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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얘천2479:세덕사..
작성자이춘우 @ 2024.03.25 06:05:40

  도청신도시 예천 2,479 : 세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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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덕사(世德祠) [祠堂] : 1) 예천읍 용산리 제동(堤洞)에 있는 사당으로, 경주인 세촌 이문좌(細村李文佐)를 제향하였다(慶州李氏大同譜). 2) 용궁면 금남리 396번지 훤평(喧坪)에 있는 사당으로, 조선 중종 때 학자 울진인 은계 장한보(殷溪張漢輔)와 그의 아들 예천군수 월송재 장령(月松齋張翎)을 제사하는 곳이다. 제향 축문에서 이르기를, "기초의 운명을 받아서 후손들에게 넉넉함을 보여주며 전해 준 혜택이 없어지지 않으니 1백대를 내려갔도다." 라고 하였다. 세덕사와 추모재(追慕齋)가 있는데, 원래 금원의 사당고개에 창건되었으나, 1730년 경 화재로 소실되어서 1830년 경 후손들이 현 위치에 재건하여 현존한다. 추모재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이고, 세덕사는 정면 2칸, 측면 1칸이다(朝鮮寰輿勝覽 1929) →훤평사우. 3) 용궁면 무이리 무이서당(武夷書堂) 경내에 있는 사당으로, 여주 이씨 입향조 이윤수(李潤壽)를 향사하는 별묘이다(驪州李氏先祖由來 2001). 4) 하리면 우곡리 442번지 안마 한복판에 있는 사당으로, 원래 1708년(숙종 34) 사림에 의하여 우곡서원(愚谷書院)이 건립되어 4현(四賢 : 謙菴 柳雲龍, 息菴 黃暹, 蒼石 李儁, 竹日 金光燁)을 병향(幷享)하였으나 1868년(고종 5) 훼철되고 1876년(고종 13) 자손들이 세덕사와 우곡서숙(書堂)을 건립하였으나 1950 년 서숙은 한국전쟁으로 소실되고, 세덕사만 남은 것을 1967년에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순천인 양경 김승주(襄景金承주)와 죽일헌 김광엽을 병향하고 있다(禮鄕醴泉 1994). →우곡서원

 

  세덕사(世德祠) [祠堂] : 하리면 우곡리 255번지(垈)에 있는 사당으로, 우곡서원(愚谷書院)이 훼철된 이후 죽일(竹日) 김광엽(金光燁)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건립한 사당인데, 주위에는 토석담장을 둘렀고, 정면에는 사주문을 세워 출입케 하였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기와집이다. 자연석 쌓기를 한 기단 위에 주초를 놓았는데, 전면주의 하부에는 둥글게 다듬은 초석을 사용하였다. 기둥은 전면과 후면에만 원주를 사용하였고, 기둥의 상부에는 삼익공(三翼工)으로 장식하였다. 가구(架構)는 종량(宗樑) 위에 제형판대공(梯形板臺工)을 세워 마룻대와 장혀를 받게 한 오량가(五樑架)의 구조이며, 처마는 겹처마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세덕사(世德祠) [祠堂] : 하리면 우곡리 442번지에 있는 사당으로, 순천인 양경(襄景) 김승주(金承霔), 죽일헌(竹日軒) 김광엽(金光燁)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도유림(道儒林)에서 1708년에 창건하였고, 우곡서원(愚谷書院)이 훼철되고, 그 자리에 1873년에 자손들이 건립, 1976년에 중수하였다.(醴泉鄕校誌 2004)

 

  세덕사(世德祠) [祠堂] : 하리면 우곡리 255번지 소재, 순천 김씨 문중의 사당으로, 1876년(고종 13)에 건립하였다. 주위에는 토석담장을 둘렀으며, 정면에는 사주문을 세워 출입케 하였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기와집이다. 자연석 쌓기를 한 기단위에 주초를 놓았는데, 전면주의 하부에는 둥글게 다듬은 초석을 사용하였다. 기둥은 전면과 후면에만 원주를 사용하였고, 기둥의 상부에는 삼익공으로 장식하였다. 가구는 종량위에 제형판대공(梯形板臺工)을 세워 마룻대와 장혀를 받게 한 오량가(五樑架)의 구조이며, 처마는 겹처마이다.(醴泉郡誌 2005)

 

  세덕사(醴泉愚谷里 世德社) : *위치 : 예천군 하리면 우곡리 255(내동길 56), *연대 : 1876년, *규모 : ‘-’자형 사당 1채/ 우곡리 세덕사는 순천김씨 문중 사당으로, 내동 산 아래 남향하고 있다. 1876년(고종 13) 건립하였으며, 월담(月潭) 김승주(金承霔, 1347-1424), 국담(菊潭) 김유온(金有溫, 1367-1437), 죽일(竹日) 김광엽(金光燁, 1561-1610)을 배향하고 있다. 세덕사는 원래 우곡서원이었으나 대원군 시절에 훼철되고 난 뒤 1873년 상리면 도촌리의 쌍학사 재목을 이용하여 건축하였다. 세덕사는 1967년 번와하였다고 한다. 세덕사 앞 빈터는 서당(書堂)이 있던 곳인데, 우곡서당은 은풍초등학교의 전신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세덕사는 음력 3월 중정(中丁)에 춘향을 행한다. 김승주는 태종 때 인물로, 본명은 을보(乙寶)였는데, 도우제(禱雨祭)를 지낸 결과 영험이 커서 임금이 승주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김승주는 1380년(우왕 6) 홍위위별장(興威衛別將)에 초임되어 군기시소윤(軍器寺少尹)을 거쳐 창왕 때 풍주(豊州)의 수령으로 나가 왜구를 격퇴하는데 공을 세웠다. 조선이 개국되자 전중경(殿中卿)에 오르고, 첨절제사(僉節制使) ·형조전서(刑曹典書)·찰리사(察理使)를 역임하였다.

 

  1400년(종종 2)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되어 녹산군(鹿山君)에 봉해졌으며, 태종 때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에 이르러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와 동북면방마절제사 겸 영흥부윤(永興府尹)·도순문찰리사(都巡問察理使)를 역임하였다. 그 후 평양부윤(平壤府尹)을 거쳐 병조판서(兵曹判書)가 되어 평양군(平壤君)에 개봉되었고, 뒤에 부원군(府院君)에 진봉되었다. 시호(諡號)는 양경(襄景)이다. 김유온은 승주의 아들이다. 고려조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예조참의(禮曹參議) 및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권집경(權執經)의 사위로 처가를 따라 풍산현(豊山縣)·구담(九潭)으로 이거하였으며, 순천김씨 입향조이다. 김광엽은 하리면 금곡리 쇠실(金谷) 마을 사람으로, 침(沈)의 아들이다. 임꺽정의 난을 평정한 조부 순고(舜皐)에게 학문을 익혔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부지런히 공부하여 문장이 뛰어났으며, 한양·상주 등지에서 공부를 하다가 1589년(선조 22) 하리 쇠실로 옮겨 살았다. 1590년(선조 23) 사마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문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풍기현감이 되어 풍기현으로 들어오는 왜군을 격퇴하였다. 1595년(선조 28) 승정원주서가 되었으며, 홍문관 저작 겸 춘추관 기사관을 지냈다. 이후 김광엽은 정유재란 당시 도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의 종사관으로 왜적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웠고, 그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조부모를 모시기 위해 1604년(선조 37) 흥해군수로 부임하여 선정비를 남겼다. 1608년(선조 41) 홍문관 교리·예문관 응교를 거쳐 암행어사로 나가기도 하였다. 김광엽의 학문은 맑고 절도 있기로 유명하였고 홍문관·사헌부·사간원의 3사에서만 15년 동안 관직을 역임하였다. 김광엽이 졸하자, 광해군은 특별히 조의를 내리고, 애석히 여겼다. 무덤은 하리면 부초리 부푸실(芙草谷)에 있고, 하리면 우곡리 안골(內洞)의 우곡서원(愚谷書院)에 제향되었다. 1670년(현종 11) 후손들은 김광엽이 금곡리 쇠실에서 강학하던 곳에 죽일정(竹日亭)을 창건하였으며, 1935년 우곡리 안골로 옮겼다. <귀허집(歸虛集)> 40여 권이 전한다. 세덕사가 있는 우곡리는 예천읍과 하리면을 연결하는 927번 지방도로 도효자로와 은풍로를 따라 접근하며, 은풍로는 도효자로에서 하리면사무소를 향하고 있으며, 면소재지를 지난 후 용도천을 따라 조성했다 세덕사는 은풍로에서 동측으로 난 운평교 위 내동길을 따라 접근한다. 세덕사는 마을 중간쯤 내동길 북측 경사면에 터를 마련하고 남향을 하고 있다. 세덕사는 사면에 한식기와를 올린 토석담장을 두르고 있으며, 정면 담장에 대문을 세워 출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대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정면의 담장 일부분은 붕괴된 상태이다. 내동길에서 세덕사를 향한 진입로 좌측에는 텃밭이 있고, 우측에는 이웃 살림집이 있다. 후면에는 경사면 위에 밭이 있다.

 

  세덕사는 정면에 툇칸을 꾸민 ‘-’자형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1.5칸인데, 정면 툇칸은 맨바닥이며,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아 놓았다. 전면 툇간 쪽에는 한 짝 여닫이문과 두 짝 여닫이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했다. 세덕사의 기단은 시멘트모르탈과 자연석으로 축조 마감했으며, 전면과 후면의 기둥은 원기둥이고, 주초도 원형주초이다. 나머지 기둥은 사각기둥이다. 정면과 배면 기둥 상부는 이익공방식으로 짜 맞춤을 했다. 나머지 기둥 상부는 납도리방식으로 보아지아 도리받침장혀, 납도리가 짜 맞춤을 했다. 주간은 하방을 끼워 장식했다. 가구는 오량이며, 처마는 겹차마이며, 처마 끝은 와구토로 마감했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맞배지붕으로 좌우 측면에 풍판을 달아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도록 했으며, 추녀마루와 용마루, 내림마무 끝은 망와로 마감했다. 목재는 대부분 퇴락하여 탁락했지만 원래 모로단청으로 장식했다. 현재 후면은 지붕의 누수로 붕괴가 진행 중인 상태이다. 세덕사는 1876년 건리된 이후 계속 사용했지만, 현재는 전혀 사용하지 않아 붕괴가 진행 중이다. 따라서 세덕사는 사당의 상황을 고려한 활용 및 유지관리 계획을 세운 후, 이에 따라 활용을 한다면, 문화유산으로서 건축적 가치가 한층 더 높아 질 것으로 기대가 된다.(예천군 건축문화유산 조사연구 2013년, 495-497쪽)

 

  세덕사 : →우곡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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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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