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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1828) : 예천 충효 27(附 경북도립대, 노동부 주관 대학취업지원기능 확충사업 3년 연속 선정...축하합니다/예천방문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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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년 의진의 유격장인
홍대후(洪大厚) : 예천 출신, 일명 명오(明五), 자는 명우(命禹), 호는 사불(四不), 본관은 남양, 1891년 증광 문과에 급제하였다. 1905년의 의병 때 의병장 이강년 의진(義陣)의 유격장(遊擊將)이었고, 1907년의 의병 때는 협력자(좌종사)였다. 국권피탈(1910) 후에 단식 통읍하다가 임종시(不滅國讐作故道 子房若見奈何辭 頻頻指髮生須恨 耿慶臥薪死以期)를 남겼다.(韓國獨立史 820쪽, 獨立有功者功勳錄 1卷 427쪽, 獨資 1卷 302쪽, 金承學
下卷 304쪽, 南陽洪氏世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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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괄 난 때 불굴의 절개로 간신의 무리들을 방어하였고, 굳굳한 절조로 병자호란 때 의분으로 죽음을 맹서하였고, 인조의 국상 때는 반찬없는 밥을 먹고 헌 솜옷을 입은 황사성(黃士誠) : 旣載
임란 때 모운사가 되어 공훈이 큰 황섬(黃暹) : 旣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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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 때 전사하여 호군에 증직된
황우석(黃禹錫) : ?-1592(선조 25), 본관은 평해, 판서 유정(有定)의 후손, 임진왜란(1592) 때 전사(戰死)하여 호군(護軍)에 증직되었다.(醴泉郡誌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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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때 창의하여 전사한 황일립(黃逸立) : 旣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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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항일운동으로 애족장을 추서받은
황창섭(醴泉 出身 獨立運動家 6名 光復節 맞아 褒賞) [記事] : 국가보훈처는 광복 61년 광복절을 맞아 항일운동을 전개한 예천 출신 6명을 포함 모두 313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했다. 이번에 포상한 독립유공자의 훈격은 건국훈장 145명(독립장 3, 애국장 43, 애족장 99), 건국포장 47명, 대통령 표창 121명 등이며, 이 중에서 예천군 출신이 6명 포함됐다. 정휘세(1916-1931, 일본방면활동) 선생이 애국장, 황창섭(1896-1949,
국내항일) 선생이 애족장, 박규수(1991-1947, 3.1운동)·이용헌(1880-1934, 3.1운동)·이종협(1895-1929, 3.1운동)·이준형(1883-1940, 3.1운동) 선생이 대통령 표창 포상을 받았다.(醴泉新聞 2006년 08월 17일 11: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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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군정서원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순국한
황하청(黃河淸) : 1894(고종 31)-1923, 예천 출신, 중국 동삼성(中國東三省)에서 군정서원(軍政署員)으로 활약하여 봉천성 휘남(奉天省輝南) 등지에서 군자금(軍資金)을 모집하던 중 일본 경찰에게 습격을 당해 1923년 3월 12일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애국장(建國勳章愛國章, 1991)을 추서하였댜.(獨立運動史資料集 國家報勳處 第14輯 938쪽, 獨立新聞 1923.4.4, 獨立有功者功勳錄 9卷 1991 7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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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跳廟部
예천고평리 정정간공묘(鄭貞簡公廟), 정 약포 묘(鄭藥圃廟) [祠堂] : 예천읍 고평리(高坪里) 부루실에 있는 정간공 정탁(貞簡公鄭琢)의 불조묘(不跳廟)로, 정탁은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 위성(衛聖) 1등공신이다. 약포사당이라고도 한다.(醴泉郡誌 1939) →약포사당
정정간공묘(鄭靖簡公廟) [祠堂] : 예천읍 고평리에 있는 사당으로, 청주인 약포(藥圃) 정탁(鄭琢, 左議政, 諡靖簡)을 봉향한다.(醴泉鄕校誌 2004)
정 정간 묘 : →정 정간공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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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구계리 희령군묘(熙寧君廟), 이정사(夷靖祠) [祠堂] : 용문면 구계리(九溪里)에 있는 태종(太宗)의 제6자 희령군 이타(熙寧君李타)의 불조묘(不跳廟)로, 1792년에 왕명으로 구계리(九溪里)로 이건(移建)하였다. 전면과 측면이 모두 3칸인 3포식(包式) 맞배지붕이고, 신주(神主) 및 감실(龕室)의 재료는 모두 조정에서 하사한 것이고, 건축 때부터 위패 봉안 때까지의 일지(日誌)와 사기(史記)가 있다.
희령군 어사금(熙寧君 御賜琴) [文化財] : 유형문화재 제241호(''''89.5.29 指定)로, 소재지는 예천군 용문면 구계리 243번지, 소유자는 전주이씨 희령군파 종중이다. 용문면 구계리 전주이씨 희령군파 종중에 소장하고 있으며, 태종의 여섯째 아들 희령군에게 내린 거문고로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醴泉郡廳 홈페이지)
희령군 어사금(熙寧君御賜琴) [遺物] : 용문면 구계리 243번지 이정사(夷靖祠)에 소장되어 있는 거문고로, 유형문화재 제24호(1989.4.26 指定)이다. 길이 120.3cm, 폭 15.9cm, 두께 12cm로, 오동(梧桐)나무와 밤나무를 주재(主材)로, 생사(生絲)와 무명과 우피(牛皮)를 부재(副材)로 하여 6현(絃)이 장착(裝着)되고 술대로 쳐서 소리를 내도록 되어 있는데, 여느 거문고보다 규모가 작은 편이다. 배면(背面)에는 3개의 홈이 있어 음율(音律)을 조화있게 발성토록 처리되어 있고, "내사희령군(內賜熙寧君)"이라 음각(陰刻)되어 있고, 안단(雁斷)에는 용두(龍頭)와 봉미(鳳尾)를 같은 모양으로 마감하였고, 바다거북의 모양은 부드러운 우피(牛皮)로 덮여있다. 진라(軫裸) 딸린 줄은 개채(改替)되었으나, 안쪽은 2개만이 남아 있고, 2개의 술대는 새로 만들었고, 나(裸) 2개는 원래대로 보존되고 있다. 희령군(熙寧君)은 이 거문고를, ''''어사금(御賜琴)''''이라 명명하고 광주군 대왕면 율현리(廣州郡大王面栗峴里)에 정착하면서 누대(屢代)에 걸쳐 가보(家寶)로 보관하다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당하여 사당이 소실되자 4세손 함(涵)이 거문고만 매고 상주시 외서면(尙州市外西面) 남적으로 왔다가 5세손 우춘(遇春)이 지보면 신풍(新豊)으로 이주하고, 다시 13세손 병성(秉誠)이 유천면 망정(望亭)으로 재정착하여 불천위사당(不遷位祠堂)을 여기 세운 뒤 오늘까지 보관하고 있다. →어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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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도장리 내성군묘(萊城君廟) [祠堂] : 지보면 도장리 익장(益庄)마을에 있는 내성군 정기원(萊城君鄭期遠)을 제향(祭享)하는 불조묘(不跳廟)로, 정기원은 시호(諡號)가 충의(忠毅)로 임진왜란의 선무3등공신(宣武三等功臣)으로 남원(南原)의 만인의총(萬人義塚)에 묻혔다. 국명(國命)으로 세웠고, 매년 음력 8월 16일 새벽에 제향(祭享)을 모시고, 평가 목조(平家木造) 기와집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 맞배지붕의 건물에 정려 편액(旌閭遍額)을 걸어 두었다.
내성군불조묘(萊城君不 廟) [祠堂] : 지보면 도장리에 있는 내성군 정기원(鄭期遠, 1559-1597) 사당으로 1786년(정조 10) 왕명으로 불조지전(不 之典)이 있어 지금껏 모셔온다.(龍宮鄕校誌 上卷 2005)
내성군 불조묘(萊城君을 모신 不跳廟 : 知保面 道庄里) [記事] : 불조묘는 임진왜란 때 남원성과 운명을 같이하고 만인의총(萬人義塚)의 고혼이 된 내성군 정기원을 모신 불천위 사당으로 매년 추석에 제향을 치른다. 정기원(1559-1597)은 본관이 동래로 상신의 아들이며, 자는 사중, 호는 현산, 내성군에 봉작되고 시호는 충의이다. 그는 1582년(선조 15) 국자시에 합격하고 1585년(선조 18) 식년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승정원 주서, 사간원 정언, 병조 정랑, 안악 현감, 승정원 우부승지를 거쳐 정유재란이 나던 해 명 나라 총병 양원의 접반사가 되었다. 이 때 남원성을 끝까지 사수하다 산화하여 1604년(선조 37) 문신으로서 유일하게 선무공신 3등 첫째로 삼고 예조 판서에 추증되었으며 남원의 충렬사에 모셨다.(醴泉新聞 200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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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미호리 윤별동묘(尹別洞廟) [文化財] : 보문면 미호리 60-9번지 미울 동쪽마 철로변에 있는 문화재로, 유형문화재 제293호(1995.12.1 指定)이고, 1456년(세조 2)에 세웠다. 조선 초기의 건물로, 사당(祠堂)은 정면 3칸, 측면 1.5칸, 맞배지붕이고, 삼문(三門)은 정면 1칸, 측면 1칸 맞배지붕이다. 이는 성균관대사성 별동 윤상(別洞尹祥, 1373-1451)을 제향하는 불천위 사당(不遷位祠堂, 不跳廟)이다. 이는 어간에만 양관문을 내고 양퇴간에는 선창만 둔 형식이고, 정면 어간에만 원주(圓柱)를 세우고 창방을 높게, 퇴간의 것은 화반을 얹어 낮게 처리한 양식이 묘우 건축(廟宇建築)에서 흔치 않다. 자연석을 낮게 쌓은 기단 상면은 몰탈로 마감하였고, 자연 초석 위에 어간은 원주(圓柱)를 세우고 양측에는 각주를 세웠다. 사당의 벽은 외부 배면만을 제외하고는 내외부를 모두 회벽(灰壁)으로, 바닥은 몰탈 마감하였다. 상부 가구(上部架構)는 3량가(樑架)에 상형판대공을 세워서 장혀와 종도리를 받았는데, 장혀 밑에는 뜬 장혀에 소로를 얹어 종도리 밑 장혀를 받치고 있다. 정면 퇴주와 배면 기둥의 내부 쪽에는 톱날처럼 간보아지를 받쳤는데, 모양이 특이하다. 특히 정면 퇴주는 어간 창방 위에 소만 얹어 장혀와 처마도리를 받았고, 양퇴간은 창방을 조금 낮추고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화반을 놓아 장혀와 처마도리를 받음으로써 어간을 조금 높게 처리하였고, 양측 우주 상에는 창방머리를 보아지와 같이 다듬어서 길게 빼고, 위에는 주심에 보아지를 십자(十字)로 짜서 얹는 등 사특한 양상(樣相)을 보이고 있다. 정면 출입은 어간에 양 관문을 통하게 하고, 양 퇴간에는 정자살선창을 하나씩 두었는데, 이러한 정면 구성법은 고식에 의한다. 양 관문은 상반(上半)은 세창살로, 하반(下半)은 중간에 대살을 두불로 가로지르고 장판을 끼워서 처리하였다. 사당 안에 문집 판목이 있다(醴泉郡誌 1939). →예천미호리 묘.
[文化財廳 홈페이지] : 보문면 미호리 60-9번지에 있는 사묘재실(祠廟齋室) 2동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3호(1995.12.1 指定)이다. 예천윤씨 문중이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조선 초기의 대학자였던 별동 윤상(尹祥 : 1373-1455)을 제사 지내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예천군의 향리로 출발한 윤상은 조용(趙庸)의 가르침으로 학문을 쌓아 대사성에 이르렀으며, 벼슬 생활 중 많은 인재를 길러내어 존경을 받았던 학자이다. 1456년(세조 2)에 세워진 이 사당은 가운데 칸만 2짝의 열개문을 달고, 양쪽 칸에는 빛이 통과할 수 있는 광창만을 두어 오래된 구성법을 보이고 있다. 사당 건축에는 흔하지 않은 구조와 양식을 지니고 있는 건물이다.(文化財廳 홈페이지 2002, www.ocp.go.kr 2002)
윤별동묘(尹別洞廟) [祀廟齋室] : 보문면 미호리 60-9번지에 있는 사묘 2동으로, 경북도 유형문화재 293호(1995.12.1 指定)이다. 예천윤씨문중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다. 조선 초기의 대학자였던 별동 윤상(1373∼1455) 선생을 제사지내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예천군의 향리로 출발한 별동 선생은 조용 선생의 가르침으로 학문을 쌓아 대사성에 이르렀으며, 벼슬 생활 중 많은 인재를 길러내어 존경을 받았던 학자이다. 세조 2년(1456)에 세워진 이 사당은 가운데 칸만 2짝의 열개문을 달고 양쪽 칸에는 빛이 통과할 수 있는 광창만을 두어 오래된 구성법을 보이고 있다. 사당 건축에는 흔하지 않은 구조와 양식을 지니고 있는 건물이다.(國家文化遺産綜合情報서비스 2004)
윤별동묘(尹別洞廟) [祠宇] : 보문면 미호리 60-9번지에 있는 사우로, 예천의 향리(鄕吏)로 출사(出仕)하여 대사성(大司成)까지 오른 조선 초기의 대학자인 별동 윤상(尹祥)을 제향하는 불천위(不遷位) 사당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기와집이다. 얕은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은 어칸에만 원주를 사용하였고, 양측칸에는 각주를 사용하였다. 전면의 문비(門扉)는 어칸에만 양개문(兩開門)을 설치하였고, 양협간(兩挾間)에는 정자살의 광창(光窓)을 설치하였는데, 이러한 정면 구성법은 고식(古式)에 속하는 수법이다. 가구(架構)는 삼량가(三樑架)의 홑처마집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윤별동묘(尹別洞廟) [祠堂] : 보문면 미호리에 있는 불조묘(不跳廟)로, 경북유형문화재 제293호이다. 예천인 별동 윤상(尹祥, 成均館 大司成)을 모시기 위해 1456년(세조 2)에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1.5칸, 맞배지붕이다.(醴泉鄕校誌 2004)
윤별동묘(尹別洞廟) [文化財] : 보문면 미호리 60-9번지에 있는 묘우(廟宇)로, 예천의 향사(鄕士)로 출사하여 대사성까지 오른 조선 초기의 대학자인 별동 윤상(尹祥)을 제향하는 불천위 사당(不遷位祠堂)이다. 1456년(세조 2)에 건립하였으며, 현재 유형문화재 제293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기와집이다. 얕은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은 어칸(御間)에만 원주(圓柱)를 사용하였고, 양측칸에는 각주(角柱)를 사용하였다. 전면의 문비(門扉)는 어칸에만 양개문(兩開門)을 설치하였고, 양협칸(兩挾間)에는 정자살의 광창(光窓)을 설치하였는데, 이러한 정면구성법은 고식에 속하는 수법이다. 가구(架構)는 삼량가(三樑架)의 홑처마집이다.(一般動産文化財 多量 所藏處 實態調査 2005)
윤별동묘 [記事] : 역사체험관-유적/ 윤별동묘 | 공간이야기 / 예천윤씨(醴泉尹氏) / ...예천윤씨(醴泉尹氏)의 시조는 고려에서 추밀부사를 지내고 예빈시 소윤에 추증된 윤충이다. 그 후 후손이 누대에...(韓國國學振興院 ugo.net 2008)
윤 별동 선생고(尹別洞先生考) [學術저널] : 지보면 도장리 출신인 정양수(鄭亮秀, 1932- , 大昌中高 校監)의 별동 윤상(尹祥, 1373-1455, 醴泉 出身, 成均館大司成)에 대한 학술저널로, 예천문화원에서 1990년에 발행한 <예천문화(醴泉文化)> 4호 70-116쪽(47쪽 분량)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는, 1) 글머리에, 2) 본론, 3)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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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죽림리 권초간묘(權草澗廟) [祠堂] : 용문면 죽림리 166번지 예천권씨종가별당(醴泉權氏宗家別堂) 후면에 있는 초간 권문해(草澗權文海)의 불조묘(不跳廟)로, 1676년(숙종 3)에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 와가(瓦家)지붕이다.
권초간묘(權草澗廟) [祠堂] : 용문면 죽림리 166번지 예천권씨종가별당 후면에 있는 사당으로, 예천인 초간 권문해(權文海, 左副承旨)를 위해 1678년(숙종 3)에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기와지붕이다.(醴泉鄕校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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祠宇部
예천가야리 가야사(佳野祠), 가야사우(佳野祠宇), 가평사(佳坪祠), 기계정사(箕溪精舍) [祠宇] : 용궁면 가야2리 강당(講堂)마을에 있는 조선조 건물인 사당으로, 축산인 기계 전인(竺山人箕溪全仁, 1502-1557)을 봉향(奉享)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웠다. 1910년에 중수하여 기계정사(箕溪精舍, 慕遠亭)라고 개칭하였고, 그 뒷쪽에 있는 별묘(別廟, 別祠)에 축산인 운계 전이성(雲溪全以性, 1557-1646)을 봉향하였다. 기계정사와 별묘를 합하여 가야사(佳野祠)라고 한다. 기계정사는 정면 4칸, 측면 2칸, 별묘는 정면 2칸, 측면 1.5칸으로 1973년에 중건했다. 사우(祠宇)란 충절(忠節)에 의해 죽은 조상이나 시조 및 중조(中祖)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竺山勝覽 1934, 醴泉郡誌 1939)
가야사(佳野祠) [祠堂] : 용궁면 가야2리에 있는 기계(箕溪) 전인(全仁)을 봉향하는 사당으로, 1910년 후손들이 중수하여 기계정사(箕溪精舍)라 하고, 그 뒤쪽에 있는 별묘(別廟)에 운계(雲溪) 전이성(全以性)을 봉향하고 있다. 기계정사와 별묘를 합하여 가야사라 한다. 기계정사는 기계 전인이 청원정(淸遠亭)으로부터 용궁현 가안리(佳安里)에 터잡아 살면서 후진을 양성하고 강학 논도(講學論道)하던 곳으로 지금도 그 마을을 ''''강당마''''라고 한다. 강당 뒤에 사우(祠宇)가 있어 전인을 춘추 향배하며 별묘에는 증손 운계 전이성을 별향하고 있다. 400여 년의 오랜 동안 창상(滄桑)의 변이 여러 차례 있었고, 병화와 화재가 이어져서 건물도 여러 차례 중수를 거듭하였으므로 창건한 연대는 모른다. 1993년 음력 6월 15일에 경주 이재현(李宰賢)이 지은 중수기(重修記)가 있다.(龍宮鄕校誌 上卷 2005)
가야사(佳野祠) [祠宇] : 용궁면 가야2리 520번지(畓)에 있는 사당으로, 용궁인 전인(全仁)을 봉향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1910년에 중수하여 기계정사(箕溪精舍)라 하였으며, 전이성(全以性)을 봉향하는 별묘(別廟)와 기계정사를 합하여 가야사라 하였다. 1973년에 중건하였다. 기양문이라 편액한 산형 대문을 들어서면 강당인 기계정사가 정면하며 자리잡고 있으며, 강당의 뒤에는 사당과 별묘로 이루어진 묘(廟)의 공간을 두었다. 정사는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며, 가구(架構)는 오량가(五樑架)의 이익공(二翼工) 집이다. 사당과 별묘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기와집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醴泉郡誌 2005)
가야사우 : →가야사
가야서당 : →예천가야리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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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경진리 옥동사(玉洞社, 玉洞祠), 옥동리사(玉洞里社) [터] : 개포면 경진리 301번지 검암 옥동(劍岩玉洞)에 있는 사우(祠宇)로, 1687년에 노주 김태일(蘆州金兌一)이 발의(發議)했고, 1701년에 인근 사우(士友) 20명이 군수 윤성우(尹聖瑀)와 그 간 유지들이 모은 재력(財力)으로 매토 정지(買土整地)하여, 1702년에 뜻을 이루었다. 옥계 신달정(玉溪辛達廷, 1483-1524), 서계 정언굉(西溪鄭彦宏, 1569-1640), 검암 김곤(劒岩金곤, 1590-1678)을 위하여 세웠다. 1764년 1월 도유사(都有司)는 신광도(辛光道)이었다. 그 후 훼철(1868)되어 영월 신(辛), 동래 정(鄭), 예안 김(金) 3문중에서 3위 조상의 유덕(遺德)을 추모하여 그 자리에 위패를 매안(埋安)하고 상석(床石)을 설치하여 해마다 제사를 올리고 있다. 사적비(事蹟碑)가 있다. 또한 이 유지(遺址)에 서로 묘를 쓰려고 하여 칠장칠굴(七葬七掘)하던 중 이헌영(李헌永)이 관찰사(觀察使)로 있을 때 이 곳에 묘를 쓰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1893년(고종 30)에 3문중 유림들이 이헌영(李헌永) 기념비를 세워 현존한다. 비명(碑銘)은, "관찰사 겸 순찰사 친군남영외사 이공헌영 만세불망비(觀察使兼巡察使親軍南營外使李公헌永萬世不忘碑)"이다.(醴泉郡邑誌 1841 1895, 醴泉郡誌 1939, 朝鮮 輿勝覽 1929, 嶠南誌 1937)
옥동사(玉洞社), 효의사(孝義祠) [祠堂] : 개포면 이사리에 있는 사당으로, 1747년(영조 23)에 노주 김태일(蘆洲金兌一)의 발의(發議)로 옥계(玉溪)의 효행을 기념하기 위한 입묘(立廟)를 목표로 곡식 6섬(六石)을 모아서 10여 년 이자를 늘렸다. 1761년(영조 37) 4월에 사당을 세우려는 뜻을 향내(鄕內)에 통고하였고, 다음 해에 개포면 경진리 검바우(劒岩)에 복지(卜地)하고 1769년(영조 45)에 게건(揭虔)하였다. 그 때 윤성우(尹聖瑀)가 학문을 일으키려고 묘사(廟舍) 유지를 위해 재물을 내었다. 고종 때 금지령에 따라 훼철(1868)하고 위판을 그 터의 땅속에 묻었다가 1989년 복원 발의한 결과 문의(門議)가 정립(定立)되어 개포면 이사리로 옮겨 1990년 기공하여 1993년에 완공하였다.
옥동사(玉洞社) [터] : 개포면 경진리 검바위(劍岩)에 있던 사당으로, 옥계(玉溪) 신달정(辛達廷), 서계(西溪) 정언굉(鄭彦宏), 검암(劒岩) 김곤(金 )을 배향하기 위해 1681년에 노주(蘆洲) 김태일(金兌一)이 발의하고 1701년에 군수 윤성우(尹聖瑀)와 20여 명의 사우(士友)와 유지들이 모은 성금으로 1702년에 세웠다. 훼철된 자리에 매안(埋安)하고 상석과 사적비를 세워서 제향하다가 개포면 이사리에 이건하여 향사를 지내고 있다.(醴泉鄕校誌 2004)
옥동사 [記事] : 유교관련도서/ 예천의 금석문 1 | 간행년:2003/ 저자:예천문화원/ 발행처:예천문화원 / 玉洞祠 事蹟碑/ ...B202_0210.jpg 옥동사 사적비이 玉洞은 孝子 玉溪寧越辛公 諱 達廷判校 西溪東萊鄭公 諱 彦宏 折衝將軍...(韓國國學振興院 ugo.net 2008)
옥동사 사적비(玉洞祠事蹟碑) [碑] : 개포면 경진리 검바우(劒岩) 옥동사 터에 있는 비로, 옥동사는 효자 옥계(玉溪) 신달정(辛達廷, 本寧越, 判校), 서계(西溪) 정언굉(鄭彦宏, 本東萊, 僉樞), 검암(劒岩) 김곤(金곤, 本禮安)을 모신 사우(祠宇)였다. 그 사적을 상고한 즉 1747년(영조 23)에 노주(蘆洲) 김태일(金兌一, 本禮安)이 동네 사람들에게 의론하기를, "우리 동네 선배 효자 신공이 있어 지행(至行)이 퇴계 선생의 지은 바 갈명(碣銘)에 소명하게 등재되어 있으니 이를 민멸(泯滅)할 수 없는지라 묘당(廟堂)을 세우고 존봉(尊奉)해서 긍식(矜式)의 곳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니, 모두 좋다고 하였다. 이에 6섬(六石)의 양곡(糧穀)을 모아 장리(長利)를 놓으니 십여 년 후에는 재력이 넉넉해지므로 1761년(영조 37) 4월 초3일에 비로소 사당을 세울 뜻으로 향내에 두루 통고하니, 사우(士友) 27명이 모인지라 당시 군수 윤성우(尹聖瑀)가 흥학(興學)에 성의 있어 묘사재와(廟舍財瓦)를 출급(出給)해 주므로 1762년(영조 38) 봄에 여기에 부지를 정하였으니, 도유사(都有司)에 김태일, 재유사(齋有司)에 신숭도(辛崇道), 한기범(韓基範), 성조도청(成造都廳)에 신필암(辛必 ), 김정만(金挺滿), 박서구(朴瑞龜), 안중항(安重恒)이 서로 모의해서 시역(始役)하니 묘제(廟制)가 3가(三架)라 겨우 복개(覆蓋)했을 무렵 김태일이 연관(捐館)하여 일시 중지했다가 1769년(영조 45)에 개건(改建)하되 사림을 모아 서계 정언굉, 검암 김곤을 함께 열향(列享)하기로 돈정(敦定)하고 욕례(縟禮)는 매년 3월 하정(下丁)으로 정하여 행하여 오다가 고종 1868년(고종 5)에 국령에 따라 훼철하였다. 사적비문은 1985년 3월 20일에 옥계 신달정의 15세손 신기환(辛基煥)이 지었다.(醴泉의 金石文 2003)
옥동서원(玉洞書院) [書院] : 개포면 이사리 235-1번지(田)에 있는 현대 서원으로, 원래 개포면 경진리 ''''검암(劒岩)'''' 마을에 있었으나, 1868년에 훼철된 것을 1993년에 현 위치로 이건하여 신달정(辛達廷), 정언굉(鄭彦宏), 김곤(金 )을 배향하고 있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강당인 옥동사(玉洞社)가 자리잡고 있으며, 강당의 뒤에는 내삼문과 사당인 효의사(孝義祠)가 별도의 공간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인데, 평면은 전면에 퇴칸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규모의 맞배기와집이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옥동서원(玉洞書院) [터] : 개포면 이사리에 있던 서원으로, 영월인 신달정을 제향하였다.(인터넷 야후 2001, 인터넷 210.178.2 2002)
옥동서원(玉洞書院) [書院] : 개포면 이사리 235-1번지(田)에 있는 현대 서원으로, 원래 개포면 경진리 ''''검암(劒岩)'''' 마을에 1702년(숙종 28)에 건립되었으나,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것을 1993년에 현 위치로 이건하여 신달정(辛達廷), 정언굉(鄭彦宏), 김곤(金곤)을 배향하고 있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강당인 옥동사(玉洞社)가 자리잡고 있으며, 강당의 뒤에는 내삼문과 사당인 효의사(孝義祠)가 별도의 공간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인데, 평면은 전면에 퇴칸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규모의 맞배기와집이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고 내부는 통칸으로 처리하였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醴泉郡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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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경진리 회암영당(晦庵影堂) [祠堂] : 개포면 경진리 220번지 교회마을에 있는 사당으로, 1571년(선조 4)에 회암 주희(晦庵朱熹)를 위해 창건되었다. 길이 22cm, 폭23.5cm와 길이 25.5cm, 폭 44cm의 주희 영정(朱熹影幀)을 모시고, 매년 10월에 제사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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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고평리 정충사(靖忠祠) [祠堂] : 예천읍 고평리 466번지 고평역전(高坪驛前) 안골 뒷산에 있는 사당으로, 약포 정탁(藥圃鄭琢, 1526-1605)의 영정(影幀)과 유물(遺物)들을 보관하기 위해서 세웠다. 1976년 12월에 착공하여 1980년 12월에 준공했다. 부지 4,110평에 국비(國費)와 도비(道費) 7,800만원을 들여서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八作) 지붕 겹처마의 영정각(影幀閣)과 정면 3칸, 측면 1칸 겹처마 맞배 지붕의 유물관(遺物館),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의 관리사(管理舍) 및 정면 3칸, 측면 1칸 맞배집인 신삼문(神三門)을 비롯하여 주소(廚所), 담장 197m, 안내판(案內板, B形), 변소 등을 세웠고, 유물관 안에는 김석종 예천군수(金奭鍾醴泉郡守)의 준공 기문(記文)이 있다.
정충사(海士 生徒 忠孝의 故庄 訪問) [記事] : 충무공의 후예들이 약포 정탁 대감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충효의 고장 예천을 방문하여 대감의 영정 앞에 머리숙여 경의를 표하고 양궁장 내 문화체육센터에서 1박한 뒤 120km 행군을 시작한다. 2005년 9월 8일 오후 2시 전세 기차로 예천역에 도착한 해군사관학교 62기 생도(인솔자 최수용 준장)와 관계자 등 200여 명은 김수남 군수의 따뜻한 영접을 받고 도보로 정충사로 향했다. 생도들은 정충사(예천읍 고평리)에서 종손인 정경수 씨로부터 임진왜란 때 원균의 모함을 받아 죽음에 직면한 이순신 장군을 구해준 약포 대감의 공적에 대해 상세히 설명 듣고 충무공 같은 충신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김수남 군수는 환영사에서, "해군 생도들이 충효의 고장 예천을 방문한 것을 6만 군민과 환영하고 정충사에서 약포 대감의 높은 뜻을 이어받아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훌륭한 해군 장교가 되어 달라"고 당부했다. 최수용 준장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충효의 고장 예천에서 뜻깊은 시간을 갖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생도들이 약포 대감처럼 나라를 위해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역사 공부를 하고 돌아가겠다"고 답했다. 이 번 방문에 지보초, 중학교를 졸업하고 해사에 입교한 김진목 생도(지보면 소하리 출신)가 환영나온 기관단체장과 고향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생도들은 정충사를 방문한 뒤 예천진호국제양궁장 내 문화체육센터에서 하룻밤을 묵고 9일 오전 8시 다음 목적지인 하회마을까지 행군을 실시한다.(윤현숙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5-09-08 오후 4:34:07)
정충사(海士 生徒 忠孝의 故庄 醴泉 訪問) [記事] : 충무공의 후예들이 충효의 고장 예천을 방문, 약포 정탁 대감의 영정을 모신 보문면 정충사에 들러 대감의 영정 앞에 머리숙여 경의를 표했다. 이 번 방문은 당초 2005년 9월 8일 오후 2시 열차편으로 예천역에 도착 환영식을 마친 후 행군으로 양궁장 문화센터에 도착해 1박 후 9일 오전 8시 안동 하회마을로 출발 예정이었다. 이와 관련 8일 수경지로 이동시 교통 관련 협의차 예천경찰서장실을 방문한 해사생도 대표(인솔자 준장 최수용)와 대화 중,“해군생도들은 충무공의 후예들인데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께서 원균의 음모로 죽음에 이르렀을 때 선조에게 탄원을 하여 충무공을 살린 약포 대감(정탁)을 모셔놓은 정충사를 방문하는 것이 어떠냐”는 오창근 서장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여 해사 생도들이 정충사를 방문하게 됐다.(醴泉新聞 2005-09-16 10: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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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금남리 훤평사(喧坪祀) [祠堂] : 용궁면 금남리 훤평에 있는 울진 장씨 문중의 사당으로, 암대(巖臺) 장구장(張九章, 大司成), 은계(銀溪) 장한보(張漢輔, 判敦寧府事), 월송(月松) 장령(張翎, 醴泉郡守, 春秋館編修官)을 모시는 세덕사(世德祠)이다.(龍宮鄕校誌 上卷 2005)
훤평사 : →훤평사우
훤평사우(喧坪祠宇), 훤평사(喧坪祠), 세덕사(世德祠), 훤평서원(喧坪書院) [祠堂] : 용궁면 금남리 396번지 훤평(喧坪)에 있는 사당으로, 울진인 은계 장한보(銀溪張漢輔), 월송재 장령(月松齋張翎)을 모셨다. 정면 3칸, 측면 1.5칸, 목조와가(木造瓦家) 팔작(八作)지붕의 추모재(追慕齋)와 정면 1.5칸, 측면 1칸, 맞배지붕의 세덕사(世德祠)가 있다. 원래 금남리(琴南里) 금원 사당고개에 있었으나, 1730년 경 소실된 것을 1830년경에 현 위치에 재건하여 현존하고 있다.(竺山勝覽 1934, 醴泉郡誌 1939)
훤평서당(喧坪書堂) [터] : 용궁면 금남리 훤평촌 금강(錦江) 변에 있던 서당으로, 터만 남아 있다.(龍宮鄕校誌 上卷 2005)
훤평서원 : →훤평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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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남본리 충혼탑(忠魂塔) [塔] : 예천읍 남본2리(南本二里) 남산공원의 정상에 있는 탑으로, 관풍루 동쪽에 있다. 이는 한국전쟁(1950)을 전후하여 산화한 호국 영령을 한 자리에 모시기 위해 1962년 11월 30일에 세웠다. 당시 충혼탑건립추진위원장인 박준무(朴駿武) 예천군수는 독지가의 협조를 얻어 420평의 부지 위에 3단의 기단을 쌓고, 높이 6.2m로 세웠는데, 양인식(楊仁植) 육군 대위 외 530위(位)의 예천군 출신 영령이 1986년 5월에 축조한 지하 위패 봉안실에 봉안되고 있다. 그 후 붕괴의 위험 때문에 예천군이 서울 세림건축사사무소 설계로 주일건설(現場所長 배재호)이 착공, 탑신 9m, 기단 1m, 위패실(位牌室) 5.5평으로 1992년 5월 30일 공사를 완료했다. 이 곳은 또 한국전쟁을 체험치 못한 전후 세대들을 위한 반공 교육장인 동시에 충효의 도장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예천중학교 제14회 동기회가 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87년 6월 6일에 장원석(張元錫)이 지은 시비(詩碑)를 준공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영현이여! 그날 참다 못해 불의와 싸우다 쓰러진 꽃다운 조국의 용사여! 당신은 사랑하는 겨레의 아버지. 당신이 피흘린 그 곳은 평화의 샘터. 넘치는 호국의 얼은 영원히 겨레의 맥박 속에 흐르니, 오! 당신이 지켜 주신 이 땅에 당신은 억만년 지지않는 꽃, 무궁한 평화의 꽃을 피웠소. 못내 잊지 못할 영현이여. 고이 고이 잠드소서." →예천남본리 충혼탑
예천남본리 충혼탑(醴泉南本里忠魂塔), 충혼탑, 탑 [塔] : 예천읍 남본2리 외남본동 남산공원(外南本洞南山公園) 정상에 세워진 탑으로, 조국 수호(祖國守護)와 자유 평화를 위하여 빛나는 공을 세우고 산화한 예천군 출신 호국 영령(護國英靈)을 모셨다. 한국전쟁(1950) 때 순국한 영령을 위해 1962년 11월 30일에 세워졌는데, 당시 박준무(朴駿武) 군수가 주관하여 420평의 부지 위에 3단의 기단을 쌓고 높이 6.2m의 탑을 쌓았다. 매년 6월 6일 현충일에 군수 주관 하에 군민의 위령제가 행하여지고 있다. 1977년에 입구 석축 계단의 신설과 후면 차창(遮蔽) 담장을 설치하였고, 1978년 4월 5일 식목일에는 황재홍(黃在洪) 국회의원, 조영찬 군수를 비롯한 군청 직원 전원이 참여하여 전나무 대묘(大苗)와 둥근 향, 측백 등 기념 식수를 하였다. 1986년 5월에 지하 위패 봉안실(位牌奉安室)을 축조하고, 양인식(楊仁植) 육군 대위 외 530위의 영령을 봉안하였다. 1967년에 제1차 보수를 하였고, 1977년 12월 20일에 군비 240만9천 원으로 제2차 보수, 1979년 5월 25일 군비 17만3천2백3십 원과 성금 125만4천7백7십 원으로 제3차 보수를 하였다. 1987년 6월 6일에 예천중학교 제14회 동기회(同期會)가 재학 시의 스승 장원석(張元錫) 작시(作詩)의 시비(詩碑)를 이 곳에 준공하였는데, 그 내용은, "영현이여, 그날 참다 못해, 불의와 싸우다, 쓰러진, 꽃다운 조국의 용사여, 당신은, 사랑하는 겨레의 아버지, 당신이, 피흘린 그곳은 평화의 샘터, 넘치는 호국의 얼은, 영원히 겨레의 맥박 속에 흐르니, 오!, 당신이 지켜주신 이 땅에, 당신은 억만년 지지않는 꽃, 무궁한 평화의 꽃을 피웠소. 못내 잊지 못할 영현이여, 고이 고이 잠드소서." 라고 하였다.
예천남본리 충혼탑(醴泉南本里忠魂塔) [塔] : 예천읍 남본2리 외남본동 남산공원(外南本洞南山公園) 정상에 세워진 탑으로, 팔각정(八角亭, 舊 觀風樓) 동쪽에 있다. 조국 수호(祖國守護)와 자유 평화를 위하여 빛나는 공을 세우고 산화한 예천군 출신 호국 영령(護國英靈)을 모셨다. 매년 6월 6일 현충일에 군수 주관 하에 군민의 위령제가 행하여지고 있다. 한국전쟁(1950) 때 순국한 영령을 위해 1962년 11월 30일에 세워졌는데, 당시 충혼탑건립추진위원장인 박준무(朴駿武) 군수가 주관하여 독지가의 협조로 420평의 부지 위에 3단의 기단을 쌓고 높이 6.2m의 탑을 쌓았다. 1977년에 입구 석축 계단의 신설과 후면 차창(遮蔽) 담장을 설치하였고, 1978년 4월 5일 식목일에는 황재홍(黃在洪) 국회의원, 조영찬 군수를 비롯한 군청 직원 전원이 참여하여 전나무 대묘(大苗)와 둥근 향, 측백 등 기념 식수를 하였다. 1986년 5월에 지하 위패 봉안실(位牌奉安室)을 축조하고, 양인식(楊仁植) 육군 대위 외 530위의 영령을 봉안하였다. 1967년에 제1차 보수를 하였고, 1977년 12월 20일에 군비 240만9천 원으로 제2차 보수, 1979년 5월 25일 군비 17만3천2백3십 원과 성금 125만4천7백7십 원으로 제3차 보수를 하였다. 1987년 6월 6일에 예천중학교 제14회 동기회(同期會)가 재학 시의 스승 장원석(張元錫) 작시(作詩)의 시비(詩碑)를 이 곳에 준공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영현이여! 그 날 참다 못해 불의와 싸우다 쓰러진 꽃다운 조국의 용사여! 당신은 사랑하는 겨레의 아버지. 당신이 피흘린 그 곳은 평화의 샘터. 넘치는 호국의 얼은 영원히 겨레의 맥박 속에 흐르니, 오! 당신이 지켜 주신 이 땅에 당신은 억만년 지지않는 꽃, 무궁한 평화의 꽃을 피웠소. 못내 잊지 못할 영현이여. 고이 고이 잠드소서." 그 후 붕괴의 위험 때문에 예천군이 서울 세림건축사사무소 설계로 주일건설(現場所長 배재호)이 착공, 탑신 9m, 기단 1m, 위패실(位牌室) 5.5평으로 1992년 5월 30일 공사를 완료했다. 이 곳은 또 한국전쟁을 체험치 못한 전후 세대들을 위한 반공 교육장인 동시에 충효의 도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예천남본리 충혼탑(50돌 맞은 顯忠日 追念行事) [記事] : 제50회 현충일을 맞아 예천군은 남산공원 충혼탑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산화한 순국 선열과 호국 영령들의 명복을 빌고 위업을 기리는 추념 행사를 2005년 6월 6일 오전 9시 50분 김수남 군수, 조경섭 의장, 신국환 국회의원, 오창근 서장, 조원한 교육장을 비롯한 군도의원, 기관단체장, 보훈 가족, 관계자, 공무원, 군인, 학생 등 1천 명이 참석하는 가운데 개최했다. 이 날 추념 행사는 애국가 제창, 순국 선열 및 호국 영령에 대한 묵념, 조총, 헌화.분향 및 헌작, 김수남 군수의 추념사, 상이군경회 대표의 헌시 낭독, 현충일 노래 제창 순으로 진행되었다. 김수남 군수는, "조국을 위해 순국한 선열들의 고귀한 넋을 생각해 더욱 열심히 나라와 지역을 위해 살아 줄 것"을 당부했다. 군은 이 날 추념 행사에 참석하는 국가유공자 및 유족들의 참배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무료로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무임승차권을 배부하고 점심을 마련했다.(윤현숙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5-06-06 오전 11:49:38)
예천남본리 충혼탑(報勳3團體 自然保護 南山 忠魂塔 參拜) [記事] :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예천군지회(지회장 김석년), 대한민국 전몰군경유족회 군지회(지회장 박형구), 대한민국 전몰군경미망인 군지회(지회장 박귀옥) 회원 60여 명은 2005년 9월 1일 오전 10시 예천읍 한천 둔치 및 남산공원 충혼탑 일원에서 2시간 동안 자연보호 캠페인을 펼치고 호국 영령들을 위한 충혼탑 참배를 하였다.(醴泉新聞 2005-09-09 09:59:22)
예천남본리 충혼탑(醴泉郡, 第51回 顯忠日 追念行事 擧行) [記事] : 예천군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산화한 순국 선열과 호국 영령들의 명복을 빌고 위업을 기리는 추념행사를 현충일인 2006년 6월 6일 오전 9시 50분 예천읍 남산공원 충혼탑 현지에서 김수남 예천군수를 비롯한 기관단체장, 보훈가족, 관계자, 공무원, 군인, 학생, 주민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했다. 이날 추념행사는 개식에 이어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조총, 헌화.분향.헌작, 김수남 예천군수의 추념사, 상이군경회 대표의 헌시 낭독, 현충일 노래 제창 순으로 진행되었다. 김수남 예천군수는 이날 추념식에 이어 기관단체장과 보훈단체장 30명을 초청해 간담회도 가졌다. 군은 이날 추념행사에 참석하는 국가유공자 및 유족들의 참배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무료로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무임승차권을 수여했다.(醴泉新聞 2006년 06월 06일 15:10:55)
예천남본리 충혼탑(''''가슴속에 나라사랑 生活속에 報勳사랑'''' 忠魂塔에서 第52回 顯忠日 追念行事) [記事] : 예천군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산화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의 참뜻을 기리기 위한 제52회 현충일 추념행사를 2007년 6월 6일 오전 10시 예천읍 남산공원 충혼탑에서 거행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수남 군수, 남시우 군의장 및 군의원, 한영수 경찰서장을 비롯한 기관단체장, 이현준.윤영식 도의원, 보훈가족, 공무원, 군인, 학생, 주민 등 1천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 내빈들은 김수남 군수를 시작으로 충혼탑에 헌화.분향하며 조국을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고 그들의 숭고한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겼다. 김수남 군수는 추념사에서 "조국을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들을 위해 모든 군민들의 정성을 모아 제를 준비했으니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시고 일제에 빼앗긴 조국 광복과 한국전쟁 등에서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잘사는 국가 건설에 앞장 서겠다"고 다짐했다. 김 군수는 또,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번영된 조국이 있다는 것을 가슴 깊이 새기며 희생정신을 되살려 지역발전의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추념행사에 참석한 1천여 명의 참석자들과 합창단은 대창고등학교 악대 반주에 맞추어 "겨레와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치니 그 정성 영원히 조국을 지키네. 조국의 산하여! 용사를 잠재우소서. 충혼은 영원히 겨레가슴에, 님들은 불변하는 민족혼의 상징, 날이 갈수록 아 그충성 새로워라" 현충일 노래를 끝으로 추념행사를 마쳤다. 한편, 예천군은 추념행사에 참석하는 국가유공자 및 유족들의 참배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무료로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무임승차권을 배부했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7-06-06 오후 1:09:20)
예천남본리 충혼탑(三星어린이집 院兒들 忠魂塔 參拜! 고사리같은 손으로 護國英靈들에 菊花꽃) [記事] : 호국보훈의 달과 한국전쟁 57주년을 맞아 고사리같은 손으로 하얀 국화꽃을 충혼탑에 바치는 아름다운 손길이 있어 조국을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2007년 6월 20일 오전 10시 남산 충혼탑에는 삼성프라임어린이집과 예천웅변보습학원 원아들이 전쟁의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고 호국영령과 참전용사의 숭고한 희생의 참뜻을 기리기 위한 참배 행사를 가졌다. 이날, 원아들은 "한국전쟁 등에서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이제 저희들이 대한민국을 가꾸고 지켜 나가겠다" 고 다짐하며 고사리같은 손으로 국화꽃을 바쳐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7-06-26 오전 10: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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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립대, 노동부 주관 대학취업지원기능 확충사업 3년 연속 선정...축하합니다.
경북도립대(慶北道立大學, 勞動部 主管 2009年度 大學就業支援機能 擴充事業 3年 連續 選定) [記事] :
경북도립대학(학장 박용환)이 2008년 연말 노동부가 실시한 ‘대학 취업지원기능 확충사업’ 평가에서 2007~2008년도에 이어 3년 연속 취업지원기능 확충사업 대상학교로 선정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번 평가는 노동부에서 전국의 대학을 대상으로 각 대학별 전년도 추진실적보고서와 평가단의 현지 점검결과를 토대로 4개 항목 사업목표 및 계획의 적절성, 사업수행의 타당성, 사업 역량구축정도, 사업의 지속연계가능성을 기준으로 심사했으며, 경북도립대학은 각 항목에서 고루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3년 연속 대상 학교로 선정되어 올해 최대 6천만 원의 사업비를 지원받게 됐다.
대학취업지원기능사업자 선정으로 취업정보센터에서는 최근 고용상황 악화와 청년실업 증가 등 급변하는 취업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실무 적응력 향상을 위한 체험학습 위주의 취업지원프로그램 실시, 취업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을 통한 맞춤식 취업지도 등을 목표로 다양한 취업지원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사업 내용을 보면, 2008년에 실시하여 학생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받았던 학과별 취업특강(17회), 취업캠프실시(2회), 졸업생리콜교육(3회) 등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다각적 정보제공을 위한 취업관련 카페인 잡카페를 구축 운영하여 취업에 대한 자료검색 및 상담, 시청각 교육, 취업정보서적 열람 등을 위한 시설을 설치하여 학생들의 취업전용공간으로 활용하고 입학에서 취업까지 체계적인 진로설정을 위한 진로가이드북 발간으로 학생들의 취업활동에 도움을 줄 계획이다.
경북도립대학은 학생들의 취업을 위하여 수년간에 걸쳐 취업지원 프로그램 개발과 노동부지원 취업지원기능 확충 프로그램운영, 삼성전자서비스(주), 삼강윈테크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과의 산학협약 체결, 경상북도 소방본부 및 예천군, 울릉군, 성주군 등과의 관학협정체결을 통하여 공무원특채를 확대하는 등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심혈을 기울인 결과, 2008년도 취업률이 90.3%라는 놀라운 성과를 일궈냈다.
(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9-01-29 오전 9: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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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354
예천천문과학문화센터(''''天文의 해''''에 펼쳐지는 華麗한 宇宙쇼) [記事] :
2009년에는 유난히 별 볼일이 많을 것 같다. 연중 화려한 ‘우주쇼’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2009년은 천문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통해 달과 목성의 위성을 관측한 지 400년 되는 해다.
인류가 처음으로 달에 발을 디딘 지 40년째,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지 80년째가 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UN은 유네스코와 국제천문연맹의 건의를 받아들여 2009년을 ‘세계 천문의 해(International Year of Astronomy)’로 정했다.
‘세계 천문의 해’라는 이름에 걸맞게 우주에서는 장엄한 장관이 많이 연출된다.
2월 9일에는 지구 그림자가 달을 가리는 반영(半影)월식을 볼 수 있다. 월식은 달이 지구 그림자 속을 지나갈 때 발생하며 달의 위치에 따라 개기`부분`반영월식으로 나뉜다.
달이 지구 본영 중심을 지나가면 개기월식이 일어난다. 부분월식은 달의 일부분이 본영을 통과할 때 관측된다. 반영월식은 달이 지구 그림자의 바깥부분을 통과할 때 발생한다.
반영월식은 2009년 7, 8월에도 일어나지만 2월에만 관찰할 수 있다. 동년 7월 22일에는 2009년 열리는 우주쇼의 하이라이트인 개기일식이 진행된다.
일식은 태양과 지구 사이에 위치한 달이 태양을 가리는 현상으로 태양이 달에 의해 완전히 가려지면 개기일식, 일부분만 가려지면 부분일식, 가운데 부분만 가려지고 가장자리가 보이면 금환일식으로 부른다.
개기일식은 지속 시간이 짧고 관측 위치에 따라 부분일식으로 보인다. 2009년 개기일식은 우리나라 시간으로 7월 22일 오전 8시 58분 인도에서 시작돼 네팔 부탄 방글라데시 중국을 가로지르며 발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해의 80% 정도가 가려지는 부분일식이 관찰된다. 오전 9시 34분 시작돼 오전 10시 48분 태양이 가장 많이 가려지며 낮 12시 6분에 끝난다. 한반도에서 개기일식은 2035년에 관측할 수 있다.
9월 4일에는 토성의 고리가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토성의 자전축은 26.7도 기울어져 있어 평소에는 토성 고리를 지구에서 관측할 수 있지만 토성 고리 기울기가 우리 시선 방향과 일치하면 마치 고리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8월 초순부터 토성 고리가 점차 가늘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1월에는 화려한 유성우를 만날 수 있다. 유성우는 우주공간에 떠 있는 혜성이나 소행성 부스러기들이 지구 대기권에 빨려들어 불타는 현상이다. 지구 공전 궤도와 과거 혜성이 지나간 궤도가 만날 때 일어난다.
11월 17일 밤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사자자리에서 펼쳐질 유성우는 최소 500개에서 최대 1천 개의 별똥을 뿌릴 것으로 예측된다.
이 밖에 2월 18일 해뜨기 전 동쪽 하늘에는 화성과 목성이 보름달 하나 정도 거리로 접근하며 10월 8일 새벽에는 수성과 토성, 14일 새벽에는 토성과 금성이 가까이 다가선다.
10월 중순 초저녁 북반구 하늘에서는 유난히 밝게 빛나는 목성을 볼 수 있다. 목성은 주로 새벽에 관측되지만 이때는 초저녁부터 위성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 작은 아마추어 망원경으로도 볼 수 있다.
‘세계 천문의 해’를 맞아 유네스코와 국제천문연맹은 ‘우주, 당신을 기다립니다’라는 테마 아래 세계 135개국에서 다양한 행사를 갖는다.
4월 2~5일 전세계 천문대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공개 관측 행사를 인터넷으로 중계하는 ‘100시간 천문학(www.100hours ofastronomy.org)’ 이벤트가 펼쳐지고 천문학자들의 일상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천문학자 블로그(www.cosmicdiary.org)’도 진행 중이다.
우리 땅에서 우리 힘으로 만든 첫 우주로켓도 발사된다. KSLV-1(소형위성발사체)이 과학기술위성 2호를 싣고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에 건설된 나로우주센터에서 상반기 중 발사될 예정이다.
10월 12~16일 대전에서는 세계 60개국 3천여 명의 우주전문가가 모이는 ‘국제우주대회(IAC)’가 열린다. 우주과학분야 1천여 편의 논문이 발표되고 우주기술전시회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과학축전도 열린다.
◆가까운 천문대를 찾아서(예천천문과학문화센터) :
예천천문과학공원 안에 자리잡고 있으며 예천 별천문대, 천문학사 소공원, 천문관측시설, 우주환경체험장 등 천문 관람 및 체험시설과 주간`야간일반체험, 1박2일가족캠프, 스타스페이스캠프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주간일반체험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야간일반체험은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이뤄진다.
야간일반체험은 8인 이상 예약돼야 진행한다.
1박2일가족캠프는 태양관측, 야간관측, 우주영상실 견학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며 예약을 통해 참가할 수 있다.
스타스페이스캠프는 당일캠프와 1박2일캠프로 나누어진다.
당일캠프는 우주환경체험, 태양관측, 야간관측, 강의 1회, 우주영상실, 4D 영상체험, 1박2일캠프는 우주환경체험, 태양관측, 야간관측, 우주영상실, 4D 영상체험, 강의 2회, 심야관측 등으로 꾸며진다.
월요일 휴관이며 20인 이상 단체는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예천 나일성천문관 :
천문과학문화센터 인근의 사설 천문관으로 나일성 연세대 명예교수가 사재를 털어 수집, 복원한 천문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망원경 등 천문기구뿐 아니라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 별자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옛 천문도, 아라비아의 해시계, 천체관련 고문서, 기타 천문관련 사진 및 자료 등이 이해하기 쉽도록 잘 배치돼 있어 훌륭한 천문교육장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예천에서 영주로 가는 28번국도 확장공사로 인해 현재 문을 닫은 상태다.
◎주요 우주쇼 :
*2월 9일 지구 그림자가 달 가리는 반영월식/
*7월 22일 개기일식 진행…한국서는 부분일식/
*9월 4일 토성의 고리 사라지는 듯 보여/
*10월 중순 아마추어 망원경으로 목성 관측 가능/
*11월 17일 유성우, 최대 1천개 별똥 뿌릴 것
(이경달 記者 每日新聞 2009-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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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 [記事] : SLR클럽 Samsung 포럼 사진게시판/ 회룡포 (경북 예천군 용궁면) / 우진파/ 2009-01-29 17:54:30/
이번 설 연휴 때 다녀온 경북 예천군 용궁면의 회룡포입니다. 저의 고향에서 불과 20분만에 도착하는군요~
이렇게 좋은 곳을 30년 넘게 모르고 살았다니...
무쟈게 바람불고, 춥고, 삼각대도 없이 12-24하나 달랑 들고 산에 올라가서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가뭄으로 인해 바닥을 보이는 강바닥이 스산해 보이기까지 하네요~
(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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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향교(2006년 秋季釋奠大祭) [記事] : 선현들의 위대한 정신을 기리고 경로효친사상의 계승을 위한 2006년 추계석전대제가 2006년 9월 25일 용궁향교와 예천향교에서 열렸다. 이날 먼저 열린 용궁향교(전교 안종건) 추계석전대제에는 용궁, 풍양, 지보, 개포, 문경시 영순 등 5개면 유림 1백여 명이 참석했다. 초헌관인 김수남 군수를 필두로 3헌례, 음복수조, 망요례가 진행됐으며, 2부 행사에서는 용궁향교 장철환, 전병화, 김옥례, 손명자 씨에게 각각 성균관장 표창을 전수했다. 이어 세심루에서 기로연을 통해 투호와 농악을 함께 즐기고 음복과 식사를 하며, 선인들의 발자취를 되새기고 충과 효 사상을 고취하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용궁향교는 경북도 유형문화제 제210호로 지정됐으며, 공자를 비롯한 27위 성현을 모시고 있다. 예천군에서는 지난 2005년 성역화 조경 1차 공사로 향교 진입로 공사를 마쳤으며, 향교앞 광장 조성과 2차공사로 유교문화권사업과 연계해 용궁향교를 정비하고 비룡산 원산산성 복원, 봉수대, 무이서당, 소천서원을 정비해 명승인 회룡포와 함께 관광벨트화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또한 용궁향교에서는 지난 2004년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여성들을 장의로 뽑아 춘추석전대제에 참가시키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다.(백승학 記者 醴泉新聞 2006년 09월 26일 0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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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