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제목예천2,590:송간정...송곡리...
작성자이춘우 @ 2024.07.14 06:02:09

  도청신도시 예천 2,590 : 송간정...송곡리...

---

 

  송간정(松澗亭) [亭子] : 용문면 두천리 인곡(仁谷)에 있는 정자로, 경주인 손종후(孫鍾厚)가 창건하였다. 비서승 김홍락(秘書丞金鴻洛)의 기영(記詠)이 있다.(醴泉郡誌 1939)

 

  송계 : →송담

  송계당(松桂堂) [터] : 예천읍 노상리에 있던 건물로, 조선 시대 예천군청의 동헌(東軒)이다.(嶠南誌 1937)

  송계산 : →새산

  송계서원(松溪書院) [터] : 호명면 원곡리(原谷里)에 있던 서원으로, 인동인 장말손(張末孫), 장진을 제향하였다.(韓國人의 族譜)

  송계암(松溪菴), 완서루(浣西樓) [절] : 지보면 마산리 완담 묘장동(浣潭墓藏洞)에 있던 묘승사(墓僧舍)로, 이 곳에 있는 정구령(鄭龜齡)의 산소를 수호하기 위해서 15세기 중엽에 창건하였다. 임진왜란(1592) 때 소실되고 다만 현판 만이 보존되어 오던 것을 1606년(선조 39) 구사동(舊寺洞)으로부터 현 위치인 묘장동(墓藏洞)으로 이건했다. 병자호란(1636)으로 자손들이 산산히 흩어지게 되자, 암승(庵僧) 역시 행방불명되고 건물은 퇴락하였다. 1734년(영조 10) 후손 정중대(鄭重垈)와 정전이 중심이 되어 10여년 간 양송계(養松契)를 갱신하여 후손들이 협력한 결과 1748년(영조 24)에 송계암(松溪菴) 중건을 합의했고, 경향 첨종(僉宗)에 발문(發文)하니 여러 윤손(胤孫)이 나름대로 적극 호응하게 되어 1749년 봄에 승려와 공장(工匠)을 불러 2월 17일에 입주(立柱)하고, 동월 22일 상량했는데, 1753년에 낙성, 송계암(松溪菴)이라 다시 편액하니, 집의 구조는 승사(僧舍)를 본받아 전침후랑(前寢後廊)하고 좌우협익(左右挾翼)하여 당루(堂樓), 재실(齋室), 고사(庫舍), 주포(廚包) 등 총22칸에 이르고 주당(主堂)은 전면 8칸, 측면 4칸, 팔작박공의 거옥(巨屋)이다. 그 후 1875년(고종 12)에 정원석(鄭元錫)이 발의하여 2칸을 증설, 1879년(고종 16)에 낙성, 주당(主堂)에 '완서루(浣西樓)'라는 현판을 추가해서 걸었다. 1978년에 수리하였다.(浣潭誌 1992)

 

  송계암 : 동래정씨 12世 諱,龜齡 선영참배 (예천)/2014년5월15일/ 2014.06.05./ 완담서원(浣潭書院)은 예천군 지보면 마산리 산45번지에 있다. 이 서원(書院)에는 동래... 구조는 재실(齋室)과 강당인 송계암과 사당인 상덕사(尙德祠)가 있고.../ blog.daum.net/wjdgkdnd/ 꽃봉소(daum 2017)

 

  송계암 : 예천의 자랑 1829 : 예천충효 28(祝 김영학/예천방문 355)/ 작성 장병창/ 후손 중대(重岱, 郡守)가 쓴 '''송계암 중건기''', 후손 지집(之鏶)이... 있다. 완담지(浣潭誌) [冊] : 지보면 마산리 예천완담종중소(醴泉浣潭宗中所)에서 번역한.../ www.ycg.kr/open.content/.. 예천군청(daum 2017)

 

  송곡 : →솔티

  송곡동 향약(松谷洞鄕約) [規約] : 호명면 송곡리(松谷里)에 시행되었던 향약으로, 애오와 이정기(愛吾窩李鼎基)가 만들었다.

  송곡리(松谷里) [인터넷] : 호명면에 있는 행정 동리로, 1914년에 송분(松墳)과 사곡(沙谷)의 한 자씩 타서 명명되었다. 이 마을을 지켜주는 것은 건지산이다. 호랑이가 우는 소나무골(虎鳴 松谷) 주산으로, 창공에 홀로 우뚝하게 높이 솟아 범상한 자태로 사방 백여 리에 수 만여 봉우리를 거느리며 평범하고도 자애롭게 은연자중한 모습으로 마을을 지켜준다. "저 산 아래에는 사람을 살리는 이가 살고 있다"고 하여 활인봉이라 하여 옛날부터 불러 왔다" 이 산 아래에는 연안이씨 별좌공파 후손 100호가 반 천 년을 이어 살아 온 집성촌이다. 연안이씨 별좌공파는 경기도 용인 구수동과 판교 너더리에 기반을 두었으며, 파조는 400여 년 전 연산군의 폭정을 피하여 영남으로 이거하여 왔다. 먼저 용문 금당실 덕진당에 자리를 잡고 후진 양성에 힘쓰다가 다시 안동 마동 절강변 도수곡에 무릉정을 지어 재사영웅과 교유하던 중 뜻 밖에 임진왜란을 만나 예천성에서 적을 격퇴하고 이를 인연으로 이 곳 예천 호명 송곡에 자리를 잡아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http://yunani.or.kr)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페이지만족도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성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