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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1874:현옥량 判書(何首烏/예천방문400)
예천의 자랑(1874) : 호명면 종산리 입향조 현옥량 예의판서(附 예천읍 대심리 백모, 예천에서 하수오 채취/예천방문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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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옥량(玄玉亮) :
고려 공양왕 때, 호명면 종산리 사월(沙月, 神堂洞 內洞) 입향조, 예천군 연주 현씨(玄氏)의 입향조, 자는 채상(采相), 호는 월사(月沙), 첨의 치룡(僉議致龍)의 손자, 영의정 석규(領議政碩圭)의 아들, 용무(用武, 副正)ㆍ용휴(用休, 文科, 司評)ㆍ용부(用富, 判尹)의 아버지, 송정 조용(松亭趙庸)의 사위 겸 제자이다.
타고난 자질과 성품이 영특하고 고매하며 기질이 넓고 웅장하고, 문장이 뛰어나고 모습이 단정하였다. 학문에만 정진하고 벼슬길에 나아갈 것을 기뻐하지 않았다.
별동 윤상(別洞尹祥), 조말생(趙末生), 배환(裵桓), 배강(裵강)과 더불어 조용(趙庸)을 스승으로 모시고 후학을 가르침으로써 당신의 임무라 생각하고 이에 전심전력하였으므로 문화가 부흥하여 패륜을 삼강오륜(三綱五倫)으로 확립시키고, 명현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1374년(공민왕 23) 전시 문과(殿試文科)에 급제하여 공민왕 때에 사관(史官), 판전의시사(判典儀寺事)가 되고, 조선에 와서는 예의 판서(禮儀判書)를 특별히 제수받아 인망이 높았다. 이성계가 정권을 잡자 처가가 있던 예천(丈人 趙庸이 醴泉에서 귀양살이 中이었다)으로 와 있으면서 후학들을 가르치기에 열중하였다.
그러다가 여가가 있으면 아이들과 더불어 수레를 타고 달밝은 백사장(白沙場) 위로 나아가 소요하며 자연을 즐겼고, 살던 동네 이름을 사월동(沙月洞)이라 하였다.
<시총고운(詩叢古韻)>에 그의 시(詩)가 실렸는데, 이르기를, "월사동(月沙洞) 안에 무엇이 있노 하니, 화음산(華陰山) 고개 위에 구름이 뜨고, 푸른 버들 무성한 오동(梧桐)에 바람이 불면, 곱게곱게 마음껏 단장한 것 같다네."라고 하였다.
윗 시에서 월사(月沙)라고 함은 사월(沙月)을 꺼꾸로 써서 그 평성(平聲)의 염(簾)을 맞추려고 함이었다.
퇴계 이황(退溪李滉)도 시로써 이르기를, "성리의 연원(淵源)을 밝히기는 예천에서는 두 분(趙庸과 玄玉亮)이 있는데 어찌하여 그 분들의 저서가 후세에 전하지 않을꼬? 높은 산을 우러러보듯 홀로 아쉬움 느꼈다네." 라고 하였다.
예천향교의 현판을 현옥량(玄玉亮)이 손수 쓴 것이라고 한다.
그 후 이태조의 부름에 못이겨 상경, 누진하여 예조 판서(禮曹判書)에 이르렀다.
스승 송정 조용(松亭趙庸)의 사위여서 만년에 아내의 고향인 예천군 호명면 사월리(沙月里)에 터잡아 현씨의 영남 입향조가 되었다.
묘는 지보면 소화리 소동(所洞) 동막(東幕) 위봉산(委峰山) 건좌(乾坐)에 있는데, 묘갈명(墓喝銘)은 1992년 족후손 국무총리 승종(勝鍾)이 썼다.
신도비명(神道碑銘)은 병신년 9월 초1일에 안동 권상규(權相圭)가 지었고 외예(外裔) 완산 최영헌(崔英憲)이 썼다. 후손은 지보면 마전리 원학(元鶴)과 석계(石溪)에 세거하고 있다.
(醴泉郡邑誌 1770 1780 1786 1841, 竺山勝覽 1934, 襄陽誌 1661, 知保面誌 1987, 醴泉의 金石文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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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옥량 신도비(玄玉亮神道碑), 비 [碑] : 지보면 소화리 동막 위봉산(東幕委峰山) 아래 건좌(乾坐)에 있는 비로, 비명(碑銘)은, "통헌대부 판전의시사 사월현공 신도비(通憲大夫判典儀寺事沙月玄公神道碑)"이다.
권상규(權相圭)가 찬하여 1956년에 후손들이 세웠다. 묘는 신도비(神道碑)에서 100m 떨어진 소동(所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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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옥량 신도비(玄玉亮 神道碑) [碑] : 지보면 소동(所洞) 위봉산(委峰山) 아래 건좌(乾坐)에 있는 비로, 비명(碑銘)은, 沙月 延州玄先生(玉亮) 神道碑 이고, 비문은 안동인(歲赤猿重陽月初吉 永嘉後人) 권상규(權相圭)가 짓고, 완산인(外裔完山後人) 최영헌(崔英憲)이 썼다. 그 원문과 국역문이 <용궁향교지>(2005) 상권 975-979쪽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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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58) : 현옥량(곱게곱게 마음껏 단정한 것 같다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3-10-10 照會 137)
→<예천의 자랑> 제3권(張炳昌 著 2004年) =475~4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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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읍 대심리 백모, 예천에서 하수오 채취 대심리(醴泉서 超大型 何首烏 採取) [記事] :
흰머리도 희게 한다는 속설이 전해지는 100년 이상 추정 자연산 초대형 하수오가 발견됐다.
백모(50ㆍ예천군 대심리) 씨는 최근 예천의 한 산에서 캤다며 길이 430㎝, 무게 2.5㎏의 하수오와 무게 1㎏ 길이 70㎝짜리 두 뿌리 등 3뿌리의 백하수오를 공개했다.
가장 큰 하수오는 4줄기 한 뿌리로 길이 20㎝ 내외의 작은 고구마 형태의 덩어리가 20여 개 달려 있다.
산약초 전문가들은 "자연산 하수오는 평균 600∼800그램 정도인데, 이 정도 크기와 길이라면 10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하수오는 마디풀과의 다년생초로 강장 및 강정과 항노화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약용식물로 최근 4㎏ 2m짜리 백하수오가 시장가 500만 원에 경매에 부쳐지기도 했다.
(이용호 記者 韓國日報 2009/04/02 03: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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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400
감천면(甘泉面 特用作物 栽培農家 爲한 (社)韓國生藥協會 엄경섭 會長 招請 特講 實施) [記事] :
감천면(면장 이인호)은 2009년 3월 31일 오후 2시 면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이인호 감천면장, 김영규.남시우 군의원, 박시옥 예천농협장, 조동진 감천농협지점장, 각 읍.면 약초 작목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사)한국생약협회 엄경섭 회장 초청 특강"을 실시했다.
감천면 산업담당 주관으로 열린 이날 특강은 관내 60여 명의 인삼, 생약, 장려삼, 특용작물 등 생약초 재배농가와 특용작물에 관심 있는 농업인들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사)한국생약협회 엄경섭 회장의 "특용작물 재배농가 소득증대를 위한 재배기술 및 유통망 확충을 통한 판로망 개척, 약용작물 GAP(우수농산물 관리인증 제도)를 통한 사업발전방안, 유통현황의 문제점" 등에 대한 강의로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인호 감천면장은 인사말에서 "주민화합과 청정지역 및 산불없는 감천 만들기, 휴경지를 이용한 친환경 약초재배 등 농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고 "참석자들의 적극적인 군정 참여"를 당부했다.
(김상국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9-03-31 오후 4: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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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비를 찾아서(韓國의 名碑를 찾아서) [冊] : 이규복의 저서로, 423쪽, 양장본, A5, 서예문인화에서 2007년 5월 8일에 발행하였다.
[책 소개] : 한국의 명비를 찾아 떠나는 여행 <한국의 명비를 찾아서>. 저자가 전국에 있는 비를 찾아다니면서 쓴 답사기들을 모아 정리한 책이다. 사진에 중점을 두었으며, 비의 전체적인 모습과 더불어 세부자형에 많은 신경을 썼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 현존하고 있는 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려주고, 옛 선인들의 뛰어난 글 솜씨와 조각 솜씨를 전해준다. 각 지역별로 나누어 다양한 명비들을 소개하고 있다.
[목차] : .../ 예천 - 명봉사경청선원자적선사릉운탑비/ .../ 문자로 본 신라전, 백제의 문자전(daum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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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옥량(玄玉亮) :
고려 공양왕 때, 호명면 종산리 사월(沙月, 神堂洞 內洞) 입향조, 예천군 연주 현씨(玄氏)의 입향조, 자는 채상(采相), 호는 월사(月沙), 첨의 치룡(僉議致龍)의 손자, 영의정 석규(領議政碩圭)의 아들, 용무(用武, 副正)ㆍ용휴(用休, 文科, 司評)ㆍ용부(用富, 判尹)의 아버지, 송정 조용(松亭趙庸)의 사위 겸 제자이다.
타고난 자질과 성품이 영특하고 고매하며 기질이 넓고 웅장하고, 문장이 뛰어나고 모습이 단정하였다. 학문에만 정진하고 벼슬길에 나아갈 것을 기뻐하지 않았다.
별동 윤상(別洞尹祥), 조말생(趙末生), 배환(裵桓), 배강(裵강)과 더불어 조용(趙庸)을 스승으로 모시고 후학을 가르침으로써 당신의 임무라 생각하고 이에 전심전력하였으므로 문화가 부흥하여 패륜을 삼강오륜(三綱五倫)으로 확립시키고, 명현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1374년(공민왕 23) 전시 문과(殿試文科)에 급제하여 공민왕 때에 사관(史官), 판전의시사(判典儀寺事)가 되고, 조선에 와서는 예의 판서(禮儀判書)를 특별히 제수받아 인망이 높았다. 이성계가 정권을 잡자 처가가 있던 예천(丈人 趙庸이 醴泉에서 귀양살이 中이었다)으로 와 있으면서 후학들을 가르치기에 열중하였다.
그러다가 여가가 있으면 아이들과 더불어 수레를 타고 달밝은 백사장(白沙場) 위로 나아가 소요하며 자연을 즐겼고, 살던 동네 이름을 사월동(沙月洞)이라 하였다.
<시총고운(詩叢古韻)>에 그의 시(詩)가 실렸는데, 이르기를, "월사동(月沙洞) 안에 무엇이 있노 하니, 화음산(華陰山) 고개 위에 구름이 뜨고, 푸른 버들 무성한 오동(梧桐)에 바람이 불면, 곱게곱게 마음껏 단장한 것 같다네."라고 하였다.
윗 시에서 월사(月沙)라고 함은 사월(沙月)을 꺼꾸로 써서 그 평성(平聲)의 염(簾)을 맞추려고 함이었다.
퇴계 이황(退溪李滉)도 시로써 이르기를, "성리의 연원(淵源)을 밝히기는 예천에서는 두 분(趙庸과 玄玉亮)이 있는데 어찌하여 그 분들의 저서가 후세에 전하지 않을꼬? 높은 산을 우러러보듯 홀로 아쉬움 느꼈다네." 라고 하였다.
예천향교의 현판을 현옥량(玄玉亮)이 손수 쓴 것이라고 한다.
그 후 이태조의 부름에 못이겨 상경, 누진하여 예조 판서(禮曹判書)에 이르렀다.
스승 송정 조용(松亭趙庸)의 사위여서 만년에 아내의 고향인 예천군 호명면 사월리(沙月里)에 터잡아 현씨의 영남 입향조가 되었다.
묘는 지보면 소화리 소동(所洞) 동막(東幕) 위봉산(委峰山) 건좌(乾坐)에 있는데, 묘갈명(墓喝銘)은 1992년 족후손 국무총리 승종(勝鍾)이 썼다.
신도비명(神道碑銘)은 병신년 9월 초1일에 안동 권상규(權相圭)가 지었고 외예(外裔) 완산 최영헌(崔英憲)이 썼다. 후손은 지보면 마전리 원학(元鶴)과 석계(石溪)에 세거하고 있다.
(醴泉郡邑誌 1770 1780 1786 1841, 竺山勝覽 1934, 襄陽誌 1661, 知保面誌 1987, 醴泉의 金石文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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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옥량 신도비(玄玉亮神道碑), 비 [碑] : 지보면 소화리 동막 위봉산(東幕委峰山) 아래 건좌(乾坐)에 있는 비로, 비명(碑銘)은, "통헌대부 판전의시사 사월현공 신도비(通憲大夫判典儀寺事沙月玄公神道碑)"이다.
권상규(權相圭)가 찬하여 1956년에 후손들이 세웠다. 묘는 신도비(神道碑)에서 100m 떨어진 소동(所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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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옥량 신도비(玄玉亮 神道碑) [碑] : 지보면 소동(所洞) 위봉산(委峰山) 아래 건좌(乾坐)에 있는 비로, 비명(碑銘)은, 沙月 延州玄先生(玉亮) 神道碑 이고, 비문은 안동인(歲赤猿重陽月初吉 永嘉後人) 권상규(權相圭)가 짓고, 완산인(外裔完山後人) 최영헌(崔英憲)이 썼다. 그 원문과 국역문이 <용궁향교지>(2005) 상권 975-979쪽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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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58) : 현옥량(곱게곱게 마음껏 단정한 것 같다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3-10-10 照會 137)
→<예천의 자랑> 제3권(張炳昌 著 2004年) =475~4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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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읍 대심리 백모, 예천에서 하수오 채취 대심리(醴泉서 超大型 何首烏 採取) [記事] :
흰머리도 희게 한다는 속설이 전해지는 100년 이상 추정 자연산 초대형 하수오가 발견됐다.
백모(50ㆍ예천군 대심리) 씨는 최근 예천의 한 산에서 캤다며 길이 430㎝, 무게 2.5㎏의 하수오와 무게 1㎏ 길이 70㎝짜리 두 뿌리 등 3뿌리의 백하수오를 공개했다.
가장 큰 하수오는 4줄기 한 뿌리로 길이 20㎝ 내외의 작은 고구마 형태의 덩어리가 20여 개 달려 있다.
산약초 전문가들은 "자연산 하수오는 평균 600∼800그램 정도인데, 이 정도 크기와 길이라면 10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하수오는 마디풀과의 다년생초로 강장 및 강정과 항노화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약용식물로 최근 4㎏ 2m짜리 백하수오가 시장가 500만 원에 경매에 부쳐지기도 했다.
(이용호 記者 韓國日報 2009/04/02 03: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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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400
감천면(甘泉面 特用作物 栽培農家 爲한 (社)韓國生藥協會 엄경섭 會長 招請 特講 實施) [記事] :
감천면(면장 이인호)은 2009년 3월 31일 오후 2시 면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이인호 감천면장, 김영규.남시우 군의원, 박시옥 예천농협장, 조동진 감천농협지점장, 각 읍.면 약초 작목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사)한국생약협회 엄경섭 회장 초청 특강"을 실시했다.
감천면 산업담당 주관으로 열린 이날 특강은 관내 60여 명의 인삼, 생약, 장려삼, 특용작물 등 생약초 재배농가와 특용작물에 관심 있는 농업인들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사)한국생약협회 엄경섭 회장의 "특용작물 재배농가 소득증대를 위한 재배기술 및 유통망 확충을 통한 판로망 개척, 약용작물 GAP(우수농산물 관리인증 제도)를 통한 사업발전방안, 유통현황의 문제점" 등에 대한 강의로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인호 감천면장은 인사말에서 "주민화합과 청정지역 및 산불없는 감천 만들기, 휴경지를 이용한 친환경 약초재배 등 농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고 "참석자들의 적극적인 군정 참여"를 당부했다.
(김상국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9-03-31 오후 4: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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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비를 찾아서(韓國의 名碑를 찾아서) [冊] : 이규복의 저서로, 423쪽, 양장본, A5, 서예문인화에서 2007년 5월 8일에 발행하였다.
[책 소개] : 한국의 명비를 찾아 떠나는 여행 <한국의 명비를 찾아서>. 저자가 전국에 있는 비를 찾아다니면서 쓴 답사기들을 모아 정리한 책이다. 사진에 중점을 두었으며, 비의 전체적인 모습과 더불어 세부자형에 많은 신경을 썼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 현존하고 있는 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려주고, 옛 선인들의 뛰어난 글 솜씨와 조각 솜씨를 전해준다. 각 지역별로 나누어 다양한 명비들을 소개하고 있다.
[목차] : .../ 예천 - 명봉사경청선원자적선사릉운탑비/ .../ 문자로 본 신라전, 백제의 문자전(daum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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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