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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2,120 : 삼강리,,.(부, 풍양면 공덕1리,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 공모에 선정되어 4년간 총사업비 22억원을 지원받게 됨...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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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리(新道廳時代 醴泉의 場所性과 人文魂을 찾아서 <7>三江村의 風水 文化) [寄稿] :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가 관광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십여 년 전 삼강주막을 복원하면서부터다. 평일에도 수백 명, 연휴 때나 주말에는 천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삼강리를 찾는다. 국내 최고의 물돌이 마을인 회룡포와 용궁의 순댓집들이 가까이 있어 연계관광에 유리하다는 점도 한몫했다. 삼강리는 강촌(江村)이다. 산골짜기에 개울가마을(溪村)이 있고, 바닷가에 갯가마을이 있다면 강촌에는 뱃가마을이 있다. 뱃가마을은 나룻배가 건너다니는 곳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1:2만5천 지형도에 삼강교 북쪽 나루터마을이 '‘뱃가’로 표기돼 있고, 또 예전에 삼강리 일대 주민들이 삼강주막의 주모(酒母)를 ‘뱃가 할매’로 부른 연유도 거기에 있다. 삼강리 대로변에 ‘삼강문화마을’이라 새겨진 커다란 입석이 있다. 아마도 2003년 농어촌공사가 실시한 문화마을 조성사업의 대상 마을로 선정되면서 그 같은 이름이 붙여진 듯하다. ‘문화마을’처럼 중앙 부처의 지원사업명에 따라 수없이 많이 생겨난 지명이 바로 ‘전원마을’, ‘정보화마을’ 같은 보통명사를 덧붙여 쓴 마을이름들이다. 그런 이름 짓기는 ‘존재의 참된 가치’인 특개성(特個性)과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성형외과가 얼빠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유명 연예인을 닮은 얼굴들을 양산하는 행위와도 같다. 필자가 ‘삼강리’, ‘삼강마을’, ‘삼강촌’, ‘삼강문화마을’, ‘삼강뱃가마을’ 등 다섯 가지 이름을 놓고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 ‘삼강촌(三江村)’이 가장 매력 있는 지명으로 확인됐다. 핫플레이스는 그 이름부터 어딘지 달라야 사람들에게 강하게 어필된다. ‘문화’와 ‘생태’는 그것이 선진 형태든 후진 형태든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에라도 있는 일종의 생활양식 패턴이다. 그러기에 ‘문화마을’이나 ‘생태마을’ 같은 용어는 애초부터 성립될 수 없는 말들인 것이다. 더구나 삼강리는 모든 초점이 ‘삼강주막’에 맞춰져 있다. ‘삼강주막마을’이라는 이름이 나돌 정도다. ‘선택과 집중’은 지역개발의 한 효과적인 방법론이기는 하다. 그러나 삼강촌이 간직하고 있는 ‘장소성’과 ‘장소혼(魂)’은 ‘삼강주막 막걸리축제’ 너머에 있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해온 곳으로서 시대별 다양한 문화가 층층이 누적돼 있다. 지금 우리는 삼강촌을 관광지로 보지만 과거의 구석기시대 사람들과 조선조 유교 이데올로기를 하늘처럼 떠받들었던 삼강촌 청주정씨 양반들은 그곳을 이상향의 삶터로 여겼을 것이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삼강촌이라는 특정 장소에 배어 있는 옛 거주자들의 혼과 세계관이다. 그 때의 장소는 우리 눈에 비치는 단순한 객관적인 공간이 아니라 희로애락의 온갖 정서가 녹아 있는 감성의 공간이다. 필자가 그 유서 깊은 ‘감성의 세계’를 바탕으로 21세기 삼강촌의 대외 홍보용 슬로건 하나를 만들었다. 바로 ‘유시유종[有始有終·알파와 오메가]의 땅, 삼강촌’이다. ‘새로운 시작’과 ‘유종의 미’를 마음속으로 다짐하거나 확인하는 명소라는 뜻을 담고 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 여정에서 그 어떤 일을 잘 마무리하기 위한 결심을 하거나 또는 새로운 출발을 위한 ‘마음 다잡기’가 필요할 때 누구든 삼강촌을 찾으면 장소령(靈)이 주는 그 어떤 효험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삼강촌의 자연 풍수적 입지 과학 : 풍수 입지론의 거시적 판단 기준은 산, 수, 방위다. 지맥상에 놓인 촌락의 위치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수세(水勢)의 상태를 살피는 것이 산과 수라면, 그를 바탕으로 각종 시설물을 어느 쪽으로 향하도록 배치할 것인가 하는 것이 방위다. 다시 말해 지세(地勢)와 수세, 절대향(絶對向)과 상대향(相對向)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것이 풍수 입지론이다. 삼강촌의 풍수 입지 문화는 하천변 인공제방 축조 이전과 이후로 크게 대별된다. 삼강촌은 이름 그대로 강변마을이어서 태생적으로 수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요즘처럼 치수(治水)시설이 잘 돼 있다면 그것이 계곡물이든, 강물이든, 바닷물이든 물길과 물 흐름을 개의치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인공제방 축조와 같은 치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속칭 ‘개천’ 시절이었다면 상황은 다르다. 오죽했으면 『택리지』에서 ‘큰 물가 마을은 흥망이 덧없다’는 말까지 했겠는가. 삼강촌의 최초 주거지는 2015년 발굴된 구석기 유적지다. 마을 뒷산인 대동산 기슭 하안단구 위인데 마을 안에서도 높은 고지대다. 하안단구는 과거에 강물이 흐르면서 하천 양안에 만들어 놓은 계단상의 지형을 말한다. 그곳에서 최소 8만 년 이전부터 4만 년 전까지의 구석기 전기·중기 유물 160여 점이 발굴됐다. 신생대 제4기만 하더라도 4번의 빙하기와 3번의 간빙기[후빙기]가 있었으니, 대기후 변동이 한 번 있을 때마다 해수면이 대략 100여 m씩 오르내렸음을 감안하면 삼강촌 일대를 흐른 강물의 변화 폭도 무척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구석기인들의 주거입지 장소 선택은 두 가지 점에서 특별해 보인다. 하나는 그 위치가 ‘배산임수(背山臨水)’지대여서 강에서의 어로와 산에서의 사냥[수렵]활동이 유효적절하게 병행될 수 있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강물이 최대로 많아질 때를 대비해 그 피해를 입지 않을 만큼 충분히 높은 고지대 장소를 선택해 기거를 했다는 사실이다. 혹자는 또 이것을 한반도 ‘자생(自生)풍수’의 한 전형이라 할지 모르겠으나, 필자가 보기에는 그 어떤 타고난 생존 감각이 그 같은 입지 양태를 유도했을 성싶다. 경험적 풍수론에 바탕한 것이라기보다는 선험적 공간 감각에 더 의존했을 거라는 뜻이다. 삼강촌은 인공제방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근대까지만 해도 주거시설이 강변 가까이 내려올 수 없었다. 홍수시에는 집이고 가재도구고 가릴 것 없이 모두 물에 떠내려갈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1934년[갑술년] 대홍수 때 일어난 마을입지 변화가 그것을 입증한다. 청주정씨 고가(古家)들은 지맥이 뻗어 내린 지세향을 따라 고지대에 북향집을 지은 탓에 겨울철에는 찬 강바람과 일조량 부족으로 추위에 떨어야 했지만 여름철 수해는 전혀 입지 않았다. 그러나 삼강나루 가까이에 있었던 보부상 숙소와 사공 숙소를 비롯한 3채의 주막은 모두 물에 떠내려가 버리고, 유일하게 남은 삼강주막도 절반 이상이 물에 잠기는 바람에 가옥이 비스듬히 기울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주막은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주막은 옮기면 그 기능이 상실된다. 물을 다스리는 기술이 없었던 시대에, 그것도 세 강물이 모이는 ‘물 터’나 다름없었던 삼강변에서 제아무리 자주 물난리를 겪는다 할지라도 똑같은 자리에서 유실과 재건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게 바로 삼강나루터 주막집의 숙명이었다.
수년 전 장마 직후에 찍은 사진을 보면 삼강물이 합수되는 장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삼강촌 북쪽 700여 미터 지점에서 금천 물을 받아들여 세를 불린 내성천 물이 곧장 남쪽 방향으로 직진하며 삼강촌 터의 북서쪽 모서리를 칠 기세인데, 서진해 오는 낙동강물이 그 찌르는 듯한 직충수(直冲水)를 달봉산 쪽으로 밀어붙여 물목을 만들면서 삼강촌의 침식을 가로막고 있다. 이 경우, 물의 보호사면 쪽에 위치한 삼강촌의 입장에서는 강줄기가 금성수(金星水·環抱水·弓水)가 되지만, 물 빠짐이 느려져 그만큼 농경지 침수지대가 넓어지는 무이촌의 입장에서는 낙동강 물줄기의 역할이 오히려 반궁수(反弓水)나 다름없게 돼버린다. 그렇다면 강을 사이에 두고 삼강촌과 마주보고 있는 무이촌은 어떤 홍수 대비책을 세우고 있었을까. 예부터 무이촌에는 "삼강에 모랫더미가 보이면 뒷물실로 가라“는 풍수 향언(folk tale)이 전해 온다. 지금은 무이제방이 잘 구축돼 무이마을 앞에 넓은 무이들판이 펼쳐져 있지만 예전의 그곳은 큰물이 질 때마다 항상 늪지대로 변하는 상습 침수지역이었다. 그러니까 삼강 바닥에 모래가 많이 퇴적되면 홍수시 세 물이 합쳐지는 좁은 물목인 삼강 서쪽의 물 빠짐이 원활하지 못해 마을 앞 농경지도 모래로 덮일 게 뻔하니 미리 알아서 마을 뒤쪽의 농사지을 만한 곳으로 이거(移居)하라는 얘기였던 것이다. 옛 조상들의 삶터에 대한 자연 풍수적 관찰력은 그토록 빼어난 것이었다. 튼튼한 인공제방이 구축된 지금 삼강촌의 토지이용은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마을 동북쪽 제방 아래의 논들은 ‘녹색문화상생벨트’ 조성사업이라 하여 기와집과 초가집이 나란히 들어선 관광단지로 변모하고 있고, 집의 좌향도 비룡산 능선과 낙동강 줄기, 그리고 제방 둑을 뒷배 삼아 일조량이 좋은 남쪽을 향하고 있다. 예전 상습 침수지대가 옥토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또 금쪽같은 상업지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협소한 명당판국으로 비록 넓은 농경지를 보유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삼강촌에서 쭈욱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한 촌로는 “삼강촌은 살아도 고향은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불현듯 2005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 삼강주막의 마지막 주모가 남겼다는 말이 떠오른다. "안동댐과 마을 제방이 생긴 뒤로 큰물이 진다고 해도 홍수 걱정은 안 돼 좋기는 하지만 제방이 주막 앞을 떡 막아서 있어 어찌나 답답한지. 제방이 없을 적에는 뽀얀 흰모래가 쌓여 보기에도 그렇게 이쁘더니만 제방 쌓고부터는 모래는 없고 풀피리와 쓰레기만 저래 쌓이니 우얄란고 몰라." ‘풍수무전미(風水無全美)’라는 말이 있다. ‘모든 조건을 다 완벽하게 갖춘 땅은 없다’는 뜻의 풍수 금언(金言)이다. 기왕지사 인공제방 구축으로 걸핏하면 강촌마을을 울리던 수재(水災)를 피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 나머지 다소 언짢은 상황들은 마땅히 감내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삼강교와 연결된 59번 ‘둑 도로’가 마을을 두 동강 냈다든가, 또는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달봉교가 아름다운 삼강촌 하천 풍광을 다 버려놓는다는 등등의 얘기에 대한 그 어떤 풍수 비보책(裨補策)이 더 절실해 보인다. 사고의 전환을 위한 무슨 절묘한 방법은 없는 것일까.
◆삼강촌의 인문 풍수적 상징 미학 : 삼강촌의 인문 풍수는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지형 형태에 입각한 이성적 기(氣)풍수론이요, 또 다른 하나는 문화 형태에 입각한 감성적 기풍수론이다. 전자의 아이콘은 삼산삼수(三山三水)와 행주형(行舟形) 명당이고, 후자의 아이콘은 양반 선비문화와 서민 주막문화의 명당성이다. 두 인문 풍수 모두 우리의 이성과 감성에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 풍양면 공덕1리,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 공모에 선정되어 4년간 총사업비 22억원을 지원받게 됨...축하합니다.
공덕1리(풍양면 공덕1리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 공모’ 선정 : 4년간 총사업비 22억 원 투입해 안길 정비, 빈칩 철거, 노후 집수리 등 추진) [기사] : 예천군(군수 김학동) 풍양면 공덕1리 마을이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주관하는 ‘2023년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새뜰마을사업)’ 공모에 선정됐다. 이번 사업은 취약지역 주민들이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안전‧위생 등 주민 생활과 밀접한 생활 인프라 확충과 주거환경 개선, 주민역량 강화 등을 지원한다. 군은 지난 △2015년 용궁면 성저마을 △2016년 감천면 수한마을 △2019년 보문면 막실마을ㆍ풍양면 공처마을이 공모사업에 선정돼 사업을 완료했으며 △2020년 용문면 선2리ㆍ개포면 금리 △2021년 예천읍 갈구2리 △2022년 지보면 마산리가 선정되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2023년) 풍양면 공덕1리 마을이 공모에 선정되면서 4년간 국비 15억 원을 포함한 총사업비 22억 원을 투입해 위험구역 안길 정비, 마을회관 리모델링, 빈집 철거, 슬레이트지붕 철거 및 개량, 노후 집수리, 재래식화장실 철거ㆍ개량 등 생활 인프라 확충과 주거환경을 개선한다. 이와 함께 주민 공동체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주민참여형 건강 관리교육, 마을 쉼터 가꾸기, 마을 추억기록물 제작, 농촌 현장포럼 등 휴먼케어와 역량강화사업 등도 지원하게 된다. 김학동 예천군수는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을 통해 낙후된 주거환경과 생활 인프라를 개선하고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며 “주민들과 협력해 대상마을을 발굴하고 추가로 공모에 선정되기 위해 행정력을 집중하는 등 예천군을 살기 좋은 지역으로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예천뉴스 2023.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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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