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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2,305:석송령...
작성자이춘우 @ 2023.09.30 07:28:24

  도청신도시 예천 2,305 : 석송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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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송령(石松靈), 예천감천면 반송(醴泉甘泉面盤松), 예천천향리 노송(醴泉泉香里老松), 소나무, 부자나무(富者나무) [名木] : 감천면 천향리 804번지 석평(石坪)마을 앞 대지에 있는 노송(老松)으로, 경북도나무 제419호로, 천연기념물 제294호(1982.11.3 指定)이고, 예천군의 상징 나무(1986.12.6 指定)로 장수(長壽), 상록(常綠), 부귀(富貴)를 상징한다. 한 그루의 줄기에 여러 가지가 함께 뻗어 마치 우산을 펼쳐 놓은 것 같다. 수령 600년, 높이 10m, 둘레(사람 가슴 높이의 나무의 둘레)는 4.2m, 수폭(樹幅)은 동서가 32m, 남북이 22m, 그늘 면적 990㎡(324坪)로 두텁다. 우리나라에 오직 하나 뿐인 재산을 가지고 있어 유일하게 재산세를 납부하는 부자나무이고, 천향리의 안녕을 빌고, 액운을 쫓아주는 동신목이다.

 

  이 나무는 약 600년 전 마을 앞을 흐르는 석간천(石澗川) 상류에서 홍수를 타고 떠내려오던 어린 소나무를 어떤 주민이 건져 심었다고 구전되는데, 이 나무가 석송령(石松靈)으로 불리게 된 연유는 이 마을에 후사(後嗣)없이 살고 있던 이수목(李秀睦)이란 촌로(村老)가 말하기를, "사후(死後)를 부탁합니다."라고 하고, 그의 밭 2천 평을 이 나무 명의로 기증하고, 1930년 경 마을을 떠나자, 주민들(代表 柳泉佑)은 그의 뜻을 새겨 석평동(石坪洞)에 있는 영험있는 나무라고 하여 석송령(石松靈)으로 이름을 짓고 지주로 등기(1927.8.10)시켜 처음으로 나무가 지주로 되었다. 나무로서는 유일하게 토지(4,600㎡ 논밭)와 장학 기금 5백만 원을 소유한 부자나무가 되었다. 따라서 재산세를 납부하는 납세 의무자가 되었다. 주민들은 이 나무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이 노송(老松)의 원활한 보호 관리를 위해 석송계(石松契)를 조직,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흘 날 자시에 마을에서 뽑은 축관과 제관 2명이 목욕재계하고 정성을 다해 마을의 번영과 풍년을 기구하는 동신제를 올린다. 이 나무가 소유한 토지의 수입으로 비료도 주고 약도 쳐주고 알뜰히 가꾸며 이 나무를 보호한다. 이는 옆으로 뻗어난 10여 m의 자기 가지를 못 이겨 1973년부터 9개의 돌기둥과 18개의 나무기둥에 떠 받쳐져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이 국내외에 널리 소개되자, 1985년 대통령께서는 500만 원의 특별 관리비를 하사한 바 있는데, 주민들은 보다 뜻있게 활용코자 석송령장학회(石松靈獎學會)를 구성, 역내 중·고등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석송령 애호사상 선양에 힘쓰고 있다. 일제 때 이 나무가 미신 숭배의 대상이라 하여 일인이 나무를 자르려 오다가 마을 어구에서 까닭 모르게 넘어져 크게 다쳤기 때문에 이 나무가 무사했다고 한다. 또 한때 마을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려 곤욕을 치룰 때 석송령에 정성껏 제사를 지내 전염병이 물러갔다고 하고, 6.25전쟁(1925) 때는 마을 사람들이 공습을 피해 석송령 밑에 숨어들어 한 사람의 피해도 없었다고 믿는 신령스러운 마을의 수호신으로 오늘도 받들어진다. 이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석송령을 해치면 큰 벌을 받는다고 믿고 있다. [趙雲濟의 詩] : 예천서 영주로 가다가/ 풍기로 가는 포장도로를 접어들면/ 감천면 석평마을/ 거기 길가에/ 반송이 하나 서 있는데/ 줄기 둘레가 4미터/ 높이는 10미터 쯤/ 6백 년의 나이에/ 가지는 게의 다리처럼 굵게 뻗고/ 가지마다 다듬은 돌로 괴고/ 전체는 철책으로 둘러싸였는데/ 그 옛날/ 소백산 어느 기슭에 싹이 나서/ 홍수에 떠내려 온 것을/ 이 마을 사람이 심었다는 것/ 그 후 이 나무를 사랑한 한 촌로가/ 자식 없이 죽을 때/ 전 재산 천여 평을 상속을 내려/ 그 곡수로/ 세금도 내고 장학금도 내는/ 세계에 하나 뿐인/ 부자나무/ 지금은/ 천연기념물 296호/ 부귀와 장수의 영험을 내리는 신령/ 죽으면서/ 자기의 염원을/ 소나무에 맡긴/ 갸륵한 마음/(保護樹誌 1972, 醴泉郡統計年譜 1981)

 

  [朝鮮日報] : 감천면 천향리 양지바른 땅 1,379평의 주인으로, 해마다 마을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세금도 거른 적 없다. 1998년에 낸 세금은 6,210원. 음력 정월 14일이면 마을 사람들이 풍성히 상을 차려 대접한다. "오래 오래 사시라"고. 사람이 아니라 나무다. 600년 넘게 산 '세금 내는 나무'다. 1927년 8월이었다. 마을에 이수목이라는 노인이 살았다. 아들 없던 노인은 동신목(洞神木)인 이 나무에게 석송령이라는 이름과 함께 재산을 고스란히 물려주고 죽었다. 땅은 나무 앞으로 등기가 이전되었다. 이 후 마을 사람들은 땅에서 나오는 소출로 장학금을 주고, 세금을 내고,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 "연산군 때 물난리를 타고 떠내려 온 나무를 선비 하나가 건져 올려 심었다지." 마을 김택진(85) 옹 기억이다. 일제 때 나무 베러 온 순사가 갑자기 자전거가 뒤집어지더니 뇌를 다쳐 죽었다 카더라... 나무 안에 할배랑 할매가 살고 있다 카더라... 한 번 본 사람은 꼭 기억했다가 2,3년 뒤에 다시 부른다 카더라... 신비로운 생김새다. 얼핏 보면 숲으로 착각할 정도로 거대하다. 밑동은 어른 세 아름이 넘는다. 중간 양편으로 보통나무 밑동보다 더 굵은 줄기가 자라났다. 높이 10m, 몸통 둘레 4.2m, 나무가 가리는 땅만 200평을 넘는다. "저기 위쪽 좀 보이소. 용 네 마리가 동서남북으로 승천하고 있지예?" 나무와 함께 자란 권영업(40) 씨의 말이다. 용비늘처럼 굵고 세밀한 껍질에 이끼가 두텁다. 긴 세월 눈 맞고 얼었다 녹는 통에 위쪽 가지는 많이 부러져 나갔지만 세월은 가지들을 기기묘묘한 형태로 비비 꼬아 놨다. "나무가 아니지예. 나무님이라고요." 외지인이 나무에 오르기라도 하면 청천벽력 같은 고함이 사방에서 터진다. 우리 나무님 화나게 하지 말라고. 권씨는 1998년 솔잎혹파리로 고생하던 나무님 씨앗 200여 개를 싹튀워 어른 세끼 손가락만하게 키워놓았다. 앞으로도 600년은 더 살길 바라면서. 석송령! 그곳 그 자리에 뿌리내리고 육백 년 세월을 지켜온 나무님이다. 땅도 있고, 세금도 내고, 장학금도 주는 동신목이다.(朝鮮日報 1999.7.2 박종인 記者)

 

  [文化日報 等] : 감천면 천향1리 석평(石坪) 마을 앞에 있는 소나무로, 천연기념물 제294호로 지정되었다. 우산 모양의 당당한 기풍을 내보이고 있다. 이는 약 600년 전 엄청난 비가 내려 큰 홍수가 있던 해 산사태로 떠내려 와 이 곳 개천(勿溪川) 가에 걸쳐있는 소나무를, 고려가 망하자 이 곳 물계촌(勿溪村) 강씨골(姜氏洞)에 은거해 있던 감찰(監察) 강종덕(姜宗德)이 정성스레 심고 가꾸었다는 전설이 있다. 한편 <예천군지>의 기록에는, 600여 년 전 홍수로 떠내려온 어린 소나무를 어떤 주민이 건져 심었다고 하며, 나무의 키는 10m, 직경은 4.2m, 나무의 폭은 동서로 32m, 남북으로는 22m, 그늘 면적은 990㎥ 규모로 마을의 안녕과 단합을 지켜주는 동신수로 부귀, 장수를 상징하고 있다 한다. 이 석송령에서 150m 떨어진 곳에 강종덕의 재실 일남재(逸南齋)가 있고, 1.5km 위쪽 주마산에 묘소가 있다. 지난 5-6년 사이에 주변 환경이 많이 변했다. 방문객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최근에 개장한 인근의 예천온천과 중앙고속도로 덕분에 주말에는 1,500여 명의 인파가 들린다. 그래서 예천군에서 주차장을 넓히고, 정자를 만들고, 나무 호보 철책을 좀더 밖으로 넓혔다. 그러나 많은 관광객들이 나무 밑으로 거리낌 없이 들락거리고 함부로 막걸리를 주고 있어서 걱정스럽다. 이런 행위는 나무에게 치명적이며 이 나무가 쇠약해진 원인의 하나일 수도 있다. 사람들의 빈번한 출입은 흙바닥을 단단하게 만들고, 다져진 흙 속의 뿌리는 영양분이나 산소를 충분히 흡수할 수 없게 되어 나무는 차차 쇠약해져 고사하고 만다.(www.jinjukang.org 2003, 文化日報 2003.6.5)

 

  [韓國日報 等] : 감천면 천향리 석평 마을 한가운데 서 있는 소나무로, 우뚝하고 잘 생겼고, 수령 600년쯤 된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기한 나무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나무에게도 감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어떤 특수한 능력을 기대하며 자연과 조화된 삶을 살아왔다. 나무는 모든 생물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살고, 덩치도 크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것을 숭상하는데, 그만큼 나무도 사람의 정신세계까지 긍정적으로 다듬어주고 사랑한다. 이 석송령이 재산을 갖게 되고 나라에 세금을 내며 학생들에게는 장학금까지 주게 된 사연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이 소나무를 어렸을 때부터 바라보고 자라온 이수목이라는 석평 마을 사람이 이 나무로부터 특별한 영기를 느껴 1927년 자기가 소유하고 있던 전 재산인 1,191평의 전답을 이 나무 앞으로 상속해주고 석송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토지대장에 보인 석송령의 주민등록번호가 3750-00248이고, 1927년 8월 10일부터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갖게 된 것으로 명기해 있다. 이 마을에 사는 석송령보존회장 김성호 씨에 따르면, 1975년 고 박정희 대통령이 이런 소식을 듣고 석송령 보호기금 500만 원을 보내줘 적지 않은 재산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 재산으로부터 나온 기금으로 석송장학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이 마을 학생들 44명에게 혜택을 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나무에 음력 정월 보름이면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동신제를 지내고 부녀자들이 나무 주변을 돌면서 막걸리를 부어주는 행사를 매년 해오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일체성을 느끼게 하는 풍습으로 이 동신제 때 석송령에 고하는 축문의 한 구절을 보면 다음과 같다. “신께서 도와주시어 모든 것에 사랑이 넘치고 우리가 간구할 때 병마와 모든 액운을 물리쳐 주시니 이 마을 사람들이 행복하므로 오래도록 정성을 다해서 모시겠나이다.” 한국전쟁 때 다른 마을 사람들은 죽고 다쳤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한다. 이와같이 석송령은 법적 지위나 인격을 부여받아 인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될 뿐 아니라 정신적 지주가 되는 대표적인 우리 민속이라고 할 수 있다. <식물의 신비 생활>(피터 톰킨스, 크리스토퍼 공저)이라는 책에 보면, 식물도 우리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기뻐하고 슬퍼한다고 하였다. 예쁘다는 말을 들은 난초는 더욱 아름답게 자라고, 볼품없다는 말을 들은 장미는 자꾸자꾸 시들어간다고 하였다. 우리 선조들은 일찌감치 석송령과 같이 나무를 비롯한 대자연 속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사람과 똑같은 인격을 부여하며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슬기로움이 있었던 것이다. 예천군은 1997년부터 수령 5-7년 된 그 아들 나무를 화분당 3만 원에 분양하고 있다.(韓國日報 2003.9.24, 朝鮮日報 2003.11.26)

 

  [인터넷 1] : 감천면 덕율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면 천향리 석평(石坪)마을에 수령 600년을 자랑하는 거대한 반송(盤松) 한 그루가 서 있다. 높이 10m, 수폭 동서 32m, 남북 22m라는 이 소나무는 그늘 면적만도 300여 평에 이르며, 부귀, 장수, 상록을 상징하고 마을의 안녕과 협동심을 북돋아주는 신목(神木)이다. 600여 년 전 마을 앞을 흐르는 석관천(石串川) 상류에서 홍수에 휩쓸려 떠내려 오는 어린 소나무를 마을 사람이 건져 심었다고 전해오는데, 1920년 경 이 마을에 살던 한 노인이 후사 없이 죽으면서 소유 토지를 기탁함으로써 한 인격체가 되어 석송령(石松靈)이라는 이름을 당당히 지니게 되었다. 석평 마을의 영험한 소나무란 뜻이다. 석송령 명의로 1500평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이 나무는 세금도 납부하고 마을 학생에게 석송령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하는 성스러운 나무이다. 막걸리를 좋아해서 행사 때마다 마시는 막걸리가 1년에 열 말도 넘는다고 하는데 아직도 원기 왕성해 보이는 이 나무의 건강과 장수를 빈다. 천연기념물 제294호이다. 예천에는 토지를 소유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나무가 또 하나 있다고 한다. 용궁면 금남리 금원마을에 있는 수령 500년의 황목근(黃木根)이라는 이름을 가진 팽나무인데 토지를 4000평이나 소유하고 있으며 천연기념물 제400호란다. 유적도 많고 문화재도 많은 유서 깊은 예천을 하루 동안에 돌아보았으니 무엇을 얼마나 보았을까 마는 예천문화원을 비롯한 관계 기관의 친절한 안내로 이만큼이나 볼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하며, 은근과 끈기의 예천이 계속해서 우리의 전통 문화를 아름답게 지켜나가는 고을이 되기를 빈다.(pwj32.com.ne.kr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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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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