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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2,265:서하집...
작성자이춘우 @ 2023.08.21 06:01:30

  도청신도시 예천 2,265 : 서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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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하집(西河集 譯註) [冊] : 고려 때의 예천 출신 서하 임춘(林椿)의 문집(DDC 811.085)으로, 459쪽, 22cm이다. 예천 출신 진성규(秦星圭)가 역주(譯註)하여 서울 일지사(一志社)에서 1984년에 출판하였다. 과천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청구기호 810. 819 임817ᄉ, 등록번호 47807)되어 있고, 소장(所藏) 대학 도서관은 강원대, 경남대, 경산대, 경성대, 계명대(중앙), 고려대(서울, 서창), 광주교대, 국민대, 대전대, 덕성여대, 동국대(경주), 동아대, 부산대(중앙), 상명대(서울), 서강대, 서울여대, 성균관대(서울), 수원대, 숙명여대, 순천대, 순천향대, 안동대, 연세대(서울), 영남대, 울산대(중앙), 이화여대, 전남대, 전북대(중앙), 전주대, 중앙대(서울, 안성), 청주교대, 청주대, 충북대, 한국교원대, 한림대, 홍익대(서울)이다.(Keris 2001, 인터넷 야후 2001)

 

  서하집(譯註西河集) [冊] : 고려 때의 예천 출신 서하 임춘(林椿)의 문집(DDC 811.085)으로, 1책, 356쪽, 25cm이다. 석당전통문화연구소(石堂傳統文化硏究所)에서 편역(編譯)하여 부산 동아대 출판부에서 1985년에 출판하였다. 소장(所藏) 대학 도서관은 경북대, 경성대, 동아대, 동의대, 서울시립대, 원광대, 이화여대, 인제대(중앙), 전주대, 청주대이다.(Keris 2001)

 

  서하집(西河集) [冊] : 고려 무신정권 때의 예천읍 동본1리 출신 서하 임춘(林椿)의 문집으로, 서울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에서 편집하여 1973년에 출판한 <고려명현집(高麗名賢集)> 2권에 <파한집(破閑集)>(李仁老), <보한집(補閑集)>(崔滋), <지포집(止浦集)>(金근), <매호유고(梅湖遺稿)>(陳화), <익재집(益齋集)>(李齊賢), <졸당천백(拙棠千百)>(崔瀣), <근재집(謹齋集)>(安軸)과 합철되어 있는데, 429쪽, 영인본(影印本), 24cm이다. 과천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고, 소장(所藏) 대학 도서관은 경북대, 고려대(서울), 단국대(서울), 동국대(경주, 서울), 상명대(서울), 서강대, 서울대(중앙), 전주대에 있다.(Keris 2001, 인터넷 야후 2001)

 

  서하집(西河集) [冊] : 고려 무신정권 때의 예천읍 동본1리 출신 서하 임춘(林椿)의 문집으로, 서울 민족문화추진회에서 편집하여 서울 경인문화사(景仁文化社)에서 1991년, 1994년에 출판한 <영인표점(影印標點) 한국문집총간> 1권에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崔致遠), <고운집(孤雲集)>(崔致遠),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李奎報)과 합철되어 있는데, (38) 595쪽, 영인본(影印本), 26cm이다. 과천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고, 소장(所藏)된 대학 도서관은 배재대, 성균관대(서울), 한국기술교대이다.(Keris 2001, 인터넷 야후 2001)

 

  서하집(西河集) [冊] : 1) 예천인 서하 임춘(西河林椿)의 저서로, 현존하는 것은 임춘의 사후 그의 동료였던 이인로(李仁老)가 흩어진 자료를 모으고 분류하여 6권으로 편집하였다. 그러나 이인로 생전에는 간행되지 못하였다. 이인로가 죽은 지 3년째가 되는 1222년(고종 9)에 최초로 간행되었다. 당시 집권자 최우(崔瑀)가 임춘의 문장이 영호(英豪)하다고 칭찬하면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의 불운을 슬퍼하여 특별히 그의 유고를 서경(西京) 여러 학원(學院)에 보내 간행케 하고, 널리 유포하기 위해 서적점(書籍店)에 지시를 내렸다. 이렇게 하여 첫 간행된 이 책은 세상에 전하지 않고 다만 최우(崔瑀)의 발문(跋文)만이 1714년(숙종 40)에 간행된 <서하집(西河集)>에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조선 시대에도 여러 번 중간(重刊)된 적이 있었는데, <고사촬요(攷事撮要)>에 의하면, 임진왜란(1592) 전에도 간행된 적이 있으나 그것도 실물이 보이지 않는다. 1714년 본은 후손 임재무(林再茂)가 사재(私財)를 희사하여 간행한 것인데, 서문에는 이인로(李仁老), 최석정(崔錫鼎), 조태억(趙泰億)의 글이 실려 있고, 발문에는 최우(崔瑀), 신유한(申維翰), 임재무(林再茂) 등의 글이 실려 있다. 그 후 1865년에 간행된 <서하집(西河集)>은 1714년 간본(刊本)과 같고, 다만 서(序), 발문(跋文)에 차이가 있을 뿐이고, 근년에 간행된 1957년본도 내용은 같고, 1865년본에 비하면 서(序)만 첨가되었을 뿐이다. 철종 때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를 지낸 경산 정원용(經山鄭元容, 1849 領議政)이 지은 <임서하문집서(林西河文集序)>에서 이르기를, '공(公)의 유집(遺集)은 6권이 있으니 인쇄에 붙여 널리 배포했으나, 병란을 만나서 분실하였습니다. 이상하게도 담인(澹印)이라는 승려가 있어 구리항아리에 담아서 약야계(若耶溪) 옆에 보관했는데, 숙종 때(1713) 운문사(雲門寺, 慶北 淸道郡 雲門面 虎踞山 所在) 승려 인담(印澹)이 이상한 꿈을 꾸고 사찰의 가까운 산록을 파서 담인(澹印)이 보관한 것을 찾았으니, 기이하도다! 어찌 우연한 일이겠습니까? 문필가 사회에 신이(神異)한 바가 되어 그 때 상국 최석정(相國崔錫鼎)과 동평위 정재륜(東平尉鄭載崙)이 서로 교정하여 인쇄하였으니 이 모두가 국사나 야사에 기록된 바입니다. 그러므로 감히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산문 작품(散文作品)은 서간(書簡)이 18편, 서, 기, 전(書記傳) 14편, 계, 제문(啓祭文)이 21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대체로 서간과 계, 장(啓狀)은 우인(友人), 친지(親知), 관원들에게 보내거나 답한 것으로 자신의 불우한 형편과 비참한 생활을 기록한 것이고, 도움을 청한 것이거나 도움을 준 인사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가 중심이 되고 있다.

 

  물론 자신의 재학(才學)에 찬 야무진 문장과 포부를 쓴 것이 포함되어 있다. 제문은 성격상 애도하는 글이지만, 자신의 불행한 처지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이입(移入)되어 애절한 표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서, 기(書記) 가운데는 군자지도(君子之道)에 관한 그의 관점과 안분가일(安分可逸)의 추구 및 세태에 대한 비판이 나타난다. 문학적 세계에서는 뭐니뭐니 해도 그의 가전체(假傳體) 작품인 <국순전(麴醇傳)>은 '술'을 의인화한 것이고, <공방전(孔方傳)>은 '돈'을 의인화한 것인데, 일단 의인화했기 때문에 실전(實傳)을 기술하는 방법론과 마찬가지의 수법으로 기술한 것이다. 여기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의인화(擬人化)한 주인공의 삶의 양상이 작자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인간 생활에 있어서 술과 돈은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특히 국정을 담당하는 군신(君臣) 관계의 면에 촛점을 맞추고 서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술과 돈을 신하의 입장에서 서술한 것은, 유자(儒者)의 삶이 근본적으로 입신행도(立身行道)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벼슬길에 오른다 함은 신하로서 군왕을 잘 보필하여 치국의 이상을 바르게 실현하는데 본의(本意)를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 작품의 구도(構圖)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국가의 위난(危難)과 부강(富强), 민생(民生)의 피폐(疲弊)와 안강(安康)은 위정자(爲政者)의 선부(善否)에 달려 있기 때문에 관직의 책무는 막중해도 역할 수행에 따라 영후(榮厚)가 수반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환의 길에 오르고자 하는 유자(儒者)라면 누구나 명심해야 할 신자지도(臣者之道)이다. 그러나 인간은 한때 유용의 군자의 길을 걷다가, 소인배가 되어 간신폐행(奸臣嬖幸)으로 전락되어 국가와 백성에 위해적(危害的) 존재로 몰락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술인 국순(麴醇)과 돈인 공방(孔方)의 삶을 통해서도 인간의 삶과 같은 영욕(榮辱)의 부침(浮沈)이 적라라(赤裸裸)하게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임춘의 이 작품을 통해 당세의 국정의 병폐와 비리와 혼란을 고발하고 척결하려는 고발정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앞서 누차 비분(屢次悲憤)해 한 소아배(小兒輩)들의 발호(跋扈)와 굉박지사(宏搏之士)의 현실 소외에 대한 상응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그는 시류(時流)에 동참하지 못한 채 유락(流落)의 곤고(困苦)와 천운(天運)의 불행으로 포의 영면(布衣永眠)했지만, 녹녹치 않는 사대부 정신의 기상이 이 두 작품의 기저에 도도히 흘러내림을 알 것이다. 2) 예천인 서하 임춘(西河林椿)의 원저(原著)를 진성규(秦星圭)가 역주(譯註)한 책으로, 1984년 7월 20일에 서울 일지사(一志社)에서 발행하였다. 가로 16cm, 세로 22cm, 460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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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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