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예천의 자랑(1853) : 예천의 정씨 의원들.장학요원들(附 예천방문 379)
---
의원들
정상진(정상진 道議員 議政 活動) [記事] : 지난 2002년 6.13지방선거를 통해 경북도의회에 입성한 정 의원은 자신이 농민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의회 상임위 구성 당시부터 농수산위원회를 지망 어려운 농촌을 대변하고 있는 젊은 기수로 그의 지난 2년 간의 의정 활동을 속기록에서 요약 선거구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자 한다. 정 의원은 농민 출신답게 첫 의회 개회부터 재경지 정리를 할 때 농막이 없는 들판에 농막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하고, 필요한 대지는 농로 옆 영수로 위에 뚜껑을 덮고 원두막 같은 것을 지으면 된다고 조목조목 설명하자 담당 공무원들이 적극 검토하여 시행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는 2002년 7월 중국산 마늘 수입 자유화로 전국이 떠들썩할 당시 마을 농가와 농민 단체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한 도의회 차원의 한중마늘협상 백지화를 위한 도의회 차원의 대정부 건의문 채택에 앞장서 관철시키기도 했다. 그해 11월에는 원예, 채소 등에 대한 면세유 양이 부족해 재배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면세유의 현실화를 위한 정책 대안을 요구하고, 호명금싸라기 참외의 성충으로 인한 작목반들의 피해 대책을 묻고 완벽한 병충해 방제를 촉구하는 등 지역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실천적 질문과 요구로 담당 공무원들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정 의원은 계속되는 학교 폐교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질의를 계속하여 곧 폐교되는 학교의 시설 보수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쓰고 있는데 예산 상정 과정에서부터 철저히 검토 연구하여 불요불급한 예산 외에는 폐교될 학교에 예산을 투입하지 말 것을 요구 관철시켰다. 또 농촌 인구의 격감으로 버스 등 대중 교통 이용객들이 크게 줄어들면서 여객 대합실의 공중화장실이 엉망인데 공중 보건 차원에서 보수를 할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해 줄 것을 요구 최근까지 해마다 50개 정도의 공중화장실 개선사업의 추진을 가능케 했다. 그는 또 엘리트 체육인 양성을 위해 경북도체육회 차원의 특단의 조치를 요구하고 예천군이 경북도에 협조하지 않아 각종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같은 소문이 사실이라면 전국체전에 예천군 선수들이 평균 7~8명이 출전하고 있으며 국제 규모의 예천진호국제양궁장 건설 당시 모든 군민들이 엄청 고생하는 등 예천군민들은 경북도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도립인 경도대학을 살리기 위한 성의있는 대안을 촉구하기도 했다. 특히 새마을, 바르게살기, 적십자, 농협주부, 생활개선회, 부녀의용소방대, 라이온스 여성클럽, 다도회, 어머니회, 풍물패 등 봉사 단체라고 자칭하는 단체가 너무 많고 여기에 지원되는 임의 및 정액 보조금 등 지원이 너무 많다고 지적하고 난립된 이들 단체들을 구조 조정해야 예산이 절약된다고 강조하였다. 또 1개 군에서 면민체전, 군민체전, 새마을지도자체육대회, 농업경영인체육대회, 소방대체육대회, 농촌지도자체육대회 등 각종 대회가 많이 개최돼 이러다가는 체육대회 하다 나라 망한다고 꼬집고 행정력을 동원해서라도 대회의 축소 및 흡수 통합을 요구하는 등 초선 의원이라고 보기엔 당찬 아이템으로 괄목할만한 의정 활동을 펼치고 있어 차기 선거에서는 상대자가 없을 것이라는 여론이 팽배한 가운데 일치월장하고 있는 정 의원은 예천농고, 3대 예천군의회 의원, 예천농협 감사, 오천교회 장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정차모 인터넷뉴스 2004-10-26 오후 10:10:57)
정상진(動靜) [記事] : 정상진 경북도의원(예천)은 2005년 5월 4일 상주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열린 고품질 감 재배기술 심포지움에 참석, 지역 농업 발전을 위한 다양한 의정활동을 전개할 것을 다짐하는 축사를 하였다.(慶北每日新聞 2005-05-05)
---
정승한(鄭承漢) : 1923- , 예천 출신,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統一主體國民會議代議員)이다. 주소는 영주시 단산면 옥대리(榮州市丹山面玉帶里)이다.(慶北年鑑 1975)
---
정영광(丁永光) : 1953- , 지보면 소화리 514번지 출신, 70년 안동농림고등학교 졸업, 97년 상주산업대 축산과 졸업, 94년 지보신협 이사장, 96년 예천군체육회 이사, 97년 지보파출소 방범자문위원, 지보중고 운영위원회 위원장, 97년 이웃과 생명 나눔의 공동체 회장, 98년 제3대 예천군의회 의원(지보면), 2002년 제4대 동 의원, 동 1기 부의장, 2008년 의장(현), 민주평통 자문위원(현)이다.(每日名鑑 1999, 인터넷 每日名鑑 2001, www.yecheon.kyongbuk.kr 2002)
→예천의 자랑(1171) : 명당서실ㆍ금당연묵회ㆍ예천사진동우회, 서예ㆍ사진 세계대회 등에 입상(附 박연규, 회계사 합격/정영광, 자유총연맹총재패 수상) 축하(作成 張炳昌 2006-09-21 照會 1167)
---
정용대(鄭鏞大) : 1937- , 개포면 경진리 188-1번지 출신, 예천농고(醴泉農高) 졸업, 65년 철도청 근무, 95년 예천군의회 의원이다. 녹조근정훈장(綠條勤政勳章)을 받았다.(每日名鑑 1996 1997)
---
정진동(鄭鎭東) : 1910-1999, 풍양면 우망리 출신, 자는 춘경(春卿), 호는 금당(錦堂), 본관은 동래, 석산(石山) 승모(升謨)의 아들, 전 재경부장관 이규성(李揆成)의 장인이다. 용궁초등 입학, 풍양초등 졸업, 35년 경성제국대(京城帝國大) 법학부 졸업, 아주양행(亞洲洋行) 사장, 일본고등문관(日本高等文官) 행정과 합격, 39년 영양 군수(英陽郡守), 영주 군수(榮州郡守)를 역임하면서 일제 하에 군민들에게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었고, 43년 충북도 광공과장(忠北道鑛工課長)을 지내다가 해방(1945) 후 경북도 국장(慶北道局長), 관재청 관리국장(管理局長), 50년 국회내무위원회(國會內務委員會) 전문위원(專門委員), 51년 변호사(辯護士) 개업하여 저 유명한 한국전쟁 중 야당 국회의원 서민호사건(徐珉濠事件)을 변호해서 승소(勝訴)했으며, 55년 북삼화학공업회사 사장, 61년 제9대 교통부 차관(交通部次官)으로서 경북선 개통에 힘썼고, 공화당으로 정계에 입문, 63년 6대 국회의원(醴泉, 1963.11.26 選擧), 67년 7대 국회의원(예천, 1967.6.8 選擧)을 지내면서 경북선철도(慶北線鐵道) 개통, 풍지교(豊知橋) 등 교량 5개 가설, 10억 원의 공사인 전천후사업(全天候事業)과 양수장(揚水場)을 만들어 농업 근대화에 이바지하였다. 한편 중앙에서는 국회교통체신분과(國會交通遞信分科) 위원장으로 국내 교통 문제와 체신 행정 전반에 걸친 업무를 체계있게 다루어 어느 시대보다 급진적 발전을 할 수 있도록 많은 기여를 하기도 했다. 의정 생활을 하는 동안 새마을운동(1970)이 전개되기 전에 농촌의 발전을 위해 나름대로 연구를 하여, "향규(鄕規)에 관한 법안(法案)"을 만들어 제출하였으나 그 때의 현실은 산업 발전에만 전념했던 관계로 무산이 되었다. 공화당 경북제2지구 위원장도 지냈다. 83년 동래정씨 대종회장(大宗會長)이다. 지보면 매창리 풍지교(豊知橋) 옆 낙동강변에 공적비가 있다.(第7代 國會議員選擧鬪爭史 266-267쪽, 慶北年鑑 1975 1980, 嶺友俱樂部 99號 1982, 每日年鑑 1985 1986, 每日名鑑 1996 1997, 光復40年史, 韓國人의 姓譜, 京鄕新聞 1999.10.8, 每日新聞 1999.10.8, 醴泉郡誌 2005)
정진동(前 國會議員 鄭鎭東 氏 別世) [記事] : 6, 7대 국회의원과 국회 교통체신위원장을 역임한 정진동(89) 씨가 1999년 10월 7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유족으로는 효영 씨 등 3남 1녀. 발인 9일 5시 30분 서울대병원. 장지 경북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 선영.(朝鮮日報 1999-10-08)
정진동(鄭鎭東 前 議員 別世) [記事] : 국회 교통체신위원장을 지낸 정진동(鄭鎭東) 전 의원이 1999년 10월 7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정 전 의원은 교통부 사무차관을 거쳐 공화당으로 정계에 입문, 경북 예천에서 당선돼 6, 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3남 2녀를 두고 있으며 이규성(李揆成) 전 재경부장관이 사위다. 빈소는 서울대학병원. 발인은 9일 오전 5시 30분. 京鄕新聞 1999-10-08)
정진동 공덕 기념비 : →정진동 송덕비
정진동 송덕비(鄭鎭東頌德碑), 정진동 공덕 기념비(鄭鎭東功德記念碑), 예천매창리 송덕비(醴泉梅倉里頌德碑), 비 [碑] : 지보면 매창리 풍지교(豊知橋) 변 내골로 가는 길 옆에 있는 비로, 국회의원 정진동(國會議員鄭鎭東)이 재임시 풍지교(豊知橋) 가설에 진력하였던 공을 기려 1975년에 정진동기념사업회(鄭鎭東記念事業會)에서 세웠다.
---
장학요원들
정기영(鄭琪永) : 1930- , 풍양면 우망리 341번지 출신, 계성중(啓聖中) 졸업, 국립대구농과대 부설 문교부 임시중등교원양성소 수료, 문경 동로중(東魯中), 예천 풍양중(豊壤中), 지보중고(知保中高) 교장이다. 경북교육감 표창을 받았다.(慶北年鑑 1977 1978 1979 1980, 每日年鑑 1985 1986)
---
정동진(丁東鎭): 이조 말, 풍양면 청운1리 성당(聖堂) 출신, 전라도 측량학교(全羅道測量學校) 교장을 지냈다.
---
정세일(鄭世一) : 1920- , 풍양면 출신, 40년 대구사범학교(大邱師範學校) 심상과(尋常科) 졸업, 일본으로 건너가서 43년 9월 동경물리학교 응용화학과(東京物理學校應用化學科) 졸업, 상주외동중(尙州外東中) 교장, 55년 문경서중(聞慶西中) 교장이다.(慶北大觀 1958)
---
정세진(鄭世鎭) : 1919- , 예천읍 고평리 출신, 국민학교교원 2종시험 합격, 예천, 상주, 예천 화동(花東)초등 교장이다. 녹조소성훈장(綠條素星勳章), 대통령 포상(褒賞, 1960), 문교부장관 표창(1972), 교육장 표창(1971 1972 1973)을 받았다.(慶北年鑑 1977 1979 1980)
---
정연탁(鄭然卓) : 1928- , 지보면 도장리 출신, 본관은 연일, 이화(利和)의 장자, 예천농업실습학교(醴泉農業實習學校) 졸업, 초등교원 3종시험에 합격, 풍양동부국민학교(豊壤東部國民學校) 훈도(訓導)로 부임이래 지보(知保), 예천서부(醴泉西部), 풍천(豊川), 감천(甘泉), 예천동부초등 교사, 월탄(月灘)초등 교감, 신풍(新豊), 학성(鶴城), 월탄(月灘), 어신(漁新), 우망(憂忘)초등 교장이다. 대통령면려포장(大統領勉勵褒章, 1960)을 받았다.(每日年鑑 1985 1986, 知保面誌 1987)
---
정영훈(丁永勳) : 1940- , 지보면 매창리 출신, 안동사범, 80년 서울대부설 한국방송통신대 초등교육과 졸업, 58년 우망국 교사, 59년 지보국 교사, 69년 예천국 교사, 73년 대구 내당, 대명, 동덕국 교사, 82년 문의, 광천국 교감, 87년 청송, 영주, 예천교육청 장학사, 96년 개포국 교장, 96년 예천초등 교장, 97년 예천 개포초등 교장, 99년 예천초등 교장, 2000년 정년퇴임이다. 교육부장관 표창을 받았다.(每日名鑑 1996 1997 1999 2001, 醴泉新聞 1999.9.9)
---
정재각(鄭載覺) : 1932- , 예천 출신, 본관은 청주, 약포 탁(藥圃琢)의 후손, 60년 단국대 법학과 졸업, 경북대 사대 중등교원양성소 영어과 수료, 60년 예천 대창중고(大昌中高), 풍양중 교사, 72년 예천중, 예천여중, 용궁중 교사, 85년 포항 기복중 교감, 86년 예천중 교감, 88년 상주 은척중 교감, 90년 상주중 교감, 94년 봉화 지산중 교장, 95년 예천 지보중고 교장이었다. 문교부장관 표창을 받았다.(每日名鑑 1996 1997 1999)
---
정준수(鄭俊壽) : 1926- , 풍양면 청곡리 출신, 양정중(養正中) 졸업, 울진 광전(蔚珍廣田), 예천 상월(上月), 신풍(新豊)초등 교장이다.(每日年鑑 1985 1986)
---
정진기(鄭鎭箕) : 1909-1988, 풍양면 우망리 출신, 자는 주오(疇五), 호는 은파(銀波), 본관은 동래, 서울 중동중학교(中東中學校) 졸업, 고향의 영신의숙(永信義塾)에서 후진을 양성해서 향토의 신문화를 크게 일으켰다.(醴泉郡誌 2005)
---
정진기(鄭鎭畿) : 1911- , 풍양면 우망리 출신, 본관은 동래, 서울제2고보(高普), 동경물리학교(東京物理學校) 고등사범과(高等師範科) 졸업, 평양숭실중(平壤崇實中), 김천중(金泉中) 교사, 계성중 교사 도중 해방(1945) 을 맞고, 그 후 경주여중 교장, 경북도 학무과 장학관(慶北道學務課奬學官), 대구중교장을 거쳐 53년에 경북여고 교장, 김천중고 교장이다. 홍조소성훈장(紅條소성勳章, 1960), 국민훈장 동백장(國民勳章冬柏章, 1976)을 받았다.(慶北大觀 1958, 慶北年鑑 1979)
정진기(鄭鎭畿) : 1911- , 출신지는 경상북도 예천군(본적), 현주소는 경상북도 대구시 남산동 738, 가족관계는 자녀 4남 2녀, 학력은 東京物理學校 高等師範部 수학과 졸업, 경력 및 활동은 1936년~1947년 평양 숭실중 敎諭, 금천중 敎諭, 계성중 敎諭, 1948년 경주여자중학교 교장, 1949년 경상북도 장학관, 1951년 대구중학교 교장, 1953년 경북여고 교장 역임이다.(대한민국건국십년지 1098, www.history.go.kr 2006)
---
정희융(鄭希隆) : 1942- , 유천면 광전리 너밭 출신, 본관은 동래, 유천초등(21회), 예천중(6회), 예천농고(10회), 63년 서울문리사대 사회과 졸업, 서울대 교육행정지도자과정 수료, 1966년 교단에 올라 영양 청기초등, 예천화남초등 교사, 72년 풍양중, 유천중, 울릉종고, 문경여중, 문경고 교사, 91년 봉화 춘양상고 교감, 93년 예천교육청 장학사, 영주교육청 장학사, 99년 상주 모서초ㆍ모서중 통합 교장, 2000년 예천교육청 학무과장, 2002년 동 교육장이다. 교육부장관상(2회)을 받았다.(每日新聞 2002.3.1, 醴泉郡民新聞 2002.3.4, 醴泉新聞 2000.9.7 2002.3.7, 每日名鑑 2003)
정희융(鄭希隆) : 1942- , 유천면 광전리 너밭 출신으로, 54년 유천초등(21회), 57년 예천중(6회), 61년 예천농고(10회), 63년 서울문리사대 사회과 졸업, 99년 서울사대부설교육행정연수원 교육지도자과정(77기) 수료이다. 63년 육군, 66년 영양 청기초, 예천 화남초, 72년 풍양중, 유천중, 문경여중, 울릉종고, 문경고 교사, 91년 봉화 춘양상고 교감, 93년 예천교육청, 영주교육청 장학사, 99년 상주 모서초중 교장, 2000년 예천교육청 학무과장, 2002년 동 교육장으로 2005년 2월에 정년퇴임하였다. 예천군체육회 부회장, 동 이사, 예천군지 편찬위원, 예천군경찰행정 발전위원, 예천군발전위원회 위원, 예천군문화원 이사, 양양회 회장, 예천농고총동창회 고문, 경북교원단체연합회 행정분과위원, 예천향교 용궁향교 초헌관, 대구지법상주지원 조정위원, 예천문화원 충효교실 문화학교 한문반 강사, 석송라이온스 명예회원, 예천로타리 회원, 예천군지역정보화 추진위원, 전국한문교육 추진위원이다. 수상으로는 경북교육감, 경북교육회장, 성균관장, 교육부장관, 정심상,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敎學一路, 停年退任 팜프렛)
정희융(40年 漢學 傳播 힘쓴 `訓長님'''', ''''漢學으로 人性敎育 必要’ 强調 敎本 直接 製作해 敎育) [記事] : 학가산 위에 떠오르는 밝은 햇살(鶴駕朝旭)/ 남산 위에 피어오르는 뭉개 구름(蠶頭歸雲)/ 한천의 물고기 잡는 밤 불빛과 아낙네들의 빨래 방망이 소리(漢水漁火)/ 유정들의 목동의 피리 소리(柳汀牧笛)/ 송포 들판의 김매는 농부의 노래소리(松浦耘歌)/ 서악사에서 은은하게 들리는 저녁 종소리(西菴暮鐘)/ 현산의 저녁 붉게 물든 하늘(峴山落照)/ 송대의 비갠 날 밝은 달(松臺霽月).// 향유(鄕儒)의 덕목을 실천하는 정희융(鄭希隆.62) 예천 교육장이 예천(醴泉) 팔경(八景)을 설명한 시다. "한자는 우리 문화의 뿌리이며 한글 어휘는 75% 이상이 한자로 구성돼 한자를 모르면 한글을 이해하는 데도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정 교육장은 "20.30세대들이 교육 정책의 잘못으로 한자를 못 배워 한맹(漢盲)이 되면서 인성을 중시하는 풍조가 사라져 경로효친 사상의 기초가 무너지고 있다"며 한학을 통한 인성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어려서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한학(漢學)을 익혔다는 정 교육장은 1963년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40여 년 간 교육자의 길을 걸으며 한학 전파에 정진한 현대판 훈장 선생이다. "학생들에게 한자를 가르쳐 고문 양서를 터특하게 하는 것은 삶의 근본을 가르치는 것이며 인내심과 어른 공경심, 삶의 지혜를 일깨우는 길"이라고 말했다. 현재 정 교육장은 명심보감과 한시 등으로 생활 한자 교본을 직접 제작해 학생들과 교사, 직원, 여성대학, 노인대학, 문화원 등지에서 교육하고 있다. 특히 예천 한시 모임인 양양문우회(襄陽文友會) 회원들과 매월 한 차례씩 예천교육청 회의실에서 한시대회를 개최하는 등 한자 교육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이고 있다. 정 교육장은, "앞으로 주민들이 지역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외지 방문객들에게 소상히 소개할 수 있도록 향토사서 연구와 교육에도 앞장서겠다"고 말했다.(마경대 記者 每日新聞 2004.5.28)
정희융(鄭希隆 醴泉敎育長, 참敎育 實踐 ''''話題'''') [記事] : 예천교육청 정희융 교육장(62)은 충과 효의 전통을 이어가는 정신 문화의 바탕 위에서 정보화 시대를 주도해 갈 창조적 인간 육성을 지향하는 교육 행정을 펴 교사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다. 지난 2002년 3월 예천교육장으로 부임해 농촌 교육 진흥에 전력, 경상북도교육청으로부터 교실 수업개선 시범 교육청으로 지정 받아 교원들의 자질과 지도력을 제고하고 학생들의 자율적 학습 능력을 배양하며, 2004년에는 교수 학습 도움센터를 보완·정비·활용함으로써 관내는 물론 인근 지역의 교원들까지 유용하게 활용하는 등 교육력을 극대화를 했다. 특히 기초과학 교육에 충실코자 예천 발명공작실을 운영하고 수월성 교육의 일환으로 수학과 영재교실을 운영했으며, 폐교된 학교 시설을 활용해 학생 및 주민들의 다양한 체험활동 공간인 예천예술문화체험장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또 청소년들의 특기를 신장하고 아름다운 꿈과 심성을 기르고자 예천청소년관현악단을 조직 운영하고 있다. 향토 예천 출신으로 40여 년 교직 생활의 대부분을 고향의 후진들을 양성하는데 몸 바쳐온 정 교육장은 남 다른 애향심으로 사랑·인내·봉사의 교육 철학을 실천해 온 교육자이다. 행정가로서는 지역의 교직원, 학생, 학부모의 신망을 한 몸에 지니고 있으며 정 교육장 문화를 거쳐간 수 많은 제자들은 경향 각지에서 국가의 동량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편, 정 교육장은 서울물리사대 사회과를 졸업, 교육 이론 뿐 아니라 신구학문을 두루 섭렵, 예천 문화원을 비롯한 각 기관 단체의 초청 강의를 통해 전통 문화 계승과 평생 교육에 이바지하고 있다. 가족 관계 부인 오정숙 여사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고 있으며 취미는 등산.(정안진 記者 慶北每日新聞 2004-10-28)
---
정희융(鄭希隆 敎育長 動靜) [記事] : 정희융 교육장은 2005년 2월 2일 관내 사회복지시설인 예천연꼿마을과 용궁면 사랑마을을 방문하여 수용자들에게 위로금을 전달하고 즐거운 명절을 맞이할 것을 당부했다.(윤현숙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5-02-02 오후 5:53:29)
---
정희융(鄭希隆 敎育長 41年 敎職生活 끝) [記事] : 광전(廣田) 정희융 예천교육장 정년퇴임식이 2005년 2월 24일 오전 10시 30분 각계 각층의 내빈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예천교육청 3층 회의실에서 거행됐다. 지난 1966년 10월 6일 영양군 청기초등학교에서 교사를 시작한 정 교육장은 풍양, 유천, 문경여중, 울릉종합고, 문경고(교사), 봉화춘양상고(교감), 예천, 영주교육청(장학사), 상주모서초등 겸 모서중학교(교장), 서울대사대부설교육행정연수원 교육지도자 과정 수료(77기), 예천교육청 학무과장~교육장을 역임하는 등 화려한 경력을 소유하고 있다. 임수영 관리과장의 약력 소개에 이어 서강홍 학무과장은 정 교육장을 가리켜 "예천교육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분으로 언제 어디서나 사람만나기를 좋아하고 자연과 인간을 사랑하는 노소가 하나되는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인 큰 인물이라고 소개하고 정년이란 현실 앞에 오랜 교육자 생활을 마감하는 정 교육장의 앞날에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임학빈 교장(풍양중,고)은, "40여 년 동안 오직 교육 발전을 헌신적으로 봉사한 분이 바로 정 교육장이라고 평가하고 한학과 신학을 겸비한 박식하고 우람찬 체격에 심신이 건강한 소유자로 소나무의 푸르른 진가는 겨울이 지나야 나타나듯이 수 많은 제자, 후배들은 정 교육장의 빛나는 업적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육장은 퇴임사에서, "가난한 농부의 맏아들로 태어나 농사꾼을 만들려는 아버지의 명을 거역하고 천직인 스승의 길로 들어 큰 족적도 남기지 못한 채 떠나게 되어 아쉽지만 한편으론 시원하기도 하다"고 말하고, "인생은 편도열차로 일단 떠나게 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교훈을 거울삼아 후회없는 인생을 실현 하길 바란다"고 참석자들에게 당부했다. 특히, "남은 인생이 적어지기는 하지만 남은 인생을 활기차게 꾸려나가 심신의 쇠약이 더디게 오도록 하여 군민과 학부모, 학생을 위하는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봉사할 각오가 돼 있다"며, "40여 년 동안 업무 수행상 본의 아닌 실수나 어려움을 드렸다면 용서를, 그리고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날 것을 다짐하고 몸은 비록 떠나지만 마음은 항상 교직생활의 즐거움과 어려움을 함께한 여러분 곁을 떠나지 못할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이 날 퇴임식에서 교원연합회(행운의 열쇠), 유천초등학교 총 동창회(공로패), 예천중학교 동창회(감사패), 예천농고(공로패), 예천문화원(감사패), 한국남동발전(감사패), 신국환 국회의원(감사패) 등으로부터 각종 상패와 선물이 전달됐다. 영광스런 정 교육장의 퇴임식을 축하하기 위한 청소년 관현악단의 연주(오~솔레미오)와 초등학교 4학년인 손자 정문규 군의 연주(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와 외손녀 강다영 양의 마이웨이 연주가 이어져 참석자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서강홍 학무과장이 서시를 열창하는 것을 끝으로 이 날 퇴임식은 막을 내렸다. 한편 이 날 퇴임식에는 초청장을 발송하지 않았으나 교육계 및 사회 각 분야의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여 퇴임식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서성이는 등 많은 사람들로 붐벼 평소 정 교육장의 인품을 가늠케 했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5-02-24 오후 2:55:22)
정희융(鄭希隆 醴泉敎育長 停年退任 인터뷰) [記事] : 2005년 2월 24일 정년퇴임식을 갖고 정든 교육계를 떠나는 정희융(유천면 출생) 예천교육장.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뜻(농사꾼)에 따라 예천농고를 졸업했으나 자신의 꿈을 접을 수 없었다. 주위 도움으로 어렵게 초급 사범대학을 졸업한 그는 영양 청기초등학교 교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예천 화남초, 풍양중, 유천중, 울릉종고, 문경고 등에서 교사로 근무했으며, 춘양상고 교감, 예천·영주교육청 장학사, 상주 모서초·중 교장에 이어 예천교육청 학무과장, 교육장 등 예천교육청에서만 10년을 학교지원 교육행정에 몸바쳤다.“후회없는 교직 생활이었습니다. 벽지에서만 40평생 근무한 것도 보람으로 남습니다.”영예스런 정년퇴임이 있기까지 힘이 되어준 부모형제, 아내를 비롯한 가족, 친지들과 교육 동지, 학부형, 예천교육청 직원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정희융 교육장. 그는 예천교육장 재임 3년 동안 많은 보람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효를 바탕으로 한 인간교육, 전국대회에서 학력·기능·체육 등 각종 경쟁에서 우수한 성적 거양, 예천교육 진면목 알리기에 전력 투구, 교육환경 개선, 시범학교 유치 노력 등으로 많은 결실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 고장 학교보내기''''에 최선을 다했으나 우수 학생들이 인근 도시로 빠져나간 일, 용궁초등과 동부초등의 다목적 교실 건립에 이어 남부초등과 면소재지 학교 강당을 신축하려 했으나 후임자에게 미뤄진 일 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정 교육장은 학생들에게 남이 백 번 노력할 때 나는 천 번 힘써야 성공한다(人百己千), 손에서 늘 책을 놓지 않고 글을 읽는다(手不釋卷), 덕망은 자기를 낮추고 양보하는 선비의 기질에서 생긴다(德生卑退) 등 명심보감을 인용해 `늘 감사하는 마음 갖기'''' `인내하고 노력하기'''' `독서하기'''' `인정받는 사람 되기'''' 등을 당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교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학교 교육은 첫째,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합니다. 학교에서의 1거수 1투족(一擧手一投足)은 전부가 교육활동 입니다. 둘째, 교사 중심에서 학생의 자기주도적 중심교육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셋째, 학력을 기본으로 하고 다양한 기능을 개발해 줘야 합니다. 넷째, 지, 덕, 체, 예, 기의 전인교육이 필요합니다. 공부 기술자를 만드는 것보다는 바른 지식과 양식을 가진 인성을 키워줘 행복한 삶, 인간다운 삶, 정의로운 삶을 유지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퇴임 후의 활동 계획은? =문화원 한문반, 충효교실, 노인대학 등의 프로그램 강사로 활동하는 등 그 동안 쌓인 노하우를 실천해볼 생각이며, 박약회와 양양회 등 여러 친목모임에도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일부 지인(知人)과 제자들이 차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라는 권고가 있지만 저를 아끼는 군민들과 상의하여 1년 후쯤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예천을 위하고, 군민을 위하고, 학교와 학생들을 위하는 일이라면 애향심을 갖고 견마지로(犬馬之勞)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지역민들에게 대한 당부나 하고 싶은 말? =몇 차례의 각종 선거와 이해 관계로 내편, 네편으로 군민의 정서가 분열되어 있습니다. 나에게 한 번 불편한 사람은 영원한 적으로 간주하는 풍토가 개선되어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포용력 있는 우리 이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최고라는 생각,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적 사고 방식은 구시대 유물입니다. 농사가 주업인 우리 농업인들의 소득 증대와 정상적 경쟁 원리에 따른 상행위로 진정한 아름다운 군민이 됩시다. 각종 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우리 자녀들이 부모의 과도한 욕심에 멍들지 않고 진로를 계획할 수 있는 자아실현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바탕이 되도록 도와 줍시다. 그래서 예천을 삼천이니 제2개성이니 배타적이니, 하는 선입견을 불식하는데 모두가 노력합시다. <권오근 기자>(醴泉新聞 2005-02-25 14:52:30)
→예천의 자랑(721) : 권영춘.박찬성.정희융.임운진(훈장 수상을 축하합니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5-02-27 照會 1084)
→<예천의 자랑> 제6권(張炳昌 著 2005年) =1030~1033쪽
---
▲예천방문 379
고전문학기행(古典文學紀行(學術圖書)) [冊] : 예천 출신 손종흠의 저서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2008년 3월 2일에 발행하였다.
319~327쪽에 "고장 예천과 예천아리랑 : 경북 북부지역에 자리한 예천은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으로 이름난 곳이다. 백두대간의 거대한 산줄기에 포근하게 싸여 있으면서 동남쪽으로는 낙동강의 물줄기가 들판을 적셔서..."가 수록되어 있다.(daum 2009)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