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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2,379:산몽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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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閱道의 次韻] : 엎드려 종조부 퇴계 선생 시를 차운하다// 선인의 끼친 법이 오래도록 빈 데 돌아갔으나/ 끼친 뜻이 아직 있으니 이어받는 뜻도 그러하도다/ 두어 칸 집과 기둥을 이제야 얻었으니 숨어 산 삶이 세정에만 소홀함이 아니었네/ 작은 정자와 높은 시릉이 물 가운데 맑고 빈 것 같은데/ 먼 개와 긴 내를 바라보면 1뜻이 넓어지는 것 같다/ 외로운 곡새와 떨어지는 나오리는 일만 형태를 드리니 늦은 바람나는 비 또 뜸뜸이 나리네/ 산에 비기고 물에 다다르니 층층한 봉우리가 공중에 솟았는데/ 안개 끼인 문과 소나무 창문이 비단과 같도다/ 오래 한가한 스님을 짝하니 신선의 자리가 고요한 듯 가까이 오므로 특별히 세상 인연 먼 것을 깨닫겠네/(主人)// [鄭琢의 次韻] : 삼가 퇴계 선생 시를 차운하다// 주인이 능히 스스로 맑고 빈 곳을 점쳤는데/ 신선이 사는 곳과 무극황군(無極皇君)의 치하(治下)가 이보다 못하도다/ 꿈을 깨고 몇 번이나 대(臺) 위에 누워서 하늘에 찬 밝은 달과 별을 보았을까/(藥圃)// [柳成龍의 次韻] : 삼가 선몽대 시를 차운하다// 높은 대에 올라보니 공중을 의지한 것 같구나/ 고기 잡고 낚시질하는 것 나는 그러하지 못하였네/ 꽃이 뜰에 떨어지매 봄이 이미 늦었는데 푸른 주렴 솔 그림자가 다시 소소(蕭疎)하도다/(西厓)// [金誠一의 次韻] : 삼가 선몽대 시를 차운하다// 반 이렁 솔 그림자가 푸른 공중에 기울어지니/ 좋은 술 두루미 대하니 오늘 날 흥치가 어떠할까/ 자내를 빙자해 다시 유(儒)와 선(仙)의 글을 들으니/ 문득 세상 인연이 이 땅에 성근 것을 깨닫겠네/(鶴峰)// [李德馨의 次韻] : 경건하게 선몽대 시를 차운하다// 산은 푸른 벽에 비겼고 땅은 공중을 능가하였는데/ 물에 고기 잡고 산림에 밭 가는 것이 참으로 자유롭구나/ 이 대(臺)에 오기 전 이름이 이미 좋았는데 구경할 뜻이 동하니 세상 정이 멀구나/(漢陰)// [茶山 丁若鏞 先祖의 次韻] : 경건히 벽 위에 있는 운을 차운하여 선몽대 주인에게 드리고 겸하여 자리 위에 있는 여러 분에게 보이다// 물 속에 있는 신선의 집과 같아 거울처럼 허명한데/ 주인의 마음씨 마저 담박한 듯 하네/ 이틀 동안 선몽대에 오르내리니/ 천척(千尺)이나 높은 세상 티끌이 생각에 소원하도다/ 난정(蘭亭)의 옛 자취가 이미 허무하게 되었으니 좋은 일 이 때에 누구와 같이 할 것이냐/ 거북이와 학같은 분들이 거듭 놀게 되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 가을이 오매 서신 보내는 것을 소홀하지 말진저/(丁士優)//
[金尙憲의 次韻] : 경건히 선몽대 시를 차운하다// 모래가 희고 내가 밝아서 담담해 빈 것 같으니/ 옥같은 산이오 구슬같은 정원에 비교하는 것이 어떠할 까/ 신선의 땅이 하도 멀어 오기가 어렵다 하나 이 정자에 오고감을 소홀하지 말자/(淸陰)// 추강 김현종(秋崗金炫鍾, 1906-1987)이 시로써 이르기를, "선몽대 선유 유감(船遊有感)// 유유한 장류수(長流水)는 석양에 노을지고/ 초동(樵童) 탄 일엽편주(一葉片舟) 강심(江心)을 배회하니/ 선몽대 칠석(七夕) 정경을 못내 그려 하노라// 1955년 추석//"라고 하였다(秋崗文集 1988, 仙夢臺略志 1991).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1780년 19세 때 그의 아버지 정재원(丁載遠) 예천 군수를 따라와서 '선몽대기(仙夢臺記)'를 지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천에서 동쪽으로 10여 리 되는 곳에 가면 한 냇가에 닿는다. 그 시내는 넘실대며 구불구불 이어져 흐르는데, 깊은 곳은 매우 푸르고 낮은 곳은 맑은 파란색이었다. 시냇가는 깨끗한 모래와 흰돌로 되어 있어, 바람에 흩어지는 노을의 아름다운 모습이 사람의 눈에 비쳐 들어온다. 시냇물을 따라 몇 리 쯤 되는 곳에 이르면, 높은 절벽이 깎아 세운 듯이 서 있는데, 다시 그 벼랑을 따라 올라가면 한 정자를 볼 수 있고, 그 정자에는 '선몽대(仙夢臺)'라는 방(榜)이 붙어 있다. 선몽대의 좌우에는 우거진 수풀과 긴 대나무가 있는데, 시냇물에 비치는 햇빛과 돌의 색이 숲 그늘에 가리어 보일락 말락하니, 참으로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대개 태백산 남쪽에서 시내와 산의 경치가 뛰어난 곳은 오로지 내성(乃城, 現 奉化), 영천(榮川, 現 榮州), 예천이 최고인데, 선몽대는 유독 그 기괴한 모양 때문에 여러 군에 이름이 났다. 하루는 아버지를 따라 약포(藥圃) 정 상국(鄭相國, 宣祖 때의 文臣인 鄭琢)의 유상(遺像)을 배알하고 길을 바꾸어 이 누대에 올랐다. 배회하며 바라보다가 이윽고 벽 위에 여러 시(詩)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중의 하나는 관찰사를 지내신 나의 선대(先代, 丁士優) 할아버지께서 일찌기 지으신 것이었다. 시판이 깨어져 글자가 갈라지고 한 쪽 구석이 떨어져 나가기도 했으나, 자구(字句)는 빠진 것이 없었다. 아버지께서 손으로 먼지를 털어내고 나에게 읽으라 하고서 말씀하시기를, "공이 일찌기 영남에 관찰사로 내려왔을 때 이 누대에 오르신 것이다. 공이 지금부터 200여 년 전에 사셨던 분인데, 나와 네가 또 이 대에 올라와서 즐기니, 어찌, 기이한 일이 아니겠느냐?"하셨다. 그리고는 나에게 명하여 그 시판의 시를 옮겨 본떠서 공장(工匠)에게 번각(飜刻)하고 다시 단청(丹靑)을 입혀 걸어놓게 하시고, 이윽고 나를 불러 기(記)를 쓰라고 하셨다.(醴泉新聞 2001.10.11)
[茶山詩文集] : 호명면 백송리에 있는 정자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시와 기문이 있다. [詩] : 부친(醴泉郡守 丁載遠)을 모시고 선몽대에 올라// 높은 언덕 자리잡아 허공에 솟은 누각/ 술 마시며 유람하니 객(客)의 시름 사라지네/ 꽃잎에 닿은 산중 비(山雨) 방울져서 떨어지고/ 전나무에 든 시냇바람 우수수 들려온다/ 사신(使臣)이라 관개(冠蓋)는 낡은 자취 서글프고(7代祖 監司公 丁士憂가 일찌기 使命을 받들고 이 곳에 왔는데, 壁上의 詩가 있고, 別途로 記文이 있다)/ 승상(丞相)이라 의건(衣巾)은 예전 놀이(舊游) 상상되네/ 단약 부엌 연기 없어 신선의 꿈 싸늘한데/ 강물과 구름 고금(古今)이 절로 한가로워라/(茶山詩文集 第1卷 詩部, 1982). [記文] : 선몽대기(仙夢臺記)// 예천에서 동쪽으로 10여 리 되는 곳에 가면 한 냇가(乃城川)에 닿는다. 그 시내는 넘실대며 구불구불 이어져 흐르는데, 깊은 곳은 매우 푸르고 낮은 곳은 맑은 파란색이었다. 시냇가는 모두 깨끗한 모래와 흰 돌로 되어 있었으며, 바람에 흩어지는 노을의 아름다운 모습이 사람의 눈에 비쳐 들어온다. 시냇물을 따라 몇 리쯤 되는 곳에 이르면, 높은 절벽이 깎아 세운 듯이 서 있는데, 다시 그 벼랑을 따라 올라가면 한 정자를 볼 수 있으며, 그 정자에는 '선몽대(仙夢臺)'라는 방(榜)이 붙어 있다. 선몽대의 좌우에는 우거진 수풀과 긴 대나무가 있는데, 시냇물이 비치는 햇빛과 돌의 색이 숲 그늘에 가리어 보일락 말락하니, 참으로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대개 태백산 남쪽에서 시내와 산의 경치가 뛰어난 곳은 오로지 내성(乃城 : 現 奉化), 영천(榮川 : 現 榮州), 예천이 최고인데, 선몽대는 유독 그 기괴한 모양 때문에 여러 군에 이름이 났다. 하루는 아버지(當時 醴泉郡守 丁載遠)를 따라 약포(藥圃) 정 상국(鄭相國 : 明宗 때의 文臣인 鄭琢)의 유상(遺像)을 배알하고, 길을 바꾸어 이 누대에 올랐다. 배회하며 바라보다가 이윽고 벽 위에 여러 시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중의 하나는 관찰사를 지내신 나의 선대 할아버지(丁士優)께서 일찍이 지으신 것이었다. 시판(詩板)이 깨어져 글자는 갈라지고 한쪽 구석이 떨어져 나가기도 했으나, 자구(字句)는 빠진 것이 없었다. 아버지께서 손으로 먼지를 털어내고 나에게 읽으라 하고서 말씀하시기를, "공(公)이 일찍이 영남에 관찰사로 내려왔을 때 이 누대에 오르신 것이다. 공이 지금부터 200여 년 전에 사셨던 분인데, 나와 네가 또 이 누대에 올라와서 즐기니, 어찌 기이한 일이 아니겠느냐." 하셨다. 그리고는 나에게 명하여 그 시판의 시를 옮겨 본떠서 공장(工匠)에게 번각(번刻)하고 다시 단청(丹靑)을 입혀 걸어놓게 하시고, 이윽고 나를 불러 기(記)를 쓰라고 하셨다.(茶山詩文集 第13卷 記)
선몽대(仙夢臺) [樓亭] : 호명면 백송리 74번지(垈)에 있는 정자로, 마을 동쪽 우암산(遇岩山) 북서쪽 벼랑 위에 내성천을 바라보며 위치하고 있다. 퇴계 선생의 종손인 우암(遇岩) 이열도(李閱道)가 1563년(명종 18)에 세웠으나 1623년에 수해로 도괴된 후 1671년에 중건하였으며, 1922년과 1968년에 중수하였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인데, 전면 기둥의 하부에는 콘크리트로 하층주를 세워 누마루를 이루게 하였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醴泉郡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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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