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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2,267 : 서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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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천지가 소중히 보관하고 신명이 보호하여 굳게 비장(秘藏)한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기이한 것이다. 이제 또 다시 중간(重刊)하여 많은 책을 배포하니, 위로는 조정에 사림이 많이 모이게 되고, 아래로는 시인들의 서가의 보배가 될 것이니, 그 빛나는 값은 조승주(照乘珠)와 연성벽(連城壁)보다 뛰어났다. 지난 번 말한 시야가 높고 등류(等類)보다 벗어나 빼어났다는 것이 임공이 아니고 누구겠는가? 베옷 입은 궁한 선비가 천고의 일에 뜻이 있다면 여기서보고 게으름이 없어질 것이다. 나는 이미 사문이 성쇠의 운수가 있음을 한탄했으나, 영장군(營將君 : 林再茂)이 무인으로서 선조의 덕을 소중히 여길 줄 알고 박복을 털어서 이 일을 이룩하니 이를 아름답게 여긴다. 이 책을 제작한 전문적인 품평(品評)은 세상의 안식(眼識)있는 사람들의 정론(定論)이 마땅히 있을 것이다. 금상(今上 : 肅宗) 39년(1713) 세재계사(歲在癸巳) 중추일(仲秋日)에 완산(完山) 최석정(崔錫鼎)이 서문을 짓다.
[서하선생집서(西河先生集序)] : 장사랑 상서예부랑중 지제고(將仕郞尙書禮部郞中知製誥) 이인로(李仁老)의 찬(撰)이다. 부귀하고 장수하는 것은 사람들이 한가지로 원하는 바이다.
그러나 군자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덕에 있지 벼슬에 있는 것은 아니며, 오래 되어도 썩지 않는 것은 이름에 있지 오래 사는 것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옛날에 회고는 베개를 높이 베고 누항(陋巷)에 누웠으나, 만세토록 순(舜) 임금이나 우(禹) 임금처럼 영광을 같이 하였고,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주(周) 나라 곡식 먹기를 부끄러워하여 수양산(首陽山)에서 고사리를 캐어 먹었으나 이름은 일월(日月)과 같이 빛을 다투었다. 노자(老子)가 말하기를, "죽어도 망하지 않는 것은 수(壽)다"라고 한 것은 대개 이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설령 불의(不義)로 부귀하여 몸은 길어서 거북이나 뱀처럼 오래 산다면, 이것은 유자후(柳子厚)가 말한, "빛나게 살아도 욕이요, 백발이 되도록 살아도 요사(夭死)한 것이다."했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서하 선생은 어려서부터 세상에 시명을 떨치고 독서할 때도 처음에는 생각하지도 않은 듯하다가(붓을 잡고 문장을 쓰면) 글자마다 모두 근본이 있어 소황(蘇黃)의 유법(遺法)을 얻은 것 같았다. 과거장을 웅시(雄視)할 때 백보(百步)에서도 버들잎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여러 번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였다. 의종 말년(毅宗末年)에 온 집안이 화를 만나 한 몸만 겨우 탈출하여 강남(江南)으로 피신하였다. 여러 해 뒤 서울로 되돌아와서 남은 재앙을 수습하고 세 번 낙방한 것을 설욕하려 했으나 한 번도 급제하지 못하였다. 종백(宗伯 : 試官) 이상국(李相國 : 李奎報)이 시를 보내 위로하기를, "과거에 합격 못했다 슬퍼 말라. 사람들은 내년에 장원한다 말하네. 한없는 많은 날의 한을 말하지 마오. 영걸스러움이 오문(吾門)에 있지 않은가"라 하였다. 비록 궁색하여 떨치지는 못했어도 이름은 선비들을 감동시킴이 이와 같았다. 대개 공부한 사람들은 시에 교묘하면 문장이 짧아서 서로 득실(得失)이 있으니 그 아름다움을 독차지하려 하나 겸하기란 힘이 든다. 선생의 문장은 고문(古文)을 배웠고, 시는 소아(蘇雅)의 풍골(風骨)이 있어서, 해동(海東)에서 벼슬하지 않은 사람으로 세상에 뛰어난 사람은 한 사람 뿐이다. 그가 죽은 지 20년, 배우는 사람들이 입으로 시를 읊으면서 마음으로 흠모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장차 굴상(屈床)의 반열에 두려하니, 이른바 군자가 귀하고 수(壽)하다는 것이 여기에 있지 않은가? 이제 후생이 외는 유편(遺篇)을 약간 모아 분류하여 6권을 만들고, 제목으로 <서하선생집>이라 하였다. 집의 아이 비(秘)를 시켜 교정하여 쓰게 하고 인쇄하여 전하려 한다. 애석하게도 하늘이 수를 허락하지 않아 저술한 것이 많지 못하였으나, 봉황(鳳凰)의 일모(一毛)로도 족히 구포(九苞 : 봉황의 아홉 날개 빛깔)의 상서로움을 알 것이다. 선생의 이름은 춘(椿)이고, 자는 기지(耆之)다. 그의 학문은 실상 숙부인 학사(學士) 종비(宗庇)에게서 배웠다고 한다.(西河集 秦星圭 1984)
서하집(國譯 西河集) [冊] : 예천읍 동본리(川西里) 출신인 서하 임춘(林椿, 高麗 毅宗 때, 江左七賢의 1人)의 문집을 하리면 출신인 진성규(秦星圭, 1949- , 大昌高 14回 卒業, 中央大 敎授)가 주역(註譯)한 책으로, 459쪽, 22cm, 서울 일지사(一志社)에서 1984년에 출판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 서고자료신청대에 소장(청구기호 810.81-임981ㅅ진=2)되어 있고, 경북대학교 도서관 중앙연중당문고자료실에 소장(청구기호 중앙중 811.8 임817ㅅ진)되어 있고, 안동대학교 도서관 중앙대출실에 소장(청구기호 810.819 임817ㅅ.진)되어 있고, 그 외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강원대, 경남대, 경산대, 경성대, 계명대(동산), 고려대(서울, 서창), 광주교대, 국민대, 대전대, 덕성여대, 동국대(경주), 동아대, 부산대, 상명대(서울), 서강대, 서울여대, 성균관대(중앙), 수원대, 숙명여대, 순천대, 순천향대, 연세대, 영남대, 울산대, 이화여대, 전남대, 전북대, 전주대, 중앙대(제1캠퍼스, 제2캠퍼스), 청주교대, 청주대, 충북대, 한국교원대, 한림대, 홍익대이다.(keris 2003)
서하집(譯註 西河集) [冊] : 예천읍 동본리(川西里) 출신인 서하 임춘(林椿, 高麗 毅宗 때, 江左七賢의 1人)의 문집을 석당전통문화연구원에서 편집하여 부산 동아대학교 출판부에서 1985년에 출판한 책으로, 365쪽이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경북대, 경성대, 단국대(중앙), 동아대, 동의대, 서울시립대, 원광대, 이화여대, 인제대, 전주대, 청주대이다.(keris 2003)
서하집(西河集) [冊] : 예천읍 동본리(川西里) 출신인 서하 임춘(林椿, 高麗 毅宗 때, 江左七賢의 1人)의 문집으로, 서울 민족문화추진회에서 1986년,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1994년에 출판하고, 서울 한국학자료원에서 1995년에 출판한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影印標點韓國文集叢刊)> 1권(38 595쪽, 影印本, 26cm)에 <계원필경(桂苑筆耕)>(崔致遠 著)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가톨릭대(성심), 강남대, 강원대, 경북대, 계명대(동산), 국민대, 단국대(중앙), 대구대, 동국대(중앙), 동아대, 배재대, 부산대, 서강대, 서울교대, 성균관대(중앙), 수원가톨릭대, 숭실대, 양산전문대, 연세대(서울, 원주), 울산대, 원광대, 진주교대, 청주대, 충북대, 한국기술교대, 한국항공대이다.(keris 2003)
서하집(西河集) [冊] : 예천읍 동본리(川西里) 출신인 서하 임춘(林椿, 高麗 毅宗 때, 江左七賢의 1人)의 문집으로, 서울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大東文化硏究院)에서 1973년, 1980년, 1986에 출판한 <고려명현집(高麗名賢集)> 2권(4冊, (27) (15) 479쪽, 25cm)에 <이상국집 부 백운소설(理想國集附白雲小說)>(李奎報 著) 등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가톨릭대(성심), 강남대, 경북대, 고려대, 단국대(중앙), 대구교대, 대구대, 동국대(경주, 중앙), 명지대(서울), 상명대(서울), 서강대, 서울대(중앙), 서원대, 연세대, 전남대, 전주대, 충남대, 홍익대이다.(keris 2003)
서하집(西河集 幷附) [冊] : 예천읍 동본리(川西里) 출신인 서하 임춘(林椿, 高麗 毅宗 初-明宗 末, 江左七賢의 1人)의 문집으로, 6권 2책, 목판본(木版本), 30.7x20.7cm, 1713년(숙종 39)에 발행되었다. 사주단변(四周單邊), 반곽(半郭)은 19.8x14.8cm, 유계(有界), 10행(行) 19자(字), 소자쌍행(小字雙行), 내향 이엽 화문 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중간 발문(重刊跋文)은 1714년에 신유한(辛酉翰), 14세손 재무(再茂)가 썼다. 서울대 규장각본(고3428-466)을 <한국문집총간> 1집에 영인 수록하였다. 저본은 친구 이인로(李仁老)가 교정 편찬하여, 1222년 최우(崔瑀)가 초간(初刊)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1713년 후손 재무가 간행한 중간본(重刊本)이다. 저자의 시문만 실려 있고, 가전(假傳)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고려대이다.(keris 2003, 韓國文集叢刊 解題 2002)
서하집(西河集) [冊] : 예천 출신 서하 임춘(林椿)의 문집으로, 출처는, “한국여성관계자료집 중세편(하)/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소 편,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86, 도서”이다. 그 내용은, “본문/ 목록 일재기(逸齋記)/ 세상에 도(道) 있는 선비로서 이 도를 실행한 사람은 오직 우리나라의 이 좌사(李左司) 한 사람뿐이다. 선생의 이름은 중약(仲若)이며 자(字)는 자진(子眞)이다. 안에 하늘을 지니고 겉으로 사람인 것이 선생의 도이니, 금당(金堂)과 옥실(玉室)은 선생의 집이며, 자부(紫府)와 단대(丹臺)가 선생의 벼슬이었다.1 선생의 가계는 경주〔鷄林〕의 종실(宗室)이며, 선생에 이르기까지 무릇7대에 걸쳐 문장의 대가였다. 어머니 이씨(李氏)가 일찍이 꿈에 누런 관(冠)을 보고 드디어 임신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선생을 어려서부터 도교(道敎)에 관한 책을 즐겨 읽고 도교의 오묘한 이치를 숭상하였으니, 이는 유교(儒敎)와 도교에 대한 공부를 전생에서부터 벌써 배운 바가 있어서 그러한 것이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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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