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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2,509:소리골...소등골
작성자이춘우 @ 2024.04.24 06:01:03

  도청신도시 예천 2,509 : 소리골...소등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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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골, 소리기, 연동, 연곡동(鳶谷洞) [마을] : 감천면 장산1리(獐山一里)에 속한 마을로, 마을의 바른 쪽에 있는 산의 지형이 마치 솔개가 날아가는 모양(鳶飛形)이고, 또 평해 손씨(孫氏)가 1710년경에 안동군 북후면 신전동(安東郡北後面薪田洞)에서 이곳으로 터를 잡았으므로 '손씨 사는 골'에서 마을 이름이 생겨났다. 1730년 예천 임씨(林氏)가 이거하였는데, 현재는 평해 손씨는 한 가구도 없고, 예천 임씨가 대종을 이루고 있다. 아랫마, 윗마로 나뉘어져 있다. 48가구 282명(1980)이 살고 있다.

 

  소리골(소리가, 鳶谷洞) : 獐山里 소속으로, 마을의 바른쪽에 있는 산의 지형이 마치 솔개가 날아가는 모양(鳶谷形)이라 하여 연류된 명칭이라 하기도 하고, 또 형해 손씨가 약 270년 전에 터를 잡았으며 "손씨사는 골"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50가구가 아래, 윗마을로 나누어져 있다.(甘泉面홈페이지 2013)

 

  소리기 밧재 : →소래기 밧재

  소리미 : →솔리미

  소리티재 [고개] : 감천면 천향리(泉香里) 갓재미 뒤에 있는 고개이다.

  소림무승문무 한국본원(소림사 姉妹結緣 武術示範 公演) [記事] : 2005년 7월 24일 호명면 소림무승문무한국본원(옛 한알학원)에서는 국제장애인협회, 경호협회, 소림사와 자매결연을 4백여 명이 자리한 가운데 경호협회의 무술시범과 아울러 노래자랑과 연예인들이 한데 모여 성대히 행사를 치렀다.(문창호 通信員 醴泉新聞 2005-07-29)

 

  소릿골(小玉谷, 素田谷) [골] : 개포면 경진리(京津里) 옥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소릿골마을이 있다.

  소릿골, 소옥동(小玉洞, 素玉洞), 소전동(素田洞) [마을] : 개포면 경진리경진초등학교 터(京津初等學校址) 서북쪽 조그마한 산 뒤쪽에 있는 마을로, 뒷산에 짐승들이 우글거리고 그 짐승들 울음소리가 밤낮 들려오던 곳이므로 소릿골이라고 하였다. 남서쪽에 건네라는 농경지만 환히 트였고, 그 외에는 산으로 둘러쌓였다. 마을 앞산에는 고인돌이 있다. 1600년 경 울진 부사 주 죽제(朱竹濟)의 둘째 아들 주세흥(朱世興)이 처음 이 곳에 이거하여 대대로 살고 있다. 이 곳 주씨들은 평범한 뜻에서 소옥(素玉)이라 하였으나, 이웃 마을에서 이 마을 옆에 있는 옥동에 비하면 적은 마을이라고 하여 소옥(小玉)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속칭 소리골로 불리어지던 것을 주씨들이 소옥(小玉)으로 개칭하였다. 주 죽제는 선조 대왕으로부터 '삼명죽제 백세정풍(三명竹濟百世情風)' 이라는 시구를 받고서 죽제(竹濟)라고 호를 정했다. 소릿골을 크게는 소릿골, 갱골, 띠방골 등 세 마을을 합쳐서 부르기도 한다. 19가구(1973) 중 신안 朱 9가구, 원주 邊 4가구, 李 4가구, 趙 1가구, 林 1가구 등이 살고 있다가, 12가구 42명(1980)이 살고 있다.

 

  소릿골(小玉洞) : 京津里 소속으로, 신안(新安) 주씨(朱氏)들이 우리나라에서는 한 곳뿐이라는 주자(朱子)의 영정(影幀)을 모시고 사는 마을이다. 뒷산에 짐승들이 우글거리고 그 짐승들 울음소리가 밤낮 들려오던 곳이므로 소릿골이라고 불렀다 한다.(開浦面홈페이지 2013)

 

  소망곡(所望谷) : 醴泉 賊警/ 신문명: 황성신문 1904년/ 분류: 연속간행물 > 신문 > 황성신문/ 제공: 한국언론재단/ 신문명 皇城新聞/ 창간일 1898년 03월 08일 (光武二年 三月 八日 農商工部認可)/ 소장처 국립고궁박물관/ 일자(양력) 1904년 12월 22일 (大韓光武八年十二月卄二日木曜)/ 일자(음력) 1904년 11월 16일 (陰曆甲庚十一月十六日庚寅)/ 구성정보 廣告, 論說社說, 雜報, 外報, 社告, 官報, 電報, 別報, 投稿, 連載, 漫評, 其他/ 형태정보 간기:일간 크기: 면수:04 단수:04 언어:국한문/ 기사제목 醴泉賊警/ 기사유형 雜報/ 기사위치 02면 03단/ 기사본문 ●醴泉賊警 陰十一月初四日醴泉陽山面所望谷에 火賊十九名이 各持電器하고 突人該洞이야 衝火民家하야 六戶延燒하고 家?汁物이 沒燒라하얏더라//

 

  소망동(所望洞) [터] : 임진왜란(1592) 직후에 예천군 간산면(醴泉郡艮山面(陽山面))의 행정 동리 중의 하나로, 1914년 예천군 호명면 화지동 소망동(醴泉郡虎鳴面黃池洞所望洞)이 되었고, 1988년에 호명면 황지리(虎鳴面黃池里) 소망동(所望洞, 소망실)이 되었다.

 

  소망실(所望洞) [마을] : 호명면 황지리(黃池里) 논실 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마을 주위에 산이 높고 험준해서 호랑이가 많이 살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므로 그 피해를 막고자 범이 도망가라고 호망실(虎亡谷)이라고 하였다. 그 후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아 소망(所望)을 이루었다 하여 소망실이라 한다. 1779년 이일천(李日天)이 개척했다. 마을 중앙쯤에 있는 동뭇고개 아래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소나무를 경계로 양지마을과 음지마을로 구분한다. 25가구 180명(1980)이 살다가, 23가구 152명(1983) 중 남원 梁 7가구, 경주 李, 청주 鄭 2가구 등이 살고 있다.

 

  소망실(所望洞) : 黃池里 소속으로, 사람은 살아도 마을 이름은 없었는데 마을 주위의 산이 높고 險峻해서 호랑이가 많이 살아 사람들에게 피해를 줌으로 그 피해를 막고자 범이 도망가라고 虎亡谷, 곧 호망실이라고 하던 곳인데 그 후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아 所望을 이루 었다 하여 소망실이 되었다고 전한다.(虎鳴面홈페이지 2013)

 

  소망일(小望日) [歲時風俗] : 예천군에 전승되어온 민속으로, 음력 정월 14일에 부락제(部落祭)와 벼가릿대를 실시한다.

  소매가격통제 예천군협의회 : 小賣價格統制 醴泉서 協議會 / 신문명 매일신보 1940/ 분류 연속간행물 > 신문 > 每日申報/ 창간일 1905년 08월 11일 (一千九百五年八月十一日)/ 소장처 한국연구원/ 발간정보 석간 간기:일간 언어:국한문/ 일자(양력) 1940년 03월 05일/ 형태정보 크기: 면수:06 단수:16/ 기사위치 03면 09단/ 제공 미디어가온 고신문(http://www.history.go.kr/2014)

 

  소동리(所洞里, 素洞里) [터] : 임진왜란(1592) 직후에 용궁현 내하면에 속한 행정 동리 중의 하나로, 1857년에 용궁현 내하면(龍宮縣內下面) 소동리(素洞里), 원학리(元鶴里), 석계리(石溪里), 마전리(麻田里)로 나뉘어졌다. 1895년(고종 32) 용궁군 내하면 소동(龍宮郡內下面所洞)이 되었고, 1914년에 예천군 지보면(醴泉郡知保面) 소화리(所華里 : 소동(배골)), 마전리(麻田里 : 원학, 석계, 마전)가 되었다(龍宮縣邑誌 1780, 竺山勝覽 1934). →안백골

 

  소동못(所洞池) [못] : 지보면 소화리(所華里) 소동 남쪽에 있는 못이다.

  소동물 외과 수술(小動物 外科 手術) [冊] : 호명면 담암리 출신인 장광호(張洸鎬, 大昌高, 서울大 獸醫學科 卒業, 同 大學院 獸醫學博士, 호암動物病院長, 慶北大 獸醫學科 敎授) 등이 Sluijs, F.J. van.의 저서를 번역한 책으로, 141쪽, 도판(사진), 27cm, 서울 이공월드에서 2000년에 출판하였다. 색인이 포함되어 있다. 소

 

  방이 [마을] : 예천군 생천리(生川里) 생나실 동쪽에 있는 마을로, 솥두깽이산(鼎蓋山)이 있다.

  소두방재 [고개] : 예천읍 생천리(生川里) 소두방이마을 동쪽에 있는 고개로, 전에는 상리면, 하리면에서 이 고개를 넘어서 예천읍으로 다녔는데, 1943년 우계리로 신작로가 나서 폐로가 되었다.

 

  소두방쏘, 소보랑쏘, 솥뚜깽이쏘, 정산쏘(鼎山澤) [터] : 예천읍 생천리(生川里) 솥뚜깽이산 밑에 있는 쏘로, 매우 깊어서 명주실꾸리 하나가 다 들어 갔다고 하나, 홍수로 인한 매몰로 지금은 얕은 물만 흐른다. 이곳에 물이 마르면, 농사가 안된다는 전설이 있다. 1978년에 가뭄이 심했는데도 이곳에는 물이 계속 있었다. 경운기로 물을 계속 퍼내도, 땅속에서 물이 나왔기 때문에 이 마을에서는 가뭄을 이겨낼 수가 있었다.

 

  소등골 [골] : 호명면 한어리(閑漁里)에 있는 골짜기로, 소(牛)의 등처럼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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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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