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예천의 자랑(1857) : 예천의 정씨 교수 等(附 예천방문 383)
---
교수들
정재근(鄭載根) : 인포(仁浦)초등(14回) 졸업, 대학 교수(敎授)이다.
---
정진설 : 1953- , 풍양면 우망리 출신, 동부초등(18회), 양정중, 양정고, 한국외대 스페인어과 졸업, 고려대 경제학과 석사, 동 박사, 83년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 동 경제학과장, 99년 동 학생처장이다.(醴泉新聞 1998.12.17 1999.1.21)
---
정진황(鄭鎭煌) : 1935- , 예천 출신, 필리핀 아시아침례교 신학대(神學大) 대학원, 미국 골든게이트침례교 신학교 졸업, 미국 서남침례대 신학 박사(神學博士)이다. 침례신학대(浸禮神學大) 교수, 동 학장(學長)이다. 전국신학대협의회(全國神學大協議會) 회장이다.(每日年鑑 1985 1986 1987 1988)
예배학원론 [記事] : 웨슬레신학동문 카페/ 글쓴이: 아름다운교회/ 2008.12.24 11:18/ 예배학원론/ 프랭클린 M. 지글러 저 / 예천 출신 정진황(鄭鎭煌, 1935- , 浸禮神大 學長) 번역/ 예배는 그 자체가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다. Karl Barth의 말대로 Opus Dei이다. 이 예배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간의 응답으로 신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예배란 의미의 Worship은 Worth+Ship으로서 ,존경과 존귀를 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배 시 우리는 하나님의 가치를 선포한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배는 ''''''''''''''''''''''''''''''''''''''''''''''''''''''''''''''''굴복''''''''''''''''''''''''''''''''''''''''''''''''''''''''''''''''의 의미를 지닌 shachah이다. 또한 신약의 예배는 ''''''''''''''''''''''''''''''''''''''''''''''''''''''''''''''''누구의 손에 입 맞추는 것''''''''''''''''''''''''''''''''''''''''''''''''''''''''''''''''을 뜻한다. lituru에서의 유래는 헬라어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섬김.봉사''''''''''''''''''''''''''''''''''''''''''''''''''''''''''''''''를 뜻한다. 바울의 예배는 성령의 열매로 나타나는 믿음 생활이다. 그런데, 지난 몇 세기 간 예배는 곧 ''''''''''''''''''''''''''''''''''''''''''''''''''''''''''''''''예배 순서''''''''''''''''''''''''''''''''''''''''''''''''''''''''''''''''를 의미하였다. 예배는 신비의 면을 가진다. 또한 하나님의 활동에 대한 경축이다. 또한 행위와 의식과 예식을 넘어서서 생활까지도 포함한다. 예배는 사람이 하는 모든 것과 관련이 있다. 또한 예배는 계시와 응답을 포함하는 대화이다. 회화 이상의 만남이다. 또한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께 바치는데 있다. 또한 예배는 종말론적 성취이다. 예배의 실재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는데, 인격적인 존재의 영역 안에 있다는 것이며, 거룩한 계시는 실재를 입증하는 현현이며,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원시 예배는 인간의 선천적인 요구에 의해, 그 요구를 채우기 위한 인간이 창조한 신을 예배하였는데, 이는 구약성서와 충돌된다. 이스라엘의 예배는 독특하였는데, 하나님이 한 분이셨고, 그는 역사에 개입하는 신이었으며, 아무런 형상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성전에서 예배하였으며, 예루살렘의 함락에 따라 솔로몬 성전이 파괴되며, 포로생활 등으로 회당을 중심으로 예배가 이루어졌다. 그 후 기독교의 예배는, 복음서나 바울 서신이 낭독되고, 새로운 찬양이 이루어졌으며, 세례와 성찬이 예배의 요소로 도입되었다. 신약의 예배 요소에는 음악, 성구낭독, 기도, 아멘, 설교, 권면, 봉헌, 송영, 고백 등이 포함되었다. 초대교회의 예배는 완전한 예배식의 편람을 볼 수 없다. Pliny에 의하면, 새벽에 성례전으로 자신들을 결속하며, 음식을 먹는다고 기록한다. 디다케에서는 세례와 성찬에 관한 글이 나온다. 순교자 저스틴의 Apology안에 예배에 대한 설명이 있다. 그 내용은 성서읽기, 사회자의 권면, 기도, 회중의 감사와 아멘, 떡과 포도주의 분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헌납이다. 중세시대에는 성례 전 주의와 성직주의로 인해 외적인 형식을 강조하게 되었다. 주후 500년경에는 말씀의 예배식과 다락방의 예배식으로 나뉘었다. 그래서 침례받지 않은 사람은 다락방 예배식 전에 해산하였다. 로마의 의식의 결정은 미사의 화해적 성격을 강조함으로써 모든 악폐를 유발하였다는 것이다. 회중은 방관자가 되는 점, 그리고 출처불명의 기도를 모은 것이며, 성령님을 위한 기도의 부재, 사어 미사로 인한 정적 성격이었다. 종교개혁시대에는 루터주의, 칼빈주의 및 재침례교-퀘이커교 같은 3개 형태를 취하였다. 루터주의는 성경이 금하지 않는 것은 반대하지 않은 반면, 칼빈주의는 성경이 가르치지 않은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현시대에는 라이놀드 니버가 지적한대로 신학.예배식 및 정치에 전념하는 반항 분위기에서 자유교회가 자라왔다. 신학없는 예배는 감상적이고 유약하며, 예배 없는 신학은 냉냉하고 그 자체에 생명력이 없다. 기독교 예배는 경험이며, 역사적 사실을 생각하는 방법을 신학이라 한다. 하나님은 인격적이며, 초월적이고, 편재(?)하시며, 신뢰할 수 있는 분으로 예배에 합당하신 분이다.예수 그리스도는 현현이 있었고, 자신을 낮추시고 구속을 행하신 후 주권을 가지신 분으로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된다. 성령은 하나님의 인격적인 임재를 나타내며, 사람을 변화시키고, 예배하고 활동하는 교회를 감독하며 인도하는 분으로 예배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성서는 신적 역사의 기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책이며, 인간의 경험이 기록된 성령님의 말씀으로, 말들을 통한 영원한 말씀이 된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을 뜻하는데, 바울은 두 가지 사상을 포함시킨다.첫째는 구속적인 사귐과 예배하는 회중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제사장이다. 예배는 기본적으로 인격이 중심된 경험이다.
인간의 한 일부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성서는 인간을 단일 인격으로 본다. 또한 예배는 객관적-주관적 경험이다. 사람들이 먼저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하는 만큼 주관적이며, 객관적 경험을 포함한다. 객관성으로서의 예배의 방향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어서 사람에게서 멀다. 기독교는 종교적 감성 이상이다. 주관적 경험을 포함하며, 주체와 주체 사이의 경험을 포함한다. 예배자는 유한감이 있어서 무한한 자를 찾는다. 또한 신비감은 이해를 요구하고, 불안감은 피난처를 찾는다. 고독감은 하나님과 짝이 되기를 바란다. 사랑의 소속감은 다른 예배자들과 더불어 성숙한 사귐을 요구한다. 무의미감은 목적과 성취를 추구한다. 상한 감정은 고침을 받는다. 슬픈 감정은 위로를 받는다. 음악은 인간의 태도를 표현하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며, 보편적인 방법이다. 역사적으로 음악은 계속적으로 예배에 사용되었다. 중세기에는 그레고리 성가가 있었다. 1600년을 전후로 오페라, 기악이 발전하였다. 칼빈은 악기 허용을 반대하였고, 미국에서는 복음 찬송이 사용되었다. 음악 그 자체는 종교적이거나 반종교적이지 않다. 예배에서 음악의 목적은 하나님의 인식 및 예배의 분위기를 창조하고 사람의 내적 생활을 향상하고, 예배의 경험을 위하여 회중을 통일하고, 회중의 확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기도는 예배의 톤이다. 주의 기도 속에는 예배에 필요한 존경, 복종, 고백, 간구, 헌신과 같은 태도를 포함하고 있다. 초기 기독교인은 끊임없이 기도에 힘썼다. 기도는 3가지 종류가 있는데 공중 예배시 읽도록 마련된 고정된 의식적 기도와, 자연 발생적 혹은 즉흥적 기도, 준비한 뒤 즉석에서 드리는 기도이다. 공중기도의 원칙으로는 기도는 목적을 가져야 하며, 2인칭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며, 똑똑한 목소리로 기도해야 하고, 짧게 기도해야 한다. 공중기도를 위해선 개인적으로 기도해야 하며, 요구를 참작하고, 성서의 기도를 연구하며,다른 기도를 연구하고, 기도의 윤곽을 잡아 가록하며, 기도의 일부를 암기하고, 성령님을 의지해야 한다. 성서 낭독은 그 자체가 예배 행위이다. 이 낭독하는 성귀는 성귀집을 이용할 수 있다. 이 성귀의 선택은 전하려는 설교의 성귀 이외의 것을 선택하고, 헌신적이어야 하며, 단순해야 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창출하며, 신.구약 사이에 다채로워야 하고, 여러 가지 번역본을 사용함이 좋다. 그리고 짧아야 한다. 성서 낭독 후 말씀을 선포한다. 이것만이 예배의 중요한 부분은 아니나, 강단이 쇠퇴하면 안 된다. 모든 성서적 설교는 대화이다. 또한 세상을 향한 교회의 증언이며, 설교자 자신의 개인적인 증언이다. 또한 설교는 그 외의 다른 요소들과 상부상조 한다. 예배학 원론을 보면서 현재 한국의 예배는 예배에 있어서 너무 단순한 것임을 느꼈다. 한국 개신교 예배는 말씀선포에 대부분의 시간을 하례하고 예배의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측면이 너무 소홀이 취급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예배의 형식주의로의 복귀는 자칫 생명감을 잃을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예배 형식이 틀에 박힌 것보다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교제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잘 부각시키기 위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출처 :창골산 봉서방(daum 2008)
예배학원론(禮拜學原論) [冊] : 프랭클린 M.지글러의 저서를 예천 출신 정진황(鄭鎭煌, 1935- , 浸禮神大 學長)이 번역한 책으로, 284쪽, A5, 요단출판사에서 1979년 3월 1일에 출간하였다.(daum 2008)
기본전도학(基本傳道學) [冊] : C.E.어트리의 저서를 예천 출신 정진황(鄭鎭煌, 1935- , 浸禮神大 學長)이 번역한 책으로, 244쪽, A5, 요단출판사에서 1965년 9월 1일에 출간하였다.(daum 2008)
정한영(鄭翰永) : 1932- , 예천 출신, 본관은 동래, 서울대 공대 졸업, 대한조선공사 근무, 부산대, 서울대 강사, 과학기술연구소 조선해양연구실 근무, 홍익공전 교수, 과학기술연구소 조선해양연구실 연구원을 지냈다.(韓國을 움직이는 人物들 1997, 朝鮮日報 DB 2003)
---
예천의 정씨들
정수춘 [傳說] : 개포면 경진리(京津里) 옥동의 동래 정씨 가문에 내려오는 전설로, 16세기의 일이다. 호조(戶曹) 별방 집리라는 직책에 옥동 출신 정수춘이란 사람이 있었다. 이 정 집리는 호조 별방에서 일을 해오면서 천성이 꿋꿋하고 대나무같이 곧아 가난하게 이를 데 없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80세가 넘은 병든 노모(老母)와 20세가 된 아들, 그리고 과년한 딸까지 있는데, 이 자녀들의 혼사(婚事)는 가난하기에 엄두도 못내고 있었다. 정 집리가 호조에서 받아오는 녹미(錄米)로는 노모의 치료비는커녕 생활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래서 아무리 대쪽같이 굳은 그일지라도 공금(公金)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매일 밤 죄악감(罪惡感)에 사로잡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몇 년 후 그가 공금을 축낸 것도 자그만치 3천 냥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당시 천 냥만 축내도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사형시켜 버리는 때였다. 할 수 없이 정수춘은 그의 아들 종환을 불러 앉히고 그 동안 이야기를 했다. 종환은 한없이 울었다. 아들 종환은 아버지가 효자이듯 그도 역시 효자였다. 며칠을 두고 곰곰이 생각한 끝에 누나에게만 이야기를 하고 길을 떠났다. 정처없이 발길을 옮기다 안동 고을에 오게 되었다. 그는 이 고을에서 가장 잘 사는 김 이방(金吏房)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마침 이 집에는 20살이 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한 문둥병 아들이 있었다. 몇 달 뒤 김 이방은 문둥병 아들을 장가보내려고 온갖 수단을 다하여 신부감을 물색하였다. 전라도 순천(順天) 고을에서 제일 가는 부자 박 이방(朴吏房)이란 사람이 딸의 인물이 출중하여 마땅한 신랑감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안동에 사는 김 이방이 청혼을 하자, 그는 뛸 듯이 기뻤다. 그리고 김 이방 집으로 선을 보러 가겠다고 했다. 안동의 김 이방은 걱정이 되었다. 곰곰이 생각한 그는 종환에게 사정해서 문둥병 아들 대신 선 좀 봐 달라고 했다. 종환은 그 동안 많은 신세를 졌으므로 이 주인에게 은혜를 갚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주자고 했다. 그래서 선보는 일은 무사히 마쳤다. 순천의 박 이방은 아무 것도 모르고 사위를 잘 얻었다 하면서 택일(擇日)을 받아 가지고 갔다. 얼마 후 결혼 일자는 내일로 다가왔는데 김 이방은 걱정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종환에게 부탁했다. "3일 동안만 신부를 건드리지 않으면 자네 아버지가 빚진 3천 냥을 갚아 주겠다."라고 했다. 이리하여 종환은 김 이방을 따라 순천으로 가서 무사히 혼례를 치르고 첫날밤을 맞이하였다. 종환은 3일 동안 신부를 건드리지 않기로 김 이방에게 약속했으므로 첫날밤에는 신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속 잠만 잤다. 그 이튼날도 계속 잠만 잤다. 3일째되는 날 밤, 이 밤을 지내면 신랑의 집으로 간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신부는 아무도 모르게 칼을 품에 품고 신방에 들어갔다. 밤이 깊어지자 신부는 신랑을 흔들어 깨웠다. 신부는 품에서 날이 시퍼런 칼을 꺼내 들었다. 종환은 깜짝 놀라 칼을 뺏으려 했으나, 신부는 칼을 놓아주지 않았다. "당신은 안동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말씀을 안 하시면 당신 앞에서 목숨을 끊고 이름과 몸을 깨끗이 하렵니다."라고 하면서 죽으려 하자, 종환은 할 수 없이 그 동안 있었던 모든 일을 이야기했다. "아버지의 빚 3천 냥 때문에 내 인생을 망치려 했군요. 그것은 효성에서 나온 것이니, 당신의 잘못이 아니고, 다만 김 이방이 나쁜 사람입니다." 딸은 아버지에게 모든 이야기를 다 하였다. 모든 일이 탄로나자, 김 이방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 박 이방은 딸과 사위를 앞세우고 3천 냥의 돈꾸러미를 짊어진 채 신랑집으로 왔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장가를 들어 달덩이같은 신부를 데려오고 더구나 3천 냥의 돈까지 가져오니, 너무도 기쁘고 놀라 모두 넋이 나간 듯 말을 못했다. 결국 3천 냥의 돈으로 정 집리는 나라의 빚을 갚았다. 그리하여 전라도 박 이방의 집안과 옥동 정 집리의 집안은 기이한 사연으로 사돈을 맺게 되었다.
---
정옥(鄭沃) : 용문면 선리 경주 정씨의 입향조, 세걸(世傑)의 2자, 400년 간 선리에서 그의 후손들이 세거 중이다.
---
정용희(鄭龍熙) : 1762(영조 38)-1822(순조 22), 개포면 경진리 옥동(玉洞) 동래 정씨 입향조, 자는 이견(利見), 풍양면 청곡리 별실(別室)에서 옥동(玉洞)으로 이거하여 대대로 살고 있다. 묘는 지보면 송평리 외평(外坪) 뒤 진령산(鎭嶺山)에 있다.(族譜)
---
정주명 호구단자(鄭周命戶口單子) [寫眞資料] : 1699년(숙종 25, 강희 38) 12월에 병자년(1696) 호구 단자에 준거하여 예천 군수가 예천군 뇌택면(雷澤面) 제2 고평리(高坪里) 제10통(統)에 거주하는 충의위(忠義衛) 정주명에게 보낸 호구 단자로, 52.9x61.3cm, 인방(印方) 7.2cm,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14x5.5cm,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寫資 2069)되어 있는 관부 문서의 사진 자료이다.(인터넷 야후 2001)
정주명 호구단자(寫眞 유리필름 目錄) [古文書] : 예천읍 고평리에 살던 충의위 정주명의 1712년의 호구단자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목 鄭周命戶口單子/ 분류 古文書 官府文書 戶口單子/ 등록번호 사자 2069/ 본문 丙子戶口 單子에 준거하여 成給한 醴泉郡 雷潭面 第2 高坪里 第10統에 거주하는 忠義衛 鄭周命의 호구단자./ 설명 (발급) 行郡守 (수급) 鄭周命/ 康熙 38年 12月 (1712)/ 1(2), 한문, 52.9×61.3cm, 印方 7.2cm, 周挾無改印 14.0×5.5cm"(history.go.kr 2005)
정주명 호구단자(寫眞 유리필름 目錄) [古文書] : 예천읍 고평리 충의위 정주명의 1712년에 호구단자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목 鄭周命戶口單子/ 분류 古文書 官府文書 戶口單子/ 등록번호 GF 2342 [18-172-01]/ 본문 丙子戶口 單子에 준거하여 成給한 醴泉郡 雷潭面 第2 高坪里 第10統에 거주하는 忠義衛 鄭周命의 호구단자./ 설명 (발급) 行郡守 (수급) 鄭周命/ 康熙 38年 12月 (1712)/ 1, 한문, 52.9×61.3cm, 印方 7.2cm, 周挾無改印 14.0×5.5cm/ 상태양호/ 사자 2069와 중복"
---
정희복(丁希福) : 지보면 매창리 매화촌(梅花村) 입향조, 호는 낙은재(洛隱齋), 본관은 나주, 진사 의국(義國, 壬亂 때의 豊壤面 三江里 入鄕祖)의 3자, 몽설(蒙說)의 아버지이다. 묘는 지보면 매화촌 임좌(壬坐)에 있는데, 묘갈문(墓碣문)은 1978년 4월에 12세손 우진(佑鎭)이 짓고 글씨를 썼다.(醴泉의 金石文 2003)
---
정기묵 [記事] : [서명] 조선총독부및소속관서직원록 1930년도/ 同 1931년도/ 同 1932년도/ 同 1933년도/ 同 1934년도/ 同 1935년도/ 同 1936년도/ 同 1937년도/ 同 1938년도/ 同 1939년도/ [기사명] 鄭機默 / (開浦面長) | 지방관서>경상북도>부군도(府郡島)>예천군/ [기관명] 국사편찬위원회(韓國歷史情報統合시스탬 2006)
---
정남섭 [記事] : [서명] 조선총독부및소속관서직원록 1919년도/ 동 1920년도/ 同 1922년도/ 同 1923년도/ 同 1924년도/ 同 1925년도/ 同 1926년도/ 同 1927년도/ 同 1928년도/ 同 1929년도/ 同 1930년도/ 同 1931년도/ 同 1932년도/ 同 1933년도/ 同 1934년도/ [기사명] 鄭南燮 / (郡參事 1919-1920, 醴泉面長 1922-1934) | 지방관서>경상북도>부군도(府郡島)>예천군/ [기관명] 국사편찬위원회(韓國歷史情報統合시스탬 2006)
---
정성정 [記事] : [서명] 대한민국직원록 1952년도/ [기사명] 張星井 / (普門面議長) | 지방관서>경상북도>읍면의회>예천군/ [기관명] 국사편찬위원회(韓國歷史情報統合시스탬 2006)
---
정원조 [記事] : [서명] 조선총독부및소속관서직원록 1927년도/ 同 1928년도/ 同 1929년도/ [기사명] 鄭元朝 / (豊壤面長) | 지방관서>경상북도>부군도(府郡島)>예천군/ [기관명] 국사편찬위원회(韓國歷史情報統合시스탬 2006)
---
정인갑 [記事] : [서명] 대한민국직원록 1952년도/ [기사명] 鄭麟甲 / (知保面議長) | 지방관서>경상북도>읍면의회>예천군/ [기관명] 국사편찬위원회(韓國歷史情報統合시스탬 2006)
---
정인학 [記事] : [서명] 조선총독부및소속관서직원록 1937년도/ [기사명] 鄭寅鶴 / (醴泉邑長) | 지방관서>경상북도>부군도(府郡島)>예천군/ [기관명] 국사편찬위원회(韓國歷史情報統合시스탬 2006)
---
정항모 [記事] : [서명] 조선총독부및소속관서직원록 1919년도/ [기사명] 鄭恒謨 / (豊壤面長) | 지방관서>경상북도>부군도(府郡島)>예천군/ [기관명] 국사편찬위원회(韓國歷史情報統合시스탬 2006)
---
정형조 [記事] : [서명] 조선총독부및소속관서직원록 1921년도/ [기사명] 鄭炯朝 / (醴泉面長) | 지방관서>경상북도>부군도(府郡島)>예천군/ [기관명] 국사편찬위원회(韓國歷史情報統合시스탬 2006)
---
▲예천방문 383
용두리(慶北道 ‘山村生態마을 全國評價 2年 連續’受賞) [記事] :
경북도는 산림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산촌 생태마을을 조성평가에서 예천군과 영양군이 전국 우수 마을로 선정됐다고 2009년 3월 9일 밝혔다.
도에 따르면 2008년까지 조성 완료된 전국 171개 산촌 생태마을을 대상으로 실시한 ''''''''''''''''''''''''''''''''''''''''''''''''''''''''''''''''우수 산촌생태마을 조성.경영부문 평가''''''''''''''''''''''''''''''''''''''''''''''''''''''''''''''''에서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가 경영부문, 영양군 수비면 수하리가 조성부문에서 전국 우수 마을로 2년 연속 선정됐다.
산촌생태마을 평가제도는 우수 산촌생태마을을 발굴·육성하기 위해 2008년부터 산림청이 실시하고 있다.
이번 평가는 관계 전문가로 편성된 산촌중앙자문단에서 각 산촌마을에 대한 지자체의 지원 노력과 관심도, 주민참여도 및 역량, 마을조성의 적절성, 사업을 통한 마을의 발전효과, 경영성과 및 성공 가능성 등에 대해 중점적으로 평가했다.
평가결과 경영우수 마을로 선정된 예천군 용두리는 인센티브 상사업비 1억2500만 원과 조성우수 마을로 선정된 영양군 수하리는 5000만 원을 각각 지원받게 된다.
또 우수 산촌생태마을로 선정된 2개 마을에 대해 산림청에서 제작한 현판과 2010년 산촌생태마을 운영 매니저를 지원받게 된다.
도 산림녹지과 관계자는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18개 시군에 330억 원을 투입해 23개 산촌생태마을을 조성을 완료했으며 올해는 6개 마을을 조성 중에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지역의 특산품인 표고, 오갈피, 산채 등을 활용해 계절별로 다양한 산촌체험 프로그램을 개발 보급하는 등 도농간 교류 활성화를 추진해 주민소득을 증대 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제갈수만 記者 뉴시스 2009.03.09 20:40)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