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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2,498: 소규모 주택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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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주택 단지 개발에 관한 연구(小規模 住宅 團地 開發에 關한 硏究) [學術저널] : 예천 출신인 손세욱(孫世郁, 1957- , 大田大 敎授)의 논문으로, 대전대학교에서 1988년에 발행한 <논문집> 7권 2호 211-224쪽(14쪽 분량)에 수록되어 있다.(keris 2003)
소금배의 횃불은 잠들지 못하는데 [冊] : 한내글모임의 여덟 번째 글모음으로, 1994년 4월에 가로 15cm, 세로 22cm, 236쪽이다. 안동 영남사(安東嶺南社)에서 인쇄하였다.
소금쟁이 [動物] : 예천군의 연못, 개천에 떼를 지어 서식하는 곤충으로, 학명은 Aquarius Paludum Fabricius이고, 소금쟁이과에 속한다.
소기제(小機堤) [터] : 용궁현(龍宮縣, 鄕石里) 동남쪽 20리에 있던 조선 시대의 저수지로, 둘레 809척, 수심 5척이다. <축산승람(竺山勝覽, 1934)>에서는 "지금은 없다(今無)"라고 한다.(龍宮縣邑誌 1780)
소꼽장난, 바끔사리 [娛樂] : 예천군에서 전승되어온 오락으로, 부엌과 방을 정하고 굽이 달린 사기그릇 깨어진 것으로 솥을 걸고 조개피, 그릇 깨어진 조각을 모아 밥그릇, 반찬그릇을 삼고 흙으로 쌀을 삼아 밥 짓고, 풀잎으로 반찬을 만들어 살림살이 흉내를 내면서 노는 것이다. 때로는 주인과 손님을 정하여 주인이 음식을 만들어 손님을 초청하여 접대하는 놀이를 하는 예도 있다.
소나무 [나무] : 예천군 내에 자라는 소나무는 육송(陸松)과 해송(海松)으로, 나무껍질은 적갈색(陸松) 또는 흑갈색(海松, 잣나무)이고, 육송의 잎은 한 눈에 두 잎이 보통이고, 해송은 다섯 잎이므로 오엽송(五葉松)이라고도 한다. 꽃은 5월에 자웅 일가(雌雄一家)로 피는데, 숫꽃은 긴 타원형의 황색이고, 암꽃은 달걀 모양의 자색(紫色)이다. 이듬해 가을에 열매인 솔방울이 맺는다. 또 낙엽 침엽(落葉針葉) 교목으로 잎이 흩어져 나거나 뭉쳐나고, 5월에 암수꽃이 한 나무에 피고, 가을에 다갈색으로 솔방울이 맺는 낙엽송(落葉松)도 일제 이후 이 고장에 많이 보급되었으나, 예천군의 보호수는 모두 육송이고, 감천면 천향리의 반송(盤松, 한 뿌리에서 여러 줄기가 돋아난 소나무)인 석송령(石松靈)은 예천군을 상징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금당실(金塘室)솔숲은 깊은 유서가 서려 있다.
소나무 [나무] : 1) 감천면 수한리(水閑里) 한티에 있는 나무로, 수령이 500년은 되었는데, 이 곳에서 몇 년 전만 해도 동제(洞祭)를 지냈다. 2) 개포면 경진리(京津里) 검암마을 뒷산 고개길 양 옆에 한 그루씩 있는 소나무로, 이 곳을 지날 때 돌을 던지거나 얹어놓아 소원을 기원한다. 3) 개포면 금리(琴里)의 돌더미 위에 있는 소나무이다. [傳說] : 옛날 어떤 가난한 집안에 한 옥동자가 태어나서 무럭무럭 자랐다. 어느 듯 열 서너 살이 되면서부터 슬기로워져서 동네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있는데, 하루는 나무를 해가지고 오다가 무술대회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 대회에 나가보고 싶어서 개나리 봇짐을 싸서 짊어지고 한양으로 갔다. 무술대회에 출전하여 모든 기술을 다하여 당당 1위로 합격하였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실패한 악당들이 임금에게 역적으로 몰려하다가 실패하자, 이윽고 숲 속에 숨어 있다가 합격한 청년에게 활을 쏘았다. 그 청년이 죽자, 임금까지 서러워하면서 장례식을 치룬 후에, 그 무덤에 소나무 한 그루가 나서 자라기 시작하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 혼에게 돌을 던져서 위로하여 돌더미가 되었고, 그 돌더미 위에서 소나무는 계속 자랐다. 그리고 외침 때마다 적들이 이 소나무가 있는 고개를 넘지 못하여 마을을 지켜 주었다고 한다. 4) 보문면 수계리(首溪里) 장숫골 골맥이 소나무로, 동제(洞祭)를 지낸다. 5) 보문면 옥천리(玉泉里) 옥천초등학교 뒤에 있는 소나무(洞神木)로, 수 백년 묵은 소나무 4그루가 있다. 한 그루에 3가지씩 나와서 컸는데, 각기 3아름 정도 된다. 1986년까지 정월 보름에 동제를 지냈다. 5) 보문면 우래리(友來里) 문래실 앞산에 있는 소나무(山神堂)로, 이 나무에서 동민이 동제를 지내었으나 새마을사업으로 중단되었다. 6) 예천읍 상리(上里) 마을회관 뒷산에 있는 소나무로, 두 개의 가지가 한 아름이 넘는다. 6.25전쟁(1950) 때 인민군들이 이 나무 근처에 마을 청년들을 불러 모았다. 그런데 당시 한 머슴이 밭을 갈다가 폭발물을 주어 그것을 가지고 이 회의 장소로 왔다가 폭발하여 많은 청년들이 죽었으나, 이 소나무 뒤에서 장기를 두고 있던 노인들은 이 나무가 파편을 막아주어 살았다고 한다. 7) 예천읍 생천리 496번지에 있는 읍 보호(邑保護) 나무로, 전국 일련번호 3709, 지역 일련번호 3, 수령 310년(1993), 높이 22m, 둘레 4.4m, 면적 110㎡, 유형 노목(老木), 동신목(洞神木)으로 연 1회 동제를 지내는 관례가 있고, 동민의 무사 안일을 비는 나무이다(보호수지 1972). 8) 예천읍 우계리(愚溪里) 쑤논골 뒷산에 있는 나무로, 한국전쟁(1950) 때 이 곳에서 공산군들이 진을 치고 광대원 쪽에 진을 친 국군과 7일 간의 치열한 전투를 하였다고 한다. 9) 용궁면 무이리(武夷里) 소천마 뒤에 있는 소나무(洞神木)로, 둘레 2아름이다. 매년 음력 정월 15일에 동민들이 제사를 지낸다. 10) 용궁면 월오리(月梧里) 팽나무 옆에 있는 나무로, 둘레 2아름이다. 11) 용문면 사부리(沙夫里) 지도실마을 앞에 있는 한 그루의 반송(盤松)으로, 동신나무이었다. 12) 용문면 사부리 817번지 도로에 있는 마을나무(堂山木)로, 수령 100년, 높이 7m, 둘레 1.5m, 지름 13m이다. 길섶에 있고, 적송(赤松)이고, 동제를 지냈다. 13) 지보면 마산리(馬山里) 어와실 근처 길 양옆에 있는 2 그루의 나무이다. [傳說] : 일제 때 일본군이 어와실로 가려다가 이 소나무 옆에서 말의 발이 붙어서 되돌아갔다고 한다. 14) 풍양면 낙상리(洛上里)에 있는 나무(洞神木)로, 삼탄 서북쪽 마을 끝에 있다. 1860년대부터 동제를 지냈다. 주위에 소나무 3그루와 느티나무 1그루가 있고, 나무 밑에는 제물을 차리는 바위와 그 옆에 돌이 두 개 서 있다. 옛날에는 이 일대가 모두 숲이었으나, 일제 때 송진을 얻기 위해서 상처를 내고 잘랐기 때문에 현재 몇 그루만 남았다. 정월 보름 자정에 동제를 지내는데, 일진(日辰)과 생기(生氣)를 맞추어서 제관과 축관(祝官), 동신 도가(洞神都家)를 선임하고, 모든 것은 동장(洞長)이 주관한다. 도가는 두미산(頭尾山) 밑에 있는 석중수(石中水)로 제수(祭需)를 장만하는데, 동답(洞畓) 600평에서 나오는 쌀 1가마니로써 제기(祭器)와 백설기, 밥, 자가주(自家酒), 과실, 포를 마련한다. 물론 제기는 동신 도가가 소유한다. 금색은 11일부터 동신목(洞神木)과 석중수(石中水)에만 하고, 14일 저녁에는 전 동민이 담배도 안 피우고, 조용히 지낸다. 15일 자정이 되면 제물을 진설해 놓고 단잔(單盞)으로 독축(讀祝)하고, 적어 놓은 호주 명단대로 소지(燒紙)를 올린다. 15일 아침에는 전 동민이 동신 도가에 모여 음복하고 대동회(大洞會)가 열린다. 15) 풍양면 와룡2리 (臥龍二里) 서동 뒷산인 와룡리 산 3번지에 있는 노송나무(山神木)로, 매년 정월 대보름날 자시에 이 나무 아래 단에서 산신제를 지낸다. →서동 산신제와 동신제. 16) 풍양면 청곡리 82번지 대지에 있는 면나무(亭子木)로, 수령 300년, 높이 25m, 둘레 2.4m, 지름 24m이다. 동래 정씨 삼수정(三樹亭) 경내에 있고, 가지가 용트림하여 수려하고, 회나무 세 그루가 또 있다. 17) 풍양면 청운리 999-3번지 밭에 있는 마을나무(堂山木)로, 수령 150년, 높이 18m, 둘레 1.9m, 지름 17m이다. 비봉산(飛鳳山)에서 상주 태봉(尙州胎峰)으로 옮겨가던 거북 모양의 돌이 이 나무 아래에서 움직이지 않아 두고 갔다고 한다. 동제(洞祭)를 지냈다. 18) 하리면 시항리 중시항(中矢項) 마을 앞에 있는 수 백년 묵은 소나무(성황나무)로, 지금도 정월 대보름날 동제사 (洞祭祀)를 지낸다. 그런데 최근에 이 소나무가 죽은 채로 서 있다. 19) 호명면 백송리(白松里)에 있는 면 보호 나무로, 전국 일련번호 3730, 지역 일련번호 3, 수령250년, 높이 15m, 둘레 4m, 면적 980㎡이다(보호수지 1972). 20) 호명면 황지리(黃池里) 논실 앞에 있는 세 그루의 노송(洞神木)으로, 수령 400년이다. 음력 정월 15일에 풍년을 기원하고 재난을 없애 달라고 동민들이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단오 때는 그 나무에 그네를 매어 농악을 즐기고, 동제사를 지낼 때도 이 나무 밑에서 농악을 즐긴다. 이 나무 위에 올라가면 나무가 너무 웅장해서 온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이 소나무 아래에는 아비바우, 어미바우, 아들바우 등 바위 세 개가 있는데, 그 바위들은 한결같이 사람의 상반신을 닮았다. 이 바위들의 목에는 새끼줄이나 창호지를 감아둔다. [傳說] : 이 바위들의 머리에 올라가면 아비, 어미, 아들이 죽는다고 한다. 21) 호명면 황지리(黃池里) 소망실 중앙 쯤에 있는 동뭇고개 아래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고목으로, 이 소나무를 경계로 소망실을 양지마을과 음지마을로 구분한다. 수령 100년, 높이는 조그마하지만, 가지가 가로로 꼬불꼬불하게 뻗어나와 멀리에서 보면 꽃봉우리처럼 생겼다. 주변에는 커다란 바위들로 둘러쌓여 있다. [傳說] : 옛날 이 나무에서 어느 여인이 떨어져 죽었다. 그래서 비가 부슬부슬 오는 밤이면 푸른 불빛이 가끔 냇가 버들 숲에서 발생하여 도랑 섶으로 올라와서 이 소나무 밑 돌 사이에서 흐르면서 사라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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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