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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1809:예천충효9(祝권용태/예천한우/예천방문335)
작성자장병창 @ 2009.01.05 06:57:32

  예천의 자랑(1809) : 예천 충효 9(附 예천경찰서 경무계 권용태 경사, 31일 경찰청장 표창...축하합니다/예천 한우, SBS에 등장/예천방문 335)


  효우가 독실한
  정인언(鄭寅彦) : 구한 말, 자는 춘길(春吉), 호는 와운(窩雲), 본관은 동래, 중대(重岱)의 후손, 효우(孝友)가 독실(篤實)하고, 의지와 덕행이 고결(高潔)하여 제자들이 많았고, 사림의 추앙을 받았다. 유고(遺稿)가 있다.(朝鮮환輿勝覽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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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가 뛰어나 명망이 높았던 정인주(鄭麟周) : 旣載
  부모를 모심에 효성이 지극하였고, 친환을 당하자, 69세의 노령에도 한겨울 추위를 무릅쓰고 목욕재계하고 설단 기도하여 효험을 얻었고, 부모상(父母喪)에도 예도에 소홀함이 없던 정중대(鄭重垈) : 旣載
  조상의 향화를 끊을 수 없을지니 춘추 향사는 길이 끊지 말라고 한 정지(鄭沚) : 旣載
  효도가 독실한 정지일(鄭之鎰) : 旣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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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조 때 효행을 치하한 정문이 세워진
  정충원(鄭忠元) : 호는 파취헌(把翠軒), 본관은 연일, 포은 몽주(圃隱夢周)의 후손, 참봉(參奉)을 지냈다. 아버지가 병을 얻어 한 겨울에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자, 강에 나가 얼음에 구멍을 뚫으니, 잉어가 튀어나왔다. 선조 때 그의 효행을 치하하여 정문을 세웠다.(내고장 전통가꾸기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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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도를 다하며 홀어머니 슬하를 떠나지 못하여 벼슬길을 멀리한 정태응(鄭泰膺) : 旣載
  효성이 돈독한 정혜선(鄭惠善) : 旣載
  10세에 상을 당하여도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룬 정호상(鄭好相) : 旣載
  효우가 독실하여 기림을 받은 정희(鄭희) : 旣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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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성이 지극하고 충효를 기강으로 삼은
  조가상(趙家相) : 감천면 출신, 자는 치종(穉宗), 호는 학남(鶴南), 본관은 한양, 효성이 지극하였고, 충효를 기강으로 삼았다. 박주종(朴周鍾)과 더불어 서원 복원 상소를 제작하였고, 영남 제현 수백 명과 경학을 강론하고 후학을 많이 배출하였다. 소장(疏狀)과 동지동참록(同志同參錄)이 보존되고 있다.(趙東翰, 醴泉郡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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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자로서 <해동삼강실록>에 실린 조광국(趙光國) : 旣載
  효성이 천출로 지극한 조명한(趙鳴漢) : 旣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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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극한 효성을 보는 사람들이 기이하다고 한
  조보양(趙普陽) : 1709(숙종 35)-1788(정조 12), 감천면 유리 출신, 자는 견경(見卿)ㆍ인경(仁卿), 호는 팔우헌(八友軒), 본관은 한양, 유학(幼學) 원익(元益)의 2자, 규양(揆陽)의 동생, 득양(得陽)ㆍ의양(宜陽)ㆍ몽양(夢陽)의 형, 욱( )ㆍ안(晏)ㆍ집ㆍ석우(錫우)의 아버지, 고산 이유장(孤山李惟樟)과 소은 이경익(小隱李景翼)의 제자이다. 뛰어난 총명에 지극한 효성으로 보는 사람들이 기이(奇異)하다고 하였다. 청대 권상일(淸臺權相一)의 제자로서 사서육경(四書六經), 주퇴문자(朱退文字) 외기삼백(外朞三百) 상수(象數) 등을 배울 때 칭찬을 많이 받았다. 향시(鄕試)에 여러 번 합격, 편부 슬하(嚴侍下)에서 유학(幼學)으로서 1747년(영조 23) 식년 생원시에 3등 45위로 합격, 동년 식년 진사시에 3등 73위로 합격, 1773년(영조 49) 증광 문과에 병과 46위로 65세에 조카 석회(錫晦)와 동방(同榜)으로 급제하여 숙질(叔姪)이 비천당(丕闡堂)에 함께 돌어가니, 왕이 일가 쌍계(一家雙桂)를 칭찬하면서 전적(典籍)을 직접 제수(除授)하였다. 그 후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병조 좌랑(兵曹佐郞)을 거쳐 예조 좌랑(禮曹佐郞) 당시 영조(英祖)의 외손(外孫)으로 세도를 부리던 정후겸(鄭厚謙)에게 모욕을 당함에 조정이 오래 몸담을 곳이 못 됨을 간파하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임하고 귀향하여 이전처럼 학문과 도학적(道學的) 교류, 그리고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그에게는 많은 제자들이 몰려들었는데, 반드시 지성으로 가르쳐 자기 수양을 통해 세상에 쓰일 인재로 양성했으나 성품이 본래 겸양(謙讓)이 많아 일찌기 한 번도 스승으로 자처한 적이 없었다. 또한 부모를 모시는데 힘썼다. 어머니 병환에 손가락 피를 드리기도 하였고, 아버지 상(喪) 때는 70세인데도 3년 시묘살이를 한 효자이다. 1788년에 용양위 부호군(龍양衛副護軍),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僉知中樞府事兼五衛將)에 승진하였다. 일생을 효(孝), 송(松), 죽(竹), 매(梅), 국(菊)으로 대자연을 벗을 삼아 산동(山東)에서 천곡서당(泉谷書堂)을 세우고 제자들에게 성리학을 가르치면서 자호를 팔우헌(八友軒)이라 하였다. 성리학예 전력한 당세의 거유(巨儒)로서 명성이 높았다. 청빈한 벼슬 생활과 덕행과 효행을 실천하고 학행을 숭상하니 학자로서 후배들의 귀감이 되었다. 남야 박손경(南野朴孫慶, 1715-1782), 대산 이상정(大山李象靖, 1711-1781), 해좌 정범조(海左丁範祖), 하지 이상진(下枝李象辰) 등과의 친분이 두터웠고, 저서로 <팔우헌 문집(八友軒文集)> 8책이 있다. 지금 주손 가(胄孫家)에는 "양계초려(陽溪草廬)''''라는 현판 원본 글씨와 현 위치로 이건(移建)한 천곡서당 (泉谷書堂)이 남아 있고, 문집(文集) 4권이 남아 있다.


  산거팔영(山居八詠)은 다음과 같다. 【山】 : 밀어도 가지 않고 불러도 오지 않지만, 산은 깊고 은은하며 자태높고 웅장하네. 가을 단풍 봄꽃을 가리지 않고 감싸니, 자연의 참 모습으로 사랑할만 하네. 【水】 : 흐르고 흘러 언젠가 바다에 이르고자, 조용하고도 쉬임없이 물은 흘러 간다. 이미 흘러간 여울을 헤쳐 얼굴 씻으니, 맑은 물소리 다시금 귀에 가득차네. 【風】 : 바람이 언제 왔다 가는지 몰라도, 이따금 추녀끝과 방 안을 가득 채우네. 숲 사이로 지나가며 송죽(松竹)을 흔들어 놓지만, 바람자니 책장 흩날리지 않고 한적함을 즐기네. 【月】 : 하늘 아래 어느 집엔들 비추지 않으랴만, 초라한 내 집을 더욱 밝게 비추는 듯 하네. 달빛 아래서는 완연한 백발도 두려워함 없이, 편안히 평상에 누워 책을 읽어도 좋으네. 【松】 : 털끝처럼 작은 싹이 돋아 나와 마침내 소나무는, 구름을 뚫고 하늘을 받치네. 반듯한 집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거나, 운학(雲鶴)이 찾아와 보금자리를 틀게 하네. 【竹】 : 내가 사랑하는 건 위수(渭水) 위에 심어 놓은 대나무 숲이 아니라, 내 뜨락에 있는 다만 몇 그루라네. 겨울 오고 한해 저물어도 풀빛 변치 않고, 의연히 고사리 덤불 속에 서서 맑은 바람 거느리네.【梅】 : 안 뜰 깊숙히 매화를 심으니, 아름다운 풀과 어울려 외롭지 않네. 해마다 봄비 내린 뒤 처마를 따라 거닐며, 갓 피어난 꽃과 웃음을 나누고 싶네. 【菊】 : 둥근 저녁상에 국화꽃잎 즐기고 도연명(陶淵明)이 술잔에 띄워 마심은 먹기 위함이 아니라, 오상 고절의 운치(韻致)를 취함이었네. 만약 먹어서 즐겁고자 한다면, 아름다운 곽 향이나 몇 이랑 심어 보소. [詩] 독서동(讀書洞)/ 마을 이름 독서라 글공부 해야 하니/ 글 읽지 않아 그 이름 헛되게 말아라/ 그러나 그 깊은 의미 찾지 않는다면/ 뭣하러 그 많은 책 외운단 말인다/ 묘는 감천면 두곡(杜谷) 병좌(丙坐)에 있는데, 묘갈명(墓喝銘)은 예조참판 풍산 유태좌(柳台佐)가 지었다.(禮鄕醴泉 1994, 醴泉郡誌 1939, 嶠南誌 卷4 安東條 1937, 朝鮮환輿勝覽 1929, 安東鄕廳事例謄錄, 醴泉文化 7輯 1994, 司馬榜目, 文科榜目, 醴泉의 金石文 2003)


  조보양 [記事] : 유교관련도서/ 예천의 금석문 1 | 간행년:2003/ 저자:예천문화원/ 발행처:예천문화원/ 八友軒 漢陽趙公(普陽) 墓碣銘/ ...B202_0081.jpg 팔우헌 한양조공(보양) 묘갈명/ 공의 휘는 보양(普陽)이요 자는 인경(仁卿)인데 조씨니 ...(韓國國學振興院 ugo.net 2008)


  조보양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44년 7월 6일 (신묘) 원본1282책/탈초본71책 (24/28)  1768년 乾隆(淸/高宗) 33년/ ○ 慶尙道生員成泂·趙天經·金柱雲·金達胤·崔萬柱·權莘·趙葵陽·權?·蔡?·權正通·金行源·權正運·金瑞吉·崔光玉·權謖·趙普陽·丁載老·柳長源·金聖翼·柳元源·李師靖·李祚範·權正欽·柳在春·崔恒鎭·金道行·南大萬·李敦恒·南龍萬·鄭一銓·南景復·崔光岳·朴天佑·崔廷柱·李益中·崔光翊·孫思駿·權?·金龍燦·黃景?·李華國·洪?·權思儼·鄭履寅·崔光稷·洪天休, 進士曺景稷·蔡?·申光五·宋學濂·趙錫喆·金光澈·李挺恒·黃羽漢·金若龍·李岡燾·金夢儀·孫思翼·南景宅·金翰東·李鼎勳·李鼎宇·李標·成彦極·安致重·金樂恒·權?, 幼學朴春?·趙最彬·洪普萬·權相夔·沈翼之·吉致迪·李朝海·洪濟萬·朴春海·趙榮漢·金尙德·李鯤海·李挺洛·鄭浣·李挺湖·鄭瀷·朴思澈·崔碩柱·吉致麒·朴孫慶·金夢源·朴思淵·吳錫采·朴璿源·趙榮老·崔一柱·金柱喆·趙榮九·崔鼎柱·朴震文·鄭澄·朴思濬·任顯大·鄭師汲·金柱勳·吉致益·曺善稷·洪植·朴思彬·成世柱·金尙行·洪宅休·權重機·吉致麟·金鑽·成秀柱·朴相宅·權思履·金絅·盧處元·金道溫·權聖迪·權致度·康錫大·盧志文·金震采·金兌亨·朴?·鄭壽恒·高命大·金必仁·黃石濟·宋之翰·金重龜·邊國賓·金鼎夏·李鎭九·權禹·宋翼台·權進德·金始大·盧澈·朴致宅·權翼鴻·朴漢禹·文復興·趙允權·黃德麟·尹汝欽·黃有一·張壽坤·呂弘八·金允時·尹相聖·金光漢·李錫奇·李達普·丁志善·金昌鍵·李命新·金夢?·呂最永·金錫權·呂會永·金復和·李建?·柳?·康錫履·柳宅植·姜?·李錫祿·成溥·李宗洙·金夢泰·孔胤道·金夢履·孔胤德·金德恒·南明遠·金養和·李泰完·金厦鍵·柳龍采·金亨鍵·李克大·李益慶·李克己·李台緖·鄭必相·金振久·金應奎·崔漢天·李雄弼·琴丁運·李謹中·李東沆·李時復·宋師鎭·李基運·宋漸鎭·宋啓洙·李東龍·李必和·宋學海·尹砥國·金絢·金緻·李震泰·金恒錫·徐祜漢·李顯行·宋宅中·尹興莘·韓復命·李增久·李炳遠·呂性復·朴最茂·曺宇基·李顯朝·呂陽復·趙錫魯·權?·洪漢朝·金緯錫·金正倫·朴成翰·鄭仁相·曺楨國·金聖煥·邊鎭維·李性修·洪龍翼·趙廷祿·成弘柱·朴永慶·尹光秀·李師松·宋彭錫·朴弘建·李堯德·呂仁復·李益儉·姜世忠·權復仁·金光傳·金克禮·丁樂愼·宋思仁·郭起文·姜宅揆·黃斗南·金學貫·權正凝·安鼎然·權思彦·安景奭·任一課·安台重·安景洛·任尙喆·李龜鏡·鄭德天·蔡蓍龜·鄭宅東·成彦霖·李敦等疏曰, 伏以, 陟降垂?, 聖算彌隆, 邦休滋至, 縟儀載擧, 臣民歡?, 中外惟均。周王壽考, 遐不作人者, 卽崇奬儒術, 振勵士氣之謂也。臣等仍伏念, 昔我宣陵·靖陵之世, 儒賢輩出, 於斯爲盛時, 則有若故校理鄭鵬, 學問醇正, 道德純備, 生而模楷於一世, 沒而俎豆於百年, 則在朝家, 重道象賢之義。合有贈爵易名之典, 而泯泯焉, 以至于今, 臣等竊不勝區區抑鬱之私, 而?伏遐鄕, 未卽伸?足叫?之誠。今當金烏書院賜祭之日, 益不勝感發興起之心, 玆敢相率入洛, 略以鵬之出處事行, 仰陳於??之下, 幸聖明試垂察焉。吾東方性理之學, 倡自文忠公鄭夢周, 至文敬公臣金宏弼, 而闡明之, 鵬少遊其門, 得其嫡傳, 精思力踐, 博約兩至, 而尤深於魯論。嘗語學者曰, 若使我敎夷狄, 以論語, 亦可使能知大義。文穆公臣朴英, 棄官歸家, 講學質疑, 鵬激勵奬誘, 發之以爲學次第, 英之成就其學, 實鵬啓發之功也。甲子之禍, 直言不諱, 幾陷大戮, 竟至杖流, 及中廟改玉, 特旨宣召。


  有曰, 莘野耕?, 東海釣翁, 懷道抱德, 混跡漁樵, 有以見知臣之明, 而不無之異數也。鵬感激恩眷, ?勉承膺, 而以至誠前知之見, 料北門黨禍之兆, 矢心求退, 不樂在朝。鵬之不克展布其所蘊, 實由於此, 其懿德邃學之實, 則有大於是者。蓋其學, 遠得洙泗不傳之緖, 終造性理精妙之域, 嘗取古聖賢治心格語, 作爲案上一圖, 排列九容·九思之目, 申之以丹書敬怠之分, 朝夕觀玩, 以寓盤盂之戒。文純公臣李滉, 指以示人曰, 鄭先生學問造詣之精, 觀於此圖而可知。又曰, 善之一州, 前有吉先生之風節, 後有鄭先生之道義。嗚呼, 滉豈欺後學哉? 此皆昭在於諸賢記傳及文貞公臣金堉所撰己卯錄, 則此豈出於臣等阿好之言哉? 至於淸嚴自守之節, 明哲炳幾之智, 具有實蹟, 播人耳目, 臣等, 亦何必歷言而累陳也? 噫, 鵬與己卯諸賢, 同心同德, 明?勵相, 而獨能逆覩於?弩潛伺之時, 斂?鋒鍔, 侵灌義理, 超然遠擧, 不入標榜之中, 悠然乘化, 得免錮籍之禍, 而其心卽己卯諸賢之心, 其道卽己卯諸賢之道, 眞所謂生〈可〉同傳, 死可同誌者也。同時善類之?罹羅織者, 朝家褒崇之典, 前後相望, 往在丙寅。惟我聖上, 復申己卯諸賢褒贈之命, 贈爵贈諡, 多出於廷臣之建白, 而鵬之獨未蒙曠世恩典者。蓋由於鵬之不載於己卯禍籍, 而此則有不然者, 徐稚·郭泰之賢, 未必不及於李·杜諸人, 則百年公議, 其不可以此軒?也, 明矣。且伏念, 善山之金烏書院, 卽鵬聯享之所也。一廟?享五賢之中, 忠節公吉再, 文穆公臣朴英, 官階俱卑, 而特以節義道德, 先褒以崇秩, 後易以美名, 況且鄭鵬受道傳道之賢? 俱已贈爵加諡, 則鵬之在道統傳受之間, 而獨不蒙一例恩命者, 豈非國家之欠典, 而士林之缺望耶? 況當我聖上崇奬前賢, 致祭院宇之時, 特軫竝享之賢, 追擧未遑之典, 卽今日之所不可已者, 此臣等所以不遠千里, 仰瀆尺疏者也。夫節義彰著, 道學能備, 則不計官資之崇卑, 贈以美爵, 賜之懿諡者, 卽我朝四百年?章, 而昭載續典者也。如使鄭鵬, 得蒙曠世恩典, 褒秩易名, 一如朝家已行之規, 則非但在臣等崇奉之道, 更無餘憾, 其於國家崇儒術振士氣之化, 亦豈小補也哉? 臣等, 極知草莽之言, 煩猥可罪, 而高山景行之慕, 愈久不淺, 秉?好懿之天, 有生所同, 凡係儒賢之褒贈, 必待多士之陳請, 旣有故事之可據, 玆敢不謀而同辭, 伏乞聖明, 俯賜採納, ?降明命, 斯文幸甚, 國家幸甚。答曰, 省疏具悉。近者韋布之章寥然, 心常慨歎, 今覽爾等之章, 憊臥之中, 殊嘉士氣之不淺。然夫子曰, 過猶不及, 噫, 今番金烏致祭之命, 豈特爲吉冶隱之忠? 昭載三綱行實, 予亦欽慕者, 而今者此擧, 蓋由追慕, 非特爲本事也。追施節惠, 國之莫重者, 幾百年之事, 隨請許之, 孔聖所云過乎, 不及乎? 夫子亦曰繪事後素, 爾等之章, 亦有魯論, 與其史寧野, 亦不在其中, 疏中盤盂之稱, 卽大聖人事也。今者比諭, 何不商量? 雖然, 此亦不過不審, 而予之所?者, 莫重典章也。此等審愼, 氣雖衰, 心不衰, 爾等, 往修學業。(www.history.go.kr 2008)


  조보양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49년 윤3월 3일 (임술) 원본1337책/탈초본74책 (18/18)  1773년 乾隆(淸/高宗) 38년/ ○ 癸巳閏三月初三日酉時, 上御集慶堂。承旨率入格儒生入侍時, 右副承旨趙載俊, 記事官尹在醇·林濟遠·李昌漢以次進伏訖。上曰, 春秋館堂上, 考出養老宴實錄以來乎? 載俊曰, 實錄中, 無養老宴事云矣。上曰, 儒生來乎? 載俊曰, 未及來矣。上命讀榜目後, 又命賤臣在醇, 率入儒生。賤臣承命出, 率儒生李商駿·李商鳳·李會遂·韓鼎裕·徐有慶·鄭民始·趙鎭宅·韓晩裕·李奭輔·沈基泰·申致權·趙普陽·趙錫晦·金熹·李羽晉·朴天衡·李成運·李璡·孟志大·李益海·金方行·魚錫光·金履成·金恒光·李秉模·李德溥·姜?·崔湜·趙壤鎭進伏。上曰, 李商鳳之兄弟同榜, 壯矣, 而弟爲壯元矣。此是徐宗玉之外孫乎? 載俊曰, 然矣。上曰, 李徽中, 何年堂上乎? 載俊曰, 丁亥爲重試堂上矣。上命書傳敎曰, 今見故判書徐宗玉外孫兩人登科。嗚呼, 今科何科? 予甚愴然, 況其外祖, 戊申春, 自龍崗來樹立深歎。嗚呼, 暮年見此, 豈無表意? 祭文製下, 明日遣禮官致祭。出傳敎 又命書傳敎曰, 一弛一張, 文·武之道, 旣登科甲, 重試?玉, 近者沈滯, 予豈深意? 兩子登科, 乾道可見, 其旣若此, 亦宜體元, 今適有?, 其何踰日? 旣祭重臣, 腰金何惜? 副司直李徽中, 特除工曹參判, 其令明日謝恩。出傳敎 上曰, 今夜儒生勿禁。出下敎 上曰, 李會遂三兄弟登科, 壯矣。命書傳敎曰, 生員李會遂, 以東原之曾孫, 靑陵之孫, 予皆見矣。嗚呼今日, 見其登科, 況三子皆登科者乎? 可謂稀有, 何以表意, 令該曹特給宴需, 令奉年過六十兩親。出傳敎 上曰, 府院君祠堂, 今奉何處? 有慶曰, 臣之從兄有祜, 今爲信川郡守, 故今奉於信川官矣。上命書傳敎曰, 今見徐有慶登第, 追憶丁丑, 予懷何抑? 況其從祖母, 今番入於養老宴者乎? 祭文製下, 其令本官, 致祭於府院君。命本官者, 命內侍其難, 故命其孫者也。與府夫人同祭事, 分付。出傳敎 上曰, 趙鎭宅同年大小科, 壯矣。趙尙絅謚號云何? 鎭宅曰, 姑未議謚矣。上命書傳敎曰, 趙?, 昔年兄弟入侍者, 而與伯兄, 三兄弟登科。今日見其子高登, 追慕昔年, 予懷一倍, 祭文製下, 明日一體遣禮官致祭, 於故判書趙尙絅。今聞尙未賜謚云, 申飭謚狀, 卽爲議謚。噫, 故判書趙明履, 常稱無一點傷人害物之言, 可謂着題語, 豈持此也? 予亦深歎其頃者奏語, 今者此命, 意蓋深矣。出傳敎 至趙普陽, 上問其年歲, 命書傳敎曰, 今見安東大科人趙普陽, 年六十五登科, 前五十分館後陞六, 況近七十人乎? 特爲陞六, 有?, 唱榜前先付, 無?, 爲先司果陞六, 待?單付, 其令着儒巾而來, 着?下鄕。出傳敎 上問李德溥曰, 父母存乎? 德溥曰, 永感下矣。上曰, 以璿?, 居?沛故都, 貴矣。命書傳敎曰, 今日登科李德溥, 以璿?十六代, 居?沛故鄕, 今科高登, 故令本欲賜宴需。今聞永感云, 予甚愴然, 唱榜下去後, 令本府特賜祭需, 以表予意。出傳敎, 其餘儒生, 各問居住家閥而命退。上曰, 四十人盡入來乎? 載俊曰, 四十一人, 未及入來矣。上命書諸致祭祭文, 以次退出。(www.history.go.kr 2008)


  조보양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49년 윤3월 10일 (기사) 원본1337책/탈초본74책 (24/36)  1773년 乾隆(淸/高宗) 38년/ ○ 有政。判書李潭牌不進, 參判李重祜進, 參議洪檢牌不進, 右副承旨趙載俊進。以李翼元爲大司憲, 李壽鳳爲大司諫, 鄭枋爲執義, 鄭彦暹爲掌令, 朴宗彦·成大中爲持平, 宋?爲獻納, 權?爲正言, 李昌伋爲修撰, 徐有防爲司書, 尹得毅爲校理, 兪彦修爲正言, 李台俊爲貞陵令, 車有濟爲引儀, 林得浩爲兼司書, 尹師國爲谷山府使, 申五淸爲金海府使, 朴師沃爲瑞興府使, 金漢升爲草溪郡守, 李福休爲康翎縣監。典籍單趙普陽, 校書著作單柳明均, 兼漢學敎授單徐有臣, 副司直李世澤, 今加嘉善加資事承傳, 趙世選爲掌令。故令李嵩鎭贈吏判例兼, 知事李瀞考, 故獻納李顯良贈吏參例兼, 工曹參判李徽中考, 李軾爲郭山郡守。(www.history.go.kr 2008)


  조보양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49년 윤3월 10일 (기사) 원본1337책/탈초본74책 (25/36)  1773년 乾隆(淸/高宗) 38년/ ○ 兵批, 判書具允鈺進, 參判愼爾復入直進, 參議尹光紹病, 參知未差。副護軍閔範洙·孫相龍·李東泰·宋述孫·金光宇, 副司直嚴璹·沈?·尹養厚·李性遂·李命植·副司果鄭日謙·趙普陽, 副司正曺遠振, 同知單石鍊章。(www.history.go.kr 2008)


  조보양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49년 윤3월 11일 (경오) 원본1337책/탈초본74책 (26/26)  1773년 乾隆(淸/高宗) 38년/ ○ 癸巳閏三月十一日申時, 上御集慶堂。海運判官, 儒臣同爲入侍時, 右承旨沈?之, 假注書曺遠振, 記事官南履寬·李昌漢, 海運判官任希雨, 校理尹得毅, 修撰林得浩以次進伏訖。上曰, 漕運何日入來乎? 任希雨曰, 船路之遲速, 在於風勢之順不順, 姑未能的知矣。命先退, 上命儒臣上下番讀問答, 次命承史讀之訖。上命注書, 去癸巳榜目持入, 賤臣承命出來持入, 命承旨讀訖。上命書傳敎曰, 欲聞癸巳增廣, 今讀榜目, 癸巳年增廣後, 至辛丑年卽位增廣, 皆是故人。噫, 癸巳年今已六十一年, 其勢固然, 而辛丑年, 則八年後而猶若此, 予心愴然。翌年甲午榜, 故?陵, 故兪奉朝賀, 故判書尹惠敎·趙觀彬聞名。嗚呼, 此四人中, 今聞有其子者只二人。嗚呼, 此榜何榜, 其子今有職名, 右職調用, 無職名, 卽爲調用, 而皆懸註, 以表予憶昔年思故人之意。其聞兪彦鉉, 尙未服?云, 待?服卽爲調用。嗚呼, 追憶故相, 聞其夫人, 尙未過三年, ?切此心。令該曹, 祭需顧助, 以示此意。沈?之所啓, 增廣入格人趙普陽, 有陞六付職之命, 該曹當於殿試後擧行, 而昨日政, 已單付典籍矣。殿試秘封之書以文職, 大違格例, 趙普陽典籍單子勿施。待殿試擧行, 該堂有不察之失, 推考, 何如? 上曰, 依爲之, 該堂勿推, 可也。出擧條 上曰, 趙普陽典籍單子勿施事。出榻敎 仍命退出, 諸臣遂退出。(www.history.go.kr 2008)


  조보양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49년 윤3월 18일 (정축) 원본1337책/탈초본74책 (23/36)  1773년 乾隆(淸/高宗) 38년/ ○ 有政。判書李潭, 參判李重祜竝牌招不進, 參議洪良漢進, 以蔡濟恭爲弘文提學, 徐命膺爲藝文提學, 李奭輔爲兵曹佐郞, 趙普陽·田泰祥爲監察, 盧聖中爲司僕正, 林蓍喆爲待敎, 卜台鎭·李時逸爲兼春秋。(www.history.go.kr 2008)


  조보양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49년 4월 10일 (무술) 원본1338책/탈초본74책 (14/28)  1773년 乾隆(淸/高宗) 38년/ ○ 有政。吏曹判書李潭進, 參判鄭尙淳進, 參議洪良漢進, 行都承旨具?進, 以李世澤爲大司憲, 趙普陽爲禮曹佐郞, 申暎爲禁府都事, 金基長爲禁府都事, 洪鳴漢爲注書, 安兼濟爲忠淸監司, 蔡緯夏爲洪州牧使, 趙載選爲忠州牧使, 姜游爲鍾城府使, 金相直爲密陽府使, 鄭一祥爲咸興判官, 宋翼洙爲公州判官, 金煊爲瑞山郡守, 王漢禎爲泰安郡守, 李彦藎爲大興郡守, 金履顯爲報恩縣監, 李天穆爲木川縣監, 任瑗爲禮山縣監, 兵曹參判愼爾復進, 以任希敎爲副司直。(www.history.go.kr 2008)


  조보양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49년 6월 16일 (갑진) 원본1340책/탈초본75책 (11/26)  1773년 乾隆(淸/高宗) 38년/ ○ 沈?之, 以吏曹言啓曰, 禮曹佐郞趙普陽, 英陵參奉姜世晃呈狀, 俱以身病甚重, 勢難察任云, 竝今姑改差, 何如? 傳曰, 允。(www.history.go.kr 2008)


  조보양 [記事] : 승정원일기/ 정조 5년 3월 21일 (갑오) 원본1482책/탈초본81책 (10/28)  1781년 乾隆(淸/高宗) 46년/ ○ 有政。吏批, 判書李衍祥進, 參判金夏材實錄廳進, 參議李敬養進, 承旨徐有防進。以李遇圭爲戶曹正郞, 金?爲直講, 趙普陽爲典籍, 金宇海爲洪忠都事, 中學訓導金潭, 東學訓導張志默, 南學訓導韓聖煥·權廷基爲兼律學敎授, 李益燦爲工曹佐郞, 朴載德爲禮曹佐郞, 孟儒龍爲典籍, 金思儼爲古阜郡守, 閔垠爲顯陵令, 金持默爲司僕主簿, 朴敎行爲造紙別提, 朴文絅爲典設別提, 趙鎭元·千一元爲引儀, 李德懋爲司?主簿, 柳得恭爲尙衣別提, 檢書四單, 李德懋·柳得恭·朴齊家·徐理修·朴齊家爲軍資主簿, 徐理修爲廣興主簿。(www.history.go.kr 2008)


  조보양 [記事] : 승정원일기/ 정조 5년 4월 26일 (기사) 원본1483책/탈초본81책 (24/35)  1781년 乾隆(淸/高宗) 46년/ ○ 吏曹口傳政事, 以洪文泳·李鼎運爲兵曹正郞, 以趙普陽爲佐郞。(www.history.go.kr 2008)


  조보양 [記事] : 승정원일기/ 정조 5년 5월 11일 (계미) 원본1484책/탈초본81책 (20/38)  1781년 乾隆(淸/高宗) 46년/ ○ 李亨逵, 以兵曹言啓曰, 本曹佐郞趙普陽, 身病猝重, 勢難供職, 宿衛重地, 不可久曠, 今姑改差, 何如? 傳曰, 允。今日政差出。(www.history.go.kr 2008)


  조보양 [記事] : 승정원일기/ 정조 5년 5월 12일 (갑신) 원본1484책/탈초본81책 (21/21)  1781년 乾隆(淸/高宗) 46년/ ○ 辛丑五月十二日酉時, 上御誠正閣。坐直承旨入侍時, 右承旨徐有防, 假注書趙衍德, 記事官趙錫晦·文采五, 以次進伏訖。上曰, 未下批上疏爲幾丈乎? 知入。賤臣承命出, 復奏曰, 只有持平李羽晉·同敦寧尹光紹疏云矣。上曰, 爾之所修日記持入。賤臣承命出擎進。上曰, 趙興鎭聞有實?云, 出去調養, 明日飯後以爲入來事, 分付。賤臣承命出傳, 上曰, 金載瓚如已入來, 直爲入侍事, 分付。賤臣承命出傳, 上曰, 趙普陽, 何以必遞兵曹佐郞乎? 有防曰, 以年老之故, 請遞云矣。命書內閣草記批答訖, 又命書傳敎曰, 滯囚可悶, 時囚皆以草記照律。命退, 承旨以次退出。(www.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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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성이 두터운 조봉휘(趙鳳徽) : 旣載
  시아버지 병환에 대변을 맛보며 신의 가르침을 얻어 좋은 약을 구해 낫게 하여 표창된 조씨(趙氏) : 旣載
  어머니께 효성이 지극하여 관청에서 감세하고 향당이 제육을 보낸  조완규(趙完圭) : 旣載
  효성이 지극하여 매일 성묘한 조창규(趙昌奎) : 旣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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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성이 지극한
  조현좌(趙顯佐) : 1769(영조 45)-1838(헌종 4), 감천면 현내리 출신, 자는 여성(汝誠), 호는 감은헌(甘隱軒), 본관은 한양, 팔우헌 보양(八友軒普陽)의 손자, 학생 집(集)의 아들, 현규(顯奎)의 형이다. 부모 사후(永感下)에 유학(幼學)으로서 1822년(순조 22) 식년 생원시에 3등 80위로 합격하였다. 천성이 온아(溫雅)하고 효성이 지극하였고, 남달리 총명하여 문예에 조예가 깊었다. 후배 양성에 진력하였고, 문집이 있다.(朝鮮 輿勝覽 1929, 醴泉郡誌 1939 1988, 司馬榜目)


  조현좌 [記事] : 유교관련도서/ 예천의 금석문 1 | 간행년:2003/ 저자:예천문화원/ 발행처:예천문화원/ 甘隱軒 漢陽趙公(顯佐) 墓碣銘/ ...B202_0083.jpg 감은헌 한양조공(현좌) 묘갈명/ 양양(襄陽:예천의 별명)의 주마산(走馬山) 아래 돈산(敦...(韓國國學振興院 ugo.net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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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성스러운 지만수(池萬守) : 旣載
  남편의 병환에 기도하며 방앗품을 팔아 약을 샀고, 30년을 간호하니 포상된 지씨(池氏) : 旣載
  어머니 병상에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드리고, 상을 당해서는 6년 간 시묘하여 포상된 지윤락(池潤洛) : 旣載
  효자 때문에 여울의 바위가 눈물을 흘렸다는 진용현(秦龍見) : 旣載
  부모 섬김에 정성을 다하여 고기를 잡고 나무를 져다 팔아 부모의 밥상에 맛있는 음식이 떨어지지 않게 한 채근하(蔡根夏) : 旣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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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자로 발천된
  채근하(蔡根河) : 본관은 인천, 향대(享大)의 고손자, 태곡(泰谷) 유태규(柳泰奎)의 제자, 효자로 발천되었다.(醴泉郡誌 1988)


  채근하 [記事] : 동전집(東田集, 李中均 文集) 14권 8책 중 卷13에 실린 내용이다./ 丘墓文/ 處士仁川蔡公墓碣銘(幷序) 43/ 蔡根河의 비문이다. 자는 聖淸이고 인천인으로 蔡貴河의 후손이다. 司宰監 參奉 天啓가 龍宮 大竹으로 이사하였으니 공의 11세조이다. 아버지는 海龜이고 어머니는 丹陽禹氏이고, 휘 海麟과 宣城李氏가 本生 부모이다. 泰谷 柳泰奎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57년 태어나 1922년 죽으니 향년 66세였다. 부인은 襄陽權氏 聲振의 딸로 2남 1녀를 두었다. 아들은 漢斗, 漢祚이고 딸은 金斗哲에게 출가했다.(www.koreastudy.or.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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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성이 지극하여 주위의 칭송을 받은  채기인(蔡起仁) : 旣載
  남편의 시신을 안고 밤새도록 가슴을 치며 울다가 자진하여 정려된 채씨(蔡氏) : 旣載
  효우로서 당시에 모범이 된 채의성(蔡宜聖) : 旣載
  어머니 병환에 손가락을 끊어 피를 드리고 돌아가시자 3년 간 시묘한 천만옥(千晩玉) : 旣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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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자각이 예천에 있는
 최경의(崔敬義) : 1828-1900, 자는 형일(亨一), 호는 도촌(桃村), 본관은 경주, 성균관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다. 서울을 떠나 상주를 거쳐 도리촌으로 입향하였다. 효자각이 유천면 초적리에 있다.(醴泉郡誌 193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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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병환에 대변을 맛보고 돌아가시자 3년 시묘하여 표창, 부호군을 제수받은 최경중(崔敬中) : 旣載
  아버지의 병환에 대변을 맛보고,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드려 동몽교관에 제수된 최덕수(崔德秀) : 旣載
  부모를 섬김에 죽을 때까지 예를 다한 최순봉(崔舜鳳) : 旣載
  청상과부가 되어 자결한 최씨(崔氏) : 旣載
  시아버지 병환에 대변을 맛보며 기도하니 뱀과 자라를 약으로 쓰게 되고, 돌아가시자 3년간 예를 다하여 정려된 최씨(崔氏) : 旣載
  아버지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 최영숙(崔榮淑) : 旣載
  아버지에게 효성이 지극한 최종형(崔鍾衡) : 旣載
  1909년 어머니 병환에 손가락을 끊어 피를 드리고 3년 간 시묘하여 표창된 최진봉(崔鎭奉) : 旣載
  부모상에 6년 간을 시묘하여 정려된 최진후(崔鎭厚) : 旣載
  효성이 돈독한 최창욱(崔昌郁) : 旣載
  효성이 지극한 최확(崔確) : 旣載
  효성이 지극하고 시묘하여 표창을 받은  최환기(崔煥基) : 旣載
  효행으로 교관에 천거된 하상화(河相華) : 旣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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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부모 섬김에 지극하였고, 남편 돌볼 때 호랑이가 동행하여 표창 정려된
  하씨(河氏) : 1845(헌종 11)-1906(광무 10), 본관은 진양, 단계 위지(丹溪緯地)의 후손, 경활(景活)의 딸, 경주 이방장(慶州李邦章)의 아내, 18세에 시집가서 시부모를 섬김에 지극하였고, 시아버지가 병들자 제단(祭壇)을 쌓고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더니, 어떤 스님이 나타나 눈 속에 있는 영초(靈草)를 알려주어 그것으로 효험을 보았다. 또 남편이 산송(山訟)으로 80리(里) 밖의 감옥에 갇히자, 가난한 살림으로 방앗품을 팔아서 음식을 날라주었는데, 새벽에 나서서 갔다가 80리를 되돌아 밤중에 돌아올 때 늘 호랑이가 따라다니며 지켜주어서, 이웃에서 표창하였고, 그 아들이 보문면 신월리에 정려비각(旌閭碑閣)을 세웠다. 정부인(貞夫人) 직첩이 내렸다.(嶠南誌 1937, 醴泉郡誌 193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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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성이 지극한 한경백(韓景伯) : 旣載
  효성이 돈독한 한기범(韓箕範) : 旣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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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경찰서 경무계 권용태 경사, 31일 경찰청장 표창...축하합니다.


  예천경찰서(醴泉警察署 2008年 終務式) [記事] :


  예천경찰서(서장 정용삼)는 2008년 12월 31일 오후 4시 경찰서 3층 예경마루에서 전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2008년 종무식을 개최했다.


  이날 종무식에서는 배성국 생활안전교통과장, 정재문 예천지구대장이 각각 경정과 경감으로 승진하고, 경무과 권용태 경사가 경찰청장 표창, 지보지구대 권효정 경사 등 3명이 경북지방청장 표창, 교통관리계 권종훈 경위 등 7명이 경찰서장 표창을 수상했다.


  정용삼 서장은 대통령 및 경찰청장 송년사를 대독하고 참석한 직원들에게 다사다난했던 2008년을 잘 마무리하고 다가 올 2009년 새해에는 예천의 평온한 치안을 위해 더욱 정진해 줄 것을 당부했다.


  [■ 승진자 명단] : ◇ 경감 ⇒ 경정 : 생활안전교통과장 경정 배성국,  ◇ 경위 ⇒ 경감 : 예천지구대장 경감 정재문,


  [■ 표창자 명단] :  ◇ 경찰청장 : 경무계 경사 권용태,  ◇ 경북지방경찰청장 : 지보지구대 경사 권효정, 경무계 김구종, 경비작전계 상경 김동용,  ◇ 경찰서장 : 경위 권종훈, 경위 임상우, 경사 남순진, 경사 임경수, 경장 황종원, 경장 조현근, 경장 권정미


 (醴泉인터넷放送 2009-01-01 오전 10: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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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 한우, SBS에 등장


  예천 한우(雪上加霜 SBS''''스타킹'''', ''''韓牛패션쇼'''' 論難 : 스타킹 닉쿤 정가은 韓牛 패션쇼) [記事] :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이하 ‘스타킹’)이 ‘무한도전 편애 발언’에 이어 또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2009년 1월 3일 방송된 ‘한우 패션쇼’편에 시청자들의 질타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온 가족이 시청하는 저녁 시간대에 국민들에게 혐오감을 주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날 패션쇼에는 경력 8년 한우정육사 안희진(31) 씨가 경북 예천 한우마을에서 키운 쇠고기를 직접 칼질해 만든 옷과 패션 아이템을 선보였다.


  한 남성 모델은 한우로 만든 조끼, 안심 부위로 만든 모자, 양지살 2kg으로 만든 암워머(겨울철 손목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패션 아이템), 업진살 목도리를 착용하고 나왔다.


  하얀털로 가장자리를 장식한 민소매 상의와 하의, 망토로 코디한 여성 모델도 기상천외한 ‘한우 의상’을 선보였다.


  아이돌 그룹 2PM 닉쿤(21)과 정가은(31)은 한우로 만들어진 아이템을 착용하고 웨딩컨셉의 커플 모델로 나섰다. 닉쿤은 낙엽살 꽃다발, 제비추리 넥타이, 꽃등심 행커치프로 치장했고, 정가은은 업진살로 만든 웨딩드레스에 아롱사태 목걸이를 걸치고 나왔다.


  이 한우 의상들은 소 10마리의 각종 부위를 사용해 이틀 동안 만든 것으로 소개됐다.


  이날 방송 후 해당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에는 시청자들의 비판글이 올라왔다.


  한 시청자는 “한우를 몸에 친친 감고 나오면 한우 소비가 촉진된다는 말은 납득되지 않는다.


  한 모델이 걸치고 나온 한우만 해도 300만 원이 된다는 소리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글을 남겼다.


  “가족끼리 오순도순 둘러앉아 TV를 보다가 혐오스런 장면에 눈살을 찌푸렸다.


  생명으로서 소의 존엄함까지 짓밟다니 부끄럽고 혐오스럽다”는 의견도 올라왔다.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는 ‘스타킹’ 혐오방송을 규탄하는 청원이 올라왔고 현재 350여 명의 네티즌이 서명했다.


  청원을 올린 네티즌은 “쇠고기를 옷처럼 걸쳐 입고 마지막에는 그 고기를 잘라 구워먹었다”며 “아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가지 않았을지 걱정된다. 생명 경시 풍조가 심해지는 요즘 인성적으로 좋지 않은 내용이다”고 꼬집었다...


  (전예진 記者 스타뉴스 2009/01/04 17:46 | 조회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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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335


  예천군번영회(2009 新年交禮會) [記事] :


  예천군번영회(회장 최영수)가 주최한 2009년 신년교례회가 2009년 1월 2일 예천읍 예천웨딩의 전당 3층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김수남 군수, 이한성 국회의원을 비롯한 각급 기관단체장, 변정구 재경군민회장, 조용래 재구향우회장, 송석흠 재구미향우회장, 권택종 재경예천군민회 수석부회장, 남병직 재경군민회 사무국장, 장세대 재구향우회 사무처장, 재부산향우회 임원진, 번영회 회원, 지역민 등 3백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최영수 번영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새 경북의 미래 주인답게 성숙한 군민의식을 함양하고 화합하여 살기좋고 풍요로운 인정이 넘치는 예천을 만들어 나가자”고 당부했다.


  김수남 군수는 새해인사에서 “금년 한해에는 예천의 미래발전을 위해 군민과 출향인이 모두 힘과 지혜를 모아 꿈과 희망이 가득한 예천을 만들어 가자”는 새해업무방향을 밝혔다.


  이한성 국회의원은 “묵었던 시련과 상호 오해 등을 말끔히 잊고 올해는 획기적이고 예천군 최대의 도약의 해로 만들어 나가자”고 강조했다.


  정영광 군의장은 “기축년 새해에는 우리 모두 보다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자세로 상호 발전하는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 나가자”고 말했다.


  변정구 재경군민회장은 출향인을 대표해 “고향 예천이 더욱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전 출향인이 한마음 한뜻으로 열심히 돕겠다”며 “겨울의 혹한을 지나 고향에 따스한 봄이 올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출향인사들을 결집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한해의 액운을 막는 붉은시루떡 절단과 정창모 노인회장, 정용삼 경찰서장, 조용래 재구향우회장의 순으로 예천의 힘찬 도약을 다짐하는 건배제의가 있었으며, 참석 내빈들은 연회에서 서로 덕담을 나누고 한해의 평안과 건강을 기원했다.


  (백승학 記者 醴泉新聞 2009년 01월 03일 10: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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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문사 [記事] : 전국기행문화클럽 : 산따라물따라 카페/ 용문사 (경북 예천)/  글쓴이: 기행대장/ 2009.01.01 20:30/


  개요 : 예천읍에서 북쪽으로 15km 정도 떨어진 소백산 기슭에 위치하며, 신라 경덕왕 10년(870) 이 고장 출신의 두운 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유명하다.


  용문사 명칭에는 2가지의 유래가 있는데 고려 태조가 삼한 통일을 위하여 두운 대사를 방문코자 동구에 이르니 바위 위에서 청룡 2마리가 나타나 인도하였다 하여 절의 이름도 용문사로 불려졌다.


  고려 명종 원년(1171)에 태자의 태를 절의 왼쪽 봉우리에 묻고 청기사로 고쳤다가 다시 소백산 용문사(龍門寺)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용문사 대장전(大藏殿-보물 제145호)은 고려 명종 3년(1173)에 건립한 오래된 건물이며, 대장전 내에 윤장대(輪藏臺-보물 제684호)는 국내 유일 불경 보관대로 이 대를 돌리면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전해지며 세계적 문화유산이다.


  목불좌상 및 목각탱(木佛坐像.木刻幀-보물 제989호)은 대추나무로 만든 후불탱으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작품이며, 사천왕상(四天王像)과 일주문(一柱門)은 규모가 크고 오래되었다.


  * 주요문화재 - 대장전(보물 145호), 윤장대(보물 684호), 교지(보물 729호), 목불좌상 및 목각탱(보물 989호), 자운루(문화재자료 제143호)/


  길안내 :  * 서울에서 영동고속도 여주IC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점촌함창IC에서 내려 예천으로 간다. 예천읍내에서 928번 지방도로를 타고 동로방면으로 올라가면 용문면에 도착하고 왼쪽으로 초간정을 지나서 동로(경천호)방면으로 계속해서 더 올라가면 원류삼 거리에 도착한다. 여기서 우회전하면 용문사가 나온다.


  * 대전에서는 국도를 이용해서 상주, 문경(점촌)을 거쳐 예천으로 간다. 예천읍내에서 928번 지방도로를 타고 동로 방면으로 올라가면 용문면에 도착하고, 왼쪽으로 초간정을 지나서 동로(경천호) 방면으로 계속해서 더 올라가면 원류삼거리에 도착한다. 여기서 우회전하면 용문사가 나온다.


  * 부산에서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구로 와서 서대구, 금호JC에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예천IC로 빠져나온다. 예천IC에서 예천읍내로 진입한 다음 928번 지방도로를 타고 동로 방면으로 올라가면 용문면에 도착하고, 왼쪽으로 초간정을 지나서 동로(경천호) 방면으로 계속해서 더 올라가면 원류삼거리에 도착한다. 여기서 우회전하면 용문사가 나온다.


  * 대구에서는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서안동을 지나 예천IC로 빠져나온다. 예천IC에서 예천읍내로 진입한 다음 928번 지방도로를 타고 동로 방면으로 올라가면 용문면에 도착하고, 왼쪽으로 초간정을 지나서 동로(경천호) 방면으로 계속해서 더 올라가면 원류 삼거리에 도착한다. 여기서 우회전하면 용문사가 나온다. 바로 가면 문경 경천댐이 나온다./


  주변관광지 : 청룡사 사찰, 초간정(草澗亭) 유적지, 명봉사 사찰, 예천권씨종가별당·예천권씨종택 고택, 반서울금당실마을 농.산.어촌 체험, 정보제공 : 용문사


  (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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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악사(西岳寺), 서암(西菴), 서악암(西岳庵), 절 [寺刹] : 예천읍 대심리산 560번지(하무실 北쪽 鳳德山 중허리)에 있는 절로, 1701년(숙종 27)에 창건되었고, 1737년(영조 13)에 옮겨 세웠고, 또 1761년(영조 37) 3월 25일에 상량문(上樑文, 本寺 僧 慧敏書)이 있고, 1783년 2월, 1871년에 다시 중건되었다. 사찰 규모가 협소하여 현재는 규모가 큰 불당(佛堂)을 지었다. 서암(西菴)이라고도 한다. 건물 3채가 있다. 서악사는 대한 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直指寺) 소속이다. 주지 서운 조달성(瑞雲趙達性)이 요사(寮舍, 1960)와 원통전(圓通殿, 1968)을 보수하였다. 1911년부터 김용사 본산(金龍寺本山)의 말사(末寺)였으나, 1962년부터 직지사교구의 말사(末寺, 區分 乙)이다. [圓通殿] : 이는 법당(法堂)으로, 정면 3칸(827cm), 측면 2칸(471cm), 목조 와가(木造瓦家) 맞배 지붕이다. [寮舍] : 1) 정면 4칸(1150cm), 측면 2칸(680cm)의 목조 와가 팔작(八作) 지붕으로, 앞면은 둥근 기둥을 세웠다. 2) 가로 850cm, 세로 250cm, 목조스레트지붕이다. [佛像] : 서악사 경내에 있는 불상으로는 아미타불(阿彌陀佛, 土造, 높이 45cm, 어깨幅 18cm, 가슴幅 30cm), 독성상(獨聖像, 土造, 높이 45cm, 가슴幅 28cm) 등 2구(軀)가 있다. [幀畵] : 원통전(圓通殿) 안의 삼면 벽에는 6축(軸)의 탱화(幀畵)가 걸려 있는데, 그 중 3축은 1770년(영조 46) 4월에 완성하여 서악사에 봉안하였고, 나머지 3축은 1868년(고종 5)에 그려진 것이다. 탱화의 규모는 후불탱화(後佛幀畵, 布紙, 187x136cm), 독성탱화(獨聖幀畵, 포지, 138x132cm), 칠성탱화(七星幀畵, 152x 139), 신상탱화(神象幀畵, 94x122), 산신탱화(山神幀畵, 92x120) 등이 있다. [銅鍾] : 이 밖에 사보(寺寶)로는 1933년 3월에 주조된 동종(銅鍾, 60斤)이 있는데 조선 후기 양식을 잘 나타내는 작품이다. 용뉴와 각통(角筒)이 있고, 종신(鍾身)에는 4유곽(乳廓) 내의 9유두(流頭)씩, 각 유곽(乳廓) 사이에 보살입상(菩薩立像)이 1구씩 배치되었다. [바위] : 이 밖에 사찰 입구에 있는 바위에 `연파독역산(蓮坡讀易山)''''이라고 음각(陰刻)된 글이 있는데, 이 글은 사찰 뒷산에 안장(安葬)된 한성판윤 연파 장화식(漢城判尹蓮坡張華植, 仁同)이 역경(易經)을 읽던 곳이란 뜻이다(醴泉郡邑誌 1841 1895, 醴泉郡誌 1939, 朝鮮 輿勝覽 1929, 嶠南誌 1937).


  [인터넷] : 예천읍 대심리 산13번지 봉덕산(鳳德山) 중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로, 가는 길은 예천 I.C로 나와 예천버스터미널 방면으로 가다가 터미널을 뒤로하여 흑응산성(黑鷹山城) 쪽으로 약 2㎞ 정도 올라가면 산 중턱에 위치한 사찰에 닿게 된다. 봉덕산이 제법 높은 곳이어서 이 곳을 찾는 등산객이나 혹은 약수를 길러 오는 이들의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절 앞마당이나 산신각 앞에서 내려다보면 예천읍내가 한 눈에 들어와 좋은 경치를 볼 수 있다. 절의 창건은 언제 이루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시대 신문왕 때에 의상 대사가 이루었다고 전한다. 서악사는 본래 이 지역의 동서남북 사악(四岳)에 있던 절 가운데 하나였다.(출처 : 傳統寺刹叢書 17, www.dharmanet.net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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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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