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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2,235:서본1리,,,서본2리...
작성자이춘우 @ 2023.07.22 06:04:39

  도청신도시 예천 2,235: 서본1라,,,서본2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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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본1리(예천읍 서본1리 ‘시니어 봉사대’, 마을대청소 실시 : 65세 이상 노인들로 구성된 자율적인 봉사단체) [기사] : 예천읍 서본1리 행복마을봉사회(회장 김재수)에서는 2019년 4월 1일 오전 7시 새봄을 맞아 쾌적하고 깨끗한 마을을 가꾸기 위한 봄맞이 마을대청소를 실시했다. 이날 대청소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느티나무 쉼터와 주택가 골목, 이면도로 등에 겨우내 쌓인 묵은 생활쓰레기를 말끔히 정비했다. 서본1리 행복마을봉사회는 65세 이상 노인들로 구성된 자율적인 봉사단체로 현재 20여 명이 활동 중이다. 김재수 행복마을봉사회장은 “어르신들의 솔선수범을 통해 마을의 화합과 발전을 도모하고자 앞으로도 각종 행사에 자발적으로 앞장을 서는 모범 봉사단체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행복마을봉사회」는 올한해 사업으로 분기별 마을 대청소, 느티나무 쉼터 시화전 개최(봄, 가을), 가정의 달 느티나무 쉼터 경로잔치 등을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예천뉴스 2019.04.01.)

 

  서본1리(예천읍 서본1리, ‘느티나무 행복마을 문화쉼터’ 조성 : 주민들의 복합적인 문화쉼터 공간으로 활용) [기사] : 예천읍(읍장 황병수)에서는 서본1리 산9번지 주택가에 ‘느티나무 행복마을 문화쉼터(이하 쉼터)’를 조성했다. 쉼터는 바닥면적 100㎡, 사업비 1천9백만 원을 투입해 데크장 전체에 비가림 지붕을 씌우고 평상과 벤치의자 및 운동기구 등을 설치해 마을 주민들의 여가와 문화 공간 및 마을공동체 행사 장소로 활용코자 조성됐다. 그동안 마땅히 휴식할 공간이 없었던 서본1리는 시원한 느티나무 그늘숲을 활용한 아름답고 쾌적한 문화쉼터 조성으로 주민들로부터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으며 타 지역의 모델이 되고 있다. 원래 이곳은 흑응산 아래에 보호수로 지정된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었으나 경사가 심해 방치되어 있던 것을 축대를 쌓고 데크를 설치 주민들의 복합적인 문화쉼터 공간으로 탈바꿈 됐다. 김재수 서본1리 이장은 “느티나무 행복마을 문화쉼터를 만들어준 황병수 읍장에게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 이곳은 마을 주민들의 사진전, 시화전, 미술전을 비롯한 유치원 재롱잔치, 효잔치 등 주민들의 문화적인 욕구충족을 위한 장소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병수 읍장은 "서본리 느티나무 문화쉼터는 야외 행사의 원활을 기하고자 비가림 시설을 설치했으며 단순한 휴식처가 아니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힐링 공간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주민들의 쉼터 조성사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말했다.(예천뉴스 2019.05.15.)

 

  서본2리([우리마을 里長任]26年째 里長 맡아..醴泉邑 最長壽, 催告齡 西本2里 이창우 里長!) [記事] : [우리마을 이장님]강산이 세 번 바뀌는 오랜 세월동안 마을 주민들의 손발이 되어 묵묵히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예천읍 서본2리(西本2里) 이창우(75) 이장은 올해로 26년째 이장일을 맡고 있는 최장수이자 최고령 이장이다. 이 이장이 지나온 시간들은 예천읍 마을의 변천사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한해 한해를 뒤돌아보면 회한이 많다고 한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마을 주민들을 위해 남은 여생 최선을 다하겠다는 이 이장의 얼굴에서 세월이 비켜가는 듯 열정이 가득 넘쳐 보였다. 서본2리는 예천읍사무소 기점 승용차 기준 3분(0.7km) 거리에 있으며 동쪽으로 서본1리, 서쪽으로 대심3리, 북쪽으로 흑응산이 남쪽으로는 남본1리가 경계를 이룬다. 서정자(西亭子)들의 약 절반이 서본2리 농경지로 포함된다. 시가지 도로인 효자로와 충효로, 역전길을 끼고 있으며 기존 예천읍 도심지역과 신시가지 중간지점에 위치하여 일상생활 및 교통이 편리한 마을이다. 과거 오래된 건축물들로 인해 낙후된 지역은 최근 들어 재개발에 따른 아파트, 원룸이 들어서면서 예천읍의 신 주거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다. 공공시설로 예천군문화회관, 예천군노인복지회관, 대한노인회 예천군지회, 국립농산물 품질관리원 경북지원 예천사무소, 예천경찰서 예천지구대, 한국국토정보공사 예천지사, 예천농협 농산물유통사업소, 예천역이 있다. 주요시설로 예천성당, 교회(예천통일), 모텔, 편의점, 미용실, 상가, 어린이집(성심어린이집, 샛별어린이집)이 있으나 시내 중심가에 비해 상가 점유율이 낮고 주택이 더 많은 형태로 아파트, 원룸 등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예천 기차역은 1931년에 설치됐다. 이후 1944년 안동~점촌간 철도가 철거되었다가 1966년 경북선(김천~영주) 철도로 다시 복구됐다. 하루 부산 3회, 영주 3회, 경북관광순환열차 1회와 주말열차(정동진~부산) 토, 일 각 1회 등이 운행되고 있다. 서본2리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전형적인 농촌 취락 형태 마을로 안동 金, 김해 金, 밀양 朴, 경주 李, 기타 성씨로 이루어졌으나 산업화가 빠르게 진전되면서 지금은 도시화로 변모하는 과정으로, 농업인 보다 자영업이 더 많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마을은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면서 굴머리를 기준으로 두 개의 마을처럼 이루어져 경로당이 각각 따로 있다. 서본2리에는 현재 병의원, 약국이 없어 주민들이 시내 중심가까지 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서본2리(西本2里)는 384가구(14개반)에 873명(남자 452명, 여자 421명)이 살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359명(65세 이상 41%)으로 고령화가 높다고 보며 주민 중 전업농가는 86가구(22%), 주요 특산물은 쌀이다. [참고자료]1976년 인구현황 380가구 1,843명(남 946, 여 897) 최전성기, 마을 면적은 서본리 전체 면적 1,200,068㎡(전 111,184㎡, 답 285,253㎡, 과수원 13,452㎡, 임야 295,666㎡)로 농경지는 모두 서본2리에 포함된다. 서본2리(西本2里)는 본래 예천군 서읍내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本洞과 남읍내면의 본동 일부를 병합하여 서읍면과 본동의 이름을 따서 서본동이라 하여 예천면에 편입됐다. 1919년에 굴모리에 굴(三益隧道)을 확장하면서 늪지대가 대지로 변했다. 1937년에는 예천읍 서본동이 되고, 1953년 10월 15일 서본 1,2동으로 분동 되었고 1988년 洞이 里로 개칭됐다. 자연마을로는 박샘(지고개), 당곡, 호혹골(상시당골)이 있었다. 박샘(酒泉)은 우물이 있는 마을이라 생긴 이름이다. 전에 술이 나왔다하는데, 한 바가지만 떠 먹어야 되는데, 욕심 많은 사람이 두 바가지를 떠먹은 뒤로부터 술이 변하여 물이 되었다고 한다. 당곡은 산수당이라는 신당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매년 음력 4월 15일에 남자의 화상을 걸어놓고 별신굿을 하여 제사를 지낸다. 호혹골은 흑응산성 밑에 있는 마을로, 옛적에 성을 지키던 병사들이 과녁을 세워놓고 활쏘기를 하였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서본2리의 자연마을은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은 상시당, 지고개, 비석골(드림파크 주변), 굴모리, 한일주택, 역전마을 등으로 변했다.

 

  서본2리 경계는 예천중앙교회에서 세광빌라 앞 골목길 기준 대심리 방향, 도시계획도로 위(상시당길)가 서본2리이며, 서쪽으로는 문화회관, 이원퍼스터 아파트, 충효로 아래 역전길, 예천역까지이다. 서본리 경계를 조사하면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서본리가 한반도 지형을 닮았다는 것이다. 항공영상(Daum지도)을 보면 신예천교(충효로)를 경계선(휴전선)으로, 북쪽은 산악지대, 남쪽은 평야지대, 동쪽은 바다(한천), 흑응산은 백두산으로 생각하고 본다면 한반도 지형과 흡사하다고 하겠다. 서본2리(西本2里)의 전해져오는 자연마을 지명 유래를 살펴보면 굴모롱이굴(林椿遷)은 굴머리에 있는 굴로 임춘(林椿)이 이 굴을 뚫어서 한천의 물을 끌어다가 서정자(西亭子)들 용수로 사용하게 했다. 임춘천(林椿遷)은 굴모롱이에 있는 벼랑으로 전에 큰길이 현산 꼭대기로 나서 매우 곤란하였는데, 임춘이 이 벼랑을 깎아 내어 길을 내고, 또 굴을 뚫어서 물길을 만들어서 서정자들의 몽리(蒙利)를 도왔다. 비선거리(길)은 쥐고개 남쪽에 있는 길로 군수(郡守) 유건환(兪建煥), 이인성(李寅聲), 지응주(洪膺周)의 선정비가 있었다고 하여 주민들은 비석골로 불렀으나 선정비는 도로 확장으로 1976년 4월에 남산공원으로 이건(移建) 했다. 지고개(酒고개, 酒峴, 쥐고개)는 서본리에서 대심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① 모양이 쥐처럼 생겼다. ② 고개 밑에 주천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2차선 도시계획도로가 개통되어 대심리와 시내가 연결되는 교통량이 가장 빈번한 고개로 변했다. 상시당, 향사당골은 흑응성 서남쪽 밑에 있는 골짜기에 이루어진 마을로 홋골 아래쪽이 된다. 지금의 벧엘 기도원 올라가는 마을이다. 홋골(虎谷), 솟골, 효골(孝谷)은 상시당 북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두가지가 전해진다. ①옛날 나뭇꾼이 도끼로 나무를 하다가 호랑이를 만나 싸우다가 죽었다고 호골(虎谷)이라 불렀다. ②옛날 어느 효자가 여기 살면서 범의 보호를 받아 부모를 극진히 모셨다고 하는 유서 깊은 곳이다. 그래서 효골이라 부르던 것이 호골로 변했다고 한다. 역전(驛前)마을은 1931년 경북선 예천 기차역이 설치되면서 마을이 생겼고, 대한통운, 농협창고, 정미소, 여인숙, 다방, 술집, 상가 등이 성황을 이루었으나 지금은 대중교통 이용객 감소로 찾는 이들이 점차 줄어들어 옛 명성을 거의 잃어가고 있다. 한일주택단지는 서본리 82번지 일원에 한일신용협동조합이 대지를 조성하여 현대식 주택 33동을 1980년에 지어 조합원들에게 분양하면서 생긴 마을이다. 현재 50호 정도 거주하고 있다. 서본리 72-4 번지(굴머리)에 있는 삼익수도(三益隧道)는 850여년전 고려 무신정권때 벼랑을 깍아 길을 내고 암반을 뚫어 그 아래로 수로를 만들어 시가지 배수 및 원활한 농업용수 공급을 해 온 역사적인 유적지이다. 1170년경 예천임씨의 시조인 서하(西河) 임춘(林椿)이 당시 지형이 인마(人馬)의 통행이 불편하고 수만 평이나 되는 서정자(西亭子)들의 논에 농업용수가 부족한 것을 해결키 위해 시행한 대역사로 임씨의 이름을 따 임춘천(林椿遷)이라 불렀다. 그 뒤 임유정이 늪지대였던 굴모리를 개척해 유정수라 불리워졌으나 1919년 5월 18일 예천군수 이범익(李範益)이 수로를 보완해 수로를 냄으로써 읍내 배수가 잘되게 하고 사람의 통행이 편리하게 했으며 농업용수를 원활히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3가지 유익함이 있다는 뜻으로 삼익수도(三益隧道)로 이름을 바꿨다.

 

  삼익수도 둘레에 마을이 형성되면서 마을이름을 굴모롱이에 있다하여 굴모리 혹은 굴머리로 불렀으며 지금까지 주민들은 굴모리, 굴머리로 부르고 있다. 2000년 3월 예천군이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수로의 고저가 맞지 않아 배수가 원활히 하지 못해 폭우에 시가지가 침수되는 불편이 있어 38억 원의 예산을 들여 굴모리 대하수도 정비사업을 펼쳐 당시의 배수로를 폐쇄시켰다. 현재 배수로는 높이 2m 너비 3m정도의 수백년전 터널모양의 형체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보는 현장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으나, 안내판이 없어 배수로의 입구를 잘 찾지 못하고 입구는 폐자재 등으로 막히는 등 관계기관의 무관심으로 그 의미가 점점 잊혀져 가고 있어 안타깝다고 하겠다. 삼익수도 송덕비(三益隧道 頌德碑)는 삼익수도를 확장하는데 공을 세운 이들을 위하여 군민들이 세운 공덕비로 "大正 8年(1919) 5月 군수(郡守) 이범익(李範益), 면장(面長) 장승환(張昇煥), 일본인 군서기 竹本 준공(竣功)"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창우 이장은 대심리 522번지에서 태어나 초등 2년때 서본리 76번지로 이사 후 지금까지 살고 있는 예천 토박이다. 1990년 7월에 선거로 이장에 선출된 이후 성실한 자세로 각종 민원 및 불편사항 해결을 위해 발로 뛰며 적극적으로 봉사 하는 등 예천읍 29개리 이장 중 최장수, 최고령 이장이지만 초심을 잃지 않아 주민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으며투표 없이 지금까지 26년째 마을일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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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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