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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2,145:새마...
작성자이춘우 @ 2023.04.23 06:07:36

  도청신도시 예천 2,145 : 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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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마(너댓 집 빼곤 早晩 間 모두 떠나, 下里面 松月里 '새마') [記事] : 2004년 5월 14일 오전 하리면 송월리 `새마'를 찾았습니다. 송월리는 면 소재지에서 상리면 도촌리 쪽으로 약 2.5km 지점에 있습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송천동(松川洞), 월감동(月甘洞), 후평동(后坪洞)을 병합하고 송천과 월감의 이름을 따 송월동이라 하여 영주군에 속했다가 1923년 예천군에 편입되었습니다. 소내실, 월감, 새마 등 송월리 3개 자연부락 중 새마는 예천군의 대역사인 예천양수발전소가 건설되면 물 속에 잠겨 지도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만 현실 속에는 없는 마을…, 이 곳 주민들은 머잖아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실향민이 되는 것입니다. 소내실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월감마을 입구에 걸린 플래카드가 눈에 띕니다. 양수발전대책위원회 주민 일동 이름으로 내 건 플래카드에는 `현실에 맞지 않는 보상가는 우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글귀가 선명하게 적혀 있습니다. 주민들의 주장은 2003년 11월 착공한 이설도로 편입 토지 보상가에 비해 본 부지 감정가가 너무 낮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양수발전소와 관련된 이런저런 문제들로 동네가 술렁이는 건 사실입니다. 월감마을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빤히 보이는 새마. 계절은 봄에서 여름으로 빠르게 치닫고 있는데 마치 서툰 화가가 그린 겨울 동양화처럼 을씨년스럽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닙니다. 정작 을씨년스러운 것은 마을이 아니라 곧 정든 땅을 떠나야 하는 주민들의 마음 풍경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정도로 협소한 도로를 따라 마을로 들어섰습니다. 뱀딸기가 드문드문 발갛게 익은 논둑길을 걸어 나오는 박호인(68) 씨를 만났습니다. 그는 한 해 더 이 곳에서 농사를 지을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토지 보상은 만족하십니까? 곧 고향을 떠나셔야 할 텐데 심정이 어떠세요?󰡓 󰡒돈도 싫어. 지금이라도 고향을 안 떠나게 했으면 좋으련만….󰡓 그는 정든 친구들과 헤어져야 되고 또 이 곳에 뼈를 묻을 수 없게 된 것을 몹시 안타까워했습니다. 새마 주민들은 부득이한 동네 사정으로 이사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전체 16호 중 벌써 여러 가구가 떠났습니다. 채광수 씨는 인천, 위성만 씨는 상리면 명봉리, 정재섭 씨는 하리면 우곡리, 진학조 씨는 상리면 두성리, 장병두 씨는 경기도 안성으로 이사했습니다. 또 남덕구(76) 씨는 칠곡, 허정희(69) 씨는 예천읍, 남상태(72) 씨는 아랫마을인 소내실, 박호인(68)․권석분(77) 씨는 하리면 율곡리로 곧 떠날 예정입니다.

 

  너댓 집을 빼곤 조만 간 새 보금자리로 떠나게 된 것이지요. 동네 공터에 차를 세워두고 좁은 골목길을 걸어 들어갔습니다. 이곳저곳 둘러보며 디지털 카메라 셔터를 누르다가 권석분(77)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다음 일요일 대처에 나가 있는 아들이 이삿짐을 옮겨 주기로 했다는 권 할머니는 대충 보따리를 싸놓고 마당에 나와 가져 갈 등걸을 자르던 중이었습니다. 천만 원을 들여 하리면 율곡리 빈집을 수리해 두었다고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한 곳으로 갔으면 얼마나 좋겠니껴. 뿔뿔이 흩어지니 마음이 많이 안 됐니더.󰡓 권 할머니가 목을 축이라며 낡은 냉장고에서 꺼내 준 박카스 맛이 참 쓰게 느껴졌습니다. 아마 고향을 떠나는 권 할머니의 짠한 마음이 전이된 탓일 겁니다. 아랫마을 소내실로 가게 됐다는 남상태(72) 씨, 아직 정착할 곳을 정하지 못했다는 김복남(76) 씨도 만났습니다. 마을 꼭대기 집에서는 남덕구(76), 허정희(69) 두 할머니가 뽕잎을 훑고 있었습니다. 󰡒뽕잎은 뭐 하시게요?󰡓 󰡒삶아서 말린 뒤 볶아 차를 만들면 살 빼는 데 효험이 있니더.󰡓 남 할머니는 딸이 사는 칠곡으로, 허 할머니는 예천읍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습니다. 󰡒고향을 떠나시게 되어 마음이 아프시겠어요?󰡓 󰡒그건 그렇지만 산골 논밭뙈기를 후한 값에 처분한 것으로 만족해야지󰡓라고 남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허 할머니는, 󰡒보상받아 아이들 빚 갚으라고 이리저리 주고 나니 남는 돈이 없다󰡓고 했습니다. 또 󰡒조상묘는 이장할 마땅한 땅을 구하지 못해 화장을 했는데 마음이 너무 허전하다󰡓고 했습니다. 이미 이사 간 집도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찢어진 벽지, 구멍 숭숭 뚫린 방문, 그을음이 시커먼 부엌, 텅빈 외양간, 짝 잃은 신발, 다닥다닥 어깨를 맞댄 지붕, 마당에 아무렇게나 난 질경이, 전기가 차단된 두꺼비집, 금이 간 장독, 골동품 수집상들이 떼어간 마룻장 등이 흑백 필름처럼 펼쳐집니다. 그러나 그 것들은 단순히 버려진 물건이 아니라 미처 가져가지 못한 주인의 소중한 추억이겠지요. 7,470여억 원이 투입되는 대역사 속에 사라지게 될 송월리 `새마󰡑. 밀양 박씨들이 새로 개척한 마을로 특히 붉은 흙이 많이 나와서 이전(泥田)이라고도 불리는 이 마을은 오래 지나지 않아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웠던 기억들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수몰되지 않겠지요. 구불구불 이어진 `새마' 골목길을 다 빠져나와 되돌아보았습니다. 문득 안용태 씨의 시 `내 사랑의 수몰 지역󰡑 몇 토막이 떠올랐습니다. `어느 날 마을이 잠기었다/ 내가 순이네 살구나무를 보고 있을 때/ 그저 바람 속의 삭정이였다/ 철거 계고장이 왔을 때도 설마/ 꽃을 피우리라 믿지 않았지만/ 어김없는 계절, 스스로 풀어/ 꽃 진 자리 젖꼭지가 아파 죽겠다던/ 그 쬐그만 개살구 하나가/ 입안 가득 침 고이게 할 줄이야…󰡑 <권오근 기자> (醴泉新聞 2004-05-27)

 

  새마('揚水發電所' 水沒 地域 醴泉 松月里) [記事] : 찢어진 벽지, 구멍 뚫린 방문, 그을음으로 가득 찬 시커먼 부엌, 텅 빈 외양간, 짝 잃은 신발, 고장난 텔레비전, 마당에 발목까지 차 오른 잡초, 금이 간 장독, 골동품 수집상들이 떼어간 마룻장…. 예천양수발전소 하부댐 수몰 지역인 예천군 하리면 송월리(새마)를 마지막으로 지키고 있던 이주민 김복만(77. 여) 씨는 폐허를 방불케 하는 마을이지만 떠나기가 못내 아쉽다. 󰡒조상 때부터 뼈를 묻고 살아온 정든 고향이지만 이제는 떠나야겠지요. 보상이 끝난 지금까지 이삿짐을 꾸리지 못한 김씨의 남편 박창호(79) 씨와 아들 형근(40) 씨가 이 마을에 남은 마지막 이주민이다. 16가구 중 15가구는 이미 마을을 떠났다. 채씨는 인천, 위씨는 상리면, 정씨는 하리면으로 떠나갔다. 󰡒올 가을 추수가 끝나면 아랫마을이나 용문면으로 이사를 떠나려고 집을 구하고 있다󰡓는 김 할머니는, 󰡒서울 사는 딸이 근처에 와서 살라고 하지만 정든 고향을 떠나기가 싫고 예천이 좋아 그냥 새집을 알아보고 있다󰡓며 말끝을 흐렸다. 󰡒시집와서 50년 간 농사짓고 살다 보니 농사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조그마한 텃밭이라도 달린 집이 있으면 막내아들과 함께 농사지으며 살고 싶어.󰡓아궁이 앞에 앉아 마른 볏짚을 태우며 장마로 눅눅해진 방에 불을 넣던 김 할머니는 아직 장가 못간 아들이 못내 아쉬운지, 󰡒며느리 하나 구해 달라󰡓며 졸랐다. 󰡒시어머니와 자식 4남매를 키운 이 집을 떠나려고 하니 여간 허전한 것이 아니야. 돈도 싫어. 지금이라도 고향을 안 떠났으면 해….󰡓 정든 친구가 그리워 며칠 전에는 이사 간 친구 집을 찾았다는 김씨는, 󰡒이곳에 뼈를 묻을 수 없게 된 것이 몹시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보상비가 많이 나와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김씨는 2004년에는 장가 못간 아들 형근 씨를 꼭 장가보내겠다며 잠시 이주에 대한 허전함을 잊는다.(마경대 記者 每日新聞 2004년 07월 07일)

 

  새마(新基, 泥田) : 밀양 박씨들이 새로 개척한 마을로 붉은 흙이 많이 나와서 泥田이라고도 한다.(下里面홈페이지 2013)

  새마, 맥실, 새마을 [마을] : 보문면 기곡2리(基谷二里) 느릅실 동쪽에 있는 마을로, 1780년 경 새로이 생겼다. 영주시 문수면 조재2리 큰 맥실의 서쪽이다. 마을 곁에 장수바우가 있다. 6가구 32명(1980)이 살고 있다.

 

  새마, 바람재, 샛마, 신동(新洞) [마을] : 호명면 내신1리(內新一里) 못뒤와 모산의 중간에 있는 내신리의 중심 마을로, 안골에 살던 진성 이씨가 조선 중엽 음달을 피하여 양지바른 곳으로 옮겨와서 개척하였다. 또 1780년에 우삼당(禹三堂)이 옮겨 살았다. 마을 앞에는 경지 정리가 된 논들이 바둑판처럼 펼쳐있고, 뒷 야산에는 밤나무 등 과실나무가 많다. 18가구(1975)가 살다가, 14가구 62명(1980) 중 평산 申, 순흥 安 2가구가 살고 있다.

 

  새마(新村) : 金陵里 소속으로, 知保面 너리바우에 살던 예천 임씨들이 옮겨 와서 새로 마을을 이룬 곳이라 하여 새마라 부른다. 금릉리에서는 가장 늦게 생긴 마을이다.(虎鳴面홈페이지 2013)

 

  새마(샛마, 新洞) : 內新里 소속으로, 안골에 살던 진성 이씨가 朝鮮 중엽 음달을 피하여 양지바른 곳으로 옮겨 와서 못뒤와 모산의 중간에 새로 개척한 마을이다.(虎鳴面홈페이지 2013)

 

  새마, 부리기, 부역이(府驛이), 불리기(佛里基), 불위기(佛爲基), 신촌(新村) [마을] : 지보면 지보2리(知保二里)에 있는 마을로, 큰마보다 늦게 마을이 형성되었다. 1670년(현종 11) 경 조진도(趙鎭道)가 새로 개척하였는데, 당시 마을이 불타산(佛陀山)과 부채등으로 둘러싸이고, 그 앞으로 낙동강이 흐르는 마을 터의 지세를 살피니 하늘의 샛별(金星)처럼 생겨서 자손이 번창하리라고 터 잡았다. 또 마을 앞산에 암자(庵子)가 있어서, 이 마을을 부처님이 위한다고 하여 불위기(佛爲基)로 하였다가 그 후 새로 마을을 이루었다 하여 신촌(新村)으로 개칭하였다. 또 지보리(知保里) 전체를 부리기라고도 한다. 78가구 417명(1980) 중 함안 趙 68가구, 기타 10가구가 살고 있다.

 

  새마, 북부리(北部里), 신동(新洞), 신기(新基) [마을] : 용궁면 읍부리(邑部里) 북쪽에 있는 마을로, 현청(縣廳)이 향석리 구읍(鄕石里舊邑)에서 포금산(抱琴山) 밑의 가야리(佳野里) 곧 지금의 읍부리(邑部里)로 옮겨져서 신읍(新邑)이 형성될 때 새로 생긴 마을이므로 새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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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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