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제목예천2,383:선몽대...
작성자이춘우 @ 2023.12.18 06:09:36

  도청신도시 예천 2,383: 산몽데...

===

 

  특이한 것은 그런 글들이 천장에 놓여있었다. 옛사람들은 천장을 또 하나의 하늘로서 여기었다 무덤에서도 천장에 하늘을 상징하는 것들로 죽은 자를 위한 소우주로 꾸미듯이 / 필자의 생각이지만 서양의 대표적인 반구형 천장인 Dome돔은 라틴어로 Domus Dei(신의집)에서 유래 한 것처럼 친필의 글들이 천장에 있어서 보기에는 불편했지만 우리조상들은 복을 관장하는 가신이나 흉한 것을 부르는 악귀도 천장에 머문다고 믿어 천장에 부적을 붙여 액을 막고 복을 빌었다. 글이 천장에 있는 것은 그분들의 뜻을 기리기 위함인 것 같다./ 우암 이열도 선생은 퇴계 이황의 제자로서 1576년 39세에 별시 문과에 응시해 병과로 급제하였다. 예조 좌랑 평안도 도사 경산 현감 역임을 마지막으로 여러 차례 조정에 불리어 졌으나 관직에 오르지 않고 선몽대를 세우고 여생을 바친 역사의 유서가 담겨있는 생생한 현장에 우리일행은 배고픔을 뒤로하고 잠시 이한방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무더운 여름철 가 볼만한 계곡이나 명승지를 보면 매일같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저잣거리보다 시끌 복잡한 경우가 많은데 이곳의 어르신들은 아름다운 기운이 하염없이 밀려와 온몸을 감아 주는 듯한 훌륭한 전망대인 선몽대를 보호하기 위해서 현재뿐만 아니라 먼 미래의 후손들도 오래도록 두고두고 바라볼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출입을 통제하는 듯하다. / 겨울에는 추위가 끝없이 이어질 것처럼 보이지만 봄은 찾아올 수밖에 없고 여름에는 더위가 끝없이 이어질 것처럼 기승을 부리지만 처서를 넘기는 모습을 바라보며 /

 

  선몽대에서 내다보는 저 물줄기는 가을이 멀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하여 주고 있으니 무더웠던 여름도 이제 끝나가는 모양이다 / 蛇頭穴-최윤상; 풍수학인의 시각 / 우리 일행은 선몽대에서의 점심식사를 마치고 이한방 교수님의 案內에 맞추어 사두혈이 있는 장소로 이동하게 되었으므로 우암 이열도 선생의 後孫들이 살고 있는 탐랑체의 산이 아름다운 매의 봉우리처럼 보이는 백송리 마을을 지나 사두혈이 있는 우암 선생묘를 踏査하게 되었다 선생의 묘 앞에서 산의 모습은 마치 뱀 한 마리가 머리를 앞세우고 무엇인가 먹이를 찾아 기어오는 形局이었다 오르는 길에 물을 보니 왼쪽의 논에서 우측으로 물은 산을 감싸주면서 흐르는 모습이고 산밑에 바위 두 개가 박혀 있다기보다 놓여있는 모습으로 보였고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산을 오르는 곳이 경사졌는데 아래의 모습은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 밑에 있는 바위를 바라보면서 설명을 붙인다면 生蛇取蛙形이나 長蛇逐蛙形으로 보아야하는데 마치 살아있는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는 形象과 큰 뱀이 개구리를 쫓는 형상이다 산 밑에는 개구리 모습을 닮지는 않았으나 바위 두 개가 좀 큰 것과 그보다 작은 것이 놓여 있었으며 案山은 마치 구렁이가 담을 넘어가듯 담장을 친 것처럼 보이는 모습으로 보였다. / 사두혈은 뱀 머리가 삼각형처럼 보이는 모습이 먹이를 찾아 내려오며 이럴 경우 모든 氣運은 머리에 集中되므로 보통 혈은 머리에 해당되는 곳에 결지 한다 이곳은 砂格이나 案山이 사두혈로서 부족함이 없어 보였지만 뱀이 갇혀있는 기분이었다. 경계해야할 점은 머리 부분에 혈이 있다 보니 突穴이 많은데 돌혈을 만들기 위해서는 起伏 變化를 해야하며 제일 중요한 結咽束氣處가 확실하며 過峽處가 짧아야한다 過峽하면서 우뚝 솟아오르는 龍脈은 纏護(전호)環抱(환포)藏風(장풍)이제대로 이루어지는 곳에 결혈이 되고 더불어 行龍하고 山勢가 서로 有情하게 朝應해주면서 앞에 있는 案山과 朝山들이 應接해 주어야 한다. 突穴은 주변산들에 비해 지나치게 높아서도 안되며 주변산보다 너무 높으면 바람을 맞을 수가 있다 다음에 혈장을 살펴 볼 때에 달무리나 해무리 모양의 둥글게 보이는 穴暈을 살펴 가까이서 살펴보고 좀 떨어져서도 살펴보아 자세히 보아야하며 혈운 역시 음과 양의 配合이 되어야 하므로 살포시 突하였으면 부드럽게 陷이있어야 하는데 마치 선익이 뚜렷이 보여 바람을 막아주고 혈장 앞은 아름다운 여인이 옷고름을 여미는 듯한 아름다운 자태의 순전이 있어야 제대로 된 上分下合 작용이라 할 수 있다 過峽處를 살펴본 결과 버스를 세워놓고 용의 모습을 본것과는 다르게 힘은 있어 보이나 너무 길어서 기가 많이 설기된 느낌이었지만 過峽處에서 入首倒頭 까지 올라오는 힘은 대단한 氣勢였다 하지만 혈장이 매우 넓지는 못한데도 봉분이 3기가 있었다

 

  제일 위에는 찰방 진성 이공지묘 가운데는 이열도 선생 어머니 묘가 있었고 그밑에 아버지묘가 있었다. 문제는 入首倒頭 에서 선익을 하여 거두어주는 용의 穴場으로 바라보건데 우암 선생묘도 蟬翼과 脣氈에 맞게 지금자리 에서 조금 내려쓰면 아주 좋은 묘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며 그 脣氈의 여기가 어머니묘소로 조금 흘러갔지만 穴場이 狹小하고 아버지 묘에는 生氣가 느껴지지 않았다 地勢로 보아서는 혈은 산이 높으면 높은 곳에 주변의 산이 낮으면 낮은 곳에 써야 되는데 우암 이열도 선생묘가 아쉽지만 그래도 안정적이었다. 입수도두한 용의 힘은 左旋 龍이었고 물은 右水倒左였다 巽坐乾向에 自生向이며 辛戌破였다 건지산이 향의 녹방에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필자의 느낌이지만 혈장이 좁은데 3기의 묘를 쓴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앞쪽에 멀리 떨어진 안산으로 보아 마치 구렁이가 담을 넘어가듯이 약간 기운 듯한 모습이었으나 명당이 협소하며 용맥의 힘으로 보아서 능력은 있으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환경이 뒷받침이 안됨이 느껴진다. 박사가 많이 나온 것은 사두혈보다는 백송마을의 우뚝 솟은 문필봉이 매봉처럼 보이는 산의 정기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사두혈의 명당이 좁아서 큰 꿈을 실현하기는 어려워 보였고 마치 배가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고 하지만 넓고 넓은 바다에서 거친 파도와 싸워 이기는 어부만이 만선의 기쁨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안산이 멀리 떨어져 있어 하루가 끝나기 전에 천리를 달려 보겠다는 야망으로 해보겠다는 마음을 굳게 세웠으면 빠른 준마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며 훌륭한 선생에게 묻지 않으면 어려울 것처럼 보인다. 그토록 학인들이 많았던 것도 그런 이유인 듯 하고 마치 구름을 헤치고 햇빛이 비추면 만물은 그 모습을 감출 수가 없으며 지혜를 살려 지난 일을 회고해 본다면 천지 실상에 모습을 모를 리 없듯이 문필봉이 우뚝 솟은 백송리 마을의 덕택으로 학덕이 높으신 분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두혈 주변에 명당이 넓었더라면 하는 희망 어린 필자의 아쉬운 소감이 있었다 / 5. 입향조의 묘지경관 / 호명면 백송리 난산(卵山)에는 백송마을 진성 이씨 입향조인 이굉과 이열도의 묘가 있다. 역장으로 이열도의 묘소가 뒤쪽에 있고, 사두혈(巳頭穴)이나 노서하전(老鼠下田)형이라 한다. 묘 오른쪽 도랑에 개구리 바위가 있어 비보풍수의 일종이다. /

 

  참고문헌 / 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 2004, 예천 금당실 맛질마을: 정감록이 꼽은 길지, 예문서원 / 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 2005, 터를 안고 仁을 펴다: 퇴계가 굽어보는 하계마을,예문서원 / 국학진흥연구사업추진위원회, 2002, 예천 맛질 박씨가 일기 1.일용 편(日用) 2.일기 편,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권문해 저, 남명학연구소경상 한문학연구회 역, 2003, 대동운부군옥 1-10, 소명출판 / 권오봉, 1988, 예던 길-퇴계선생의 생활실사, 우신출판사 / 권오봉, 1996, 이퇴계의 실행 유학, 학사원 / 조동윤, 《길 따라 사람 따라 예천기행》, 역사만들기, 2003, pp.128˜129. / 최원석, <영남 지방의 裨補>, 고려대학교 지리교육과 박사학위 논문. 2001 / 국민대학교 국사학과,2003, <<우리 역사문화의 갈래를 찾아서 안동문화권>>, 역사공간 / 권기모, 1999, <<정겨운 예천산하>>, 예당 / 권상로, 1994, <<한국지명연혁사전>., 이화문화출판사(1961, 韓國地名沿革考, 동국문화사). / 김학범장동수, 1994, <<마을숲>>, 悅話堂 / 서주석, 2000, 안동문화산책, 이화문화사 / 송지향, 1983, 안동향토지 상하, 대성문화사 / 안동대학교 민속문화연구소, 안동양반의 생활문화, 안동대 민속학연구소 / 안동대학 안동문화연구소, 1988, 경북북부지방의 전통문화, 경상북도 / 안병직·이영훈, 2001, 맛질의 농민들-한국 근세 촌락생활사-, 일조각 (일기형 가계출납부) / 이완규, 2001, 안동풍수기행: 돌혈의 땅과 인물, 예문서원 / 이완규, 2001, 안동풍수기행: 와혈의 땅과 인물, 예문서원 / 최원석, 2000, 도선국사 따라 걷는 우리 땅 풍수기행, 시공사 / 최원석, 2001a, 영남 지방의 裨補, 고려대학교 지리교육과 박사학위 논문. / 최창조, 1997, 한국의 자생풍수, 민음사 / 황위주, 2000, 󰡒예천지역의 퇴계학파󰡓, 한국의 철학 28호, 113-148,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 경북마을지 하권, 1992, 경상북도경북향토사연구협의회 / 경상북도지명유래총람, 1984, 경상북도교육위원회 / <<내고장 전통가꾸기>>, 1981, 예천군 / <<내고장 예천>>, 1984, 예천군 / 예천군지편찬위원회, <<예천군지>>, 1988, 예천군 / 예천향토문화연구회, <<예천의 숨결>>, 1991, 예천군 / 예천향토문화연구회, <<예천촌락사>>, 1992, 예천군 / 예천향토문화연구회, 1994, <<國譯 襄陽誌(1661)>> / 예천문화원, 1995, <<예천문화 제8집>> / 장병창 편저, 2002, <<예천 대사전 제10권>> / 예천군 기획감사실, 2001, <<사진으로 보는 예천 50년사>> /진성이씨온혜종파세보, 1981, 회상사 / 이동수, 1986, 국역 진성이씨 白松派先世文蹟 / 진성이씨 백송파 종중, 1994, 仙夢臺略誌 / 仙夢臺誌 上下 /

 

  ---1) 조동윤, 《길 따라 사람 따라 예천기행》, 역사만들기, 2003, pp.128˜129./ 2) 조동윤, 앞의 책, pp. 117-130./ 다산이 19살에 예천군수인 아버지 정재원을 찾아 와 책방도령으로 공부하며 고평의 정탁 영정을 배알한 후 선몽대에 올라 기문을 작성하였다. 뒷날 다산은 예천을 추로지향이라 지칭하였다. 200년 전의 선조가 시를 써 놓은 곳을 아버지와 함께 다시 올라 기문을 쓰는 감회는 남달랐으리라!(이한방 예천군청 홈페이지 예천사랑운동참여 2006-03-27 오후 5:32:27 37)

 

  선몽대(仙夢臺) [記事] : 예천 출신인 이명식(大昌高 2)의 호명면 백송리 소재의 정자에 대한 기사로, 대창중고등학교에서 1973년에 발행한 <송대(松臺)> 2호 142-142쪽(1쪽 분량)에 수록되어 있다.

 

  선몽대(詩와 함께 떠나는 醴泉 紀行 4 : 仙夢臺) [記事] : 감천면 증거리 출신인 조동윤(趙東潤, 醴泉郡廳 勤務)의 호명면 백송리 소재 선몽대에 대한 기사로, 예천문학회(會長 金敎容)에서 2001년에 발행한 <예천문학(醴泉文學)> 24호 가을호 130-139쪽(10쪽 분량)에 수록되어 있다.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페이지만족도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성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