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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2,078:산성리...(축,권오휘)
작성자이춘우 @ 2023.02.15 06:09:33

  도청신도시 예천 2,078 : 산성리...(부,예천 출신 권오휘, 11일 안동서부초에서 회원 400여명 참석리에 제29대 경북문인협회 회장에 당선됨...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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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리('山城里 民間人 虐殺' 57만에 베일 벗나 : 過去事整理委 眞實糾明 現場調査, 住民"가슴에 맺힌 恨 解消" 期待) [記事] :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 오폭으로 130여 명이 억울하게 희생된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 민간인 학살사건의 베일이 57년 만에 벗겨질 지 관심을 끌고 있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2007317일 산성리 현장을 찾았다. 이에 앞서 위원회는 동년 314일 산성리 학살사건은 진실규명 범위에 해당된다며 조사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날 특위위원들은 주민들이 보관하고 있는 기관총탄과 휘발유통 잔해 등을 증거물로 거두고 생존자들과 유족을 대상으로 당시 상황을 듣는 등 첫 조사를 벌였다. 산성리 사건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119, 미군 전투기의 무차별 폭격으로 마을주민 48명이 목숨을 잃는 등 136명이 아군기에 의해 희생됐다. 1952년 미8군과 5공군 감찰단이 합동으로 조사한 합동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산성리 뒷산인 학가산에 북한군 10사단이 집결한다는 적정보고가 있었고, 미군은 소개령을 내린 뒤 마을을 폭격했고 폭격은 대성공이었다고 적고 있다. 당시 북한군 10사단이 집결해 있던 안동시 풍산면 신전리와 산 하나를 두고 아군기가 지형이 비슷한 산성리를 신전리로 잘못 알고 오폭한 것이다. 폭격 때 다리 한 쪽에 파편이 박혀 지금도 거동이 불편한 안의영 씨(71)"정부로부터 52년 봄에 고작 배급쌀과 미군 구호물자로 옷가지 몇 점 받아본 것 이외에는 지금까지 어떠한 보상도 없었다."면서 "10여년 전만해도 폭격으로 마을 전체가 생지옥으로 변한 섣달 열이튿날은 마을에서 20여 가구가 떼제사를 지냈으나, 이제는 후손들도 고향을 등져 지금은 몇 가구만이 같은 날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며 북받쳐 오르는 설움의 눈물을 글썽였다. 어린 나이에 참사를 겪은 이 마을 안희득 씨(당시 12)"정찰기 1대가 상공에서 물을 뿌리고 돌아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물이 아니라 마을을 불태우기 위해 뿌린 휘발유였다""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폭격기도 날개 끝이 뾰족한 유엔군 비행기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안태기 주민대책위원장(60)"당시 미군의 작전은 10군단 사령관 알몬드가 주도한 무차별 조직파괴정책이었으며, 이는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명백한 범죄행위"라며 "참여정부에서 진상규명은 물론 명예회복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강성철 記者 嶺南日報 2007-03-19)

 

  산성리(AP가 밝힌 󰡐美軍民間人 集團射殺󰡑: 避亂民 數百 名 沒殺) [記事] : AP통신이 2007413일 보도한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자행한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은 앞서 부산일보와 생존자 증언 등을 통해 제기된 내용이지만, 미국 언론이 한국전쟁 관련 문서를 통해 직접 확인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미군의 피란민에 대한 학살은 존 무초 당시 주한 미 대사가 본국 국무부에 피란민 가운데 인민군 첩자들이 숨어 있다며 피란민에 대한 사격을 승인하면서 자행됐다. AP통신은 1999년 노근리 학살사건을 외국 언론으로는 처음 보도해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은 바 있다. AP통신이 대표적인 집단 학살 사건 5건의 실상을 보도했다. 경북 포항 송골 해변 함포사격=비밀 해제된 미 해군 자료에 따르면 195091일 포항 앞바다에 있던 구축함 디해이븐호는 미 육군의 요청에 따라 해변 가에 있던 피란민촌을 향해 포격을 가했다. 목격자들은 100~200명이 사망했으며, 대부분이 여성과 어린이들이었다고 증언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포항 송곡 해변에는 약 2000명의 피란민이 운집해 있었다.

 

  당시 그곳에 부모와 남자 형제와 여자 형제 각 1명과 열흘 동안 있었던 방일조 씨(68)󰡒미군 전함이 포항 앞바다에 있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28분 디해이븐호는 해안함포사격통제반(SFCP)으로부터 함포사격 명령을 받았다. 디해이븐호 승무원은 목표물이 인민군이 아닌 피란민이라는 사실을 알리면서 명령 내용에 대한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통제반은 피란민 가운데 인민군이 섞여 있다는 미 육군정보국의 첩보에 따라 포격 명령을 다시 내렸다. 디해이븐호는 오후 219분부터 230분까지 11분 동안 5인치 포를 15발 발사했다. 당시 구축함 전투일지는 상세한 피해 내용 없이 󰡒(피란민을) 해산하고 (인민군을) 쫓기 위해 사격했기 때문에 매우 경미한 사상자가 발생했다󰡓고만 기록했다. 하지만 생존자 최일출 씨(75)󰡒곳곳에 시체가 널려 있었고 바다는 핏물로 가득했다󰡓면서 󰡒목격자들은 100~200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은 부산일보가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미 해군역사관에서 구축함의 전투일지를 찾아내 200475일자로 보도한 내용을 AP통신이 미군 당국으로부터 확인한 내용이다. 예천 산성마을 폭격=51119일 미 전투기가 서울에서 남동쪽으로 220떨어진 경북 예천의 산성마을에 네이팜탄을 투하해 주민 34명이 사망했다고 비밀 해제된 문서가 밝혔다. 문서는 미군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 산성마을 사람들은 인민군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등 부역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문서는 󰡒(폭격으로 인한)인민군 사상자는 없다󰡓고 보고했다. 생존자들은 인민군을 도운 적이 없으며 소개 경고를 받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단양 영춘 곡계굴 폭격=51120일 서울에서 남동쪽으로 150떨어진 단양 영춘의 곡계골 입구에 미 전투기가 네이팜탄을 투하했다. 생존자들은 이 폭격으로 동굴 속에 피신해 있던 민간인 300명이 질식해 사망했다고 밝혔다. 미 전투기가 네이팜탄을 투하하기 직전 미 정찰기가 이 지역 상공을 지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비밀 해제 문서에 따르면 미 조종사들은 피란민 가운데 인민군 첩자들이 숨어 있다고 의심해 가끔 민간인에 대한 직접 공격을 자행했다. 마산 곡안리 사찰 폭격=50810일 미군과 미 전투기는 곡안리에 있는 한 사찰로 피신하려는 민간인들을 향해 사격했다. 생존자들은 많은 어린이를 포함해 민간인 83명이 사망했다고 증언했다. 비밀 해제된 문서에 따르면 이 지역을 관할하던 미 보병 25사단 사령부는 전투지역에서 민간인을 사살해도 좋다는 명령이 공식 시행되기 2주 전에 사격명령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아산 둔포 창고 폭격=51115일쯤 충남 아산 둔포 마을에 있는 창고에 피신해 있던 피란민을 향해 미 전투기가 폭격을 가해 300명이 사망했다. 생존자들은 당시 피란민들은 추위를 녹이기 위해 불을 지피고 있었으며, 미 전투기는 아무런 경고 없이 폭격했다고 말했다.(조찬제 記者 京鄕新聞 2007413)

 

  산성리(美軍, 韓國戰 良民虐殺 許容 事實上 是認) [記事] : [앵커멘트] :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피난민들에게 총격을 가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의 주한 미대사의 편지를 미 국방부가 마침내 시인했다고 AP 통신이 보도했습니다. 미 국방부는 특히 노근리 진상조사에서 이런 내용의 서한을 검토하고도 보고서에는 언급하지 않기로 결정해 진상을 축소하거나 숨기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받고 있습니다. 신현준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 19507, 미군의 무차별 총격으로 주민 2백여 명이 학살된 노근리 사건. 미 국방부는 이 사건 진상조사에서 민간인 수백 명이 희생된 사실은 인정했지만 겁에 질린 병사들이 우발적으로 총을 쏜 것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민간인 총격 방침이 담긴 존 무초 주한 미 대사의 편지가 공개되면서 이런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이 편지에는 피난민들이 미군 방어선 쪽으로 남하할 경우 경고사격에 이어 총격한다는 지휘부의 방침이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AP 통신은 미 국방부가 이 서한의 대해 언급을 피해오다 1년이 지나서야 시인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특히 진상조사과정에서 무초 대사의 서한을 검토하고도 최종 보고서에는 이를 언급하지 않고 우발적 사건으로 발표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축소나 왜곡의 고의성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인터뷰:노근리 사건 생존자] : "살려달라 애원할 때 답변은 상부의 명령이라면서 그날 오후부터 집중사격해서 다 죽었어요." AP 통신은 노근리 말고도 미군의 민간인 학살이 추가로 입증됐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19509월 포항에서 미 해군 구축함이 피난민들에게 포격을 가해 100~200명이 숨진 사건과 단양과 예천에 미 전투기가 네이팜탄을 투하해 3백여 명이 숨진 사건의 증거가 미 해군 문서에서 확인됐다고 통신은 설명했습니다. YTN 신현준입니다.(YTN 2007414)

 

  산성리(AP가 밝힌 '美軍民間人 集團 虐殺' - "諜者 있을 수도" 避亂民 數百名...) [記事] : AP통신이 2007413일 보도한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자행한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은 앞서 부산일보와 생존자 증언 등을 통해 제기된 내용이지만, 미국 언론이 한국전쟁 관련 문서를 통해 직접 확인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미군의 피란민에 대한 학살은 존 무초 당시 주한 미 대사가 본국 국무부에 피란민 가운데 인민군 첩자들이 숨어 있다며 피란민에 대한 사격을 승인하면서 자행됐다. AP통신은 1999년 노근리 학살사건을 외국 언론으로는 처음 보도해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은 바 있다. AP통신이 대표적인 집단 학살 사건 5건의 실상을 보도했다. 경북 포항 송골 해변 함포사격=비밀 해제된 미 해군 자료에 따르면 195091일 포항 앞바다에 있던 구축함 디해이븐호는 미 육군의 요청에 따라 해변가에 있던 피란민촌을 향해 포격을 가했다. 목격자들은 100200명이 사망했으며, 대부분이 여성과 어린이들이었다고 증언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포항 송골 해변에는 약 2000명의 피란민이 운집해 있었다.

 

  당시 그곳에 부모와 남자 형제와 여자 형제 각 1명과 열흘 동안 있있던 방일조(68) 씨는 "미군 전함이 포항 앞바다에 있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28분 디해이븐호는 해안함포사격통제반(SFCP)으로부터 함포사격 명령을 받았다. 디해이븐호 승무원은 목표물이 인민군이 아닌 피란민이라는 사실을 알리면서 명령 내용에 대한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통제반은 피란민 가운데 인민군이 섞여 있다는 미 육군정보국의 첩보에 따라 포격 명령을 다시 내렸다. 디해이븐호는 오후 219분부터 230분까지 11분 동안 5인치 포를 15발 발사했다. 당시 구축함 전투일지는 상세한 피해 내용 없이 "(피란민을) 해산하고 (인민군을) 쫓기 위해 사격했기 때문에 매우 경미한 사상자가 발생했다"고만 기록했다. 하지만 생존자 최일출 씨(75)"곳곳에 시체가 널려 있었고 바다는 핏물로 가득했다"면서 "목격자들은 100200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은 부산일보가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미 해군역사관에서 구축함의 전투일지를 찾아내 200475일자로 보도한 내용을 AP통신이 미군 당국으로부터 확인한 내용이다. 예천 산성마을 폭격=51119일 미 전투기가 서울에서 남동쪽으로 220떨어진 경북 예천의 산성마을에 네이팜탄을 투하해 주민 34명이 사망했다고 비밀 해제된 문서가 밝혔다.

 

  ◆ 예천 출신 권오휘, 11일 안동서부초에서 회원 400여명 참석리에 제29대 경북문인협회 회장에 당선됨...축하합니다.

 

  권오휘(28대 경북문인협회 회장에 권오휘씨 당선! : 예천 대창중 교감 재임 중.,.) [기사] : 경북문인협회 신임 회장에 예천출신 권오휘 대창중학교 교감이 선출됐다. 경북문인협회는 2023211일 안동서부초등학교 체육관에서 회원 400여 명이 참석해 '2023년 정기총회 및 임원선거' 개최하여 지난해 사업성과와 예산.결산 보고에 이어 신임 회장단 선거를 실시했다. 이날 선거에서 경북문인협회 제28대 회장에 수석부회장을 역임한 권오휘(59)씨가 회장에 당선됐다. 회장 선거에는 권오휘 후보가 187표를 얻어 상대 후보(186)1표차로 제치고 당선되는 영광을 안았다. 부회장에는 강성태.김정화(안동), 박윤희(구미), 이승진(상주), 조관식(경주)5명이 동반 당선됐다. 권오휘 당선자는 "8년 동안 경북문인협회 부회장으로 재임한 경험을 바탕으로 함께 성장하는 경북문인협회를 열어가겠다.""경북문학관 건립과 발전기금 확충 등을 통해 문향만리 경북문협의 위상을 드높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문학박사인 권오휘 신임 회장은 2003년 문예사조에 시로 등단했으며, 예천군문인협회 회장, 한국예총 예천군지회장, 경북도립대학교 외래 교수, 안동대학교 겸임교수 등을 역임하고 현재 예천군 관내 최고의 사학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는 대창중학교의 교감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예천군정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면서 학부모 및 군민들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다.(정차모 기자 예천인터넷뉴스 202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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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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