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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1820) : 예천 충효 19(附 예천방문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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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때 전사하여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이사현(李思鉉) : 1927-1952, 개포면 가곡리 원두골 출신, 일명 태현(泰鉉), 자는 가헌(佳憲), 본관은 경주, 규하(圭夏)의 3자, 한국전쟁(1950) 때 강원도 금화(金化)지구 전투에 참가하여 큰공을 세우고 화랑무공훈장을 받았고, 1952년 1월 20일에 전사하였다. 묘는 개포면 가곡리 원두골 원고개 자좌(子坐)에 있다.(族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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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차례 상소하여 감역에 제수된 이상두(李尙斗) : 旣載
항일운동하다가 체포되어 옥사한 이상만(李相晩) : 旣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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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때 화랑무공훈장을 받고 전사한
이상우(李尙雨) : 1929-1951, 호명면 금릉리 출신, 본관은 경주, 태현(泰鉉)의 2자, 한국전쟁(1950) 때 참전하여 강원도 금화 전투에서 큰공을 세워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1951년 10월 20일에 전사하였다. 묘는 국민묘지(國民墓地)에 있다.(族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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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인
이상호(李相浩) : 예천 출신, 하와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독립단(獨立團)의 단장, 국민동지회(國民同志會, 右翼) 간부, 동 한인협회(韓人協會) 발기인 및 회원이다. 독립단은 하와이에 있던 조선인 단체(회원 30명)이고, 국민동지회도 역히 그 곳의 단체였다. 그러나 이 단체들이 상쟁하여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의 실적을 올리는 일이 도저히 되지 않으므로 임시정부를 직접 지원할 목적으로 1931년(昭和 6) 1월 31일에 이들을 통합하여
한인협회가 조직되었다(kuksa.nhcc.kr 2002). [獨立運動家訊問調書] : 재하와이 대한독립단(회원 31명)의 단장으로서 활동하다가 재하와이 3단체(대한독립단, 대한교민당, 국민동지회)의 정립 항쟁이 점차로 독립운동의 불통일을 심각화해 왔으므로 이상호 등은 이들 하와이 단체의 통일은 물론 각지의 조선인 단체가 이 기회에 단체를 초월하여 민족적 대단결을 하고 상해임시정부를 지원하는 것에 의해서만 종국의 목적인 독립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동지가 서로 의논하여 1926년 5월 통일촉진회의 조직에 착수하였다. 대한독립단 대표였던 이상호는 통일촉진회 조직선전부장에 취임하였다. 이래로 1년 가량은 이 회의 활동에 의하여 각 단체 간의 항쟁도 다소 완화되어 있었으나 이승만의 직속 단체인 국민동지회와 대한독립단과의 항쟁이 재연되어 드디어 이 회는 1년 여로서 해산하였다. 그리하여 1930년 1월 31일에 이상호 외 11명의 서명으로 한인협회가 발기되었다.(國史編纂委員會 홈페이지 獨立運動家訊問調書 趙鏞夏
聽取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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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좌의 난 때 창의하여 공로가 많은
이선방(李善芳) : 1681(숙종 7)-1742(영조 18), 예천읍 용산리 출신, 자는 이선(以善), 본관은 경주, 부호군 요구(堯九)의 3자, 이인좌(李麟佐)의 난(1728) 때 창의(倡義)하여 공로가 많았고, 공조 참의(工曹參議)에 증직되었다. 묘는 임하 평지 반전등 갑좌(臨河平地潘田嶝甲坐)에 있다.(族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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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때 화왕산성에 입성한
이세웅(李世雄) : 용궁면 무이리 출신,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인 1597년(선조 30) 7월 21일에 화왕산성(火旺山城)의 곽재우 의진(郭再祐義陣)에 입성(入城)하였다.(倡義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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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의병 150명을 이끌고 예천 일대에서 활약한
이소영(李紹永) : 1862(철종 13)-?, 용문면 상금곡리 사람, 1899년(광무 3)에 예천 군수(醴泉郡守)로 부임하여 1901년(광무 5)에 이임하였다. 자는 가형(可馨), 본관은 경주, 법부대신 유인(裕寅)의 아들이다. 부모 슬하(具慶下)에서 유학(幼學)으로서 1888년(고종 25) 식년 생원시에 3등 145위로 합격하였다. 남행(南行)으로 별군직 겸 선전(別軍職兼宣傳)이 되고, 집을 하사받았다. 선산 군수, 예천 군수, 부사(府使)를 지냈다.
예천 사람들에게는 군직이 영감으로 알려져 있으며, 세도가 대단했다고 한다. 1908년 의병 150명을 이끌고 안기팔과 예천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안기팔은 김천면 석평(金泉面石坪) 사람으로 그를 대신하여 의병 부대를 지휘하였다.(司馬榜目, 醴泉郡誌 1939, 국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Ⅰ 1983 281쪽, 醴泉郡邑誌 1895, 醴泉郡誌 1988)
이소영 [記事] : 각사등록 근대편 / 제목 관보에 게재할 군수 부임 일자 건을 보내는 통첩 / 문서번호 通牒 第六百十四號 / 발송일 光武三年十月十九日(1899년 10월 19일) / 발송자 內部參書官 吳永烈 / 수신자 議政府參書官 趙秉圭 座下 / 官報에 揭載? 件을 錄交?오니 照亮?심을 爲要. / 後 / 慶源郡守 兪正憲 九月六日 到任 / 慶興府尹 南命稷 九月十五日 到任 / 珍山郡守 李寅兢 九月二十三日 到任 / 醴泉郡守 李紹榮 九月二十三日 到任 / 咸興郡守 李俊相 九月三十日 到任 / 慶尙南道觀察府總巡 金正協 九月三十日 到任 / 魯城郡守 閔泳錫 十月一日 到任 / 長連郡守 安淇壽 十月一日 到任 / 內部參書官 吳永烈 議政府參書官 趙秉圭 座下 光武三年十月十九日(www.history.go.kr 2007)
이소영 [記事] : 각사등록 근대편/ 제목 예천군수 이소영이 이원호를 무고하여 山訟을 일으킨 박기양을 처벌해 주도록 요청 / 문서번호 報告 / 발송일 光武三年十二月七日(1899년 12월 07일) / 발송자 慶尙北道醴泉郡守 李紹榮/ 접수일 接受 光武四年一月五日 第十三號 配付 法 / 수신자 議政府贊政法部大臣 閣下 / 결재자 大臣 協辦 / 卽到付部訓令 第一號를 奉準?온즉 內開에 奉化郡居 朴琦陽이 貴郡居 李元浩에 對? 山訟案件에 訴狀을 接閱?즉 內開에 請願人이 被告의 山訟에 對?야 前後顚末은 已悉於營邑狀? 則更無疊告이온바 百餘年無弊守護之地를 不意昨春에 山下居被告가 敢生不測之心?야 府郡에 誣訴不已?야 依勢起訟이온바 昔年에 稱以渠山偸葬이라?고 京鄕에 圖囑?야 掘人六代孫已生之??고 欲葬其地? 匈計로 左右周旋?여 致此紛?之境이온바 世豈有如許强盜之習乎잇가. 依渠言果是偸葬 則渠之先代는 何不禁葬이오며 若係當禁 則何以起訟於四代之後이오릿가 百爾思之라도 被告之說이 萬萬無據이온즉 不待多辨而曲直이 分明이온? 本郡査報之時에 被告를 偏護?야 八葬年條? 一百三十一年늘 稱以六十餘年이라?고 步數? 踏尺則一百二十餘步也오 浮尺則九十二步을 六十七步라?고 査官도 亦以六十六尺四寸으로 措辭修報則 高等所에셔 稱以步近當禁이라?고 該郡發訓?야 不日督掘이라?온즉 如此? 法律이 何章에 有?지 本郡에셔 族人늘 捉囚?고 猛杖督掘이온즉 世界萬國에 若히 抑?? 訟이 無?듯?오니 若如是則新舊章程은 何處에 有用이오며 大韓人民은 何地에 入葬?오릿가 哀此殘民이 呼訴가 無地故로 玆敢昌死鳴?이온즉 照亮?신 後 本郡에 嚴訓?야 若已督掘이면 還葬其地?고 在囚族人은 卽爲放釋?야 使此遐土殘氓으로 百餘年先?을 支保?야 幽明에 含?이 無케 ?고 被告의 非理健訟? 惡習을 嚴治?와 十三省百姓으로 懲一礪百?기를 仍?야 玆에 請願等因인바 査此朴?入葬 非惟百餘年之久라 步數距離를 朴民之就質平理院時에 供稱不實이라?고 醴泉龍宮兩郡守의 査報에 亦無歸一?즉 朴?之被掘이 有乖訟體이기로 訓飭平理院?야 判掘之前後指飭을 ?爲還收?고 若已督掘이거든 使之還葬?고 朴民之族人在囚者? 卽令放釋?며 李元浩? 捉囚郡獄케 ?여스니 自該院으로 當有訓飭矣라. 訓到擧行後 形止를 亦卽報來于本部? 事로 玆에 訓令?니 此늘 依?야 施行事이시두 郡守가 本年九月日에 平理院訓令을 奉準?온즉 內開에 貴郡下 李元浩 先山局內 朴齊圭의 祖父母?을 掘移後馳報? 意로 訓飭이 已久이거늘 尙不掘移?야 李民의 奔訴을 更致?니 事甚稽忽이라 到卽該朴?을 派差役掘移後馳報이되 毋或仍前漫??을 爲?야 玆에 訓令?니 此을 施行? 事이시기로 李元浩의 狀?을 溯考?온즉 有曰 高祖晦尤公墓所 在於本面鼓山 而前後左右 皆是屢百年守護之地也 元無一?他?矣 不意己亥十一月 有何頑漢乘夜偸埋於至近之地 而因爲隱跡故 卽其時訴于本官 題音內 無論虛葬與實葬 旣是有官爵墓下數十步之地 在法當掘 刻別嚴治次 斯速搜覓敎是乎 所民等廣探搜覓 莫知踪跡 而偸?則累歲荒蕪 有似乎無子孫一?兒?也 自此延拖 以至于五十餘年矣 去再昨年丁酉冬 始知?主 則乃部內居 朴齊圭也 渠以公?小吏 敢犯於大夫山?下 而自知犯禁 積歲隱諱 今乃始露故 民等仰訴本郡 親審圖尺 捉囚督掘是乎 所前後題音盡是截嚴 鄕道士林 ?爲仰訴 頑彼 朴齊圭 誣訴營庭故 民亦追後仰訴 則題音內 偸?而匿? 豈可以年久不掘乎 親審督掘向事敎是乎 乃惟此朴也 尙此頑拒同付裁判於營庭 則題音內 今於自府對質裁判之場 以其朴民八葬年條言之 朴所云百餘年之說 論以代數 自歸誣罔 李所云五十餘年之言 考諸前狀 有所可據 偸是明的 朴置落 科限督移葬向事敎是乎 故自本郡捉囚 朴琦陽 定限捧?矣 奸彼琦陽 無難過限 又爲誣訴於平理院 故民亦繼訴 至有兩隻裁判之擧而本郡圖尺 則六十六步半 而朴稱不公是乎所 使龍宮郡 更爲圖尺 則六十二步四寸五分也 朴之所訴 盡歸誣罔 因下訓令內 李元浩 高祖 官是掌令 則四品官墓 相距六十步之地他人八葬 在法當禁 朴琦陽 置諸落科 令到卽刻 朴齊圭 祖父母? 火速掘移後 馳報敎是乎乃惟此 朴齊圭 一如頑拒이다 故로 捉致 朴齊圭 依院訓限定督掘이옵던니 今下部訓이 若是鄭重이오나 蓋朴?은 必掘後已者 渠以公?小吏로 乃敢偸葬於大夫墓階下六十餘步坐立俱見之地?고 隱匿於五十年之久이다가 畢竟現露?야 非徒本孫之訴라. 至登於鄕道士林之狀 而與李民呈府呈院裁判之場에 連置落科則卽地掘去가 道理當然이거늘 尙此頑拒에 誣訴不已?야 致煩崇聽?니 習極可駭라. ?若不掘이면 殆無息訟之日이오니 在京之 朴琦陽을 卽令捉致?시와 照律處辦?시믈 伏望.慶尙北道醴泉郡守 李紹榮 議政府贊政法部大臣 閣下 大臣 協辦 光武三年十二月七日 接受 光武四年一月五日 第十三號 配付 法(www.history.go.kr 2007)
이소영 [記事] : 각사등록 근대편 / 제목 상주군수 등 경상북도 관하 군수들의 치적보고서 / 발송일 光武四年一月十七日(1900년 01월 17일) / 慶尙北道管下郡守 治蹟 / 尙州郡守 李漢膺 誠心實績이 三載一規?니 訟平刷嚴?야 條理粲備?고 惠均化洽?야 聲譽特著홈. / 慶州郡守 趙儀顯 執簿董刷를 不憚順勞?고 補費繕?에 亦多修擧?니 重整弊局을 寔?良手홈. / 大邱郡守 金榮浩 仁惠恤燒?니 捐傾月??고 明察實濕?니 績及星隣이라 萬口成碑?야 今聞不已홈. / 星州郡守 申慶均 遭艱 / 義城郡守 洪赫周 弦韋互濟?고 規矩不紊?야 臨民視事에 務盡公平?니 茂著之績이 於斯爲美홈. / 永川郡守 姜永瑞 一念圖報?야 彈誠做治?니 逋藪刮淸?고 窮?奠安이라 衆皆拭目에 孰謂初手홈. / 安東郡守 李命宰 通班出宰에 雅望持重이라 化行俗美?고 吏服民懷?니 西京循良을 今爲復覩홈. / 醴泉郡守 李紹榮 梓鄕?治?니 榮耀衣錦?고 ?屋覃惠?니 頌騰袴?홈. / 金山郡守 閔東爀 刷政旁午?니 吏先愼擇?고 ?令嚴申?니 客無干囑홈. / 善山郡守 黃演秀 規成屢典?고 治??隣績이라 施措凡百이 終始惟一?니 闔境晏如?고 頌聲蔚然홈./ 淸道郡守 李建鎔 剖決甚明?고 刷務亦勤?야 隨事???니 優有稱譽홈. / 靑松郡守 張承遠 結逋戶?을 査淸克勤?고 籍價橋費를 捐補究惠홈. / 仁同郡守 李長稙 淸簡律已?고 明核?治?니 吏莫?奸?고 民皆懷惠홈. / 寧海郡守 徐敏淳 ?雖屬耳나 政先察眉?니 固一弊局이라 俟來可?홈. / 順興郡守 沈鍾舜 孜孜爲治?야 井井成規?니 分憂盡職을 夫孰加爲홈. / 漆谷郡守 李鍾杓 躬檢勘納?야 不委吏手?고 借貸矯??야 以便旅宿홈. / ?基郡守 張?岐 課督結刷?니 知所先務?고 捐充戶徵?니 厥有爲施홈. / 盈德郡守 權鍾哲 吏?犯逋?니 蜀政先嚴?고 民悅撫諭?니 渤俗漸化홈. / 龍宮郡守 金相一 視民如傷?고 御下宜嚴?니 謬弊旣祛라 官民相乎홈. / 河陽郡守 閔鳳鎬 日淺 / 榮川郡守 尹?禎 聽民開洑에 兩便是妥오 ?吏勘逋에 百方盡力홈. / 奉化郡守 朴注東 勤以催科?니 納無越當?고 明於裁訟?니 聽必周詳홈. / 淸河郡守 金泳鎭 捧稅有程?니 吏服其能?고 勸課以時?니 民樂爲善홈. / 眞寶郡守 吳宖默 ?爾小邑에 老鍊良吏라 不煩施措에 治已翕然홈. / 軍威郡守 林兩相 儒素尙質?니 可喜洵實이오 廉白飭躬?니 亦勤檢束홈. / 義興郡守 任百淳 承積弊餘?야 ?大着力이라 宿逋幾淸?고 殘局就完?니 利器盤錯이오 來暮謳謠홈./ 新寧郡守 朴準成 規度宏偉?고 聲望?蔚?니 午刀割鷄에 恢恢有餘홈. / 延日郡守 李翼鎬 以若鍊達로 兼之剛明?니 茂績已著?야 吏民咸頌홈. / 禮安郡守 南廷弼 奉公以誠?고 馭吏有度?야 大體稱平?니 細節可推홈. / 開寧郡守 具翊鉉 署謹簿書?니 務要遵式?고 ?檢吏隷?니 志在便民홈. / 聞慶郡守 李宰夏 仁明之政이 慈惠及民?니 千家活佛이오 百里福星이라 嶺底髮白이 歌詠太平홈. / 知禮郡守 金蘭圭 邑僻事簡에 淸淨其治라 庭驚早退?고 村<H32103>晝?홈. / 咸昌郡守 趙炳淳 邑多滯納에 政先嚴刷?니 已有稱譽라 可期溱效홈. / 英陽郡守 張去洪 察隱祛??야 夙夜靡懈?고 剔舊刷新?야 次第告勘홈. / 興海郡守 姜台聲 公廉爲度?고 嚴明從事라 隣境想風?니 德政攸及이오 輿頌如雷?니 聲績優異홈. /
慶山郡守 申鍾協 性本恬雅?고 治亦雍容?니 距府伊邇라 惟日聞譽홈. / 慈仁郡守 李敏星 深察民弊?고 嚴束吏奸?니 ?情胥悅?야 交口爭頌홈. / 比安郡守 鄭觀喜 觀於査事에 已著綜詳?고 聽諸與論에 亦稱簡嚴홈. / 玄風郡守 洪弼周 夙有蘊抱?고 屢著考最라 懇土告切?니 民多蒙利?고 村絲繡名?니 政有實惠홈. / 高靈郡守 金永年 勤?自勵?고 寬仁爲惠?니 民各安堵?고 邑有頌碑홈. / 長?郡守 李敦行 老成之績이 導率以方?니 濱海一?에 文風蔚興홈. / 光武四年一月十七日(www.history.go.kr 2007)
이소영 [記事] : 각사등록 근대편 / 제목 경상남북도 관하 부윤·군수 치적 내용과 운산군수 사망 건 등을 관보에 실을 것 / 문서번호 通牒 第百六十五號 / 발송일 光武四年八月二日(1900년 04월 08일) / 발송자 內部參書官 吳永烈 / 수신자 議政府參書官 趙秉圭 座下 / 慶尙南北道管下府尹郡守治蹟을 謄本送交?오며 雲山郡守身故日字를 左開?오니 照亮?오셔 官報에 揭載?시믈 爲要. / 左開 / 雲山郡守 許? 七月二十一日身故事/ .../ 慶尙北道管下郡守治蹟 / 尙州郡守 李漢膺 爲政懋以公平?니 四載成績이오 愛民出於慈諒?니 一境稱頌홈./ 慶州郡守 未差. / 大邱郡守 洪弼周 隣績旣著?니 如雷灌耳?고 新頌方蔚?니 陽春有脚홈. / 星州郡守 金東萬 通敏之才가 優有良吏之地步?고 勤幹爲治에 允副鉅局之民望홈./ 義城郡守 洪赫周 ?虛戶而坊里蒙惠?고 捐薄?而?舍改觀?니 政無不擧에 民多稱頌홈. / 永川郡守 姜永瑞 訟必從理?니 已得爲治之要?고 納不違程?니 尤見勤公之誠홈. / 安東郡守 李命宰 劇務之局에 處若安閒?니 老成之治가 一是雍容이라 不煩聲色而吏皆畏??고 想望風裁而民自悅服홈. / 醴泉郡守 李紹榮 就理. / 金山郡守 閔東爀 老鍊之治가 夙?鄕邑之俗이오 懋實之政이 斯見輿民之頌홈. / 善山郡守 黃演秀 一規廉雅에 庶績綜詳?야 聽理必察情僞?고 決獄克底平允이라 恩威幷施?야 吏民咸頌홈. / 淸道郡守 李建鎔 性本剛明?고 治亦勤孜?니 催科而著綽步之效?고 奬學而頌蔚興之美홈. / 靑松郡守 鄭道永 日淺. / 仁同郡守 李長稙 決訟無滯?고 董刷有方?니 良手施措가 條理不紊?고 衆口稱譽에 實績自著홈. / 寧海郡守 徐敏淳 就理 / 順興郡守 李喆和 日淺 / 漆谷郡守 李鍾杓 一念奉公?니 家近無妨?고 三載爲治?니 任久知?홈. / 豊基郡守 張錫岐 政尙淸簡?니 公門如水?고 惠多?恤?니 ?屋生春이라 治聲喧藉?고 民望?蔚홈. / 盈德郡守 黃觀秀 臨民嚴猛은 諒由馴俗이라 隨事審愼에 終可湊效홈. / 龍宮郡守 金相一 優老?貧은 已有稱譽라 束濕察奸은 尤自勉勵홈. / 河陽郡守 閔鳳鎬 貸則傷廉이라 惠馬塞責홈. / 榮川郡守 金光錫 ?任未久에 雖無施措之特著나 初政攸爲가 頗能勤謹而致力홈. / 奉化郡守 朴注東 邑僻事簡에 政亦安詳?니 民多寧謐之樂?고 官有逍遙之暇홈. / 淸河郡守 柳喬榮 日淺. / 眞寶郡守 吳宖默 就理. / 軍威郡守 林雨相 週歲施爲는 咸誦慈惠之績이오 暮年治規가 益著振刷之方홈. / 義興郡守 金榮浩 日淺. / 新寧郡守 朴準成 循良之規오 通鍊其材라 已驗屢典?니 治何有於?邑이며 夙有蘊抱?니 量必克其巨務홈. / 延日郡守 趙炳淳 求治出於誠心?고 臨事得其大體?니 政簡訟平?야 民頌來暮홈./ 禮安郡守 南廷弼 人固醇實이오 政亦稱平이라 吏任極選은 實由謹愼이오 民訟妥決은 寔?明核홈. / 聞慶郡守 李宰夏 廉約自持?고 嚴明爲治라 吏逋期圖淸帳?니 蚤夜靡懈?고 民訟自無滯案?니 曲直立判홈. / 知禮郡守 金熙元 ?任以來로 ?誠做去?니 官民相孚?야 一境晏如홈. / 咸昌郡守 金大鎭 撫民以惠?고 束吏也嚴?니 邑事已多整飭?고 公刷克圖淸勘홈. / 英陽郡守 張志洪 實心願治?니 先以律己之篤이오 雅規勵廉?니 庸乃示民以信홈./ 興海郡守 南萬里 日淺. /
慶山郡守 申鍾協 治已四載에 才優百里라 化洽蒲敏?고 民惜苽熟홈. / 慈仁郡守 李敏星 飭躬以勤以儉?고 處事不煩不擾라 燒戶助恤은 ?優捐而懷惠?고 賓館重修에 民不勞而告功홈. / 比安郡守 鄭觀喜 民訟則聽斷如流?고 公納則督發無滯라 廉白雅操는 雖毫莫取?고 保赤誠心은 有口皆頌홈. / 玄風郡守 李秉弘 已自新?로 政有可觀이라 于玆暫曠에 民望式?홈. / 高靈郡守 金永年 捧稅裝納을 不任吏手?니 可無犯欠之弊?고 修?築堰에 無勞民力?니 必有稱譽之績홈. / 長?郡守 鄭崙氷 邑少事而亦勤?니 已聞初政이요 鄕雖信而必察?니 庶無後킔홈. / 開寧郡守 李寅聲 習知民邑利病?니 椽胥皆服?고 痛革坊市侵漁?니 商旅願藏홈. / 光武四年八月二日 / 內部參書官 吳永烈 議政府參書官 趙秉圭 座下 光武四年八月二日(www.history.go.kr 2007)
이소영 [記事] : 각사등록 근대편/ 제목 각 도 관하 수령에 대한 치적 평가건의 관보 게재 요청 / 문서번호 通牒 第百八十七號 / 발송일 光武五年八月二十日(1901년 08월 20일) / 발송자 內部參書官 吳命煥 / 수신자 議政府參書官 李道相 座下 / 十一道管下守令治蹟褒貶件을 錄交?오니 照亮?오셔 官報에 揭載?시믈 爲要 / 慶尙北道管下各郡守 治蹟 / 尙州郡守 金命洙 潔不愧水 刷可爭雷. / 慶州郡守 朴炳翌 稅已百萬 貢未十二. / 大邱郡守 金炳定 舊刷新捧 旣勤且勞. / 星州郡守 沈健澤 未赴任. / 義城郡守 洪赫周 有限正供 何處橫走. / 永川郡守 鄭寅國 稅旣云發 尺宜斯速. / 安東郡守 姜濩 以若老成 如是憂勤. / 醴泉郡守 李紹榮 請願呈部. / 金山郡守 林鏞炫 稅擔前守 責休新來. / 善山郡守 黃演秀 新舊刷納 夙夜憂勤. / 淸道郡守 李建鎔 以兼以督 無往無績. / 靑松郡守 李喆和 未赴任. / 仁同郡守 張錫五 約稅金石 立志氷?. / 寧海郡守 徐敏淳 稅旣積滯 官何久曠. / 順興郡守 張龍煥 以其竗少 如此綜詳. / 漆谷郡守 張允煥 未赴任. / 豊基郡守 閔泳一 旣聞往績 可見來效. / 盈德郡守 孫基馥 吏莫?奸 民不作弊. / 龍宮郡守 金相一 官吏約法 盜賊屛跡. / 河陽郡守 李重翼 未赴任. / 榮川郡守 鄭淑度 可愛其政 必施以惠. / 奉化郡守 朴注東 郡小如斗 政平以衡. / 淸河郡守 柳喬榮 立約扶俗 ?盜安民. / 眞寶郡守 盧泰愚 實心乃勤 譽聞可期. / 軍威郡守 林雨相 知有善人 可扶頹俗. / 義興郡守 金奎衡 人地有望 吏鄕不欺. / 新寧郡守 朴準成 量地督刷 隨處有績. / 延日郡守 趙炳淳 下刷云善 上供何遲. / 禮安郡守 南廷弼 官不守郡 稅無入部. / 開寧郡守 李寅聲 旣淸郡納 兼督隣刷. / 聞慶郡守 李宰夏 一治自如 四境晏然. / 知禮郡守 李根榮 刷不煩劇 惠有實施. / 咸昌郡守 丁憙燮 性本恭儉 治又審愼. / 英陽郡守 李龍九 未赴任. / 興海郡守 南萬里 民皆安堵 賊不犯境. / 慶山郡守 黃崙秀 臨民不欺 ?盜有勞. / 慈仁郡守 閔致殷 一念勤孜 百務釐正. / 比安郡守 尹起晉 未赴任. / 玄風郡守 李秉弘 乃誠不欺 克勤著效. / 高靈郡守 張悳根 刷納有規 聽斷無私. / 長?郡守 成輔永 素所蓄積 老乃施措. / 光武五年七月十六日 / .../ 內部參書官 吳命煥 議政府參書官 李道相 座下 光武五年八月二十日(www.history.go.kr 2007)
이소영 [記事] : 각사등록 근대편 / 제목 예천군에 지시한 미납 ?稅를 파견원에게 납부하라는 훈령 / 문서번호 訓令 二號 / 발송일 光武四年十月十日(1900년 10월 10일) / 발송자 內藏院卿臨時署理警部協辦 李容翊 / 수신자 醴泉郡守 李紹榮 座下 / 本郡所在?肆稅額이 自光武四年一月一日爲始?야 移屬本院句管 而事係帑用 則所重이 有別이거늘 何由로 本郡은 莫重公納을 如是慢忽이 在郡事?에 極涉駭然이라 玆用發訓?니 到卽一月以後准金與月稅를 不日督捧?야 這這出給捧稅官?야 使之輸納于本院케 ?야 毋至漫?生梗弊를 爲要./ 內藏院卿臨時署理警部協辦 李容翊 醴泉郡守 李紹榮 座下 光武四年十月十日(www.history.go.kr 2007)
이소영 [記事] : 각사등록 근대편/ 제목 궁내부에서 예천군수에게 黃?板 운반비를 예천군 1898년 結錢에서 지출하라 함 / 문서번호 訓令 郡守 / 발송일 光武五年一月二十三日(1901년 01월 23일) / 수신자 醴泉郡守 / 宮內府照會 據?야 玆用發訓?니 本郡黃?板輸納費三千三百兩을 本郡戊戌條結錢中支撥?고 修報憑勘이 可? 事. / 醴泉郡守 光武五年一月二十三日(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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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때 화왕산성에 입성한
이수곤(李秀坤) : 1566(명종 21)-?, 용문면 금당실(金塘谷) 출신, 자는 수지(秀之),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인 1597년(선조 30) 7월 21일에 화왕산성(火旺山城)의 곽재우 의진(郭再祐義陣)에 입성(入城)하였다.(倡義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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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년 의진에 협력한
이실진(李實鎭) : 용궁군(龍宮郡) 출신, 자는 경숙(敬叔), 본관은 공주, 구한 말의 의병(義兵)으로 이강년(李康秊)의 의진(義陣)에 협력하였다.(獨立有功者功勳錄 1卷 國家報勳處 389쪽, 獨資 1卷 305쪽, 金承學 下卷 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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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때 화왕산성에 입성한
이약 : 1566(명종 21)-?, 용문면 금당실(金塘谷) 출신, 자는 여유(汝唯),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인 1597년(선조 30) 7월 21일에 화왕산성(火旺山城)의 곽재우 의진(郭再祐義陣)에 입성(入城)하였다.(倡義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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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좌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무신창의록>에 실린 이억(李億) : 旣載
임란 때 의거, 정유재란 때 화왕산성에 입성하여 <창의록>에 실린 이영문(李榮門) : 旣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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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에 가담하여 대통령 표창에 추서된
이용헌(醴泉 出身 獨立運動家 6名 光復節 맞아 褒賞) [記事] : 국가보훈처는 광복 61년 광복절을 맞아 항일운동을 전개한 예천 출신 6명을 포함 모두 313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했다. 이번에 포상한 독립유공자의 훈격은 건국훈장 145명(독립장 3, 애국장 43, 애족장 99), 건국포장 47명, 대통령 표창 121명 등이며, 이 중에서 예천군 출신이 6명 포함됐다. 정휘세(1916-1931, 일본방면활동) 선생이 애국장, 황창섭(1896-1949,
국내항일) 선생이 애족장, 박규수(1991-1947, 3.1운동)·이용헌(1880-1934, 3.1운동)·이종협(1895-1929, 3.1운동)·이준형(1883-1940, 3.1운동) 선생이 대통령 표창 포상을 받았다.(醴泉新聞 2006년 08월 17일 11: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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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권피탈 후 외국에서 항일운동하다가 원통히 죽은
이우영(李宇榮) : 1869(고종 6)-?, 용궁면 금남리 출신, 자는 우진(佑震), 본관은 경주, 의관 집성(議官集聖)의 장자, 국운(國運)이 불행하여 국권피탈(1910)을 보게 되자, 의분을 못참아 광복의 뜻을 세워 북만주, 시베리아, 상하이 등지로 유랑하며 활약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만주 길림성 강밀봉(吉林省江密峰)에서 원통히 죽은 후 오늘까지 유골도 고국에 운구하지 못하고 있다. 묘는 강밀봉에 있다.(族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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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 때 왜적과 싸워 전공을 세우다가 순국한 이유(李愈) : 旣載
1905년에 보안회장으로서 일본 공사를 만나 일본의 우리나라 황무지 개간권을 직접 항의하다가 2년 뒤 순국한 이유인(李裕寅) : 旣載
임란 때 선무원종공신에 등록된 이일도(李逸道) : 旣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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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운동하다가 옥고를 치러 건국포장에 추서된
이재영(李縡榮) : 1898(고종 2)-1925 : 예천읍 노하리 출신, 예수교 신자, 이발사로서 1918년 6월 경 만주 봉천성 유하현(滿洲奉天省柳河縣) 지방에 무관학교(武官學校)를 세워 군사 교육을 시켜 무력적 독립 운동을 하려고 하였다. 또한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고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등 독립 운동의 기운이 증폭되던 상황에서 독립 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러던 중 평소 안면이 있던 배승환(裵昇煥)이 임시 정부에
투신하여 독립 운동에 종사할 것을 권하자, 이에 공감하고 상해로 망명을 추진하였고, 또한 만주 무관학교에 가려하다가 체포되어 1920년 9월 24일 일본 경찰에 송치되었다. 그리하여 1921년 2월 2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建國褒章)을 추서하였다.(身分帳指紋原紙 警察廳, 高等警察要史 慶北警察部 200-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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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때 화왕산성에 입성한
이정곤(李挺坤) : 1583(선조 16)-?, 용문면 금당실(金塘谷) 출신, 자는 정지(挺之),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인 1597년(선조 30) 7월 21일에 화왕산성(火旺山城)의 곽재우 의진(郭再祐義陣)에 입성(入城)하였다.(倡義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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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창의하여 군사로 추대된 이정기(李鼎基) : 旣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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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때 화왕산성에 입성한
이존성(李存性) : 1582(선조 15)-?, 감천면 만장(晩場) 출신, 자는 경지(敬之),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인 1597년(선조 30) 7월 21일에 화왕산성(火旺山城)의 곽재우 의진(郭再祐義陣)에 입성(入城)하였다.(倡義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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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 비호대원이어서 애족장을 받은
이종열(李鍾烈) : 1924- , 풍양면 와룡리 출신, 풍양소학교(豊壤小學校) 졸업, 광복군 비호대원(光復軍飛虎隊員)이다. 1945년 1월에 중국 호북성 신점진(湖北省新店鎭)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日本軍, 步兵 二等兵)을 탈출하여 중국 유격부대에서 유격전과 적의 정보 수집 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그 후 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에 편입되어 전방 공작원으로서 대적(對敵) 정보 활동 및 한중합동작전(韓中合同作戰), 한미훈련 전방공작(韓美訓練前方工作) 등 항일
운동을 전개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대통령 표창(1982), 건국훈장 애족장(愛族章, 1990)을 받았다.(抗日獨立運動史 1991 281쪽, 大韓民國 獨立有功者功勳錄 第5卷 國家保勳處 1988年 403ㆍ1035쪽, 獨立運動史 國家保勳處 6卷 449ㆍ452ㆍ6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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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에 가담하여 대통령 표창을 받은
이종협(數十年 歲月이 흘렀어도… “님의 나라사랑은 잊히지 않았다”: 醴泉 出身 抗日獨立運動家 이종협 先生, 解放 61年·死亡 80餘年만에 功績 認定) [記事] : 1919년 3월 1일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른 뒤 10여년을 일경의 눈을 피해 오매불망 조국의 독립만을 열망하며 전국을 떠돌다 숨을 거둔 항일 애국지사가 해방 61년이 지나고 숨진 지 80여년 만에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게 됐다. 이종협 선생은 1919년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그해 4월 2일 일본 경찰에 체포돼 4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출감한 뒤 일경의 감시의 눈을 피해 가족과도 연락을 끊고 전국을 떠돌며 항일애국 운동을 하다 1929년 삼척에서 서른넷의 나이에 원인 모를 죽음을 당한 것으로 가족들은 알고 있다. 선생의 가족들은 해방 이후 모두 북으로 가 생사조차 알 길이 없다고 한다. 유일하게 생존하고 있는 선생의 제수인 권점례 할머니(101·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와 가족들은 수상 소식을
접하고 잃어버린 가족사를 찾은 것이라며 감격스러워 했다. 권 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이중희(56, 수원시) 씨는 “큰아버지가 당시 옥고를 치르고 안동형무소에서 출감할 때 주민들이 말을 준비해 고향으로 모셨다고 들었다 며 “평소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수없이 들었던 큰아버지의 파란만장한 삶이 이제야 조금은 보상되는 듯해 너무 감격스럽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이씨는 “큰아버지가 출감하신 뒤 일경의 눈을 피해 고향을 떠나신 후 당시 남은 가족들까지 큰아버지의
행적을 쫓는 일경들에게 수없이 고문을 당했다고 전해 들었다”며 “큰아버지의 항일애국 활동으로 아버지 형제들 모두가 기구한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또 “최근 정부에서 친일파들의 재산 환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에 너무나 가슴이 후련하다”며 “두 아들에게 잃어버렸던 항일애국지사라는 가족의 뿌리를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게 돼 더없이 기쁘다”며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한편 선생의 형인 규원 씨는 일제 치하에서 면 서기를 하다가 단발령에
반발해 공직을 그만 두었다고 전해진다.(張炳喆 記者 慶北日報 2006/08/16)
이종협(醴泉 出身 獨立運動家 6名 光復節 맞아 褒賞) [記事] : 국가보훈처는 광복 61년 광복절을 맞아 항일운동을 전개한 예천 출신 6명을 포함 모두 313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했다. 이번에 포상한 독립유공자의 훈격은 건국훈장 145명(독립장 3, 애국장 43, 애족장 99), 건국포장 47명, 대통령 표창 121명 등이며, 이 중에서 예천군 출신이 6명 포함됐다. 정휘세(1916-1931, 일본방면활동) 선생이 애국장, 황창섭(1896-1949, 국내항일) 선생이 애족장, 박규수(1991-1947, 3.1운동)·이용헌(1880-1934, 3.1운동)·이종협(1895-1929, 3.1운동)·이준형(1883-1940, 3.1운동) 선생이 대통령 표창 포상을 받았다.(醴泉新聞 2006년 08월 17일 11: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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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346
서악사 대웅전 탱화(西岳寺大雄殿幀畵) [遺物] : 예천읍 대심리 560번지(宗) 서악사 대웅전 내에 유존하는 후불 탱화로, 가로 152cm, 세로 140cm이다. 탱화 하단부의 중앙에 가로 53cm, 세로 15cm의 방형(方形) 안에 ''''昭和十年乙亥四月二十三日''''(1935)의 화기(畵記)가 적혀 있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醴泉郡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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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