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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2,330:석송령,,,(축,윤청호)
작성자이춘우 @ 2023.10.26 06:17:34

  도청신도시 예천 2,330 : 석송령...(부, 윤창호 한화손해보험 예천사업소 소장, 24일 서울에서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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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혹독한 환경 속에 옆으로만 자라는 반송의 낮은 자세로 살아남았다. ◆수령 6백년, 베풀고 세금 내는 소나무 ; 나무자체가 땅을 소유하고 세금을 내는 석송령. 이 소나무는 토지대장에 자기 이름으로 땅 6,600㎡를 갖고 있다. 세금을 낸다고 하니 나무가 어떻게 재산을 갖게 된 것일까. 1928년 자식이 없던 한마을 노인이 재산을 물려준 덕분이다. 그는 아들과의 소식이 끊어져 근심하며 지냈는데, 어느 날 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자다가 “걱정하지 마라”란 소리를 듣고 깨어났다. 그때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이 바로 이 소나무였다고 한다. 군청으로 가서 신생아 출생 신고하듯 호적을 만들었다. 석평마을에서 생명을 얻었다 하여 성을 석(石)씨로 하고, 영혼이 깃든 나무라는 뜻에 령(靈)과 소나무 송(松)자를 써서 석송령이라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인 땅을 나무에게 넘겨주어 등기이전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재산을 소유한 나무가 되었다. 마을사람들은 이 토지를 공동으로 경작하며 매년 석송령을 대신해 재산세를 납부해왔다. 지금은 노인회관 등 공공시설과 개인 상점에도 빌려주고 있다. 매달 여기서 나오는 임대수익은 꼬박꼬박 통장에 저금해 불려나가는 알짜배기 부자나무이다. 최근에도 마을주민들로 구성된 석송령보존회에서 재산세를 10만원 전후로 납부하고 있다. 1985년 새마을사업이 한창이던 시절, 공로로 받은 대통령 하사금 500만원을 합해 장학회도 설립했다.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명품 소나무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토지대장에 이름을 올렸던 노인은 그 소나무를 잃어버린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다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마을 주민들이 석송령을 대신해 그의 무덤을 정성으로 돌보고 있다. 석송령이 처음으로 이 마을에 자리 잡은 건 약 6백 년 전의 일이다. 당시 풍기 지역에 큰 홍수가 났는데 마을 앞 개천으로 온갖 잡동사니가 떠내려 왔다. 그 가운데 뿌리째 뽑힌 한 그루의 어린 소나무도 있었다. 이를 본 나그네가 나무의 운명을 안타까워하며 건져서 개울 옆에 심은 게 시작이라고 한다. 그 소나무는 점점 자라 크고 우람한 고목이 되었고 지금은 마을사람들의 복을 비는 동신목이 되었다.

 

  오랜 세월동안 마을로 들어오는 온갖 불길한 잡귀를 막아주고 안녕과 평화를 지켜주는 수호목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사람에 의해 생명을 얻은 이 나무가 오늘날에는 사람의 생명을 지켜주는 데에 이바지하는 격이다. 이제는 자신의 재산을 나누고 베푸는 나무가 되어 있다. 수령 6백년이 넘었으니 관련된 이야기가 없을 수 없다. 해방직전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무렵 이 나무를 베어 군수물자로 활용하고자 일본인 순사가 인부를 동원했다. 톱과 장비를 가지고 자전거를 타고 석송령 부근 개울을 건너는데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전거 핸들부분이 뚝 부러져 순사는 아래로 굴러 떨어져 죽었다. 인부들은 두려움과 겁에 질려 영험한 나무에 손도 대지 못하고 달아났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는 군인들이 석송령 밑을 야전병원 막사로 사용하였는데 인근 모든 지역에는 많은 폭격을 받았으나 우산 모양의 이 나무 밑에서는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아 영험스러움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고 한다. 이제 마을사람들은 석송령을 해치면 벌을 받는 것으로 믿고 있다. 주민들은 매년 정월 보름날 제관을 뽑아 목욕재계하고 나무 아래에서 정성껏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제사가 끝나면 나무 주위를 돌면서 막걸리를 뿌려 주기도 한다. 마을주민들의 석송령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피뢰침을 세워 낙뢰를 막고 우산살처럼 뻗어 있는 가지의 무게를 지탱시켜 주기 위해 석주와 쇠기둥으로 받쳐 주고 있다. 한 겨울 폭설이 쌓일 때에는 가지가 부러지지 않도록 모두 나서서 장대로 눈을 털어낸다. 이 나무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은 세월이 지나도 계속될 것이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정기적으로 출장 나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석송령에 대한 평소 관리까지 해준다며 주민들은 고마워하고 있다. 이미 20년 전 혈통보존을 위해 종자를 받은 후 이식재배를 거쳐 지난 2002년부터 근처에 심었던 2세 석송령 두 그루가 잘 자라고 있다. 이 어린 소나무들은 한눈에 봐도 초록빛 생명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예천군은 국립산림과학원, 문화재청과 함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석송령의 유전자를 추출, 복제나무를 만들어 영구보존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천 년을 지나도 변함없이 늘 푸른 소나무로 남아 있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을 것이다. ◆신도청과 맞다는 신령수 : 매년 정월보름날 제관을 뽑아 나무 아래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석송령보존회 제공/ 이곳에서 멀지 않은 경북도청 신청사에는 올해 들어 3개월 동안 18만여 명이 찾아 관람했다고 한다. 도청 직원은 물론 전국에서 찾아드는 이 사람들도 잠시 틈을 내어 세금 내는 나무 석송령을 찾아볼 일이다. 주민들과의 아름다운 만남이 있는 6백년 소나무의 신령스런 모습을 대면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소나무의 맑은 기운을 담아내기 위해 필자는 새벽에 사진촬영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햇살이 강한 대낮에 방문했다가 나뭇가지의 검은 그림자들 때문에 촬영에 실패했었다. 이번에는 해뜨기 전 캄캄할 때 출발해 일출시간에 맞추었다. 여명의 시간 석송령과 마주했다. 어느 시인이 말한 것처럼 오래된 소나무가 성자처럼 서 있었다. 사람보다 먼저 이 땅에 자리 잡고 살아온 나무가 이제는 사람들의 삶에 묻혀 홀로 아득한 향을 뿜어낸다. 나무는 늙어가면서 더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 사람들은 나무를 보면서 매순간의 성실함을 배운다. 오래된 나무들은 하나같이 세파와 시간의 흐름을 몸 안에 담아 켜켜이 쌓아둔다. 인간의 나이로 회갑을 열 번이나 넘긴 이 소나무의 두꺼운 껍질을 본다. 세상의 풍파를 오랜 세월동안 몸으로 끌어안은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저절로 자세가 낮아진다. 땅바닥에 오체투지하며 엎드렸다. 카메라를 낮은 곳에 두고 파인더를 보니 나무가 고요히 춤을 추는 것 같다. 양팔을 펼친 우리의 전통 춤사위이다. 인간의 나약함과 함께 중압감과 두려움마저 생기며 신목(神木)으로 다가온다. 몸통을 둘러싼 굵고 세밀한 껍질에 이끼도 두텁다. 긴 세월, 눈 맞고 얼었다 녹아서 가지는 많이 부러져 나갔지만 생명력은 이들을 기기묘묘한 형태로 꼬아 놨다. 굵고 튼튼한 가지들이 엉켜 새로운 가지를 만드는 것처럼 함께 어울리며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자신이 가진 풍요를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나무, 석송령은 연륜을 거듭해서 석평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며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갈 것이다. 봄날 아침 햇가지와 솔잎들이 생생한 초록빛 생명의 바람소리를 내며 일제히 일어서고 있다.(언론인 박순국 大邱日報 2016.04.21.)

 

  ◆ 윤창호 한화손해보험 예천사업소 소장, 24일 서울에서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

 

  윤창호(한화보험 윤창호 소장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수상! : 연도대상 8회 연속 수상도...) [기사] : 한화손해보험 예천사업소 윤창호 소장이 2023년 10월 24일 '한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조직위원회가 주최하고 대한민국신문기자협회, 언론인연합회, 안중근의사 평화컵조직위원회 등이 공동으로 주관하여 서울에서 개최된 '2023 친절서비스봉사공로대상(친절봉사상)'을 수상하여 평소 그의 선행이 높이 평가받는 계기가 됐다. 지난 2015년부터 2022년까지 한화손해보험 연도대상 자동차보험 부문에서 '은상 및 동상'을 8년 연속 수상하는 쾌거를 올려 한화손해보험 가족 중 전무후무한 수상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윤창호 소장은 1988년 한화손해보험에 입사한 이래 '고객은 끝까지 책임진다'는 각오로 성실하게 관리해 온 것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결이자 오늘의 영광을 있게 한 원동력되고 있으며, '다시 태어난다 해도 한화보험 가족으로 살겠다.'는 소신을 밝혔다. 한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대상 조직위원회 관계자는 윤창호 소장은 "평소 충과 효 봉사 등 투철한 사명감과 확고한 국가관으로 국가발전은 물론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우수성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데 기여한 공이 지대하므로 그 공을 높이 치하하기 위해 2023년 친절봉사부문에서 엄격한 심사를 거쳐 한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선정되어 상패를 수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윤 소장은 요즘도 매일 새벽 4시 30분이면 봉덕산을 오른다. 한발 두발 걸으며 고객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긴다. 믿음과 신뢰로 고객을 대하면 결국 고객도 그 마음을 알아준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윤창호 소장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한화손해보험 가족과 고객을 내 가족처럼 생각하면서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온 정성을 다해 모실 것"을 다짐했다. 국립 안동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한 윤창호 소장은 부인 김명화 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장남 영민군은 매일신문 경북본부 및 예천담당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정차모 기자 예천인터넷뉴스 20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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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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