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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2741 : 수주촌...수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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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이 묻기를, 장군은 어찌 이처럼 늦게 일어납니까?하니, 어제 배를 타서 몸이 노곤하여 일찍 일어날 수 없다.라고 대답하였다. [제상이] 밖으로 나오자, 미사흔이 도망한 것을 알고 드디어 제상을 결박하고, 배를 달려 추격하였으나 마침 안개가 연기처럼 자욱하고 어둡게 끼어 멀리 바라볼 수가 없었다. 제상을 왜왕의 처소로 돌려보냈더니, 그를 목도(木島)로 유배보냈다가 곧 사람을 시켜, 섶에 불을 질러 전신을 불태운 후에 목베었다. 대왕이 이 소식을 듣고 애통해 하고, 대아찬을 추증하였으며, 그 가족에게 후히 물품을 내리었다. 그리고 미사흔으로 하여금 제상의 둘째 딸을 맞아 아내로 삼게 하여 보답하였다. 이전에 미사흔이 돌아올 때 [왕은] 6부(六部)에 명하여 멀리까지 나가 맞이하게 하였고, 만나게 되자 손을 잡고 서로 울었다. 마침 형제들이 술자리를 마련하고 마음껏 즐길 때 왕은 노래와 춤을 스스로 지어 자신의 뜻을 나타냈는데, 지금 향악의 우식곡(憂息曲)이 그 것이다.
[原文] : 朴堤上 或云毛末 始祖赫居世之後 婆娑尼師今五世孫 祖阿道葛文王 父勿品波珍 堤上仕爲良州干 先是實聖王元年壬寅 與倭國講和 倭王請以奈勿王之子未斯欣爲質 王嘗恨奈勿王 使己質於高句麗 思有以釋憾於其子 故不拒而遣之 又十一年壬子 高句麗 亦欲得未斯欣之兄卜好爲質 大王又遣之 及訥祗王卽位 思得辯士 往迎之 聞水酒村干伐寶靺․一利村干仇里․利伊村干波老三人有賢智 召問曰 吾弟二人 質於倭․麗二國 多年不還 兄弟之故 思念不能自止 願使生還 若之何而可 三人同對曰 臣等聞良州干堤上 剛勇而有謀 可得以解殿下之憂 於是 徵堤上使前 告三臣之言而請行 堤上對曰 臣雖愚不肖 敢不唯命祗承 遂以聘禮入高句麗 語王曰 臣聞交國之道 誠信而已 若交質子 則不及五 誠末世之事也 今寡君之愛弟在此 殆將十年 寡君以在原之意 永懷不已 若大王惠然歸之 則若九牛之落一毛 無所損也 而寡君之德大王也 不可量也 王其念之 王曰 諾 許與同歸 及歸國 大王喜慰曰 我念二弟 如左右臂 今只得一臂 奈何 堤上報曰 臣雖奴才 旣以身許國 終不辱命 然高句麗大國 王亦賢君 是故 臣得以一言悟之 若倭人不可以口舌諭 當以詐謀 可使王子歸來 臣適彼 則請以背國論 使彼聞之 乃以死自誓 不見妻子 抵粟浦 汎舟向倭 其妻聞之 奔至浦口 望舟大哭曰 好歸來 堤上回顧曰 我將命入敵國 爾莫作再見期 遂徑入倭國 若叛來者 倭王疑之 百濟人前入倭 讒言新羅與高句麗謀侵王國 倭遂遣兵 邏戍新羅境外 會高句麗來侵 幷擒殺倭邏人 倭王乃以百濟人言爲實 又聞羅王囚未斯欣․堤上之家人 謂堤上實叛者 於是出師將襲新羅 兼差堤上與未斯欣爲將 兼使之鄕導 行至海中山島 倭諸將密議 滅新羅後 執堤上․未斯欣妻以還 堤上知之 與未斯欣乘舟遊 若捉魚鴨者 倭人見之 以謂無心喜焉 於是堤上勸未斯欣潛歸本國 未斯欣曰 僕奉將軍如父 豈可獨歸 堤上曰 若二人俱發 則恐謀不成 未斯欣抱堤上項 泣辭而歸 堤上獨眠室內晏起 欲使未斯欣遠行 諸人問 將軍何起之晩 答曰 前日 行舟勞困 不得夙興 及出 知未斯欣之逃 遂縛堤上 行舡追之 適煙霧晦冥 望不及焉 歸堤上於王所 則流於木島 未幾使人以薪火燒爛支體 然後斬之 大王聞之哀慟 追贈大阿 厚賜其家 使未斯欣 娶其堤上之第二女爲妻 以報之 初 未斯欣之來也 命六部遠迎之 及見握手相泣 會兄弟置酒極娛 王自作歌舞 以宣其意 今鄕樂憂息曲 是也(http://www.koreandb.net/Sam/samlist.asp 2005)
수주촌 [記事] :水酒村에 대한 KRpia-한국의 지식콘텐츠 역사자료이다./ 1. 박제상 1 [표점 교감본-삼국사기]/ 김부식 저 | ㈜누리미디어/ 王嘗恨奈勿王使己質於高句麗, 思有以釋憾於其子, 故不拒而遣之. 又十一年王子{壬子}1554), 高句麗, 亦欲得未斯欣之兄卜好爲質, 大王又遣之. 及訥祗王卽位, 思得辯士, 往迎之. 聞水酒村千{干}1555)伐寶靺․一利村干仇里?․利伊村干波老三人有賢智, 召問曰: 吾弟二.../ 표점 교감본-삼국사기 > 역주삼국사기 원문 내용 > 삼국사기 권 제 45 > 열전 제 5 > 박제상 > 박제상 1// 2. 박제상 [삼국사기․삼국유사]/ 일연 저 | ㈜누리미디어/ ...請以奈勿王之子未斯欣爲質, 王嘗恨奈勿王使己質於高句麗, 思有以釋憾於其子, 故不拒而遣之, 又十一年壬子, 高句麗亦欲得未斯欣之兄卜好爲質, 大王又遣之, 及訥祇王卽位, 思得辯士往迎之, 聞水酒村干伐寶靺一利村干仇里?利伊村干波老三人有賢智, 召問曰, 吾弟二人, 質於倭麗二國, .../ 삼국사기․삼국유사 > 삼국사기 원문 내용 > 삼국사기 원전 > 삼국사기 권 제45 > 열전 제5 > 박제상// 3. 박제상 [삼국사기․삼국유사]/ 김부식 저 | ㈜누리미디어/ ...삼고자 하므로 大王(대왕)은 또 그를 보냈다. 訥祇王(눌지왕)이 卽位(즉위)하자 辯士(변사:말 잘하는 사람)를 구해 가서 (두 아우를) 맞이해 올 것을 생각하고 있던 바, 水酒村干[수주촌간:村主(촌주)] 伐寶靺(벌보말)과 一利村干(일리촌간) 仇里?(구리내.../ 삼국사기․삼국유사 > 삼국사기 본문 내용 > 삼국사기 권 제45 > 열전 제5 > 박제상//
수주현 [記事] : 水酒縣에 대한 KRpia-한국의 지식콘텐츠 역사자료이다./ 1. 경상도 [국역 증보문헌비고]/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역주 | ㈜누리미디어/ ...래 굴화현(屈火縣)이다. 경덕왕 때 곡성(曲城)으로 고치고 명주(溟州)에 예속시켰다. : 현종 때 안동에 편입시켰는데, 안동 동쪽 33리에 있다. : 본래 수주현(水酒縣)으로,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군으로 삼았다. : 초기에 보주(...// 국역 증보문헌비고 > 증보문헌비고 본문 내용 > 증보문헌비고 제17권 - 여지고 5 > 군현 연혁 3 > 경상도// 2. 안동부 [고려사]/ 정인지 외 저 | ㈜누리미디어/ ...仁宗二十一年 置縣令 神宗二年 以嘗陷賊降爲監務忠烈王時倂于大丘尋復舊.[三國史記云 景德王改仇火縣爲高丘縣後合屬於縣 ] 有風穴又有?穴.[立夏後?始凝極熱則堅冬則溫氣如春]○基陽縣 本新羅水酒縣 景德王改爲醴泉郡 高麗初更名甫州 顯宗九年 來屬 明宗二年 藏太子胎改今名陞爲縣令官.../ 고려사 > 고려사 텍스트원문 > 《고려사》 제57권 - 지 제11 > 지리 2 > 상주목 > 안동부// 3. 안동부 [고려사]/ 정인지 외 저 | ㈜누리미디어/ ...)과 빙혈(氷穴)〔입하(立夏)후에 얼음이 얼기 시작하여 한창 더운 때면 더욱 굳어지며 겨울에는 따뜻하기가 봄 날씨와도 같다〕이 있다. 기양현(基陽縣)은 원래 신라의 수주현(水酒縣)인데 경덕왕이 예천군(醴泉郡)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보주(甫州)라고 고쳤고.../ 고려사 > 고려사 번역문 > 《고려사》 제57권 - 지 제11 > 지리 2 > 상주목 > 안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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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