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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2,292:석문집...석별...
작성자이춘우 @ 2023.09.17 05:57:04

  도청신도시 예천 2,292 : 석문집...석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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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문집(石門集) [冊] : 풍양면 청곡리 포내(浦內) 출신인 석문 정영방(鄭榮邦, 1577-1650, 進士, 德行, 文章, 孝友 等이 매우 敦篤)의 문집으로, 동래정씨문집간행회(東萊鄭氏文集刊行會)에서 편집하여 대구(大邱) 효성인쇄사(曉星印刷社)에서 1995년에 출판한 <동래정씨문집(東萊鄭氏文集)> 제2집(第2輯)(850쪽, 27cm) 중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은, 農수遺事(鄭應智 著), 西溪集(鄭彦宏 著), 竹窓集(鄭弘衍 著), 桂潭集(鄭復始 著), 鶴洞集(鄭維藩 著), 稚巖集(鄭維地 著), 竹塢集(鄭應福 著), 琴齋集(鄭錡 著), 梅塢集(鄭榮後 著), 石門集(鄭榮邦 著), 見山集(鄭期遠 著), 晩川集(鄭弘遠 著), 松塢集(鄭文輔 著), 蘇山集(鄭好仁 著), 慕義齋集(鄭大業 著)이다. DDC 897.8008이고,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고려대이다.(keris 2005)

 

  석문집(石門集) [冊] : 풍양면 청곡리 포내(浦內) 출신인 석문 정영방(鄭榮邦, 1577-1650, 進士, 德行, 文章, 孝友 等이 매우 敦篤)의 문집으로, 안동대학교에서 편집하여 안동 안동대학교(安東大學校) 퇴계학연구소(退溪學硏究所)에서 1997년에 발행한 <퇴계학자료총서(退溪學資料叢書)> 27권(490쪽, 27cm) 중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은, 石門集(鄭榮邦 著), 五友堂集 1(金近 著)이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원광대이다.(keris 2005)

 

  석문집(石門集) : 龍宮士民請??昏朝所加下中之稅疏/ 상위서지: 石門集 人 > 石門先生文集卷之四 > 疏/ 분류: 고도서 > 집부(集部) > 별집류(別集類)/ 제공: 한국국학진흥원/ 龍宮士民請??昏朝所加下中之稅疏/ 臣等。以弊縣遺氓。命勻?蟻。心懷至寃。思一鳴號而天門九重。得達無階。?足夷猶者。久矣。今者。伏見星山都會官分?今年田稅數。田畓下中。殆十分之九而該曺關內依甲戌條磨鍊。故不得不如是云。臣等。私竊怪之。此必行會之間。或未審察而致此。恐非朝寶本意也。何以知之。臣等。聞殿下。於量田之時。或慮結負過重。務令平量量。後又令??雜稅。其他/ ▣ 004/ 憂民隱疾之意。累形於筵席之上。其不以損下益上。爲?。明矣。安有聖明。如此而以廢朝一時因仍苟且之政。又施於更化之日也哉。臣等。請推本言之。夫自一等。至六等。田畓之所以分膏瘠而定結負者也。下中與下下視歲??而爲之上下其稅者也。下中一結。出稅六斗。下下一結出稅四斗。年登則稅以下中。年凶則稅以下下。下中。?時有無而下下爲常稅者。此祖宗朝舊法也,

 

  然而上道瘠薄之地則雖?歲。無下中之稅。下道肥饒之地則有之。降及昏朝。國內多事。經費漸廣。當事之人。遂量出爲入而?爲不經/ ▣ 005/ 無?之法。今歲加自覺。來歲加勤定。所謂自覺者言。隱漏者發覺也。所謂勤定者。抑勤而?定也。皆所以橫?取足而施之土沃結縮之邑則猶或可也。然而奉命之人。忽於廉謹。殘弊之邑失於彌縫。與奪不公。征?無藝。於是有有田無稅。有稅無田之謠。鳴呼。此豈先王成憲而久遠可行之法也哉。龍宮。是臣等所居之邑也。土瘠民貧。殘破尤甚而得前後虛結。比隣邑獨多。加以下中。又十分之九。積至數十餘年。民不堪命。及聞量田令下。莫不???舞。皆曰祖宗朝舊法。庶幾復見於今日。勤定虛稅。亦將不求??/ ▣ 006/ 而自無。恐恐然猶懼其事未易完就。日夜企而待之。至于今日則又以甲戌條頒下。臣等。不覺隕心焉。以爲列邑皆爲下中則量田新結。旣重。今年。又是大無。是過高而不可爲矣。以爲因廢朝勤定之舊而不變則各官或爲下下。或爲下中。是不均而不可爲矣。反復推究。不得其說。然以小人之腹而忖之。不過丞流宣化之際。偶失於照勘而用逐年收租。頒行循例文字而致此。非有意於加賦而然也。故曰非朝寶之本意也。然上令旣如此則各官之所以盡心奉行者。職耳。於此而未蒙蕩滌則此弊。何時而可祛。遺黎。何/ ▣ 007/ 賴而得全耶。此旣然矣而又有深寃至痛。異於他邑者。臣等。請得究言之。夫量田之役。固難勻一。然視平時元帳。無大加?則可無寃枉矣而聞下三道列邑所量。不及元帳者過半。與之等者亦多。過之者絶無而僅有。臣等之邑則平時元帳。共三千二十四結而今量所?。多至三百十有餘結。率土之濱。莫非王臣。彼輕而此重。豈不寃甚。其所以致此者。亦非朝寶之所知。本縣都監。??無知。以爲國家必欲多得結負。?張其數而報于量田使。量田使臣申得衍。亦以過重爲慮。捉致行?。詰問其由則又恐以重量。得罪/ ▣ 008/ 乃曰癸卯年田案續田。多至六百餘結而以元田入量故如是耳。量田使又焉於竣事。未及査考而得其實。若使査考則其時田案尙在。續田多少?實立可辨矣。大?本縣僻在太山之趾。三江之會。其高處。土薄禾不滿握。下者水?穀盡腐爛。其不被災處無幾。此所以水亦失稔。旱亦失稔非他邑比也。前日結負少而猶不堪。況今過之者乎。前巡察使臣李基祚。巡到本縣。?知其實。亦以爲慨然。以臨?未得狀啓云云。今若下問。亦可知矣。伏念天地之仁。無物不育。父母之慈。無兒不鞠。特垂?悶之情。少開變通之路。使/ ▣ 009/ 經界得正。仁政流行則庶幾枯?復肉。死草生華。八方。同春。寧有不遂之物。四海一體。更無偏枯之患矣。若其下中之稅。雖非行會間所誤。亦賜一時?免則臣等。當優游涵泳於至澤之中。仰事俯育。無復有遺恨矣。伏惟天地父母。哀憐而裁幸焉。臣等不勝惶懼屛營之至。//

 

  석밭골(石田谷) [골] : 호명면 송곡리(松谷里) 번개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석별(石鼈), 돌자라 [遺物] : 예천읍 남본2리 남산공원 관풍루(觀風樓) 앞에 남향하여 있는 돌자라로, 길이 1m 남짓한 전돌로 다듬었다. [傳說] : 1)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호명면 본리(本里) 뒷산인 검무산(劍舞山)과 종산리(宗山里) 뒷산이 예천읍을 드려다보고 있는데, 이 두 산이 모두 예천읍의 화체(火體)가 되어, 예천읍에 화재가 자주 난다고 한다. 남산 위에 돌로 자라를 다듬어 앉히게 되면 이 두 산의 화기를 막게 되어, 예천읍이 화재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하여 돌자라를 남산 위에 앉혀 놓았다고 한다. 그 후 예천군수 이구수(李龜壽, 朝鮮 明宗 때)의 선정비를 세울 때 이 돌로 비의 받침을 하려다가 고을 사람들이 반대를 하여 다른 돌로 고치고, 이 돌자라를 도로 옛터에 가져다 놓은 적이 있다. 2) 남산이 원래 학혈(鶴穴)이어서 그 곳에 묘를 쓴 사람은 쌍놈이었다. 여기에 묘를 쓴다면 후손이 잘 살았다. 이것을 안 양반들은 서로 비를 세우기 시작하였으나, 얼마 후 비석은 넘어지고 말았다. 또 세우면 넘어지고, 세우면 넘어지곤하였다. 하는 수 없이 흑응산(黑鷹山)으로 비석을 옮겨 조상 묘 앞에 세웠으나, 여기에서도 매번 넘어지고 말았다. 다시 비를 남산으로 옮겨 놓았다. 역시 비는 넘어지고, 그 받침인 돌자라만 남아 있다.(윤희부) (醴泉郡邑誌 1841 1895, 醴泉郡誌 1939)

 

  석별(石鼈) [遺物] : 예천읍 남본2리 산176-1번지(林) 남산공원 내 관풍루(現 八角亭) 앞에 유존하는 돌자라로, 화강석으로 조각되어 있다. 1.5m의 대좌 위에서 동향하여 있으며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석별의 전체 길이는 155cm이고, 너비는 115cm, 높이는 38cm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석별 : 예천 냉정산(191.6m),남산(124.4m),장원봉(167.4m),광석산(305.5m)-떡매.../ 2015.02.11./ 火氣)를 막기 위해 안치했다는 돌자라(석별.石鼈)가 보이네요. 남산공원 진입로로 내려... 들머리로 이동합니다. 15분여 후 예천읍 청복리1220 소재 자청파 비닐.../ blog.daum.net/ bbury(daum 2017)

 

  석별 : 자구지맥 3구간(갈부재-돌고개-34번국도-담암리 합수점)(終/ 2011.11.30./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루 앞엔 돌자라(석별)가 있다. 11 ; 30/4. 남산의 관풍루(觀蘴... 뒷산인 검무산과 종산리 뒷산이 예천읍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이 두 산이.../ yul6629a.tistory.com/ 산경표를 따라서(daum 2017)

 

  석별 : [우리마을 이장님] '사랑과 봉사정신으로 밝은 사회 만들겠다' 남본2리 김영규 이장!/ 있으며 매년 현충일 추념식을 하고 있다 석별石鼈), 돌자라는 남산공원 관풍루 앞에 길이 1m... 본리 뒷산인 검무산과 종산리 뒷산이 예천읍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 두 산이 모두 화체(火體)가.../ m.ycinews.co.kr/view.asp?intNum.. 예천인터넷뉴..(dau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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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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