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도청신도시 예천 2,381: 산몽데...(부, 예천군, 15일 경북의 2023년 건축디자인 분야 평가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박창석 예천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14일 인사혁신처의 제41회 공공HRD 콘테스트에서 인사처장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
===
선몽대 [記事] : 한국문집총간(281_009d)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실린 다산 정약용(丁若鏞)의 기사로, 그 내용은, “第一集詩文集第一卷○詩集/ 詩/ 家君登仙夢臺臺在醴泉治南十里。故左相鄭公琢別館也。/ 天樓閣枕高丘。杯酒登臨散客愁。山雨著花紅滴瀝。溪風入檜碧??。使臣冠蓋悲陳跡。七世祖監司公嘗奉使至此。有壁上詩。別有記文。丞相衣巾憶舊游。丹?無煙仙夢冷。水雲今古自悠悠。”이다.(www.minchu.or.kr 2006)
선몽대 [記事] : 한국문집총간(281_290a)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실린 다산 정약용(丁若鏞)의 기사로, 그 내용은, “仙夢臺記/ ...仙夢臺記 醴泉之東十餘里。得一川焉。泓渟而演?。紆餘而??。深者深靑。淺者淨綠。川邊皆明沙白石。風煙...”이다.(www.minchu.or.kr 2006)
선몽대 [記事] : 고전국역총서(1982 刊)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에 실린 다산 정약용(丁若鏞)의 기사로, 그 내용은, “다산시문집 제1권/ 시(詩)/ 부친을 모시고 선몽대에 올라[陪家君登仙夢臺] 대는 예천 고을 남쪽 10리 지점에 있는데 고 좌상 정공탁(鄭公琢)의 별관이다// 높은 언덕 자리잡아 허공에 솟은 누각 / 中天樓閣枕高丘/ 술 마시며 유람하니 객의 시름 사라지네 / 杯酒登臨散客愁/ 꽃잎에 닿은 산중 비 방울져서 떨어지고 / 山雨著花紅滴瀝/ 전나무에 든 시냇바람 우수수 들려온다 / 溪風入檜碧??/ 사신이라 관개는 낡은 자취 서글프고 7대조 감사공(監司公)께서 일찍이 사명을 받들고 이곳에 오셨는데 벽상의 시가 있고 별도로 기문(記文)이 있다. / 使臣冠蓋悲陳跡/ 승상이라 의건은 예전 놀이 상상되네 / 丞相衣巾憶舊游/ 단약 부엌 연기 없어 신선의 꿈 싸늘한데 / 丹?無煙仙夢冷/ 강물과 구름 고금이 절로 한가로워라 / 水雲今古自悠悠// [주D-001]승상 : 정탁(鄭琢)을 가리킨다.”이다.(www.minchu.or.kr 2006)
선몽대 [記事] : 고전국역총서(1982 刊)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에 실린 다산 정약용(丁若鏞)의 기사로, 그 내용은, “다산시문집 제13권/ 기(記)/ 선몽대기(仙夢臺記)/ 예천(醴泉)에서 동쪽으로 10여 리(里) 되는 곳에 가면 한 냇가에 닿는다. 그 시내는 넘실대며 구불구불 이어져 흐르는데, 깊은 곳은 매우 푸르고 낮은 곳은 맑은 파란색이었다. 시냇가는 모두 깨끗한 모래와 흰 돌로 되어 있었으며, 바람에 흩어지는 노을의 아름다운 모습이 사람의 눈에 비쳐 들어온다. 시냇물을 따라 몇 리쯤 되는 곳에 이르면, 높은 절벽이 깎아 세운 듯이 서 있는데, 다시 그 벼랑을 따라 올라가면 한 정자를 볼 수 있으며 그 정자에는 '선몽대(仙夢臺)'라는 방(榜)이 붙어 있다. 선몽대의 좌우에는 우거진 수풀과 긴 대나무가 있는데, 시냇물에 비치는 햇빛과 돌의 색이 숲 그늘에 가리어 보일락 말락 하니, 참으로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대개 태백산(太白山) 남쪽에서 시내와 산의 경치가 뛰어난 곳은 오로지 내성(柰城)영천(榮川)예천(醴泉)이 최고인데, 선몽대는 유독 그 기괴한 모양 때문에 여러 군에 이름이 났다. 하루는 아버지를 따라 약포(藥圃) 정 상국(鄭相國 명종(明宗) 때의 문신인 정탁(鄭琢))의 유상(遺像)을 배알(拜謁)하고, 길을 바꾸어 이 누대에 올랐다. 배회(徘徊)하며 바라보다가 이윽고 벽 위에 여러 시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중의 하나는 관찰사(觀察使)를 지내신 나의 선대 할아버지께서 일찍이 지으신 것이었다. 시판(詩板)이 깨어져 글자는 갈라지고 한쪽 구석이 떨어져 나가기도 했으나, 자구(字句)는 빠진 것이 없었다. 아버지께서 손으로 먼지를 털어내고 나에게 읽으라 하고서 말씀하시기를,/ "공(公)이 일찍이 영남(嶺南)에 관찰사로 내려왔을 때 이 누대에 오르신 것이다. 공이 지금부터 2백여 년 전에 사셨던 분인데 나와 네가 또 이 누대에 올라와서 즐기니, 어찌 기이한 일이 아니겠느냐."/ 하셨다. 그리고는 나에게 명하여 그 시판의 시를 옮겨 본떠서 공장(工匠)에게 번각(?刻)하고 다시 단청(丹靑)을 입혀 걸어놓게 하시고, 이윽고 나를 불러 기(記)를 쓰라고 하셨다.”이다.(www.minchu.or.kr 2006)
선몽대 [記事] : <퇴계선생문집고증[退溪先生文集攷證, 1891]>에 실린 작자 미상의 기사로, 그 내용은, “寄題仙夢臺。/ [臺在醴泉/ 郡/ 吳川南岸上。先生兄孫閱道所構。]註遇巖[卽仙夢臺所在/ 之/ 地。] ”이다.(www.koreastudy.or.kr 2006)
선몽대(仙夢臺; 虎鳴面 白松里 행소리) [記事] : 1. 집성촌(백송리 행소리마을)의 형성 배경 : 경북 예천군 호명면 백송리는 퇴계의 둘째 형(仲兄)인 예천훈도(醴泉訓導) 진성이씨 온혜종파 백송파 7세(世) 이하(李河) 공(公)이 처가 함양박씨 세거지인 용문 금당실에 우거(寓居)하다가 둘째 아들인 이굉(李宏 1515-1573)이 백송리로 입향하게 된다. 난산(卵山)에는 입향조인 8세 이굉과 9세 이열도의 묘가 있고 사두혈이라 한다. 백송마을은 연소형국(燕巢形局, 제비집)이다. 정조 4년(1780년) 예천군수인 아버지 정재원을 따라 다산 정약용이 형 약전과 함께 와 반학정(伴鶴亭)에서 공부하였는데 예천 관아 서편에 있었다고 한다. 뒷날 정약용은 젊은 시절 예천에서 공부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예천을 공자와 맹자의 고향처럼 유학이 성행한 곳이란 의미에서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 하였다.
정재원은 정약용과 함께 고평에 있는 정탁의 영정을 배알한 후 호명면 백송리의 선몽대에 올라 조상인 정사우의 낡은 현편을 다시 새겨 걸어 놓고 선몽대기를 남겼다.1)/ 2. 집성촌(세거지)의 풍수 :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는 지배층들이 경주나 개성 같은 수도에 모여 살았다. 고려 말 두문동 72현 이후에는 양반 지배층들은 읍치(도시)에서 떨어진 향촌에서 주로 거주하였다. 1650년 이전까지는 남녀균분상속이어서 친족 외척 척족들이 혼거하였고 외가나 처가동네로 이주해 가는 경우가 흔했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농토가 황폐화되면서 적장자(嫡長子) 위주로 상속법이 변화되면서 집성촌이 세거지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집성촌에는 유교문화경관인 종가 서당 서원 정자 불천위사당 재실 정려 등이 잔존하고 있다. 집성촌의 입지나 집터와 서원터를 잡는데 풍수이론이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어 풍수형국론과 입지선정과정, 입향 배경들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3.선몽대 : 백송리 내성천변에 선몽대(仙夢臺)는 퇴계 이황의 종손(從孫)이며 문하생인 우암 이열도(1538˜1591)공이 1563년 창건한 정자로 선몽대 대호 세 글자는 퇴계선생의 친필이다. 퇴계선생이 신선이 나오는 꿈을 꾼 후 지은 퇴계 친필 현판과 퇴계선생의 시에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한음 이덕형, 금계 황준량, 청음 김상헌, 다산 정약용 등의 차운(次韻) 친필시가 게액되어 있다. 특히 선몽대 위에 오르면 내성천 백사장의 평사십리가 한눈에 펼쳐지고 넓고 큰 내가 자랑하듯 울창한 노송이 들어서 여름에는 피서지로 봄, 가을, 겨울에는 산책코스로 좋다. 주변에는 여름철 피서지로 모래사장과 송림 등 경관이 아름다운 '서당마을'이 있다. [퇴계 친필 시] : 松老高臺揷翠虛 白沙靑壁?難如 吾今夜夜?仙夢 莫恨前時?賞疎/ (嘉靖 癸亥 陶山)/ 솔은 늙고 대는 높아서 푸른 하늘에 꽂힌 듯하고, 강변에 흰 모래와 푸른 벽은 그림 그리기보다 어렵구나./ 내가 지금 밤마다 선몽대에 기대니 전날에 가서 기리지 못하였음을 한탄하노라. / (藥圃,西涯,鶴峯,금계,漢陰,愚伏,淸陰,茶山의 次韻詩,1563년 건립)/ 엎드려 종조부 퇴계선생 시를 차운하다 / 선인의 끼친 법이 오래도록 빈데 돌아갔으나, 끼친 뜻이 아직 있으니 이어받는 뜻도 그러하도다. 두어칸 집과 기둥을 이제야 얻었으니 숨어 산 삶이 세정에만 소홀함이 아니었네. 작은 정자와 높은 시릉이 물 가운데 맑고 빈 것 같은데, 먼 개와 긴 내를 바라보면 뜻이 넓어지는 것 같다. 외로운 곡새와 떨어지는 나오리는 일만 형태를 드리니 늦은 바람 나는 비 또 뜸뜸이 나리네. 산에 비기고 물에 다다르니 층층한 봉우리가 공중에 솟았는데, 안개 끼인 문과 소나무 창문이 비단과 같도다. 오래 한가한 중을 짝하니 신선의 자리가 고요한 듯 가까이 오므로 특별히 세상 인연 먼 것을 깨닫겠네. /
◆ 예천군, 15일 경북의 2023년 건축디자인 분야 평가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
예천군 수상(예천군, 2023년 건축디자인 분야 평가 '최우수상') [기사] : 경북 예천군이 도가 주관하는 2023년 건축디자인 분야 평가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고 2023년 12월 15일 밝혔다. 예천군에 따르면 군은 이번 평가에서 소통과 협업을 위한 건축 인·허가 복합민원 협의부서 정보공유회 실시와 올해 7월 재해 이재민 임시주거시설 신속 설치 등 건축 행정 향상을 위해 노력한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특히 건축행정 부문 최우수 기관 표창과 함께 유공 공무원 표창 및 지난 여름 수해로 인한 재해복구에 헌신한 민간인이 표창을 받는 등 올해 건축행정은 민관이 함께 노력했음을 인정받았다. 권영익 예천군 건축과장은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층 더 분발해 군민과 함께 안전하고, 신뢰받는 건축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북도의 건축디자인 분야 평가는 건축법에 따라 건축행정 처리 실태, 공동주택 관리, 시·군 자체 노력 등의 지표로 경상북도 22개 시·군의 건축행정 전반에 대해 매년 평가하는 제도이다.(황재윤 기자 머니S. 2023. 12. 15.)
◆ 박창석 예천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14일 인사혁신처의 제41회 공공HRD 콘테스트에서 인사처장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
박창석(농업기술센터 박창석 팀장 인사혁신처장상 수상 : 교수학습 HRD 혁신 분야...) [기ᅟᅡᆺ] : 예천군농업기술센터 박창석 농촌지도사가 2023년 12월 14일 인사혁신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개최한 '제41회 공공HRD 콘테스트'에서 인사혁신처장상을 수상했다. '공공 HRD 콘테스트'는 전국 공무원 강의기법 대회로 효과적 교수학습기법 및 모범적 교육과정 개발을 목적으로 1983년 중앙교관연찬경연대회를 처음으로 시작됐다. 이번 대회에는 개인부문에 교수학습(전문직무, HRD혁신), 연구개발분야, 기관부문에 교육과정분야 총 3개 분야에서 전국 국가기관 59개 팀이 자웅을 겨뤘다. 박창석 농촌지도사는 HRD혁신분야에서 ‘대한민국 초유의 사태, 초유은행’이란 주제로 뛰어난 강의 기술과 공직 가치 교육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신규지도사들의 눈높이에 맞춰 공직혁신의 공감을 이끌어 눈길을 끌었다. 성백경 소장은 "이번 대회를 통해 교육 역량과 전문성을 크게 향상하는 계기가 됐고, 유능한 내부 강사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농업인 전문교육 효과를 높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김상국 기자 예천인터넷뉴스 2023-12-15)
본 공공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