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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2403:선몽대일원...(축,예천박물관)
작성자이춘우 @ 2024.01.09 06:06:20

  도청신도시 예천 2,403 :.선몽대 일원...(부, 예천박물관 소장유물 2건(입학도설, 맹자언해), 21일 경북유형문화재로 지정됨...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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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선비들이 사랑했던 선몽대 동천景과 힐링 세계 : 선대동천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곳이다. 빼어난 경치와 퇴계 이황이 명명한 ‘선몽대’라는 대 이름[臺號], 그리고 동주(洞主)였던 우암 이열도의 대쪽 같은 선비정신이 그곳을 이 땅 안의 둘도 없는 명소로 만들었다.『택리지』에, ‘산수는 정신을 즐겁게 하고 감정을 화창하게 만든다. 촌스럽지 않으려면 10리 밖, 혹은 반나절쯤 되는 거리에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 있어서 생각날 때마다 그곳에 가서 시름을 풀거나, 혹은 유숙한 다음 돌아오는 것이 좋다’는 내용이 나온다. 요즘으로 치자면 산수의 환경심리적인 힐링 효과를 언급한 말이다. 유가(儒家)의 산수관은 그 같은 힐링 차원 외에도 두 가지가 더 있다. 하나는 산수를 성정 도야를 위한 교과서[텍스트]로 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아예 자신이 깃들어 경영하고 있는 산수를 신선이 사는 도교적 이상향[동천, 이화촌, 도화촌 등]으로 상징화해 버리는 것이다.

 

  선몽대가 명소인 진짜 이유는 이들 산수관을 한 곳에서 모두 맛보게 해준다는 데 있다. 먼저 선몽대 산수경(山水景)의 교과서[텍스트]적 특성부터 알아보자. 선몽대는 내성천 물길이 와서 부딪치는 우암산 북쪽 끝자락의 바위 절벽[하식애]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일종의 산수 접합점이다. 초짜풍수 같으면 바람길에다 강물까지 치고 들어오는 그런 장소를 ‘좋은 터’로 볼 리 만무하다. 그러나 유가의 산수관은 풍수적 산수관 너머에 있다. 『논어』 「옹야」 편에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 지자동 인자정(知者動 仁者靜) 지자락 인자수(知者樂 仁者壽)’라는 말이 나온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며, 물은 활발하고 즐거우며, 산은 고요하고 변함이 없다는 내용이다. 『맹자』 「진심 상」에 나오는 ‘필관기란(必觀其瀾)’은 ‘물을 알기 위해서는 물결을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이때 유가에서 말하는 산수는 곧 도(道:깨달음)다. 도의 근원은 산처럼 변함없이 고요하지만 도(道)로부터 발현되는 실상은 물처럼 활발하고 자유롭다. 이 땅 안의 유교 서원과 정자들이 대부분 물가에 위치한 것은 바로 그런 도의 현현(顯現)을 보기 위함이었다. 선비들은 그런 곳에 별서[별장]를 짓고 그곳과 세속[주거마을]을 오가며, 자연을 통하여 이치를 깨닫는 격물치지에 열중하기도 하고, 또 자연과 인간의 합일 또는 일체화를 위한 실천적 수양에 힘을 쏟았다. 선몽대 숲에 있는 우암선생유적비에 ‘배암임류(背巖臨流)’라는 말이 나온다. ‘배산임수’가 풍수적인 용어라면, ‘배암임류’는 도교풍에 가까운 개념이다. 1983년에 정(丁) 모 교육학박사가 찬(撰)한 글인데, 과연 그 상징적인 의미를 알고 썼는지 자못 궁금하다. 옛 선비들은 학식이 깊어지고 은퇴할 나이가 되면 유자의 차원을 넘은 신선의 경지를 넘봤다. 수련을 거쳐 비록 천선(天仙)이 되는 상자(上者)는 될 수 없을지언정 땅 위의 36동천과 72복지에 사는 중자(中者)의 지선 정도는 돼야한다는 꿈을 가졌다. 그로써 ‘요산요수’의 유교적 인 산수경은 지선[땅 위의 신선]이 사는 ‘산하호대’의 도가적인 동천경으로 탈바꿈한다. 우암의 선몽대 동천도 그런 맥락 하에서 생겨났다. 선대동천의 입구는 삼봉산과 우암산 사이에 놓인 넓은 골짜기다. 백송리 마을로 볼 때는 명당수가 빠져 나가는 수구(水口)에 해당한다. 이 입구에 인공숲이 조성돼 있고, 그 속에 ‘선대동천’과 ‘산하호대(山河好大)’라는 큰 글자가 음각된 커다란 돌비석 두 개가 세워져 있다. 그곳에서부터 신선의 땅이 시작된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숲을 지나 동쪽으로 걸어가면 선몽대 입구의 주사(廚舍)가 나오는데 ‘유선몽대(儒僊夢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유선은 곧 지선을 의미한다. 자연 암반을 있는 그대로 깎아 만든 돌계단은 신선만이 딛고 오를 수 있는 계단이다. 발밑으로 전해 오는 강기(剛氣)를 느끼며 계단을 오르면 선몽대 누각 기둥 뒤 석벽에 새겨져 있는 ‘우암(遇巖)’이라는 바위글씨[巖刻]를 만난다. 돌(바위, 암석)은 ‘땅에서 신선과 같은 존재’다. 그래서 암벽에 ‘우암’이라는 각자를 새겨 놓았다. 우암산을 더 올라가면 ‘정자 터’는 남아 있으나 문헌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문화재청이 복원에 난색을 표명한 ‘학심대(학심대)’와 ‘방학정(방학정)’ 터가 나온다. 도교에서는 구름을 두른 산을 이상향 또는 ‘신선의 나라’로 여기고, 구름을 이상향의 징표 내지 ‘초월의 경지’로 비유한다. 물은 ‘영원한 생명력’을 뜻하며, 소나무는 ‘장생’을 의미하고, 학은 신선이 타고 다니는 새를 상징한다. 우암산의 원래 이름은 관산(關山)이었다. 지선인 우암이 그곳에 깃들면서 ‘신선의 나라’를 상징하는 우암산으로 바뀌었다. 선대동천 돌비석⇒유선몽대 현판⇒자연 암반을 깎아 만든 돌계단과 ‘우암’ 바위글씨⇒우암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동선(動線)은 신선의 나라 심장부를 향해 나아가는 도교의 향천적(向天的) 문화코드다. 우암산 정상이나 선몽대에 오르면 ‘산 좋고 내가 크다’는 뜻을 지닌 산하호대의 시원한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선대동천 제일경(第一景)이다.

 

  그것은 신선이 되고자 했거나 아니면 최소한 신선을 보고자 했던 우암의 열망을 충족시켜준 현실세계의 이상향적인 선경이었다. 선몽대 방 안에서 내다보이는 광경(框景)도 일품이다. 한 폭의 동양화 그 자체다. 우암은 깨끗하면서도 장쾌한 그 동천경을 마음에 담아 호쾌하면서도 정의로운 인생관을 펼쳤다. 선생의 유적비에는, ‘1576년 등과 후, 박사, 감찰, 정랑(正郞), 도사(都事) 등 청환(淸宦)을 역임하였으나 마침내 의롭지 못한 일을 보고는 숙연히 벼슬을 버리고 이곳 동천에서 운학을 벗 삼아 독서자적(自適)하였다’고 간략히 적혀 있다. 우암의 마지막 관직은 경산현감이었다. 그것도 경산지방에 흉년이 들어 폐풍이 일던, 누구도 별로 부임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때, 조정대신들이 그를 추천하자 기꺼이 현령으로 나가 봉급을 털어서까지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고, 영농방법을 지도하고, 충효사상을 고취시켜 불과 몇 달 만에 교화가 이루어지게 했다.

 

  그의 치적을 알리는 도신(道臣)의 장계가 중앙 조정에 올라가기도 했다. 『학봉집』에, 남쪽 임지에 부임하러 가는 김성일이 경산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달성의 수령 권문해와 본 고을 수령 이열도가 모여서 전송을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검제의 학봉 김성일(1538~1593)은 임천서원과 석문정의 주인공이고, 용문의 초간 권문해(1534~1591)는 『대동운부군옥』을 편찬한 초간정의 주인이다. 아마도 퇴계 문하의 이 세 걸출한 인물은 한 동이 술을 놓고 도산에서의 옛 추억은 물론 나랏일과 고을 다스리는 얘기로 밤을 지새웠을 법하다. 그토록 좋은 시절에 우암의 인생행로에 태클을 건 이가 바로 경상도 관찰사였다. 공무에 몹시 바쁜 우암을 도청으로 불러서는 『자치통감』이라는 책 표지 글자를 쓰도록 명했다는 것인데, 제대로 유학을 공부한 사람이었다면 도저히 보일 수 없었던 꼴불견 짓거리였다. 퇴계 선생의 종손(從孫)이자 꼬장꼬장한 선비의 대명사였던 우암이 그런 사적인 청을 받아들였을 리 만무한 일,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그 자리에서 관찰사의 부당한 처사를 꾸짖고는 관직에서 물러나버렸다.

 

  ◆ 예천박물관 소장유물 2건(입학도설, 맹자언해), 21일 경북유형문화재로 지정됨...축하합니다.

 

  예천박물관(예천박물관, 소장유물 2건 문화재 신규 지정) [기사] : 성리학 입문서 『입학도설』과 금속활자본 『맹자언해』/ 예천군 예천박물관은 2023년 12월 21일 소장 유물인 『입학도설(入學圖說)』과 『맹자언해(孟子諺解)』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고 밝혔다. 『입학도설』은 고려말·조선초 문신이자 학자 권근(權近, 1352~1409)이 저술한 책으로 성리학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을 위한 입문서이며,『맹자언해』는 1590년 교정청(校正廳)에서 편집·간행한 언해본(諺解本)으로 금속활자인 을해자체경서자로 간행되었으며, 한자음에 방점이 있고 언해문의 ‘ㅿ’와 ‘ㆁ’ 표기를 보여주는 국내 마지막 문헌이다. 두 문헌 모두 의성김씨 남악종가에서 기탁한 자료로, 남악종가 고문헌은 2019년 『금곡서당 창립회문(金谷書堂 創立回文)』등 <예천 남악종가 소장 전적(醴泉 南嶽宗家 所藏 典籍)> 8종 14책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바 있으며, 『입학도설(入學圖說)』과 『맹자언해(孟子諺解)』가 추가되면서 총 10종 16책이 도 유형문화재가 되었다. 예천박물관 관계자는 “도 유형문화재 지정은 『입학도설』과 『맹자언해』의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며, “빠른 시일내 두 문헌을 연구, 전시 및 교육을 통해 많은 분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예천박물관은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 공립박물관 수장고 증축 사업의 사전평가를 통과하여 소장 유물을 보다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보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예천 지역 문화재의 전승과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학술대회개최, 학술총서발간, 지정문화재 신청 등 지속적인 노력을 추진하고 있다.(예천신문 2024.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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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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