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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1840:채헌징僉樞(祝양궁.안춘자等/예천방문266)
작성자장병창 @ 2009.02.13 07:08:08

  예천의 자랑(1840) : 지보면 대죽리 출신 채헌징 첨지중추부사(附 예천군 양궁선수들, 전국대회 우수한 성적...축하합니다/문형철 예천군청 양궁감독, 코카콜라체육대상 우수지도자상 수상...축하합니다/이강진, 경북최고체육상 장한어버이상 수상...축하합니다/장관상(안춘자), 농협중앙회장상(양준석, 김영석) 수상...축하합니다/예천읍 석정리 출신 김정호, 수필집 펴내...축하합니다/예천방문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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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蔡獻徵) : 1648(인조 26)-1726, 지보면 대죽리 한대 출신, 자는 문수(文수), 호는 우헌(愚軒), 본관은 인천, 통덕랑(通德郞) 지수(之洙)의 양자, 충의위(忠義衛) 기종(起宗)의 아들, 시징(時徵)의 동생, 항징(恒徵)의 형, 목재 홍여하(木齋洪汝河)의 제자이다. 부모 슬하(具慶下)에서 유학(幼學)으로서 1675년(숙종 1) 증광 진사시에 3등 80위로 합격, 1679년(숙종 5) 식년 문과에 을과 6위로 급제하였다. 1690년(숙종 16) 4월 26일 지평에 제수되었고, 정언(1692.10.28), 장령(1692.12.1), 필선(1693.1.18), 장령(1693 .2.13, 1693.3.26-1693.4.11)을 지냈다. 1693년(숙종 19) 4월 20일에는 사은사 서장관으로 임명되었으나 늙은 어머니가 있어 사직하니, 개차(改差)되었다. 그 후 영해도호부사(寧海都護府使), 첨정(僉正), 좌필선(左弼善), 첨추를 지냈다. 문장이 뛰어나고 우아하여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문집이 있다(司馬榜目, 文科榜目, 肅宗實錄, 醴泉郡誌 1939, 竺山勝覽 1934, 國朝榜目).


  [承政院日記] : 1676년(숙종 2) 11월 10일 경상도 유생(儒生) 진사(進士) 채헌징 등이 연명으로 5현서원(五賢書院)의 사액(賜額)과 서원 퍠단을 잘못 지적한 이지익(李之翼)의 무고함을 밝혀 달라고 상소를 하였다. 보안도 찰방(保安道察訪, 謝恩 1680.2.5, 下直 1680.2.13)을 거쳐 가주서(假注書, 除授 1680.2.22)로서 입시(入侍, 晝講 1680.2.28)하였다. 그 후 동학 훈도(東學訓導, 謝恩 1680.4.8)를 거쳐 가주서(除授 1680.4.18, 離任 1680.52) 때인 1680년(숙종 6) 4월 29일에 아마(兒馬) 1필을 하사받았다. 창락도 찰방(昌樂道察訪, 除授 1681.1.27, 下直 1681.2.27), 학록(學錄, 除授 1682.2.8, 1686.6.14), 성균관 박사(成均館博士, 謝恩 1686.8.23, 離任 1686.11.11), 훈도(訓導, 離任 1687.10.3)를 거쳐 가주서(除授 1689.윤3.22, 離任 1689.4.9)로서 입시(熙政堂 1689.윤3.23, 1689.4.3, 1689.4.4, 1689.4.5)하였다. 그 후 사복시 주부(司僕寺主簿, 除授 1689.4.9), 병조 좌랑(兵曹佐郞, 除授 1689.5.19)을 지냈고, 1689년(숙종 15) 7월 29일 왕이 비망기(備忘記)로 이르기를, "4차 기우제(祈雨祭) 때의 전사관 겸 대축(典祀官兼大祝)인 채헌징에게 아마(兒馬) 1필을 하사하라"고 하였다. 그 후 춘추관 기사관(春秋館記事官)으로서 입시(熙政堂 1689.11.4, 1689.11.8, 1689.11.18, 1689.11.20, 1689.11.21, 1689.12.13, 養心閤 1689.11.10)하였다. 직강(直講, 除授 1689.12.14), 지평(持平, 除授 1690.4.26, 謝恩 1690.5.11), 병조 정랑(兵曹正郞, 謝恩 1690.5.26, 除授 1692.10.14), 장령(掌令, 謝恩 1692.12.3, 離任 1693.1.6, 除授 1693.2.13)을 거쳐 사은사 서장관(謝恩使書狀官, 謝恩 1693.3.6)에 제수되었으나, 늙으신 어머니(老母) 때문에 사임(辭任 1693.3.13)하였다. 문과 회시(文科會試)의 참시관(參試官, 施行 1693.3.19), 장령(除授 1693.3.28), 고부 군수(古阜郡守, 除授 1693.6.23, 不任), 진주 목사(晋州牧使, 除授 1693.7.4, 下直 1693.8.2), 우통례(右通禮, 除授 1701.8.13), 식년 강경 문과(式年講經文科)에 2소 참시관(二所參試官, 施行 1702.4.17), 인동 부사(仁同府使, 除授 1702.5.24), 승문원 판교(承文院判校, 離任 1707.2.18)을 거쳐 직강(直講)으로서 입시(晝講 1707.6.11)하였고, 1707년(숙종 33) 9월 1일에는 승문원 예습관(隸習官)으로서 그 해 춘하등(春夏等) 포폄(褒貶)에서 중(中)을 수상하였고, 편수관(編修官)으로서 입시(德游堂 1708.1.17, 1708.1.18)하였고, 겸춘추(兼春秋)로서 입시(덕유당 1708.2.28)하였다. 영해 부사(寧海府使, 除授 1708.5.12, 下直 1708.5.20, 離任 1711.10.1)를 지냈다.(承政院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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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숙종실록 22권/ 숙종 16년(1690 경오 / 청 강희(康熙) 29년) 4월 26일(정해) 3번째 기사/ 목창명·윤정화·김일기·이동근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목창명(睦昌明)을 경기 관찰사(京畿觀察使)로, 윤정화(尹鼎和)를 집의(執義)로, 김일기(金一夔)를 헌납(獻納)으로, 이동근(李東根)을 정언(正言)으로, 채헌징(蔡獻徵)을 지평(持平)으로, 권환(權?)을 대사간(大司諫)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4책 22권 21장 A면/ 【영인본】 39책 222면/ 【분류】 *인사-임면(任免)(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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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숙종실록 24권/ 숙종 18년(1692 임신 / 청 강희(康熙) 31년) 10월 28일(계묘) 1번째 기사/ 윤이제·채헌징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윤이제(尹以濟)를 공조 판서(工曹判書)로, 채헌징(蔡獻徵)을 정언(正言)으로, 이동표(李東標)를 이조 좌랑(吏曹佐郞)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6책 24권 24장 B면/ 【영인본】 39책 270면/ 【분류】 *인사-임면(任免)(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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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숙종실록 22권/ 숙종 16년(1690 경오 / 청 강희(康熙) 29년) 4월 26일(정해) 3번째 기사/ 목창명·윤정화·김일기·이동근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목창명(睦昌明)을 경기 관찰사(京畿觀察使)로, 윤정화(尹鼎和)를 집의(執義)로, 김일기(金一夔)를 헌납(獻納)으로, 이동근(李東根)을 정언(正言)으로, 채헌징(蔡獻徵)을 지평(持平)으로, 권환(權?)을 대사간(大司諫)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4책 22권 21장 A면/ 【영인본】 39책 222면/ 【분류】 *인사-임면(任免)(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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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숙종실록 24권/ 숙종 18년(1692 임신 / 청 강희(康熙) 31년) 10월 28일(계묘) 1번째 기사/ 윤이제·채헌징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윤이제(尹以濟)를 공조 판서(工曹判書)로, 채헌징(蔡獻徵)을 정언(正言)으로, 이동표(李東標)를 이조 좌랑(吏曹佐郞)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6책 24권 24장 B면/ 【영인본】 39책 270면/ 【분류】 *인사-임면(任免)(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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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숙종실록 24권/ 숙종 18년(1692 임신 / 청 강희(康熙) 31년) 12월 1일(을해) 2번째 기사/ 조덕순·유이복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조덕순(趙德純)·유이복(柳以復)을 지평(持平)으로, 채헌징(蔡獻徵)을 장령(掌令)으로, 김여건(金汝鍵)을 정언(正言)으로, 유재(柳栽)를 교리(校理)로, 이제민(李濟民)을 집의(執義)로, 성관(成瓘)을 보덕(輔德)으로, 심탱(沈?)을 사서(司書)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6책 24권 27장 A면/ 【영인본】 39책 272면/ 【분류】 *인사-임면(任免)(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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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숙종실록 25권/ 숙종 19년(1693 계유 / 청 강희(康熙) 32년) 1월 18일(임술) 1번째 기사/ 도목 정사에서 정내상·박만정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도목 정사에서 정내상(鄭來祥)을 교리(校理)로, 박만정(朴萬鼎)을 부응교(副應敎)로, 성관(成瓘)을 사간(司諫)으로, 이동표(李東標)를 겸보덕(兼輔德)으로, 유하익(兪夏益)을 공조 판서로, 채헌징(蔡獻徵)을 필선(弼善)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7책 25권 2장 A면/ 【영인본】 39책 27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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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숙종실록 25권/ 숙종 19년(1693 계유 / 청 강희(康熙) 32년) 2월 13일(정해) 1번째 기사/ 이동표·이문흥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이동표(李東標)를 사인(舍人)으로, 이문흥(李文興)을 집의(執義)로, 채헌징(蔡獻徵)·이인 빈(李寅賓)을 장령(掌令)으로, 정사효(鄭思孝)·여성거(呂聖擧)를 지평(持平)으로, 홍중현(洪重鉉)을 사서(司書)로, 목임중(睦林重)을 필선(弼善)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7책 25권 3장 B면/ 【영인본】 39책 27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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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숙종실록 25권/ 숙종 19년(1693 계유 / 청 강희(康熙) 32년) 3월 26일(경오) 1번째 기사/ 목임일·채헌징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목임일(睦林一)을 대사간(大司諫)으로, 채헌징(蔡獻徵)을 장령(掌令)으로, 박창한(朴昌漢)을 헌납(獻納)으로, 이우겸(李宇謙)을 부교리(副校理)로, 목임유(睦林儒)를 승지(承旨)로, 남지훈(南至熏)을 필선(弼善)으로, 이한종(李漢宗)을 사서(司書)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7책 25권 8장 B면/ 【영인본】 39책 277면/ 【분류】 *인사-임면(任免)(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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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숙종실록 25권/ 숙종 19년(1693 계유 / 청 강희(康熙) 32년) 4월 11일(갑신) 1번째 기사/ 사헌부에서 이덕흘이 참형된 일로 지평 정사효를 체차하기를 청하니, 윤허하다/ 사헌부(司憲府)에서 논핵(論劾)하기를, “지난번에 이덕흘(李德屹)을 앞질러 참형(斬刑)에 처한 것은 이미 맑은 법이 못되며, 또한 뒷날의 폐단과도 관계됩니다. 언책(言責)을 맡은 자가 진실로 서둘러서 논쟁(論爭)해야 타당한데, 그 당시 사헌부(司憲府)의 관원이 더러는 몸소 대청(臺廳)에 나아가기도 하였으나, 끝내 한 마디의 말도 없었으며, 더러는 회례(會禮)를 행하지 아니하였다고 핑계대고 역시 논하여 주청하지 않았습니다. 결단코 사건이 이미 지나간 것이라고 하여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청컨대 전(前) 장령(掌令) 채헌징(蔡獻徵)과 전(前) 지평(持平) 홍중현(洪重鉉)은 모두 파직(罷職)하소서. 최상앙(崔尙仰)의 죄는 스스로 삼척의 법[三尺法]7733) 이 있으니, 간관(諫官)이 아무리 이미 고집하고 간쟁(諫爭)했더라도 헌신(憲臣)도 또한 시비를 늘어놓아 논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지평(持平) 정사효(鄭思孝)는 직임에 나아가기를 인피(引避)한 뒤로는 끝내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으니, 너무나 법에 의거하여 일을 논하는 체모가 아닙니다. 청컨대 체차(遞差)하게 하소서.”하니, 모두 윤허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7책 25권 11장 A면/ 【영인본】 39책 279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 [註 7733]삼척의 법[三尺法] : 법률을 이르는 말. 옛날에는 석 자의 대쪽에 법을 기록하였으므로 이르게 된 것임. ☞(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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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숙종실록 25권/ 숙종 19년(1693 계유 / 청 강희(康熙) 32년) 4월 20일(계사) 2번째 기사/ 사헌부에서 사은 정사 영신군 이형·서장관 채헌징의 개차를 청하니, 윤허하지 않다/ 사헌부에서 논핵하기를, “사은 정사(謝恩正使) 영신군(靈愼君) 이형(李瀅)은 사람됨이 거칠고 용렬하여 전대(專對)7738) 하기에는 적합하지 못합니다. 더구나 서장관(書狀官)인 채헌징(蔡獻徵)은 그에게 늙은 어미가 있다고 하여 개차(改差)하였는데, 이형 의 어미는 나이 80세가 넘었는데도 편안하게 길을 떠나려고 행장을 차리면서 사면(辭免)하지 않으니, 듣고서 놀라워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청컨대 개차하소서.”하니, 비답(批答)하기를, “ 이형이 여러 번 전대(專對)하는 일을 겪었지만 일을 그르친 것은 보지 못하였다. 진달하고 주청하지 못한 것은 감히 사사로운 뜻을 말하지 못하였는데 지나지 않는다. 체임하기를 청하는 의논은 지나친 데 관계된다.”하고, 윤허하지 않았다./ 【태백산사고본】 27책 25권 12장 A면/ 【영인본】 39책 279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외교-야(野)/ [註 7738]전대(專對) : 외국에 사신가서 본국에 관한 모든 문제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응대(應對)하는 것. ☞(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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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2년 11월 10일 (무자) 원본257책/탈초본13책 (15/16)  1676년 康熙(淸/聖祖) 15년/ 五賢書院의 사액과 서원의 폐단을 잘못 지적한 李之翼의 誣告를 탄핵하는 慶尙道 儒生인 高世章 등의 연명상소/ ○ 慶尙道儒生, 進士高世章·蔡獻徵·成甲夏, 缺揚祖·李厚封·孫碩佐, 生員金夏鎭·林東遠·金楷·金夏錫·河世元, 幼學李在雅·盧思誠·李在隆·安宇一·李在雄·黃霆·宋殷徵·盧思賢·盧思齊·金壽萬·金命兌·張漢楨·盧思憲·高漢翊·盧思孝·盧瑞胄·金夏成·裵昶·金漢璧·裵興祚·李?·李大蕃·李時久·尹商徵·鄭維年·權斗寅·李德耉·郭希賢·郭壽龍·嚴錫廈·嚴翼廈·李德耆等上疏曰, 伏以臣等, 伏見尙州儒生生員臣李世憲等, 以五賢書院請額事, 陳疏仰?矣。今者禮曹判書臣李之翼回啓, 慢陳書院之弊, 有若煩擾者然, 臣等, 竊惑焉。臣等竊惟, 天下之事, 莫不貴於簡厭於煩, 而亦有煩而不厭者, 興學之事是已。古者家有塾, 州有序, 黨有庠, 學校之設, 若是其盛, 而聖王之所以不憚於煩, 而猶且振作之, ?舞之者, 豈非有以爲風化之本, 而關盛衰之運者哉? 是以宋之關?濂洛之間, 院與缺考亭尸祝之廟缺三十餘所, 不可不謂之煩而莫不賜缺而表章之, 此可以見帝王之於興學, 雖多而不爲煩也。恭惟我朝聖神相承, 學校大興, 儒先之輩, 出於其間者, 或傳或倡, 後學之尊崇而俎豆之者, 愈往愈盛, 此實斯文之幸, 而國家之缺也。是以其在祖宗之世, 苟有多士之來請院號者, 無不允從, 而?賜焉。嗚呼, 上自唐虞三代, 下至我祖宗之世, 崇奬道學, 若是其盛, 而當時之臣, 未嘗以不緊目之, 後世之人, 亦未嘗以煩撓譏之。我殿下, 卽位以來, 請額之士, 踵相接也, 而亦且隨願隨錫, 未嘗持難者, 寔是三代聖王之心也, 寔是我祖宗之心也。一國臣民, 孰不沐浴菁莪, 興起斯文, 而惟其地各有遠近, 事或有遲速, 故其封章請額者, 或先或後, 不能以同時, 則宜乎跡涉煩猥, 而事近紛擾也。然先之者, 未必爲重爲大, 後之者, 不必爲輕爲小, 則何必以後來缺以不緊, 而獨阻於一視之仁恩哉? ?我道南書院, 非他一賢獨享之所也。先正臣文肅公鄭經世, 以爲宋時有張定缺濂溪·兩程之祠於宜春, 夫以三賢缺非其土之人, 而朱子作記以美其事。今五賢者, 共生於一道之內, 則後生欣慕愛敬之誠, 又非遠方聞風之比, 於是, 建一院, 合祀五賢焉。其與宜春故事, 前後竝美, 則是其恩額之頒, 當先於他院, 而今臣等來請之較晩者, 實是臣等之罪也。惟俟逋慢之誅, 不料有他之虞, 今者, 謬引徐必遠缺啓之語, 誤認先朝判付之敎, 肆然防啓, 極其張皇。噫, 當時必遠之論啓者, 果指爲五賢合享之所, 有如吾道南書院者乎? 其所謂不緊書院毁撤等語, 必是僭犯之類, 而先朝之敎, 亦指此等事也。是故, 自先朝以至今日, 凡所請額者, 果有如五賢之祀, 則不問其曾前請額之多寡, 而未聞有不允許者, 列聖崇儒重道之意, 爲如何哉? 而之翼, 未嘗以興學之事, 入告于內, 乃爲杜撰之說, 以掩累朝之善, 其誣殿下而羞多士者, ?亦甚矣。臣等, 亦是嶺南人也, 敬慕之誠, 不敢自後於尙人, 乃敢相率而來叫九重, 伏乞聖明, 洞燭之翼之誣, 俯察多士之願, ?賜恩額, 以彰□□斯文幸甚, 國家幸甚。答曰, 省疏具悉。書院旣設之處, 不爲疊設, 已有受敎, 爾等, 勿復瀆擾, 退修學業。(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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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6년 2월 5일 (을축) 원본275책/탈초본14책 (3/10)  1680년 康熙(淸/聖祖) 19년/ 南天漢 등이 謝恩함/ ○ 謝恩, 戶曹參議南天漢, 兵曹佐郞權珪, 保安察訪蔡獻徵, 學諭金德恒, 司饔奉事李潭。(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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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6년 2월 13일 (계유) 원본275책/탈초본14책 (3/20)  1680년 康熙(淸/聖祖) 19년/ 蔡獻徵이 하직함/ ○ 下直, 保安察訪蔡獻徵。(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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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6년 2월 22일 (임오) 원본275책/탈초본14책 (11/12)  1680년 康熙(淸/聖祖) 19년/ 蔡獻徵에게 관직을 제수함/ ○ 假注書鄭來祥出使, 代蔡獻徵。(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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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6년 4월 8일 (정묘) 원본276책/탈초본14책 (3/18)  1680년 康熙(淸/聖祖) 19년/ 李尙馥 등이 사은함/ ○ 謝恩, 長興奉事吳相玉, 監察安弼星, 東學訓導蔡獻徵, 敎授具仁卿, 護軍李尙馥。(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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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6년 4월 18일 (정축) 원본276책/탈초본14책 (5/23)  1680년 康熙(淸/聖祖) 19년/ 蔡獻徵에게 관직을 제수함/ ○ 李世益服制, 代以蔡獻徵爲假注書。(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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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6년 4월 29일 (무자) 원본276책/탈초본14책 (16/17)  1680년 康熙(淸/聖祖) 19년/ 金壽恒 등에게 頒賞하라는 비망기/ ○ 備忘記, 領議政金壽恒, 左議政鄭知和, 判府事權大運, 各鞍具馬一匹面給, 同義禁李敏敍·吳斗寅·金禹錫, 刑房承旨尹?, 問事郞廳崔錫鼎·權珪竝加資, 判義禁李正英熟馬一匹, 領府使金缺, 大司憲李翊相, 大司諫金萬重, 執義權是經, 問事郞廳沈壽良·任堂, 奉敎南致熏, 注書李世益, 前刑房都事權秀萬, 各半熟馬一匹賜給, 問事郞廳李玄錫敍用, 外刑房假都事李時宰, 準職除授, 別刑房都事李邵, 文書都事李奭, 六品遷轉, 獻納李缺, 問事郞廳洪萬朝, 假注書蔡獻徵, 別刑房都事張世男各兒馬一匹, 掌令安後泰, 正言李彦綱, 待敎李萬元, 別刑房都事李公權, 各上弦弓一張, 問事郞廳金俊相, 兼春秋洪有龜, 別刑房都事兪命一·李舜岳, 假都事李齊後, 各不莊弓[粧弓]一張, 外刑房都事申命餘以下, 各弓子一張賜給, 而承服罪人拿來者, 六品遷轉, 已出者陞敍, 司謁李厚根·庾重安, 各兒馬一匹, 假司謁金後益上弦弓一張, 留門司?朴孝建等, 不張弓[粧弓]一張賜給, 律官吳振邦等以下, 令該曹米布分等磨鍊題給, 承傳色金鉉·申潭·金善弼竝加資, 李陽?熟馬一匹面給, 文碩胤熟馬一匹, 方鏶半熟馬一匹賜給。以上朝報(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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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6년 5월 2일 (경인) 원본276책/탈초본14책 (18/33)  1680년 康熙(淸/聖祖) 19년/ 申?에게 관직을 제수함/ ○ 事變假注書蔡獻徵出使, 代以申?差出。(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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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7년 1월 27일 (신사) 원본281책/탈초본14책 (11/13)  1681년 康熙(淸/聖祖) 20년/ 李元齡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吏批, 以李元齡爲典籍, 洪天敍爲狼川縣監, 南宮?爲工曹正郞, 李世機爲造紙別提, 張萬紀爲監察, 金魯得爲掌樂主簿, 李基泰爲軍器判官, 尹德駿爲典籍, 鄭?爲戶曹佐郞, 李世?爲引儀, 權?爲京畿右道水運判官, 李秀彦爲中學敎授, 宋時燾爲漢城判官, 朴慶獻爲引儀, 宋道成爲南部主簿, 柳瑞爲監察, 曺廷善爲戶曹正郞, 李錫命爲引儀, 李弘淵爲左參贊, 朴信圭爲右參贊, 韓信哲爲歸厚別提, 兪命一爲司饔主簿, 具志禎爲戶曹佐郞, 李濟後爲監察, 權?爲判校, 申世柱爲引儀, 吳壽星爲引儀, 申琓爲兼東學敎授, 兪命稷爲廣興主簿, 沈思沈爲宗廟副奉事, 朴弘圭爲引儀, 禹鼎基爲假引儀, 金繼興爲內贍主簿, 柳廷喬爲內贍主簿, 李深爲引儀, 兪命一爲禁府都事, 尹以健爲司僕主簿, 李德老爲金化縣監, 宋光淹爲掌苑別提, 金盛達爲禁府都事, 朴重徽爲軍資直長, 吳道一爲副校理, 柳譚厚爲副修撰, 李行成爲軍器僉正, 許穎爲司饔奉事, 具志禎爲內贍主簿, 鄭錫后爲禮賓別提, 趙持謙兼西學敎授, 鄭載恒爲司?直長, 金德恒爲獒樹察訪, 李渶爲成歡察訪, 權斗紀爲司成, 李端夏爲大司憲, 朴泰遜爲獻納, 蔡獻徵爲昌樂察訪, 兪命一爲活人別提, 李端夏兼弘文提學, 李玄錫爲銀漢察訪, 朴崇阜爲尙衣直長, 鄭?爲掌令, 李宏爲持平, 林泳爲校理, 鄭淹爲龍安縣監, 尹善得爲松羅察訪, 鄭治爲永春縣監, 姜必遇爲明川府使, 韓翼世爲樂安郡守, 韓根爲龜城府使, 李?爲掌樂直長, 金盛達爲引儀, 尹?爲典獄主簿, 尹源爲司僕判官, 許璜爲掌苑別提, 成虎徵爲司?正, 李澮爲典牲奉事, 李后定爲校理, 尹彙善爲尙瑞直長, 朴泰遜兼南學敎授, 金萬吉爲禁府都事, 金光烈爲禁府都事, 金萬重爲同知成均館事, 柳瑞爲歸厚別提, 兪任重爲司饔奉事, 呂聖齊爲知經筵, 朴振文爲內贍直長, 崔楠爲軍器僉正, 李濟後爲司贍主簿, 李?爲司畜別提, 趙嗣爲祥雲察訪, 李曼著爲工曹正郞, 柳軸爲刑曹佐郞, 李后定爲兵曹正郞, 申曄爲持平, 呂聖齊爲禮曹判書, 張萬紀爲瓦署別提, 李?爲社稷提調, 金爾樞爲活人別提。(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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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7년 2월 27일 (신해) 원본281책/탈초본14책 (3/16)  1681년 康熙(淸/聖祖) 20년/ 李昌翼 등이 하직함/ ○ 下直, 公淸都事李日翼, 昌樂察訪蔡獻徵, 沙斤察訪申命伯, 麒麟察訪吳道疑, 包伊萬戶張齊賢。(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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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2월 8일 (병술) 원본288책/탈초본15책 (7/17)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李華鎭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李?鎭[李華鎭]爲鏡城判官, 李彦綱爲副校理, 李恢爲尙州牧使, 安如岳爲兵曹正郞, 鄭濟先爲典籍, 許?爲承文著作, 宋光洵爲司評, 李?爲知敦寧, 鄭展昌爲敦寧奉事, 安健之爲成均博士, 蔡獻徵爲學錄, 金時郁爲典籍。(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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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2년 6월 14일 (병인) 원본316책/탈초본16책 (7/17)  1686년 康熙(淸/聖祖) 25년/ 柳以升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吏批啓曰, 諫院闕員, 今當差出, 而擬望之人乏少, 承旨及外任, 竝擬, 何如? 傳曰, 允。以柳以升爲羅州牧使, 三和府使單尹就商, 沈枰爲瑞山郡守, 沈梓爲禮曹參判, 閔鎭周爲吏曹佐郞, 柳星年爲良才察訪, 鄭壽俊爲直講, 黃玧爲工曹參議, 柳敬益爲軍資奉事, 尹挺卿爲繕工假監役, 李厚樹爲引儀, 白光璘爲活人別提, 金鎭龜爲全羅監司, 金洪福單付奉敎, 蔡獻徵單付學正, 兼執義吳道一, 柳鳳徵單付學正, 李敏英爲金泉察訪, 朴泰萬爲修撰, 金昌協爲掌樂正, 李國芳爲獻納, 宋昌爲大司諫。(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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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2년 8월 20일 (임신) 원본317책/탈초본16책 (19/20)  1686년 康熙(淸/聖祖) 25년/ 蔡獻徵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吏批, 以蔡獻徵單付成均博士, 李行道爲學諭, 權恒爲全羅都事, 申翼相爲大司憲, 申琓爲漢城右尹, 任奎爲黃海監司, 李弘迪爲司僕正, 洪受?爲漢城判官, 嚴緝爲執義, 柳鳳徵單付成均博士。(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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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2년 8월 23일 (을해) 원본317책/탈초본16책 (3/9)  1686년 康熙(淸/聖祖) 25년/ 蔡獻徵이 사은함/ ○ 謝恩, 成均博士蔡獻徵。(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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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5년 윤3월 22일 (기미) 원본334책/탈초본17책 (7/14)  1689년 康熙(淸/聖祖) 28년/ 蔡獻徵에게 관직을 제수함/ ○ 以蔡獻徵爲假注書。(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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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5년 윤3월 23일 (경신) 원본334책/탈초본17책 (4/20)  1689년 康熙(淸/聖祖) 28년/ 蔡獻徵을 軍職에 붙일 것을 청하는 睦昌明의 계/ ○ 睦昌明啓曰, 假注書蔡獻徵, 時無職名, 依例付軍職冠帶常仕, 何如? 傳曰, 允。(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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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5년 4월 9일 (을해) 원본335책/탈초본17책 (19/32)  1689년 康熙(淸/聖祖) 28년/ 閔?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吏批, 判書沈梓進, 參判兪夏益進, 參議姜?受由在外, 右副承旨李蓍晩進。以閔?爲兵曹判書, 金邦杰爲司諫, 李萬元爲獻納, 趙湜爲正言, 韓宗運爲工曹佐郞, 尹爾錫爲漢城判官, 李岱爲中部主簿, 李?爲狼川縣監, 成任爲江春都事, 柳命堅爲都承旨, 李玄逸爲掌令, 閔安道爲淮陽府使, 李宜昌爲江陵府使, 尹河爲伊川府使, 嚴纘爲韓山郡守, 蔡獻徵爲司僕主簿, 閔宗道爲禮曹判書, 李浚爲兵曹正郞, 兪命弘爲咸鏡都事, 閔?爲軍器提調·訓鍊都監提調·御營提調, 睦昌明爲大司憲, 慶雲會爲眞寶縣監, 金文夏爲禮曹佐郞, 張?爲奉常正, 李後榮爲成均學諭。(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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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5년 7월 29일 (계해) 원본336책/탈초본17책 (6/16)  1689년 康熙(淸/聖祖) 28년/ 4차 祈雨祭의 獻官 李? 등에게 施賞하라는 비망기/ ○ 以備忘記, 傳于朴鎭圭曰, 四次祈雨祭獻官臨城君?, 右參贊柳命天, 各熟馬一匹, 獻官都承旨李聃命, 左承旨金海一, 右承旨朴鎭圭, 各半熟馬一匹, 典祀官兼大祝直講韓沅, 佐郞蔡獻徵, 學正洪受禹, 典籍柳世賓·李萬根, 各兒馬一匹, 監察及諸執事以下, 各上弦弓一張賜給。(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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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5년 12월 14일 (병자) 원본338책/탈초본17책 (8/14)  1689년 康熙(淸/聖祖) 28년/ 沈?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吏批, 判書李觀徵病, 參判權愈進, 參議沈檀進, 都承旨柳命賢進。以沈?爲舍人, 方震說爲陽德縣監, 李衡祥爲錦山郡守, 方世建爲江東縣監, 蔡獻徵·李文興爲直講, 朴思一爲校書博士, 金園皓爲著作。(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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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6년 4월 26일 (정해) 원본341책/탈초본18책 (22/28)  1690년 康熙(淸/聖祖) 29년/ 睦昌明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以睦昌明爲京畿監司, 李?爲平昌郡守, 崔錫鼎爲延安府使, 沈挺彙爲平山縣監, 權?爲戶曹參議, 黃爾明爲戶曹佐郞, 成瓘爲兵曹正郞, 權彭老爲禁府都事, 柳星樞爲永興府使, 趙德純爲監察, 李希亮爲興德縣監, 林漢英爲扶安縣監, 吳命羲爲禮曹佐郞, 李一台爲直講, 李國芳爲司藝, 柳星年爲典籍, 權愈爲禮曹參判, 趙橒爲禮曹佐郞, 尹以濟爲典牲提調, 尹鼎和爲執義, 金一夔爲獻納, 李東根爲正言, 蔡獻徵爲持平, 南益熏爲刑曹參判, 權?爲大司諫, 長興縣監申命任, 仍陞府使。(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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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6년 4월 28일 (기축) 원본341책/탈초본18책 (6/9)  1690년 康熙(淸/聖祖) 29년/ 蔡獻徵에게 속히 올라오라고 下諭하기를 청하는 閔宗道의 계/ ○ 大司憲閔宗道所啓, 新除授持平蔡獻徵, 時在慶尙道咸昌地, 請斯速乘馹上來事, 下諭。上曰, 依啓。前啓, 當該承旨·注書, 從重推考事, 停啓。(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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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6년 5월 11일 (신축) 원본341책/탈초본18책 (4/11)  1690년 康熙(淸/聖祖) 29년/ 蔡獻徵이 사은함/ ○ 謝恩, 持平蔡獻徵。(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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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6년 5월 18일 (무신) 원본341책/탈초본18책 (11/15)  1690년 康熙(淸/聖祖) 29년/ 蔡獻徵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兵批, 蔡獻徵·成瓘·姜琛爲副司直。以上諫院日記(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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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6년 5월 26일 (병진) 원본341책/탈초본18책 (3/8)  1690년 康熙(淸/聖祖) 29년/ 蔡獻徵 등이 사은함/ ○ 謝恩, 司諫金□□, 兵曹正郞蔡獻徵, 典籍魚史徽, 校書博士李海準 部將李千齡。(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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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8년 10월 14일 (기축) 원본350책/탈초본18책 (10/11)  1692년 康熙(淸/聖祖) 31년/ 韓宗運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吏批, 以韓宗運爲殷栗縣監, 兪夏益爲大司憲, 蔡獻徵爲兵曹正郞, 崔奎瑞爲淸州牧使, 李泰龜爲承旨, 李東標爲校理。已上朝報(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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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8년 10월 28일 (계묘) 원본350책/탈초본18책 (9/11)  1692년 康熙(淸/聖祖) 31년/ 蔡獻徵에게 속히 올라오라고 下諭할 것을 청하는 司諫院의 계/ ○ 院啓, 新除授正言蔡獻徵, 時在慶尙道咸昌地, 請斯速乘馹上來事, 下諭。答曰, 依啓。(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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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8년 12월 3일 (정축) 원본350책/탈초본18책 (2/10)  1692년 康熙(淸/聖祖) 31년/ 蔡獻徵 등이 사은함/ ○ 謝恩, 掌令蔡獻徵, 陽川縣令李?晩, 玉果縣監南宅夏, 監察姜世輔, 廣興主簿李弘毅, 參禮察訪鄭維卨。(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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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9년 1월 5일 (기유) 원본351책/탈초본18책 (9/18)  1693년 康熙(淸/聖祖) 32년/ 蔡獻徵 등이 입시하여 洪時疇의 削版문제로 遞職을 청함/ ○ 掌令蔡獻徵, 持平趙德純所啓, 臣等, 性本愚迷, 觸事生疎, 惟思隨事盡言, 以補消埃矣。向者以平安兵使洪時疇削版事, 有所論列, 而物議, 以擬律失當爲非, 故引避之後, 旋以拿問定罪, 仍爲論列, 蓋時疇之子以夏, 作爲諺謠, 上自三公, 下至庶官, 皆入譏刺, 轉成西關之妓唱, 其用意之無狀, 當初諫院之啓, 已爲陳達, 而原其罪狀, 則作而傳之者夏也, 敎而習之者時疇也, 旣爲自當之後, 時疇, 何獨置而不問哉? 敢以拿問連啓, 此也, 適此庭立之班, 仰承聖敎, 以擬律過重爲敎, 臣等何敢晏然仍冒? 請命遞斥臣等之職。上曰, 勿辭, 退待物論。(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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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9년 2월 13일 (정해) 원본351책/탈초본18책 (18/23)  1693년 康熙(淸/聖祖) 32년/ 趙錫周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以趙錫周爲成均館直講, 李東標爲議政府舍人, 李喜茂爲禮曹正郞, 李文興爲司憲府執義, 呂聖擧爲兵曹正郞, 成瓘爲司僕寺正, 蔡獻徵爲司憲府掌令, 鄭思孝爲司憲府持平, 李錫三爲禮曹佐郞, 呂聖擧爲司憲府持平, 金南獻爲司憲府監察, 韓順謙爲成均館博士, 兪得一爲金堤郡守, 李寅賓爲司憲府掌令, 琴景見爲軍器寺主簿, 洪重鉉爲世子侍講院司書, 李基夏爲濟州牧使, 申璨爲兼輸城察訪, 睦林重爲世子侍講院弼善, 朴銑爲礪山郡守, 愼爾益爲兵曹佐郞, 金昌錫爲均館典籍。(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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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9년 2월 15일 (기축) 원본351책/탈초본18책 (4/11)  1693년 康熙(淸/聖祖) 32년/ 呂聖擧와 相避관계에 있으므로 遞職을 청하는 蔡獻徵의 계/ ○ 掌令蔡獻徵啓曰, 新除授持平呂聖擧, 卽臣之異姓四寸弟也。在法應避, 臣何敢仍冒乎? 請命遞斥臣職。答曰, 勿辭, 退待物論。(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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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9년 2월 15일 (기축) 원본351책/탈초본18책 (8/11)  1693년 康熙(淸/聖祖) 32년/ 蔡獻徵의 出仕를 청하는 司憲府의 계/ ○ 府啓, 引嫌而退。相避之法, 在下當遞, 居右之人, 不須爲嫌, 請掌令蔡獻徵出仕。答曰, 依啓。(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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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9년 3월 6일 (경술) 원본351책/탈초본18책 (17/24)  1693년 康熙(淸/聖祖) 32년/ 謝恩使 등의 명단/ ○ 吏曹口傳政事, 謝恩使靈愼君瀅, 副使申厚命, 書狀官蔡獻徵。(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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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9년 3월 18일 (임술) 원본351책/탈초본18책 (8/16)  1693년 康熙(淸/聖祖) 32년/ 내일의 文科會試 試官의 명단/ ○ 明日文科會試試官三, 吳始復·李瑞雨·姜?。參試官四, 洪重夏·丁思愼·丁時潤·蔡獻徵。(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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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9년 3월 28일 (임신) 원본351책/탈초본18책 (5/7)  1693년 康熙(淸/聖祖) 32년/ 蔡獻徵이 사은함/ ○ 謝恩, 掌令蔡獻徵。(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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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9년 4월 9일 (임오) 원본352책/탈초본18책 (4/13)  1693년 康熙(淸/聖祖) 32년/ 李壽徵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兵批, 以李壽徵爲同知, 朴?·南崙爲兼司僕將, 金世雄爲蛇梁萬戶, 趙志碩爲仇寧萬戶, 李楷爲武兼, 姜銑·蔡獻徵·梁益命·李時聖·朴?爲副護軍, 洪重鉉·洪重夏爲副司直, 李?爲副司果, 及第卞?鄕, 今加折衝, 登科前準職。(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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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9년 6월 23일 (을미) 원본352책/탈초본18책 (10/10)  1693년 康熙(淸/聖祖) 32년/ 許?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以許?爲成均館司藝, 趙遠明爲永川郡守, 魏東?爲巨濟縣令, 朴?爲吏曹正郞, 李宜振爲歸厚別提, 李順坤爲順川郡守, 金重泰爲司憲府監察, 韓厚明爲敦寧府都正, 李奎徵爲忠勳府都事, 南宮鈺爲右通禮, 南致熏爲鍾城府使, 吳斗龍爲軍資監直長, 李文興爲司?寺正, 沈廷耉爲通禮院引儀, 李相勛爲兵曹正郞, 睦林?爲三登縣令, 崔重泰爲咸鏡都事, 朴尙一爲高山縣監, 金文夏爲吏曹佐郞, 朴錫昌爲寶城郡守, 鄭漢柱爲藝文館待敎, 李壽仁爲承政院注書, 權世泰爲淸道縣監, 李汲爲宗廟署直長, 李浚爲侍講院弼善, 洪萬紀爲司憲府掌令, 許?爲典牲署主簿, 崔泰基爲禮賓寺奉事, 崔斗炡爲甲山府使, 閔昌道爲成均館大司成, 朴?爲議政府舍人, 沈仲良爲黃海監司, 愼爾益爲德川察訪, 李時振爲司憲府監察, 洪重夏爲司諫院獻納, 李庭萬爲司饔院奉事, 尹以道爲洪州牧使, 丁思愼爲弘文館副修撰, 鄭行萬爲掌院署別提, 洪重鉉爲永柔縣令, 尹以?爲尙瑞院直長, 姜世龜爲禮曹參議, 鄭翊周爲任實縣監, 李明鎭爲麻田郡守, 閔興道爲吏曹正郞, 朴思良爲海美縣監, 吳羽進爲銀溪察訪, 李元齡爲侍講院輔德, 吳始績爲戶曹正郞, 蔡仁龜爲西部參奉, 尹有孫爲尙瑞副直長, 柳?爲司?寺主簿, 黃徵爲咸鏡北道兵使, 羅晩成爲司憲府持平, 趙相愚爲瑞山郡守, 李海準爲興陽縣監, 姜相周爲兵曹佐郞, 李相勛爲侍講院司書, 李學標爲長興庫主簿, 南五熏爲禁府都事, 李震華爲廣興副奉事, 崔?爲穩城府使, 李奎成爲嘉山郡守, 洪重夏爲兼校書校理, 李國華爲軍資監正, 李?爲京畿左道水運判官, 金兌一爲成均館司成, 朴身之爲成均館直講, 蔡獻徵爲古阜郡守, 睦天龜爲繕工監監役, 金昌錫爲戶曹佐郞, 黃應老爲掌樂院僉正, 洪重泰爲戶曹佐郞。(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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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9년 7월 4일 (병오) 원본353책/탈초본18책 (11/14)  1693년 康熙(淸/聖祖) 32년/ 洪重鼎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吏批, 以洪重鼎爲持平, 朴萬鼎爲校理, 金聲久爲洪州牧使, 姜相周爲永川郡守, 黃道光爲麻田郡守, 蔡獻徵爲晉州牧使, 洪重夏爲校理, 柳?爲戶曹參議, 李明恒爲禁府都事, 李衡祥, 楊州仍任事, 承傳, 以丁時潤爲獻納, 都處亨爲古阜郡守, 趙渭?爲羅州牧使, 淮陽府使尹以道, 南原縣監沈極, 新溪縣令李明鎭, 淸道縣監趙遠明, 仍任事, 承傳。(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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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9년 8월 2일 (계유) 원본353책/탈초본18책 (2/8)  1693년 康熙(淸/聖祖) 32년/ 蔡獻徵 등이 하직함/ ○ 下直, 晉州牧使蔡獻徵, 固城縣令崔琥, 高山縣監朴尙一, 訓戎僉使張時瑞, 美錢僉使朴慶應。(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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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27년 8월 13일 (무진) 원본399책/탈초본21책 (23/37)  1701년 康熙(淸/聖祖) 40년/ 權守經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吏批, 以權守經爲儀賓都事, 許琡爲司圃別提, 蔡獻徵爲右通禮, 宋光涑爲庶尹, 閔處重爲軍資主簿, 洪大猷爲沃溝縣監, 鄭東虎爲典籍, 李光朝爲司評, 朴泰成爲司畜別提。以上朝報(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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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28년 4월 16일 (정묘) 원본403책/탈초본21책 (18/24)  1702년 康熙(淸/聖祖) 41년/ 式年講經 文科一所 등의 試官 명단/ ○ 明日式年講經文科一所試官三, 柳之發·趙泰東·呂必容, 參試官四, 權世恒·成儁·李相成·洪羽進。二所試官三, 李光迪·朴權·漁史徽[魚史徽], 參試官四, 蔡獻徵·朴彙登·申弼賢·鄭東虎。武科覆試一所試官三[二], 李宇恒·李惠疇, 參試官三, 成虎臣·柳文燧·尹弼周。二所試官三[四], 沈枰·尹就商·鄭弘佐·尹淑, 參試官三, 權聖大·張鵬翼·李厚根, 監試官, 文一所, 趙相愚·兪命弘, 二所, 崔重泰·尹弘?。(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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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28년 5월 24일 (을사) 원본404책/탈초본21책 (8/8)  1702년 康熙(淸/聖祖) 41년/ 沈文圖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引儀沈文圖, 龍宮縣監吳遂一, 江原監司李喜茂, 司藝權聖大, 忠勳都事具志禎, 仁同府使蔡獻徵, 司書朴弼明, 平安都事成璹, 禮曹參議朴權, 大司憲宋奎濂, 司譯提調洪受?, 刑曹參判金錫衍。(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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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34년 5월 12일 (정해) 원본442책/탈초본23책 (6/57)  1708년 康熙(淸/聖祖) 47년/ 洪禹瑞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以洪禹瑞爲正言, 洪萬迪爲文學, 金東弼爲司書, 金致龍爲兵曹參知, 權始經爲兵曹正郞, 蔡獻徵爲寧海府使, 金克謙爲河陽縣監, 鄭瑞河爲懷仁縣監, 權?爲司錄。(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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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34년 5월 20일 (을미) 원본442책/탈초본23책 (2/22)  1708년 康熙(淸/聖祖) 47년/ 蔡獻徵 등이 하직함/ ○ 下直, 寧海府使蔡獻徵, 臨溜僉使鄭道三。(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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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45년 4월 21일 (계해) 원본515책/탈초본27책 (21/33)  1719년 康熙(淸/聖祖) 58년/ 兵曹에서 朴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兵曹, 五衛將朴澄·蔡獻徵·李寅錫, 僉知中樞府事李箕明·李弼夏, 都摠官礪原君柱, 同知李世晟, 宣傳官李壽民, 慶尙右兵使李漢珪, 全羅右水使趙脩, 白翎僉使鄭齊奎, 翊衛韓杓, 仁遮外萬戶具文泌, 部將趙昌運, 花梁僉使李震茂, 副司果李明彦·崔守範·李德壽, 副司正柳弼垣·李著, 司勇鄭覺先, 副護軍洪致中, 副司直金鎭商。以上朝報(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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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헌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46년 2월 8일 (을사) 원본521책/탈초본28책 (18/22)  1720년 康熙(淸/聖祖) 59년/ 安世煜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兵批, 以安世煜爲三陟營將, 朴再新爲淸州營將, 李遂良爲大丘營將, 閔思淵爲洪州營將, 吳重周爲副摠管, 洪致中·尹遇進·密平君?, 爲副摠管, 閔昌基爲經歷, 趙國彬·安厚萬·金澱·李義白爲經歷, 安厚萬·申德夏·金潗·李淇, 爲都事, 權尙夏爲判中樞府事, 成玉行·韓信哲·趙道輔·洪治允·金尙鉉爲同知, 鄭?·尹聖輔·金世老·蔡獻徵, 爲僉知, 高一明爲中樞都事, 沈?·柳胤興爲內禁將, 安相漢爲羽林將, 李有壽·趙泰果·李堂·崔必蕃·李眞卿, 爲五衛將, 李遇新爲訓鍊正, 洪德望·閔弘洙爲訓鍊副正, 李珌·張碩權爲訓鍊僉正, 李炯·鄭舜命·李世晃·尹商逸爲訓鍊判官, 柳以咸·金義鼎·張?·李是?爲訓鍊主簿, 朴璉爲乶下僉使, 任最爲城津僉使, 李?爲天水僉使, 朴泰圭爲登山僉使, 朴明梓爲委曲僉使, 禹聲律爲植松萬戶, 魏挺章爲助羅浦萬戶, 卞廷華爲羅老島萬戶, 金義碩爲濟物萬戶, 金贊興爲楊下萬戶, 李世大爲助泥浦萬戶, 權?爲西平浦萬戶, 金重殼爲?足萬戶, 張泰興爲越松萬戶, 朴有憲爲靑水萬戶, 姜顯碩爲龍津萬戶, 張虞翼爲丑山萬戶, 鄭泰順爲開雲萬戶, 李廷賢爲長木浦別將, 金千成爲笠巖山城別將, 强哉矯爲威鳳山城別將, 金斗弘爲禿用山城別將, 申光夏爲忠淸水使, 洪元益爲全羅左水使, 魚必遠爲慶尙左兵虞候, 鄭泰久爲慶尙右兵虞候, 金啓陽爲訓鍊參軍, 金麗英爲權知訓鍊參軍, 韓興健爲訓鍊奉事, 宋儒行爲權知訓鍊奉事, 金時泰爲宣傳官, 李順坤爲副護軍, 金萬堡爲副司果, 金時永·沈?·閔思淵·安相漢爲副護軍, 宋寅明爲司正, 趙?·金洙·朴泰迪爲副護軍, 洪禹傳爲副司直, 朴慶汝爲副護軍, 中和官門站擺撥將朴枝元, 慶尙古石站擺撥將朴枝成。(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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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 양궁선수들, 전국대회 우수한 성적...축하합니다.


  예천군 양궁(''''全國室內洋弓大會 醴泉郡 選手들 優秀한 成績 거뒤'''' ) [記事] :


  예천군 양궁 선수들이 2009년 2월 3일부터 6일까지 충북 괴산군 문화체육센터에서 열린 제23회 전국실내양궁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이번 대회에서 동부초등 6년 권현정(부: 권창길, 모: 임귀순) 양이 여자초등부 개인종합 1위를 차지했다.


  단체전에서는 예천여중(여중부) 3위, 예천초등(남자초등부) 3위, 동부초등(여자초등부) 3위를 차지했다. 또 예천군청 한인숙 선수는 여자일반부 3위에 입상했다.


  (醴泉新聞 2009년 02월 12일 13: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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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형철 예천군청 양궁감독, 코카콜라체육대상 우수지도자상 수상...축하합니다.


  문형철(문형철 洋弓監督 第14回 코카콜라體育大賞 優秀指導者賞 受賞) [記事] :


  예천군청 양궁단 문형철 감독이 제14회 코카콜라 체육대상 우수지도자상 대상자로 선정되어 2009년 2월 17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수상하게 되었다.


  한국코카콜라가 스포츠조선과 함께 한국 스포츠 발전 및 아마추어 스포츠 육성을 위해 시상하는 코카콜라 체육대상 우수지도자상에 뽑힌 문형철 감독은 예천군청 양궁감독으로 많은 국가대표 선수를 배출한 우수 조련사로 정평이 나 있는 세계적인 양궁감독이다.


  특히 지난 2008 베이징 올림픽시 국가대표 양궁감독을 맡아 여자양궁을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 동메달을 획득하는 수훈을 세운 우수지도자로 인정을 받아 금번 제14회 코카콜라 체육대상 우수지도자로 선정이 되었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최우수선수상, 우수선수상, 신인상 등 8개 부문에 걸쳐 총 11명이 수상한다.


  (황성한 記者 醴泉인터넷放送 2009-02-12 오전 10: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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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진, 경북최고체육상 장한어버이상 수상...축하합니다. 


  이강진 : 예천여고 양궁팀 이다빈의 아버지 이강진 씨가 제44회 경북최고체육상 장한어버이상을 받는다.


  경북도체육회는 2009년 2월 23일로 예정된 대의원총회에서 시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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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관상(안춘자), 농협중앙회장상(양준석, 김영석) 수상...축하합니다.


  예천농업협동조합(''''醴泉農協 第38期 定期總會 開催'''' : 信賴받는 農協 다짐, 장찬무(邑), 권재학(邑) 非常任監事 選出돼) [記事] :


  예천농협(조합장 박시옥) 제38기 정기총회가 2009년 2월 6일 오전 본점 2층 회의실에서 정종복 농협중앙회 예천군지부장, 대의원, 수상자, 지점장, 임원 등 1백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박시옥 조합장은 인사말에서 “예천농협 발전을 위해 임직원이 하나 되어 각종 사업을 추진한 결과 지난해 20억 원의 이익을 올려 조합원들에게 많은 배당을 하게 되었다”고 소개했다.


  정종복 농협군지부장은 농협중앙회장 치사 대독을 통해 “농협을 농업인에게 돌려 드린다는 개혁목표 아래 `농협다운 농협, 신뢰받는 농협'''' 구현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기총회는 2008년도 결산보고 및 잉여금처분(안) 등 부의안은 원안대로 통과되었으며 이어서, 임기 만료로 실시된 비상임감사의 선거에서는 기호 1번 장찬무(54·예천읍), 기호 3번 권재학(60·예천읍) 후보가 선출됐다.


  이날 수상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농림수산식품부장관상: 안춘자(본점 여성복지역·예천읍 대심리), ■중앙회장상 : △양준석(팀장) △김영석(과장대리),


  ■조합장상 △영농회장: 백종운(예천읍) 임환철(용문면) 전규찬(상리면) 채정희(하리면) 전종수(감천면) 김두윤(보문면) 임윤한(호명면) 홍선창(유천면) 양범석(개포면), △부녀회장: 박복남(예천읍) 김미준(용문면) 박연숙(상리면) 이순자(하리면) 김현주(감천면) 전우늠(보문면) 남경자(호명면) 손금숙(유천면) 양계분(개포면), △작목반장: 권혁삼(예천읍) 손진욱(용문면) 조만수(상리면) 박성훈(하리면) 이영락(감천면) 윤영수(보문면) 김기주(호명면) 정의동(유천면) 최창열(개포면), △농가주부모임: 우성자(예천읍) 이선자(용문면) 이경조(상리면) 김경순(하리면) 김미경(감천면) 송진원(보문면) 조희자(호명면) 이해순(유천면) 이인순(개포면),


  ■군지부장상 △직원: 심옥주(본점) 김성식(본점) 전상욱(본점) 이선희(용문) 김주남(상리) 김지태(하리) 조동진(감천) 김종구(보문) 김재일(호명) 박형식(유천) 고재식(개포),


  ■조합장상 △직원: 주상욱(본점) 김영범(본점) 김재동(본점) 정우진(본점) 오상호(본점) 김영순(용문) 권청남(하리) 반종하(감천) 김영호(보문) 김동화(호명) 정경미(유천) 송희정(개포)


  (醴泉新聞 2009년 02월 12일 15: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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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읍 석정리 출신 김정호, 수필집 펴내...축하합니다.


  김정호(''''김정호 氏 첫 隨筆集 펴내'''') [記事] :


  아침에 눈을 뜨면 사랑했던 사람이 보고 싶다.//


  비록 미웠거나 곱지 않은 추억이 있었을 지라도 옆에 없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서늘함을 느끼는 그런 사람이, 아니 이제 온 세상 슬픔이란 슬픔을 죄다 모아 눈물로 왈칵 쏟아 놓아도 좋을, 그 사람이 보고 싶다.(중략)


  내 마음에도 황량한 겨울바람이 인다. 그리운 그 사람이 훈풍을 몰아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스스로가 겨울바람에서 헤어날 수도 있으련만 아득하기만 하다.//


  털북숭이 허벅지 살 허옇게 드러내놓고 모래알 묻은 여름캠프 속 풋사랑 이야기를 해줄 때나, 집에 사람 북적여 까르르 깔깔 웃음 이는 분위기를 유난히도 좋아하던 그 사람이 오늘따라 사무치게 그립다. 말수는 적었으나 눈이 맑던 사람(‘알 수 없는 이유’ 중에서)//


  예천읍 석정리 태생의 김정호(52·대구) 씨가 최근 문학예술출판부에서 첫 수필집 「아름다운 사람들」을 냈다.


  김씨는 계간 「문학예술」 수필부문과 시부문으로 등단했다. 이번 수필집은 매일신문, 대구일보 등 여러 신문과 문학잡지에 발표된 것들을 한 데 모아 엮은 책이다.


  이일기 문학예술 발행인은 김씨의 수필은 세상과 자연과 사물을 바라보는 맑은 눈의 조명과 깊은 관조, 신앙에 대한 두터운 신심의 발현과 현실을 통한 승화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김정호(사회복지사) 씨는 예천초등, 예천여중고, 영남외국어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문인협회 회원·한국수필가협회 회원·대구문인협회 회원·한국문학예술가협회 대구경북지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백86쪽. 값 7천 원.


  (醴泉新聞 2009년 02월 12일 14: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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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366


  회룡포(醴泉 回龍浦) [記事] :


  예천이 주는 첫 인상은 단아하다. 안동을 지나 예천 땅에 들어서면 고즈늑한 전원풍경이 시야를 메운다. 소백산맥 기슭에 위치한 까닭에 마을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하고 있는 산들도 하나같이 모나지 않다.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산들은 높지 않지만 반듯하다. 꼿꼿한 선비의 기상이 묻어난다. 물 맑고 인정 많은 충효의 고장이라는 명성이 그냥 붙은 게 아닌 듯 했다.


  예천은 널리 알려진 관광지는 아니지만 볼거리가 곳곳에 널려 있다. 속내를 감추고 있는 다소곳한 새색시를 연상시킨다. 대표 명승지는 바로 용궁면 대은리의 회룡포(回龍浦).


  회룡포는 비상하는 용처럼 물이 마을을 휘감으며 돌아나간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낙동강 지류 내성천이 남쪽으로 흘러가다 길을 막아선 비룡산을 만나자 350도 돌아나가며 거대한 육지 속 섬을 만들었다.


  물길 끝에 뭍이 데롱데롱 메달려 있는 형국이어서 금방 똑 떨어질 것 같다. 회룡포의 진면목을 보려면 곧장 회룡포마을로 가지말고 장안사가 있는 비룡산 회룡대에 올라야 한다.


  대구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서안동IC에서 빠져 예천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회룡포를 알리는 이정표가 곳곳에 나타난다. 내성천을 가로지는 다리를 지나 장안사`회룡대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 길을 잡으면 이내 장안사 턱밑 주차장에 닿는다.


  경사가 심한 비탈길에 ‘비룡산 장안사’라는 현판이 걸린 범종각이 하늘에 걸린 듯 서 있다. 장안사는 하천을 낀 절벽지형에 자리잡고 있다. 사찰 터가 넓지 않아 한눈에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아담하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로 759년(신라 경덕왕 8년) 의상대사의 제자인 운명조사가 창건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국태민안을 염원하기 위해 금강산과 경남 양산, 국토 중간인 비룡산에 하나씩 모두 3개의 장안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최근까지 여러 차례 중수해 옛 모습은 남아있지 않지만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한적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범종각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가면 이내 중창불사의 흔적인 대불이 눈에 들어오고 회룡대로 오르는 나무계단이 나타난다.


  바람을 벗삼고 왼편 솔숲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감추는 회룡포를 바라보며 100m만 오르면 회룡대다. 회룡대에 올라서면 거대한 모래사장이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있는 회룡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회룡포의 원래 이름은 ‘의성포’였다. 외지 사람들이 의성에 있는 마을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아 ‘회룡포’라 부르게 됐다. 회룡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완벽한 물돌이동(물이 돌아나가는 마을)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길로 30여km 떨어진 안동 하회마을의 물돌이와는 격이 다르다. 부용대에서 내려다보는 하회마을의 물돌이가 반달 모양이라면 유유히 흐르던 내성천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커다란 원을 그리며 상류로 거슬러 오르는 회룡포는 보름달에 가깝다.


  회룡포는 절경만큼 풍수학적으로 명당이라 한다. 낙동강과 금천을 만나 삼강(三江)을 이루는 내성천과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들이 태극 모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


  회룡대에는 회룡포 사계를 담은 사진과 함께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가 장안사에 머물며 지었다는 시 한 수가 붙어 있다.


  산에 이르니 번뇌가 쉬어지는구나/하물며 고승 지도림을 만났음이랴/긴 칼차고 멀리 나갈 때는 외로운 나그네 마음이더니/한잔 차로 서로 웃으니 고인의 마음일세/맑게 갠 절 북쪽으로 시내의 구름이 흩어지고/달이지는 성 서쪽 대나무숲에는 안개가 깊구려/병으로 세월을 보내니 부질없이 졸음만 오고/옛동산 소나무와 국화는 꿈속에서 잦아드네/


  이규보가 보았던 장안사와 회룡포 풍경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회룡대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빼어나지만 KBS드라마 ‘가을동화’의 배경이 되면서 유명해진 회룡포마을을 직접 둘러보는 것도 특별한 재미다.


  회룡포마을은 대대로 경주 김씨 집안 사람들만 살고 있는 집성촌이다. 회룡포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구멍이 숭숭 뚫린 강판을 잇대어 만든 일명 ‘뽕뽕다리’를 건너야 한다.


  뽕뽕다리 위에 솔가지를 얹고 내성천 고운 모래를 덮어놓았다. 해질 무렵 유난히 빛나는 모래알과 바닥을 훤히 드러낸 옥빛 강줄기가 빚어내는 조화는 아름답고 황홀하다.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의 장소 같다. 회룡포는 관광지가 아니어서 음식을 먹을 만한 곳이 없다. 회룡포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에 칼국수와 도토리묵 등을 판매하는 간이음식점이 하나 있다.


   [#다양한 볼거리 "왜 몰랐을까?"]


  ◆세금 내는 나무들 : 용궁면 금남리 금원마을 수령 500년의 팽나무, 천연기념물 제400호 황목근(黃木根)은 우리나라 나무 중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세금도 낸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1939년 마을 사람들이 쌀을 모아 마련한 공동재산인 토지를 팽나무 앞으로 등기이전하면서 황목근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마을 사람들이 5월에 누른 꽃을 피운다 하여 황씨 성, 근본 있는 나무라는 의미에서 목근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는 것.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인 황목근은 현재 1만2천232㎡(3천700여평)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


  감천면 천향리에도 세금내는 나무가 있다. 바로 천연기념물 제294호인 석송령(石松靈)이다. 소나무의 한 품종인 반송으로 수령은 600년으로 추정된다.


  부귀`장수`상록을 상징하는 우산 모양의 이 나무는 600여년 전 홍수로 떠내려 오는 어린 소나무를 주민이 건져 심었다고 한다. 1930년경 자식을 두지 못했던 ‘이수목’이라는 사람이 영험있는 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이라 명명하고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상속, 등기해 주었다고 한다.


  ◆삼강주막 : 낙동강과 금천, 내성천이 합류하는 삼강나루에 자리잡고 있는 경북도 민속자료 제134호다. 예로부터 삼강나루는 서울로 통하는 길목으로 물류 이동이 활발했다.


  보부상, 길손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장날이면 나룻배가 30여 차례 다닐 만큼 분주했다. 삼강주막은 나들이객들의 허기를 면해주고 쉴 곳을 제공해주는 휴식처였지만 나루의 기능이 상실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경북도는 낙동강 1천300리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조선시대 주막인 삼강주막과 1934년 대홍수로 소실된 보부상`사공숙소를 복원하여 관광객을 받고 있다.


  옛 보부상이 그러했듯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으례히 전과 묵을 안주삼아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킨다. 삼강주막 옆에는 화려했던 세월을 기억하는 아름드리 회화나무가 변함없이 서 있다. 


  ◆선몽대 : 예천 호명면 백송리 내성천변에 있는 선몽대는 퇴계 이황의 종손이며 문하생인 우암 이열도가 신선이 내려와 노는 꿈을 꾸고 1563년 지은 정자로 조선 중기 퇴계 이황과 학맥이 닿은 사람들의 흔적이 담긴 중요한 곳이다.


  당대의 석학인 이황을 비롯해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청음 김상헌, 한운 이덕형, 학봉 김성일 등의 친필시가 목판에 새겨 전해오고 있다. 퇴계 선생이 ‘선몽대’란 세 글자를 쓰고 시를 보내주자 이 시를 차운하여 이열도 정탁 류성룡 김상헌 이덕형 김성일 등이 시를 남겼다고 한다.


  선몽대숲은 넓지는 않지만 수령 300년이 넘어 보이는 잘 생긴 노송을 중심으로 단풍`은행`버드나무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내성천 변에 서면 눈앞에 평사십리(平沙十里)의 길고 넓은 모래밭이 펼쳐진다.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선몽대는 계절에 따라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봄이면 부드러운 신록의 아름다움, 여름이면 울창한 수목이 만들어 낸 시원한 나무 그늘을 제공하고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흰 눈이 찾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특히 여름에는 가까운 곳에 위치한 봉서농원에 연꽃이 만발하여 아름다움은 배가 된다.


  (이경달 記者 每日新聞 200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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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진호국제양궁장("洋弓의 메카에서 轉地訓鍊, 恍惚해요!"` ) [記事] :


  인도 양궁 선수들이 예천읍 청복리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5박 6일(2007.2.6∼11일) 동안 동계 전지 훈련을 했다.


  이들은 전 시드니올림픽 한국대표팀 감독 출신인 이왕우 감독이 지도하는 인도 미탈 챔피언스 양궁팀 선수들이다.


  이번 동계 전지 훈련에는 남자선수 4명, 여자선수 4명, 매니저, 코치 등 총 10명이 예천을 찾았다.


  이들 선수들은 최강팀으로 군림하는 예천군청팀 선수들과 교류전을 갖고 수준 높은 예천 양궁의 기량을 배웠으며, 합동 훈련으로 서로 우의를 다지기도 했다.


  이왕우 감독은 지난 84년부터 87년까지 예천군청 양궁팀을 지도한 인연이 있으며, 예천군 관내 체육인들과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감독은 “선수들에게 세계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예천진호국제양궁장을 직접 보여주고 양궁의 메카인 이곳에서의 훈련으로 실력을 다지는 것은 물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 어려운 발걸음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인도 미탈 챔피언스는 포브스지가 집계한 전세계 부자 4위에 오른 ‘철강재벌’ 락시미 미탈이 지원하고 있는 팀이다.


 (백승학 記者 醴泉新聞 2009년 02월 12일 15:3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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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옥산 맥반석광산(양주시쌀硏究會 親環境分科 現場敎育 : 現場 컨설팅으로 親環境農業 方向轉換 契機 마련) [記事] :


  양주시 농업기술센터(소장 이진규)는 2009년 2월 11일 쌀 연구회 친환경분과 회원과 친환경 품질 인증농가 30명을 대상으로 자옥산 맥반석 광산(경북 예천군)으로 현장컨설팅을 실시했다.


  이번 교육은 소비자 요구에 맞는 농산물 생산방법을 개선하고, 타 시군의 친환경 농업의 식물영양제 활용사례 및 시설견학을 통해 양주시의 쌀, 시설채소분야 친환경농법 사례발표를 비교 검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추진하였다.


  한편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현장 컨설팅으로 회원 간의 친환경 농자재 활용사례, 친환경 선진농업기술 등 다양한 정보교류로 친환경농업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 양주시청(聯合뉴스 2009.02.1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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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궁향교 명륜당 [記事] : 한국문집총간(124_431b) 목재집(木齋集, 1761)에 실린 목재 홍여하(洪汝河)의 기사로, 그 내용은, "木齋先生文集卷之六/ 記/龍宮明倫堂記/ 竺城大縣。其實郡也。其文物之懿。宜有?於他縣。然自經喪亂。建文廟而俎豆之。齋廚夾室。具如儀式。而明倫堂。未遑作焉。廟之南夾室之北。空其地者六十年。蓋有待也。建李侯某之至。慨然興歎。捐俸而相之。然後乃克始役。擇儒士安君瑞徵監董。閱幾朔而堂成。屬余爲記。余方隨慈氏於縣境。願爲之民。義有不得而辭者。竊惟先聖王。設爲庠序學校而敎之。皆所以明人倫也。東國自殷太師遯而東來。?倫攸敍。厥惟舊矣。鼎峙?麗。否盲以晦。?我盛朝。列聖相繼。??於右文崇學。立人紀明大倫。爲敷治之本焉。嚴尊卑之分。敦節義之敎。而君臣之倫明矣。通喪行於?隷。而父子之倫明。從一究於庶女而男女之倫明。以至旣翕而兄弟之倫明。有信而朋友之倫明。倫紀旣明而禮敎興行。俗化之美。比隆二南。則實由於學校風動之政。而我列聖漸摩振作之化。豈無所本而然哉。方斯時也。州縣莫不有學。有學莫不有斯堂。而斯邑也無之。今日之?務。宜莫先於此。而賢侯之功。董事之勤。不可不識。?後有攷焉。雖然。以余觀於今世叔風?。列聖之澤寢微。禮俗陵夷。倫紀寢以?晦。則其所以倡明之者。顧不在於多士耶。噫。一國之士。疇不?於敎育者。幸而有偏被朝家之恩奬。則其所以感發振勵者。宜益倍於他邑之士也。歲丙申。余直禁林。見有縫掖五六輩。捧尺疏逡巡。立肅章門內。問知爲竺縣儒也。請出公家之隷。以供?舍炊?。疏?入。適有上變事者。六軍纂嚴。宮門晝閉。儒士輩竄伏駭汗。計疏本失之矣。俄而。先降溫批。特允其請。勉以勤學之意。然後變報隨而下。於是群臣咸歎大聖人度量出尋常萬萬也。夫縣學炊?。何等微屑。彼上變之事。惡知不遂至於??難措也。而當呼吸變故之際。顧乃先此而後彼。則聖考崇學之篤。禮遇鄕儒之意。可謂至矣。竺城之士。雖謂之偏被恩奬可也。其所以感激奮勵。倡明君臣之大義。毋負我聖考振作之化者。其不在於竺城之士歟。其不在於竺城之士歟。癸卯夏。記。"이다.(www.minchu.or.kr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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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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