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제목예천2,357:석정...석정리...
작성자이춘우 @ 2023.11.22 06:19:47

  도청신도시 예천 2,357 : 석정...석정리...

---

 

  석정 : 어머님 첫 재사/ 2012.08.09./ 어머님 첫 재사를 양력 8월 8일 수요일 오전 10시 (음력)6월 21일 예천읍 대심리 아이빌 101호에서 재사를 지내고 석정 부모님 산소에 가서 참배하였습니다. * 참석하신.../ cafe.daum.net/nongongsa... 행복이 가득한..(daum 2017)

 

  석정 : 예천읍, 마을별 국토대청결 운동 실시/ 2017.01.24 | 예천뉴스신문사/ 예천읍에서는 5일 앞으로 다가온 설을 맞이해 귀성객들과 지역주민들에게 깨끗한 고향의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24일 마을별로(석정, 지내, 노하리 일원) 주민들이 참석해...(daum 2017)

 

  석정동 : 본래 예천군 서읍면의 지역으로서, 돌샘이 있으므로 돌샘, 또는 석정이라 하였는데, 1914년 이후 석정동이라 한다.(醴泉邑홈페이지 2013)

  석정동 : →석정리의 연혁

  석정리 [記事] : 예천읍 석정리 이장 오윤섭 씨는 2004년 12월 3일 불우이웃돕기에 써달라며 쌀 160㎏을 예천읍민간사회안전망에 기탁하였다.(醴泉新聞 2004-12-10)

 

  석정리(醴泉邑 石井里의 美談) [記事] : 예천읍 석정리 오윤섭 리장(45)은 이장 모급액 전액(100만 원)으로 2005년 1월 21일 오전 10시 동네 어르신 70명을 모시고 예천온천에서 목욕을 시켜드리고 점심을 대접하여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5-01-22)

 

  석정리([우리마을 里長任]疏通과 和合으로 아름다운 마을 만들 것! 石井里 백종운 里長..) [記事] : [우리마을 이장님:12] '마을 주민들 간의 소통과 만남, 공감대 형성을 통해 3개의 자연부락이 하나가 되는 마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자연부락 간 지리적으로 멀어 이질감이 생기는 석정리를 하나로 통합하는데 앞장서겠다는 석정리 백종운 이장(59)은 오늘도 산재되어 있는 마을 부락의 주민들을 만나고자 갖가지 홍보물을 지니고 이른 새벽 집을 나선다.

 

  예천읍사무소 기점 승용차 기준 6분(3.3km) 거리에 있는 석정리(石井里)는 예천여고~석정리간 도시계획도로 개통 이후 시내 중심지와의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전원주택 지역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북쪽으로 서암산, 봉화산, 동쪽으로 대심2리, 서쪽으로 유천면 성평리와 고산리, 남쪽으로 지내리에 접해 있다. 석정리(石井里)는 119가구(8개반)에 232명(남자 117명, 여자 115명)이 살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94명(41%)으로 노인인구가 절반 가까이 된다. 석정리 실제 가구수는 주민등록상보다 15여가구 적으며, 주소만 두고 거주하지 않는 주민이 다수 있다. [참고자료]1972년 인구현황 114가구 819명(남 421, 여 398)최전성기. 서암산(西庵山 350m) 아래 3개 자연 부락(내석정, 외석정, 신리)이 산재해 있는 전형적인 농촌 취락 형태 마을로 김해 金, 전주 李, 파평 尹, 수원 白, 기타 성씨로 이루어져 있다. 석정리는 70년대 까지 인구 800여명을 유지했으나 1980년 산업화 이후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해 1992년에는 433명이었으며 현재는 노인인구가 41%로 초고령화로 가고 있다. 주민 중 전업농가는 78가구(65%)로 대부분이 농업을 주업으로 하고 있다. 주요 특산물은 쌀이 대부분이고 특수 작물로 과수, 고구마, 참깨 등을 재배 하고 있다. 마을 면적은 전체 면적 3,456,925㎡(전 869,164㎡, 답 699,993.5㎡, 과수원 32,805㎡, 임야 1,443,287㎡, 유지 11,074㎡)이다. 석정리에는 경천댐 수로가 지나가지만 6개의 저수지는 봄철 못자리 등 농업용수로 유용하게 이용되며, 가장 큰 못은 신리의 치실못이다. 마을 뒷편 산에는 큰 바위들이 많으나 숲이 우거져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고 있다. 주요 산업시설로 ㈜현대코마산업 원료창고(2013.11.18. 준공), 원앙가스 저장소(정재숙), 원앙씽크공장(안영무 53세, 종업원 3명, 60여평, 연간소득 7천만원, 2011년 경영권 인수)이 있다. 석정리(石井里)는 1759년(영조 35년) 이시혁(李時赫)이 개척하고 돌에서 물이 솟는 샘이 있어 석정(石井)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본래 예천군 서읍내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석정동이라 하여 예천면에 편입되고, 1937년에 예천읍 석정동, 1988년 洞이 里로 변경됨에 따라 석정리가 되었다. 석정리(石井里) 자연 부락으로 내석정(32가구), 외석정(45가구), 신리(27가구)마을이 있다. 전해져오는 마을 지명 유래를 살펴보면 까칫골은 석정 뒤에 있는 깊은 골짜기로 까치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물탕골은 안석정 뒤에 있는 골짜기로 한길이 넘는 물탕이 있어 옛날에 나병환자가 이 물을 먹고 고쳤으며, 가뭄에도 골짜기에 물이 솟아나 여름에 땀띠환자들이 목욕을 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무분별한 지하수의 개발로 물이 나오지 않고 있으며 물탕 흔적은 사라지고 없다. 돌샘(石井)은 석정리 117번지에 있는 우물로 절벽사이에서 물이 나오는데, 몹시 차고 맛이 좋다. 이 샘은 깊이가 약 1.5m, 둘레가 약 1m 이다. 이곳은 석정리의 유래가 생긴 샘으로 2012년 방치되었던 샘을 복원하고 지붕과 유래 표지석을 설치했지만, 샘 주변은 습지로 미나리가 심어져 있으며 우물은 식수로 사용할 수 없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내석정(內石井)은 석정 안쪽에 있는 마을로 읍내와 더 가깝다고 하여 불리우게 되었다.

 

  외석정보다 마을의 형성이 늦다. 현재 32가구가 살고 있으며 파평 尹씨가 대부분이다. 대심리와 가까워 예천군청사 이전과 맞물려 빈집이 없을 정도로 주거지역으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외석정(外石井), 백골마, 돌동네, 돌샘은 땅이 석질(石質)로 되어 있어 지반이 굳고 식수가 없어 마을이 들어서지 못했는데, 지금의 석정리 117번지의 돌틈에서 물이 솟아나 돌샘이 생기면서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석정리 마을회관이 있는 곳으로 3개 자연부락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마을이다. 현재 45가구가 살고 있으며 김해 金, 수원 白씨가 대부분이다. 신리(新里), 도장골, 새터(新基), 유주걸마을은 석정 서남쪽에 새로 된 마을로 예천읍과 유천, 문경군 동로를 연결하는 길목이다. 조선말에 광주 盧씨들이 살면서 도장골이라고 하다가, 1937년 예천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세금이 西部보다 낮다고 面에서 邑관내로 모여들어 새로 마을을 이루게 되면서 새터(新里)라 부르고 있다. 현재 27가구가 살고 있으며 파평 尹, 월성 李씨가 대부분이다. 유주막은 지금 신리 경로당 위치에 있었다. 근넝골은 신리 건너쪽에 있는 마을이다. 깜부기재는 신리 북쪽에 있는 고개로 신리에서 용문면으로 통하는 길목이다. 봉우재(烽火峴)는 서암산 봉수대로 올라가는 재로 가파르고 재너머에는 용산리 새박골이 있다. 서암산봉수대(西庵山熢燧臺)는 봉덕산에서 유천면 손기리 방향으로 10여분을 걸으면 돌무더기와 함께 '서암산 봉수대'라고 쓴 표석이 나온다. 서암산(西庵山 350m) 봉수대(熢燧臺)는 감천 포리 봉수산(할미성) 봉수대, 용궁 비룡산 봉수대, 풍양 풍신리 소이산 봉수대, 유천 고림리 봉수산 봉수대, 지보면 대죽리 봉수재 봉수대와 함께 국경에서 일어나는 변란 또는 내란의 일을 신속히 중앙에 알리는 옛 비상경보통신 수단으로 이용됐다. 백종운 이장은 석정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예천 토박이다. 백 이장은 2013년 3월에 마을 주민 합의 추대로 이장에 선출되었으며 성실한 자세로 각종 민원 및 불편사항 해결을 위해 발로 뛰며 적극적으로 봉사 하는 등 주민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백 이장은 벼농사(2.0ha)와 과수(1ha)를 경영하고 있다. [참고자료] 석정리 역대 이장 연혁(沿革) 재임기간 성 명/ 1976. 1.10 ~ 1979. 1.11 선명출, 1979. 1.12 ~ 2004. 2.16 김태호(金台浩), 2004. 2.17 ~ 2010. 4.19 오윤섭(吳潤燮), 2010. 4.20 ~ 2013. 3. 7 백승팔(白承八), 2013. 3. 8 ~ 현재 백종운(白種運)/ 2016년 민방위발전(군수) 유공 표창을 받은바 있는 백 이장은 새마을 지도자(선병남 58세), 새마을 부녀회장(심숙자 62세), 석정리 노인회장(엄기주 75세, 회원 60명), 신리 노인회장(이재복 82세, 회원 26명), 8개 반장 등 마을 운영위원들과 각종 행사시 석정리, 신리 경로당에서 서로 방문하는 등 양 부락간 이질감이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의논하고 협조하며 큰 불협화음 없이 마을의 모든 일들을 원만하게 잘 이끌어나가고 있다. 마을의 자랑거리로 석정리 부녀회(회장 심숙자)는 매월 10일 월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는 3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진 마을의 특성상 회원간 서로 소통하고 화합과 단결을 도모함에 있다고 한다. 석정리 부녀회는 매월 토론회를 통해 마을 행사와 발전 등의 허심탄회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하나된 부녀회 조직을 운영해 나가고 있다. 또 돌샘회(회장 황은섭, 59세)는 석정리 출신 58년생들의 모임으로 매년 추석때 석정리 마을회관에서 정기모임을 갖고 경로당 물품 기증, 마을 행사 후원 등 고향 사랑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어 어르신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다.

 

  마을 공사 연혁을 살펴보면 마을회관은 1976년에 138만원으로 건평 20평으로 건립, 그후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1997년에 지금의 회관(2층 50평)을 건축했다. 2015년도에는 내부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 신리경로당 은 2004년(27평)에 준공되었으며, 광역상수도는 2011년에 연결됐다. 외석정池는 1970년에 사업비 2천만원으로 저수량 1,500톤(수혜면적 1ha)의 규모로 완공했다. 안석정池는 1970년에 사업비 2천만원으로 저수량 1,600톤의 규모로 완공했다. 연꽃이 집단적으로 자생하고 있다.

 

  마을의 자랑스런 출향인으로 대구고등검찰청 검사(한국형사정책연구원 파견) 출신인 김용호 변호사(법무법인 이룸)가 있다. 김 변호사는 석정리 김종배씨의 자제로 대창중학교(제28회), 서울 신일고등학교, 연세대학교 법학과 졸업 후 홍익대학교 경영대학원(조세법전공) 졸업(경영학 석사), 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조세법전공) 수료 했다. 경력으로는 제30회 사법시험 합격, 대구검 검사, 서울중앙지검 검사, 홍성 지청장, 삼성화재보험 보험범죄자문위원회 위원, 2012.8 변호사 개업(법무법인 이룸)했다. 마을유지로 김종배(77세, 외석정) 전 문화원장)이 있다. 김 원장은 33년의 교직생활을 끝으로 지난 99년 대창중고교장을 퇴임하고~예천문화원 제11대 원장으로 추대되어 침체된 지역문화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원장은 재임시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관심으로 지역의 누.대.정.사를 일목요연하게 자료로 정리한 '예천 누정록', 경북북부지방의 독립운동사를 예천중심으로 재조명한 '예천독립운동사', 사라져가는 효 문화를 정립하고 살리기 위한 '효열각'을 발간, 편찬하는 등 역사재조명 작업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그 공로로 2010년 안동 mbc 향토문화상(문화부문)을 수상했다. 또한 2007년 예천곤충바이오 엑스포 후원회장, 예천군민장학회 이사장을 역임하며 지역사회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가족으로는 부인 황점순 씨와의 사이에 장남 김용호 전 대구지검 서부지청 차장검사(현 법무법인 이룸 대표변호사)와 3녀를 두었다. 석정리의 자연유산으로 박씨문중에서 관리하는 송림이 있는데 수령이 100여년이 넘었고, 마을 주민들은 여름철이면 이 송림에서 즐겨 놀았다고 하며 석정池 아래에 있다. 이외에도 석정리에는 들판 곳곳에 자연적으로 자라는 오래된 소나무들이 많은데 모두가 수형이 좋으며, 서암산 아래 소나무 숲은 간벌 등 체계적인 숲가꾸기 사업만 잘 이루어진다면 훌륭한 자연유산이 될 것이라고 본다. 석정리는 3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졌는데 내·외석정과 신리(새터)는 지리적으로 거리가 멀고 신리 마을은 유천쪽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형성한 마을이다 보니 서로 왕래가 없어 석정 1, 2리 두개의 마을로 인식하는 주민들이 많은 실정이다. 이는 백 이장이 풀어야 할 과제라고 본다. 소통과 잦은 왕래, 공동행사 개최 등으로 하나의 석정리를 만들어 나가는데 백 이장은 앞장서겠다고 했다. 백 이장은 앞으로의 계획에 마을 주민들과 지혜를 모아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농산물 가공공장을 만들 계획에 있으며, 심각한 농촌 고령화로 마을이 사라질 위기에 대비하여 현대코마산업 외 다양한 산업체 유치 및 젊은 마을로 만들어 나가고자 귀촌, 귀향, 전원주택 등 외지인구 적극 유입에 노력하겠다고 했다. 또 석정리 입구 안석정지에는 연꽃이 많이 자라고 있으나 관리가 안되고 있는데, 예천군 신청사 대심2리 이전을 계기로 안석정지 주변에 조경수 식재, 휴게의자, 운동기구 등 편의시설을 설치하고 주민 휴식 공간으로 조성하는데 적극 노력하겠다고 했다. 대심리 도시계획도로를 따라 걷기운동을 하는 주민들이 많으며 인근에 마땅한 공원이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안석정지 연꽃 테마공원 조성은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석정리에서 태어나 줄곧 살아오면서 이웃들과 두터운 정을 나누며 남은 여생 고향땅에 정 붙이고 사는 것이 소원이라는 백 이장은 단절된 부락간의 화합을 도모하고 마을 발전을 위한 산업시설과 외지인구 유치를 위해 이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의에 찬 표정에서 고향 사랑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6-12-20)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페이지만족도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성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