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도청신도시 예천 2686 : 수락대...수락암...
---
누가 그 '기(氣)'적인 교감으로 이루어진 순수한 수락대 토포필리아를 욕할 수 있으리오. 누가 그 '몸'으로 직접 부딪치며 신체 안에 저장해 놓은 진정성 있는 토포필리아를 폄하할 수 있으리오. 미끄럼틀 바위. 서애 선생이 물이 떨어지면서[水落] 생기는 물보라를 눈발[飛雪] 같다고 관념적으로 묘사한 그 현장을 덕율리 꼬맹이들은 여름 내내 물고기와 함께 ‘기(氣)’를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장소로 활용했다. 예전에 퇴계 선생 앞에 소낙비를 흠뻑 맞은 젊은 선비 두 명이 찾아왔는데 하인을 보내 동정을 살펴보니 한 사람은 겉옷을 벗어 쥐어 짠 후 말리고 있는데, 또 한사람은 젖은 갓도 벗지 않은 채 방바닥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선비답게(?)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는 거다. 억지로 비유하자면 전자는 감성적 토포필리아이고, 후자는 관념적 토포필리아에 해당한다. 퇴계 선생이 누구를 제자로 삼았을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수락대 계곡이 예전의 모습을 잃어버린 데 대해서는 모두가 애석해 한다. 전에는 '서애선생장구지소'라고 새겨진 바위 위에 수락대 정자가 얹혀 있어서 목욕하다가 쳐다보면 물과 어우러진 그 맵시가 거의 선경을 방불케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1976년 7월에 폭우로 무너진 후 2001년에 지금처럼 길 뒤쪽으로 물러나 새로 지어지고부터는 영 볼품이 없게 됐다고 한숨짓는다. 워낙 수락대에 대한 좋은 추억과 유대감을 갖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말을 하는 눈길에서 진한 애틋함이 묻어난다. 기왕에 생활하수와 축산폐수 등으로 물이 탁해져 더 이상 목욕하는 장소로 활용하기도 어렵고, 또 불과 몇 백 미터 거리에 예천천문우주센터와 예천박물관이 있어서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락대의 장소 정체성을 그쪽에 맞춰 강화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필자가 얘기하자 모두들 맞장구를 치며 좋아한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수락대 맞은편 오솔길에 나무데크를 설치하고 군데군데 전망대와 쉼터 의자를 만들어 놓는 거다. 서양식 하천지형 명칭과 옛 석율리 어린이들이 명명한 온갖 바윗돌 이름들을 함께 적시하고 그 해설문과 사진들을 안내 입간판으로 세워 놓는 거다. 다양한 물고기 그림과 폐교된 예전의 석율초등생들이 남긴 시와 그림도 덧붙여 그곳을 훌륭한 지질 및 생태 답사지로 변모시켜 놓는 거다. 그리되면 수락대 계곡의 동쪽은 유서 깊은 수락대가 인문의 향기를 풍기고, 서쪽은 미래지향적인 환경탐사 전망대가 강렬하면서도 꾸밈없는 토포필리아의 세계를 제공해 주게 된다. 그곳을 찾는 학생들에게 동쪽에서는 향토 인물을 스토리텔링해 웅지를 심어 주고, 서쪽에서는 살아 숨 쉬는 자연을 스토리텔링해 감성을 불어넣어 주면 된다. 현대와 같이 장소성이 약화된 우리네 삶터 문화 조건 속에서 수락대는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맞추는 중요한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곳이다. 청소년들의 마음속에서 자꾸만 희석돼 가고 있는 장소 감각과 인문 정서, 그리고 토포필리아 정신을 수락대에서 되살릴 수 있게 하라. 그곳에서 자연과학적인 원리와 인문학적인 창의 정신을 융합해 힘찬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하라. '계산 수락대'의 환골탈태를 기원한다. [이몽일 경북환경연수원 객원교수·풍수학박사](정차모 기자 예천인터넷뉴스 2019-08-16)
수락대선유록(350年 만에 햇빛을 본 水落臺仙遊錄 : 한글로 飜譯 發刊-조동윤 刻苦의 努力으로 世上 밖으로 나오다) [記事] : 조동윤 예천군청 산림축산과장이 수락대선회록을 번역 출간했다. 수락대는 예천군 감천면 덕율리와 포2리 경계지점의 석간천 계곡에 있는 승경지로 현 예천충효관 옆에 위치해 있다. 조 과장은 수락대선회록 원본을 2009년 10월 극적으로 입수하여 어려운 작업을 마치고 번역을 완료하고 2011년 3월 초판을 발행했다. 수락대는 지금으로부터 408년 전 조선 선조 임인년(1602년) 봄 서애 유성룡 선생이 제자들과 북쪽으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단산 땅을 유람하면서 귀향길에 감천현 수락대를 둘러보고 그 경지에 감탄한 후 “찬 물방울이 흩어져 떨어지는 것이 맑은 날에 눈이 흩날리는 것 같다”는 비유로 수락대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후 이 기록을 바탕으로 수많은 서애의 문하생 선비들이 수락대를 찾아 경치를 감상하고 시회를 열고 풍류를 즐겼다. 1661년 9월 서애 선생의 제자인 학사 김응조 선생이 감천현 물계서원과 봉산서당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말년을 보낼 때 목재 홍여하 선생을 앞세워 스물다섯분이 수락대 선유회 시사를 결성하면서 원본이 만들어 졌다. 수락대는 1879년 권대신 등 감천지역 유지들이 수락대 건립을 논의한 후 1915년 건립에 착공 1916년 완공했다. 1967년 수락대 보수에 이어 1976년 7월 폭풍우 유실된 것을 예천군에서 2001년 현 수락대를 신축하고 이 일대가 충효테마공원으로 조성되고 있다. 조동윤 과장은 “선회록을 번역 발간하면서 끝내 아쉬운 점 하나는 선유록 계회도를 찾지 못한 것이었다.”고 하며 “선유록 계회도가 있었던 것은 확실하나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음을 애석하게 생각 한다”고 말했다. 특히 조 과장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꼼꼼하게 바로잡아주시고 함께해 주신 김규탁 선배님께 감사드린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 책은 총 167쪽으로 선유회 계원 25명의 인물을 자세히 소개하고 수락대기, 창건기, 고유기, 선회록 원본 등을 수록해 놓았다. 한옥 구경과 옛글 읽기가 취미인 조동윤 과장은 감천면 출생으로 예천농고를 졸업하고 현재 예천군청에 근무하고 있다. 불혹에 야학으로 경북전문대와 상주대 행정학과를 졸업했으며 “예천기행”, “일적”, “산에는 꽃이 피네” “예천향토사연구편” 등을 저술했다.(이태현 記者 醴泉뉴스 2011년 04월 13일)
수락암 [記事] : 국역 영가지.선성지합본/ 간행년 : 2001/ 저자 : 안동문화원/ 발행처 : 안동문화원/ 1) 산천(山川)/ 수락암(水落巖) 감천현(甘泉縣) 서쪽 7리에 있다. 찬 물방울이 흩어져 떨어져 대낮에도 눈이 내리는 듯 하다. 곁에 대암(臺巖)이 있다.(www.koreastudy.or.kr 2007)
본 공공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