력에 의한 공격은 물론 공중 공습까지 명령한 것이다. 여기서 민간인의 입지는 없어지는 것이다. 같은 날 10군단 사령부는 전방 지역을 담당하는 부대들에 더욱 충격적인 명령(CX 17244)을 내렸다./ CX 17244(1951114)/ 2사단에 의해 이미 실행된 바 있는 적 전방 구조물을 조직적으로 파괴하는 특별 프로젝트를 연장하여, 7보병사단, 한국군 5사단, 8사단 등은 적의 은신처로 사용되거나 또는 사용될 것으로 의심되는 전방 주거지나 건물들을 지체 없이 조직 파괴하여야 한다.

 

  포격과 소이탄을 포함하여 이용 가능한 모든 지상 무기와 더불어 공중 공습을 동원하라. 이 명령을 받은 각 부대는 116일까지 완벽한 계획과 매일의 진행 과정을 10군단에 보고하여야 한다./ 이 것은 적이 실제로 없더라도 의심만 되면 공중 폭격까지 동원하라는 지시이며, 예하 부대의 수행 상태를 일일이 확인하겠다는 명령이다. 적이 없더라도 폭격하는 것이 알몬드의 확고한 소신이었다. 그는 리지웨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반복하였다./ Almond to Ridgway(1951116) 상자 안 문장 : ... 우리는 게릴라들과 모든 수단을 다해 싸워야 합니다. 네이팜으로 공중 폭격을 하는 것은 게릴라부대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숨을 수 있는 은신처나 마을을 파괴하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알몬드가 채택한 이러한 정책은 게릴라가 실제로 존재활동하는 목표물을 선정하여 폭격하는 선별(selective) 폭격이 아니라, 게릴라가 앞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마을이나 지역 전체를 이 잡듯이 조직적으로 폭격하여 게릴라들을 추운 겨울 날씨에 바깥으로 노출되게 유도하는, 이른 바 조직(methodical) 폭격이었다. 그러한 작전의 총아가 바로 네이팜이었다. 소백산맥 지대에서 알몬드가 지시한 "지구 소각 작전"은 이러한 조직 파괴 정책의 전형이었다. [7사단장 발 장군의 비판과 해임] : 10군단장 알몬드의 이러한 조직적 무차별 파괴 작전에 대해 7사단장 발(David. Barr) 장군은 비판적이었다. 그는 주민의 인명 손실을 최소한이라도 막기 위해 자신의 재량으로, 1차는 지상 무력에 의해서 수행하고, 2단계로 불가피하게 공중 폭격을 동원할 때에도 주민들이 없는 경우로 제한했다./ 또한 자신의 관할 지역인 단양에서 조직적 소각(methodical burning) 작전으로 8000명의 피난민이 발생하자, 발 장군은 "사람들은 왜 적이 없는 마을을 미군이 방화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유엔군에 적대적으로 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무차별 조직(methodical) 소각 작전''선별(selective) 소각 작전'으로 대체할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알몬드는 오히려 발이 위에서 언급한 내용이 밖으로 공개된다면 "가장 불행한 일"이라고 경고했고, 1951119일 발 장군은 군단장과의 갈등으로 결국 미 7사단장에서 해임됐다. 그 후 알몬드는 자신의 조직 폭격 및 소각 정책을 오히려 강화했다./ 발 장군은 예외적인 경우였고, 10군단의 예하 부대는 대부분 알몬드의 조직 폭격 정책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1951116일 이후 단양예천 지역에 일어난 수많은 폭격의 정체를 알 수 있다. 그 것의 원인은 우군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공격 정책의 표현이며, 또한 전방의 지역들을 공중 폭격으로 조직적으로 파괴, 폭격하라는 알몬드의 특별 프로젝트가 후방의 게릴라 지역에도 그대로 적용된 결과였다. 산성리가 대표적인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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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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