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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2,382: 산몽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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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이열도, 자 정가, 호 우암, 진성인, 퇴계선생 종손(從孫)/ 謹次 退溪先生韻 / 主人能自卜淸虛 ?苑玄都此不如 夢罷幾回臺上臥 滿天明月看星疎 / 삼가 퇴계선생시를 차운하다 / 주인이 능히 스스로 맑고 빈 곳을 점쳤는데 낭원(郎苑)과 현도(玄都)가 이보다 못하도다/ 꿈을 깨고 몇 번이나 대(臺) 위에 누워서 하늘에 찬 달과 별을 보았을까/ -약포 정탁, 자 자정, 청주인, 퇴계문인, 시호 정간 / *낭원은 신선이 사는 곳이요, 현도는 옥경산에 있다. / 謹次仙夢臺韻 / 高臺登眺若憑虛 漁釣生涯我不如 花落半庭春事晩 碧簾松影蕭疎(西厓)/ 삼가 선몽대 시를 차운하다/ 높은 대(臺)에 올라보니 공중을 의지한 것 같구나 / 고기잡고 낚시질하는 것, 나는 그러하질 못하였네 / 꽃이 뜰에 떨어지니 봄이 이미 늦었는데 / 푸른 주렴 솔 그림자가 다시 소조(蕭條)하도다 / -서애 류성룡, 자 이현, 풍산인, 시호 문충, 퇴계문인 / 謹次仙夢臺韻 / 半畝松陰倒碧虛 玉壺今日興何如 憑君更聽儒仙句 便覺塵緣立地疏 / 퇴계선생의 仙夢臺 韻을 공경히 次韻하다.(鶴峯續集 제1권) / 넓다란 솔 그늘이 푸른 허공 가렸으니 술 마시는 오늘의 그 흥취가 어떠한가 / 그대 인해 유선儒仙의 시구 다시 들으니 속세 인연 그 자리서 멀어짐을 깨닫겠네. /-학봉 김성일, 자는 사순, 의성인, 시호 문충, 퇴계문인 /(國譯 鶴峯全集 2, 정선용 譯, 1999, 민족문화추진회) / 경건하게 선몽대 시를 차운하다 / 옥 같은 구름과 구슬 같은 달이 빈 대(臺)에 비치는데 / 유묵(遺墨)을 새로 새기니 그림 같구나 / 늘 이 대에 올라 신선의 꿈을 꾸고자 하니 / 주인이 나를 기다려 드리웠던 발을 걷는구나 / -한음 이덕형, 자 명보, 광주인, 시호 문익 / 경건히 선몽대 시를 차운하다(敬次仙夢臺韻)/ 모래가 희고 내가 맑아서 담담해 빈 것 같으니(沙白川明澹若虛)/ 옥 같은 산이요 구슬 같은 전원에 비교하는 곳이 어떨까(玉山瓊圃較何如)/ 신선의 땅이 하도 멀어 오기가 어렵다 하나(仙區萬里應難到)/ 이 정자에 오고감을 게을리 하지 말자(來往斯亭旦莫疎)/ -청음 김상헌 / 경건히 벽위에 있는 운을 차운하여 선몽대 주인에게 드리고 겸하여 자리 위에 있는 여러분에게 보이다. / 물 속에 있는 신선의 집과 같이 거울처럼 비치는데 주인의 마음마저 담박한 듯하네. / 이틀 동안 선몽대에 오르내리니 천척이나 높은 세상 티끌이 생각에 소원하도다 / 난정(蘭亭)의 옛 자취가 이미 허무하게 되었으니 좋은 일 이 때에 누구와 함께 할 것이냐 / 거북이와 학 같은 분들이 거듭 놀게 되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가을이 오매 서신을 보내는 것을 소흘하지 말진저 / -다산 정약용의 선조 정사우(丁士優)/
정재유 / 속인(俗人)이 이에 이르니 자연스레 마음이 허명하구나 / 신선을 꿈꾸는 마당에는 나래가 돋는 것 같도다 / 퇴계 선생이 먼저 시를 쓰고 우리 할아버지가 화답하였으니 / 예로부터 내려온 운치가 소흘하지 않았지요 / 정약용-선몽대기(記) / 예천에서 동쪽으로 10여리 가면 한 냇가에 닿는다. 그 시내는 넘실대며 구불구불 이어져 흐르는데 깊은 곳은 매우 푸르고 낮은 곳은 맑은 파란색이었다. 시냇가는 깨끗한 모래와 흰 돌로 되어 있어, 바람이 흩어지는 노을의 아름다운 모습이 사람의 눈에 비쳐 들어온다. 시냇물을 따라 몇 리쯤 되는 곳에 이르면, 높은 절벽이 깎아 세운 듯이 서 있는데 다시 그 벼랑을 올라가면 한 정자를 볼 수 있다. 그 정자에는 선몽대라는 방(榜)이 붙어 있다. / 선몽대의 좌우에는 우거진 수풀과 긴 대나무가 있는데, 시냇물에 비치는 햇빛과 돌의 색이 숲 그늘에 가리어 보일락 말락 하니 참으로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대개 태백산 남쪽에서 시내와 산의 경치가 뛰어난 곳은 오로지 내성, 영천(지금 영주), 예천이 최고인데 선몽대는 유독 그 기괴한 모양 때문에 여러 군에 이름이 났다. / 하루는 아버지를 따라 정상국(鄭相國, 정탁)의 유상(遺像)을 배알하고, 길을 바꾸어 이 누대에 올랐다. 배회하며 바라보다가 이윽고 벽 위에 여러 시가 잇는 것을 보았는데, 그 중에 하나는 관찰사를 지내신 나의 선대 할아버지께서 일찍이 지으신 것이었다. 시판(詩板)이 깨어져 글자가 갈라지고 한쪽 구석이 떨어져 나가기도 했으나, 字句는 빠진 것이 없었다. 아버지께서 손수 먼지를 떨어내시고 나에게 읽으라 하고서 말씀하시길, "공이 일찍이 영남에 관찰사로 내려 왔을 때 이 누대에 오르신 것이다. 공이 지금부터 200여 년 전에 사셨던 분인데 나와 네가 또 이 누대에 올라와서 즐기니, 어찌 기이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셨다./ 그러고는 나에게 명하여 그 시판의 시를 옮겨 본떠서 번각(飜刻)하고 다시 단청을 입혀 걸어 놓게 하시고, 이윽고 나를 불러 기(記)를 쓰라고 하셨다2). / 4.진성이씨 백송파 문중 / 1)진성이씨 백송파 입향조; 찰방공 이굉 / 8세 둘째 아들인 찰방공 이굉(李宏, 1515- 1573)은 퇴계 문인으로 퇴계 선생으로부터 편지 2통을 받았고, 1530년대에 금곡리로부터 처가인 백금리(행소리)로 이거(移居)하였다. 묘는 백송 난산(卵山)에 있고 구봉령 갈(碣)하고, 배(配)는 안동김씨 부장(部將)인 수량(遂良) 따님이다./ 이굉(李宏):1515년생. 完(기암)의 弟. 滉의 문인. 일찍이 詩文으로 알려짐. 察訪 역임. ▣참고:退溪門人錄 집필:이원걸/공람할 편지가 한 편이 있다. 官의 납초사納招事에 대하여 잘 밝히라는 이야기였다./
2) 9세 이열도(李閱道, 1538-1591)字 靜可 號 遇巖, 殯所골 侍墓(13세) 從祖父 퇴계 門下-2편의 퇴계 서찰이 있다. 조상의 추증을 알리고, 학문을 열심히 할 것과 항상 충(忠直),신(信義),겸(謙讓),근(勤愼)으로 조신(操身)하라고 가르쳤다. 퇴계가 손자대에서는(道자 항렬) 가장 훌륭한 인재로 촉망했다. 선몽대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편액과 제시를 써 주었다.(권오봉,1988, 예던길,160쪽) / 퇴계가 손자들 중에 가장 촉망을 두터이 한사람이며,忠信 謙謹의 상조훈常操訓을 끼쳤다. 선몽대를 쌓아 퇴계의 시를 얻었다.(권오봉,1996, 이퇴계의 실행유학,185쪽) / 1563년 仙夢臺 건립, 퇴계 친필 현판 시1수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금계 황준량, 한음 이덕형, 우복 정경세, 청음 김상헌, 茶山 정약용의 父 정재원, 절강성 주대승, 이동은 次韻詩,1576년 문과 급제,예조정랑,평안都事,경산현감/ 영양 牧使 남희석女 / 이열도(李閱道):1538(중종 33, 무술)˜1591(선조 24, 신묘). 본관 眞城. 자는 靜可. 호는 遇巖. 宏의 子. 1576년(선조 9) 문과 급제. 정랑을 역임. 은퇴후 仙夢臺에서 소요하며 지냄. 퇴계 친필시와 현판,鄭琢․柳成龍․黃俊良․金誠一,이덕형,김상헌,정재원 등의 題詠詩가 전함. ▣참고:國朝榜目 眞城李氏譜; 집필:김태안 / 白松里(백송리)는 흰 소나무가 있어 힌소리가 변하여 행소리 또는 백송(白松)이라고 함. / ◇ 역사적 인물 / 백송파 9세 이열도(李閱道) : 본관은 진보요, 자는 정가이며 찰방 굉의 아들이고, 퇴계 선생의 종손이다. 1576년 별시문과 2등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고 벼슬이 예조좌랑에 이르고 만년에 선몽대를 지어 놓고 자연의 절정을 마음껫 즐겼으며 명공과 거경(퇴계 이황, 서애 유성룡, 학봉 김성일, 약포 정탁, 한음 이덕형, 청음 김상헌, 다산 정약용)이 많이 노닐고 시를 읊었으며 호명의 백금리에 살았고 광지가 있다. 공의 이름은 열도에 자는 정가이니 그 선대의 세계와 관훈과 이력은 경의 종조부 문순공(퇴계선생)의 묘갈과 그 아버님 찰방공의 광지에 자세하였다. /
공이 1538년(중종33)년에 태어났고 남달리 영특하여 스스로 글을 읽을 줄 알았으며 열세 살에 어머니 안동김씨를 여의었어도 예법대로 집상하였고(빈소골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음) 자라서는 문순공 퇴계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1573년 가을에 아버지가 임지에서 별세하였다는 기별을 받고 달려가 시신을 받들고 모셔와 장사를 치루고 3년 여묘하고 복을 벗은 다음 1576년에 별시문과에 병과 제일인으로 급제하여 곧 승문원에 들고 정자 박사 감찰 예조좌랑을 역임하다가 오래지 아니하여 뜻에 맞지 아니하는 동료들의 시기로 은계도(강원도 회양군 화북면) 찰방으로 나갔고 임기를 마치자 고령현감으로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임하니 얼마 뒤에 평안도 도사로 임명되어 부임했으나 병으로 사양하고 돌아온 후 형조좌랑, 금산군수, 강원도 도사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다음해에 경산현감에 부임하여 정사가 매우 엄격하면서도 분명하니 아전이나 백성이 속이지 못하였고, 4년 후 사임하고 집에 돌아와 사벽이 소연하여 아무것도 없고 다만 책과 뜰에 핀 꽃뿐이더라. 공이 평소 잔병이 많더니 몸져 누운 지 반년 만에 의약의 효험도 없이 1591년(선조 24)에 춘추 54세로 작고하였다. / 집성촌이며 오랜 세거지 마을들의 입향조 묘소를 안내간판과 답사경로를 발굴하여야 한다. 대지재사-호명면 본리 약포묘소-백송마을 선몽대 난산-원곡리 안질 연복군 묘-사곡리 무릉정-지보면 익장 정묘를 연결하여 입향조 묘소를 연계한다면 풍부한 내용이 있고 관광자원이 있는 풍수인물기행도 가능하다. / 솔경지 쑤-십승지인 금당실 쑤, 대수의 향나무-석송령-선몽대 송림 등의 비보 숲인 마을숲을 보존하여 휴식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 선몽대는 퇴계 선생이 촉망하던 從孫종손이자 문인인 우암공이 건립하고 퇴계 선생이 편액과 시를 써 주었다. 선생의 시를 차운하여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금계 황준량, 한음 이덕형, 우복 정경세, 청음 김상헌, 다산 정약용 등 諸公제공들이 친필시를 남긴 이름난 누각이다. 퇴계학파의 핵심 학자들이 이렇게 망라하여 선생의 시에 차운한 현판이 걸린 정자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누마루에서 보는 내성천의 유장한 흐름, 십리백사장과 송림(잘 생긴 노송 숲)은 장대한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 문화역사 인물사적 측면에서 퇴계학맥을 한말까지 이어간 수제자인 서애와 학봉, 임진왜란을 극복한 공이 큰 약포 정탁, 한음 이덕형, 서애 수제자이며 임란의병장이었던 우복 정경세, 실학을 완성했던 다산 정약용 등 전국 어느 누각에도 뒤지지 않는다. / 전국 최고의 밝은 모래 백사장 과 맑은 내성천 물과 솔숲도 또한 그러하다. / 仙夢臺(선몽대)- 최윤상; 풍수학인의 시각 /
선몽대는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물위에 살포시 떠오른 芙蓉[부용]과 같았다 / 옛 문인들이라면 틀림없이 거문고를 키면서 시 한 수를 읊었을 것이다. 선몽대는 당시에 저명한 인사들이 많이 모여 시를 지어 읊으며 선몽대의 창건을 축하해주었으므로 옛 선조들의 정신이 남아있으며 선몽대 앞은 동서로 흐르는 내성천 모래밭 明沙十里를 한눈으로 볼 수 있고 정자주변에 천년을 자랑하는 울창한 노송이 있으며 주변에는 빼어난 경관과 더불어 서당마을과 조선중기 건축사의 귀중한 자료인 연안 이씨 별좌 종택 약포 정탁 선생의 유물을 보존하고 있는 정충사가 있음인지 기대하는 바가 매우 컸다 / 이름만 들어도 아름다운 모습이 그려지는 이곳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옛 문인들은 지금 모두 어디로 가셨을까 永生不死(영생불사)하는 신선들이 모여 산다는 초월계나 선계로 가셨을까 다가오는 산맥들이 작으면서 아담한 산봉우리들을 이루었는데 바라보는 필자의 마음을 답례라도 하듯이 그 봉우리들은 아름다운 꽃잎으로 수를 놓은 것처럼 반겨주는 모습이었다. 흐르는 저 물결은 장마철임에도 불구하고 물과 산봉우리들이 어우러져 이곳을 찾는 많은 분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멈춘 것처럼 보였다. 흐르는 물줄기를 그대로 보내기에는 아쉬워서인지 군데군데 水中에 돌이나 흙이 점차 퇴적하여 쌓여진 羅星(나성)들을 바라 볼 수 있었다. 선몽대는 마치 흐르는 물이 구불구불 강줄기를 감싸주고 있는 저 편에 모래사장이 있어 하늘을 날던 기러기들이 마치 먹이를 찾아 모래사장에 앉거나 물 속으로 들어가는 형상이었다. / 혈의 이름은 平沙落雁形(평사낙안형) 平沙下雁形(평사하안형) 飛雁投水形(비안투수형) 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일행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선몽대에 도착했다. /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문은 닫혀 있고 우리 일행은 오는 길에 땀을 흘려서인지 지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이한방 교수님은 눈에 안보이시고 문은 안 열리고...아닙니다. 안에 들어가시면 경관이 아주 좋습니다. 이순자 부회장님의 말씀으로 잠시 기다리게 되었다 이윽고 이한방 교수님께서 열쇠를 가져오셨다 / 선몽대란 이름 그대로 퇴계 선생이 집에서 현몽을 하고 지은 이름이라고 전한다 / 아름다운 내성천이 앞에서 유유히 흐르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선몽대는 퇴계 이황 선생 종손이며 문하생인 우암 이열도가 1563년 26세에 창건한 정자로서 그 당시 63세였던 퇴계 선생은 아름다운 선몽대를 축하 하기 위해 선몽대란 세 글자를 써주시고 시와 서문을 써주셨다. 약포 정탁 서애 유성룡 학봉 김성일 금계 황준량 한음 이덕형 우복 정경세 청음 김상헌 등의 친필로 쓴 글이 전하여 오는 모습에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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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