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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2,307 : 석송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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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송령(老松 救하기) [記事] : 경북도내에는 희귀하거나 전설이 서려있는 소나무들이 많다...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의 석송령(천연기념물 294호)은 600년 넘은 반송으로 부귀와 장수를 상징한다. 6천600㎡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어 세금도 내고 장학금을 주는 소나무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예천군 용문면의 사부리 소나무(도기념물 111호)는 형태가 특이하여 소나무품종 연구의 학술자료가 되고 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벼루 속에 솔씨를 넣어 가지고 와서 심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경북도내에는 소나무숲과 노송이 즐비하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는 10그루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재선충이 구미, 칠곡, 포항, 경주, 청도, 안동, 영천, 경산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9월 경주 태종무열왕릉 바로 근처에도 이 병이 나타나 소나무 숲이 즐비한 경주 남산 전체가 위험하다는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역사와 아름다운 자태를 간직하고 있는 소나무를 보호하는데 민․관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주민들은 조금이라도 소나무가 이상하다 싶으면 즉시 관공서에 신고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심충택 論說委員 嶺南日報 2006-01-27)
석송령(石松靈 : 稅金 내고 獎學金 주는 石坪마을 天然記念物) [記事] : 나무가 세금도 내고 장학금까지 지급한다면 웬만한 정치인보다 낫지 않을까? 천연기념물 제294호인 예천 석평마을의 석송령(石松靈)은 2005년 종합토지세 9690원을 납부했다. 마을주민이 600년 전 홍수로 떠내려가던 어린 소나무를 건져 심었다고 전해지는 석송령은 부귀․장수․상록을 상징하는 반송으로 높이 10m, 줄기 둘레 4.2m, 가지 길이가 동서 32m․남북 22m로 그늘 면적만 300평이 넘는 거목이다. 1927년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 씨가 토지 1328평을 석송령에 상속, 우리나라 최초의 부자나무로 기록되었다. 1985년에는 새마을사업에 대한 공로로 받은 대통령 하사금 500만 원으로 장학회도 만들었다. 수 십 개의 받침대가 가지를 떠받치고 있는 석송령 곁에는 석송령 2세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예천에는 세금을 납부하는 나무가 하나 더 있다. 용궁면 금원마을의 황목근(黃木根)이 그 주인공으로 5월에 황색꽃이 핀다고 해서 황씨 성을, 근본 있는 나무라는 뜻에서 목근이란 이름까지 얻었다. 천연기념물 제400호로 지정된 500년 수령의 이 팽나무는 2005년 종합토지세 1만540원을 납부했다. 1939년 주민들이 마을 공동재산인 토지 3700평을 황목근 앞으로 등기 이전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땅을 소유한 나무가 됐다.(박강섭 記者 國民日報 2006년 6월 22일)
석송령(稅金내는 나무) [記事] : 위치 :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석평마을/ 주요특색 : 천향리 석평마을에 있는 석송령(石松靈)은 예천에서 풍기 방향으로 10km의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천연기념물(天然記念物) 제294호로 지정(指定)되어 있다. 이 나무는 부귀(富貴), 장수(長壽), 상록(常綠)을 상징(象徵)하는 반송(盤松)으로, 크기는 수고(樹高) 10m,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 4.2m, 수폭 동서(東西) 32m, 남북(南北) 22m이며, 그늘 면적은 1,000㎡에 이르는 큰 소나무로서 수령(樹齡)이 600여 년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마을의 단합(團合)과 안녕을 기원하는 동신목(洞神木)으로 보호받으며 매년 정월(正月) 대보름에 동신제(洞神祭)를 올리고 있다. 석송령(石松靈)의 유래(由來)는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 풍기지방에 큰 홍수(洪水)가 났을 때 석관천(石串川)을 따라 떠내려 오던 소나무를 주민들이 건져 지금의 자리에 심었다고 전해진다. 1927년 8월경에는 당시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李秀睦)이란 사람이 영험(靈驗)있는 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石松靈)이라는 이름을 짓고 자기소유 토지 5,259㎡를 상속(相續) 등기해 주어 이 때부터 이 나무는 수목(樹木)으로서는 토지를 가진 부자(富者)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재산을 가지고 세금(稅金)을 내고 있을 뿐 아니라 1985년에는 새마을사업을 잘한다고 하여 대통령(大統領)이 준 500만 원으로 이 나무의 이름을 따서 장학회를 조직하여 고향의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여 장학금도 주고 있다. 석송령에 얽힌 여러 전설에 의하면, 1) 일제시대에 이 나무를 제거하여 민족(民族)의 정기를 말살하고 일본(日本) 군함(軍艦)의 재료(材料)로 활용하고자 일본인이 인부를 동원하여 나무를 베려고 톱과 장비를 가지고 자전거를 타고 석송령 부근의 개울을 건너오는데 갑자기 자전거 핸들이 뚝 부러져 순사(巡査)는 목이 부러져 죽었고, 인부들은 영험스러운 이 나무를 보자 겁에 질려 달아나서 무사했다. 2) 그리고 한국전쟁(1950) 때는 인민군(人民軍)이 석송령 나무 밑을 야전병원(野戰病院) 막사로 사용하였는데 삼천초등학교(三泉初等學校)를 비롯한 인근 모든 지역에는 비행기로 많은 폭격(爆擊)을 받아 피해를 보았으나 우산(雨傘) 모양의 이 나무 밑에는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아 영험스러움을 다시 한번 증명하였다 한다. 3) 또한 지금도 학질에 걸리면 소나무에 가서 절을 정중히 하고 기도(祈禱)를 드리면 병(病)이 낫는다고 전해진다. 4) 이 소나무는 술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정월(正月) 대보름이나 각종 마을행사가 있으면 1년에 10말 이상을 마신다고 한다. 그것은 한번에 막걸리 5말씩을 행사 후에 나무뿌리 주변에 살포(撒布)한다. 석송령에서 바라보이는 예천온천(醴泉溫泉)은 2000년 3월 24일 개장하여 하루 천 명 이상이 다녀간다. 물 좋기로 소문난 이곳은 중탄산-나트륨(HCO3-Na) 성분(性分)을 가진 알칼리성(PH 9.7˜10.25) 단순천으로, 수질(水質)이 매우 부드러워 피로 회복은 물론 여성들의 피부미용과 노화방지에 아주 좋다. 최근 수질검사 결과 북한이 최고로 자랑하는 금강산에 있는 온정리 온천수와 같다는 판정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한다. [교통이용안내] : 석송령으로 오는 길은 중앙고속도로로 이용하시는 예천 IC, 영주 IC, 풍기 IC서 내려도 접근이 가능하며 거리는 예천읍에서 감천면 덕율삼거리까지 8km거리에서 온천까지 지방도 931호 선으로 진입, 철로는 경부선을 이용, 예천온천과 인접한 곳이다. [연락처] : 석송령보존회(김성호)(醴泉인터넷放送 2006년 08월 14일)
석송령 [記事] : [구분] 한국문화화상자료 / [기사명] 예천 감천면의 천연기념물 석송령 / 문화재지정사항 천연기념물 제294호 / 요약설명 3,000㎡의 부지가 있어 나무 자체의 관리비와 동제를 지내는 데 필요한 경비가 산출된다. 나무 자체가 자기 재산을 갖고 있는 예. / [발행자] 한국학중앙연구원(www.history.go.kr 2007)
석송령(가을의 傳說 : 600年 된 소나무) [記事] : 일제시대에 이 소나무의 영험을 알고 일본 순사를 위시해 몇 사람이 나무를 베기 위해 톱과 도끼를 들고 나무로 향했다. 그러나 나무 가까이 다가섰을 때 갑자기 돌풍이 불더니 일본 순사가 넘어져 목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것이다. 그 후 이 거목은 우리를 지키는 버팀목이 되었다...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에 가면 석송령이란 우람한 나무 한 그루가 길가에 우뚝 서 있다. 장정 다섯 사람 정도가 안을 정도로 큰 소나무 장송이다. 그 가지는 사방으로 뻗쳐 긴 가지는 17m에 이를 정도의 나무다. 지금도 이 나무에 치성을 드리면 소원을 풀어준다고 하여 곳곳에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그 옛날 600여 년 전에 풍기 지방에 큰 홍수가 났는데, 한 선비가 홍수에 떠내려 오는 작은 나무 가지를 심었더니 그것이 오늘날의 영험을 지닌 석송령이 됐다는 일화가 있다. 그야말로 나락장송이라 사계절 변함없이 굳건히 이곳을 수호신처럼 지키고 있다. 약 2천 여 평에 달하는 이 석송령 주변은 세월에 아랑곳없이 여전히 지금도 가을로 덮여있다. 척박한 땅을 말해 주듯 석송령 주변은 가물어 말라버린 땅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나무는 배배 틀려 트래 머리처럼 가지들이 서로 용틀임처럼 뒤엉켜있다. 마치 수백 년 동안 이 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한을 머금은 듯 그 기운이 장엄하고 요기롭다. 2006년의 가을이 익어간다. 자연은 예나 지금이나 거짓 없이 계절의 탈바꿈으로 새 옷을 치장하고 있다. 한가위에 접어드니 새록새록 옛 전설이 그리워진다. 사실 우리도 그리스나 인도 못지않게 신화의 나라다. 우리 강토 어디에나 가는 곳, 발길 닿는 곳마다 이야기가 주저리주저리 감나무처럼 달려있다. 그러나 요즘 인터넷 시대, 문명된 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잃은 듯 하다. 이젠 한가위 햇곡식이나 과일도 국산보다는 중국 등지에서 온 외국산이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단 우리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우리 것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관심 속에 보호하지 않는 한 말이다. 해외 여행객이 백만을 넘는 시대에 또 해외 유학생들이 사상 최고치에 달하는 우리의 현 풍속도는 피폐한 우리의 농촌을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부농, 귀농이란 말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경제 구조만큼이나 일부에 속하는 치사다. 모처럼 긴 휴가가 해외보다는 우리 것의 의미와 뜻을 찾는 교육관광으로 되었으면 어떨까? 마치 문화의 달인 10월이 을씨년스럽게 볼 것 없는 행사 치레에서 이젠 탈바꿈을 진지하게 시도하는 것처럼 말이다. 전설은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루어진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리의 강토와 문화도 마찬가지다. 이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분명 우리를 붙들어주고, 끌어주고, 안아 줄 전설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다. 마치 예천군의 석송령이나 장군 바위의 전설처럼 말이다.(장두이 企劃委員/藝術人 데일리안 2006년 10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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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