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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1811) : 상리면 고항리 국립테라피단지를 다녀와서(附 예천방문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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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4일 부부모임인 운용산악회(雲龍山岳會) 회원 50여 명과 함께 예천군 상리면 고항리에 있는 테라피단지를 다녀왔다. 8시 30분 산장가든 차와 여러 대의 자가용으로 한천둔치에서 출발하여 하리면소재지, 예천군산업곤충연구소, 원골산장, 도솔산장을 거쳐 고항령(모래재)에 도착하였다.
포장된 인도로 묘적봉(妙積峰)으로 향하였다. 눈이 깔려 있었다. 중도에 겸암굴(謙庵窟)도 있었다. 겸암굴은 겸암 유운룡(柳雲龍) 풍기군수(이때 상하리면은 풍기군 소속)가 임진왜란(1592) 때 자기 식구와 동생인 서애 유성룡의 식구들 100여 명을 피난시킨 굴이다. 그 중에는 유성룡의 아들인 유진(柳袗)도 있었는데, 유진은 그 후 예천군수를 하였으며, 무덤도 호명면 원곡리 등암산에 있다.
묘적봉은 해발 1,148m로 예천군에서 제일 높은 산(학가산은 882m)으로 단양군 대강면, 영주시 풍기읍, 예천군 상리면 고항리의 경계 지점이다.
11시 30분에 등산을 완료하고, 고항령에서 시산제를 지냈다. 초헌관은 장건덕 회장, 아헌관은 이덕재 직전회장, 종헌관은 남녀 부회장 두 분이었다. 이 제사에서 제수물 돼지머리에 꽃혀진 금액이 100여만 원이나 되었다.
이 고항령(옥녀봉의 묘적봉쪽 최하단)에는 예천 풍기간 2차선 포장도로를 예천곤충바이오엑스포(2007년 8월) 이후에 만들 때 두 개의 굴을 만들고 굴 위로는 묘적봉과 옥녀봉(890m)의 동물들이 서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그 굴 위를 걸어보았다. 옛날 고항령 고개길이었다. 이 길을 걸었던 선조들이 생각났다. 아마 은풍현의 치소가 은산리였으나까 은풍현의 관료들과 예천 사람들이 모두 이 길을 통해 풍기군청으로 갔을 것이다.
그리고 이 굴 주변이 백두대간인데, 즉 영주시 봉현면 두산리와 예천군 상리면 고항리 일대 3천500㏊에 국립 테라피단지가 2009년에 조성되기 시작한다.
테라피단지는 산림 내에서 각종 건강물질과 운동 요법 등을 통해 심신을 치료하는 곳이다. 정부의 광역경제권 선도 사업으로 추진되는 이 사업이 최근 경상북도의 최종 보고를 통해 사실상 확정되면서 2009년부터 본격 추진에 들어가게 됐다.
이 사업과 관련 산림청은 2009년도 20억 원의 예산을 확보하고, 빠르면 2월 중에 예비타당성 검토 및 기본계획수립 용역에 들어갈 예정이다.
국립 테라피단지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에 걸쳐 총 3천억 원이 투입되어 조성된다.
이 단지에는 테라피연구원, 테라피센터, 건강증진센터, 생태탐방로, 산림치유센터, 치유의 숲, 숲속학교, 치유마을 등을 갖추고, 숲에서 발생되는 피톤치드, 음이온 등 건강물질과 산림내 운동요법을 활용해 아토피 피부병 등 심신을 치유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이곳 고항리에는 예천군산업곤충연구소도 있지만 2008년 12월 24일 오전 9시 군청 영상회의실에서 개최된 “예천군 일대의 곤충자원조사” 용역 중간 보고회와 “기능성소재 곤충 개발용 흰점박이꽃무지의 대량 계대증식기술 개발 및 약리효과 분석” 용역 최종 보고회에서 경북대 권용정(감천초, 예천중, 대창고 졸업, 예천군산업곤충연구소장 역임) 교수는, "예천군은 백두대간 소백산맥 자락에 둘러싸여 있어 분수령을 형성하며 낙동강 상류가 감싸 흐르는 천혜의 수려한 경관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풍부한 생물자원의 보고임이 확인되었다." 고 보고했다.
또한, "이번에 조사한 백두대간 일대에 서식하고 있는 곤충류 유전자원 및 종 목록, 전시보관용 지역표본은 백두대간 곤충상 연구 및 곤충연구소 방문객의 체험학습 자료로 활용이 가능하고, 새 정부 들어 탄력있게 추진되고 있는 백두대간 개발 사업과 연계한 백두대간 곤충 BIO생태원 조성사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곳 도솔산장에는 찻집과 민박집도 있지만 집 주변에 돌로 쌓은 크고 작은 매우 많은 탑과 남근(男根) 목공예품들이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고항리는 상리면(上里面) 행정 동리 중의 하나로, 하리면 소재지(下里面所在地)에서 고항행(古項行) 군도 종점(郡道終點)에 있다.
고리목재(모래재)를 넘어 풍기(豊基) 땅으로 넘어다니던 옛날의 길이 근년에는 확장되어 화물차 정도는 넘어갈 수 있었는데, 2007년 8월 예천곤충바이오엑스포 이후 2차선으로 포장되었다.
9개 마을로 형성된 이 동리는 도로 오른쪽부터 새마, 용소, 큰마, 어미골, 문곡이 있고, 도로 왼쪽으로는 모시골, 솔밭모래이, 고약골, 모래재 등이 있다.
경지 면적은 192.8ha 중에서 밭이 138.8ha, 논이 54ha로서 주로 밭농사를 위주로 하여 담배, 고추 생산이 많다. 최근에는 사과의 재배 면적이 확대되면서 소득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2가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농가이다. 고항리는 동으로 영주시(榮州市), 북에는 충북과 경계를 이루고 있고, 또한 상리면(上里面)에서도 자연 마을 수(9個)가 가장 많다.
부근에 중석광산(重石鑛山)이 있으나, 수익성이 없어 운영되지 않고 있다.
1977년에 자립마을로 승격되어 송전(松田)마을에 새마을회관을 세워 구판장(購販場) 운영으로 주민의 편의를 주고 있다.
129가구(1980) 중 밀양 朴 7가구, 평산 申 6가구, 한양 趙 5가구, 김령 金 5가구, 상산 金 5가구, 기타 101가구가 살고 있다가, 92가구(1987) 420명(1987, 男207, 女213) 중 밀양 朴 14가구, 반남 朴 7가구, 평산 申 6가구 등이 살고 있다.
고항리의 연도별 인구 현황은 다음과 같다.(醴泉統計年報)
年度 1972 1974 1976 1977 1978 1979 1992 1995 1996 1999 2004 2006
家口 145 157 161 156 144 129 84 78 75 83 85 88
人口 1,058 1,027 955 947 849 693 315 272 262 242 188 186
고항리(古項里)의 연혁은, 658년(신라 무열왕 5) 적아현(赤牙縣) 소속이다가, 757년(통일신라 경덕왕 16)에 예천군 은정현(醴泉郡殷正縣) 소속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보주(甫州, 現 醴泉郡) 은풍현(殷豊縣) 소속이 되었고, 1018년(현종 9)에 안동부 은풍현(安東府殷豊縣) 소속으로 넘어갔다.
1450년(문종 즉위년)에 풍기군 은풍현(豊基郡殷豊縣) 소속이 되었다가, 임진왜란(1592) 직후에 풍기군 서면(豊基郡西面) 상리(上里) 소속이 되었다.
1914년에 영주군 상리면(榮州郡上里面) 소속이 되면서 신기(新基), 용소(龍沼), 어미(魚尾), 문곡(文谷), 사현(沙峴), 괴동(槐洞), 송전(松田)을 합하여 고항동(古項洞)이라 하였다.
1923년에 예천군 상리면 고항동(醴泉郡上里面古項洞)이 되었고, 1988년에 동(洞)을 리(里)로 개칭하였다.
고항재(古項峴, 古項峙, 모래재, 古項嶺, 骨里峴)는 상리면 고항리(古項里)에 있는 고개로, 풍기(豊基)로 넘어간다.
<여지도서(輿地圖書)> 풍기군(豊基郡)의 산천조(山川條)에 의하면, "골리현(骨里峴)이 군서(郡西) 12리에 있다"라고 하였고, "은풍현(殷豊縣)의 동천(東川)이 골리현(骨里峴)에서 발원(發源)된다."라고 하였다.
여기 골리현(骨里峴)은 현재 예천군과 영주시 풍기읍(豊基邑)의 경계선상에 있는 재(古項재)이고, 이 재 서쪽에 고르목이라는 한지고촌(寒地古村)이 있다.
골리현(骨里峴)이 풍기(豊基)에서 12리에 위치하고, 그에 비하면 고르목에서 예천읍까지는 50리의 먼 거리인데, 한천(漢川)의 지류인 동천(東川)을 따라 서서히 산중으로 들어서기 때문에 버스길이 그리 험하지 않다.
근래 고항리(古項里)까지 도로가 넓혀져 하루에 몇 차례 버스가 드나든다. 고개 남쪽에 봉화대의 흔적이 남아있다.
앞으로 고항리에는 건강증진, 동식물과 곤충 생태탐방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방문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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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337
금당실 [記事] : 엠파스 실시간 지식/ 마을이 온통 낮은 돌담... 굽이굽이 포근해/ 2008.12.17 00:23/
구미와 가까운 곳에 돌담마을이 몇 군데 있어 자주 다녀봤지만, 온 마을이 돌담에 둘러싸인 곳은 처음 봤어요.
그것도 옛 한옥집이 즐비하게 있어 돌담과 썩 잘 어울리는 예스런 풍경은 우리 마음을 통째로 빼앗고도 남았어요.
온통 돌로만 담장을 쌓은 예스런 풍경에 흠뻑 빠져 둘러보는 내내 감탄을 자아내게 하던 그런 곳, 바로 예천 자전거 나들이에서 만났답니다.
경북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 마을 옛 이름은 ''''''''''''''''''''''''''''''''''''''''''''''''''''''''''''''''금당실''''''''''''''''''''''''''''''''''''''''''''''''''''''''''''''''이에요. 이 마을은 예로부터 ''''''''''''''''''''''''''''''''''''''''''''''''''''''''''''''''십승지지(十勝之地)''''''''''''''''''''''''''''''''''''''''''''''''''''''''''''''''라고 해서 풍수지리로 볼 때, 전쟁이나 자연재해가 일어나도 마음놓고 살 수 있는 열 군데 땅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흔히 ''''''''''''''''''''''''''''''''''''''''''''''''''''''''''''''''피난지''''''''''''''''''''''''''''''''''''''''''''''''''''''''''''''''라고도 말하더군요.
초간 권문해가 지었다는 초간정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멋진 소나무 숲이 마치 이 마을을 지키기라도 하듯 들머리에 넓게 자리잡고 있었어요.
겨울 매서운 바람을 잘 막아주는 바람막이 노릇도 톡톡히 하는 듯 했어요. 더구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도 했답니다.
[돌담길에 빠져 자칫 길 잃어버리겠네!] :
소나무 숲을 지나 이 마을에 들어설 때 무척 놀라웠어요. 집집이 온통 낮은 돌담을 쌓아놓았는데, 그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몰라요.
더구나 전통 한옥집이 많았고, 그것과 어우러진 돌담길은 옛 사람의 푸근하고 따듯한 정도 저절로 느껴지는 그런 곳이었답니다.
땅도 거의 흙길이었고 500집 남짓 되는 마을에는 옛것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퍽 놀라웠답니다.
가지런히 쌓은 돌담 위에는 짚으로 엮은 이엉을 얹어놓았는데, 그 위에다가 긴 대나무를 얹어 다시 엮었기 때문에 바람에도 끄덕하지 않도록 만들었어요.
옛 사람들의 슬기를 엿볼 수 있는 꼼꼼함이 참 좋았답니다. "허! 가도가도 끝이 없네?" "그러게. 온통 돌담길인 것도 놀랍지만 무슨 미로 같아." "가만, 여기 아까 봤던 데 아냐?" 구불구불 돌담길을 따라 자전거를 끌고 알록달록 요상한 옷차림으로 걷는 우리는 어쩌면 그야말로 낯선 이방인이었답니다.
마을 어귀에 있는 금곡서원부터 시작하여 골목길을 따라 가는데, 이게 웬일이래요? 가도가도 끝이 없고 눈에 띄는 건 온통 돌담뿐이었어요.
모퉁이 하나 돌면 돌담이요. 또 하나 돌면,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진 돌담길, 마치 ‘미로’ 같았답니다.
[구불구불 돌담길 따라 전통을 잇는다] :
가만히 살펴보니, 담장이 아주 오래된 옛것도 있었지만 새로 쌓은 듯 보이는 돌담이 많았어요.
"아마 여기를 전통마을로 새로 꾸몄나봐!" ''''''''''''''''''''''''''''''''''''''''''''''''''''''''''''''''그런가 보다. 여기저기 문화재도 많이 있는 걸 보니 마을 전체를 새로 꾸몄지 싶다." "어쨌거나 참 보기 좋다. 골목마다 돌로 낮게 담장을 쌓아놓은 것도 멋지고, 옛것도 그대로 잘 살려놓아서 참 보기 좋네."
"우리가 지난해에 가봤던 성주 한개마을과 군위 한밤마을도 참 멋졌는데 여긴 정말 거기와는 또 다른 맛이다. 그치?" "그래. 마을도 꽤 큰데 이 많은 돌담을 새로 쌓으려면 돈 좀 들었겠다."
"그러게. 그래도 예천군에서 참 잘하고 있네. 자기 지역을 살리는 일에 아낌없이 돈을 쓸 줄도 알고, 전통을 잘 살려 보존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야."
"그런데 보니까 아직 마무리가 덜 된 것 같기도 한데, 나중에 다 되면 정말로 멋진 마을이 되겠다." "하! 부럽다. 그러고 보면, 예천에는 볼거리도 많고 얘깃거리도 참 많다. 그치?"
낮에도 사람소리가 들리지 않는 여느 시골마을처럼 이 마을도 무척 조용했어요. 구경하는 동안 틈틈이 강아지 짖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어요.
드문드문 빈 집도 보였는데, 여기에도 울타리에는 새로 돌담을 쌓아놓았어요.
모퉁이를 돌아가다 보면, 반송재고택·사괴당고택·추원재……. 문화재로 지정된 옛집들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는데 아쉽게도 문이 잠겨있어 안을 제대로 살펴볼 수는 없었답니다. 그래도 담장이 낮아서 구경하기에는 많이 힘들지 않았지만.
[돌담길 벗어나니 여긴 ''''''''''''''''''''''''''''''''''''''''''''''''''''''''''''''''딴 세상'''''''''''''''''''''''''''''''''''''''''''''''''''''''''''''''' ] :
미로 같은 돌담길을 따라 재미나게 실컷 구경하고 부지런히 사진도 찍으면서 모퉁이 하나를 돌았는데, 어머나! 여긴 딴 세상이네요?
"헉! 이게 뭐야?" 깜짝 놀랐어요. 가도가도 온통 돌담만 보였는데,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어요.
그저 모퉁이 하나 돌았을 뿐인데, 조금 앞서 봤던 풍경은 마치 조선시대를 걷고 있는 듯했는데, 이젠 70~80년대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어느 마을에 우리가 서 있는 거였어요.
부용철물·금성소리사·방앗간…. 이름도 정겨운 간판이 걸려있고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여러 가지 가게들이 서로 마주보며 있어요. 돌담마을에서는 사람구경도 하기 힘들었는데, 여기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이 보였어요.
내친 김에 마을 어르신 한 분께 여쭈었어요. "할머니, 요 안에 마을을 구경하고 나왔는데요. 저 돌담이 언제부터 있던 거예요? 옛날에도 있었나요?" "아니야! 이 마을에는 옛날에도 돌담 쌓은 집들이 많이 있었지. 그런데 한 2~3년 됐나? 군에서 새로 저렇게 한 거야."
"아…. 예. 그럼 저 많은 걸 군청에서 다 만든 거예요?" "그렇지. 원래도 많이 있었는데 전통마을인가 그거 한다고 다시 저렇게 한 거여."
우리 생각이 맞았어요. 이 금당실 마을 둘레에는 앞서 봤던 초간정·예천 권씨종택·용문사·명봉사까지 역사 깊은 문화재가 참 많은 곳이에요.
그런데다가 이 마을 안에도 앞서 소개한 전통 한옥집인 고택들이 많이 있어 이 마을 전체를 전통마을로 새로 만들고 있던 거였어요.
[예천군청 인터뷰, 그리고 아쉬움] :
나중에 예천군청 관광개발 담당자인 신연규 씨한테 전화로 이 마을 이야기를 더욱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어요.
지난 2006년에 문화관광부에서 관광자원개발사업을 지원받을 곳으로 이 금당실 마을이 뽑혔는데, 그 때부터 이 전통마을 공사를 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이 사업은 이 지역에서 뿌리내린 유교권 문화를 되살리는 깊은 뜻으로 시작했다는 걸 알 수 있었지요.
''''''''''''''''''''''''''''''''''''''''''''''''''''''''''''''''유교문화권사업''''''''''''''''''''''''''''''''''''''''''''''''''''''''''''''''의 하나로 총 공사비 23억을 들여서 하고 있는데, 2009년에 모두 마무리 지을 계획이라고 합니다.
전통 한옥과 돌담길이 어우러져 낡은 옛집을 다시 고쳐 세우기도 하고, 또 새롭게 집집이 돌담을 쌓아 우리 전통 멋을 그대로 살리는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아 참, 한옥집과 돌담길에 썩 어울리지 않는 게 하나 있는데요. 그건 바로 전봇대에요. 우리도 이런 옛 풍경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에 왔을 때, 사진을 찍으면서 눈에 많이 거슬렸던 게 바로 이 전봇대와 전깃줄이었지요.
그런데 이 전봇대도 하나하나 새롭게 손볼 거란 얘기도 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옛 조상들의 슬기가 그대로 묻어나고 그 옛날 조상의 얼을 살리려고 지역에서 스스로 애쓰는 예천 사람들이 퍽 정겹고 자랑스럽게 여겨졌답니다.
이번 나들이에는 이 금당실 마을을 잘 알지 못한 채 다녀와서 아쉬움도 많이 남아요. 나중에 알았지만 문화재로 지정된 옛집마다 따로 관리인이 있어 미리 약속을 잡고 오면 더욱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마무리가 덜 된 것이라 딱히 탓할 수는 없지만, 문화재마다 너무 꼭꼭 숨겨둔 듯해서 많이 안타까웠어요. 우리처럼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문을 활짝 열어놓고 구석구석 잘 살펴볼 수 있다면 더욱 좋겠어요.
자기 고장을 알리는 작은 책자에는 이런저런 문화재가 있고, 맘껏 구경할 수 있다고 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 문을 꼭 닫아놓고 들여다볼 수 없어서 몹시 속상했답니다.
또 문화재를 알리는 알림판이라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이래저래 예천을 떠나올 때, 밥집 할머니와 했던 약속을 꼭 지킬 수 있을 듯 하네요.
"우리 예천에 아직 볼 데가 많거든요, 꼭 다시 올 거예요" 하고 말했던 그 약속 말이에요. 출처 : http://cafe.daum.net/bluejeens
(엠파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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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악사(鳳德山 西岳寺 新任 도일 住持 스님 就任 法會) [記事] :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 말사 봉덕산 서악사 신임 도일 주지 스님 취임 법회가 2004년 7월 24일 봉덕산 서악사 천불전에서 열렸다. 이 날 취임 법회에는 직지사 주지 자광 스님을 비롯한 각 사찰 스님, 예천사암연합회 용문사 주지 청안 스님 및 사암연합회 스님들, 불자 등 5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으며, 신국환 국회의원, 김수남 군수, 남시우 군의원, 윤호인 예천읍장 및 각급 기관단체장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서악사합창단의 삼귀의, 찬불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반야심경 봉독이 있었으며, 선심행 서악사 신도회장의 환영사, 김수남 예천불교연합신도회장의 축사, 제8교 본사 주지 자광 스님의 격려사가 이어졌다. 신임 도일 주지 스님은 취임사에서, “서악사 천불전에 신도들을 대상으로 불교대학을 개설해 기존의 현세기복신앙적인 형태에서 벗어난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부처님의 법 공부를 통해 마음을 바로 닦는 수행의 도량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히고, “지역과 불교 발전을 위해 헌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날 취임 법회를 가진 신임 도일 주지 스님은 직지사에서 득도. 화산 큰스님에게 강을 전수받았다. 대구 수성구에서 직지불교대학을 개설하고 11년째 포교 활동을 하고 있으며, 동구 직지불교대학 직지선원을 개설했다. 특히 도일 스님은 ‘통키타로 노래하는 도일 스님’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1988년 첫음반을 출반하고 2000년 황룡사합창단과 찬불가 CD 음반 제작 및 찬불가 발표회를 가지는 등 통키타를 통한 포교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醴泉新聞 2004-07-30 1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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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