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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2,493:Cellulomonas...소감...
작성자이춘우 @ 2024.04.08 06:03:34

  도청신도시 예천 2,493 : Cellulomonas,,,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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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llulomonas sp. YE-5가 생산하는 세룰라제의 정제(Cellulomonas sp. YE-5가 生産하는 Cellulase의 錠劑) [學術저널] : 예천읍 대심리 출신인 거당(巨堂) 오두환(吳斗煥, 1950-1997, 醴泉郡廳課長 상환의 同生, 醴泉中, 大昌高, 延世大 食品工學科 卒業, 同 碩士, 同 食品工學 博士, 延世大 敎授, 韓國種菌協會 微生物保存센터 所長, 美 택사스大 訪問敎授) 등의 논문으로, 한국산업미생물학회에서 1990년에 발행한 <산업미생물학회지> Vol.18 No.4 376-382쪽(7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고려대(중앙), 서강대(로욜라)이다. [초록] : 토양과 퇴비 등에서 섬유소 자화력이 있는 세균을 분리하고 이 균주들 중 cellulase 생산능이 가장 우수한 균주를 선별하여 Cellulomonas sp.로 동정하였다. Cellulomonas sp. YE-5의 최적 배양 조건은 pH6.5 Solka floc 0.8%(w/v), urea 0.06%(w/v), K_2HPO_40.1%(w/v), bacto peptone 0.2%(w/v), yeast extract 0.2%(w/v) 그리고 NgSO_4․7H_2O 0.1%(w/v)이었으며, 이러한 배지를 사용하여 30℃에서 48시간 배양하였을 때 avicelase, CMCase 그리고 β-glucosidase는 각각 0.350, 3.180, 0.882 units/㎖의 활성을 나타내었다.(keris 2005)

 

  Cellulomonas sp. YE-5가 생산하는 세룰라제의 특성(Cellulomonas sp. YE-5가 生産하는 Cellulase의 特性) [學術저널] : 예천읍 대심리 출신인 거당(巨堂) 오두환(吳斗煥, 1950-1997, 醴泉郡廳課長 상환의 同生, 醴泉中, 大昌高, 延世大 食品工學科 卒業, 同 碩士, 同 食品工學 博士, 延世大 敎授, 韓國種菌協會 微生物保存센터 所長, 美 택사스大 訪問敎授) 등의 논문으로, 한국산업미생물학회에서 1992년에 발행한 <산업미생물학회지> Vol.20 No.2 164-168쪽(5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고려대(중앙), 서강대(로욜라)이다. [초록] : Cellulomonas sp. YE-5가 생산하는 cellulase를 분리, 정제하여 효소의 특성을 알아보았다. Avicelase, CMCase, β-glucosidase의 반응 최적 온도는 각각 40, 45, 40℃이었고, 반응 최적 pH는 5.5, 6.0 그리고 6.0이었다. 효소의 열 안정성은 30~70℃에서 6시간 처리하였을 때 avicelase와 β-glucosidase는 50℃ 이상에서 거의 실활하였고, CMCase는 50℃에서 약 40%의 활성을 유지하였다. 효소의 안정성에 미치는 pH의 영향은 25℃에서 24시간 처리하였을 때 avicelase와 CMCase는 pH 5.O~9.0 사이에서 안정하였으며, β-glucosidase는 pH 5.O~8.0 사이에서 안정하였다.(keris 2005)

 

  셋골 [골] : 1) 개포면 가곡리(佳谷里) 가오실과 원둣골 사이에 있는 골짜기이다. 2) 용문면 하금곡리에 있는 골짜기로, 베날에 있다.

  셋골 : →세거리골

  셋터골지 [못] : 하리면 셋터골에 있는 저수지로, 저수량은 4,500ton이다.

  셋터지 [못] : 호명면 셋터에 있는 저수지로, 저수량은 10,000ton이다.

  셰익스피어 전기 비극의 비극적 갈등 양상(Shakespeare 前期悲劇의 悲劇的葛藤樣相) [論文] : 용궁면 무이1리 내무(內武) 출신인 이덕수(李德秀, 1940- , 嶺南大 敎授)의 영남대학교 1984년 박사학위 논문으로, 100쪽이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경희대(수원), 계명대(동산), 고려대, 단국대(중앙), 대구가톨릭대, 동국대(중앙), 동아대, 동양대, 부산대, 성균관대(중앙), 세종대, 숙명여대, 숭실대, 연세대(원주), 영남대, 원광대, 인하대, 충남대, 충북대이다.(keris 2003)

 

  셰퍼드견에서 범골염 진단례(셰퍼드犬에서 범골염 診斷例 =Panosteitis in a German Shepherd Dog) [學術저널] : 호명면 담암리 담바우 출신인 장광호(張洸鎬, 大昌高 卒業, 慶北大 敎授) 등(성윤상 엄기동 이해운 이정민 오태호)의 논문으로, 한국임상수의학회에서 2003년에 발행한 <한국임상수의학회지(韓國臨床獸醫學會誌)> Vol.20 No.2 252-254쪽(3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keris 2004 2006)

 

  소감, 우감(牛甘) [마을] : 개포면 우감2리(牛甘二里)에 있는 마을로, 고려 때부터 있었다. 달성 서(徐), 차(車), 두(杜)씨가 개척했다가 서씨는 먼저 떠나고 차씨만 살았는데, 임진왜란(1592) 때에 예천인 임선복(林善復, 1584-1645)이 피란하여 이주해 와서, 효감리(孝感里)라고 하였고, 차씨는 쇠잔해졌다. 임선복은 9세에 임진왜란을 만나 형제를 잃고, 이 곳으로 이주하여 대대로 살게 되었다. 그 후 소감이라 하였다. [傳說] : 이 때 차씨들이 모여 궁리한 끝에 임(林)은 수풀이니, 우마(牛馬)가 들어가서 짓밟으면 수풀(林)의 세력이 꺾이고 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여겨 말 한 필을 돌로 다듬어 마을 복판에서 뒷산을 향해 세웠다. 그러나 밤에는 차씨들 몰래 임씨들이 그 석마(石馬)를 마을 바깥쪽을 향하게 돌려놓고, 아침이면 차씨들이 또 뒷산을 향하게 돌려놓은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나 임씨는 점점 번성하고 오히려 차씨들이 임진왜란 이후 모두 떠났다고 한다. 그것은 말이 풀밭에 똥을 누어 수풀을 가꾸고, 수레를 끌어다 버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뒤 임씨들은 그 석마 앞에 느티나무를 심고 동제단(洞祭壇)을 삼았고, 그 모양이 송아지처럼 생겼으므로 송아지가 풀을 달게 뜯어먹고 마을을 편하게 보호해 살라는 뜻으로 소감이라고도 했다. 소구리처럼 생긴 지형이어서 파난골이었다. 예천 林 등 37가구 215명(1980)이 살고 있다. [傳說] : 소감에는 힘세고 키 큰 장수들이 많았다. 이곳에 사는 어떤 사람이 새벽에 들에 갔을 때 다른 사람들이 쫓고 있는 호랑이를 껴안고서 잡았다. 또 어떤 이는 서울로 무과를 보러 가려는데, 개가 자꾸만 따라와 할 수 없이 동행을 하는데, 문경 새재(鳥嶺)의 한 주막에서 그 개가 새끼를 낳아, 하룻밤에 소감까지 왕복하

 

  감(牛甘) : 牛甘里 소속으로, 고려(高麗) 때부터 있던 마을이라 한다. 서씨(徐氏)와 차씨(車氏)가 개척(開拓)했다가 서씨(徐氏)는 먼저 떠나고 차씨(車氏)만 살았는데 조선조(朝鮮朝) 초기(初期)에 임씨(林氏)가 이주(移住)해 와서 살자 차씨(車氏)는 쇠잔(衰殘)해졌다. 이때 차씨(車氏)들이 모여 궁리한 끝에 임(林)은 수풀이니 우마(牛馬)가 들어가서 짓밟으면 세(勢)가 꺾이고 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여겨 말 한 필을 돌로 다듬어 마을 복판에서 뒷산을 향해 세웠으나 밤에는 차씨(車氏)들 몰래 임씨(林氏)들이 그 석마(石馬)를 마을 바깥쪽을 향하게 돌려놓고 아침이면 차씨(車氏)들이 또 뒷산을 향하게 돌려놓는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나 임씨(林氏)는 점점 번성(繁盛)하고 오히려 차씨(車氏)들이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 모두 떠났다고 한다. 그것은 말이 풀밭에 똥을 누어 수풀을 가꾸고 수레를 끌어다 버린 때문이라는 민담(民談)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그 뒤 임씨(林氏)들은 그 마석(馬石)앞에 느티나무를 심고 동제단(洞祭檀)을 삼았으며 그 모양이 송아지처럼 생겼으므로 송아지가 풀을 달게 뜯어 먹고 마을을 편하게 보호(保護)해 달라는 뜻으로 소감이라고 했다.(開浦面홈페이지 2013)

 

 

 

 

 

면서 옮겨 놓았다고 한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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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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