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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2685:수락대...
작성자이춘우 @ 2024.10.20 05:59:36

  도청신도시 예천 2685 : 수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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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얘기했듯 그 눈발은 실제 눈이 아니라 수락대 계곡을 흐르는 물이 떨어지면서[水落] 생기는 하얀 물보라다. 그리고 '마른 우레'는 우렁차게 들리는 물소리다. 같은 장면을 조보양(趙普陽, 1709~1788)은, ‘수락대는 하천에 큰 돌이 가로 놓여 물 흐름을 방해하니 수면이 평평하여 위는 높고 아래는 낮아 흡사 강판 같아서 물이 돌 위로 흐르는 것이 건령수(建瓴水) 같으나 폭포는 아니다. 돌 빛이 깨끗하고 희며 윤택해 한 점의 티끌도 없다. 한번 그 지경에 들어가 보면 신선이 사는 곳에 온 듯하다. 흰 물결이 비단 같고 바람소리와 물소리가 조화를 이루어 악기를 연주하는 듯하며, 맑고 쟁쟁한 것은 패물(佩物)을 찬 소리 같고, 시끄러운 소리는 종(鐘)과 경(磬)을 울리는 듯하니 이것이 더욱 수락대의 명승이다’라고 표현했다. 수락대를 찾은 선비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그곳 산수를 성정(性情)을 도야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수락대의 깨끗한 물로 마음을 씻고[洗心], 우렁찬 물소리로 귀를 씻고자[洗耳] 했다. 남명 조식(曺植, 1501~1572)이 말한, '물을 보고 산을 보고, 그리고 역사 속의 고인을 보고 그들이 살던 세상을 보라(看水看山 看人看世)'는 금언을 그대로 현실세계에서 실천하고자 했다. 일종의 유교식 산수독법(讀法)이다. 필자가 유학자들의 그런 관념적 산수관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수락대 길가에 전시돼 있는 김응조와 홍여하가 지은 한시를 읽어봐도 별로 감흥이 일지 않는다. 선비라면 으레 수락대가 아닌 그 어떤 곳에 가더라도 그런 식으로 유교식 문법에 맞춰 비슷비슷한 글을 쓸 것 같기에 오히려 '진정한 수락대 토포필리아'에 대한 갈증만 더해질 뿐이다. 물론 그곳에 터를 잡아 직접 산 것도 아니고 몇 년에 어쩌다 한 번 모임이 열리면 그곳을 방문했을 것인즉 선비들의 그 같은 형식적인 장소애 정도라도 감지덕지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수백 년 동안 숱한 선비들이 수락대를 다녀갔건만 그것을 품은 뒷산(해발고도 175m) 이름조차 하나 지어놓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이 과연 진솔한 마음을 가지고 수락대를 찾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1773년에 조보양이 찬한 '수락대기(水落臺記)'에 나오는 '계산(溪山)'만 해도 그렇다. 기문에서는 일반명사로 사용되었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수락대의 장소 정체성을 한껏 고양시켜 줄 수 있는 뒷산 고유명사 이름으로 사용해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수락대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부디 '계산 수락대'로 명명되는 길이 열리길 바란다. 구곡·동천·선유록 같은 용어는 유자들 간에 통용되는 관념적인 개념에 불과하지만 '계산' 같은 산이름은 만인에게 통용되는 불멸의 장소 정체성 지명이다. 관념적 개념이나 이데올로기는 시대정신이 바뀌면 그야말로 별 볼일 없게 된다. 필자가 옛 선비들의 수락대에 대한 관념적 토포필리아를 넘어 그 장소에 대한 '진정한 토포필리아'의 세계를 찾아 나선 까닭이다.

 

  ◆수락대에 대한 감성적 토포필리아: 마음속 주관적 장소 세계 II : 수락대에 대한 '진정한 토포필리아'는 어릴 적 그 부근 시골에서 자라나 성인이 되어 도회지로 이주한 사람의 마음속에 내재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어릴 때일수록 관념에 적게 물들어 그만큼 수락대의 자연과 순수한 교감을 했을 수 있고, 또한 시골환경과는 사뭇 다른 각박한 도시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아름다운 추억이 서려 있는 고향 땅이 더욱 사무치게 그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그런 예상은 적중했다. 수락대 인근 덕율초등학교 출신자 중에 그곳을 놀이터 삼아 자라난 사람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곳에 소풍을 가기도 하고, 자연 관찰을 하러 가기도 하고, 멱을 감으러 가기도 해서 그 누구보다도 수락대에 대해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장소애가 바로 현지에 직접 거주해 본 사람의 마음속에 심어져 있는 '진정한 토포필리아'다. 그 토포필리아는 앞에서 살펴본 유학자들의 '관념적인 토포필리아'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적(理的)이기보다는 기적(氣的)이고, 정신적이기보다는 신체적이고,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고, 형식적이기보다는 실용적이고, 관념적이기보다는 본능적이다. 그야말로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 딱 들어맞는 장소애가 바로 그 진정성 있는 '감성적 토포필리아'다. 수락대 경역은 석관천을 경계로 크게 동쪽과 서쪽, 남쪽과 북쪽 등 네 개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동쪽 기슭에는 수락대가 위치해 석관천의 바위와 물을 내려다보고 있고, 서쪽 기슭에는 아직 아무런 시설이 돼 있지 않지만 그래도 관광객이 다니는 데는 불편함이 없도록 오솔길은 다듬어져 있다. 서쪽에서 동쪽을 향해 바라본 수락대의 동-서 방향 중심축. 바로 앞이 전망대 바위이고, 물 건너 나무 바로 뒤쪽 바위가 ‘수락대’와 ‘수락동천’이 각자돼 있는 바위, 그 오른쪽이 ‘서애선생장구지소’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바위로서 예전에 정자가 세워져 있던 곳이다. 조선조 내내 동쪽 기슭에서 선비들이 관념적 토포필리아를 만들어왔다고 한다면, 서쪽 기슭에서는 지난 몇 십 년 동안 덕율리 꼬맹이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면서 순수하면서도 진정한 토포필리아를 구축했다. 바위마다 개성 있는 이름을 붙이고 계곡 안 이곳저곳의 특징들을 보이는 대로 이미지화해 마음에 담았다. 그 결과 몇 십 년 만에 수락대를 다시 찾은 그들의 눈에는, 전망대 바위, 촛대 바위, 탈의실 바위, 목욕탕 바위, 미끄럼틀 바위, 매운탕 바위 등과 같은 각양각색의 바위들이 여전히 저마다 존재감을 뽐내고 있고, 수심이 얕아 어린이들이 목욕하는 장소였다는 북쪽의 작은 보(洑)와 어른들이 주로 이용했다는 남쪽 바위 밑의 깊은 물웅덩이도 변함없이 물 깊이 차이를 보이고 있음이 한눈에 비춰지는 것이었다. 석관천 냇물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위험한 곳과 고기가 많이 잡히는 바위 밑 굴속 같은 곳이 따로 있었고, 그때 누가 물에 빠졌는데 건져줬다고 하는 등 수많은 장소 경험 스토리들이 대화 속에서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기억의 또 다른 구성 요소인 인물이나 사건 등이 그 배경 무대가 되는 장소와 함께 할 때 그 기억이 오래 갈 수 있고 또 의미 있는 추억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재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수락대의 본령인 '물 떨어지는[수락]' 바위 이야기에서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진정한 토포필리아'는 절정에 달했다. 그곳은 일찍이 서애 선생이 '물보라가 마치 눈발이 흩날리는 것[飛雪]과도 같다고 한 바로 그 현장이다. 그런데 "저 물밑 바위가 언뜻 보면 낮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높이가 3m가량 되는 곳으로서 제법 낙차가 있어 해지는 줄 모르고 물미끄럼을 타고 놀았는데, 강을 거슬러 오르는 많은 물고기들이 수면 위로 함께 뛰어 올라 훨씬 더 흥겨웠다"고 별일 아닌 듯 술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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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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