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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1824:예천충효23(祝농부요한농원.전우성/예천방문350)
작성자장병창 @ 2009.01.22 07:01:03

  예천의 자랑(1824) : 예천 충효 23(附 예천 농부요한농원, 경향닷컴 유망브랜드 대상...축하합니다/예천 출신 전우성, 문예사조 신인상...축하합니다/예천방문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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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병으로서 독립운동을 하여 애족장을 받은
  정용구(鄭鏞九) : 지보면 출신, 의병(義兵)으로서 독립 운동을 하였다. 애족장(愛族章, 1990)을 받았다.(獨立有功者功勳錄 9卷 4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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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란 때 세자를 모시고 피난한
  정윤목(鄭允穆) : 1571(선조 4)-1629(인조 9), 예천읍 고평리(高士坪)에서 용궁(龍宮)으로 옮겨 산 입향조, 자는 목여(穆如) 또는 백유(伯兪), 호는 청풍자(淸風子) 또는 죽창거사(竹窓居士), 노곡거사(蘆谷居士), 본관은 청주, 좌의정 약포 탁(左議政藥圃琢)의 3자, 윤위(允偉)의 동생, 서애 유성룡(西厓柳成龍)과 한강 정구(寒岡鄭逑)의 제자, 풍체가 호탕고매(豪宕高邁)하고 매우 총명하여 어렸을 때 경사(經史)의 큰 뜻에 통달하고 문명이 쟁쟁하여 당시의 유명한 유학자들이 다 경탄하였다. 예악(禮樂), 병법(兵法), 형법(刑法), 음양(陰陽), 율력(律曆), 구류(九流, 9種의 學派), 백가(百家)에 이르기까지 통하였고, 특히 성리학에 정통하였다. 또 필법이 탁월하여 초서(草書)와 예서(隸書)의 명필(名筆)이라 일컬어졌는데, 특히 초서(草書)에는 당시의 제1인자(第一人者)로 알려졌다. 그림에도 뛰어났다. 약관(弱冠)에 아버지를 따라 명(明) 나라에 가니(1589), 그곳 사람들이 정윤목(鄭允穆)의 풍채와 문장을 보고 큰 사람의 풍도가 있다고 다투어 사귀기를 청하였다. 이듬 해(1590) 여름 돌아왔고, 당시의 명사인 오리 이원익(梧里李元翼), 백사 이항복(白沙李恒福) 등이 국사(國士)로 대접했고, 임진왜란(1592)에 전쟁에 대비하여 왕과 세자(光海君)가 나뉘어 피난할 때 세자를 모시는 책임을 진 아버지를 따라 강계(江界)길을 돌다가 다시 관동 춘천(關東春川)길을 거쳐서 이천(伊川)으로, 다시 성천(成川)에 이르게 되었다. 이때 그는 시종 세자(世子)와 동행하면서 초로(草路)에서 동침(同寢)하고 험식(險食)을 같이 하였다. 난이 끝나고 선조(宣祖)가 승하하고, 세자(光海君)가 등극하게 되자, 왕이 그를 누차 불렀으나 때가 대북당(大北黨)의 패륜(悖倫) 행위 때라서 결연히 벼슬길을 피하고, 고평리(高坪里)에 돌아와 유유자적(悠悠自適)했고, 그 뒤로 노곡(盧谷, 醴泉郡西 海鴨山 鴨峯下)에 살면서 호(號)를 삼기도 했고, 다시 44세 때 용궁현 장야평(龍宮縣長野坪)에 옮겨(1614) 살면서 당시의 명사(名士)들과 교유(交遊)하였다. 1616년(광해군 8) 처음으로 소촌도 찰방(召村道察訪)에 보직(補職)되었으나, 1년 만에 광해군(光海君)의 난정(亂政)에 윤리가 무너지고 기강이 문란해짐이 계속됨을 보고 출세에 뜻이 없어서 다시 삼강(三江)의 합류 지점인 달지 몽촌(達池夢村, 1622, 現 聞慶市 永順面)으로 옮겨 살면서 삼호정(三湖亭)을 세우고 시(詩)와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풍양면 삼강(三江)에서 타계 (他界)하였다. 스스로 청풍 거사(淸風居士)라 하고, 시율(詩律)로 당대에 유명했다. 용궁면 무이리의 무이서당(武夷書堂)에서 쓴 유초(遺草)가 있는데, 임진왜란 때 서당(書堂)은 불에 탔으나 이 책만은 남아 있다. 정구(鄭逑)는 제자들 중에 그를 특히 촉망하였고, 그에게 특청(特請)한 병풍(屛風) 8첩서(八帖書)가 지금도 정구 종택(鄭逑宗宅)에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묘는 갈운산 묘좌(갈雲山卯坐)에 있다. 호명면 황지리의 도정서원(道正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ㅇ 그는 효심(孝心)도 지극하였다. 임진왜란 때의 일이다. 명(明) 나라에서 파견한 경략 송응창(經略 宋應昌)과 제독 이여송(提督李如松)도 그의 부군 시행(父君侍行)을 보고 그 지극한 효심에 감탄하였다, 아버지를 수행하여 중국 연경(燕京, 北京)에 갔을 때(1589) 그의 나이 19세였다. 그의 필법(筆法)에 중국인들은 감탄하였다는데, 그가 길을 거닐다가 부채장수인 어느 노파의 부채를 펴서 글씨 한 줄을 써 주었는데, 그 노파가 부채를 훼손했다고 성을 내었다.


  그렇지만 그가 그 길에서 되돌아올 때는 그 노파가 백배 사죄(百倍謝罪)하더라는데, 그 이유는 그 부채값이 몇 갑절 올랐기 때문이다. 그의 글씨는 왜병(倭兵)도 탄복한 바 있는데, 그의 처가(妻家) 벽상에 써놓은 그의 시문(詩文)을 본 왜병은 그 필법(筆法)과 시상(詩想)의 탁월함에 오히려 절하고 가게 되니, 병화(兵禍)도 면했다고 한다. "평생불의지부귀(平生不義之富貴)하고 오탐불역삼공귀(吾貪不易三公貴)"라고 한 그는 ''''동방부자(東方夫子)''''라고 칭하는 퇴계 이황(退溪李滉)과 같이 ''''동방백이(東方伯夷)''''라고 칭했다. 그의 서책(書冊)은 병화(兵禍)로 소실(燒失)되었지만 후손의 구송(口誦)으로 <청풍자집(淸風子集)> 3책이 이루어졌는데, 현손(玄孫)인 황해도관찰사 정옥(黃海道觀察使鄭玉)에게 영조(英祖)께서 명하여 <약포문집(藥圃文集)>과 같이 국비(國費)로 간행되었는데, 별판(別版)은 삼강리 청풍자 종택 묘우(三江里淸風子宗宅廟宇)에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전고대방(典考大方)>에도 일본어 서적인 <광나집(廣儺集)> 등에도 당시의 명필(名筆)이라고 소개되어 있고, 유묵(遺墨)도 삼강 종택(三江宗宅)에 많이 남아 있는데, 아버지의 유묵(遺墨)과 같이 보물 제487호로 지정되어 있다. 삼강강당(三江講堂)에는 그가 중국 연경(燕京)에 갔을 때 수양사(首陽祠, 伯夷叔齊廟)에서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는 4대자를 모사(模寫)하여 헌판(軒板)에 게시된 것이 있다. 삼강온고각(三江溫古閣)도 향토관(鄕土館)으로는 손색이 없다. 정탁(鄭琢), 정윤목(鄭允穆) 의 양대 유묵(遺墨)을 위시하여 신라 토기, 고려 청자, 이조 백자, 유성룡(柳成龍) 의 징비록 책판(冊板), 명현(名賢)들의 유묵(遺墨) 등 700여 점이 보존되어 있다. 뒷산 중턱에는 그의 6세손 도천 참봉 노암(道薦參奉魯庵)의 동산정(東山亭)도 삼강(三江)마을을 내려다 보는 것 같고, 약설정(藥雪亭), 영락재(映洛齋)도 삼강종택(三江宗宅)을 옹위(擁衛)하고 있다. ㅇ 경당 장흥효(敬堂張興孝)보다는 나이가 일곱이 아래이나 동문 수학(同門修學)한 학문의 벗으로 퍽 친숙한 사이였다. 그가 오랜 만에 예천에서 안동의 서후면 금계동(西後面金溪洞) 춘파로 벗을 찾아 오게 되니, 서로 반기며 밤이 새는 것도 잊어가며 세상 일을 논하고 또 학문에서 느끼는 바를 말하고, 시도 짓고 며칠을 즐겼다... 그 때에 장흥효(張興孝)의 어린 딸이 쓴 적벽부체(赤壁賦體)의 초서(草書)를 그에게 보였는데, 그가 이르기를, "정말 놀라우네! 이 글씨에 나타난 기풍(氣風)과 굳센 필세(筆勢)가 호기(豪氣)롭고 굵직함이 우리 동국(東國) 사람의 글씨와는 그 유(類)를 달리하고 있네! 나는 처음 이 글씨를 보고는 중국 어느 대가(大家)의 글씨를 자랑하는 것으로 알았네, 정말 대단한 솜씨야! 경탄이란 것이 이것이야"라고 했다.(襄陽誌 1661, 廣瀨集, 東國文獻筆苑編, 朝鮮名臣錄, 槿域書畵徵, 歷代名人筆跡 1983, 淡水 6輯 282-285쪽, 醴泉郡邑誌 1770 1780 1786 1841 1895, 醴泉郡誌 1939, 龍宮縣邑誌 1780, 竺山勝覽 1934, 朝鮮 輿勝覽 1929, 韓國人의 族譜, 위대한 어머니 金龜鉉 1991 22-24쪽)


  [醴泉의 金石文] : 시회(時晦)ㆍ시영(時榮)ㆍ시웅(時雄)의 아버지이다. 소촌도 찰방을 지냈다. 예천읍 고평리 고평(高坪)에서 예천군 서쪽 압봉(鴨峯) 밑 노곡동(蘆谷洞)으로 옮기고, 또 용궁면 가야리 장야평(長野坪), 풍양면 알운봉( 雲峯) 및 몽미촌(夢味村)으로 옮겼다. 묘는 풍양면 알운봉 중록 면태(面兌)의 언덕에 있는데, 묘갈명(墓喝銘)은 1638년(인조 16) 겨울에 지중추부사 안동 권상일(權相一)이 지었다.(醴泉의 金石文 2003)


  정윤목(鄭允穆) : 1571~1629, 자는 목여(穆如), 호는 청풍자(淸風子)·노곡(蘆谷)·죽창거사(竹窓居士),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예천(醴泉)사람 이다. 아버지는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탁(琢)이며, 어머니는 거제 반씨(巨濟潘氏)로 충(?)의 딸이다. 그는 일찍이 가정에서 교육을 받다가 정구(鄭逑), 유성룡(柳成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89년(선조 22)에는 아버지가 중국 연경에 사신으로 갈 때 동행하며 자식의 도리를 다하였다. 벼슬에 뜻이 없어 두 차례 재랑(齋郞)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다가 1616년 (광해군 8) 소촌도찰방(召村道察訪)에 취임하였으며, 1618년 통훈대부(通訓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그러나 광해군의 실정에 불만을 품고 사직, 산수를 벗삼아 시와 서(書)로 세월을 보냈다. 만년에는 용궁(龍宮)의 장야평(長野坪)에 초려(草廬)를 짓고 마을의 자제들을 모아 가르쳤다. 1786년부터 도정서원(道正書院)에 제향되었다.(www.koreastudy.or.kr 2006)


  정윤목 [記事] : 책 제목 : 선택/ 분야 소설 > 한국소설/ 이문열 지음/ 민음사/ 1997.3.28/ ISBN 8937402629/ 226쪽/ B6/ 55쪽에 " ..부름에 따르지 않았다. 고향인 예천 삼강(三江)에서 시와 술을 벗삼아 한가롭게 지내면서 인근의 이름난 선비들과 사귐을 즐겼다. 나중 인조반정이 있은 뒤에도 끝내 벼슬길에는 나가지 않고 산림에서 일생을 마치니 실로 맑은 바람[淸風]이라는 그 호에 어울리는 삶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청풍자(張炳昌註: 鄭允穆의 號)가 아버님을 보러 왔다..."가 수록되어 있다.(daum 2007)


  정윤목 [記事] : 유교관련도서/ 예천의 금석문 1 | 간행년:2003/ 저자:예천문화원/ 발행처:예천문화원 / 淸風子 西原鄭公(允穆) 墓碣銘/ ... 내려가 절을 하고 머물지 않고 갔다고 한다. 貞簡公이 벼슬을 버리고 醴泉 高子坪(現高坪)에 居하셨다. 公은...(韓國國學振興院 ugo.net 2008)


  정윤목 [記事] : 사진유리필름자료/ 제목 嗟嗟篇(1)/ 분류 古書 史部 雜史類/ 등록번호 사자 0605 / 본문 嗟嗟篇(1)/ 鄭允穆(1571∼1629 )이 萬曆 靑蛇 孟夏에 成佛山 淨修庵에서 壬辰亂 후의 행적을 述한 二百五十韻의 嗟嗟篇 卷首 부분./ 설명 鄭允穆/ 2(4), 한문, 21.0×25.0cm/ 嗟嗟篇 所收, 촬영:1930. 1. 22./ 소장:慶北 奉化郡 奉城面 桐陽里 洪宣浩(www.history.go.kr 2008)


  정윤목 [記事] : 사진유리필름자료/ 제목 嗟嗟篇(2)/ 분류 古書 史部 雜史類 / 등록번호 사자 0606 / 본문 嗟嗟篇(2)/ 鄭允穆(1571∼1629 )이 萬曆 靑蛇 孟夏에 成佛山 淨修庵에서 壬辰亂 후의 행적을 述한 二百五十韻 의 嗟嗟篇 가운데 6葉 이하의 3면. / 설명 鄭允穆/ 3(5), 한문, 21.0×25.0cm/ 嗟嗟篇 所收, 촬영:1930. 1. 22./ 소장:慶北 奉化郡 奉城面 桐陽里 洪宣浩(www.history.go.kr 2008)


  정윤목 [記事] : 사진유리필름자료/ 제목 嗟嗟篇(1-1)/ 분류 古書 史部 雜史類 / 등록번호 GF 4250 [31-262-06] / 본문 嗟嗟篇(1-1)  / 鄭允穆(1571∼1629 )이 萬曆 靑蛇 孟夏에 成佛山 淨修庵에서 壬辰亂 후의 행적을 述한 二百五十韻의 嗟嗟篇 卷首 부분./ 설명 鄭允穆/ 1, 한문, 21.0×25.0cm/ 상태양호/ 사자 0605-01과 중복, 본1746, 嗟嗟篇 所收, 촬영:1930. 1. 22./ 소장:慶北 奉化郡 奉城面 桐陽里 洪宣浩(www.history.go.kr 2008)


  정윤목 [記事] : 사진유리필름자료/ 제목 嗟嗟篇(1-2)/ 분류 古書 史部 雜史類 / 등록번호 GF 4251 [31-262-07] / 본문 嗟嗟篇(1-2) / 설명 鄭允穆/ 1, 한문, 21.0×25.0cm/ 상태양호/ 사자 0605-02와 중복, 본1747, 嗟嗟篇 所收, 촬영:1930. 1. 22./ 소장:慶北 奉化郡 奉城面 桐陽里 洪宣浩(www.history.go.kr 2008)


  정윤목 [記事] : 사진유리필름자료/ 제목 嗟嗟篇(2-1)/ 분류 古書 史部 雜史類 / 등록번호 GF 4252 [31-262-08] / 본문 嗟嗟篇(2-1)  / 鄭允穆(1571∼1629 )이 萬曆 靑蛇 孟夏에 成佛山 淨修庵에서 壬辰亂 후의 행적을 述한 二百五十韻 의 嗟嗟篇 가운데 6葉 이하의 3면.  / 설명 鄭允穆/ 1, 한문, 21.0×25.0cm/ 상태양호/ 사자 0606-01과 중복, 본1748, 嗟嗟篇 所收, 촬영:1930. 1. 22./ 소장:慶北 奉化郡 奉城面 桐陽里 洪宣浩(www.history.go.kr 2008)


  정윤목 [記事] : 사진유리필름자료/ 제목 嗟嗟篇(2-2)/ 분류 古書 史部 雜史類 / 등록번호 GF 4253 [31-262-09] / 본문 嗟嗟篇(2-2)  / 설명 鄭允穆/ 1, 한문, 21.0×25.0cm/ 상태양호/ 사자 0606-02와 중복, 본1749, 嗟嗟篇 所收, 촬영:1930. 1. 22./ 소장:慶北 奉化郡 奉城面 桐陽里 洪宣浩(www.history.go.kr 2008)


  정윤목 [記事] : 사진유리필름자료/ 제목 嗟嗟篇(2-3)/ 분류 古書 史部 雜史類 / 등록번호 GF 4254 [31-262-10] / 본문 嗟嗟篇(2-3)  / 설명 鄭允穆/ 1, 한문, 21.0×25.0cm/ 상태양호/ 사자 0606-03과 중복, 본1750, 嗟嗟篇 所收, 촬영:1930. 1. 22./ 소장:慶北 奉化郡 奉城面 桐陽里 洪宣浩(www.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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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란 때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선무원종1등훈에 등록된 정윤우(丁允祐) : 旣載
  정유재란 때 태조의 화상을 모시고 관동으로 피난하여 원종공신에 등록된 정윤해(鄭允諧) : 旣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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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조 때 원종공신에 녹훈된
  정종주(鄭宗周) : 1467년(세조 13) 3월 10일에 이임한 예천군수이다. 풍양면 청곡리 포내(浦內) 출신, 자는 자문(子文), 본관은 동래, 응교 승원(承遠)의 현손, 수찬 옹(雍)의 아들이다. 1450년(문종 1) 추장(秋場) 문과에 정과(丁科) 20위로 급제하여 1455년(세조 1) 12월 27일에 좌랑(佐郞)으로서 원종공신에 녹훈되었고, 사헌부 지평(1458.7.14)이 되었다. 1460년(세종 6) 10월 16일에 병조 좌랑으로서 왕이 부벽루(浮碧樓)에 나아가서 무과(武科)의 사후(射侯)하는 것을 친시(親試)할 때 참고관(參考官)이었다. 1461년(세조 7) 3월 10일에는 형조에서 황해도 경차관(敬差官) 정종주의 계본(啓本)에 의하여 해주 갑사 김영남(海州甲士金永南), 목사 허종항(牧使許從恒) 등을 벌로써 모두 타도에 옮겨 살 것을 건의하여 윤허를 받았다. 참교(參校)를 거쳐 예천군수를 이임하였다(1467.3.10). 묘는 지보면 마산리 마산 묘장동 축좌(馬山卯莊洞丑坐)에 있다.(族譜, 竺山勝覽 1934, 文科榜目)


  정종주 [記事] : 한국문집총간총목차 010집 사가집(四佳集 Ⅰ)에 실린 서거정(徐居正)의 풍양면 청곡리 포내 출신인 예천군수(1467 이임) 정종주에 대한 기사로, 그 내용은, "...二首 447 尹淡? 寄蘭竹?簇二幅 448 聞鄭醴泉 宗周下世 痛悼有作 448 尹參贊向 出..."이다.(www.minchu.or.kr 2006)


  정종주(鄭宗周) : 1607(선조 40)-?, 예천 출신, 자는 산오(山吾), 본관은 동래, 성균 생원 유번(維藩)의 아들. 승주(承周)의 형이다. 부모 사후(永感下)에 유학(幼學)으로서 1657년(효종 8) 식년 생원시에 3등 31위로 합격하였다.(司馬榜目, 醴泉郡誌 1939)


  정종주 [記事] : 세조실록 41권/ 세조 13년( 1467 정해 / 명 성화(成化) 3년) 3월 10일 을해 2번째기사/ 비위가 있는 진잠 현감·연산 현감·익산 군수 등을 파직하다/ 진잠 현감(鎭岑縣監) 강의(康懿)는 옥사(獄事)를 지체하였고, 연산 현감(連山縣監) 이연(李涓)은 검시(檢屍)를 부실(不實)하게 하였고, 익산 군수(益山郡守) 임호연(任浩然)은 능화지(綾花紙)를 사용하여 벽(壁)을 발랐고, 예천 군수(醴泉郡守) 정종주(鄭宗周)는 백성들에게 횡렴(橫斂)하였으므로 모두 파직(罷職)시켰다./ 【영인본】 8 책 64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정종주(鄭宗周)는 1467년(세조 13) 3월 10일에 이임한 예천 군수이다. 풍양면 청곡리 포내 출신, 자는 자문, 본관은 동래, 응교 승원의 현손, 귀령의 손자, 수찬 옹(1391-1424)의 아들이다. 1450년(문종 1) 추장 문과에 정과 20위로 급제하였다. 1455년(세조 1) 12월 27일 좌랑으로서 원종공신에 녹훈되었고, 사헌부 지평(1458.7.14)에 임명되었다. 1460년(세종 6) 10월 16일에 병조 좌랑으로서 왕이 중궁과 세자와 더불어 부벽루에 나아가서 무과 시험을 친히 치룰 때 참고관이 되었다. 1461년(세조 7) 3월 10일에는 경차관으로서 황해도로 나가서 해주 감사와 해주 목사를 탄핵하여 모두 다른 도에 옮겨 살게 하였고, 그 후 참교를 거쳐 예천 군수로 부임하여 다스리다가 탄핵을 받아 파직(1467.3.10)되었다. 그 후 1475년(성종 6) 2월 14일 사령장을 돌려 받았다. 묘는 지보면 마산리 마산 묘장동 축좌에 있다. 정종주가 풍양면에 살게된 내력은 다음과 같다. 그의 선조 정승원(1344-1390)이 고려 우왕 때의 잦은 정변을 피해 벼슬(예문응교 지제고)을 버리고 개성을 떠나 용궁현 구담에 숨어살았는데, 정승원의 손자 정귀령(결성 현감)이 풍양면 청곡리 포내의 뜰 앞에 느티나무 세 그루를 심고, 그 옆에 여덟 기둥의 정자를 지어 스스로 호를 삼수정이라고 하였다. 중종 때 증손자 정광필이 영의정이 되어 이조 판서에 증직되었다. <張炳昌 論說委員>(醴泉新聞 2001.10.5)


  정종주 [記事] : 한국문집총간총목차 010집 사가집(四佳集 Ⅰ)에 실린 서거정(徐居正)의 풍양면 청곡리 포내 출신인 예천군수(1467 이임) 정종주에 대한 기사로, 그 내용은, "...二首 447 尹淡? 寄蘭竹?簇二幅 448 聞鄭醴泉 宗周下世 痛悼有作 448 尹參贊向 出..."이다.(www.minchu.or.kr 2006)


  정종주 [記事] : 세조실록 41권/ 세조 13년( 1467 정해 / 명 성화(成化) 3년) 3월 10일 을해 2번째기사/ 비위가 있는 진잠 현감·연산 현감·익산 군수 등을 파직하다/ 진잠 현감(鎭岑縣監) 강의(康懿)는 옥사(獄事)를 지체하였고, 연산 현감(連山縣監) 이연(李涓)은 검시(檢屍)를 부실(不實)하게 하였고, 익산 군수(益山郡守) 임호연(任浩然)은 능화지(綾花紙)를 사용하여 벽(壁)을 발랐고, 예천 군수(醴泉郡守) 정종주(鄭宗周)는 백성들에게 횡렴(橫斂)하였으므로 모두 파직(罷職)시켰다./ 【영인본】 8 책 64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정종주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比安 / 形勝  / 雙溪帶繞疊?屛廻 鄭宗周詩雙溪羅帶繞疊?錦屛廻(www.history.go.kr 2007)


  정종주 [記事] : 세조실록 2권/ 세조 1년( 1455 을해 / 명 경태(景泰) 6년) 12월 27일 무진 3번째 기사/ 의정부에 전지하여 연창위 안맹담 등을 원종 공신에 녹훈하다/ 의정부에 전지(傳旨)하기를, “연창위(延昌尉) 안맹담(安孟聃)·성원위(星原尉) 이정녕(李正寧)·좌찬성(左贊成) 권제(權?)·전의위(全義尉) 이완(李梡)·지돈녕(知敦寧) 성봉조(成奉祖)·도절제사(都節制使) 이윤손(李允孫)·동지돈녕(同知敦寧) 이숭지(李崇之)·민공(閔恭), 경창부 윤(慶昌府尹) 홍원용(洪元用)·인순부 윤(仁順府尹) 권총(權聰)·청성위(靑城尉) 심안의(沈安義)·예조 판서(禮曹判書) 김하(金何)·동지중추(同知中樞) 우효강(禹孝剛)·부윤(府尹) 김돈(金墩)·중추원 사(中樞院使) 안지(安止)·동지중추 권맹손(權孟孫)·처치사(處置使) 이행검(李行儉)·지중추(知中樞) 이중지(李中至)·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 김구(金鉤)·동지중추 마변자(馬邊者)·행 상호군(行上護軍) 박경(朴炯)·상호군(上護軍) 김방귀(金方貴)·첨지중추(僉知中樞) 윤사분(尹士昐)·첨지중추 노중례(盧仲禮)·첨지중추 민발(閔發)·첨지중추 이준생(李俊生)·부윤(府尹) 윤보로(尹普老)·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 최득룡(崔得龍)·상호군 이비(李?)·첨지중추 이원기(李元寄)·도호부사(都護府使) 구문신(具文信)·호군(護軍) 정차량(鄭次良)·행 상호군(行上護軍) 정종(鄭種), 상호군 전순의(全循義)·임지의(林之義), 행 상호군 이효지(李孝智)·지사역원사(知司譯院事) 김자안(金自安)·첨지중추(僉知中樞) 고득중(高得中)·첨지중추 하우명(河友明), 직제학(直提學) 김문(金汶)·상호군 이장(李場)·전광의(全光義), 내시부사(內侍府事) 안충언(安忠彦)·상호군 최숙정(崔叔井)·목사(牧使) 김담(金淡)·행 호군(行護軍) 배상문(裵尙文)·상호군 이연손(李延孫)·목사 홍익생(洪益生)·동판내시(同判內侍) 지덕수(池德壽)·응교(應敎) 서강(徐岡)·사예(司藝) 김유(金?)·훈련 부사(訓鍊副使) 송중문(宋仲文)·응교(應敎) 주소(朱邵)·동지내시(同知內侍) 윤언행(尹彦行)·교리(校理) 한계희(韓繼禧), 행 호군 이흥덕(李興德)·김이(金?), 도절제사(都節制使) 박호문(朴好問)·판전의감사(判典醫監事) 조경지(曹敬智), 호군 배맹달(裵孟達)·김유례(金有禮), 정랑(正郞) 윤사흔(尹士昕)·판관(判官) 이징규(李澄圭)·호군 평순 만호(平順萬戶) 맹준(孟峻)·정언(正言) 최선복(崔善福)·감찰(監察) 정침(鄭沈), 사직(司直) 안유(安愈)·최적(崔適)·하호(河浩), 행 사정(行司正) 박성손(朴星孫)·사직 이팔동(李八同)·현감(縣監) 정영통(鄭永通)·사직 임원준(任元濬)·훈련 녹사(訓鍊錄事) 김교(金嶠)·사정(司正) 김대래(金大來)·상호군 박불동(朴佛同)·사약(司?) 문금종(文金鍾)·사직 임어을운이(林於乙云伊)·학생(學生) 황양(黃良)은 원종 공신(原從功臣) 1등에 녹(錄)한다.


  예조 판서(禮曹判書) 김조(金?)·호조 판서(戶曹判書) 이인손(李仁孫)·지돈녕(知敦寧) 강석덕(姜碩德)·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하연(河演)·예조 판서 이승손(李承孫)·동지돈녕(同知敦寧) 노물재(盧物載)·대사헌(大司憲) 노숙동(盧叔仝)·판중추원부사(判中樞院副使) 김순(金淳)·동지중추(同知中樞) 황치신(黃致身)·부윤(府尹) 안숭효(安崇孝)·좌참찬(左參贊) 안숭선(安崇善)·도절제사(都節制使) 김윤수(金允壽)·부윤 마승(馬勝)·도절제사 이종목(李宗睦)·행 첨지중추(行僉知中樞) 김개(金漑)·도절제사 하한(河漢)·행 첨지돈녕(行僉知敦寧) 김한(金澣)·판중추(判中樞) 조혜(趙惠)·판한성(判漢城) 기건(寄虔)·판한성 이견기(李堅基)·좌참찬(左參贊) 이숙치(李叔?), 행 상호군(行上護軍) 이령(李齡)·연경(延慶), 동지돈녕(同知敦寧) 심회(沈澮)·동부지돈녕(同副知敦寧) 심결(沈決)·증 사헌부 감찰(贈司憲府監察) 심준(沈濬), 도관찰사(都觀察使) 김연지(金連枝)·조서안(趙瑞安), 지중추(知中樞) 김청(金聽)·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 김황(金滉)·도절제사(都節制使) 한서룡(韓瑞龍)·행 상호군(行上護軍) 박거겸(朴居謙)·부윤(府尹) 이호성(李好誠)·중추원 부사 이사명(李思明)·관찰사(觀察使) 김광수(金光?)·동부지돈녕(同副知敦寧) 유자해(柳子偕)·동지돈녕(同知敦寧) 박거소(朴去疎)·동지중추(同知中樞) 설순(?循)·제학(提學) 유효통(兪孝通)·참판(參判) 유의손(柳義孫)·처치사(處置使) 이사평(李士平)·도관찰사(都觀察使) 정척(鄭陟)·부윤(府尹) 변효문(卞孝文)·판목사(判牧使) 이수의(李守義)·파원 위(坡原尉) 윤평(尹坪)·첨지중추(僉知中樞) 이휴(李携)·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 송복원(宋復元)·첨지중추 맹효증(孟孝曾)·부윤 이명겸(李鳴謙)·처치사(處置使) 유강(柳江)·참판(參判) 신석조(辛碩祖)·참의(參議) 어효첨(魚孝瞻)·지돈녕(知敦寧) 이선(李渲), 부제학(副提學) 김예몽(金禮蒙)·송처관(宋處寬), 중추원 사(中樞院使) 이승평(李昇平)·절제사(節制使) 이종효(李宗孝)·판도호부사(判都護府事) 변효경(卞孝敬)·절제사 유익명(兪益明)·관찰사(觀察使) 유규(柳規)·참판 이보정(李補丁)·관찰사 이석형(李石亨)·행 목사(行牧使) 김억지(金億之)·행 상호군(行上護軍) 박소(朴昭)·부제학(副提學) 김신민(金新民)·중추원 사 이변(李邊)·도절제사 이화(李樺)·절제사 강순(康純)·상호군 이효례(李孝禮)·첨지중추 마흥귀(馬興貴)·직제학 양성지(梁誠之)·첨지중추 낭이승거(浪伊升巨)·상호군 선석년(宣錫年)·사헌 집의(司憲執義) 이예(李芮)·겸 군기 감정(兼軍器監正) 심중은(沈仲恩)·직제학 강희안(姜希顔)·부정(副正) 주상례(朱尙禮)·우사간(右司諫) 이영견(李永肩)·지승문원사(知承文院事) 김득례(金得禮)·장령(掌令) 신영손(申永孫)·경력(經歷) 심치(沈?)·주부(主簿) 강자의(姜子儀)·판사(判事) 매우(梅佑)·상호군(上護軍) 조지당(趙之唐)·직집현전(直集賢殿) 이승소(李承召)·판관(判官) 유균(柳均)·사직(司直) 이임미(李林美)·부사직(副司直) 민운(閔?)·직제학(直提學) 김지경(金之慶)·행 사직(行司直) 김길호(金吉浩)·호군(護軍) 김유선(金有銑)·군사(郡事) 윤기견(尹起?)·양운석(梁雲石), 행 내시부사(行內侍府事) 이중근(李重斤)·부지승문원사(副知承文院事) 김인민(金仁民)·부정(副正) 권효량(權孝良)·호군(護軍) 김문달(金文達)·행 사정(行司正) 서수(徐綬)·정랑(正郞) 강희맹(姜希孟)·검상(檢詳) 김위(金瑋)·사예(司藝) 김질(金?)·정랑 홍연(洪演)·응교(應敎) 조근(趙瑾)·서령(署令) 김경손(金慶孫)·정랑 최사로(崔士老)·소윤(少尹) 장계증(張繼曾)·군사(郡事) 김윤복(金閏福)·소윤 강노(姜老)·


  판내시(判內侍) 홍득교(洪得敎)·행 동첨내시(行同僉內侍) 임동(林童)·행 동첨내시 이득부(李得富)·판내시 안노(安?)·행 지내시(行知內侍) 윤득부(尹得富)·정랑(正郞) 김서진(金瑞陳)·군사(郡事) 전가생(田稼生)·주부(注簿) 홍일동(洪逸童)·응교(應敎) 서거정(徐居正)·군사 이유약(李有若)·도관찰사(都觀察使) 민건(閔蹇), 정랑 이문형(李文炯)·성임(成任)·강미수(姜眉壽), 좌랑(佐郞) 이계손(李繼孫)·행 부사직(行副司直) 오연(吳衍)·좌랑 배효숭(裵孝崇), 도사(都事) 강효문(姜孝文)·직강(直講) 이익(李翊)·좌랑 이윤인(李尹仁)·부정(副正) 최효생(崔孝生)·판사(判事) 선형(宣炯)·사직(司直) 이득림(李得霖)·호군(護軍) 지유원(池有源), 사직 맹득미(孟得美)·석자의(石子議), 좌랑(佐郞) 김덕원(金德源)·직강(直講) 이계전(李季專)·좌랑 안초(安?)·교리(校理) 정문형(鄭文炯)·좌랑 오백창(吳伯昌)·사직(司直) 구문로(具文老)·행 사정(行司正) 허형손(許亨孫)·참군(參軍)·이숙기(李淑琦)·주부(注簿) 노경신(盧敬信)·행 사직(行司直) 황석생(黃石生)·행 부사정(行副司正) 유종화(柳從華)·행 사직 김일용(金日容)·사직 김효조(金孝祖)·호군(護軍) 민형손(閔亨孫)·행 사정(行司正) 양처공(梁處恭)·판관(判官) 홍귀해(洪貴海)·사정(史正) 홍백연(洪伯涓)·부사정(副司正) 김기(金耆)·직장(直長) 이인규(李仁畦),


  부사직(副司直) 유산보(兪山寶)·조주(曹柱)·이종경(李宗慶)·이순경(李順慶), 행 사용(行司勇) 유포(柳?), 현감(縣監) 이계중(李繼重)·이계중(李係重), 행 사직(行司直) 김경손(金敬孫)·상호군(上護軍) 이중윤(李中允)·직장(直長) 송숙기(宋叔琪)·호군 안운수(安雲壽)·주부(注簿) 안의(安義)·봉훈랑(奉訓郞) 김득문(金得門)·부지사(副知事) 민희(閔僖)·선무랑(宣務郞) 이옥림(李玉林)·행 판관(行判官) 박지(朴枝), 사직(司直) 홍효손(洪孝孫)·이중말(李仲末), 군사(郡事) 김증(金曾)·박종대(朴宗大), 호군 박훤(朴萱)·행 사정(行司正) 이윤약(李允若)·판사(判事) 조유신(趙由信), 군사(郡事) 이전수(李全粹)·조원희(趙元禧), 사인(舍人) 이효장(李孝長)·부사정(副史正) 최계근(崔繼根), 사정 이미성(李美成)·하숙전(河叔傳), 대호군(大護軍) 이거을다개(李巨乙多介)·행 호군(行護君) 김가신(金可伸), 행 사직(行司直) 장평(張平)·마우기(馬右其), 호군 낭삼파(浪三波)·사직 배우문(裵珝文)·대교(待敎) 이문환(李文煥)·사직 남치효(男致孝)·주부(注簿) 김석제(金石梯), 사알(司謁) 조이생(趙異生)·최유지(崔有池), 부사정(副司正) 이득행(李得行)·부사정 원처중(元處中)·사용(司勇) 김의지(金義智), 부사정 전습(田濕)·김순거(金舜擧)·김상미(金尙美), 직장(直長) 박서창(朴徐昌)·호군 조경지(趙敬智)·부사직(副史直) 주비(周備)·부사정 이숭무(李崇茂)·사약(司?) 진수(陳守)·사용 강자흥(姜子興)·판관 주호(朱瑚)·행 호군(行護君) 박수미(朴壽彌), 겸교리(兼校理) 전동생(田?生)·조변안(曹變安), 교리(校理) 홍응(洪應)·군사(郡事) 나치정(羅致貞)·부사직(副司直) 정충원(鄭忠源)·겸교리(兼校理) 이상(李相), 현감(縣監) 임숙(任淑)·김호인(金好仁), 좌랑(佐郞) 정종주(鄭宗周)·부교리(副校理) 정효항(鄭孝恒)·겸박사(兼博士) 임효검(林孝儉)·정자(正字) 조지(趙祉)·권지 정자(權知正字) 구치동(丘致?)·지사(知事) 최사유(崔士柔)·부교리 조안정(趙安貞)·박사(博士) 허적(許迪)·권지 정자(權知正字) 이극기(李克基)·저작(著作) 윤효손(尹孝孫), 권지 정자 박숙진(朴叔?)·양순석(梁順石)·김자정(金自貞), 검열(檢閱) 윤민(尹?), 권지 정자 윤기반(尹起磻)·정자(正字) 정이아(鄭以雅)·사직(司直) 김유지(金有智)·장령(掌令) 이함장(李?長)·판관(判官) 임효선(林?善)·사예(司藝) 박인(朴璘)·행 사정(行司正) 김경장(金慶長)·지형조사(知刑曹事) 최중겸(崔仲謙)·도사(都事) 민순손(閔順孫)·판관 김영유(金永濡)·목사(牧使) 황보공(皇甫恭), 정랑(正郞) 최한경(崔漢卿), 이한겸(李漢謙), 대교(待敎) 유지(柳?)·소윤(小尹) 민효열(閔孝悅)·부사(府使) 조계팽(趙季?)·행 지사(行知事) 조상치(曹尙治)·판사 민원(閔瑗)·주부(注簿) 신자교(申子橋)·군사(郡事) 모순(牟恂)·겸 종학 박사(兼宗學博士) 이뇌(李賴)·직집현전(直集賢殿) 남수문(南秀文)·현감(縣監) 김한계(金漢啓)·좌랑(佐郞) 윤배(尹培)·사정(司正) 권경행(權景行)·군사(郡事) 김수온(金守溫)·감정(監正) 박제함(朴悌?)·현감 김영전(金永?)·정랑(正郞) 우계번(禹繼藩)·상호군(上護軍) 안위(安位)·겸 종학 박사(兼宗學博士) 원자직(元自直)·직제학(直提學) 안지귀(安知歸)·판사(判事) 이형(李逈)·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 김말(金末)·중추원 부사 조어(趙?), 교리(校理) 이파(李坡)·박건(朴楗), 수찬(修撰) 김수령(金壽寧)·행 주부(行注簿) 이우(李?)·군사(郡事) 김숙검(金叔儉)·행 정자(行正字) 권징(權徵)·


  저작(著作) 신의경(辛義卿), 부지승문원사(副知承文院事) 이계선(李繼善)·행 부정자(行副正字) 권제(權悌), 좌랑(佐郞) 윤필상(尹弼商)·강복(姜輻), 저작 정충기(鄭忠基)·감찰(監察) 유계번(柳季潘)·정자(正字) 이근(李覲), 권지 정자(權知正字) 최응현(崔應賢)·성수린(成壽?)·백사수(白思粹)·신말주(申末舟)·고태익(高台翼), 부정자(副正字) 강기수(姜耆壽)·경력(經歷) 하길지(河吉之)·좌랑(佐郞) 권지(權至), 부수찬(副修撰) 노사신(盧思愼)·성간(成侃)·정효상(鄭孝常), 좌사간(左司諫) 신전(愼詮)·동부지돈녕(同副知敦寧) 조무영(趙武英)·동첨지돈녕(同僉知敦寧) 이서(李墅)·승훈랑(承訓郞) 안훈(安訓)·승의랑(承議郞) 정심(鄭深)·부사직(副司直) 정윤각(鄭允恪)·통선랑(通善郞) 안극사(安克思)·주부(注簿) 송문림(宋文琳)·행 호군(行護軍) 허곤(許?)·소윤(少尹) 송처검(宋處儉)·판사 이종검(李宗儉)·행 사용(行司勇) 함귀(咸貴)·동부지(同副知) 윤흠(尹欽)·수사직(守司直) 이계정(李季町)·행 사용 윤사례(尹思禮)·감찰(監察) 이증석(李曾碩)·지통례(知通禮) 김수(金脩)·행 부사직(行副司直) 조숙생(趙肅生)·호군(護軍) 김효온(金孝溫)·부사직 원자정(元自貞)·소윤 나인(羅寅)·직강(直講) 조추(趙秋)·소윤 신후갑(愼後甲)·교리(校理) 권절(權節)·주부(注簿) 이지행(李?行)·능직(陵直) 이철견(李鐵堅)·사직(司直) 고수겸(高守謙)·행 호군(行護軍) 손계조(孫繼祖)·승의랑(承議郞) 신수지(申守祉)·부윤(府尹) 이심(李審)·부사(府使) 이언(李堰)·사예(司藝) 홍경손(洪敬孫)·현감(縣監) 정명응(丁明應)·헌납(獻納) 고태필(高台弼)·군사(郡事) 김호(金湖)·판관(判官) 윤영의(尹永義)·녹사(錄事) 서중성(徐仲誠)·행 부사직 장맹도(張孟道)·사정(司正) 여근도(呂近道)·행 사정(行司正) 김산해(金山海)·사정 김사일(金思一)·주부(注簿) 박근(朴瑾), 학유(學諭) 박계성(朴繼姓)·남승보(南勝寶), 저작 김성원(金性源), 훈도(訓導) 김구영(金九英)·김지(金祗), 감찰(監察) 이질(李?)·권지 학유(權知學諭) 박치명(朴致明)·권지 정자(權知正字) 김부필(金富弼)·훈도(訓導) 김병문(金炳文)·군사(郡事) 이계수(李桂遂)·좌랑(佐郞) 김용(金勇)·행 호군(行護軍) 이갑충(李甲忠)·만호(萬戶) 이종덕(李宗德), 부사직(副司直) 유숙(柳塾)·유양(柳壤), 부사정(副司正) 이창(李昌), 사직 유인효(兪仁孝)·이손경(李孫景), 행 사정(行司正) 우효선(禹孝先)·부사직 김석산(金石山)·소윤(小尹) 조철산(趙鐵山)·행 사직(行司直) 박지(朴之)·호군(護軍) 이계흥(李季興), 사직(司直) 차석견(車石堅)·전숭제(全崇悌), 부사직 설순조(薛順祖)·사용(司勇) 양사제(楊斯悌)·진용 교위(進勇校尉) 설창신(薛昌新)·행 사정(行司正) 설성(薛成)·사직 홍지(洪漬)·호군 장이생(張二生)·사직 송석순(宋碩孫)·사용 이효명(李孝明)·사직 권마(權摩)·사정(司正) 윤사지(尹思智)·행 사용(行司勇) 유인습(柳仁濕)·군사(郡事) 서조(徐遭)·현감(縣監) 이순백(李淳伯)·부사정(副司正) 손효윤(孫孝胤)·승훈랑(承訓郞) 신선경(愼先庚)·


  대호군(大護軍) 윤오(尹塢)·참의(參議) 나홍서(羅洪緖)·행 사직(行司直) 조욱(趙頊)·만호(萬戶) 한자침(韓自琛), 호군(護軍) 이후(李逅)·한상완(韓尙完), 상호군(上護軍) 김효당(金孝當)·훈도(訓導) 민우증(閔友曾)·좌랑(佐郞) 조원지(趙元祉), 훈도 조서정(趙瑞廷)·인순부 승(仁順府丞) 정극인(丁克仁)·권지 학유(權知學諭) 김영벽(金映璧)·훈도 하한근(河漢根)·교수관(敎授官) 최수지(崔水智)·감찰(監察) 정침(鄭?)·훈도 김효신(金孝新)·판관(判官) 김계원(金繼元)·감찰(監察) 김한(金漢)·호군(護軍) 오익창(吳益昌)·대호군(大護軍) 윤신우(尹莘遇)·행 사용(行司勇) 전계원(全繼元)·훈련 녹사(訓鍊錄事) 이수붕(李壽朋)·행 부사정(行副司正) 하기린(河起麟)·행 사용 신흥례(申興禮)·사직(司直) 이근효(李近孝), 권지 훈련 녹사(權知訓鍊錄事) 최명전(崔命全)·강근손(姜謹孫), 사정(司正) 한계사(韓繼思)·권지 훈련 녹사 김석종(金錫宗)·사정(司正) 강전(姜專)·권지 참군(權知參軍) 권효신(權孝信)·권지 훈련 녹사 노지(盧祉), 사정 박유손(朴有孫)·이지정(李之楨)·인진행(印珍行)·전자완(全自完), 권지 훈련 녹사 황진손(黃振孫)·사직(司直) 이청신(李淸新), 권지 훈련 녹사 김효손(金孝孫)·정승중(鄭承重), 행 녹사(行錄事) 이종연(李宗衍)·사직 남지(南贄)·사용(司勇) 이종생(李從生)·과의 장군(果毅將軍) 연수염(延壽恬)·부사(府使) 조규(趙珪)·현령(縣令) 조유(趙瑜)·행 주부(行注簿) 김명중(金命中)·사직 이찬원(李贊元)·사용 이효손(李孝孫)·만호(萬戶) 이승명(李承命)·군사(郡事) 이염의(李念義)·사정(司正) 노덕기(盧德基)·판통례문(判通禮門) 윤삼산(尹三山)·영평위(鈴平尉) 윤계동(尹季童)·부윤(府尹) 홍심(洪深)·행 상호군(行上護軍) 조연(趙憐)·행 사용(行司勇) 이세량(李世樑)·판관(判官) 이형손(李亨孫)·행 상호군 신자수(申自守)·부교리(副校理) 홍약치(洪若治)·교수관(敎授官) 유자문(柳子文)·도사(都事) 이유의(李由義)·지평(持平) 안중후(安重厚)·감찰(監察) 전효우(全孝宇)·좌랑(佐郞) 박찬조(朴纘祖)·정랑(正郞) 한서봉(韓瑞鳳)·부사직(副司直) 김상진(金尙珍)·주부(注簿) 윤자영(尹子濚)·봉례(奉禮) 이제림(李悌林)·감찰 최한보(崔漢輔), 봉교(奉敎) 권이경(權以經)·김겸광(金謙光), 대교(待敎) 민정(閔貞), 검열(檢閱) 안신손(安信孫)·김이용(金利用), 행 사정(行使正) 박부(朴?), 사정 정종아(鄭從雅)·판관 이계창(李繼昌)·훈도(訓導) 정지소(鄭至韶), 권지 정자(權知正字) 유천(柳阡)·김윤종(金潤宗), 현감(縣監) 김서(金?)·권지 정자 신복륜(申卜倫), 권지 학유(權知學諭) 이삼산(李三産)·최청(崔?), 훈도(訓導) 김해(金咳)·권지 학유 김적복(金積福)·훈도 남기(南?), 권지 학유 조호지(曹好智)·박맹지(朴孟智)·훈도 문소조(文紹祖)·감찰(監察) 이원효(李元孝), 권지 학유 조극치(曹克治)·이문요(李文饒), 검열(檢閱) 김영견(金永堅)·소윤(小尹) 한치인(韓致仁)·부사(府使) 양인백(楊仁伯)·주부(注簿) 유오(柳塢)·군사(郡事) 정결(鄭潔)·유수(留守) 김세민(金世敏)·부사정(副司正) 김삼산(金三山)·부윤(府尹) 이순지(李純之), 녹사(錄事) 김신조(金愼祖)·오창(吳彰)·박종무(朴宗武)·최치당(崔致?)·홍범(洪範)·문자수(文自修)·전세적(錢世積), 현감(縣監) 이수생(李壽生), 지인(知印) 문한생(文漢生)·유효지(柳孝池), 녹사(錄事) 안계의(安季毅)·호군(護軍) 장서(張瑞)·상호군(上護軍) 동간고(童干古)·사정(司正) 손계온(孫繼溫)·행 사정(行司正) 조계손(調繼孫)·행 현감(行縣監) 조맹손(曹孟孫)·행 부사정(行副司正) 박철산(朴鐵山)·


  사용(司勇) 김계종(金繼宗), 녹사(錄事) 김익륜(金益倫)·하맹산(河孟山)·김종(金鍾)·조순경(趙順敬)·강정(姜精)·염순(廉淳)·나달선(羅達線), 현감 박거명(朴居明)·녹사 박계종(朴季宗)·행 부사직(行副司直) 박한생(朴漢生)·훈도(訓導) 손차면(孫次綿), 권지 학유(權知學諭) 임수경(林秀卿)·김계금(金係錦)·곽자용(郭自容), 권지 정자(權知正字) 구자평(仇自平)·행 사용(行司勇) 박순달(朴順達), 권지 훈련 녹사(權知訓鍊錄事) 최계한(崔季漢)·이황진(李黃振), 사직(司直) 노윤필(盧允弼), 진의 부위(進義副尉) 조윤하(曹允夏)·이담(李聃), 경창부 승(慶昌府丞) 이숙함(李淑?)·사정(司正) 이철명(李哲命)·진의 부위 윤원동(尹元同)·사정 박사형(朴思亨)·진의 부위 박종문(朴宗文)·우군 사용(右軍司勇) 이규(李珪)·우군 사정(右軍司正) 허인(許麟), 권지 훈련 녹사 조경치(曹敬治)·오자경(吳子慶), 알자(謁者) 장말동(張末同)·사정 최함(崔涵)·사용(司勇) 인경(印卿)·호군(護軍) 김숭해(金崇海)·승의 교위(承義校尉) 김인지(金靷之)·수의 교위(修義校尉) 나문수(羅文繡), 돈용 부위(敦勇副尉) 최신지(崔信之)·최한지(崔漢之), 진용 부위(進勇副尉) 이말봉(李末奉)·승의 부위(承義副尉) 김계돈(金繼敦)·수의 부위(修義副尉) 김말손(金末孫), 진의 부위(進義副尉) 장영진(張永珍)·김자유(金自柔), 수의 부위 최준(崔浚)·이우(李遇)·김효생(金孝生)·백귀령(白龜齡)·이효량(李孝良)·백신손(白信孫)·유태종(劉泰從)·한후생(韓厚生)·신한생(申漢生)·이시영(李時濚)·이맹정(李孟禎), 진의 부위 정중손(鄭仲孫)·김자옥(金自玉)·이형(李衡)·유귀(柳龜)·최자청(崔自淸)·엄유경(嚴有敬), 승의 부위(承義副尉) 남치목(南致睦)·돈용 부위(敦勇副尉) 최림(崔霖), 사정(司正) 성장(成章)·견중달(甄仲達), 수의 부위 정기효(鄭起孝)·한상문(韓尙文)·진척(陳滌)·오준동(吳峻童)·봉극순(奉克純)·김경희(金敬熙)·조맹손(曹孟孫)·서민(徐敏)·황보종(皇甫種)·김여인(金汝仁), 진무 부위(進武副尉) 김자하(金自河)·전호인(全好仁), 진의 부위(進義副尉) 이종수(李從遂)·이산택(李山澤)·최장(崔章)·오변은(吳變殷), 승의 교위(承義校尉) 최급(崔汲), 사정(司正) 이덕유(李德裕)·승의 부위(承義副尉) 정문치(鄭文治)·부사정(副司正) 예인호(艾仁浩), 사용(司勇) 신치복(申致復)·정지주(鄭至周)·박치명(朴致明)·이맹근(李孟根)·이원양(李原壞)·황신지(黃信之), 수의 부위 박재문(朴載文)·김자렴(金自廉)·주계생(朱繼生)·윤처신(尹處信)·정덕행(鄭德行)·이종실(李種實)·권효(權曉)·장계창(張季昌)·안극유(安克柔), 돈의 부위(敦義副尉) 박맹손(朴孟孫)·부사정(副司正) 최경의(崔景義), 수의 부위(修義副尉) 공명선(孔明善)·김욱(金澳)·이초(李貂)·안효문(安孝文)·


  황무(黃茂)·나귀정(羅貴貞)·이계선(李季善)·손중혁(孫仲赫), 승의 교위(承義校尉) 조경소(曹敬所)·수의 교위(修義校尉) 윤흔(尹昕), 사정(司正) 이시(李蒔)·안승조(安承祖), 부사정(副司正) 소균(蘇鈞)·신한(辛澣), 행 사용(行司勇) 오유현(吳惟顯), 수의 부위 오윤생(吳尹生)·이복동(李復東)·정사(鄭仕)·최택(崔澤)·김계주(金季珠)·이응선(李應善)·장경지(張敬之)·강연(姜演)·한승조(韓承祖), 진의 부위(進義副尉) 손효정(孫孝貞), 사직(司直) 박문회(朴文會)·전실(田實)·박초(朴超), 부사직(副司直) 원효정(元孝貞)·오사하(吳事夏)·배경량(裴敬良), 사정(司正) 김경의(金敬義)·신효의(申孝義)·강유지(康有智)·김극경(金克敬)·이효공(李孝恭)·백분(白墳), 부사정(副司正) 최중수(崔仲水)·염포(廉抱)·정복례(鄭卜禮)·오치지(吳致智)·유순손(柳順孫)·유춘기(柳春寄), 사용(司勇) 심말생(沈末生)·최영하(崔永河)·임해산(林海山)·이득부(李得夫)·김하창(金河昌)·


  이온(李溫), 사직 홍우전(洪禹傳)·조숭헌(趙崇憲), 부사직(副司直) 이수인(李守仁)·고의지(高義智)·배문욱(裵文郁)·안근(安謹), 사정(司正) 김효검(金孝檢)·손경종(孫敬宗)·박안지(朴安止)·박승무(朴升茂)·윤신손(尹信孫), 부사정(副司正) 민척지(閔滌之), 사용(司勇) 신가흠(辛可欽)·박거형(朴居亨)·장효생(張孝生)·배유인(裵有仁)·강극명(姜克明)·배유정(裵有貞), 현령(縣令) 이문검(李文儉), 사직(司直) 전영수(全寧壽)·이서남(李瑞南), 부사직(副司直) 정노(鄭老)·이문례(李文禮), 사정(司正) 남경인(南敬仁)·행 부사정(行副司正) 박복경(朴復卿)·수의 부위(修義副尉) 김석정(金石貞)·진의 부위(進義副尉) 전상미(田尙美), 진무 부위(進武副尉) 장득부(張得富)·김소생(金小生), 진의 부위 이안(李岸)·장중경(張仲敬)·노원말(盧元末)·최운걸(崔雲傑)·김복리(金福利)·김계남(金繼南)·손성우(孫成佑)·박만(朴萬)·신귀존(申貴存)·배안습(裵安濕)·유중련(劉仲連)·박귀성(朴貴成)·김귀치(金貴致)·윤산(尹山)·신경선(申敬善), 수의 부위(修義副尉) 한문(韓文), 진의 부위(進義副尉) 윤경(尹敬)·서경(徐敬)·김을부(金乙富)·박계무(朴戒茂)·한신(韓信)·박유산(朴由山)·최철생(崔喆生)·왕치손(王致孫)·김효례(金孝禮)·김중정(金仲情)·강득(姜得), 진무 부위(進武副尉) 김봉(金奉)·김거손(金居孫), 진의 부위(進義副尉) 윤금음동(尹今音同)·임복정(林福汀)·김수(金守)·김휴(金休)·김치강(金致江)·한귀견(韓貴堅)·이약로(李若老)·하인귀(河仁貴)·최중산(崔仲山)·이신(李信)·정수(丁守)·김영남(金永南)·수의 부위(修義副尉)·김처인(金處仁)·조송(趙松)·최원(崔元), 진무 부위(進武副尉) 김곤(金坤), 진의 부위 김여수(金儷水)·전을생(全乙生)·임유생(林有生)·정유달(鄭有達)·김벌개(金伐介)·김중근(金仲斤)·김중련(金仲連)·전수(全守)·정효생(鄭孝生)·김특생(金特生)·김광신(金光信)·원명례(元明禮)·박생(朴生)·정연수(鄭延守)·최해(崔海)·김수강(金守江)·양중생(梁仲生)·박득현(朴得賢)·김여생(金麗生), 수의 부위(修義副尉) 이춘무(李春茂)·김효손(金孝孫)·진무 부위(進武副尉) 안우(安祐), 진의 부위(進義副尉) 최영달(崔榮達)·고을부(高乙夫)·심의(沈義)·박금산(朴今山)·서문(徐文)·박중남(朴仲南)·최득강(崔得江)·김이장(金以?)·김성미(金成美)·안호생(安浩生)·박계생(朴戒生)·조맹희(趙孟熙)·심극인(沈克仁)·김효지(金孝智)·윤잠(尹岑)·정효산(趙孝山)·서자평(徐自平), 좌승직(左承直) 신운행(申雲行), 알자(謁者) 김눌행(金訥行)·알자 현녹(玄祿), 우승직(右承直) 이존(李存)·호군(護軍) 김이충(金以忠), 사정(司正) 장유의(張有義)·임희무(林希茂)·김호의(金好義)·정득현(鄭得賢), 부사정(副司正) 이기동(李奇童)·이운강(李云江)·김효윤(金孝潤)·이유례(李由禮), 사용(司勇) 박성생(朴成生)·김이곤(金以坤), 부사정 정가지(丁可智)·조대덕(趙大德)·유여평(兪汝平)·김자려(金自麗)·구복상(仇復祥)·배돈(裵敦)·정효신(鄭孝信), 행 사용(行司勇) 주흥도(周興道)·배상례(裵尙禮)·조예산(趙禮山)·한자렴(韓自廉)·김성기(金成己)·이옹(李雍)·임의민(林義民)·김경동(金敬童)·유증손(庾曾孫), 사직(司直) 김선기(金善奇)·정의종(鄭義宗), 부사직(副司直) 최자윤(崔自潤)·고치화(高致和)·진무 부위(進武副尉) 이소동(李小同), 사정(司正) 김경손(金敬孫)·박건원(朴乾原)·김수산(金水山), 부사정(副司正) 명복초(明復初)·양안위(楊安渭)·이지화(李之華)·변이문(卞以文)·박효동(朴孝童), 사용(司勇) 유호선(兪好善)·장좌원(張佐元)·이복산(李福山)·전유선(全有先)·박춘경(朴春敬)·사직(司直) 서치회(徐致淮)·사용 정산휘(鄭山彙)·


  사직 홍영호(洪永湖)·권지 참군(權知參軍) 허탁행(許倬行)·전사(典事) 황윤례(黃允禮)·행 부관사(行副管事) 장치손(張治孫)·행 관사(行管事) 김맹흥(金孟興), 학생(學生) 김일(金逸)·장순(張順), 사직 김담(金擔)·사정(司正) 김화(金和)·서리(書吏) 백질(白質)·학생 한인부(韓仁富), 별감(別監) 박반자(朴般者)·나잉질동(羅芿叱同)·김정(金貞), 종[奴] 양동(梁同)·종 홍지(洪地)·종 내은동(內隱同)·김광(金光), 사정(司正) 장인기(張仁己)·차마류(車馬硫)·부알자(副謁者) 심말동(沈末同)·사직(司直) 김검(金劍)·사정(司正) 한사민(韓思敏)·알자(謁者) 홍금강(洪金剛), 종 김막동(金莫同)·이수산(李壽山), 사용(司勇) 김파지(金波知)·김계수(金桂壽), 사정(司正) 최군자(崔群子)·학생(學生) 문장수(文長壽)·행 사용(行司勇) 박막동(朴莫同), 종 박용(朴龍)은 2등에 녹(錄)한다.


  좌참찬(左參贊) 정갑손(鄭甲孫)·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이사임(李思任)·온성 절제사(穩城節制使) 유사지(柳士枝)·전첨(典籤) 신사렴(申士廉)·소윤(少尹) 신숙(辛肅)·감찰(監察) 신윤저(申允底)·군사(郡事) 정식(鄭軾)·호군(護軍) 박윤형(朴允亨)·부정윤 이통(副正尹統)·현감(縣監) 신계조(辛繼祖)·부사직(副司直) 민충원(閔沖源)·좌랑(佐郞) 권윤(權倫), 주서(注書) 유계분(柳桂芬)·정은(鄭垠), 사직(司直) 최유림(崔有臨)·정육을(鄭六乙), 부녹사(副錄事) 정숙(鄭?), 직장(直長) 이세보(李世珤)·김귀손(金貴孫), 녹사 이효충(李孝忠)·신윤종(申允宗)·이서장(李恕長)·신환(申煥), 사정(司正) 유정문(柳正文)·정윤복(鄭允福)·구승중(具承重)·유중공(劉仲恭)·최진강(崔進江), 행 현감(行縣監) 강권재(康勸才)·군사(郡事) 박겸(朴兼)·만호(萬戶) 이은(李恩), 사정(司正) 장효량(張孝良), 호군(護軍) 황규(黃珪), 부사(副使) 민유(閔瑜)·목사(牧使) 박대손(朴大孫), 사직(司直) 김말석(金末碩)·김격(金格)·주욱(周郁), 만호(萬戶) 도이공(都以恭), 녹사(錄事) 이백당(李伯棠)·민효건(閔孝騫)·임수생(林遂生)·유하식(柳河植)·강숙(姜淑), 진사(進士) 변효동(邊孝同)·시직(侍直) 이일동(李一同)·호군(護軍) 이효림(李孝林)·이계녕(李繼寧), 만호(萬戶) 유조(柳條)·대호군(大護軍) 노정지(盧定之), 호군 김귀손(金貴孫)·정랑(正郞) 윤잠(尹岑)·만호 박치례(朴致禮), 사정(司正) 공효로(孔孝老), 호군 유효용(柳孝庸), 주부(注簿) 권함(權?), 사용(司勇) 최희(崔曦)·군사(郡事) 이순숙(李淳淑)·현감(縣監) 이귀미(李貴美)·호군 신정보(辛鼎保)·행 사용(行司勇) 민효간(閔孝幹)·판관(判官) 윤계흥(尹繼興)·사직(司直) 김자성(金子省), 부사직(副司直) 장중순(張仲淳)·함제동(咸悌童)·정사충(鄭思忠), 사정(司正) 최신인(崔信仁)·수호군(守護軍) 오한(吳瀚)·사직 구신생(仇愼生)·부사직 이인충(李仁忠)·권지 참군(權知參軍) 박홍(朴烘)·행 호군(行護軍) 김귀진(金貴珍)·부사직(副司直) 차중의(車中義)·만호(萬戶) 김자성(金自誠)·권지 참군 배처경(裵處卿)·만호 김숭지(金崇智)·군사(郡事) 신현(辛鉉)·행 부사직(行副司直) 이우량(李遇良)·행 사정(行司正) 신계린(辛季?)·행 현감(行縣監) 정득혜(鄭得蕙)·행 부사정(行副司正) 송호(宋虎)·사직(司直) 우창신(禹昌信)·수호군(守護軍) 홍영하(洪永河)·부사정(副司正) 김상렴(金尙廉)·권지 참군(權知參軍) 인호(印琥)·부사정 송균(宋均)·권지 참군 조징(趙徵)·사직 신맹린(辛孟?)·승훈랑(承訓郞) 채효순(蔡孝順)·판사(判事) 이백상(李伯常)·선무랑(宣務郞) 조중발(趙仲發)·봉직랑(奉直郞) 김자균(金子均)·현령(縣令) 임산해(任山海)·군사(郡事) 조지상(趙之商)·승훈랑(承訓郞) 이첨(李?)·사용(司勇) 최호(崔灝), 사알(司謁) 심장기(沈長己), 사정(司正) 김처겸(金處謙)·김영로(金榮老), 현감(縣監) 김수화(金守和), 사직(司直) 허평중(許平仲)·현감 봉장(奉璋)·사직 정안경(鄭安敬)·부사직 노우(盧佑)·권지 훈련 녹사(權知訓鍊錄事) 강오상(姜五常)·권지 참군(權知參軍) 이경(李經), 권지 훈련 녹사 이탁(李擢)·신사면(辛師勉), 현감(縣監) 조쟁(趙?)·송맹용(宋孟容), 군사(郡事) 임효지(林孝止)·권지 참군 노중청(盧仲淸)·권지 훈련 녹사 김만중(金萬重)·만호(萬戶) 이백륜(李伯倫)·부사직(副司直) 송의손(宋義孫)·권지 참군 장윤문(張允文)·군사 김대정(金大鼎)·권지 훈련 녹사 최수산(崔水山)·부사정 최명강(崔命剛)·부사직(副司直) 이종현(李宗顯)·사직 김창수(金彰壽)·직강(直講) 공기(孔?)·부사직 김승서(金承緖)·부사정 김맹돈(金孟敦)·사직 강효정(姜孝貞)·부사직 배효사(裵孝思)·만호(萬戶) 최사후(崔思厚)·행 사정(行司正) 이맹손(李孟孫)·지사(知事) 권영(權寧)·


  판관(判官) 김자흠(金子欽)·호군 봉회(奉繪)·행 부사정(行副司正) 변정(邊靖)·군사(郡事) 김유찬(金有纘)·현령(縣令) 최성로(崔性老)·권지 참군(權知參軍) 최여녕(崔汝寧)·만호(萬戶) 김온(金穩)·행 사정(行司正) 하여(河礪)·사직(司直) 박동문(朴東文)·부사직 이지(李地)·권지 참군 이기(李基)·부사직 양주(梁洲), 권지 참군 박동기(朴東起)·문득주(文得周), 부사직 변포(邊袍)·사직 김자건(金子騫)·행 부사정(行副司正) 구치홍(具致洪)·행 사정 이효근(李孝根)·현령(縣令) 조효례(趙孝禮)·행 대호군(行大護軍) 김극기(金克己)·도사(都事) 이항무(李恒茂)·현령 이존학(李存學)·판사(判事) 한창(韓昌)·판관(判官) 김효급(金孝給), 주부(注簿) 오맹경(吳孟經)·조변흥(曹變興), 현감(縣監) 하순경(河淳敬)·직장(直長) 조숙종(趙叔宗)·이병규(李丙奎), 녹사(錄事) 김호형(金好衡)·지통례문사(知通禮門事) 오신지(吳愼之)·부사(府使) 이사계(李師季)·현감(縣監) 이회정(李懷精)·좌랑(佐郞) 황윤원(黃允元)·수 사예(守司藝) 정광원(鄭廣元)·장령(掌令) 민효환(閔孝?)·서령(署令) 조계종(趙繼宗)·판관(判官) 홍석(洪錫)·소윤(小尹) 이윤손(李尹孫)·부사(副使) 이눌(李訥)·군사(郡事) 문여량(文汝良)·부사(府使) 정유용(鄭有容)·만호(萬戶) 박정(朴楨)·행 부정(行副正) 윤석강(尹石岡)·행 사직(行司直) 홍영강(洪永江), 행 부사정(行副司正) 남식(南軾)·이수유(李守柔)·부사정 유효손(柳孝孫)·이인화(李仁和), 권지 참군(權知參軍) 서거광(徐居廣), 부사정 이중호(李仲浩)·행 호군(行護軍) 설정신(薛丁新)·소윤(小尹) 안철손(安哲孫)·현감(縣監) 조정로(趙廷老)·군사(郡事) 최여즙(崔汝楫)·판관(判官) 정하생(鄭夏生)·사직(司直) 차재도(車載道)·부사직 양정(梁汀)·권지 참군(權知參軍) 하계지(河繼支)·사직 이존인(李存仁)·권지 참군 윤말행(尹末行)·대호군(大護軍) 장맹창(張孟昌)·사용(司勇) 유수창(柳秀昌)·권지 참군 최자공(崔自恭)·만호(萬戶) 이터(李攄)·군사(郡事) 이중산(李重山)·부사직(副司直) 지계강(池繼江)·사정(司正) 최경인(崔景仁)·부사정(副司正) 조연종(趙衍宗)·사직(司直) 박충무(朴沖武)·행 사정(行司正) 배담(裵湛)·대호군(大護軍) 이효상(李孝常)·목사(牧使) 김길통(金吉通)·판관(判官) 강이(康履)·주부(注簿) 박윤창(朴允昌), 사직 이중생(李重生)·안혜(安惠), 사정 문흔손(文欣孫)·호군(護軍) 이맹영(李孟英)·판관(判官) 황우형(黃友兄)·대호군 유지(庾智)·부정(副正) 박하(朴河)·행 사직(行司直) 김유지(金有智)·행 부사정(行副司正) 윤시우(尹時遇)·부사직(副司直) 호종실(扈從實)·진용 부위(進勇副尉) 노효온(盧孝溫)·부정(副正) 경유선(慶由善)·교리(校理) 김국광(金國光)·판관(判官) 신윤조(辛潤祖),


  주부(注簿) 김여(金輿)·윤수역(尹壽域), 서령(署令) 서형(徐逈)·주부 김한생(金漢生)·내자 윤(內資尹) 서구(徐耉)·부사(府使) 이정(李楨)·감정(監正) 이반(李泮)·시윤(寺尹) 정지담(鄭之澹), 부사 이백첨(李伯瞻)·윤취신(尹就新), 호군(護軍) 김소남(金召南)·이구상(李具商), 부사(府使) 안기(安起)·호군 임부(林鳧)·행 사정(行司正) 박희성(朴喜成)·부정(副正) 권상공(權尙恭)·판관(判官) 최영순(崔永淳)·정랑(正郞) 양계원(楊繼元)·이종겸(李宗謙), 부사정(副司正) 조욱생(趙旭生)·현령 김위(金偉)·정랑 양준(梁峻)·사직 조인(趙寅), 판관 신중주(申仲舟)·유첨(柳瞻), 사직 김여산(金麗山)·교리(校理) 이영구(李英耉)·서령(署令) 조원복(趙元福), 좌랑 강희(姜曦)·박충지(朴忠至), 주부 박경손(朴慶孫)·현령 조안효(趙安孝), 주부 유전(柳?)·오치행(吳致行), 행 부사정(行副司正) 정포(鄭圃), 부사 안엄경(安淹慶), 행 부사직(行副司直) 박후(朴?)·사정(司正) 유영간(柳榮澗)·부사직 홍이생(洪利生)·승의 부위(承義副尉) 홍유구(洪有矩)·수의 부위 정윤식(鄭允軾)·부사직 이규(李揆)·사정 최억령(崔億齡)·행 사정 신자행(申自行), 부사정 변영(邊寧)·정의손(鄭義孫), 행 사정 유훈(柳訓)·사용(司勇) 권추(權錘)·행 호군(行護軍) 고약회(高若淮)·군사(郡事) 한입(韓粒)·사직 김인의(金仁義)·참군(參軍) 박섬(朴贍)·행 현감(行縣監) 안인후(安仁厚)·사정(司正) 신명지(申命之)·호군 이복겸(李福謙)·사정 한무(韓茂)·행 부사직 최전선(崔傳善)·행 부사정 박휘겸(朴?謙)·부사직 곽안방(郭安邦)·판관 최준(崔俊)·행 사정 이중결(李仲潔), 행 부사정 김여려(金汝礪)·김계증(金繼曾), 감찰 임사덕(林士德)·현감 박충서(朴忠恕), 주부 유효반(柳孝班)·강원량(姜元亮), 부사 이진(李?)·판관 유간(柳諫)·감찰 민자온(閔子溫)·현감 정차온(鄭次溫)·정랑 권기(權琦)·판사 이사맹(李師孟)·정랑 기질(寄質)·주부 박홍간(朴弘幹)·예빈시 윤(禮賓寺尹) 송거(宋?)·판관 박진(朴振)·부사정 이연기(李衍基)·사직 조원립(趙元立)·서령(署令) 연비(延庇)·현감 홍보(洪寶)·판관 복오(卜吾)·감찰 유쟁(柳諍)·감정(監正) 이효신(李孝信)·사예(司藝) 남양덕(南陽德)·정랑 정지하(鄭之夏)·판관 권맹정(權孟貞)·정랑 한부(韓?)·감찰 김자행(金自行)·교리 박심문(朴審問)·감찰 이흥손(李興孫)·정언(正言)·허추(許錘)·행 사정(行司正) 김윤선(金允善)·행 사용(行司勇) 구진명(丘進明)·행 사용 안효례(安孝禮)·통덕랑(通德郞) 문맹검(文孟儉)·행 감후(行監侯) 박유창(朴惟昌)·통사랑(通仕郞) 조서연(趙瑞延)·승사랑(承仕郞) 배약중(裵若中)·수 호군(守護軍) 오간(吳幹), 행 사용(行司勇) 복승리(卜承利)·고수영(高壽永), 행 현감(行縣監) 김균행(金均行)·부사정(副司正) 유간생(柳澗生)·도만호(都萬戶) 박계로(朴季老)·행 부사정 정득온(鄭得溫)·사용(司勇) 조유원(趙由元)·부사직(副司直) 이백원(李伯源)·사직 오상(吳湘), 부사직 정숭로(鄭崇魯)·황기곤(黃起?), 호군 이의견(李義堅), 행 부사정(行副司正) 정종로(鄭從魯)·김유완(金有完), 호군 장윤신(張允愼)·행 사용 김치형(金致亨)·사직 김치원(金致元)·부사직 신흥지(申興智)·부사(府使) 김유윤(金有潤)·부사직 이계번(李繼潘)·행 부사정(行副司正) 권종손(權宗孫)·만호(萬戶) 강지간(姜之幹)·호군(護軍) 박양손(朴陽孫)·부사직 곽회(郭恢)·행 현감(行縣監) 김숙(金淑)·사직 김자상(金自祥)·대호군 박보생(朴保生)·직강(直講) 박추(朴?)·이견의(李堅義), 서령(署令) 최함우(崔涵雨), 감찰(監察) 박자오(朴子晤)·송계상(宋繼商), 주부(注簿) 곽분(郭汾)·현감(縣監) 이수산(李壽山)·소윤(小尹) 김안생(金安生)·직강(直講) 정차공(鄭次恭)·


  지통례문사(知通禮門事) 신균(申均)·봉상 윤(奉常尹) 이중(李重)·내자 윤(內資尹) 이백량(李伯良)·부정(副正) 이사민(李士敏)·부사(府使) 권시(權?)·감정(監正) 배인(裵寅)·감정 방구행(房九行)·군사(郡事) 정포(鄭抱)·소윤(小尹) 허비(許扉)·직강(直講) 박여(朴旅)·정랑(正郞) 안자립(安自立)·서령(署令) 남회(南?)·군사(郡事) 하맹질(河孟?), 판관(判官) 심호(沈灝)·이수량(李遂良)·조휘(曹彙), 현령(縣令) 백이(白璃)·판관 김장춘(金長春)·교리(校理) 김숙자(金淑滋)·고사(庫使) 김보지(金保之)·좌랑(佐郞) 복여(卜予)·현감(縣監) 이달성(李達誠)·좌랑 송의(宋衣)·부사(府使) 송석손(宋碩孫)·행 사용(行司勇) 김활(金活)·부사직(副司直) 우치선(禹致善)·권지 참군(權知參軍) 장매동(張邁仝)·감정(監正) 민승서(閔承序)·부정(副正) 유담(柳潭), 직장(直長) 이운생(李芸生)·이인견(李仁堅), 판사(判事) 임효명(任孝明)·주부(注簿) 김처지(金處智), 녹사(錄事) 박전(朴?)·조신손(趙信孫), 부정(副正) 최숭(崔崇)·김인(金璘), 주부(注簿) 기축(奇軸)·겸 군기감 정(兼軍器監正) 김가(金?)·녹수 신수담(辛壽聃)·판관(判官) 박여황(朴如滉)·녹사 윤유(尹愈)·직장(直長) 송철산(宋鐵山)·부정 장진충(張進忠)·겸 군기감 정(兼軍器監正) 조안(趙安)·직장(直長) 조원우(趙元祐), 녹사 박장윤(朴長胤)·문수덕(文修德), 좌랑(佐郞) 김맹(金孟)·남질(南?), 정언(正言) 박건순(朴健順)·부교리(副校理) 김진손(金震孫), 감찰 김지도(金志道)·김확(金確)·이군발(李群拔), 현감(縣監) 원자정(元自正)·고사(庫使) 백희보(白希寶)·봉례(奉禮) 권미(權眉), 주부(注簿) 강행(姜行)·이진수(李眞粹), 부령(部令) 이강(李綱), 현감 권선(權僊)·조행(趙珩), 행 사직(行司直) 권돈(權惇)·대호군(大護軍) 조수문(趙秀文)·부사(副使) 김을손(金乙孫)·좌랑(佐郞) 유곡(柳?)·정랑(正郞) 송인창(宋仁昌)·행 사용(行司勇) 이석산(李石山)·정랑 김계희(金係熙)·상호군(上護軍) 김중렴(金仲廉)·부사(府使) 안치강(安致康)·판관(判官) 윤길생(尹吉生)·군사(郡事) 유효담(柳孝潭)·부사(府使) 김숙(金潚)·겸 주부(兼注簿) 김계권(金係權)·겸 군기 주부(兼軍器注簿) 이양검(李良儉), 녹사(錄事) 정흔(鄭?)·이증(李?), 겸 군기 부정(兼軍器副正) 강구(康懼), 행 사정(行司正) 이의돈(李義敦)·민계(閔啓)·정길생(鄭吉生)·변상조(邊尙朝), 호군(護軍) 윤훈(尹壎)·행 사용(行司勇) 김귀식(金貴識)·행 부사정(行副司正) 이정기(李正己)·호군 이온(李溫)·판관 김표(金?)·김승평(金昇平), 행 사정(行司正) 김원석(金元石),


  행 사직(行司直) 조방림(趙邦霖)·행 사용(行司勇) 박황(朴煌)·사직 조숭헌(趙崇憲)·부사정(副司正) 이서(李?)·군사(郡事) 송엄경(宋嚴卿)·현감(縣監) 박양손(朴養孫)·만호(萬戶) 이유창(李愈昌)·녹사(錄事) 이종명(李宗明)·도만호(都萬戶) 손윤생(孫閏生)·행 현령(行縣令) 강상보(姜尙甫)·찰방(察訪) 박사란(朴思爛)·판관(判官) 민효원(閔孝源)·행 사정(行司正) 노옥곤(盧玉?), 사용(司勇) 홍계손(洪繼孫)·전봉선(田奉先), 부사(府使) 조지하(趙之夏)·목사(牧使) 이교연(李皎然)·부사 함한(咸漢)·현감(縣監) 권득경(權得經)·고사(庫使) 이인전(李仁全)·직강(直講) 허종항(許從恒)·행 사용(行司勇) 피상의(皮尙宜)·상호군(上護軍) 윤인보(尹仁甫)·호군 최용(崔勇)·학생(學生) 안의산(安議山)·호군 은여중(殷汝中)·학생 한옥(韓沃)·사직(司直) 서득귀(徐得貴)·학생 이존인(李存仁)·감정(監正) 오상신(吳尙信)·행 사직(行司直) 송첨(宋瞻)·호군 조흥주(趙興周)·행 정(行正) 김지(金智)·행 부사정(行副司正) 양희(楊?)·부사정 마현수(馬賢守)·학생 김극철(金克哲)·행 사정(行司正) 이창(李昌)·사용(司勇) 노현수(盧賢守)·부사정 최첨(崔沾), 사용 박산수(朴山守)·유택(柳澤)·신효충(申孝忠), 녹사(錄事) 이원발(李原發), 사용 오징(吳澄)·김권(金權)·김상존(金尙存)·지생(池生), 행 사정(行司正) 임간(任幹)·행 사직(行司直) 장정필(張貞弼)·사직 박지생(朴之生)·행 경력(行經歷) 홍도상(洪道常)·행 부사직(行副司直) 홍성강(洪性剛)·행 녹사(行錄事) 이숭수(李崇壽)·행 능직(行陵直) 성율(成慄)·첨지통례문사(僉知通禮門事) 윤희제(尹希齊)·궁직(宮直) 윤효동(尹孝童)·호군(護軍) 강효동(姜孝童)·호군 강휘(姜徽)·찰방(察訪) 이계충(李繼忠)·감찰(監察) 유자미(柳自湄)·봉상 윤(奉常尹) 유척(柳?)·지평(持平) 윤자(尹慈), 행 부사직(行副司直) 박종의(朴從義)·문환(文煥), 행 대호군(行大護軍) 조성산(趙成山), 행 사정(行司正) 권자화(權自和)·신자강(申子?), 판관(判官) 채신보(蔡申保), 행 사정(行司正) 손차순(孫次純)·주부(注簿) 홍의발(洪義發)·행 사정 권윤인(權允仁)·행 사직(行司直) 유맹돈(柳孟敦), 현감(縣監) 정인충(鄭仁忠)·하여덕(河如德), 행 부사정(行副司正) 민순(閔淳), 행 사정 최연정(崔沿汀)·이운의(李云?)·현득형(玄得亨), 부사(副使) 이배륜(李培倫)·행 사정 이계원(李繼原)·사직 박대생(朴大生)·현감(縣監) 정윤식(鄭允?)·목사(牧使) 권숭지(權崇智)·부사(府使) 김진지(金震知)·행 사직(行司直) 박공순(朴恭順), 행 사정(行司正) 성소적(成小積)·김정지(金貞之), 현감 조수무(趙秀武)·호군(護軍) 신맹종(愼孟終)·행 사직 홍서종(洪瑞終)·행 현감(行縣監) 최덕소(崔德紹)·행 사정 장숭리(張崇理), 대호군(大護軍) 권조(權措)·남상형(南尙亨)·박연생(朴衍生), 행 사정 원진성(元盡性)·부사직(副司直) 김승경(金承敬)·호군 이장수(李長壽), 부사직 정예(鄭禮)·오영화(吳永和)·김결생(金潔生), 사정(司正) 김평(金平), 부사직 오상례(吳尙禮)·최경(崔涇), 행 사직 이기행(李淇行)·부사직 안귀생(安貴生)·행 사용(行司勇) 이근강(李根剛)·호군 성이건(成以乾)·부사정 원자명(元自明)·부사직 임주(林稠), 호군 김영철(金永轍)·김황(金璜)·이승충(李升忠)·동현(童賢)·방계산(方桂山)·남덕중(南德中)·박석산(朴石山)·박번(朴蕃)·이의순(李義順)·권첩(權睫)·
  신복명(申復命)·안제륜(安濟倫)·이사진(李士?)·김치신(金致身)·김합(金?)·오몽례(吳蒙禮)·이사남(李思南)·지대중(池大中)·이사달(李思達)·고거경(高居敬)·이숙희(李?喜)·이영은(李永殷), 정랑(正郞) 윤찬(尹贊)·녹사(錄事) 윤임(尹任)·판관(判官) 윤휘(尹暉)·현감(縣監) 윤귀산(尹龜山)·부사정(副司正) 윤지곤(尹之?)·군사(郡事) 최윤용(崔允庸)·부사(府使) 유양식(柳陽植)·녹사 윤원근(尹元謹), 행 좌랑(行佐郞) 권온(權溫)·권양(權良), 부승(副丞) 강자평(姜子平)·군사(郡事) 윤정(尹貞)·행 사용(行司勇) 윤명생(尹明生), 호군(護軍) 권환(權?)·강위기(姜渭起)·장인의(張仁義)·오중동(吳仲?)·박형산(朴荊山)·황계열(黃季悅)·최중렴(崔仲廉)·이형(李衡)·하복생(河福生)·구첨(具瞻)·최자충(崔自忠)·윤신(尹信)·박원생(朴元生)·박현생(朴賢生)·최숙륜(崔叔倫)·진숭조(秦崇祖)·강중우(姜仲遇)·전정리(田正理)·유해(柳諧)·조유(趙瑠)·유지윤(柳之潤)·박거항(朴去?)·정차건(鄭次虔)·조경규(趙敬圭)·이종인(李種仁)·김효지(金孝智)·허의(許義)·민해(閔解)·윤작(尹作)·유영손(柳英孫)·허시(許柴)·차남달(車南達)·오몽의(吳蒙義)·김치부(金致富), 상호군(上護軍) 임효충(任孝忠)·소윤(小尹) 이하성(李夏成)·사직(司直) 유극경(柳克敬)·행 현감(行縣監) 김숙(金?)·사정(司正) 박건(朴健), 현감(縣監) 하정수(河程秀)·이중석(李仲石), 감찰(監察) 안의(安誼)·수의 부위(修義副尉) 채하상(蔡河祥)·호군(護軍) 노식(盧式)·선무랑(宣武郞) 김자원(金自原)·호군 김희직(金希直)·지사역원사(知司譯院事) 애검(艾劍)·호군 김달(金達)·유종식(柳宗植)·김영수(金永壽), 첨절제사(僉節制使) 김정언(金精彦), 호군 문사준(文思俊)·조중돈(曹仲敦)·이영미(李英美)·김평(金平)·채중명(蔡仲命)·이종인(李宗仁)·이근계(李根繼)·이근우(李近愚), 감찰 송흥문(宋興門)·부사직(副司直) 이성(李誠)·현감(縣監) 박소조(朴紹祖)·사정(司正) 이석산(李石山)·판사(判事) 장유(張裕)·정랑(正郞) 권항(權恒)·군사(郡事) 최연(崔淵), 정랑 조부정(趙敷正)·한희유(韓希愈), 부정(副正) 신희(申熙)·정자의(丁自義), 판관(判官) 김시충(金始忠), 주부(注簿) 진우신(陳右信)·최필지(崔泌之), 학생 변처관(邊處寬)·알자(謁者) 홍중산(洪仲山), 행 장루(行掌漏) 박근생(朴根生)·전유손(全有孫), 사력(司曆) 송유산(宋有山)·이오행(李吾行), 사약(司?) 한득경(韓得敬)·박춘미(朴春美)·허오행(許吾行), 시일(視日) 김처생(金處生), 감후(監候) 김자형(金子衡)·사증(史曾), 사신(司辰) 김귀지(金貴枝)·이흥문(李興門),


  부사정(副司正) 호신지(扈愼之), 녹사(錄事) 이존약(李存約)·김효영(金孝英)·김지충(金止忠)·도경손(都慶孫)·오탁(吳擢)·최여격(崔汝激)·이보량(李保良)·김석규(金錫圭), 지인(知印) 최광명(崔廣明)·김신종(金愼終)·한승석(韓承錫)·윤선말(尹善末)·최여관(崔汝寬)·김권(金權)·조탁(趙擢)·임계하(林啓賀)·정회아(鄭懷雅)·임중형(林仲亨)·정걸(鄭傑)·이계간(李繼幹)·성유(成裕)·신충경(辛忠卿)·최경본(崔敬本)·안숙손(安叔孫)·변기(卞紀)·박윤빈(朴允斌)·김극정(金克精)·김함(金涵)·서제(徐濟)·박순조(朴順祖)·양정무(楊汀茂)·한승필(韓承弼)·최귀산(崔龜山)·권노(權?)·윤흥지(尹興智)·호군(護軍) 이언생(李彦生), 행 사용(行司勇) 박영만(朴英蔓)·장익선(張益善), 학생 최유연(崔有淵)·김계지(金季沚)·서준(徐樽)·장효원(張孝元)·홍하로(洪遐老)·이효산(李孝山)·김사려(金斯礪)·장익지(張益之)·이계종(李繼宗)·김휴(金休)·전실(全實)·박안립(朴安立), 급제(及第) 민서(閔敍), 지인(知印) 최창(崔漲)·진치중(陳致中)·박수(朴穗)·이상로(李尙老), 아악 령(雅樂令) 김양(金良)·김자정(金自精), 지인 이전공(李專恭), 부사직(副司直) 오숭년(吳崇年)·김종량(金宗亮), 주부(注簿) 주정(朱楨),


  상호군(上護軍) 송취(宋翠)·부정(副正) 조득인(趙得仁)·서령(署令) 조효생(趙孝生)·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 신자준(申自準), 사정(司正) 이기(李奇)·한자유(韓自宥)·전유례(全有禮), 역승(驛丞) 김섬(金蟾), 사용(司勇) 정숙공(鄭淑恭)·오명수(吳明秀), 학생(學生) 조곤생(趙崑生)·박영손(朴永孫), 부사직(副司直) 조함(趙?)·황자중(黃自中), 학생 오치손(吳致孫)·김중광(金重光)·박주(朴稠), 판사 하결(河潔)·주부(注簿) 김시주(金時?)·송수중(宋守中), 소윤(小尹) 유한생(柳漢生)·판사 허면(許綿)·행 영(行令) 정육손(鄭六孫)·행 승(行丞) 윤호(尹壕), 행 부승(行副丞) 홍흔(洪?)·신면(申?), 행 녹사(行錄事) 박수장(朴壽長)·승(丞) 남칭(南?)·현감(縣監) 김승(金昇)·행 사직(行司直) 박철산(朴鐵山)·사용(司勇) 조유형(趙由亨)·내금위(內禁衛) 유기(柳嗜)·행 사정(行司正) 성구연(成九淵), 행 사용(行司勇) 박휘(朴輝)·김핍(金?)·사용 한천손(韓千孫)·행 부사정(行副司正) 안순민(安舜民)·사정 노석곤(盧石?)·녹사(錄事) 최유진(崔有?)·호군(護軍) 조경례(趙敬禮)·부사(府使) 윤은(尹垠)·봉례(奉禮) 손수산(孫壽山)·녹사 안계성(安繼性)·사용(司勇) 홍계(洪桂)·행 부관사(行副管事) 이원효(李元孝)·사정(司正) 김휘(金徽), 행 사용 우장(禹場)·문뇌(文賚), 사용 이공순(李公淳), 녹사(錄事) 윤처안(尹處安)·행 사용 조계손(趙繼孫)·사정(司正) 민회증(閔懷曾)·갑사 사용(甲士司勇) 김지의(金之義)·행 사용 어득회(魚得淮)·녹사(錄事) 홍설(洪渫), 사용 오순손(吳順孫)·변석륜(邊石崙), 호군(護軍) 김팽수(金彭壽)·사직(司直) 최윤화(崔允和)·검률(檢律) 김영정(金永鼎)·판사(判事) 윤은(尹殷)·소윤(小尹) 김안민(金安民)·주부(注簿) 노목(魯穆)·학생 신맹해(辛孟謔)·녹사 김수생(金水生)·학생 이문기(李文琦)·부사직(副司直) 김상전(金尙全)·학생 손일강(孫日强), 사정(司正) 손숙로(孫叔老)·임효진(任孝進), 학생 허상(許詳)·최운수(崔雲秀)·이유산(李宥山), 부사정 박숭련(朴崇連)·학생 김한경(金漢卿)·사정 양인수(梁仁壽), 학생 강자민(姜自敏)·염치보(廉致保)·최성철(崔成?), 사정 주치경(周致敬), 학생 전본(全本)·고석숭(高石崇)·오중경(吳仲敬)·전말생(田末生)·안경례(安敬禮)·강윤경(姜允敬)·김중신(金仲信)·이계산(李季山)·문의(文義), 참군(參軍) 임효돈(任孝敦)·사정(司正) 박유인(朴惟仁)·부녹사(副錄事) 김숭로(金崇老), 녹사(錄事) 전양지(田養知)·이의숭(李義崇)·


  이▩형(李▩衡), 직장(直長) 신송주(申松舟)·교리(校理) 이영서(李永瑞), 현감(縣監) 한여(韓黎)·매좌(梅佐)·김결(金潔)·오효영(吳孝永), 판관(判官) 김등(金?)·소윤(小尹) 정자제(鄭自濟)·직장(直長) 김기(金琦)·사정(司正) 홍순성(洪循性), 학생 우신(禹晨)·이계동(李繼童), 장사랑(將仕郞) 이덕량(李德良), 학생 이희(李憙)·윤덕생(尹德生)·노진경(盧盡卿), 군사(郡事) 이소생(李紹生)·좌랑(佐郞) 구달충(具達忠)·부사직(副司直) 이성(李筬)·수의 교위(修義校尉) 안근(安謹)·이신(李晨)·이직손(李稷孫), 진용 교위(進勇校尉) 유수(柳?)·승의 교위(承義校尉) 이중생(李仲生)·수의 부위(修義副尉) 이겸인(李兼仁)·부사직 이귀연(李貴然)·진용 교위 이중손(李仲孫)·승훈랑(承訓郞) 고수전(高壽全), 호군(護軍) 낭득리복(浪得理卜)·김우허내(金右虛乃)·임아구(林阿具), 사직(司直) 동송고로(童松古老)·황이질개(黃伊叱介)·이보을치(李甫乙赤)·마가을수(馬加乙愁), 부사직 이아두(李阿豆)·이두칭개(李豆稱介), 사직 동모다오치(童毛多吾赤), 부사직 유자리(柳者李)·유어응개(劉於應介), 사직 최회인가무(崔回因加茂), 부사직 동도을치(童都乙赤)·동양가(童陽可), 사정(司正) 양호(楊好)·양가(楊可)·이다로(李多老)·김오간주(金吾看主)·동기오거(童其吾車), 부사정(副司正) 마보랑개(馬甫郞介)·김구화(金仇火)·동어허리(童於虛里)662) , 사정 이자읍가(李者邑可)·김소을중개(金所乙衆介), 대호군(大護軍) 박눌어치(朴訥於赤)·부사정(副司正) 김주창개(金主昌介)·대호군 동이시개(童伊時介), 사정 이야질대(李也叱大)·최허(崔滸), 현감(縣監) 김자완(金自?)·감찰(監察) 최정(崔?)·학생 최옥순(崔玉筍)·종사랑(從仕郞) 이수치(李壽稚)·주부(注簿) 조충로(趙忠老), 호군(護軍) 양자곤(梁自?)·이임(李霖), 현감 손경중(孫敬仲)·감찰 홍긍(洪矜)·현감 최숙렴(崔淑濂)·행 사직(行司直) 김신(金莘)·행 부사직(行副司直) 이주(李?)·행 사직(行司直) 전사립(全思立)·봉훈랑(奉訓郞) 김자해(金自海)·조봉 대부(朝奉大夫) 노상문(盧尙紋)·행 부사직 고용지(高用知)·행 정(行正) 김파(金波)·행 판관(行判官) 홍이(洪?),


  통선랑(通善郞) 황기(黃耆)·판관 이환문(李煥文)·봉훈랑 길진(吉珍)·승훈랑(承訓郞) 송사충(宋思忠)·봉훈랑(奉訓郞) 정예(鄭芮), 승훈랑 유구경(兪九經)·채여중(蔡汝中), 주부 김자해(金自海)·선무랑(宣務郞) 김지강(金至剛)·행 장루(行掌漏) 김상겸(金尙兼)·선무랑 이종발(李宗發)·무공랑(務功郞) 상수(相壽)·행 장루 김등(金?)·무공랑 박옥여(朴玉汝)·계공랑(啓功郞) 진효성(陳孝誠)·행 사력(行司曆) 윤숭로(尹崇老)·무공랑 박빈(朴彬), 계공랑 이종민(李宗敏)·김자강(金自剛), 행 시일(行視日) 오효하(吳?夏)·통사랑(通仕郞) 김맹보(金孟寶), 승사랑(丞仕郞) 이백손(李伯孫)·박광손(朴光孫), 사력(司曆) 전수산(田壽山)·승사랑 윤종지(尹宗智)·사력 정의산(鄭義山)·주부 김윤화(金允和)·종사랑 진자공(晉自恭)·심구강(沈九岡), 승사랑 전순지(全順之)·종사랑(從仕郞) 지득상(池得祥)·장사랑(將仕郞) 박숭검(朴崇儉)·감후(監候) 전석(田碩), 장사랑 정계손(鄭季孫)·홍자근(洪自根), 사신(司辰) 이승실(李承實), 장사랑 이희재(李希材)·김수산(金壽山)·김귀손(金貴孫), 판관 김종순(金從舜)·과의 장군 송석동(宋昔童)·녹사 김원신(金元臣)·판관 정안조(鄭安祚)·사정(司正) 한희경(韓希敬)·군사(郡事) 최광손(崔廣孫)·진용 교위 송인례(宋因禮)·시약 한공행(韓公行)·사직(司直) 김남흡(金南洽)·사정 장석숭(張石崇)·사용(司勇) 장보인(張寶仁)·부급사(副給事) 김효손(金孝孫)·현감 양계통(梁繼統)·도사(都事) 유유(柳綏)·판내자시사(判內資寺事) 최선문(崔善門)·행 주부(行注簿) 유효순(柳孝順)·주부 강효연(姜孝延)·행 윤(行尹) 안종검(安從儉)·행 판관(行判官) 김구(金?)·행 주부 김사공(金士恭)·행 소윤(行少尹) 경유근(慶由謹), 행 직장(行直長) 이부(李扶)·행 직장 권치중(權致中)·판관 이호문(李好文)·주부 한견(韓堅)·직장 문송수(文松壽)·판사 이양직(李良直), 주부 송중손(宋仲孫)·봉규(奉珪)·소윤(小尹) 김맹헌(金孟獻)·판관 조겸지(趙謙之), 소윤 임효인(任孝仁)·유경생(柳景生), 판사 신기(愼幾)·소윤 권자홍(權自弘)·주부(注簿) 권격(權格)·소윤 양수(楊脩)·판사 진중성(陳仲誠)·주부 문여령(文汝寧)·수 소윤(守少尹) 채지지(蔡知止)·판사 박이창(朴以昌)·주부 이호신(李好信)·수 소윤 양도(楊道)·수 판관(守判官) 이전지(李全之), 주부 박공순(朴恭順)·송계사(宋繼祀), 판관 정호연(鄭浩然)·주부 허인(許認), 판사 김위민(金爲民)·김기(金淇), 소윤 지호(池浩)·수 판관(守判官) 변상회(邊尙會)·주부 최제남(崔悌男)·판사 김중성(金仲誠)·소윤 이영상(李寧商)·주부 김해(金垓), 직장(直長) 신자형(申自衡)·조매(趙枚), 소윤 강진(康晉)·함우치(咸禹治), 주부 김팽로(金彭老)·한계윤(韓繼胤), 직장 신선갑(愼先甲), 행 주부(行注簿) 한자이(韓自邇)·판사 권호(權護)·주부 김윤덕(金允德)·판사 심선(沈璿)·주부 박병균(朴秉均)·소윤(小尹) 오치선(吳致善), 주부 이숙(李塾)·허추(許樞), 직장(直長) 이괴(李魁)·주부 최복해(崔福海)·판관(判官) 기분(奇賁)·직장 조지주(趙之周)·송춘림(宋春琳), 판관 정양(鄭穰)·주부 박철손(朴哲孫)·판관 양순(楊洵)·주부 안전(安詮)·직장(直長) 이효조(李孝祖)·첨지(僉知) 이형증(李亨增)·판관 이해(李垓), 주부 이월(李越)·경유형(慶由亨), 행 사용(行司勇) 양연수(楊延壽)·선무랑(宣務郞) 황중(黃中)·부사정(副司正) 이영달(李英達)·행 부사정(行副司正) 이순무(李順茂)·행 사정 김경온(金敬溫)·행 주부(行注簿) 지자전(池自?)·승훈랑(承訓郞) 김맹손(金孟孫), 선교랑(宣敎郞) 김남(金南)·최유(崔洧)·함상정(咸尙正), 선무랑(宣務郞) 전남보(全南寶)·진흠(陳欽)·김유경(金由敬), 행 사정(行司正) 최해(崔海)·무공랑(務功郞) 이지무(李枝茂)·직장(直長) 김효명(金孝明)·계공랑(啓功郞) 이계부(李繼富)·


  종사랑(從仕郞) 김일신(金日新)·승사랑(承仕郞) 유습(兪濕)·무공랑(務功郞) 이호(李祜)·행 사용(行司勇) 최후(崔厚)·통사랑(通仕郞) 김성강(金成剛)·행 녹사 전성(田成), 녹사(錄事) 유흥달(兪興達)·최윤하(崔潤河), 주부(注簿) 윤홍(尹洪)·임상로(林尙露)·하흡(河?), 만호(萬戶) 반형(潘衡), 사직(司直) 이미(李美)·이항전(李恒全), 사용(司勇) 박귀로(朴貴老)·사정(司正) 윤지성(尹之成)·만호 이처의(李處義)·부사정 주상질(朱尙質)·군사(郡事) 변대해(邊大海)·소윤(小尹) 우전(禹傳)·행 주부(行注簿) 우계손(禹繼孫)·직장(直長) 양호(楊浩)·주부(注簿) 이귀근(李貴根)·판관(判官) 이승석(李承碩)·직장 유이(柳貽)·부직장 이순(李恂)·녹사 손억(孫億)·직장 이문비(李文?)·승(丞) 박사제(朴斯悌)·녹사 정이원(鄭而元)·부사(副使) 김승간(金承幹)·서령(署令) 권염(權念)·사(使) 김직손(金稷孫)·행 주부(行注簿) 김강(金强)·승(丞) 김치정(金致精)·판관 이구관(李九寬)·봉훈랑(奉訓郞) 이보기(李保基)·소윤(小尹) 원호(元昊)·승 이문강(李文彊)·부승(副丞) 조이(趙怡)·갑사 사용(甲士司勇) 박효강(朴孝康)·부령(部令) 정이우(鄭而虞)·정랑(正郞) 정승소(鄭承韶)·사용(司勇) 전진목(全進穆)·도만호(都萬戶) 이흥무(李興茂)·사용 김선거(金善擧)·행 판관(行判官) 설종(?從)·부승(副丞) 한치형(韓致亨)·수의 교위(修義校尉) 유사의(柳思義)·사직(司直) 박경신(朴景愼)·행 부사정(行副司正) 조유(趙瑠)·진용 교위(進勇校尉) 신효성(申孝誠)·승의 교위(承義校尉) 이중미(李仲美)·사정 박명(朴明), 진용 부위(進勇副尉) 이흥손(李興孫)·강돈효(康敦孝)·강응주(姜應周), 승의 교위(承義校尉) 김종(金悰)·박영생(朴榮生), 행 사용(行司勇) 정지실(鄭之實), 진용 교위 안흠(安欽)·김진강(金振綱)·장윤륜(張允倫)·정회산(鄭懷山)·박예생(朴禮生),
  승의 부위(承義副尉) 한승윤(韓承胤)·진무 부위(進武副尉) 김종인(金宗仁)·사직(司直) 허예(許禮)·부사직 윤황(尹璜), 승의 교위 문여정(文汝楨)·곽후(郭?), 수의 교위(修義校尉) 배구(裵鉤), 승의 교위 윤성미(尹成美), 승의 부위 정안의(丁安義)·신치의(辛致義)·장계흥(張繼興)·송존례(宋存禮), 승의 교위 최득윤(崔得潤), 돈용 교위(敦勇校尉) 권자성(權自誠)·나유정(羅有精), 승의 부위 김효지(金孝智)·김노(金輅), 진용 부위(進勇副尉) 박춘산(朴春山)·이계하(李季夏), 수의 부위 이창(李昌)·신숭덕(申崇德)·이숭례(李崇禮), 진용 교위(進勇校尉) 이순중(李淳中), 승의 부위(承義副尉) 이박(李樸)·이순(李恂), 승의 부위 김덕산(金德山), 진용 부위 박효린(朴孝璘)·최자양(崔自洋), 승의 부위 문극명(文克明)·장안로(張安老), 진용 부위 이하(李夏)·최자연(崔自淵), 사정(司正) 박흥손(朴興孫)·김영(金寧), 부사직(副司直) 김중현(金仲賢)·사정 이계손(李季孫)·부사정 이중언(李仲彦), 사용(司勇) 조성만(趙成萬)·장을수(張乙守)·김상영(金尙永), 사직 박의문(朴義文), 부사직 신권(申權)·손형(孫衡)·안처성(安處性), 사정 백양보(白良寶)·김자려(金自麗), 사용(司勇) 신여해(辛汝海), 부사직 한중공(韓仲恭)·권경지(權敬智), 사정 탁계정(卓季貞)·조지손(趙智孫)·안석강(安石强), 부사정 송기(宋耆)·김상인(金尙仁)·이순산(李淳山), 사용 김경덕(金敬德)·임숙지(林叔枝), 사정 김호의(金好義)·사용 서식(徐軾), 부사직(副司直) 강근지(姜近之)·강표(姜彪), 사정 김용지(金用智)·이흥우(李興雨)·이효손(李孝孫), 부사정(副司正) 경생(慶生), 부사정 황처중(黃處中)·이효중(李孝中), 사용(司勇) 성자달(成自達)·허간(許幹)·김비(金備), 사직 김여준(金汝俊), 부사직 정종(鄭綜)·박중생(朴重生), 사정 송지정(宋之精)·박경운(朴敬雲)·백종생(白終生)·


  이일신(李日新), 부사정 주의생(朱義生)·사용 설춘신(薛春信)·수의 부위(修義副尉) 이맹손(李孟孫)·진용 부위(進勇副尉) 박승손(朴升孫), 진무 부위(進武副尉) 박자(朴自)·박미(朴美), 진의 부위(進義副尉) 이흥춘(李興春)·김윤덕(金潤德)·오계손(吳季孫)·유석천(柳石泉)·오효달(吳孝達), 수의 부위 김석이(金石伊)·박계생(朴季生), 승의 부위(承義副尉) 이휘(李暉), 수의 부위 이치화(李致和)·장언(張彦)·조예(趙禮)·최을부(崔乙夫), 승의 부위 황익선(黃益善)·수의 부위 임윤덕(林允德), 진무 부위(進武副尉) 박명(朴明)·김자공(金自公), 연리(椽吏) 이서산(李瑞山), 전리(典吏) 장귀형(張貴亨)·양윤징(梁允澄), 사약(司?) 윤희수(尹希壽), 영사(令史) 양수안(梁水岸)·양자한(楊自漢)·김지(金祉)·문덕회(文德澮)·강득제(康得齊)·진양(陳良)·김설(金屑)·김종선(金從善)·이종생(李從生)·서문식(西門湜), 전사(典事) 홍자경(洪自瓊)·별감(別監) 함금생(咸今生), 전악(典樂) 김쇄생(金灑生)·김치(金致), 영사(令史) 나기(羅綺)·김길상(金吉祥)·이계산(李繼山)·김윤덕(金允德), 차자정(車自貞)·이춘경(李春卿), 전사(典事) 심장수(沈長壽)·영사(令史) 김경충(金敬忠)·학생 김경례(金敬禮), 영사 한승경(韓承敬)·윤생(尹生)·김구룡(金九龍), 별감(別監) 김동(金同)·영사 이명례(李明禮)·취라치(吹螺赤) 김처강(金處江)·별감 진치(陳治)·직률(直律) 허은(許恩)·사용(司勇) 박중이(朴衆伊), 전악(典樂) 황효성(黃孝誠)·김윤산(金允山)·송태평(宋太平)·전수(田壽), 관사(管事) 이승련(李勝連)·부전률(副典律) 김길생(金吉生)·전률(典律) 유우(柳雨)·직률(直律) 양망오지(梁忘吾之)·전악 도말생(都末生)·서리(書吏) 김존수(金存壽)·보충군(補充軍) 권계동(權季同)·별감(別監) 김매방(金每方), 종[奴] 박금경(朴今經), 별감(別監) 김용수(金龍守)·박금강(朴今剛), 급사(給事) 김금음동(金今音同)·종 현물금(玄勿金)·재인(才人) 천우(天雨)·부급사(副給事) 김검송(金檢松) 등은 3등에 녹(錄)한다.”하였다./


  드디어 교서(敎書)를 내리기를, “공(功)을 기록하고 상(賞)을 주는 것은 나라의 아름다운 법이다. 내가 부족한 덕(德)으로 외람되게 대위(大位)663) 에 앉았는데, 잠저(潛邸)664) 에서의 어려울 때를 회고하니, 덕이 같은 신하들이 전후 좌우에서 과인을 보호하였기 때문이다. 혹은 나의 동렬(同列)로서, 혹은 나의 요좌(僚佐)로서 혹은 가까운 친척으로서 혹은 오래 수종(隨從)하던 사람으로서, 혹은 내가 중국에 갈 때에 발섭(跋涉)665) 의 노고를 함께 하였고, 혹은 정난(靖難)에 참여하여 방위(防衛)에 힘쓰고, 아래로 복예(僕隷)에 이르기까지 힘을 다하였으니, 모두 원종(原從)의 공(功)이 있어서 오늘의 아름다움에 이르렀으니, 내가 감히 잊겠는가? 마땅히 먼저 포상(褒賞)하는 법을 보여서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아니하는 의리를 굳게 하려고 한다. 너희 의정부에서는 나의 지극한 마음을 몸받아서 마땅히 빨리 거행할 것이다./ 1등에게는 각각 1자급(資級)666) 를 더하여 주고, 자손은 음직(蔭職)을 받게 하며 후세에까지 유죄(宥罪)667) 하고 부모에게는 작(爵)을 봉(封)하고,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자원에 따라 산관(散官)668) 1자급을 더하여 주라. 2등에게는 각각 1자급을 더해 주고 자손을 음직을 받게 하고, 후세에까지 유죄(宥罪)하고,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자원에 따라 산관 1자급(資級)을 더하여 준다. 그 가운데 자손이 없는 자에게는 형제·사위·조카 중에서 자원에 따라 산관 1자급을 더하여 준다. 3등에게는 각각 1자급을 더해 주고, 자손은 음직을 받고 후세에까지 유죄(宥罪)한다. 공신(功臣) 가운데 통정 대부(通政大夫)669) 이상은 자손·형제·생질(甥姪)670) ·사위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자원에 따라 산관(散官) 1자급(資級)을 더하여 주고, 죽은 자에게는 각각 본등(本等)에 의하여 시행하고 1자급(資級)을 추증(追贈)한다. 죄를 범하여 산관이 된 자는 본품(本品)으로 서용(敍用)하고 상중(喪中)에 있는 자와 연고가 없이 산관이 된 자는 1자급을 더하여 주어 서용(敍用)하며, 영구히 서용하지 못하게 된 자에게는 벼슬길에 통함을 허락한다. 고신(告身)을 가둔 자는 돌려주고, 첩의 아들은 한품(限品)을 적용하지 말고, 공사 천인(公私賤人)은 모두 천인을 면하게 하고, 사천(私賤)은 주인에게 공천(公賤)으로 보상하게 한다.”하였다./ 【영인본】 7 책 102 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변란(變亂)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 [註 662]동어허리(童於虛里) : 동맹가첩목아(童猛哥帖木兒)의 이복 동생. ☞ / [註 663]대위(大位) : 임금의 자리. ☞ / [註 664]잠저(潛邸) : 임금이 되기 전의 집. ☞ / [註 665]발섭(跋涉) : 산을 넘고 물을 건넘. ☞ / [註 666]1자급(資級) : 조선조 때 벼슬에 따른 품위(品位)의 등급. 정(正)·종(從)·각 품(品)마다 상(上)·하(下) 두 자급이 있었으므로 총 36자급이 있었음. ☞ / [註 667]유죄(宥罪) : 죄를 지으면 그 죄를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는 것. ☞ / [註 668]산관(散官) : 자급(資級)만 받고 보직(補職)을 받지 못한 관리를 말함. ☞ / [註 669]통정 대부(通政大夫) : 정3품. ☞ / [註 670]생질(甥姪) : 조카. ☞(www.history.go.kr 2007)


  정종주 [記事] : 세조실록 13권/ 세조 4년( 1458 무인 / 명 천순(天順) 2년) 7월 14일 기해 2번째 기사/ 김세민·안숭효·조효문·노숙동·어효첨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세민(金世敏)을 중추원 사(中樞院使)로, 안숭효(安崇孝)를 호조 참판(戶曹參判)으로, 조효문(曹孝門)을 예조 참판(禮曹參判)으로, 노숙동(盧叔仝)을 형조 참판(刑曹參判)으로, 어효첨(魚孝瞻)을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로 이윤손(李允孫)을 경창부 윤(慶昌府尹) 겸 강원도 도관찰사(江原道都觀察使) 병마 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로, 곽연성(郭連城)을 인순부 윤(仁順府尹)으로, 민건(閔騫)을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으로, 이극감(李克堪)을 이조 참의(吏曹參議)로, 이승소(李承召)를 예조 참의(禮曹參議)로, 이인(李茵)·강순(康純)·이변(李邊)을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로, 구신충(具信忠)을 사헌 집의(司憲執義)로, 정종주(鄭宗周)를 사헌 지평(司憲持平)으로, 양정(楊汀)을 함길도 도절제사(咸吉道都節制使)로 삼았다./ 【영인본】 7 책 285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정종주 [記事] : 세조실록 22권/ 세조 6년( 1460 경진 / 명 천순(天順) 4년) 10월 16일 무오 3번째 기사/ 중궁과 세자와 더불어 부벽루에 나아가다/ 이보다 먼저 평안도(平安道)와 황해도(黃海道)로 하여금 문사(文士)·무사(武士)를 모아 향시(鄕試)4697) 를 보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전시(殿試)4698) 를 보았다. 명하여 좌의정(左議政) 신숙주(申叔舟)·형조 판서(刑曹判書) 박원형(朴元亨)·이조 참판(吏曹參判) 이극감(李克堪)·도승지(都承旨) 성임(成任)·예조 참의(禮曹參議) 강효문(康孝文)을 참시관(參試官)으로 삼고, 예문 직제학(藝文直提學) 오백창(吳伯昌), 예조 정랑(禮曹正郞) 권윤(權綸)·정침(鄭?), 이조 정랑(吏曹正郞) 유계번(柳季潘)을 대독관(對讀官)으로 삼아 문과(文科)를 취하게 하였다. 그 책제(策題)에 이르기를, “왕이 이렇게 말하였다. 황해도(黃海道)·평안도(平安道) 2도는 전조(前朝)4699) 부터 본래 부강(富强)하기로 이름이 났는데, 근년 이래로 인물(人物)이 유망(流亡)하여 전야(田野)가 진황(陳荒)하고 군액(軍額)이 감소되니, 군사가 피곤하고 군마(軍馬)가 약하여졌다. 어떻게 하면 유망한 사람이 돌아와서 전야가 다 개간되고 군액(軍額)이 펴져서 군사와 군마가 정강(精强)하여지겠는가? 제생(諸生)들은 두 도에서 생장하여 눈으로 보고 귀에 익었으니 이를 헤아리기를 자세히 하였을 것이다. 그것을 각각 숨김없이 진달하라.”하였다. 임금이 중궁(中宮)과 세자(世子)와 더불어 부벽루(浮碧樓)에 나아가서 병조 판서(兵曹判書) 한명회(漢明澮)·이조 판서(吏曹判書) 구치관(具致寬)·병조 참판(兵曹參判) 김질(金?)·참의(參議) 구신충(具信忠)을 참시관(參試官)으로 삼고, 병조 정랑(兵曹正郞) 임효검(林效儉)·정종주(鄭宗周), 좌랑(佐郞) 이극증(李克增)·신환(申煥)을 참고관(參考官)으로 삼아 무거(武擧)의 사후(射侯)하는 것을 친시(親試)하였다. 도관찰사(都觀察使) 조효문(曹孝門)·도절제사(都節制使) 황석생(黃石生) 등이 연탁(宴卓)을 올리었다. 임금이 현판(懸板)의 제영(題詠)에 고려(高麗) 의종(毅宗)의 시(詩)가 있는 것을 보고 마침내 어제(御製)하기를, “광대한 강의 흐름 어찌 다하랴! 근원이 있는 것은 모두 이렇다. 당당한 큰 업을 어디서 시작하랴! 아득하고 어둑하여 천지(天地)가 없다. 외람되이 요도(瑤圖)를 쥐어 화란(禍亂)을 평정한 것이 어찌 나의 공이랴. 온전히 여러 사람의 지혜를 씀에 힘입었다. 눈을 달리매 천산(千山)이 한 지경을 이루었으니, 고금의 호걸(豪傑)이 두가지 이치가 없다. 군사를 훈련하고 방면을 살피고 백성의 폐단을 찾으니, 팔조(八條) 교민(敎民)이 어찌 전대에만 아름다우랴!”하였다. 대가(大駕)를 따르는 재추(宰樞)에게 이를 화답(和答)하기를 명하고, 또 신숙주(申叔舟)로 하여금 그 전말(顚末)을 기록하게 하니, 기록하기를, “경진년4700) 초겨울 초하룻날 임금이 서쪽 땅에 순행(巡幸)하여 백성의 질고(疾苦)를 살피고, 사마(士馬)를 정돈하여 평양(平壤)에 이르니 평양은 구도(舊都)4701) 라 이르고, 명하여 평안(平安)·황해(黃海) 두 도의 선비를 모아 책문(策問)을 발하여 문사(文士)에게 두 도의 시무(時務)로써 묻고, 대가(大駕)를 명하여 부벽루(浮碧樓)에 올라 강에 임하여 무사(武士)가 사후(射侯)하는 것을 보아 등제(等第)를 정하였다. 평안도 관찰사 조효문(曹孝門)이 헌수(獻壽)하기를 절하여 청하니, 호종(扈從)하는 군신(群臣)에게 모두 차례로 잔[爵]을 올릴 것을 명하였다.


  술이 행하여지자 붓을 가져오라 명하여 시를 지으니, 군신들이 앉은자리에서 화답(和答)하여 올리었다. 조효문이 판(板)위에 달기를 청하니 허락하고, 신숙주를 돌아보며, ‘네가 그 전말(顚末)을 기록하라.’ 하였다. 신이 엎드려 보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신무(神武)하시어 난(難)을 평정하고, 문(文)으로 태평을 이루게 했는데도 오히려 스스로 편안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사방(四方)을 순시(巡視)하였습니다. 군사를 다스리고 백성을 구휼(救恤)하며, 언로(言路)를 열고 현준(賢俊)을 구하되 미치지 못할까 급급하셨습니다. 이에 또 등람(登覽)하여 하상(遐想)하며 높이 천고(千古)를 회상하여 물건에 붙여 감회를 일으키어 시(詩) 밖에 애연(?然)합니다. 천파(天?)가 휘황하게 비치어 만세의 광휘(光輝)를 남기었으니, 참으로 기주(箕疇)와 아름다움을 함께 한 것이며, 그것은 서토(西土) 사람의 천일(千一)의 다행이 되지 않겠습니까? 여기에 이르면 어찌 백성의 질고를 살피고 사마(士馬)를 정돈하는 데에 그칠 뿐이겠습니까? 신(臣) 신숙주는 배수(拜手) 계수(稽首)하고 삼가 기록합니다.”하였다./ 【영인본】 7 책 427 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어문학-문학(文學) / *과학-지학(地學)/ [註 4697]향시(鄕試) : 각도(各道)에서 그 도 안의 유생(儒生)에게 보이던 초시(初試)를 말함. ☞ / [註 4698]전시(殿試) : 임금이 친히 보이는 과거 시험. 과거의 마지막 시험으로서 여기에서 장원(壯元)과 갑·을·병과로 나누어 33인을 시취(試取)하였음. ☞ / [註 4699]전조(前朝) : 고려. ☞ / [註 4700]경진년 : 1460 세조 4년. ☞ / [註 4701]구도(舊都) : 옛서울. ☞(www.history.go.kr 2007)


  정종주 [記事] : 세조실록 23권/ 세조 7년( 1461 신사 / 명 천순(天順) 5년) 3월 10일 신해 3번째 기사/ 해주 갑사 김영남, 목사 허종항 등을 벌로써 모두 타도에 옮겨 살 것을 건의하다/ 형조(刑曹)에서 황해도 경차관(黃海道敬差官) 정종주(鄭宗周)의 계본(啓本)에 의하여 아뢰기를, “해주 갑사(海州甲士) 김즙(金緝)·김영남(金永南)은 목사(牧使) 허종항(許從恒)을 모해(謀害)하려고 거짓으로 날조하여 진소(陳訴)하였는데, 읍리(邑吏) 최심(崔?)이 허종항의 과실을 열거하며 김즙에게 진소(陳訴)하기를 사주(使嗾)하여 심지어는 말이 마땅히 대체해야 한다는 데에 이르렀으며 여러 가지로 이에 욕을 하였습니다. 만약 마침 유사(宥赦)를 당하였다고 하여 다스리지 않는다면 악(惡)을 징계할 길이 없습니다. 김즙은 일찍이 죄 때문에 검수참(劍水站)에 정역(定役)되었으니, 청컨대 영구히 본참(本站)에 영속(永屬)하도록 하소서.”하니, 명하여 모두 타도(他道)로 옮겨 살게 하고, 김즙은 그 옮겨 사는 곳의 역리(驛吏)로 속하게 하였다./ 【영인본】 7 책 454 면/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행형(行刑) / *사법-재판(裁判) / *윤리-강상(綱常)(www.history.go.kr 2007)


  정종주 [記事] : 세조실록 41권/ 세조 13년( 1467 정해 / 명 성화(成化) 3년) 3월 10일 을해 2번째 기사/ 비위가 있는 진잠 현감·연산 현감·익산 군수 등을 파직하다/ 진잠 현감(鎭岑縣監) 강의(康懿)는 옥사(獄事)를 지체하였고, 연산 현감(連山縣監) 이연(李涓)은 검시(檢屍)를 부실(不實)하게 하였고, 익산 군수(益山郡守) 임호연(任浩然)은 능화지(綾花紙)를 사용하여 벽(壁)을 발랐고, 예천 군수(醴泉郡守) 정종주(鄭宗周)는 백성들에게 횡렴(橫斂)하였으므로 모두 파직(罷職)시켰다./ 【영인본】 8 책 64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정종주 [記事] : 성종실록 52권/ 성종 6년( 1475 을미 / 명 성화(成化) 11년) 2월 14일 계사 8번째 기사/ 이조와 병조에 전지하여 윤보·유정손 등의 고신을 돌려주게 하다/ 이조(吏曹)와 병조(兵曹)에 전지하여, 윤보(尹堡)·유정손(柳正孫)·김미(金楣)·유인동(柳麟童)·오내은산(吳內隱山)·김결(金潔)·안충언(安忠彦)·문중선(文仲善)·엄용선(嚴用善)·이종수(李宗守)·원개(元槪)·최석동(崔石同)·동양정(東陽正) 서(徐)·전보(田寶)·김순동(金順同)·전순(田順)·김호(金浩)·박매생(朴梅生)·한효순(韓孝順)·구찬(具纘)·허유례(許惟禮)·전목(田牧)·김제안(金濟安)·황근창(黃謹昌)·강귀동(姜貴同)·김비산(金非山)·장육손(張六孫)·이승중(李承重)·전충신(全忠信)·권영통(權永通)·전이선(全以善)·김정(金貞)·김후생(金厚生)·황금동(黃今同)·하경충(河敬忠)·김숙균(金叔鈞)·변천동(卞千同)·정종주(鄭宗周)·윤상(尹尙)·최윤정(崔潤井)·정일화(鄭一化)·박존(朴存)·윤지상(尹之商)·엄귀동(嚴貴同)·박흥조(朴興調)·강수남(姜守南)·김이의(金以義)·유조(柳稠)·이식(李植)·권치(權?)·성계종(成繼宗)·조식(趙植)·심광필(沈光弼)·민선(閔瑄)·민권(閔捲)·이호명(李好命)·조근(趙勤)·진경부(陳敬富)·이귀만(李貴萬)·오중경(吳仲敬)·한선(韓善)·최거정(崔巨丁)·강오망가이(姜吾亡加伊)·신자인(申自仁)의 고신(告身)을 돌려주게 하였다./ 【영인본】 9 책 198 면/ 【분류】 *인사-관리(管理)(www.history.go.kr 2007)


  정종주 [記事] : 광해군일기 3권/ 광해군 즉위년( 1608 무신 / 명 만력(萬曆) 36년) 4월 22일 무인 8번째 기사/ 우의정 심희수·당흥 부원군 홍진·예조 판서 박홍로가 산릉에 관하여 아뢰다/ 우의정 심희수(沈喜壽), 당흥 부원군(唐興府院君) 홍진(洪進), 예조 판서 박홍로(朴弘老)가 아뢰기를, “산릉의 천광(穿壙)이 흠점이 없고 흙의 품질이 매우 아름답다는 뜻은 중사와 승지가 이미 계달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척수(尺數)에 맞추어 파놓고 보니 더욱 토맥(土脈)이 희고 깨끗하여 마치 비계를 잘라 놓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습기가 없는 데다 또 거친 모래도 섞여 있지 않으며, 간혹 흰 흙덩어리가 뭉친 곳이 있었는데 손을 대면 부서져 좋은 밀가루 같았으니, 자못 방서(方書)에서 이른바 좋은 분(粉)을 바른 섬세하고 반들반들한 살결이란 것입니다. 사면의 벽을 깎아 세워 놓자 오색이 찬란하여 비단 병풍을 두른 듯하였는데 술사(術士)들이 서로 일찍이 보지 못한 바라고 치하하였습니다. 오늘날의 일로는 이보다 큰일이 없는데 여러 사람들이 다행스럽게 여기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감히 들어와 복명합니다.”하니, 알겠으며 더욱 슬픔이 끝이 없다고 답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지난번 의인 왕후(懿仁王后)의 상사를 당하여 산릉을 포천(抱川) 땅으로 정해 산릉의 일이 절반쯤 지났는데, 자헌(自獻)이 박자우(朴子羽)를 협박하여 상소토록 하여 유릉(裕陵)으로 옮겨 쓰게 했다. 그 심사는 대개 인군의 사랑을 굳게 하기 위하여 나온 것이었으므로 백성들은 그를 원망하여 살을 십고자 한 지 오래였다. 그런데 이제는 민생들이 복록이 없어 토목의 역사를 하고 난 뒤 또 나라의 상사를 만났는데, 자헌은 일의 옳고 그름과 백성들의 기쁨과 슬픔을 헤아리지 않은 채 처음에는 장지(葬地)가 할아버지와 가깝다는 말을 주창하여 선왕께서 맨 처음 정했던 제 2강을 쓰지 못하게 하였으며, 또 정종주(鄭宗周)를 사주하여 이른바 《구룡별집(龜龍別集)》을 만들어 내어 목릉(穆陵)으로 정한 큰 계책을 동요시키고자 하여 수원 객사의 뒷산을 길지라고 하니, 온 나라 인심이 분개할 뿐 아니라 수만의 주민들도 일시에 통곡하였다. 다행히도 최철견(崔鐵堅)의 소장을 받아들이고, 여러 대신들의 의논을 따라 산릉을 끝내는 목릉으로 정하였지만, 〈자헌의 죄를 이루 다 벌줄 수 있겠는가.〉/ 【영인본】 31 책 300 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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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 농부요한농원, 경향닷컴 유망브랜드 대상...축하합니다.


  농부요한농원([有望브랜드 大賞] : 뚝심 있는 農夫의 眞心 ‘農夫요한農園’) [記事] :


  한결같은 마음으로 고향 농산물을 전문 생산하는 농부요한농원(대표 최영열)이 [경향닷컴 2008년 하반기 유망 브랜드대상] 농특산물 분야에 선정되어 한 걸음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맑은 물과 넓은 백사장이 어우러져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예천의 자랑 회룡포를 바라보는 청정지역에 위치한 농부요한농원(www.fyo1.com)은 논 16,400평과 밭 5,000평에서 생산된 쌀을 비롯해 참기름, 배, 배 생즙을 판매하고 있다.


  또한 12가지 품종 7가지 색깔의 특수미를 재배하여 모두 직거래를 통해 고객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농부요한농원은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중간마진을 최소하여 고객들에게 더 많은 가격적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온라인을 쇼핑몰을 설립해 직접 농작물을 판매하고 있다.


  판매자의 신상은 물론, 농작물의 생산지와 생산과정에 대한 정보가 공개돼 고객들에게 더 큰 믿음과 신뢰를 안긴다는 것이 농부요한농원의 가장 큰 강점이자 경쟁력이라 볼 수 있다.


  농부요한농원은 토질이 비옥하고 일조량이 풍부한 청정지역에 위치한 지형적 조건을 십분 활용하여 타 지역과의 품질적 차별화를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농부요한농원의 최영열 대표는 또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음식과 관련된 흉흉한 소식이 끊임없이 도마에 오르고 있는 만큼 ‘신토불이’라는 흔한 말이 그 어느 시기보다 절실하게 다가오고 있다.”면서 “우리가 직접 판매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진정 믿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한 농작물에 대한 일반 소비자들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 그 시작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또 “우리의 주력 농작물이기도 한 회룡포 쌀은 비옥한 토양과 맑은 물로 재배하여 미질이 좋고 밥맛이 좋아 고객들의 선호도가 특히 높다.”면서 “우리 농부요한농장의 상품을 구입하는 모든 소비자의 밥상이 더욱 건강해지고 풍성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나가겠다.”고 덧붙여 말했다.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정성껏 재배한 농작물이 보다 신선한 상태로 고객들의 밥상에 오르길 바라는 열망으로 부단히 노력해온 농부요한농원은 그 노고를 인정받아 1992년 2월 지보신용협동조합장 공로상을 수상했으며 2004년 2월에는 경상북도지사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농부요한농원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단순한 상업적 수단으로서의 농업이 아닌, 우리나라의 근간 사업인 농업으로 국민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한다는 자부심으로 일을 해나가고 있다.


  그러한 특별한 자부심과 단단한 각오에 걸맞게 농부요한농원이 선보이는 삼강쌀과 흑깨, 참깨, 찹쌀 등은 흔히 찾아 볼 수 없는 속이 꽉 찬 품질로 고객들에게 감동을 이끌어 내고 있다.


  ‘뜨거운 땀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말보다는 손이, 손보다는 발을 먼저 움직여 생산한 최상의 농작물로 고객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하고자 하는 농부요한농원의 소박하지만 의미 있는 진심이 더 많은 고객들의 마음 안에 번지길 바란다.


  (京鄕新聞 2009-01-21 14:2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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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 출신 전우성, 문예사조 신인상...축하합니다.


  전우성(月刊 文藝思潮 新人賞 當選, 전우성의 隨筆 <제비집>) [記事] :


  봄이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왔다. 삼월 삼짇날, 강남에서 천리 길을 찾아온 제비 한 쌍이 집 주위를 빙빙 돌다가 우리 집 처마 끝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현관문 위 처마 끝에 진흙을 물어다가 정성껏 집을 짓는다. 제비가 나름대로 “우리 집 처마 밑을 길지로 택해 집을 짓는 것을 보면 저희들도 뭘 알기는 아는 것 같다.” 라고 혼자 기분이 좋아 중얼거렸다.


  얼마나 기다리던 제비집인가. 제비가 찾아와 집을 지으면 그해 운수가 좋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제비는 길조다. 제비 한 쌍이 정답게 집을 지으며 빨래 줄에 앉아 조잘거리는 모습이 흡사 주인에게 “집을 지을 자리를 주어서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것 같아 그 재롱이야말로 표현 할 수 없었다.


  제비는 귀엽다. 가능하면 집짓는 일을 도와주고 싶으나 내게는 도와줄 힘이 없다. 제비는 그 작은 부리로 흙을 물어와 여러 날이 걸리지 않아 제비집을 완성했다.


  멀리 남쪽 나라에서 찾아온 귀한 손님이다. 더구나 마음씨 착한 제비가 아닌가. 욕심 많은 놀부에게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악하게 살면 벌을 받는다.”는 만고불변의 진리인 교훈을 보여준 제비가 아닌가.


  악하게 살려는 사람들에게 권선징악의 교훈을 준 제비의 보은은 이렇다. 옛날에 충청, 전라, 경상도 접경에 놀부와 흥부 두 형제가 살았다.


  형부는 심술궂고 욕심이 많아 부모재산을 독차지하고 동생 흥부를 쫓아냈다. 흥부는 산 속에 움막을 치고 가난하게 살았다. 자식은 많고 가진 농토가 없어 끼니를 잇지 못하고 형을 찾아가 약식을 구걸하지만 매번 매만 맞고 돌아온다.


  흥부는 날품을 팔기도 하고 남의 매를 대신 맞아주는 댓가를 받기도 하고 갖은 애를 쓰면서 살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흥부는 자기 집 처마 끝 제비집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친 제비 한 마리를 발견하고 극진히 구원하여 살려 보낸다.


  이듬해 봄 그 제비가 흥부네 집에 박 씨 한 알을 물어왔다. 그 박 씨를 심어 가을에 박을 거두었다. 박을 켜자 박 속에서 온갖 눈부신 보물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와 흥부는 벼락부자가 되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놀부는 동생이 부자가 된 것이 배가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달려와 사연을 물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놀부는 급히 집으로 돌아가 제비 한 마리를 제비집에서 잡아내 다리를 부러뜨려 실로 동여매 치료를 해 날려보냈다.


  그 제비가 이듬해 봄 박 씨 한 알을 물어왔다. 놀부는 좋아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러나 놀부가 심어 거둔 박을 켜자 박 속에서는 도깨비가 나타나 그의 재산은 하루아침에 없어지고 집은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제비가 집을 짓는데 문제가 생겼다. 제비들은 집을 지을 때 화장실 설계가 없이 집을 짓는 모양이다. 하룻밤만 자고 나면 제비들이 실례한 흔적이 벽과 바닥에 보기 흉하게 쌓여갔다.


  이것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아침저녁으로 제비의 지저귐이 제법 아름다워 벗을 삼을까 싶었는데, 그게 아니다. 현관에 배설물이 자꾸 쌓여갔다.


  제비도 먹고살아야 하는 동물이기에 배설물 문제는 어떻게 할 수 없지 않는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배설물을 직사해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문제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대화가 되어야 어떤 협상이라도 이루어질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대안이 없다. 좋은 대안이란 제비가 집을 옮겨짓는 것뿐인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 어떻게 해볼 방안이 없다.


  한해 여름을 제비 똥에 시달리면서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반갑기보다는 싫다.


  제비가 귀엽기보다는 귀찮다. 저희들끼리 즐겁게 조잘대는 모습이 내 아픈 마음을 조금도 알아주지 않으니, 내 나름대로 여러 날을 고민했다.


  고민하다 못해 배설물을 받아낼 받침대를 만들어주기로 하고 제비집 밑에 받침대를 만들어 달아 주었다. 며칠이 지난 후였다. 난데없는 제비 한 쌍이 또 날아왔다.


  현관 앞 먼저 제비가 지은 집 옆에 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이곳만은 정말 밑에 받침대를 설치할 환경이 못 되는 곳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허락할 곳이 못되니 속수무책이었다.


  현관에 신을 벗어놓으면 바로 똥이 떨어지고 자칫 찾아오는 손님의 얼굴에 망측한 걸 흘리는 날이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하필이면 왜 이곳에 집을 짓는단 말인가.


  기초공사를 하는 족족 헐어버리기로 결심했다. 흙을 물어다 집을 지을 때마다 헐어버렸다. 헐어버려도 제비는 계속 집을 지었다. 제비 고집은 대단했다.


  “제비 고집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였다. 작은 부리로 흙을 물어와 쌓은 집을 헐어버리기 사흘째였다. 제비를 쳐다보며 사정을 했다. 


  “야! 제비야, 이곳만은 정말 안 돼! 나의 사정 좀 봐줘”하고 얼마를 사정을 하고 애원을 해도 작업은 계속되었다. 옮겨주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아니 어쩌면 제비가 도로 애원할지도 모른다. “주인님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집을 지어 새끼를 쳐 가을이면 떠나야 합니다. 이역만리서 찾아온 손님을 이렇게 괄시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하고 말이다.


  아내의 생각은 제비 편이었다. 지극한 모성애 때문일까. 제비 똥을 흘리더라도 신발을 비닐봉지에 넣어 따로 보관하면서 제비집을 그대로 짓도록 두자는 것이었다.


  제비집을 짓도록 그냥 두면 내년 봄 우리 집에도 흥부네 집처럼 제비가 보은의 박 씨를 물어올지도 모르잖느냐고 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그게 아니다.


  제비가 조금 떨어진 곳에 집을 지으면 되는 것이다. 한 번 지은 제비집은 또 찾아오고 강남 갔던 제비가 봄마다 돌아온다는데 해마다 그 고통을 어떻게 감당하느냐 였다.


  옮겨 짓기를 바라며 흙을 물어와 붙이면 뜯어내고, 흙을 붙이면 뜯어내고 했다. 사람으로서 못할 짓이었지만 하는 수 없었다. 집을 헐어버리기 일주일째 되는 날이다.


  제비는 떠난다는 말 한마디 없이 짓던 집을 포기하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말았다. 제비는 나를 얼마나 원망하면서 떠났을까. 떠난 제비는 어디 다른 곳으로 가 좋은 주인 만나 양지바른 처마 끝에 집을 짓고 새끼를 치며 행복하게 살다 떠나야 한다.


  그러지 못하고 내가 자꾸 집을 헐어버리는 바람에 집짓기가 늦어져 새끼를 못 치고 떠났다면 내 잘못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한없이 후회가 되는 일이었지만 이미 떠난 제비니 하는 수 없었다.


  만약 제비가 새끼를 치지 못하고 떠났다면 나는 제비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내가 저지른 죄가 얼마나 큰 것일까. 그 후 나는 살면서 그때 지은 죄책때문에 평생 기쁜 마음으로 제비들을 바라보지 못했다.


  하늘에 죄를 지은 심정이다. 내가 저지른 잘못이 놀부보다 더한 죄는 아닐까. 만약 봄이 되어 우리 집에 제비가 박 씨를 물어온다면 어떤 박 씨를 물어다 줄까. 생각에 잠긴다. 


  [*전우성 약력] : 경북 예천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전 영주지방철도청 근무, 전 영철문학회 회장, 영주시민신문 시민기자


  (榮州市民新聞 2009년 01월 21일 (수) 12:3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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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350


  봉덕산(醴泉의 鎭山 黑鷹山217m~鳳德山373m) [記事] :


  흑응산은 예천의 진산(鎭山)이다. 사나운 검은 매가 나래를 펴고 내려앉으려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흑응산은 소백산과 도솔봉을 지나온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곁가지를 일으키며 매봉(865m), 국사봉(726.6m)으로 이어지는 굵직한 능선을 지나 백마산(386m), 봉화산(340m), 봉덕산(373m), 흑응산(217m) 등을 솟구치며 신라 수주현으로 시작된 1,300여 년의 유구한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체 옹골찬 산세를 뻗어 내리고 있다.


  예천의 명산 흑응산~봉덕산 탐방이 예천군청 등산부(회장 강익한) 회원 및 가족 등 2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2009년 1월 17일 실시됐다.


  백두매봉백마단맥 구간인 흑응산~봉덕산 산행은 접근경로가 여러 곳 있으나 들머리를 예천읍 노상리 대창중고 운동장에서 시작 흑응산~봉덕산~서암산 봉수대~봉화산~유천면 손기리 장터까지 4시간에 걸쳐 실시됐다.


  이날 산행은 6년만에 가장 춥다는 한파가 닷세째 이어지다 포근한 봄날씨에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걸으며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직원들간의 화합을 다지는 즐거운 시간이 됐다.


  10시 대창중고 운동장에 집결 커피 한잔으로 쌀쌀함을 달래고 15분 경 산행을 시작했다. 산행은 초입부터 오르막 계단길이 이어지나 이 구간은 경사가 완만하여 건강 산책로로 예천군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하겠다.


  솔숲 등산로를 따라 흑응산까지(0.5km)는 10여 분이 소요되며 경사가 다소 급하긴 하나 왼쪽으로 펼쳐지는 예천읍시가지를 바라보며 오르다보면 산행은 그리 힘들지 않게 느껴진다.


  흑응산(黑鷹山 217m)은 해발이 낮은 산이나 남산을 비롯해 예천읍 시가지가 훤하게 한눈에 펼쳐지는 조망이 좋고 정상 표지석,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등산로는 이곳에서 약100m 내리막이 이어지다 노상리 군청 뒷길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면서 참나무와 소나무가 숲을 이룬 평탄길로 접어든다.


  흑응산성 산신당까지는 10여 분이 소요되며 등산로를 따라 운동기구가 설치돼 있고 흑응산성 옆에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산성까지는 백전리 능골에서 시작된 산길을 이용 승용차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지금은 희미한 형체로 남아있는 예천읍 서본리 산14번지 일원에 위치한 흑응산성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44호로 지정되었다. 이 산성은  토석혼축성으로 내성과 외성으로 되어 있으며 덕봉산성 또는 봉덕산성으로도 불리며 성내에 무문토기·신라토기 조각이 발견되고 3기의 지석묘가 있는 점으로 보아 이 성은 부족국가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성벽의 둘레는 1900m, 면적은 29,544㎡, 높이는 평균 3∼4m이다. 주성의 성내지에 2개소의 우물과 1개소의 못이 원형대로 남아 있으나 군창이 있던 자리에는 농막이 세워져 있다.


  산정상부에는 옛부터 읍민들이 산신제를 지낸 성황당이 있으며, 우물터, 지석묘, 백전리 석실고분, 의충사 터 등이 있고 산 정상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산신당은 벧엘 기도원과 봉덕산 갈림길로 배드민턴구장을 비롯한 간단한 운동기구가 있고 지하 500m에서 뿜어져 나오는 약수가 산책객들의 갈증을 달래준다.


  산신당 끝지점에서 등산로는 급내리막길이며 200여 미터 지나면 서본리 예천초등학교에서 올라오는 벧엘기도원 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나며 태양광을 이용한 산불무인경보 방송시스템이 설치돼 있어 입산자들의 산불예방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고 있다.


  등산로는 이 구간부터 완만한 오르막길로 접어들며 한여름에도 햇볕 한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노송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삼림욕을 겸한 산책 산행에 적당하다.


  산신당에서 15여 분 걸으면 송전철탑이 나오고 능선에 각종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으며 산기슭에는 배드민턴장이 있다. 철탑을 지나면 서악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그리 힘들지 않게 20여 분을 걸어 봉덕산에 11시 10분 경 도착했다.


  대창중고 운동장에서 봉덕산까지는 주변을 둘러보며 여유 있게 걸어도 1시간여이면 도착한다. 대부분의 산책객들은 2시간 이내의 흑응산~봉덕산 왕복원점회귀 산행을 하고 있다.


  대심리 산13번지 일원의 봉덕산(鳳德山 373m)에는 1701년에 창건한 전통사찰인 서악사가 현대식으로 잘 지어져 있어 이 산을 찾는 이들의 휴식처 역할을 해 주고 있다.


  또 예천군에서 매년 1월 1일 지역발전과 군민 안녕을 기원하는 고천제를 지내는 해맞이 행사가 열린다. 서악사에서 봉덕산까지 예천군에서 2008년 12월 목계단을 설치 안전산행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봉덕산은 동으로 예천읍 진산 흑응산을 이루고 서쪽으로 석정리 뒷산, 유천면 성평리에 이르며 북쪽으로 백마산, 매봉을 지나 백두대간과 연결된다.


  산 정상부 주변의 조망은 그 높이에 비해 과히 장관을 이룬다. 산세가“수레를 타고 날아가는 학과 같다”하여 붙여진 학가산(鶴駕山 870m)의 웅장함이 한눈에 펼쳐지며 예천양수발전소 상부댐, 문경 천주산, 운달산, 황정산, 소백산, 신도청 소재지의 주산인 검무산을 비롯한 주변 산세의 모습은 한 폭의 산수화를 펼쳐놓은 듯 하다.


  산 정상부에는 산불감시초소를 비롯해 돌탑, 삼각점이 있으며 예천기독신우회에서 의자, 예천불교정법회에서 대형거울, 황금보석에서 시계 등의 편의시설물을 설치 이곳을 찾는 등산객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또 주변에는 철쭉, 연산홍 꽃이 심어져 있어 매년 봄이 되면 봉덕산은 붉게 타오르며 상춘객들의 가슴에 꽃불을 지핀다. 봉덕산에서 서악사로 하산은 약10여 분이 소요되며 정상 200여 미터 남겨둔 목계단길과 능선안부를 따라 내려오는 두 갈래 길이 있으나 대심리 방향 남쪽 능선안부를 이용하면 좋다.


  이 구간은 다소 경사가 급하나 암릉구간이 나오고 능선을 따라 펼쳐지는 조망이 일품이다. 예천읍 시가지는 물론 넘실거리는 한천의 강물과 바다처럼 너른 서정자들에서 영글어가는 곡식들이 황금물결로 출렁이는 산마루는 멋진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봉덕산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하며 10여 분 휴식을 취한 후 서쪽 석정리 방향으로 향했다. 잘나 있는 등산로는 이 지점부터 관리가 되지 않아 잡풀이 우거지고 내리막 경사길이 미끄러워 조심해야 한다.


  오랜 가뭄 탓에 등산로는 한발을 디딜 적마다 폭탄을 맞은 듯 먼지가 하늘높이 치솟아 오르고 바짝 메말라버린 숲은 금방이라도 시뻘건 불꽃을 토해낼 것만 같았다.


  일행은 이 구간부터 산행에 방해가 되는 고사목 가지를 제거하고 산불조심 리본을 달면서 나아갔다. 등산로는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아 원시림을 이루고 있고 부드럽고 완만한 능선길이 계속된다. 


  봉덕산에서 10여 분을 걸으면  돌무더기와 함께 ‘서암산 봉수대’라고 쓴 표석이 나오는데 아쉽게도 정상부는 무덤이 있어 봉수대와 관련한 그 어떤 유래도 알 수 없어 아쉬움을 주고 있다.


  여기서 봉수대(熢燧臺)에 대해 살펴보자. 예천은 서암산(서악사) 봉수대, 감천 포리 봉수산(할미성) 봉수대, 용궁 비룡산 봉수대, 풍양 풍신리 소이산 봉수대, 유천 고림리 봉수산 봉수대, 지보면 대죽리 봉수재 봉수대가 있었다고 전해져 온다.


  봉수는 국경에서 일어나는 변란 또는 내란의 일을 신속히 중앙에 알리는 옛 비상경보통신 수단으로 밤에는 횃불을 낮엔 연기를 피워 연락을 취했다.


  예천의 봉수대는 비룡산 봉수대를 제외하곤 거의 보존되지 않고 있다. 봉수대를 지나면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지고 용산리 새벽농장(대표 박용제) 흑염소 방목 철조망 울타리가 나온다.


  이곳은 11만 평이라는 넓은 산지에 약 350여 두의 재래 약용흑염소가 완전 방목형태로 사육되는 가운데 70%는 야생화되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고 있다.


  현재 새벽농장은 흑염소 증탕 임가공 시설을 갖추고 넓은 자연 속에서 약초를 뜯어먹고 자란 산 염소를 기존 증탕 방식에서 탈피 옛 선조들의 방식에 가장 가깝도록 신개발된 가마솥에 맥반석으로 만들어진 옹기를 넣어 그 속에 흑염소와 기타 부재료를 넣고 24시간(기존 증탕 방법에 7~8배) 이상 저온(100''''c이하)에서 증탕하여 영양소가 파괴되지 않고 그대로 남도록 생산한 건강보조 식품을 전국 각처에 판매하고 있다.


  농장 철조망 끝 지점에 오르막이 나오고 봉덕산에서 30여 분 거리에 봉화산(340m)이 있다. 정상부는 참나무 고목이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정상을 알리는 나무로 만든 표찰이 초라하게 매달려 있다.


  주변 조망을 위한 숲가꾸기와 정상 표지석 설치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봉화산 송전철탑에서 내리막이 이어지며 건너편에 시멘트 포장 임도길이 보이고 농장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나온다.


  봉화산에서 임도까지는 7분이 소요된다. 백마산 종주코스는 농장 출입문 안쪽 북쪽 능선을 이용해야 한다. 임도에 올라서자 왼쪽편으로 시원스런 풍경이 나오고 뒤로는 봉화산, 봉덕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흑응산~봉덕산~유천 손기리 구간 중 임도구간만 햇볕에 그대로 노출되고 나머지는 숲속길이다. 등산로는 임도길을 따라 걷다가 숲속 입구에 달아 놓은 리본을 따라 왼쪽 방향으로 연결된다.


  12시 10분 경 일행은 임도에서 각자 가져온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오미자, 복분자주 등 다양한 종류의 술로 반주를 곁들인 식사를 하면서 일행 모두는 모처럼의 산행에 즐거운 표정이었다.


  우측으로 임도를 끼고 이어지는 등산로는 좌측은 유천 성평, 우측은 용문 덕신이며 이 지점부터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게 되어 주변을 볼 수 없고 오르막 내리막을 몇 번 해야하기에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든다.


  등산로 주변을 따라 실시된 숲가꾸기 사업지역과 덕고개를 지나 14시경 산불감시 초소가 있는 헬기장(317m)에 도착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 구간에는 헬기장이 세 곳 있고 산불초소가 있는 헬기장은 주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초기 산불발생 관측에 유리하다. 인근 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댕대이봉이라 부르며 성평리에서 30여분 소요되는 등산로 갈림길이다.


  마지막 헬기장에서 내리막길이 나오며 손기리 장터 날머리 지점의 묘 2기 옆을 지나 14시 20분 경 무사히 하산했다. 일행은 유천손두부 집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손두부 안주에 오미자 동동주를 곁들인 하산주를 마시며 뒤풀이를 했다.


  유천면 손기리는 손두부로 유명하며 마을 이장인 양근호 씨는 수입콩을 배제하고 1,000여 평의 밭에서 직접 재배한 콩과 인근 마을에서 수확한 100% 국산콩을 사용하고 있다.


  이곳의 손두부는 기계식이 아닌 옛날 재래방식으로 가마솥에서 장작불을 지펴 만들기에 더욱더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4대째 가업으로 이어 내려오고 있는 유천 손두부는 그 명성이 서울까지 알려지고 있으며 명절 때마다 주문을 소화해 내느라 밤샘 작업을 해야 한다.


  손기리는 25년 전만 해도 우시장을 포함한 5일장이 열려 번성기때는 100여 호에 500여 명이 넘게 살았다. 지금은 50여 가구에 110여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특수작물로 풋고추시설하우스재배를 많이 하고 있다.


  이곳에는 유천원예 작목반 간이 농산물 집하장이 있어 예천군 7개 면에서 생산한 풋고추가 전량 출하되어 농산물 유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손기리에는 1일 시내버스가 왕복 13회 운행되며 최근에는 한 모에 2천 원 하는 손두부 맛을 보기 위해 봉덕산~손기리 구간의 등산객들이 부쩍 늘고 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뒤풀이를 마친 일행은 15시 30분 경 예천으로 향하는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승강장에 모였다. 농촌 인구 감소로 평소 서너 명만 태운 채 운행하다가 이날은 일행을 태운 덕분에 모처럼 시내버스는 빈 좌석을 다 채웠다.


  버스 운전 8년 경력의 예천여객 우수본 기사는 16시경 예천에 도착할 때까지 연신 싱글벙글 웃음 띈 얼굴을 지어 보였다. 흑응산~봉덕산 구간은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꽃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지고 각종 운동 기구를 비롯해 매년 수 차례의 등산로 시설물 관리가 이루어져 군민들의 건강 산책코스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봉덕산에서 봉수대를 지나 유천면 손기리까지 이어지는 능선길은 편의시설이 전무하고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아 여름에는 산행이 어려울 정도이다.


  앞으로 이 구간에 대해 향토 순례코스로 적극 개발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또 대창중고~흑응산~봉덕산~봉화산~백마산~용산리 백용사까지의 구간은 월간 사람과 산 2008년 11월호에『알려지지 않은 산/경북 예천군 예천읍-봉덕산 373m / 김은남』처음으로 실리면서 생소한 산행을 좋아하는 전국 산악인들의 발길이 꾸준히 늘고 있다.


  봉덕산 표지석의 희미한 글자체를 검은색으로 칠한 것을 비롯해 백마산, 봉화산 정상표시 나무표찰은 2009년 1월 4일 대구 성동산악회에서 개척 산행을 하면서 설치했다.


  산을 좋아하고 나름대로 관내 명산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던 필자로선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것을 느꼈다. 앞으로 이 구간을 비롯해 예천을 찾는 외지 산악인들의 안전한 산행을 위해 주요 명산 등산로에 이정표를 설치하고 등산로 정비에 좀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어야 할 것이다.


   ○ 산행 안내 : *대창중고 운동장→흑응산→산신당→봉덕산→봉수대→봉화산→임도 →헬기장(초소)→손기리 (약 10km 4시간 소요) /


  *대창중고 운동장→흑응산→산신당→봉덕산→서악사→산신당→흑응산→대창중고 운동장 (원점회귀산행 2시간 소요) /


  *용산리 백룡사→백마산→봉화산→봉덕산→흑응산→대창중고 운동장(4시간 소요)/


  ○ 예천군 주요 관광지로는 용문사, 금당실 전통체험마을, 초간정, 산업곤충연구소(곤충생태체험관), 효자 도시복 생가, 예천천문우주과학공원, 석송령, 선몽대, 육지속의 섬마을 회룡포, 삼강주막, 예천진호국제양궁장, 보문 천호예술원, 학가산 우래 자연휴양림 등이 있다. 


  ○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줄 예천온천은 지하 806m에서 솟아나는 중탄산염 알칼리 온천수로 인체에 유익한 미네랄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여성 피부미용, 피로회복, 노화방지에 효과적이다. 또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허약체질, 생리불순 등에 예방효과가 있고 신경통, 관절염 치료에 아주 좋다. 입욕료는 4,500원(단체 4,000원)이다.  


  ○ 먹거리는 예천읍 남본리 소재 백수식당의 소고기 육회비빔밥을 비롯해 저렴한 가격의 예천참우 전문식당이 여러 곳 있다.


  <글 제공 : 예천읍사무소 장광현>(醴泉인터넷뉴스 2009-01-21 오전 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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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목근(醴泉「稅金내는 나무 」; 天然記念物 400號 指定) [記事] : 자기 명의로 등기된 땅을 소유해 매년 토지세를 내온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문화관광부는 1998년 12월 23일 경북 예천군 용궁면 금원마을의 500년 된 느티나무 황목근을 천연기념물 400호로 지정, 발표했다. 마을 수호목인 이 느티나무가 땅을 갖게된 것은 지난 48년. 주민들이 쌀을 모아 만든 돈으로 827평의 토지를 마련, 이 나무 앞으로 등기를 함으로써 토지 소유주가 됐다. 78년과 83년에도 임야 등을 구입, 이 나무 소유로 해 황목근이 현재 소유한 토지는 모두 1만2,046㎡(3,644평)이다.(신형준 記者 朝鮮日報 1998-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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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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