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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2390:선몽대...
작성자이춘우 @ 2023.12.25 06:03:19

  도청신도시 예천 2,390 : 산몽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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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몽대(仙夢臺) : <김영진 시인>| 예천신문 | 2010.03.31. 17:34/ 선몽대(仙夢臺)/ <시와 함께 하는 경북북부문화 나들이*김영진 시인>/ 산이 높다 한들/ 물이 깊다 한들/ 어찌 신선의 마음일 수 있으랴.// 예천군 호명면 백송리 내선천 남쪽/ 우암산 기슭에 자리잡은 선몽대는/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우면/ 신선들이 꿈꾸는 정자라 이름했을까.// 조선조가 낳은 대석학/ 퇴계 선생의 종손 이열도(李閱道) 선생이/ 글을 읽고 시문을 지으며/ 영남의 거유(巨儒)들과 더불어/ 풍류를 즐기던 다락/ 현판의 글씨도 퇴계 선생이 썼다.// 눈 아래로는 굽이쳐 흐르는/ 내성천 물결과 모래밭이 펼쳐져 있고/ 우암산 바위가 병풍으로 둘러쳤으니/ 선경이 바로 예 아닌가.// 이 정자에 올라/ 글솜씨를 다투어 뽐내던/ 서애, 약포, 청음, 학봉 등/ 당대의 정치가요 학자요/ 명문장들이 지은 친필 시와 글들이/ <제영록(題詠錄)>과 <심유록(尋遊錄)>에 실려/ 그날의 정취를 전하고 있다.// 나도 지필묵을 들고/ 봉선대에 오르면 신선이 되어/ 철철 넘치는 시가 써질까.// 시작노트 : 퇴계의 도산서원이 있는 안동과 이웃한 예천은 영남 학풍과 선비 정신이 곳곳이 유적으로 서려 있는 곳이다. 그 가운데서도 선몽대는 퇴계 선생의 묵향이 샘솟는 정자이며, 우암 이열도가 학의 둥지를 틀고 당대의 높은 선비들을 불러들인 유서 깊은 곳이다. 1924년에 불이 나서 이열도의 유고와 장서들이 소실되어 문화유산을 잃었으나, 다행하게도 명인들의 시문이 <제영록>, <심유록> 두 권에 전해지고 있다.(daum 2010)

 

  선몽대(茶山 鄭若鏞 先生도 찾아 옛 先人들 발자취 되새겨 : 文化解說士와 함께하는 慶北의 再發見 - 48. 醴泉 虎鳴面 '仙夢臺' 一圓) [記事] : 예천군 호명면 소재지에서 서북쪽으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백송이라 하는 마을이 있다. 마을 앞에는 백송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된 전통적인 마을숲(방풍림)과 선몽대라는 아름다운 정자가 있다. 선몽대 일대는 기러기가 내성천에서 먹이를 먹고 백사장에서 한가로이 쉬는 모습이라 하여 풍수상 평사낙안형(平沙落雁形)의 명당이라 전해지는 곳이다.

 

  내성천이 예천에서 안동 방향으로 흐르며 십리에 걸쳐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경관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백송마을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퇴계 이황의 종손(從孫)이며 문하생이었던 우암(遇岩) 이열도(李閱道:1538~1581)와 연관된 곳으로 예천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뛰어난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예천군청 이재완 학예연구사와 예천 호명면에 자리잡고 있는 선몽대 일원(국가지정 명승 제19호)에 대해 알아본다. 백송마을은 진성이씨의 집성촌으로 이굉(李宏)이 개척했다. 이굉은 퇴계 이황의 둘째 형인 이하(李河:1482~1544)의 아들이다. 이하는 함양박씨 심의 딸을 아내로 맞아 예천에 옮겨 살았고, 노후에는 예천 고을의 훈도(訓導:당시 고을의 풍속을 관장하는 일)를 지낸 인물이다. 그는 세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 완(完)은 첨추(僉樞:당상관의 무관 벼슬)를 지냈고, 둘째 굉(宏)은 찰방(察訪:역참(驛站)을 관리하던 종6품)의 벼슬을 했다. 따라서 이굉이 백송마을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선친인 이하가 예천의 함양박씨와 혼례를 올렸던 것에 유래한다. 백송이란, 이굉(李宏)이 마을을 개척할 때 흰 소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따온 이름이다. 지금도 그 흰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던 선몽대(仙夢臺) 뒤쪽을 백송터라고 한다. 백송마을은 이굉의 둘째 아들 이열도(李閱道, 1538~1591)에 의해 더욱 명가로써 빛을 발했다. 이열도는 이황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있어 일찍이 별시문과에 급제한 인물로 당대의 명필가로 평가받았다. 이열도는 고령현감 시절 고을을 잘 다스려 고을을 떠날 때 주민들이 고마움의 뜻으로 선정비를 남기기도 하는 등 항상 청렴한 삶을 살고자 했던 인물로 유명하다. 우암 이열도는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 예천 백송으로 돌아왔으며, 백송마을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1563년에 선몽대를 창건했다. 이때 퇴계 이황은 이곳을 방문해 '선몽대'라는 현판 석 자와 한 구절의 시를 친필로 써 주었다. 백송리에 위치한 선몽대(仙夢臺)는 꿈에서 신선이 노닐던 정자라는 뜻에서 따온 이름이다. 당시 퇴계 선생이 선몽대 건립을 기념하는 시가 전해지고 있다. "노송은 높이 솟았고 푸른 산에 우뚝하구나/ 흰 모래와 푸른 벽은 구름으로도 표현하기 어렵도다/ 나는 이제 밤마다 신선의 꿈을 꿀 것이니/ 한탄하지 마라, 진작 경치 구경하지 않았는지를"/ 더구나 우암은 퇴계 문하에서 당대의 석학들과 수학했고, 조정에 진출해 오랫동안 벼슬살이를 했던 인물이기에, 정자에도 그와 교류한 인물들의 친필시가 여러 곳에 남겨져 있다. 이에 선몽대에는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청음 김상헌, 한음 이덕형 등의 친필시가 걸려 있으며, 다산 정약용은 아버지를 따라 이곳에 들러 옛 선인들의 발자취를 되새겼다고 했을 정도로 역사적 의미 또한 큰 곳이다. 선몽대라는 건축물은 마을 동쪽 우암산(遇岩山) 북서쪽 벼랑위에 내성천을 바라보며,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세워진 정자이다. 전면 기둥의 하부에는 하층주를 세워 누마루를 이루게 했다. 하지만 이 건물은 1623년에 큰 비로 무너져 1671년에 중건하는 등 이후 몇 차례의 보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잘 생긴 노송·아름다운 백사장… 전통적 '산수미' 돋보여/ 이재완 예천군청 학예연구사/ 선몽대 숲은 백송리 마을을 보호하기 위하여 조성된 전통적인 방풍림이라 할 수 있죠. 이곳은 300~400여년 수령의 소나무 노거수와 은행나무, 버드나무, 향나무 등이 함께 자라고 있는데, 홍수나 바람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수해방비림, 방풍림, 수구막이 숲이자 풍수상 단점을 보완하는 비보림의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현재 이 숲은 잘 생긴 노송들이 멋진 자태를 뽐내며 주위환경과 조화롭게 빼어난 경관을 자아내고 있으며 인근에는 백련이 피는 연못도 있어 여름철 관광객들이 풍광을 즐기기 위해 찾는 휴양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곳은 선몽대와 선몽대 숲 그리고 그 앞을 흐르는 내성천과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 어우러져 한국의 전통적인 산수미를 보여주는 예천의 대표적 경승지 중 하나랍니다. 물과 산이 빚어내는 산수미가 돋보이는 경승지 선몽대에 오르면 내성천 백사장의 평사십리가 한눈에 펼쳐지고 울창한 노송이 들어서 있어 여름에는 피서지로 봄 · 가을 · 겨울에는 산책로도 일품이랍니다. 이러한 가치로 인해 국가에서는 명승 제19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답니다. 현재 선몽대는 옛 선현들이 풍류를 읊던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으로, 선인들의 유교적 전통공간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큰 곳이랍니다.(장석원 記者 慶北日報 2010-11-26)

 

  선몽대 : 예천하면 떠오르는 것/ 2011.10.04/ 예천 용문사, 선몽대, 회룡포, 삼강주막 등이 있답니다. 삼강주막 회룡포/ 지식Q&A | 답변 3ㆍ조회 946(daum 2014)

 

  선몽대 : 경북 예천의 명소?/ 2008.12.20/ 수변공원 금당실전통마을, 두메산장, 문곡포밀레펜션, 미호천유원지, 삼강주막, 석송령, 선몽대, 예천권씨종가별당, 예천온천, 용궁산택연못, 정충사, 초간정, 학가산우래자연휴양림.../ 지식Q&A | 답변 3ㆍ조회 2,197ㆍ추천 1(daum 2014)

 

  선몽대 : [자연유산 보호· 활용 기반조성]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정부답변/ 2013.10.17/ 명승 제19호 예천 선몽대 일원 255,253㎡ 2006.11.16. 정자, 마을숲문화경관 역사문화명승 18 명승.../ 지식Q&A | 답변 1ㆍ조회 250(daum 2014)

 

  선몽대 : 국내여행../ 2014.02.08/ 흘러 낙동강과 만난다. 강폭이 넓고 하얀 모래밭을 강변에 끼고 있다. 호명면 백송리 선몽대는 퇴계 이황의 종손 이열도가 1563년 세운 정자. 화재로 소실된 뒤 1968년.../ 지식Q&A | 답변 2ㆍ조회 2,160(daum 2014)

 

  선몽대 : 오지마을이나 쉴 만한 곳/ 2013.02.25/ 흘러 낙동강과 만난다. 강폭이 넓고 하얀 모래밭을 강변에 끼고 있다. 호명면 백송리 선몽대는 퇴계 이황의 종손 이열도가 1563년 세운 정자. 화재로 소실된 뒤 1968년.../ 지식Q&A | 답변 3ㆍ조회 16,633ㆍ추천 53(daum 2014)

 

  선몽대 : 오지여행/ 2011.06.15/ 흘러 낙동강과 만난다. 강폭이 넓고 하얀 모래밭을 강변에 끼고 있다. 호명면 백송리 선몽대는 퇴계 이황의 종손 이열도가 1563년 세운 정자. 화재로 소실된 뒤 1968년.../ 지식Q&A | 답변 4ㆍ조회 20,064ㆍ추천 14(daum 2014)

 

  선몽대 : 오지여행은 어디가 좋은가여/ 2012.05.24/ 흘러 낙동강과 만난다. 강폭이 넓고 하얀 모래밭을 강변에 끼고 있다. 호명면 백송리 선몽대는 퇴계 이황의 종손 이열도가 1563년 세운 정자. 화재로 소실된 뒤 1968년.../ 지식Q&A | 답변 1ㆍ조회 2,054(daum 2014)

 

  선몽대 : 순정차량으로 갈 수 있는 오지에 대한 정보는??/ 2011.02.04/ 흘러 낙동강과 만난다. 강폭이 넓고 하얀 모래밭을 강변에 끼고 있다. 호명면 백송리 선몽대는 퇴계 이황의 종손 이열도가 1563년 세운 정자. 화재로 소실된 뒤 1968년.../ 지식Q&A | 답변 1ㆍ조회 2,549(dau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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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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