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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2,563 : 솔개들과 예천농업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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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석 : 태석이 이 친구 또한 비범한 인물이지. 우리가 다닌 학교는 농고학교여서 축사, 농기구실, 상전, ...당번이 있었다. 당번은 주로 가난한 학생들이 맡아서 하고 등록금이 조금 면제되는 제도가 있었는데 태석이도 무슨 당번을 했었던 기억이 된다. 태석이도 노래하면 희모하고 쌍벽을 이룬다. 거기다 창의력이 아주 뛰어났다. 우리 모임의 이름을 청암회라 지은사람도 바로 태석이다. 한국 근대시의 거목인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세 사람의 문인이 있다. 그들이 젊었던 시절 자신들의 문인 클럽을 청록파라 했었고 청록집이라는 시집을 발간하기도 했었다. 그들이 노년이 되면 그 이름을 백록파라 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우리 모임을 거대한 문인들의 모임과 비교 할 순 없지만 우리의 청암이라는 이름은 약간 다르다. 우리가 늙어도 백암이라고 모임 이름을 바꾸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푸른 바위라는 뜻은 거대한 바위가 오랜 세월 비바람을 맞으며 이끼가 끼어 푸르게 된 푸른 바위란 뜻이다. 이끼 낀 푸른 바위처럼 우리의 우정을 영원히 간직하자는 뜻이다. 태석이는 모임 이름뿐만 아니라 청암회가라는 노래도 작사 작곡을 했었다. <흙냄새 향기로운 내 고향 땅에 흩어진 학우들이 다시 모였다. 사랑과 정의와 봉사의 청암회...> I.M.F라는 태풍을 만나 쓰라린 상처가 있었지만 태석이는 이러한 창의력을 바탕으로 훗날 태광 다이아몬드 라는 기업을 창업해서 수출 8억불이라는 놀라운 실적을 올려 중소기업이라는 책자의 표지인물이기도 했었던 장본이기도 하다.
조홍래 : 홍래 이 친구 아주 머리가 비상한 인물이지. 당시 홍래네 집은 여고 앞 잣밭고개에 있었다. 넉넉한 가정은 아니었지만 당시 여고에 다니는 아주 미인누나가 있었고 연세 많으신 어머님과 함께 아주 화목한 가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홍래가 왜 비상한 인물이었다고 생각하느냐? 하면 그 때 우리학교에서는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우고 있었는데 홍래는 당시 일본어를 개인적으로 배우고 있었다. 학교 공부에 충실해야 함은 예나 지금이나 꼭 같은데 학교에서 배우는 독일어를 제쳐두고 일본어를 공부했었다고 하는 점. 잣밭고개 동부초등학교 뒤에서 황 무슨 선생님에게 여고 학생들과 함께 배운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시 일본어를 배우기보다는 여고생들과 함께 공부한다는 말을 듣고 몇 번 간적이 있었다. 공부보다는 여고생에 대한 호기심의 발동이랄까 말하자면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있었던 게지.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해 중도페지 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수업이 끝나고 홍래는 “기리쓰, 게레이!” 하면 우리는 “센세이, 사요나라.” 이렇게 외친 것 같은 생각이 드네. 지금 생각해 보니 홍래는 멀리를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일본어를 한 것이 도움이 되어 1960년대 후반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 가서 연수를 받아 지금의 용인 자연농원의 개척자가 된 것이다.
박찬억 : 찬억이 이 친구 정말로 굉장한 사람이다. 고등학교 시절 과묵하면서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팔방미인이다. 농협대학을 졸업하고 교직에 잠간 있다가 지금은 정신문화센타 원장이 되어 제주도에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만난지는 오래 된 것 같다. 첫 번째 이야기 고교시절 일곱명이 항상 같이 어울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같이 다닌 적이 많았다. 백청이네 집은 예천읍 상동이다. 학교에서 거리가 가까워서 혁정이네 집에 자주 놀러갔었다. 혁정이네 집 뒤 산에는 잔디가 잘 자란 작은 무덤들이 있었는데 혁정이네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그 잔디밭에 자주 갔었다. 잔디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노래를 하기도 했었고, 소월시를 외우기도 했었고 때로는 씨름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어느 날 혁정이가 주선해서 그 동네 처녀들과 저녁에 몰래 만난 적이 있었다. 예천읍 성당 앞에 큰 수양버드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 밑에 국화빵을 만들어 파는 가게가 있었다. 희미한 등불 밑에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도 잘 모르고 국화빵을 어떻게 먹었는지 가슴 두근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일대일로 두사람이 짝이 되어 걸었는데 내가 만난 처녀는 이름이 순지라고 했었던가? 다른 건 모르고 웃을 때 잇몸이 보이는 별로 매력이 없어보이는 아가씨였다. 그 이후로 다시는 만나지 않았는데 다른 친구들도 아마 나와 비슷하게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것 같다. 두 번째 이야기 : 예천농고는 예천읍내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소요되는 교외에 있는 학교다. 운동장 주변으로 수양버들, 버즘나무, 단풍나무, ...등 오래된 나무들이 많이 서있어서 왠만한 대학 켐퍼스 보다 운치가 좋았다. 운동장 옆을 끼고 교사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 300m 정도 올라가면 우리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식물원이 나온다. 식물원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나무는 단연 독일가문비 나무이다. 어른들 세 사람이 팔을 벌려 서로 맞잡고 나무를 둘러싸야 될 정도로 덩치가 크고 높이도 15m 정도 아마도 5층 건물 높이는 될 것 같은 아주 큰 나무다. 1928년 개교 할 당시 독일인 신부님
째 이야기 :곽 휘모 <군 고구마> 권 혁정 < 맨재기 > 김 대학 < 숙맥이 > 김 태석 < 걸 레 > 박 찬억 < 엄 수 > 조 진해 < 등신이 > 조 홍래 < 허발이> 일곱명은 이렇게 자신의 닉네임을 붙였다. 누가 보아도 신통찮은 별명들인데 다들 나름대로 잘 해석을 그럴 듯 했다. 군고구마: 차가운 겨울밤을 녹이는 우정과 사랑의 묘약? 맨재기 : man 再起 (사람이 다시 일어난다.) 숙맥이 : 菽麥이 (콩과 보리 건강식의 상징) 등신이 : 等信이 (어느 누구든 항상 믿는 사람 ) 허발이 : 許發이 (모든 것의 출발을 허락한다.) 걸 레 : 세상의 어둡고 더러운 곳을 닦아준다. 엄 수 : 모든 것을 엄격히 지킨다. 고교 졸업 후 우리가 만날 때는 언제나 애칭을 부르며 정을 나누었다.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시간이 있으면 다음기회로 미루고.... 965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햇수로 45년이니 50년에 가까워 온다. 우리의 만남은 끊어질 듯 이어져 왔다. 초창기 만났을 때는 술도 거나하게 한잔하고 교가에 이어, 응원가, 청암의 노래 등 제법 흥겹고 신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살아온 공간들과 살아온 방법들이 다르니 옛날 보다는 약간의 이질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때로는 섭섭한 마음도 있긴 하지만 그것이 정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모두가 아직도 그 때 그 기분이라면 이상하지 않는가?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데 그런 세월이 4번이나 흐르고 5번째를 기다리고 있는데 ... 5월 30일 60대 중반이 되어 대구에서 만나 동화사를 한바퀴 돌아보고 아쉽게 헤어졌다. 다음 만남은 10월 24일 약속을 잡았다. 다음 우리가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만날지 기대가 된다. 이제 부터가 진짜베기야. 만날수록 흘러간 세월만큼 더 진하고 고귀한 우정의 꽃이 새롭게 피어나리라 생각한다. 전수경 첫댓글 09.06.05 눈에 선합니다.~~ 선생님 친구분들과의 진하고 고귀한 우정, 영원 하시길 기도 합니다. 이제야 궁금증이 풀렸네요, ㅎㅎㅎㅎ 전 그냥 한번 슬쩍 들린 객식군줄 알았거든요....빨리 등업 시켜드려야겠네요. ㅠㅠㅠ(미스터 칼리지 추천 0 조회 100 09.06.03 댓글 1)(daum 2020)
이 5년 정도 되는 독일가문비나무 묘목을 개교 기념으로 심었다니 90년 정도 되었겠지. 문헌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문비나무로는 가장 오래된 나무라고 기록되었다고 한다. 독일가문비나무는 예천농고의 상징이었고 이곳은 사시사철 우리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식물원 뒤쪽으로 가면 왕신으로 가는 산길이 있다. 이 산길을 따라 50m 정도 가면 잔디가 잘 자란 언덕베기 야산이 있는데 날씨가 춥지 않으면 주로 산에서 점심을 먹기도 하고 5교시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여기서 놀기도 했었다. 또 말썽을 부리는 일부 학생들은 여기서 선생님들 몰래 담배를 피운다거나 또는 감정이 서로 좋지 않는 학생들은 여기서 한판 결투를 벌이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우리 일곱명의 세븐스타들도 이곳에서 많은 우정을 쌓으면 고교시절을 보냈다. 세 번째 이야기 : 지금생각해 보아도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겨울 방학식이 얼마 남지 않은 12월 중순경이라 생각되는데 서본동 이던가 희모네 자취방인지 어딘지는 기억이 확실하게 나진 않는데 어쩌다 일곱명의 스타들이 함께 모여 내기를 했었지. 일곱 명 중에서 누군가가 "옷을 다 벗고 팬티만 입은 채 밖으로 나가 한천 강가를 뛰어 여고 앞에까지 갔다 올 수 있느냐?" 하는 화두를 던졌는데 모두가 자신 있다고 했었다. (우리가 있었던 자리에서 여고까지 갔다 오려면 아마도 사오십분 정도 걸릴거야.) 잠시 후 모두가 패기만만하게 옷을 다 벗고 팬티만 입은체 캄캄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날씨도 추웠지만 너무나 어이없는 시도에 어떻게 갔다 왔는지 모르지만 모두가 무사히(?) 다녀왔다. 그 때 한천강가를 달릴 때의 느낌이라던가 만났었던 사람들의 표정 ....이런 것들은 두고두고 우리가 만날 때마다 옛일을 추억하는 단골메뉴가 되었다.네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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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