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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2,290 : 석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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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정(石門亭) [亭子] : 1) 감천면 대맥리(大麥里) 쇠실 동남쪽에 있는 정자로, 산골물이 흐르는 곳에 석문(石門)처럼 되어있는 바위 위에 1941년에 강릉인 김영도(金榮濤, 1820-1895)를 위하여 그 후손들이 세웠다. 바위가 길의 양쪽에 서 있어 문처럼 생겼는데, 동쪽 바위 위에 정자가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 목조와가 팔작(木造瓦家八作)지붕이다. 2) 보문면 독양1리(篤陽一里)에 있는 정자로, 강릉인 김영도(金榮濤, 字 聖瞻, 義禁府都事, 1820-1895)의 유덕(遺德)을 추모하여, 그의 손자 재학(在學)이 후학들을 가르치느라고 초막(草幕)을 지었던 곳에 1941년 4월에 후손들이 세웠다. 이 정자 밑의 암석은 옆 산록의 큰 암석과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이 마치 석문(石門)과 같다고 해서 석문정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3) 예천읍 용산2리 석문정(石門亭)마을 동구 북쪽에 있던 정자로, 경주인 석문 이준(石門李儁)이 1901년(광무 5)에 세웠다. 남야 박손경 (南野朴孫慶)의 기(記)가 있다. 1970년 대에 중건하였고, 1980년 대에는 이 마을 4H본부로 이용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이었다. 선계 권용(仙溪權墉)이 시로써 이르기를, "선계(仙溪)에 한 늙은이, 석문정(石門亭)을 찾아왔네. 정중(亭中)에 한 늙은 지아비가 흔연히 웃으며 맞는다. 하룻밤 묵은 일 글로 쓰고, 10년에 매미 듣는 정일세. 아침에 홀연히 창을 여니, 두 늙은이 산 푸름 대했고야" 라고 하였다. 옛부터 마을의 입구에 석문바위가 양편으로 있다 하여 그 마을을 석문동(石門洞)이라 하였는데, 1901년 석문정을 지은 후부터는 마을 이름도 석문정이라고 부르고 있다. 지금은 정자가 도괴되었다. 이준의 본관은 경주, 문장에 능했다.(醴泉郡邑誌 1786 1841 1895, 醴泉郡誌 1939, 嶠南誌 1937)
석문정(石門亭) [亭子] : 감천면 대맥리에 있는 정자로, 강릉인 성담(聖膽) 김영수(金榮樹)를 위해 후손들이 1941년에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1칸, 목조와가 팔작지붕이다.(醴泉鄕校誌 2004)
석문정(醴泉大麥里 石門亭) : *위치 : 예천군 감천면 대맥리 855, *연대 : 1941년, *규모 : ‘-’자형 정자 1채/ 보문면 대맥리 석문정은 강릉인(江陵人) 김영도(金榮濤)를 기리기 위해 1941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대맥리 석문정은 감천면과 보문면의 경계인 보문면 독양리와 접하여 있다. 대맥리는 예천읍의 북동측으로 향하는 926번 지방도로 보문로에서 독양리로 향하는 옥계천로를 타고 독양리 어등역을 지나 서측 독죽골길로 접근한다. 석문정은 독죽골길에서 대산길로 접어드는 길목 부근 동측 개울을 건너 바위로 형성된 언덕 위에 동남향을 하고 있다. 석문정은 바위 위에 자연석을 쌓아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올려 진 형상으로, 건물 배면과 좌측에만 토석담이 둘러져 있다. 석문정의 출입문은 건물의 훼손 정도가 심하여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으나, 정면이 바위 절벽이기 때문에 배면으로 진입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배면은 바위로 이루어진 산마루가 북동측으로 이어져 있고, 숲이 우거져 있다. 전면 아래에는 개울이 흐르고, 동남향쪽 길 건너편으로 암산이 보인다. 석문정은 전퇴가 있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자형 누정이다. 평면은 전면에 툇마루를 꾸미고, 중앙 마루간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배열했다. 정면의 툇마루는 정면 기둥 밖으로 마루 끝을 확장한 후 마루 끝에 계자난간을 둘렀다. 석문정의 출입은 우측의 확장한 마루 끝을 통해서 내부로 출입한다. 중앙의 마루간은 튓마루처럼 우물마루 구조이며 배면에 두 짝 여닫이 우리판문을 달았다. 좌우 온들방은 정면에 통머름을 대고 두 짝 여닫이창문을 달았고, 마루칸 쪽으로 높이가 더 높은 한 짝 여닫이문을 달았다. 석문정의 기단은 바위 위에 자연석을 쌓아 축조하고, 기단 바닥은 시멘트모르탈로 마감했다. 주초는 자연석주초이다. 튓마루 열 주초 위에는 자연목 형태의 누하주를 올리고, 나머지 안쪽 주초 상부는 사각기둥이다. 전면 기둥 상부는 소로수장을 꾸몄으며 직절익공 형식으로 보아지와 창방, 주두, 보, 도리받침장혀, 도리가 서로 짜 맞춤했다. 나머지 안쪽 열 기둥 상부에는 납도리형식으로 보아지와 보, 도리받침장혀, 도리가 짜 맞춤을 했다. 석문정의 가구는 오량이며, 마루간 상부는 연등천장으로 열려 있다. 또한 종도리를 받치고 있는 대공은 판대공을 하고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서까레 사이는 재사벽으로 마감했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이다. 석문정의 벽면은 회바름으로 되어 있으며 부분적으로 시멘터모르탈로 마감했다. 편액은 없다. 석문정은 1941년에 건립되었지만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아 건물 손상이 심각하다. 누마루는 대부분 소실되어 구조상 위험하여 사용할 수 없다. 온돌방 내부 천정이 내려 않아 가구가 노출되고, 잔여물로 방과 마루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근년 안에 건물이 내려앉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보수 조치가 시급하다. 또한 석문정은 활용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건물을 해체 이건하여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활용 가치를 높이는 것이 될 것이다.(예천군 건축문화유산 조사연구 2013년, 144-145쪽)
석문정(石門亭) [亭子] : 예천읍 용산리 186-1번지(垈)에 있는 정자로, 경주인 이준(李儁)이 1901년에 건립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좌측 2칸에는 온돌방을 두고, 너머지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좌측칸에는 전면칸의 마루와 후면칸의 온돌방을 같은 크기로 하였고, 어간(御間)의 온돌방은 전면으로 반 칸 가량 넓게 잡았다. 가구(架構)는 오량가(五樑架)의 홑처마집이며, 문틀은 온연귀한 고식(古式)의 수법을 사용하였다. 우측칸 대청 모서리에는 2개의 현판으로 이루어진 도곡산재(道谷山齋)란 현판을 걸었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醴泉郡誌 2005)
석문정(石門亭) [亭子] : 예천읍 용산리 석문마을에 있는 정자로, 18세기 말 석문 이준(李雋, 字士雄)이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2칸, 단층 팔작지붕이다.(醴泉鄕校誌 2004)
석문정(醴泉龍山里 石門亭) : *위치 ; 예천군 예천읍 용산리 188, *연대 : 1901년 건립, *규모 : ‘-’자형 정자 1채/ 석문정이 있는 용산리에는 경주이씨들이 세거하고 있으며, 도덕골에는 12호가 거주하고 있다. 예천읍 용산리 석문정은 경주인 이준(李儁)이 1901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대청 모서리에는 ‘道谷山齋’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석문정이 있는 예천읍 용산리는 예천군청과 용문면을 연결한 928번 지방도로 용문경천로를 따라 접근하며, 생천리와 용산리를 경계하는 금곡천을 지나 용산길로 진입하여 용산1리를 가로질러 용산2리로 가는 서측의 산자락길을 따라 접근한다. 석문정은 산의 경사면에 터를 마련하고 남향을 하고 있다. 석문정은 ‘-’자형 정차 1채로 구성되어 있다. 석문정은 담장을 두르지 않아 사방으로 열려있으며, 전면으로는 가옥들이 있고, 좌우측과 배면은 야산의 나무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석문정은 정면에 툇마루를 꾸민 ‘-’자형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5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면으로 계자난간을 둘렀다. 평면은 좌측의 마루간과 우측 2칸으로 온돌방이 있다. 정칸의 온돌방은 전면으로 0.5칸을 넓게 잡았으며, 두 짝 여닫이 띠살창문을 달았고, 우측 하인방 위로 들창방식의 창을 달았다. 좌측 마루간 쪽으로 네 짝 여닫이 들문을 달았으며, 우측으로 외여닫이 띠살문을 달아 작은 온돌방과 출입을 할 수 있게 했다. 우측의 작은 온돌방은 전면으로 1.5칸의 툇마루가 있으며, 외여닫이 띠살창문을 달았다. 마루간은 전면으로 열려 있으며 배면으로 두 짝 우리판문을 달았고, 좌측으로 1칸의 판벽이 있다. 마루간과 툇마루는 우물마루 구조이다. 석문정의 기단은 자연석 기단으로 기단 바닥은 시멘트모르탈로 마감했다. 정칸의 온돌방 아궁이는 툇마루 밑 기단에 있으며, 작은 온돌방 아궁이는 좌측 기단에 있다. 굴뚝은 배면 기단에 있다. 주초는 자연석 주초이며, 기둥은 원기둥이 하나 있고, 나머지는 사각기둥이다. 기둥 상부는 민도리 방식이며, 가구는 오량이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홑처마 팔작지붕이며, 추녀 마구리에 암기와로 마감했다. 벽체는 회바름으로 마감했으며, 앙토는 재사벽으로 마감했다. 마루간에는 ‘石門亭’ 편액이 걸려 있고, 동편의 마루간 북쪽과 동쪽 모서리에 연이여 두 개로 나누어 써서 붙여놓은 ‘道谷山齋’라는 현판이 큼직하게 걸려 있다. ‘道谷山齋’라는 글씨는 양각된 것으로 현판 하나의 크기는 대략 가로 3자 X 세로 1.5자이다. 현판의 크기가 커서 하나의 현판도 2개의 판을 이어붙인 상태인데, ‘道谷’ 현판은 윗부분을 이어 붙였고, ‘山齋’ 현판은 아래 부분을 이어 붙였다. ‘山齋’ 현판의 말미에는 ‘癸酉春李亥微十歲書’라는 문구가 마지막에 작게 묵서되어 있는데, 현판의 글씨를 열 살의 이해미가 계유년 봄에 썼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현판의 크기나 필체, 양각 상태, 그리고 현판의 제작형태 등으로 볼 때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큰 것으로 여겨진다. 석문정은 현재 사용하지 않고 방치되어 있어 훼손이 심각한 상태로 붕괴 위험이 있으며, 보수가 시급한 상태로 이에 따른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예천군 건축문화유산 조사연구 2013년, 206-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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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