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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2,079 : 산성리...(부, 예천 출신 이형식 경북도의원, 9일 중소기업중앙회장 표창을 수상함...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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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는 미군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 산성마을 사람들은 인민군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등 부역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문서는 "(폭격으로 인한)인민군 사상자는 없다"고 보고했다. 생존자들은 인민군을 도운 적이 없으며 소개 경고를 받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단양 영춘 곡계굴 폭격=51년 1월20일 서울에서 남동쪽으로 150㎞ 떨어진 단양 영춘의 곡계골 입구에 미 전투기가 네이팜탄을 투하했다. 생존자들은 이 폭격으로 동굴 속에 피신해 있던 민간인 300명이 질식해 사망했다고 밝혔다. 미 전투기가 네이팜탄을 투하하기 직전 미 정찰기가 이 지역 상공을 지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비밀 해제 문서에 따르면 미 조종사들은 피란민 가운데 인민군 첩자들이 숨어 있다고 의심해 가끔 민간인에 대한 직접 공격을 자행했다. ◇마산 곡안리 사찰 폭격=50년 8월10일 미군과 미 전투기는 곡안리에 있는 한 사찰로 피신하려는 민간인들을 향해 사격했다. 생존자들은 많은 어린이를 포함해 민간인 83명이 사망했다고 증언했다. 비밀 해제된 문서에 따르면 이 지역을 관할하던 미 보병 25사단 사령부는 전투지역에서 민간인을 사살해도 좋다는 명령이 공식 시행되기 2주 전에 사격명령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아산 둔포 창고 폭격=51년 1월15일쯤 충남 아산 둔포 마을에 있는 창고에 피신해 있던 피란민을 향해 미 전투기가 폭격을 가해 300명이 사망했다. 생존자들은 당시 피란민들은 추위를 녹이기 위해 불을 지피고 있었으며, 미 전투기는 아무런 경고 없이 폭격했다고 말했다.(조찬제 記者 京鄕新聞 2007-04-14)
산성리(普門面 山城里 政府次元 現地 調査 : 韓國戰爭 中 美軍 爆擊事件) [記事] : 보문면 산성리 주민들의 가슴 한켠에는 태산보다 큰 한이 반세기 넘게 쌓여 있다. 1951년 1월 19일 오전 6시. 어둠이 채 걷히기 전 산성리에 전투기의 굉음과 함께 무차별 폭격이 가해졌다. 네이팜탄, 로켓포, 캘리버50 기관총탄이 비오듯 쏟아졌다. 평화롭던 마을이 삽시간에 불바다로 변하고 주민들은 고통에 울부짖었다. 이날 오후 7시까지 미군 F-80폭격기 6대가 간헐적으로 산성리 상공을 돌며 폭탄과 휘발유(통)를 쏟아 부었다. 대대손손 지킨 문전옥답과 집은 흔적 없이 파괴되고 폐허가 됐다. 약 130호, 5백여 명의 주민 가운데 사망 34명, 중상 44명, 경상 30명, 행방불명 30명 등의 인명 피해와 가옥 62채 전소, 7채가 파손됐다. 사망자 중에는 노인, 임산부, 어린이가 상당수 포함됐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주민들의 고통 또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살을 에는 추위와 두려움, 먹거리를 찾아 언 땅을 뒤지고, 풀뿌리로 목숨을 연명했다. 죽은 이들을 찾아 장례를 치르면서도 그저 목숨이 붙어있음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굶어서 얼어 죽는 이가 속출했으며, 어린이들은 배고픔과 약을 구할 수 없어 부황과 괴질로 고통 받다 하나 둘 숨을 거뒀다. 배움의 길 또한 남의 일이었다. 상급학교의 꿈은 먼 나라 얘기가 됐으며, 간신히 이름과 덧셈, 뺄셈만 익혔다. 고사리처럼 여린 손으로는 공책과 연필 대신 농기구를 잡아야 했다. 입은 있으나 말은 할 수 없었던 암흑 같았던 시절. 술 한 잔에 피울음을 삼켜야 했다. 그렇게 흘러간 세월이 벌써 57년이 되었다. 산성리 주민들은 가슴속에 쌓인 한을 조금이나마 풀고, 원혼을 달래기 위해 지난 96년 당시 상황을 적고 피해자들의 연대서명을 받아 국방부와 정부, 국회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모두 묵묵부답이었다. 방송과 언론에서도 잠시 관심을 보이는 듯 하더니 이내 잊혀졌다. 3년 전 미군 오폭으로 노근리 사건이 대두되고 한 방송인의 끈질긴 추적 끝에 미국 국방부에서 오폭이란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문건이 발견되면서 새롭게 힘을 냈다. 그 결과 2007년 4월 30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정부차원의 현지조사가 나와 주민들은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지난 4월 30일부터 5월 5일까지 6일간 산성리 경로당에서 당시 피해자 및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증언과 녹취 등 심층조사가 이루어졌다.
보문면 산성리 미군 오폭관련 진상조사 및 보상대책 추진위원회 안태기 위원장은 당시 3살로 조부, 동생을 포함 사촌까지 10여 명의 가까운 일가친척을 잃었다. 안태기(60) 위원장은 7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당시의 얘기를 들었다. 가슴에 한이 맺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을 아버님을 위해서라도 진실은 틀림없이 규명되어야 하며, 가장과 어린 자식을 잃고 어디에도 하소연 한번 못하고 산 유가족들에게 국가는 마땅히 적절한 보상과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미군의 잘못된 판단으로 희생되었으니 얼마나 억울한가! 당시는 나라가 어려워 보상이 힘들었지만 이제는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니 마땅히 보상해 죽은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보문면 산성리 경로당 한켠에는 당시 사용된 캘리버 50 기관총 탄환 4개와 휘발유통 파편 일부가 곱게 싸여진 채 보관되어 있다.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약 60호 120여 명의 주민들이 살며, 당시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지만 가슴속 한은 대물림해 주민들의 가슴에 화인처럼 박혀있다. 마을주민들은 이제는 진실이 제대로 밝혀져 억울함이 조금은 사라졌으면 한다.며 다시는 이런 비극과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백승학 記者 醴泉新聞 2007년 05월 10일)
산성리("當時 眞實 밝히는 게 目的" : '報償'은 特別法 製定돼야 可能) [記事] : 보문면 산성리는 미군 관련 피해사건에 대한 진실․화해 위원회의 첫 조사로 관심을 끌고 있다. 김응학 조사관이 산성리사건을 맡았으며, 2007년 4월 30일부터 5월 5일까지 약 6일간 예천읍 모텔에서 보문면 산성리 현지를 오가며 조사를 진행했다. 노트북과 녹취에 필요한 소형 녹음기, 문서를 준비해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당시 상황을 들으며, 단 한가지의 사실도 놓치지 않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김응학 조사관은 이번 조사는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의 진실을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며 주민들이 생각하는 국가유공자 예우와 적절한 보상은 이번 조사와는 연관성이 없다고 강조하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시효가 지나 이루어질 수 없으며,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들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현지 조사를 마치면 당시 미군 전투기 조종사나 관련자를 찾아 다시 자료를 수집하고 위원회에서 조사내용을 검토해 진실 규명 여부를 심의 의결하게 되며, 진실 규명 여부가 결정 나게 되면 보고서를 통해 정부에 권고, 피해자 위령사업이 이루어진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지난 2004년 9월 여야 3당에서 각각 법률안을 발의했다. 2005년 5월 3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국회 의결을 거쳐 5월 31일 법률 제7542호로 공포됐으며, 12월 1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시행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에 의거 항일독립운동, 일제강점기 이후 국력을 신장시킨 해외동포사, 광복 후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유린과 폭력 학살 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해 은폐된 진실을 밝혀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국민 통합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미군 관련 피해 사건이 5백여 건 접수되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백승학 記者 醴泉新聞 2007년 05월 10일)
산성리(美國은 韓國戰 戰爭犯罪를 謝過하라) [記事] : 국회에서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게 학살당한 민간인 유족들의 생생한 증언이 쏟아졌다. 2007년 5월 22일 오후 미군범죄 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 남측본부와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회 산하 미군학살유족회는 국회도서관 지하 대강당에서 한국전쟁 당시 미군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촉구 증언대회를 열었다. 증언대회에는 경북 예천과 포항, 경남 사천, 전북 익산 등 7개 지역의 미군학살 유족회 대표 8명이 참석해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미군 학살을 규탄했다. 한국전쟁 당시 열다섯 살이었다는 홍종태 경남 함안 유족회 회장은 피난을 가려고 하는데 미군과 경찰이 말리며 함께 철수하겠다고 말했다며 하지만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철수한 후 마을에 폭격을 가해 식구 중 4명이 죽었고 아버지는 한쪽 눈을 잃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한국전쟁 때 미군이 자행한 전쟁 범죄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내용의 진상규명 항의서한을 낭독한 후 미대사관으로 이동해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한편 AP통신은 2007년 4월 13일 한국전쟁 당시 미국방부가 미군이 민간인에게 총을 쏠 수 있도록 허용한 사실을 시인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김현경 대학내일 記者 來日新聞 2007-05-23)
◆ 예천 출신 이형식 경북도의원, 9일 중소기업중앙회장 표창을 수상함...축하합니다.
이형식(이형식 경북도의원 '중소기업중앙회장 표창' 수상! : 군의원 3선 경험 도 의정 발전 기여...) [기사] : 예천 출신인 경상북도의회 이형식 의원(지방분권추진특별위원회 위원장)이 2023년 2월 9일 초선 도의원이면서도 경북도내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경영활동 지원 및 일자리창출과 고용안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표창을 수상해 동료 도의원 및 예천군민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예천군의원 및 의장으로 3선 의원을 역임한 경륜과 역량을 바탕으로 제12대 경북도의회에 입성한 이형식 도의원은 "활발한 의정활동을 통해 정책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여러 가지 대응방안과 전문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여 지역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도의회 지방분권추진특별위원회 위원장,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기획경제위원회 위원 등 의정활동에 솔선수범하며, 지역 경제 활성화와 도민 복리증진 향상, 지방분권 촉진과 지방자치 활성화에 이바지해왔다. 특히, 경상북도의회 기획경제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재임하면서 산업단지 기업유치를 위한 보조 및 지원확대와 경상북도 공동브랜드 실라리안 입점방식 변경 등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였고, 주민들에게 필요한 실질적 정책마련을 요구하고 경북도청 신도시 2단계 조성 및 정주환경 개선 요구를 통해 도청 신도시를 비롯한 지역의 경기활성화에 기반을 마련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형식 의원은 "지역의 발전이 곧 국가의 발전으로, 지역 중소기업의 현안과 애로사항이 지역을 넘어 국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경북의 균형발전이라는 대의 아래 시작된 경북도청 이전 신도시가 경북의 중심도시로 도약하여 예천군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하고 전국 최고의 정주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정차모 기자 예천인터넷뉴스 20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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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