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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1888:현석호長官(祝친환경농업바이오센터/예천방문414)
예천의 자랑(1888) : 지보면 마전리 출신 현석호 장관(附 예천군친환경농업바이오센터, 전국 최대 미생물 생산시설...축하합니다/예천방문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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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호(玄錫虎) :
1907(융희 1)-1988, 지보면 마전리 377번지 석계(石溪) 출신, 호는 석계(石溪), 본관은 연주, 석은 덕기(石隱悳基)의 장남, 종교는 가톨릭,
지보면 만화리 창동의숙(彰東義塾, 16歲), 예천읍 노상리 대창학원 보통과(大昌學院 普通科, 1회) 졸업, 중학교 검정시험(中學校檢定試驗)에 합격, 대구농림학교(大邱農林學校), 경성제대(京城帝大, 現 서울大) 법문학부 법학과(法文學部法學科) 졸업,
1933년 대학 재학 중에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高等文官試驗行政科)에 합격, 일제 때는 도속겸경부(道屬兼警部), 36년 전남 화순 군수(和順郡守), 38년 황해도 산업과장 겸 농촌진흥과장(産業課長兼農村振興課長), 39년 베이징(北京) 주재 흥아원(興亞院) 사무관,
39년 중국 북경총영사관 영사(北京總領事館領事), 북경대사관 서기관(北京大使館書記官), 44년 충남도 광공부장(鑛工部長) 등을 지내면서 한국인의 경제 자립도 증대와 생활 환경 개선과 민족 자본 형성에 진력하였다.
해방 후 47년 남조선과도정부(南朝鮮過渡政府) 중앙경제위원회 경제기획관(經濟企劃官), 49년 남조선전기(南朝鮮電氣, 株) 부사장(副社長), 51년 경성전기(京城電氣, 株) 전무 취체역(專務取締役)으로서 국가 기간 산업의 원동력이 되는 전력 개발에 지대한 공적을 남겼고, 서울기계제작(株) 사장 등을 지냈다.
3대 국회의원 선거(1954.5.20)에 자유당(自由黨) 공천으로 국회위원(醴泉)에 당선되었다가 사사오입 개헌파동(四捨五入改憲波動)으로 자유당을 탈당(1956)하고, 56년 민주당 중앙당 조직부장(民主黨中央黨組織部長), 5대 민의원 선거(民議院選擧, 1960.7.29) 때는 민주당 공천으로 예천군에서 당선되었다.
민주당 집권 때는 장면(張勉) 내각에 제9대 국방부 장관(1960.8.23), 제23대 내무부 장관(1960.10-1960.11), 제11대 국방부 장관(1961.1-1961.5.16)을 역임하였다.
1961년 5월 16일 황급한 사태(軍事革命)를 보고하기 위하여 반도호텔에 투숙 중인 장면(張勉) 국무총리를 만나러 갔다 오는 길에 시청 앞에서 연행되었다.
가톨릭교리연구소장, 천주교 전국신도회장, 명휘원 이사, 한국가톨릭문화원이사장(1985-1988)을 지냈다.
인격, 학식, 덕망이 출중한 거물급 정객이었다. 로마교황으로부터 성 대그레고리오교황 기사대상(騎士大賞) 훈장(1977)을 받았다.
저서로 <한 삶의 고백(1986)> <석계집(石溪集)> 등이 있고, 번역서로 <어떻게 살 것인가(1977)>, <그리스도의 눈길(1979)>, <제2차 바티칸공의회문헌 해설전집(公議會文獻解說全集, 全6卷, 1986, 譯書)>이 있다.
지보면 마전리 377번지에 흉상(胸像)이 제막(除幕, 1990)되었다.
[解放20年史 1066쪽] : 4.19 이후 1960년 4월 23일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을 방문한 허정(許政) 씨는 연립내각(聯立內閣) 구성과 아울러 내각 명단을 대통령에게 제출했는데, 그 중에 교통부 장관에 현석호 씨가 내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는 당시 홍진기(洪璡基) 내무부 장관에 의하여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解放 20年史 1094-1095쪽] : 1961년 3월 23일 윤보선(尹潽善) 대통령의 주재(主宰)로 열린 비상시국 대책 강구를 위한 회의에 국방부장관 현석호, 국무총리 장면(張勉), 참의원 의장 백낙준(參議院議長白樂濬), 민의원 의장 곽상훈(民議院議長郭尙勳), 신민당위원장 김도연(新民黨委員長金度演), 신민당감사장 유진산(新民黨監事長柳珍山), 신민당정책위원회 의장 양일동(新民黨政策委員會議長梁一東), 조한백(趙漢栢) 씨 등이 참석했는데, 쌍방의 견해가 상반되어 뚜렷한 결론을 얻지 못하고, 결국 상호 노력을 계속한다는 점에만 합의를 보았을 뿐 아무런 얻은 바가 없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慶北大觀 1958, 慶北年鑑 1980, 每日年鑑 1984 1986 1988, 嶺友俱樂部 99號 1982, 光復40年史, 知保面誌 1987, 醴泉文學 3輯 1991)
[인터넷] : 한국전쟁(1950) 후 정계에 투신, 1954년 제3대 예천에서 자유당 소속 민의원에 당선되었으나, 1954년 제2차개헌 때 사사오입개헌 으로 자유당을 탈당하고, 1956년 자유당 탈당 의원, 흥사단, 민주국민당이 합동, 새로 발족시킨 민주당에 입당하여, 1956년 동당 조직부장을 거쳐 1958년 제4대 민의원 선거 때 동당 선거대책위 부의장, 당헌의원 등으로 활약하였다. (kr.encycl.yahoo.com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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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호(政治家 玄錫虎에 對해 알려주세요. 지젤 作成, 照會: 63, 作成日: 04-10-15 12:53) [答辯] : 경상북도 예천 출생.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재학 중인 1933년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고, 졸업 한 뒤 1936년 화순(和順) 군수가 되었다. 1938년 황해도 산업과장, 1939년 베이징[北京] 주재 흥아원(興亞院) 사무관, 1944년 충남 광공부장(鑛工部長)을 지냈다. 광복 후 1947년 중앙경제위원회 기획관, 1949년 남선전기(주) 부사장, 1951년 경성전기(주) 전무를 역임하였다. 한국전쟁 후 정계에 투신, 1954년 제3대 예천에서 자유당 소속 민의원에 당선되었으나, 1954년 제2차 개헌 때 사사오입개헌 으로 자유당을 탈당하고, 1956년 자유당 탈당의원·흥사단·민주국민당이 합동, 새로 발족시킨 민주당에 입당하여, 1956년 동당 조직부장을 거쳐 1958년 제4대 민의원선거 때 동당 선거대책위 부의장, 당헌의원 등으로 활약하였다. 1960년 4·19혁명 후 7월 제5대 민의원 당선에 이어 1961년 5·16군사정변 때까지 내무부장관, 제9·11대 국방부장관을 역임하였다. 이후 정계를 떠나 1967년 가톨릭교리연구소 소장, 1985~1988년 가톨릭문화연구원 이사장으로 있었다. 교황기사대상훈장(교황청)을 받았으며, 저서에 《한 삶의 고백》, 역서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해설 전집》(제1집),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스도의 눈길》 등이 있다.(잎새º 作成 다음新知識 04-10-15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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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1) : 현석호(교황의 훈장을 받은 장관)(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2-07-22 照會 69)
→<예천의 자랑> 제1권(張炳昌 著 2004年) =71~72쪽
→예천의 자랑(345) : 현석호(예천 출신 국방장관의 저서와 번역서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3-09-24 照會 124)
→<예천의 자랑> 제3권(張炳昌 著 2004年) =463~4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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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친환경농업바이오센터, 전국 최대 미생물 생산시설...축하합니다.
예천군친환경농업바이오센터(全國 最大 微生物 生産施設 醴泉 親環境農業바이오센터 竣工) [記事] :
예천군 친환경농업바이오센터 준공식이 2009년 4월 16일 예천농업기술센터에서 김수남 군수를 비롯한 농업인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예천군이 2008년 17억 원을 들인 친환경농업바이오센터는 자치단체에서 직접 운영하는 미생물 생산시설로는 전국 최대 규모다. 이 바이오센터는 생산연구시설 1동(386㎡)에 대형 미생물생산장비(300ℓ)를 비롯한 18종의 최첨단 장비가 갖춰져 유산균, 효모, 광합성균 등 농업용 미생물 6종을 연간 5만ℓ정도 생산해 4천여 농가에 공급한다.
군은 우수 미생물균주 확보를 위해 특허를 출원 중이며, 미생물 원천기술 획득에도 주력하고 있다.
(강성철 記者 嶺南日報 200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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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414
예천군 방문 [記事] :
최종무 강릉시의원은 2009년 4월 20일 오전 7시 경북 예천으로 참살기 선진지 견학에 나서는 강릉시 옥계면 산계2리 주민들을 격려한다.(江原日報 2009-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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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초등학교 제24회동창회(신당초등학교 第24回 創立 同窓會 開催) [記事] :
"친구야 강산이 3번 바뀌었어도 예전모습 그대로구나 정말로 반갑다"
신당초등학교 제24회 창립동창회(회장 장석현)가 2009년 4월 18~19일 1박2일 일정으로 30여 명의 동창들이 참석한 가운데 예천군 용궁면 향석리 여울마을에서 성대히 개최됐다.
이날 동창회는 서울, 부산, 대구 등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60여 명의 동창들을 상대로 동창회 발족을 위한 준비모임을 가진데 이어 31년 만에 창립동창회를 갖게 됐다.
1부 만남의 시간, 체육행사에 이어 2부 행사에서는 떡, 과일, 고기, 술 등으로 준비한 다과회와 함께 6학년 담임을 맡았던 김홍완 은사님 소개, 인사말씀, 사은패 및 기념품 전달, 동창회 임원소개, 노래자랑 순서로 진행됐다.
강산이 3번 바뀌는 동안 안부연락을 취하지 못했던 동창들은 어렴풋이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밤이 깊어질 때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는 등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김홍완 은사님은 인사말을 통해“30년 전 은사를 잊지 않고 불러주어 고맙고 이렇게 성대한 창립동창회 자리를 마련한 제자들의 노고에 축하와 격려를 보낸다.”고 말하고“열심히 가르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이 사회의 일꾼이 되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스승으로서 새삼 고맙게 생각하며 앞으로 더욱 더 발전하는 동창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석현 동창회장은 환영사에서“어렵고 바쁜 시간 속에도 불구하고 창립동창회에 참석해준 동창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모습에 다소 어색함이 묻어나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모든 걱정을 떨쳐버리고 30년 전 초등시절로 되돌아가 동창들간의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신당초등 24회 동창회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협조를 당부 드린다”고 말했다.
62명 동창들의 이름과 함께“저희를 이끌어 주시고 부족함을 채워주신 선생님의 은혜를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동기들의 정성을 이 패에 새겨드립니다.”문구가 새겨진 사은패 전달식에서 동창들은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초대 동창회 임원진으로는 회장 장석현, 부회장 이숙현, 총무 박승도, 대구 지부장 이현주 동창이 만장일치로 66선출됐다.
다과회를 겸한 노래자랑에서 동창들은 30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어깨동무를 하면서 우정과 화합을 다지는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아쉬움 속에 1박2일 일정으로 치러진 창립모임을 무사히 마친 동창들은 회룡포를 둘러본 후 내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한편 48년 10월 31일 개교된 신당초등학교는 99년 예천남부초등학교 신당분교로 격하된 후 총 1,952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2008년 3월 1일 많은 동문들의 아쉬움 속에 폐교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醴泉인터넷放送 2009-04-19 오후 7: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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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제16전투비행단(空軍과 함께, 드높은 하늘 向해 꿈을 날린다! : 第31回 空軍參謀總長盃 Space Challenge 2009(模型航空機 大會)) [記事] :
장차 항공우주시대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의 날개를 달아줄 국내 최대 규모의 항공우주축제 제31회 공군참모총장배 Space Challenge 2009(모형항공기 대회)대회 경북 북부지역 예선이 2009년 4월 18일 공군 제16전투비행단에서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개최됐다.
「공군참모총장배 모형항공기대회」는 1979년 처음 개최되어 지난 31년 동안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하늘에 대한 도전정신과 탐구의욕을 심어준 것은 물론, 해를 거듭하면서 크게 성장하여 이제는 연평균 6만 여명의 선수와 관람객이 참가하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규모의 항공우주축제로 자리 잡았다.
특히, 2009년 대회는 공군 창군 60주년을 맞아 그 의미를 더했으며, 일반 가족들도 별도의 출입조치 없이 자유롭게 행사장을 관람하고,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어, 뜻 깊은 주말을 보낼 수 있었다.
이날 개회식 특별행사에는 일반인들이 평소 즐기기 어려운 항공기 에어쇼는 물론, 군견 시범과 물로켓 발사 시범 등을 마련하였으며, F-5, T-38, T-59 항공기와 각종 항공무기와 장갑차, 특수차량 등의 전시행사와 군악대 공연, 군견 시범, 물로켓 발사 시범, 조종복 입고 사진찍기, 풍선아트, 페이스 페인팅, 종이비행기 날리기 대회 등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한편, 이번 행사에는 예천군, 문경시, 영주시, 안동시 등 부대 인근 지역의 다문화가정 약 120가구, 320여 명을 특별 초청하여 지역민과 함께하는 종합축제로 거듭났다.
(醴泉인터넷放送 2009-04-19 오후 4: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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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 [記事] :
푸른솔의 산행일기 블로그/ 2009.04.19/ 예천 매봉(865m) 나홀로 2시간/ 용문사 15:20 - 왼쪽 계곡 - 능선 15:50 - 정상 16:25 - 오른쪽 능선 - 용문사 17:20/
결혼식에 갔다가 오후에 문경 천주봉에 오르기로 하고 천주사에 주차한 다음 조금 올라가니 산불 감시원이 길목을 지키고 서서 못 올라가게 한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내려와 용문사 뒷산(매봉)을 찾았다. 지도를 준비하지 않아 어디로 올라야 하나 망설이다 무조건 주차장에서 가까운 절 왼쪽 골짜기로 오른다.
리본이 달려있어 따라 올라간다. 다행히 이곳은 지키는 사람이 없다. 이번 달에는 이런저런 행사가 많아 산행을 못하나 걱정을 했었는데 틈을 내어 매주 산을 오를 수 있어서 마음이 개운하다. 벌써 날이 더워서인지 파리가 달려들어 귀찮게 한다.
여기저기서 들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나 자태를 뽐낸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한 장씩 찍어본다. 매년 보는 꽃이지만 또다시 반갑고 새롭다. 나무들 또한 연한 새싹을 조심스레 내보낸다. 모두들 바쁜 움직임을 보인다. 나만 느긋하게 바라보고 사는 것 같다.
온갖 걱정거리가 이 순간만큼은 나를 떠나버리고 평온해진다. 내려가는 길은 자연스레 발걸음이 늦어진다. 괜히 한번 더 어슬렁거려본다. 박중영의 등산산행정보 에서(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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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道覺 大禪師 追悼 11週忌 및 부도 除幕式) [記事] :
도각 대선사 추도 11주기 및 부도 제막식이 2009년 4월 10일 오전 11시 용문면 용문사에서 거행되었다.
이날 보도 제막식에는 용문사 주지 청안 스님을 비롯한 인근 사찰 주지스님, 신도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도각 대선사의 11주기를 맞아 스님의 부도를 제막하며, 올곧은 수행자로서의 삶을 견지해 온 도각 스님의 유훈을 기렸다.
(醴泉自治新聞 2009.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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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체험마을(醴泉郡 아름다운 體驗마을 가꾸기로 奔走 : 管內 體驗마을 5個所에 꽃나무 植栽해 農村 體驗觀光 活性化 圖謀) [記事] :
예천군은 2004년부터 관내에 조성된 녹색농촌체험마을 5개소에 대한 주변 정비와 꽃나무 식재 등 아름다운 체험마을 가꾸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친환경농업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활용한 농촌체험 관광을 활성화시켜 농업가치증진과 농가소득향상을 위해 조성된 녹색농촌체험마을이 체험관과 숙박업 등 건축물 위주로 조성함에 따라 주변 자연경관과 어울리는 꽃나무를 식재하여 찾아오는 도시민들이 쉬고 머물 수 있는 활력 넘치는 체험ㆍ휴양 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추진된 것이다.
아름다운 체험마을 가꾸기 사업은 꽃나무 구입은 예천군에서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식재는 마을 주민 자력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군은 5천만 원의 사업비를 들여 2009년 4월 14일부터는 학가산과 은빛모래가 유난히 빛나는 문래실 체험마을과 조선의 마지막 주막이 있는 삼강주막에 개나리, 철쭉, 진달래, 영산홍 등의 꽃나무를 식재한 데 이어 15일부터는 국내 유일의 곤충연구소가 있는 흰돌마을에 꽃나무를 식재하고 있으며 17일부터는 초간정이 있는 출렁다리마을에 꽃나무를 식재한다.
특히, 예천군은 체험마을 주변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꽃나무 식재와 함께 2009년 봄에 1억 2천만 원을 들여 흰돌 마을에는 전망대를 설치하고 출렁다리 마을에는 출렁다리를 신설하는 등 각종 편의시설을 설치하였으며, 각 마을별로 안내판을 설치하여 찾아오는 도시민들에게 다시 찾아오고 싶은 인상 깊은 체험마을로 가꾸기 위한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황성한 記者 醴泉인터넷放送 2009-04-17 오후 1:2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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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주막(韓國의 로렐라이 언덕을 꿈꾸며) [記事] :
우리나라의 강은 예로부터 다양한 문화의 소재이자 터전이 되어왔다. 4대강 살리기는 그러한 문화를 되살리고 더욱 꽃피게 하는 ‘4대강 문화 살리기’이자 문화콘텐츠로서의 4대강의 재발견이기도 하다. 여러 문화 분야에서 4대강이 어떤 의미를 지녀왔는지 탐색해 본다.<편집자주>
4대강은 이야기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란 신화, 전설, 민담 등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다. 독일의 관광 명소들 가운데 하나인 로렐라이 언덕. 그러나 실제로 로렐라이 언덕 근처를 가보면 그저 평범한, 다소 가파른 강변 언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언덕이 세계적인 브랜드 가치를 지니면서 문화적 의미와 관광 산업적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은, 다만 그에 얽힌 이야기 때문이다. 우리의 4대 강에 유역에도 예로부터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온다.
[낙동강 회화나무 베면 큰일난다?] :
낙동강에는 소박하지만 정감 있는 전설이 전해내려 온다. 경북 예천군의 내성천과 금천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삼강(세 강이 만나는 곳)에 얽힌 전설이다.
이곳은 낙동강을 오르내리던 배들이 반드시 지나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쉬어가기도 하고 술 한 잔을 하고 가기도 했던, 말하자면 낙동강 수운의 정류장 구실을 하던 곳이다.
이 삼강 나루터 및 삼강주막에는 수령 500년에 달하는 회화나무가 지금도 서있다 한다. 전설인즉, 약 300년 전 한 목수가 그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면 돈도 많이 벌고 사고 당하는 액운도 멀리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삼강 나루 주민들은 그 나무가 영험한 나무이기 때문에 베지 말라 말린 것은 당연한 일. 그 나무는 마을의 평안을 지켜주는 신목(神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목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를 베리라 마음먹고 나무 아래서 잠이 들었는데, 머리와 수염이 하얀 노인이 꿈에 나타나 꾸짖었다.
“네가 이 나무를 베면 제 명에 못 살리라.” 화들짝 놀라 꿈에서 깬 목수는 그 길로 그냥 달아났다. 문화체육관광부 홍보지원국
(大韓民國 政策포털 200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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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요(醴泉陶磁器 黃土白磁 特許 出願 : 開浦面 新陰里 醴泉窯 노경호 氏 ) [記事] :
봄을 맞아 특별한 미적 체험을 하고 싶다면 젊은 도공 노경호(37) 씨가 예천도자기의 명성을 알리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개포면 신음리 `예천요 (醴泉窯·옛 개포초등학교)를 찾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예천요 에서는 개인과 단체, 가족 단위의 도자기 체험을 할 수 있다. 도자기체험은 초벌까지 만들어진 1백여 종의 다양한 기물에 직접 천연황토물감으로 문양과 그림을 그려 넣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곳에서는 체험비를 따로 받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필요한 생활식기 등 다양한 기물을 골라 직접 문양과 그림을 그려 넣고 완성된 도자기를 시중가보다 훨씬 싸게 구입할 수 있다.
벌써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이 담긴 도자기 만드는 체험을 했다. 도예가 노경호 씨는 “황토로 문양과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색다른 멋과 느낌을 얻을 수 있다”며 “자신이 직접 만든 도자기를 소장하는 기쁨도 맛볼 수 있어 가족 단위로 찾아오거나 입소문을 듣고 문의전화가 많이 온다”고 말했다.
문경이 고향인 노씨는 군 제대 후인 1995년 처음 도예에 발을 들여놓았다. 도예명장인 문경요(聞慶窯)의 천한봉 선생과 관음요(觀音窯)의 김복만(작고) 선생을 사사했다.
그는 지난 2000년 전통 망댕이 장작가마인 ‘예천요’를 설립하면서 예천과 인연을 맺었다. 이곳에서 도자기 빚기와 연구를 거듭해 꾸준한 성과를 내고 있다. 그는 전국 차(茶)도구 공모대전 특선, 문경한국전통 찻사발 공모대전 입선, 전국 사발공모전 특선 등 여러 차례 입상했을 만큼 쟁쟁한 실력을 갖춘 도예 장인이다.
노씨는 예천도자기의 특색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를 거듭, 철분을 제거한 황토를 굽깎기나 초벌구이를 한 그릇 표면에 바르거나 문양을 그려 황토의 아름다운 빛깔을 내는데 성공했다.
이를 토대로 2008년 8월 철분을 제거한 황토백자 특허를 출원했다. 노씨는 “새로 개발한 황토백자가 예천도자기의 명성을 널리 알리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앞으로 이런 도자기 체험과 전과정을 익힐 수 있는 강좌 마련 등에도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훗날 찻사발을 비롯한 다구, 생활식기, 전통도자기 등 예천도자기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박물관을 건립하는 게 꿈이다.
(권오근 編輯局長 醴泉新聞 2009년 04월 16일 15: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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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호(玄錫虎) :
1907(융희 1)-1988, 지보면 마전리 377번지 석계(石溪) 출신, 호는 석계(石溪), 본관은 연주, 석은 덕기(石隱悳基)의 장남, 종교는 가톨릭,
지보면 만화리 창동의숙(彰東義塾, 16歲), 예천읍 노상리 대창학원 보통과(大昌學院 普通科, 1회) 졸업, 중학교 검정시험(中學校檢定試驗)에 합격, 대구농림학교(大邱農林學校), 경성제대(京城帝大, 現 서울大) 법문학부 법학과(法文學部法學科) 졸업,
1933년 대학 재학 중에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高等文官試驗行政科)에 합격, 일제 때는 도속겸경부(道屬兼警部), 36년 전남 화순 군수(和順郡守), 38년 황해도 산업과장 겸 농촌진흥과장(産業課長兼農村振興課長), 39년 베이징(北京) 주재 흥아원(興亞院) 사무관,
39년 중국 북경총영사관 영사(北京總領事館領事), 북경대사관 서기관(北京大使館書記官), 44년 충남도 광공부장(鑛工部長) 등을 지내면서 한국인의 경제 자립도 증대와 생활 환경 개선과 민족 자본 형성에 진력하였다.
해방 후 47년 남조선과도정부(南朝鮮過渡政府) 중앙경제위원회 경제기획관(經濟企劃官), 49년 남조선전기(南朝鮮電氣, 株) 부사장(副社長), 51년 경성전기(京城電氣, 株) 전무 취체역(專務取締役)으로서 국가 기간 산업의 원동력이 되는 전력 개발에 지대한 공적을 남겼고, 서울기계제작(株) 사장 등을 지냈다.
3대 국회의원 선거(1954.5.20)에 자유당(自由黨) 공천으로 국회위원(醴泉)에 당선되었다가 사사오입 개헌파동(四捨五入改憲波動)으로 자유당을 탈당(1956)하고, 56년 민주당 중앙당 조직부장(民主黨中央黨組織部長), 5대 민의원 선거(民議院選擧, 1960.7.29) 때는 민주당 공천으로 예천군에서 당선되었다.
민주당 집권 때는 장면(張勉) 내각에 제9대 국방부 장관(1960.8.23), 제23대 내무부 장관(1960.10-1960.11), 제11대 국방부 장관(1961.1-1961.5.16)을 역임하였다.
1961년 5월 16일 황급한 사태(軍事革命)를 보고하기 위하여 반도호텔에 투숙 중인 장면(張勉) 국무총리를 만나러 갔다 오는 길에 시청 앞에서 연행되었다.
가톨릭교리연구소장, 천주교 전국신도회장, 명휘원 이사, 한국가톨릭문화원이사장(1985-1988)을 지냈다.
인격, 학식, 덕망이 출중한 거물급 정객이었다. 로마교황으로부터 성 대그레고리오교황 기사대상(騎士大賞) 훈장(1977)을 받았다.
저서로 <한 삶의 고백(1986)> <석계집(石溪集)> 등이 있고, 번역서로 <어떻게 살 것인가(1977)>, <그리스도의 눈길(1979)>, <제2차 바티칸공의회문헌 해설전집(公議會文獻解說全集, 全6卷, 1986, 譯書)>이 있다.
지보면 마전리 377번지에 흉상(胸像)이 제막(除幕, 1990)되었다.
[解放20年史 1066쪽] : 4.19 이후 1960년 4월 23일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을 방문한 허정(許政) 씨는 연립내각(聯立內閣) 구성과 아울러 내각 명단을 대통령에게 제출했는데, 그 중에 교통부 장관에 현석호 씨가 내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는 당시 홍진기(洪璡基) 내무부 장관에 의하여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解放 20年史 1094-1095쪽] : 1961년 3월 23일 윤보선(尹潽善) 대통령의 주재(主宰)로 열린 비상시국 대책 강구를 위한 회의에 국방부장관 현석호, 국무총리 장면(張勉), 참의원 의장 백낙준(參議院議長白樂濬), 민의원 의장 곽상훈(民議院議長郭尙勳), 신민당위원장 김도연(新民黨委員長金度演), 신민당감사장 유진산(新民黨監事長柳珍山), 신민당정책위원회 의장 양일동(新民黨政策委員會議長梁一東), 조한백(趙漢栢) 씨 등이 참석했는데, 쌍방의 견해가 상반되어 뚜렷한 결론을 얻지 못하고, 결국 상호 노력을 계속한다는 점에만 합의를 보았을 뿐 아무런 얻은 바가 없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慶北大觀 1958, 慶北年鑑 1980, 每日年鑑 1984 1986 1988, 嶺友俱樂部 99號 1982, 光復40年史, 知保面誌 1987, 醴泉文學 3輯 1991)
[인터넷] : 한국전쟁(1950) 후 정계에 투신, 1954년 제3대 예천에서 자유당 소속 민의원에 당선되었으나, 1954년 제2차개헌 때 사사오입개헌 으로 자유당을 탈당하고, 1956년 자유당 탈당 의원, 흥사단, 민주국민당이 합동, 새로 발족시킨 민주당에 입당하여, 1956년 동당 조직부장을 거쳐 1958년 제4대 민의원 선거 때 동당 선거대책위 부의장, 당헌의원 등으로 활약하였다. (kr.encycl.yahoo.com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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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호(政治家 玄錫虎에 對해 알려주세요. 지젤 作成, 照會: 63, 作成日: 04-10-15 12:53) [答辯] : 경상북도 예천 출생.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재학 중인 1933년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고, 졸업 한 뒤 1936년 화순(和順) 군수가 되었다. 1938년 황해도 산업과장, 1939년 베이징[北京] 주재 흥아원(興亞院) 사무관, 1944년 충남 광공부장(鑛工部長)을 지냈다. 광복 후 1947년 중앙경제위원회 기획관, 1949년 남선전기(주) 부사장, 1951년 경성전기(주) 전무를 역임하였다. 한국전쟁 후 정계에 투신, 1954년 제3대 예천에서 자유당 소속 민의원에 당선되었으나, 1954년 제2차 개헌 때 사사오입개헌 으로 자유당을 탈당하고, 1956년 자유당 탈당의원·흥사단·민주국민당이 합동, 새로 발족시킨 민주당에 입당하여, 1956년 동당 조직부장을 거쳐 1958년 제4대 민의원선거 때 동당 선거대책위 부의장, 당헌의원 등으로 활약하였다. 1960년 4·19혁명 후 7월 제5대 민의원 당선에 이어 1961년 5·16군사정변 때까지 내무부장관, 제9·11대 국방부장관을 역임하였다. 이후 정계를 떠나 1967년 가톨릭교리연구소 소장, 1985~1988년 가톨릭문화연구원 이사장으로 있었다. 교황기사대상훈장(교황청)을 받았으며, 저서에 《한 삶의 고백》, 역서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해설 전집》(제1집),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스도의 눈길》 등이 있다.(잎새º 作成 다음新知識 04-10-15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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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1) : 현석호(교황의 훈장을 받은 장관)(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2-07-22 照會 69)
→<예천의 자랑> 제1권(張炳昌 著 2004年) =71~72쪽
→예천의 자랑(345) : 현석호(예천 출신 국방장관의 저서와 번역서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3-09-24 照會 124)
→<예천의 자랑> 제3권(張炳昌 著 2004年) =463~4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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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친환경농업바이오센터, 전국 최대 미생물 생산시설...축하합니다.
예천군친환경농업바이오센터(全國 最大 微生物 生産施設 醴泉 親環境農業바이오센터 竣工) [記事] :
예천군 친환경농업바이오센터 준공식이 2009년 4월 16일 예천농업기술센터에서 김수남 군수를 비롯한 농업인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예천군이 2008년 17억 원을 들인 친환경농업바이오센터는 자치단체에서 직접 운영하는 미생물 생산시설로는 전국 최대 규모다. 이 바이오센터는 생산연구시설 1동(386㎡)에 대형 미생물생산장비(300ℓ)를 비롯한 18종의 최첨단 장비가 갖춰져 유산균, 효모, 광합성균 등 농업용 미생물 6종을 연간 5만ℓ정도 생산해 4천여 농가에 공급한다.
군은 우수 미생물균주 확보를 위해 특허를 출원 중이며, 미생물 원천기술 획득에도 주력하고 있다.
(강성철 記者 嶺南日報 200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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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414
예천군 방문 [記事] :
최종무 강릉시의원은 2009년 4월 20일 오전 7시 경북 예천으로 참살기 선진지 견학에 나서는 강릉시 옥계면 산계2리 주민들을 격려한다.(江原日報 2009-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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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초등학교 제24회동창회(신당초등학교 第24回 創立 同窓會 開催) [記事] :
"친구야 강산이 3번 바뀌었어도 예전모습 그대로구나 정말로 반갑다"
신당초등학교 제24회 창립동창회(회장 장석현)가 2009년 4월 18~19일 1박2일 일정으로 30여 명의 동창들이 참석한 가운데 예천군 용궁면 향석리 여울마을에서 성대히 개최됐다.
이날 동창회는 서울, 부산, 대구 등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60여 명의 동창들을 상대로 동창회 발족을 위한 준비모임을 가진데 이어 31년 만에 창립동창회를 갖게 됐다.
1부 만남의 시간, 체육행사에 이어 2부 행사에서는 떡, 과일, 고기, 술 등으로 준비한 다과회와 함께 6학년 담임을 맡았던 김홍완 은사님 소개, 인사말씀, 사은패 및 기념품 전달, 동창회 임원소개, 노래자랑 순서로 진행됐다.
강산이 3번 바뀌는 동안 안부연락을 취하지 못했던 동창들은 어렴풋이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밤이 깊어질 때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는 등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김홍완 은사님은 인사말을 통해“30년 전 은사를 잊지 않고 불러주어 고맙고 이렇게 성대한 창립동창회 자리를 마련한 제자들의 노고에 축하와 격려를 보낸다.”고 말하고“열심히 가르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이 사회의 일꾼이 되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스승으로서 새삼 고맙게 생각하며 앞으로 더욱 더 발전하는 동창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석현 동창회장은 환영사에서“어렵고 바쁜 시간 속에도 불구하고 창립동창회에 참석해준 동창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모습에 다소 어색함이 묻어나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모든 걱정을 떨쳐버리고 30년 전 초등시절로 되돌아가 동창들간의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신당초등 24회 동창회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협조를 당부 드린다”고 말했다.
62명 동창들의 이름과 함께“저희를 이끌어 주시고 부족함을 채워주신 선생님의 은혜를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동기들의 정성을 이 패에 새겨드립니다.”문구가 새겨진 사은패 전달식에서 동창들은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초대 동창회 임원진으로는 회장 장석현, 부회장 이숙현, 총무 박승도, 대구 지부장 이현주 동창이 만장일치로 66선출됐다.
다과회를 겸한 노래자랑에서 동창들은 30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어깨동무를 하면서 우정과 화합을 다지는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아쉬움 속에 1박2일 일정으로 치러진 창립모임을 무사히 마친 동창들은 회룡포를 둘러본 후 내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한편 48년 10월 31일 개교된 신당초등학교는 99년 예천남부초등학교 신당분교로 격하된 후 총 1,952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2008년 3월 1일 많은 동문들의 아쉬움 속에 폐교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醴泉인터넷放送 2009-04-19 오후 7: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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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제16전투비행단(空軍과 함께, 드높은 하늘 向해 꿈을 날린다! : 第31回 空軍參謀總長盃 Space Challenge 2009(模型航空機 大會)) [記事] :
장차 항공우주시대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의 날개를 달아줄 국내 최대 규모의 항공우주축제 제31회 공군참모총장배 Space Challenge 2009(모형항공기 대회)대회 경북 북부지역 예선이 2009년 4월 18일 공군 제16전투비행단에서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개최됐다.
「공군참모총장배 모형항공기대회」는 1979년 처음 개최되어 지난 31년 동안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하늘에 대한 도전정신과 탐구의욕을 심어준 것은 물론, 해를 거듭하면서 크게 성장하여 이제는 연평균 6만 여명의 선수와 관람객이 참가하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규모의 항공우주축제로 자리 잡았다.
특히, 2009년 대회는 공군 창군 60주년을 맞아 그 의미를 더했으며, 일반 가족들도 별도의 출입조치 없이 자유롭게 행사장을 관람하고,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어, 뜻 깊은 주말을 보낼 수 있었다.
이날 개회식 특별행사에는 일반인들이 평소 즐기기 어려운 항공기 에어쇼는 물론, 군견 시범과 물로켓 발사 시범 등을 마련하였으며, F-5, T-38, T-59 항공기와 각종 항공무기와 장갑차, 특수차량 등의 전시행사와 군악대 공연, 군견 시범, 물로켓 발사 시범, 조종복 입고 사진찍기, 풍선아트, 페이스 페인팅, 종이비행기 날리기 대회 등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한편, 이번 행사에는 예천군, 문경시, 영주시, 안동시 등 부대 인근 지역의 다문화가정 약 120가구, 320여 명을 특별 초청하여 지역민과 함께하는 종합축제로 거듭났다.
(醴泉인터넷放送 2009-04-19 오후 4: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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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 [記事] :
푸른솔의 산행일기 블로그/ 2009.04.19/ 예천 매봉(865m) 나홀로 2시간/ 용문사 15:20 - 왼쪽 계곡 - 능선 15:50 - 정상 16:25 - 오른쪽 능선 - 용문사 17:20/
결혼식에 갔다가 오후에 문경 천주봉에 오르기로 하고 천주사에 주차한 다음 조금 올라가니 산불 감시원이 길목을 지키고 서서 못 올라가게 한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내려와 용문사 뒷산(매봉)을 찾았다. 지도를 준비하지 않아 어디로 올라야 하나 망설이다 무조건 주차장에서 가까운 절 왼쪽 골짜기로 오른다.
리본이 달려있어 따라 올라간다. 다행히 이곳은 지키는 사람이 없다. 이번 달에는 이런저런 행사가 많아 산행을 못하나 걱정을 했었는데 틈을 내어 매주 산을 오를 수 있어서 마음이 개운하다. 벌써 날이 더워서인지 파리가 달려들어 귀찮게 한다.
여기저기서 들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나 자태를 뽐낸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한 장씩 찍어본다. 매년 보는 꽃이지만 또다시 반갑고 새롭다. 나무들 또한 연한 새싹을 조심스레 내보낸다. 모두들 바쁜 움직임을 보인다. 나만 느긋하게 바라보고 사는 것 같다.
온갖 걱정거리가 이 순간만큼은 나를 떠나버리고 평온해진다. 내려가는 길은 자연스레 발걸음이 늦어진다. 괜히 한번 더 어슬렁거려본다. 박중영의 등산산행정보 에서(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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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道覺 大禪師 追悼 11週忌 및 부도 除幕式) [記事] :
도각 대선사 추도 11주기 및 부도 제막식이 2009년 4월 10일 오전 11시 용문면 용문사에서 거행되었다.
이날 보도 제막식에는 용문사 주지 청안 스님을 비롯한 인근 사찰 주지스님, 신도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도각 대선사의 11주기를 맞아 스님의 부도를 제막하며, 올곧은 수행자로서의 삶을 견지해 온 도각 스님의 유훈을 기렸다.
(醴泉自治新聞 2009.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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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체험마을(醴泉郡 아름다운 體驗마을 가꾸기로 奔走 : 管內 體驗마을 5個所에 꽃나무 植栽해 農村 體驗觀光 活性化 圖謀) [記事] :
예천군은 2004년부터 관내에 조성된 녹색농촌체험마을 5개소에 대한 주변 정비와 꽃나무 식재 등 아름다운 체험마을 가꾸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친환경농업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활용한 농촌체험 관광을 활성화시켜 농업가치증진과 농가소득향상을 위해 조성된 녹색농촌체험마을이 체험관과 숙박업 등 건축물 위주로 조성함에 따라 주변 자연경관과 어울리는 꽃나무를 식재하여 찾아오는 도시민들이 쉬고 머물 수 있는 활력 넘치는 체험ㆍ휴양 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추진된 것이다.
아름다운 체험마을 가꾸기 사업은 꽃나무 구입은 예천군에서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식재는 마을 주민 자력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군은 5천만 원의 사업비를 들여 2009년 4월 14일부터는 학가산과 은빛모래가 유난히 빛나는 문래실 체험마을과 조선의 마지막 주막이 있는 삼강주막에 개나리, 철쭉, 진달래, 영산홍 등의 꽃나무를 식재한 데 이어 15일부터는 국내 유일의 곤충연구소가 있는 흰돌마을에 꽃나무를 식재하고 있으며 17일부터는 초간정이 있는 출렁다리마을에 꽃나무를 식재한다.
특히, 예천군은 체험마을 주변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꽃나무 식재와 함께 2009년 봄에 1억 2천만 원을 들여 흰돌 마을에는 전망대를 설치하고 출렁다리 마을에는 출렁다리를 신설하는 등 각종 편의시설을 설치하였으며, 각 마을별로 안내판을 설치하여 찾아오는 도시민들에게 다시 찾아오고 싶은 인상 깊은 체험마을로 가꾸기 위한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황성한 記者 醴泉인터넷放送 2009-04-17 오후 1:2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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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주막(韓國의 로렐라이 언덕을 꿈꾸며) [記事] :
우리나라의 강은 예로부터 다양한 문화의 소재이자 터전이 되어왔다. 4대강 살리기는 그러한 문화를 되살리고 더욱 꽃피게 하는 ‘4대강 문화 살리기’이자 문화콘텐츠로서의 4대강의 재발견이기도 하다. 여러 문화 분야에서 4대강이 어떤 의미를 지녀왔는지 탐색해 본다.<편집자주>
4대강은 이야기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란 신화, 전설, 민담 등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다. 독일의 관광 명소들 가운데 하나인 로렐라이 언덕. 그러나 실제로 로렐라이 언덕 근처를 가보면 그저 평범한, 다소 가파른 강변 언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언덕이 세계적인 브랜드 가치를 지니면서 문화적 의미와 관광 산업적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은, 다만 그에 얽힌 이야기 때문이다. 우리의 4대 강에 유역에도 예로부터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온다.
[낙동강 회화나무 베면 큰일난다?] :
낙동강에는 소박하지만 정감 있는 전설이 전해내려 온다. 경북 예천군의 내성천과 금천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삼강(세 강이 만나는 곳)에 얽힌 전설이다.
이곳은 낙동강을 오르내리던 배들이 반드시 지나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쉬어가기도 하고 술 한 잔을 하고 가기도 했던, 말하자면 낙동강 수운의 정류장 구실을 하던 곳이다.
이 삼강 나루터 및 삼강주막에는 수령 500년에 달하는 회화나무가 지금도 서있다 한다. 전설인즉, 약 300년 전 한 목수가 그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면 돈도 많이 벌고 사고 당하는 액운도 멀리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삼강 나루 주민들은 그 나무가 영험한 나무이기 때문에 베지 말라 말린 것은 당연한 일. 그 나무는 마을의 평안을 지켜주는 신목(神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목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를 베리라 마음먹고 나무 아래서 잠이 들었는데, 머리와 수염이 하얀 노인이 꿈에 나타나 꾸짖었다.
“네가 이 나무를 베면 제 명에 못 살리라.” 화들짝 놀라 꿈에서 깬 목수는 그 길로 그냥 달아났다. 문화체육관광부 홍보지원국
(大韓民國 政策포털 200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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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요(醴泉陶磁器 黃土白磁 特許 出願 : 開浦面 新陰里 醴泉窯 노경호 氏 ) [記事] :
봄을 맞아 특별한 미적 체험을 하고 싶다면 젊은 도공 노경호(37) 씨가 예천도자기의 명성을 알리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개포면 신음리 `예천요 (醴泉窯·옛 개포초등학교)를 찾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예천요 에서는 개인과 단체, 가족 단위의 도자기 체험을 할 수 있다. 도자기체험은 초벌까지 만들어진 1백여 종의 다양한 기물에 직접 천연황토물감으로 문양과 그림을 그려 넣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곳에서는 체험비를 따로 받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필요한 생활식기 등 다양한 기물을 골라 직접 문양과 그림을 그려 넣고 완성된 도자기를 시중가보다 훨씬 싸게 구입할 수 있다.
벌써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이 담긴 도자기 만드는 체험을 했다. 도예가 노경호 씨는 “황토로 문양과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색다른 멋과 느낌을 얻을 수 있다”며 “자신이 직접 만든 도자기를 소장하는 기쁨도 맛볼 수 있어 가족 단위로 찾아오거나 입소문을 듣고 문의전화가 많이 온다”고 말했다.
문경이 고향인 노씨는 군 제대 후인 1995년 처음 도예에 발을 들여놓았다. 도예명장인 문경요(聞慶窯)의 천한봉 선생과 관음요(觀音窯)의 김복만(작고) 선생을 사사했다.
그는 지난 2000년 전통 망댕이 장작가마인 ‘예천요’를 설립하면서 예천과 인연을 맺었다. 이곳에서 도자기 빚기와 연구를 거듭해 꾸준한 성과를 내고 있다. 그는 전국 차(茶)도구 공모대전 특선, 문경한국전통 찻사발 공모대전 입선, 전국 사발공모전 특선 등 여러 차례 입상했을 만큼 쟁쟁한 실력을 갖춘 도예 장인이다.
노씨는 예천도자기의 특색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를 거듭, 철분을 제거한 황토를 굽깎기나 초벌구이를 한 그릇 표면에 바르거나 문양을 그려 황토의 아름다운 빛깔을 내는데 성공했다.
이를 토대로 2008년 8월 철분을 제거한 황토백자 특허를 출원했다. 노씨는 “새로 개발한 황토백자가 예천도자기의 명성을 널리 알리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앞으로 이런 도자기 체험과 전과정을 익힐 수 있는 강좌 마련 등에도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훗날 찻사발을 비롯한 다구, 생활식기, 전통도자기 등 예천도자기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박물관을 건립하는 게 꿈이다.
(권오근 編輯局長 醴泉新聞 2009년 04월 16일 15: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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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