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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청신도시 예천 2,361 : 석정리 마을.., 석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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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정리(石井里) 마을의 구성, 석정리 [里] : 석정리는 예천읍(醴泉邑) 행정 동리 중의 하나로, 서암산(西庵山)을 배경으로 4개 마을이 산재해 있고, 동리 앞은 예천읍, 유천면, 문경군 동로면으로 통래하는 한길이 있다. 총 115가구 중 김해 金 20가구, 전주 李 20가구, 파평 尹 18가구, 수원 白 16가구, 기타 41가구가 살고 있었으나, 현재(1992)는 총 105가구 중 김해 金과 전주 李가 각각 18가구, 파평 尹 15가구, 수원 白 12가구, 기타 42가구가 살고 있다.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어 영세성을 면치 못하나, 담배를 많이 하고, 과수원이 있어 원예작물로 소득을 높이고 있고, 비육우(肥肉牛)를 사육하는 농가가 많다. 겨울엔 온상 재배로 싱싱한 채소를 대량 생산해 내고 있다. 석정리에는 7개의 저수지가 있는데, 그 중 제일 큰 못이 칠실못, 그 다음이 뒷못, 안석정못, 앰매실못 등의 순이다. 논이 가장 많은 들을 한질밑이라고 하는데, 겨울이면 이 논에서 썰매를 지치기도 한다. 밭은 주로 산밑에 있다. 앰매골, 상전, 칠실, 곧진머리, 까치골 등의 밭이 있다. 동네에서 주변의 산을 바라보면, 꺼멓게 보이는 큰 바위들이 많다. 바위 많은 산 밑에 자리잡은 이 동네는 여름엔 시원한 바람이 그칠 줄 모르고, 겨울이면 동네 뒤와 좌우를 막고 있는 밭이 있기에 바람막이를 해주어 따뜻한 곳이다. 그래서 예부터 "소구리 동네"라고 한다. 석정리(石井里) 연혁, 석정리, 석정동 [里] : 석정리는 예천읍(醴泉읍) 행정 동리 중의 하나로, 원래 신라(新羅) 때 수주촌(水酒村) 소속이었고, 658년(무열왕 5)에 수주군(水酒郡) 소속이었다. 757년(통일신라 경덕왕 16)에 예천군(醴泉郡) 소속이었고, 936년(고려 태조 18)에 보주(甫州) 소속이었다. 1172년(명종 2)에 기양현(基陽縣) 소속이었고, 1204년(신종 7)에 보주(甫州) 소속이었다. 1413년(조선 태종 13)에 보천군(甫川郡) 소속이었고, 1416년(태종 16)에 예천군(醴泉郡) 소속이었고, 임진왜란(1592) 직후에 예천군 서읍내면(醴泉郡西邑內面) 소속이 되었다. 1728년(영조 4) 예천현 서읍내면(醴泉縣西邑內面) 소속이었고, 1738년(영조 14) 예천군 서읍내면(醴泉郡西邑內面) 소속이었다. 1914년 예천군 예천면 석정동(醴泉郡醴泉邑石井洞)이 되었고, 1937년에 예천군예천읍석정동(醴泉郡醴泉邑石井洞)이 되었다. 1988년에 동(洞)을 리(里)로 개칭하였다. 1759년(영조 35)에 이시혁(李時赫, 奉敎前司果爲勵節校尉守訓練判官)이 개척하고, 돌에서 물이 솟는 샘이 있어 석정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석정리에는 내석(內石=1.2반=1동), 석정(石井=3.4.5반=2동), 신리(新里=6.7반=3동) 마을 등의 자연부락이 있다.
석정산(石井山) [山] : 예천읍 석정리(石井里) 뒷산으로, 높이 350m이고, 병풍을 펴 놓은 것처럼 서쪽으로 길게 뻗고 있다. 최동단(最東端, 鳳德山 바로 너머)에 서암산 봉수(西庵山烽燧) 자리가 있다.
석조전(徹底한 匠人 精神으로 우뚝서다 開浦面 黃山里 석조전 박만식 代表) [記事] : 예천에서 점촌방향 개포면 황산리 34번국도 예천-점촌 중간지점에 이르면 도로변에 전시해놓은 거대한 돌조각 작품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석조전(구,석총산업 대표 박만식. 64) 이란 상호가 새겨진 바위에 선명한 조각글과 철저한 장인정신으로 만들어진 대형 작품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일반적으로 석재품이라 하면 묘지 봉분 앞 상석, 각종 비문, 비석 등이 언뜻 떠오르지만 석조원에는 이것 말고도 다양한 여러 석재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만식 대표는 지난 2007년 40여년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고향(감천면 수한리)으로 귀향하면서 개포면 황산리 도로변 밭을 매입하여 작업장을 만들었다. 작업장을 만드는 일도 쉽지만은 않았다. 인근 공군부대가 위치해 있어 행정기관으로부터 정상적인 허가 절차를 모두 받고도 여러 가지 제약을 받아 여러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20여년 간 돌과 인연을 시작으로 동고동락하면서 육중한 바위를 뚫고 다듬어 만들어낸 작품 한점 한점 모두가 장인정신의 혼이 담겨져 있는 작품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대형 석조 작품 앞에 서있으면 그 무게에 압도당하는 느낌마져 들 정도로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무거운 것은 7톤에 달하는 육중한 바위를 나무 조각 다루듯이 섬세하면서도 부드럽게 작품을 토해내는 박만식 씨는 “누구에게도 이러한 일들을 배운적이 없다”며 “내가 하고 싶은 데로, 생각나는 대로 구상하여 돌에 그려 넣고 연마기를 들고 수개월 동안 몰입하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고 밝혔다. 1년에 두세 작품이 나오면 잘 나온다는 박만식 대표. 7년여 동안 대형 석조물을 만든 것만 해도 무려 30여점에 이른다. 발명특허 3점, 실용신안 8점, 저작권등록 15점 등을 확보해놓고 있어 어느 누구도 함부로 작품들을 흉내 낼 수도 없다. “요즈음은 조금 홍보가 되어서 그런지 지방자치단체, 대기업 등에서 섭외가 종종 들어온다.”고 하며 “힘닿는 데까지 작품 활동은 계속할 것”이라며 누구든 방문을 환영하고 있다.(醴泉인터넷放送 2013-03-19)
석조전 : 석조전/ 제조업, 도로명 주소 경북 예천군 개포면 경서로 1621, 지번 예천군 개포면 황산리 118-1(daum 2017)
석조전 : 수 톤 육중한 바위 깎아 진귀한 석조품으로 탄생/ : 2017.2.22 수 12:47 개포면 황산리 '석조전' 박만식 대표/ 2016년 06월 14일(화) 19:46:34 남주희 기자/ 발명특허 2점, 실용신안 7점, 저작권 등록 27점, 특허청 우수발명품.../ www.y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03 예천신문(daum 2017)
석조전 : - 예천군 경사났네 경사났어!! 잔치분위기 -/ 했다. 이번 농업인대학은 사과, 오미자, … 예천군, 철저한 장인 정신으로 우뚝 서다 - 개포면 황산리 ‘석조전’ 박만식 대표 - [타임뉴스=강영묵 기자] 예천에서 점촌방향 개포면 황산리 34번국도.../ www.timenews.co.kr/web/news/.. 타임뉴스(daum 2017)
석조전 : 국사지맥 2-2구간 화전고개-밤고개-예천비행장-장송고개.../ 2015.04.07./ 잡목들이고 석조전 옆으로 34번국도를 지나가는 차량들의 굉음이다. 살짝 내려서고 파평 윤씨 무덤을 지나 오르면 송림의 분기봉에서 북쪽으로 휘어가노라면 우측사면.../ cafe.daum.net/holsan/VJW0/ 홀로 가는 산경표 (* 홀산 *)(daum 2017)
석조전 : 철저한 장인 정신으로 ‘우뚝’… “누구에게도 배운 적 없어요.”/ 2013.03.19 | 경안일보/ 예천에서 점촌방향 개포면 황산리 34번국도 예천-점촌 중간지점에 이르면 도로변에... 작품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석조전((구)석총산업 대표 박만식·64)’ 이란 상호가...(dau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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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