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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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2,293 : 석별...석송골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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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별 : 예천 냉정산(191.6m),남산(124.4m),장원봉(167.4m.../ 2015.02.12./ 火氣)를 막기 위해 안치했다는 돌자라(석별.石鼈)가 보이네요. 남산공원 진입로로 내려... 장원봉 들머리로 이동합니다. 15분여 후 예천읍 청복리1220 소재 자청파 비닐.../ cafe.daum.net/tgbb/MOiO... 連 理 枝 | 댓글 4(daum 2017)
석별 : 자구지맥 3구간(갈부재-돌고개-34번국도-담암리 합수점.../ 2011.11.30./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루 앞엔 돌자라(석별)가 있다. 11 ; 30/4. 남산의 관풍루(觀蘴... 뒷산인 검무산과 종산리 뒷산이 예천읍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이 두 산이 모두.../ cafe.daum.net/yul6629/Q... 산경표를 따라..(daum 2017)
석별 : 남산 "돌거북"은 소방파수꾼119 (첫 번째)/ 2008.11.15./ 전해 내려오던 자라를 없앤 것은 예천읍을 위하여 좋지 않다고 하여, 다시 다른 돌로... 과 다른 부분은 돌자라를「돌거북」「석별(石鱉)」이라고 기록하고 군수 이구수.../ cafe.daum.net/ycdongboo... 예천동부초등..(daum 2017)
석북토 [바위] : 보문면 수계리(首溪里) 동구 밖 느티나무 아래에 있는 바위로, 이 돌(石)에 거(북)이, (토)끼의 상이 새겨져 있어 한 자씩 따서 석북토라고 한다. [傳說] : 1) 수계리 동구 밖에 이조 선조 때부터 내려오고 있는 큰 느티나무가 있다. 추수가 끝나는 가을이면 이 마을 사람들은 풍년이 들었다고 술과 과일로 느티나무를 향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해 흉년이 들어 사람들은 제물을 올려 제사를 지내지 않았더니, 그 다음 해에도 또 흉년이 들어 이 마을 사람들은 불안과 초조 속에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문사(普門寺)의 스님이 시주를 받으러 와서, 이 소식을 듣고 마을 사람들에게 거북이, 토기, 호랑이를 돌에 새겨 제물로 바치면 괜찮다고 하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정성을 드려 돌을 다듬어 새겨놓았더니, 그 다음 해부터 매년 풍년이 들게 되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돌에 세
마리의 동물을 새겼다고 하여 돌석, 거북, 토기 중의 삼자를 따서 석북토라고 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일제 때 호랑이의 조각은 원인 모르게 없어졌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 이름을 짖지 않았기 때문에 없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그 곳엔 돌에 새겨 놓은 토끼와 거북이가 있는데, 오늘날까지 석북토라고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다(배경환). 2) 옛날 멀양마을에 극심한 가뭄으로 3년 동안 계속해서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다. 이 때에 어느 절에 계시는 보살님이 이 마을을 지나가시기에 사정을 얘기하였더니, 보살님이 말씀하시기를, "여기 있는 이 느티나무 밑에 바위로 깍은 호랑이와 토끼의 비석을 세우고, 정월 보름날 자시(子時)에 제사를 올려라."라고 하였다. 이 말대로 하였더니, 3년 간 풍년이 들었다. 그런데 또 가뭄이 들어 배고픔에 허덕였다. 그러던 다음해에 또 보살님이 지나가시기에 여쭈어 보았더니, "호랑이를 없애고 거북이를 만들어 놓으라."라고 하였다. 호랑이의 비석을 없애고, 거북이의 비석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니, 정말로 풍년이 들어 마을 사람들은 걱정없이 살았다고 한다.
석불 돌에 새긴 정토의 꿈(石佛 돌에 새긴 淨土의 꿈) [冊] : 최성은, 안장헌의 저서로, 331쪽, 한길아트에서 2003년 2월 15일에 발행하였다. [책 소개] : 본 전자책은 문화관광부가 전자책 산업을 견인할 대표적인 작품으로 선정하고, 제작비를 지원한 특수기획 전자책입니다. 신라인의 생활과 마음에서 떠날 수 없었던 경주 남산의 주요 유적 66곳을 꼼꼼하게 되짚어 보고, 유구한 역사의 자취가 남아있는 석탑의 모습을 Wise3D로 구현하여 석탑의 온기와 석탑 너머로 펼쳐진 자연 경관 속에 빠져들도록 구성하였습니다. 전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인 우리 나라는 전국 어디든 돌이 흔하고 그래서인지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사방에서 돌을 쪼아 만들거나 바위 면에 새겨 넣은 석불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야말로 전국의 산천은 석불의 노천 박물관이나 다름없다.우리 문화 유산을 찾아서두 번째 권은 이렇게 대다수가 처음 조성된 이래 그 현장을 지키며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는 전국의 석불을 담았다. 20여년 간 우리나라의 불상을 연구해온 저자와 석불을 사진에 담은 지 올해로 꼭 30년이 되는 사진작가가 힘을 합친 이 작업은 국가보물 지정 여부와 관계없이 2,30년 간 종횡무진 현장을 누빈 저자와 사진작가의 경험으로 가장 우수하다고 생각되는 상을 선정하여 보여준다.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후삼국과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걸쳐 꼽힌 78개의 상은 숫자는 많지 않지만 각 상에 대한 섬세한 세부 사진과 도상과 양식, 신앙적 배경, 사회 정황 등 단순한 현상 설명을 넘어선 심도있는 해설로 책 밖의 더 많은 불상들을 꿰뚫어볼 수 있는 깊은 시야를 선사한다.[북토피아 제공] [목차] : 최성은 | 시대의 삶을 담은 석불의 얼굴/ 우리 나라 석불 조각의 흐름/ 불상의 기원/ 삼국시대의 석불/ 통일신라시대의 석불 : 청룡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청룡사 석불좌상.../ 후삼국.고려시대의 석불 : 예천 동본동 석불입상, 청룡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조선시대의 석불/ 석불의 부분 애칭/ 용어해설/ 석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 안장헌ㅣ불상의 미소 찾아 떠나온 30년[알라딘 제공] 내용 중에, “52. 도갑사 석불좌상 : ...있다. 대좌는 단순한 형태의 방형대좌인데, 방형대좌는 청량사 석불좌상의 대좌를 비롯해서 고달사지 석불대좌나 예천 청룡사 석조비로자나불상의 대좌에서 보이듯이 9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10세기에 유행하였던 듯하다. 평면적이고 선각을 많이.../ 사실적인 양식과 다양한 도상들│통일신라시대의 석불 : ...광배와 여러 가지 부조로 장식된 팔각연화대좌를 가진 석불좌상들이 경주를 중심으로 하는 경상도 지역에서 다수 조성되었다. 예천 청룡사(靑龍寺) 석불좌상과 고운사(孤雲寺), 불곡사(佛谷寺), 간월사지(澗月寺址) 석불좌상 등 많은 석불상들이 이런 유형을...”이 수록되어 있다.
석불 돌에 새긴 정토의 꿈(石佛 돌에 새긴 淨土의 꿈) [冊] : 최성은 글, 안장헌 사진의 책으로, 한길아트에서 2003년에 발행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 1층 서고자료신청대(보존)에 소장(청구기호 629.2-3-1)되어 있다. 예천 관련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www.nl.go.kr 2006)
석산문집(石山文集) [冊] : 풍양면 출신인 석산 정승모(鄭升謨)의 문집으로, 461쪽, 삽도, 도판, 초상화, 27cm, 석산문집편찬위원회에서 편집하여 서울에서 정진동(鄭鎭東, 醴泉 國會議員)이 서울 삼보인쇄사(三寶印刷社))에서 1987년에 출판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 서고자료신청대에 소장되어 있고, 경북대학교 도서관 중앙국학자료실에 소장되어 있고, 안동대학교 도서관 중앙대출실에 소장되어 있고, 그 외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고려대, 단국대(중앙), 상명대(서울, 중앙), 연세대, 영남대, 이화여대, 한성대이다.(keris 2003)
석산문집(石山文集) [冊] : 예천 출신인 석산 정승모(鄭升謨, 學者)의 문집으로, 461쪽, 27cm, 서울에서 정진동(鄭鎭東)이 1987년에 발행하였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경북대, 고려대, 상명대(서울), 서울대(중앙), 안동대, 연세대, 영남대, 이화여대, 한성대이다.(keris 2005)
석산사(石山寺) [터] : 감천면 진평3리(眞坪3里) 진작(眞勺)에 있던 사찰로, 1930년 경까지 있었다. 큰 바위에 호박을 파서 방아를 찧어 먹었다고 하는 흔적이 남아있어 이를 호박바위라 한다.
석산재(石山齋) [齋舍] : 용궁현(現 聞慶市 永順面 白浦里)에 있는 재사로, 진주인 우룡재(寓龍齋) 강회백(姜淮伯, 政堂文學)의 손자인 석산 강자보(姜子保, 司直)의 우모소(寓慕所)이다. 강자보는 임천에 은거하며 경사를 탐구하고 세상의 명리를 구하지 않았는데, 세조 때에 절충장군 행용양위 사직이 제수되었다.(龍宮鄕校誌 上卷 2005)
석산정 : → 침석정
석송골농원(입안에서 사르르 녹고 沙果香이 좋아요!! 石松골農園 凍結乾燥 沙果말랭이 人氣) [記事] : 예천군 감천면 진평리 소재 석송골농원(대표 진봉식)은 생사과의 맛과 향, 영양소가 그대로 살아있는 동결건조 사과말랭이를 생산 판매하고 있어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석송골농원에서 생산되는 사과말랭이는 농장주 진봉식, 함명자 씨 부부가 오랜 연구 끝에 개발한 일반건조(전기건조기) 사과말랭이와 동결건조 사과말랭이를 "2007년 예천곤충바이오엑스포" 행사 시 관람객에게 선보인 결과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두 가지를 함께 생산해 왔으나 동결건조 사과말랭이의 선호도가 더 좋아 현재는 동결건조 사과말랭이를 주로 생산하고 있다. 생산과정은 저농약 인증 친환경 사과를 세척기로 깨끗하게 세척한 후 절단기로 사과 속 제거 및 4~8쪽으로 절단하고 절단한 사과를 다시 5mm 크기로 잘라 껍질 째 냉동건조기에서 동결 건조하여 다른 식품첨가물이 전혀 포함되지 않게 생산한다. 특히, 동결건조 사과말랭이는 껍질째 동결건조과정을 거쳐 생산되므로 사과의 맛과 향, 영양소가 거의 파괴되지 않으며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는 듯한 느낌과 사과의 향이 그대로 베어나는 맛이 일품이어서 아직 본격적인 홍보를 하지 않고 있음에도 입소문을 통해 찾는 사람이 많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장대표 진씨는 "현재 농장에는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촌교육농장 사업으로 지원받은 생산시설에 세척기, 절단기, 전기건조기, 압착기 등이 설치되어 있으나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동결건조 사과말랭이를 생산할 수 있는 냉동건조기가 설치되지 않아 자비를 들여 지역 양잠농업협동조합에 설치된 냉동건조기를 이용해서 동결건조 사과말랭이를 생산하고 있으나 잦은 기계고장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진봉식․함명자 부부는 1984년부터 감천면에서 4.7ha규모의 사과농장을 운영해오고 있으며 2003년에는 저농약 인증을 받아 친환경적으로 사과를 재배하고 있다. 생산된 사과말랭이는 1봉지(100g) 5,000원에 판매하고 있으며 구입을 희망하는 사람은 석송골농원으로 문의하고 곧 홈페이지(http://ssks.co.kr) 판매도 할 예정이다.(金相國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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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