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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2404:선몽대 일원...
작성자이춘우 @ 2024.01.10 06:05:16

  도청신도시 예천 2,404 :.선몽대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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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몽대 누각 천정에 많은 시판(詩板)이 걸려 있다. 우암의 선비정신을 기리기 위해 선몽대를 찾은 수많은 명사들이 남긴 글들이다. 정사우-정재원-정약용 삼대가 선몽대와 인연을 맺게 된 내력을 적은 글도 있다. 그중에서 필자에게 가장 강한 이미지를 불러일으킨 글은 청음 김상헌(1570~1652)이 남긴 한시(漢詩)다./ 모래가 희고 내가 맑아서 텅 빈 것 같으나, 옥산과 옥구슬 가득한 정원에 비교함이 어떠할까, 신선의 땅이 하도 멀어 오기가 어렵다 하나, 이 정자에 오고감을 소홀히 하지 말자/ 청음이 선몽대에서 느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그 장소에 깃들어 있는 우암의 혼이었다. 그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의 강화를 반대한 척화파의 거두였다. 인조의 굴복은 그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테고, 선몽대에 남겨진 우암의 선비다운 인생 스토리와 기타 여러 선배들이 남긴 시구의 내용들이 적잖이 위안이 됐을 법하다. 그의 선몽대 사랑은 결코 장소에 대한 사랑이 아니다. 선몽대에 스며있는 인문혼과의 정서적 교감을 통한 내적 성찰과 깊이 연관돼 있다. 그는 서애 유성룡(1542~1607)이 마지막으로 은거했던 학가산 속 서미마을[서애는 이화촌이라 불렀음]과 자신이 기거했던 소산마을의 청원루(淸遠樓), 그리고 백송리 선몽대 등 세 곳을 오가며 상처받은 마음을 추스르려[힐링] 애썼다. 우암과 서애를 롤모델 삼게 되니 그들이 머물렀던 우암산과 학가산도 청음의 눈에는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 두 산을 오갈 때마다 청음의 뇌리에는 ‘산부재고 유선즉명(山不在高 有仙則名:산은 굳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살면 명산이다)’이라는 옛 명언이 자꾸만 떠올랐을 것이다. 선몽대는 신선의 세계를 묘사한 상서로운 문자향이 가득한 공간이다. 누각 안에 시판으로만 걸어 놓을 것이 아니라 한글로 번역된 내용을 관광 안내판으로 제작해 선몽대를 찾는 모든 이들이 그 향기를 느끼며 인문적인 힐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자향은 곧 사람의 향기[人香]이다. 인향은 만리를 넘어 멀리멀리 퍼져나갈수록 좋다.

 

  ◆선몽대의 풍수경(風水景)과 에코토피아 힐링 세계 : 선몽대의 자연을 바라 보는 관념[이데올로기]적인 눈은 크게 네 가지다. 유교식 ‘산수경’과 도교식 ‘동천경’, 그리고 풍수경(風水景)과 생태경(生態景)이다.

 

  그 중에서 풍수경은 다시, 평사낙안(平沙落鴈) 형국과 선몽대의 건물 입지성(立地性), 그리고 선몽대숲 풍수비보(裨補)경관으로 나누어진다. ‘평사낙안’은 원래, 중국 호남성 동정호 남쪽 영릉 부근 ‘소수(瀟水)’와 ‘상수(湘水)’가 합쳐지는 곳의 여덟 가지 경치를 말한 ‘소상팔경(瀟湘八景)’ 중의 하나다. ‘넓은 모래밭에 내려앉는 기러기’를 뜻한다. 소상팔경은 그림으로 제작되어 중국은 물론 조선의 식자들 사이에서 크게 인기를 끈 바 있다. 풍수에서도 그 사자성어를 원용해 ‘백사장의 흰 모래가 강변을 따라 길게 청정한 모래밭을 이루는 땅’을 ‘평사낙안’ 명당이라 불렀다. 그런데 풍수 형국론[물형론]이 자연지형의 생김새를 논하는 분야이다 보니 조건이 하나 더 붙고 말았다. 모래밭 가까이 어딘가에 ‘기러기를 닮은 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형상의 산이 없으면 아예 평사낙안형 명당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물과 모래톱, 기러기 형상의 산이 다 갖춰진 ‘평사낙안형’의 지세라야 걸출한 인물이 배출되고, 재복과 식복도 붙어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풍수는 어디까지나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추상적인 산형(山形)이 아닌 실물 기러기가 강변 모래와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성정을 닦을 수도 있거늘, 주변에 ‘기러기를 닮은 산’이 없기 때문에 풍수낙안형 명당이 아니라니 도대체 말이 될 법한 소리인가. 우암이 평사낙안형 명당인 선몽대에서 읊은 시를 한 번 음미해 보자./ 옛 사람의 가르침 헛된지 오래지만/ 남긴 뜻 아직 있어 내 마음 같구나. 작은 집 처마기둥 이제야 완성하니/성근 인정 때문에 떠돌지는 않았으리. 작은 정자 오뚝하니 물속에 어리고/나루 멀리 넓은 하늘 훤히 트였구나. 오리와 노을은 온갖 자태 빚어내고/ 늦바람에 가을비 부슬부슬 내리는구나. 산자락 물가에 우뚝하게 솟았으니/ 안개대문 솔 창문 비단과 같구나. 스님과 같이하여 자리는 조용하니/세속인연 적음을 요즘에 깨닫네./ 이 시에는 평사낙안이라는 말 자체는 나오지 않지만 ‘산자락 물가’, ‘오리와 노을’ 등 평사낙안 지형을 짐작할 수 있는 시어(詩語)는 풍부하다. 오리를 닮은 산이 있든 없든 우암은 오리와 노을 등 주변 실경 산수와 혼연일체가 되어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힐링하고 있다. 이같이 유자들은 실경 속에서 기러기 같은 새가 모래밭에 내려앉거나 혹은 날아오르는 모습을 자신의 출사나 은거 행위에 비유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풍수적’ 평사낙안 인식보다는 ‘유가적’ 평사낙안 인식이 자연과의 교감성이나 힐링 효용성 등 모든 측면에서 한 수 위였던 것이다. 그래도 선몽대에서 실물 기러기가 아닌 지형적 기러기를 꼭 봐야겠다는 물형론 신봉자가 있다면 복원된 주사(廚舍) 건물을 기러기 형상으로 봐주길 바란다. 주사는 선몽대 진입부로 사용되는 건물로서 부엌 겸 재실로 이뤄져 있다. 대문 상부를 2층 다락으로 조성하여 다락에서 조망되는 내성천 풍광이 무척 빼어나다. 그 주사 건물을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한 마리의 새가 내성천에 내려앉는 듯한 모습을 띠고 있다. 특히 하천 유량이 줄어 선몽대 바로 밑에 흰 모래밭이 드러날 때면 누구든 평사낙안을 연상할 수 있을 정도다.

 

  기러기는 예부터 신(信)·예(禮)·절(節)·지(智)의 덕(德)을 갖춘 새로서 상서로운 기운을 전하는 길조로 인식돼 왔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올곧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이 땅의 기개 있었던 선비들이 혹시 선몽대를 찾았던 ‘큰 기러기[鴻]’들이 아니었을까. 선몽대는 내성천 물길이 와서 부딪치는 우암산 북쪽 하식애 위에 북동향으로 앉았고, 진입부의 주사 건물은 북서향을 취하고 있다. 음양오행론상 북쪽은 음(陰)과 수(水), 그리고 지(智)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선몽대의 ‘산북수남’ 놓임새와 명상 수양처로서의 활용도 등 모든 면이 그런 의미론적 공간론과 딱 맞아떨어진다. 주사 건물이 내성천 물길이 빠져나가는 쪽을 향해 앉은 것은 옥에 티라면 티다. 협소한 부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좌향을 취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물이든 길이든 빠져나가는 쪽을 향해 건물이 앉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잠시면 몰라도 장시간 바라보게 되면 허탈감과 탈출 심리 같은 것이 조장되어 환경심리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몽대의 좌향이 북동향을 취한 것도 아마 그런 흉을 피하고 좋은 기운[來水]을 맞이하기 위해서였을[避凶趨吉] 것이다.

 

  선몽대 숲은 백송리 마을에서 내성천으로 연결되는 수구를 막은 숲이다.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많은 소나무들이 현재 주차장으로 이용되는 지점까지 숲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그 숲은 백송리 마을 북쪽 우암산과 삼봉산 사이의 트인 부분을 막아 바람 피해[풍해]와 내성천 범람시 우려되는 수해를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된 동수(洞藪)이자 비보(裨補)숲이다. 조성 시기는 진성이씨가 백송리에 입향하고 선몽대가 세워졌던 1500년대 중반으로 추정하고 있다. 비보숲의 위용은 강 건너편에서 보는 게 제격이다. 두 산 사이의 凹처를 짙푸른 소나무가 메워주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동쪽] 우암산 자락에 보이는 선몽대 누각은 마치 부처님 눈에 점을 찍어 혜안을 그려내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의 묘수와 다를 바 없다. 강을 건넌 수고로움을 단번에 보상해 주는 장관(壯觀)을 연출한다. 유홍준 교수에 의하면, 우리나라를 자주 찾는 서양의 한 여성 큐레이터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무엇인 것 같으냐고 묻자 단번에 ‘정자’를 꼽더라고 한다. “한국의 산천은 부드러운 곡선의 산자락이나 유유히 흘러가는 강변 한쪽에 정자가 하나 있음으로 해서 문화적 가치가 살아나는데, 그처럼 자연과 친숙하게 어울리는 문화적 경관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적 표정”이라고 말하더라는 거다. 이방인조차 정자의 생김새보다 자리앉음새를 그같이 중요시해 이야기할진대 이제는 강 건너편에 선몽대를 조망하는 전망대를 하나 세우는 것도 고려해봄 직하지 않는가. 선몽대 숲 노송들을 에워싸고 있는 굵은 돌들은 생태애(生態愛·ecophilia)를 상징하는 또 다른 비보물이다. 내성천 범람을 막기 위해 선몽대 일원에 석축 제방을 쌓자 소나무들이 상당한 깊이로 복토(覆土)가 되어 생장에 큰 지장을 받게 됐다. 그래서 주변 지형의 성토(盛土)로 인해 소나무 근원부까지 덮게 되었던 흙을 상당 부분 제거한 후, 무너짐을 방지하기 위해 굵은 자연석으로 땅을 눌러 놓은[땅속은 굵은 소나무 뿌리들이 사방으로 뻗어 있음] 것이다. 아름드리 노송이 만들어 주는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누름 비보돌[石]을 바라보자니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다. 아마도 수백 년 백송리를 지켜줬던 그 나무들을 이제는 사람이 각별하게 돌봐줘야 한다는, 그 어떤 따뜻한 인간의 마음이 읽혀졌기 때문이리라. 벤치에서 일어나기 싫어 하염없이 내성천 수면을 바라보는데 바람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이따금씩 물소리마저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그 자연의 숨결이 자꾸만 졸음을 몰고 온다. 선몽대처럼 하천과 숲을 끼고 있는 힐링 명소는 생리적, 심리적 이완효과가 각별히 뛰어나다고 하더니 아마도 그 신비스런 자연의 기운이 계속 몸속으로 들어오는 모양이다. 아! 자연경(景)과 인문혼(魂)이 이중주를 이루는 이 힐링피아 선몽대를 어찌 꿈엔들 잊을 수 있을쏜가. [경북환경연수원 객원교수.풍수학박사 이몽일](정차모 기자 예천인터넷뉴스 2018-11-18 오후 9: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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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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