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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1895:한씨 엘리트들
예천의 자랑(1895) : 예천의 한씨 엘리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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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환(韓文煥) : 1943- , 예천 출생, 62년 예천농고, 66년 연세대 법학과 졸업, 72년 (주)대한항공 입사, 91년 동 김포국제여객운송지점장(이사 대우), 93년 동 뉴욕여객지점장, 94년 동 이사ㆍ공항여객서비스BU장, 99년 동 김포국제여객운송지점장 겸 신공항건설운영본부장(상무), 2003년 동 종합통제부담당 전무, 한국공항(주) 대표이사 전무, 2005년 동 대표이사 부사장(현)이다.(韓國經濟 2003.1.22, people.chol.com 2004, people.naver.com 2004, 엠파스 人物檢索 2004, 每日名鑑 2005)
한문환(2003 財界 뉴리더 : 新規.陞進 任員 : 大韓航空) [記事] : 한문환 전무, 60세, 예천농고, 연세대 법학 졸업, 종합통제부 담당이다.(韓國經濟 2003-01-21 17:15)
한문환(2005 財界 뉴 리더 ① : 陞進 任員 : 한진그룹) [記事] : 한문환 한국공항 부사장 대표이사, 61세, 예천농고, 연세대 법학과 졸업(韓國經濟 2005-01-1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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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경 : 1963- , 예천농협 하나로마트 판매팀장이다. 농민들이 피땀 흘려 수확한 콩, 조, 찹쌀, 뜰깨, 땅콩 등 각종 잡곡류를 상인들에게 헐값에 판매하는 것을 막기 위해 1994년부터 재래시장을 찾아다니며 잡곡류를 상인들보다 조금 높은 가격으로 수매해 1kg 단위로 소포장해 ''''옹골진 잡곡''''이라는 상표를 부착해 전국 주요도시에 판매, 1999년 87억 원의 판매 실적을 올렸다. 이같이 ''''농민들은 생산'''', ''''농협은 포장과 생산''''이라는 아이디어로 농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아 농협중앙회장상 3회와 지부장 표창 등 10여 회의 각종 상을 수상했다.(每日新聞 20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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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석(日서 最初로 指紋拒否鬪爭 한종석 氏 : 인터뷰) [記事] : ◎“10명뿐인 교포 3세 지문 예외는 허구”/ 등록법등 1∼2세 지위 개선 제자리/ 협상결렬 땐 일서 시민운동 벌일 것//『일본의 협상술에 말려 미봉책으로 재일 한국인 지위 문제를 타결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협상 자체를 결렬시키는 편이 낫습니다….』지난 80년 9월 최초로 지문날인거부투쟁을 벌여 이목을 모았던 재일교포 한종석 씨(61·동경 외국어학원 이사)는 재일한인 지위문제 협상 시한(91년 1월 16일) 2개월을 앞두고 여전히 협상이 답보하고 있는 상황을 개탄하면서,『한일 간 협상이 결렬되면 일본에서 시민운동을 벌여 재일 한국인들의 권리를 쟁취해 나갈 것』이라고 피력하기도 했다. 한씨는 재일 한국인 지위 관련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했다가 1990년 11월 16일 일본으로 떠나기에 앞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한일 양국 정부 간 협상을 지켜보는 재일한국인들의 시각은? =『큰 불안을 느끼고 있다. 협상 시한에 쫓겨 한국 정부가 근본적인 지위 개선을 요구하지도 못하고, 일본 정부가 깔아논 노선에서 협상을 마무리 짓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지난(1990년) 4월 30일 한일 외무장관 회담 당시 타결된 것은 앞으로 태어날 3세 관련 합의 뿐이며, 현재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70만 12세의 지위 개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재일 한국인 대부분은 현재 진행 중인 12세 관련 협의가 지문 날인 적용 배제 등 핵심적인 사항을 피해 성과없이 끝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현재 태어난 3세는 얼마나 되나? =『71년 1월 17일 이후에 태어난 사람의 자녀가 협정 3세다. 지금 겨우 10명 정도며 이들이 지문 날인 연령이 되는 것은 16년 후다.』 ■일본 정부에 대한 요구는 한 마디로 무엇인가? =『최소한 해방 전부터 일본에 거주해온 협정 영주권자 35만 명에 대해서는 내국인과 동일한 대우를 하라는 것이다. 이들 협정 영주권자들을 지문 날인 의무자로 규정하고 있는 외국인등록법에서 제외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재일 한국인을 타외국인들과 같은 차원에서 보는 관념부터 버려야 한다.』■내국인과 동일하게 대우하는 방법은? =『외국인등록법 적용을 배제하고 내국인 호적 사용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미 일본 관청들은 재일 한국인들에게 호적이나 다름없는「외국인등록원호」를 떼어 오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일본 정부는「내국인과 동일한 대우를 원하면 귀화하라」는 입장인데? =『일본에서의 귀화는 완전히 뿌리를 감추는 것이다. 성을 바꿔야 하는 것은 물론, 한국인 형제 친적들과의 교제마저 피해야 일본인으로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한 마디로 민족성을 말살시키려는 굴욕적인 동화 정책이다.』■한국 정부에 대한 요구는? =『재일 한국인들은 일본 사회에서 모든 의무를 다하면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일본인들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무엇이 그리 송구스러운지 협상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재일 한국인 지위 문제는 우리가 일본 정부로부터 시혜를 받는 게 아니라, 당연한 권리의 주장이란 점을 정부 관계자들은 인식해야 한다.』 ■현재 일본에서 지문 날인을 거부하는 한국인은 얼마나 되나? =『약 8백여 명이다. 현재 지역적으로 그룹이 형성돼 있으나, 연내에 전국적인 연합체를 만들 계획이다.』●한씨는 지문 날인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지난 83년 기소돼 89년 면소될 때까지 줄곧 법정 투쟁을 벌여왔다. 경북 예천이 고향인 그는 여덟 살 때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이주, 한 평생을 일본에서 살아왔으며, 90년 8월「지문 날인 거부자가 재판한 일본」이라는 자신의 투쟁기를 내기도 했다.(김승영 記者 朝鮮日報 199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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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섭(韓重燮) : 1951- , 용문면 상금곡리 358번지 출신, 용문초등, 대창중, 대창고, 경희대 화공학과 졸업, 90년 초정 권창륜의 제자, 용문면 상금곡리 청람재에서 마을공부방과 예천읍 동본리 명당서예학원(명당서실) 원장이다. 예천향교 장의, 경도대 한문 강사, 국제서법예술연합회(국서련) 회원, 경북서예대전 추천작가이다. 96년 제8회 대한민국서예대전(大韓民國書藝大展) 한문부문(漢文部門)에 입선, 97년 제9회 동 대전 한문부문에 입선하여 그 작품은 1997년 7월 28일부터 8월 10일까지 경기도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는 등 경북서예대전 특선 8회, 동 입선 2회, 대한민국서예대전 입선 3회이다. 예천향교 충효교실 강사, 국민홍보요원이다. 문화체육부장관상, 예천군민상과 봉사상을 받았다. 2002년 예천서예인연합회 초대 회장에 선출되었다.(醴泉文學 23輯 2001, 醴泉新聞 1997.7.31 2002.2.7)
한중섭(한중섭 明堂書室 院長 國展 書藝部門 入選) [記事] : 예천읍 명당서실 한중섭 원장이 2002년 8월 28일 발표된 2002년 제21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에 입선됐다. 작품명은 `중용장구서문절록''''으로 4번째 수상작, 입선작은 2002년 9월 7일부터 18일까지 국립미술관에 전시되며, 시상식은 개막일 오전 11시에 열렸다. 한중섭 원장은 초정 권창륜 선생 문하생으로 예천서예인연합회 회장, 경북도 도전 초대작가, 명당서실 원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용문면 청람제 마을공부방을 운영한다. 또한 매주 화요일 1시부터 명당서실에서 `맹자''''를 강의하고 있다.(醴泉新聞 2002-09-12 17:44:16)
한중섭(韓國美展 書藝部門 特選 : 明堂書室 韓重燮 院長) [記事] : 2006년 4월 14일 한국미술협회가 주최한‘제25회 대한민국미술대전’심사 발표 결과 서예부문에서 예천읍 명당서실 한중섭 원장이 특선의 영예를 안았다. 출품작은 7언절구 예서체로 쓴 왕창령시 출새행(出塞行)으로 특선을 차지했다. 한중섭 원장은 지난 96년 입선을 시작으로 입선 5회, 특선 2회를 수상,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의 요건을 갖춰 왕성한 활동이 기대된다.“못난 제자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을 아끼지 않으신 권창륜 선생님의 은혜에 고개숙여 감사드린다”며,“늘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더욱 매진해 예향 예천을 빛내고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서예인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수상 소감을 피력했다. 또한,“관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예인들의 권익과 화합을 위해 앞장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 수상작은 2006년 5월 3일부터 9일까지 7일 간 국립현대미술관 제1전시실에 전시된다. 한중섭 원장은 경희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 성균관 진사과 교육을 이수했으며, 지난 91년 초정 권창륜 선생 문하에서 본격적인 서예 공부를 시작했다. 그동안 예천향교 장의, 충효교실 강사, 유림회관 한문강사, 경상북도 서예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예천군서예인연합회 회장, 청년유도회 예천지부 회장을 맡아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후진 양성을 위해 예천읍에서 명당서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예천군민상, 체육청소년부 장관상, 예천군문화대상 봉사상, 문화체육부 장관상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가족으로는 부인 이하자(54) 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백승학 記者 醴泉新聞 2006년 04월 20일 09:14:57)
→예천의 자랑(1049) : 금당실 출신 한중섭, 14일 한국미전 특선(附 예천인/교사 학생 13명, 어제 과기부장관 표창)....축하합니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6-04-20 照會 1164)
→예천의 자랑(1693) : 조용래 社長(祝김영진.한중섭/예천방문219)(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8-07-25 照會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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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 양궁 선수(洋弓選手), 예천초등, 예천여중, 예천여고, 안동대 체육학과 졸업, 1989년 8월 21일 여고생으로 제10회 화랑기양궁대회(花郞旗洋弓大會)에서 국가대표들을 물리치고 우승, 전미(全美)오픈대회 개인 3위와 단체 우승(1990), 종별선수권대회 대학부 개인 우승(1993), 남녀종별선수권대회에 실업팀 예천군청 소속으로 출전해 5관왕,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1994)에서 개인, 단체부문 동(銅)메달을 획득하였다.(嶺南日報 1989.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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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환(韓文煥) : 1943- , 예천 출생, 62년 예천농고, 66년 연세대 법학과 졸업, 72년 (주)대한항공 입사, 91년 동 김포국제여객운송지점장(이사 대우), 93년 동 뉴욕여객지점장, 94년 동 이사ㆍ공항여객서비스BU장, 99년 동 김포국제여객운송지점장 겸 신공항건설운영본부장(상무), 2003년 동 종합통제부담당 전무, 한국공항(주) 대표이사 전무, 2005년 동 대표이사 부사장(현)이다.(韓國經濟 2003.1.22, people.chol.com 2004, people.naver.com 2004, 엠파스 人物檢索 2004, 每日名鑑 2005)
한문환(2003 財界 뉴리더 : 新規.陞進 任員 : 大韓航空) [記事] : 한문환 전무, 60세, 예천농고, 연세대 법학 졸업, 종합통제부 담당이다.(韓國經濟 2003-01-21 17:15)
한문환(2005 財界 뉴 리더 ① : 陞進 任員 : 한진그룹) [記事] : 한문환 한국공항 부사장 대표이사, 61세, 예천농고, 연세대 법학과 졸업(韓國經濟 2005-01-1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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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경 : 1963- , 예천농협 하나로마트 판매팀장이다. 농민들이 피땀 흘려 수확한 콩, 조, 찹쌀, 뜰깨, 땅콩 등 각종 잡곡류를 상인들에게 헐값에 판매하는 것을 막기 위해 1994년부터 재래시장을 찾아다니며 잡곡류를 상인들보다 조금 높은 가격으로 수매해 1kg 단위로 소포장해 ''''옹골진 잡곡''''이라는 상표를 부착해 전국 주요도시에 판매, 1999년 87억 원의 판매 실적을 올렸다. 이같이 ''''농민들은 생산'''', ''''농협은 포장과 생산''''이라는 아이디어로 농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아 농협중앙회장상 3회와 지부장 표창 등 10여 회의 각종 상을 수상했다.(每日新聞 20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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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석(日서 最初로 指紋拒否鬪爭 한종석 氏 : 인터뷰) [記事] : ◎“10명뿐인 교포 3세 지문 예외는 허구”/ 등록법등 1∼2세 지위 개선 제자리/ 협상결렬 땐 일서 시민운동 벌일 것//『일본의 협상술에 말려 미봉책으로 재일 한국인 지위 문제를 타결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협상 자체를 결렬시키는 편이 낫습니다….』지난 80년 9월 최초로 지문날인거부투쟁을 벌여 이목을 모았던 재일교포 한종석 씨(61·동경 외국어학원 이사)는 재일한인 지위문제 협상 시한(91년 1월 16일) 2개월을 앞두고 여전히 협상이 답보하고 있는 상황을 개탄하면서,『한일 간 협상이 결렬되면 일본에서 시민운동을 벌여 재일 한국인들의 권리를 쟁취해 나갈 것』이라고 피력하기도 했다. 한씨는 재일 한국인 지위 관련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했다가 1990년 11월 16일 일본으로 떠나기에 앞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한일 양국 정부 간 협상을 지켜보는 재일한국인들의 시각은? =『큰 불안을 느끼고 있다. 협상 시한에 쫓겨 한국 정부가 근본적인 지위 개선을 요구하지도 못하고, 일본 정부가 깔아논 노선에서 협상을 마무리 짓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지난(1990년) 4월 30일 한일 외무장관 회담 당시 타결된 것은 앞으로 태어날 3세 관련 합의 뿐이며, 현재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70만 12세의 지위 개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재일 한국인 대부분은 현재 진행 중인 12세 관련 협의가 지문 날인 적용 배제 등 핵심적인 사항을 피해 성과없이 끝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현재 태어난 3세는 얼마나 되나? =『71년 1월 17일 이후에 태어난 사람의 자녀가 협정 3세다. 지금 겨우 10명 정도며 이들이 지문 날인 연령이 되는 것은 16년 후다.』 ■일본 정부에 대한 요구는 한 마디로 무엇인가? =『최소한 해방 전부터 일본에 거주해온 협정 영주권자 35만 명에 대해서는 내국인과 동일한 대우를 하라는 것이다. 이들 협정 영주권자들을 지문 날인 의무자로 규정하고 있는 외국인등록법에서 제외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재일 한국인을 타외국인들과 같은 차원에서 보는 관념부터 버려야 한다.』■내국인과 동일하게 대우하는 방법은? =『외국인등록법 적용을 배제하고 내국인 호적 사용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미 일본 관청들은 재일 한국인들에게 호적이나 다름없는「외국인등록원호」를 떼어 오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일본 정부는「내국인과 동일한 대우를 원하면 귀화하라」는 입장인데? =『일본에서의 귀화는 완전히 뿌리를 감추는 것이다. 성을 바꿔야 하는 것은 물론, 한국인 형제 친적들과의 교제마저 피해야 일본인으로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한 마디로 민족성을 말살시키려는 굴욕적인 동화 정책이다.』■한국 정부에 대한 요구는? =『재일 한국인들은 일본 사회에서 모든 의무를 다하면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일본인들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무엇이 그리 송구스러운지 협상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재일 한국인 지위 문제는 우리가 일본 정부로부터 시혜를 받는 게 아니라, 당연한 권리의 주장이란 점을 정부 관계자들은 인식해야 한다.』 ■현재 일본에서 지문 날인을 거부하는 한국인은 얼마나 되나? =『약 8백여 명이다. 현재 지역적으로 그룹이 형성돼 있으나, 연내에 전국적인 연합체를 만들 계획이다.』●한씨는 지문 날인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지난 83년 기소돼 89년 면소될 때까지 줄곧 법정 투쟁을 벌여왔다. 경북 예천이 고향인 그는 여덟 살 때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이주, 한 평생을 일본에서 살아왔으며, 90년 8월「지문 날인 거부자가 재판한 일본」이라는 자신의 투쟁기를 내기도 했다.(김승영 記者 朝鮮日報 199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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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섭(韓重燮) : 1951- , 용문면 상금곡리 358번지 출신, 용문초등, 대창중, 대창고, 경희대 화공학과 졸업, 90년 초정 권창륜의 제자, 용문면 상금곡리 청람재에서 마을공부방과 예천읍 동본리 명당서예학원(명당서실) 원장이다. 예천향교 장의, 경도대 한문 강사, 국제서법예술연합회(국서련) 회원, 경북서예대전 추천작가이다. 96년 제8회 대한민국서예대전(大韓民國書藝大展) 한문부문(漢文部門)에 입선, 97년 제9회 동 대전 한문부문에 입선하여 그 작품은 1997년 7월 28일부터 8월 10일까지 경기도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는 등 경북서예대전 특선 8회, 동 입선 2회, 대한민국서예대전 입선 3회이다. 예천향교 충효교실 강사, 국민홍보요원이다. 문화체육부장관상, 예천군민상과 봉사상을 받았다. 2002년 예천서예인연합회 초대 회장에 선출되었다.(醴泉文學 23輯 2001, 醴泉新聞 1997.7.31 2002.2.7)
한중섭(한중섭 明堂書室 院長 國展 書藝部門 入選) [記事] : 예천읍 명당서실 한중섭 원장이 2002년 8월 28일 발표된 2002년 제21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에 입선됐다. 작품명은 `중용장구서문절록''''으로 4번째 수상작, 입선작은 2002년 9월 7일부터 18일까지 국립미술관에 전시되며, 시상식은 개막일 오전 11시에 열렸다. 한중섭 원장은 초정 권창륜 선생 문하생으로 예천서예인연합회 회장, 경북도 도전 초대작가, 명당서실 원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용문면 청람제 마을공부방을 운영한다. 또한 매주 화요일 1시부터 명당서실에서 `맹자''''를 강의하고 있다.(醴泉新聞 2002-09-12 17:44:16)
한중섭(韓國美展 書藝部門 特選 : 明堂書室 韓重燮 院長) [記事] : 2006년 4월 14일 한국미술협회가 주최한‘제25회 대한민국미술대전’심사 발표 결과 서예부문에서 예천읍 명당서실 한중섭 원장이 특선의 영예를 안았다. 출품작은 7언절구 예서체로 쓴 왕창령시 출새행(出塞行)으로 특선을 차지했다. 한중섭 원장은 지난 96년 입선을 시작으로 입선 5회, 특선 2회를 수상,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의 요건을 갖춰 왕성한 활동이 기대된다.“못난 제자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을 아끼지 않으신 권창륜 선생님의 은혜에 고개숙여 감사드린다”며,“늘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더욱 매진해 예향 예천을 빛내고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서예인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수상 소감을 피력했다. 또한,“관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예인들의 권익과 화합을 위해 앞장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 수상작은 2006년 5월 3일부터 9일까지 7일 간 국립현대미술관 제1전시실에 전시된다. 한중섭 원장은 경희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 성균관 진사과 교육을 이수했으며, 지난 91년 초정 권창륜 선생 문하에서 본격적인 서예 공부를 시작했다. 그동안 예천향교 장의, 충효교실 강사, 유림회관 한문강사, 경상북도 서예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예천군서예인연합회 회장, 청년유도회 예천지부 회장을 맡아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후진 양성을 위해 예천읍에서 명당서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예천군민상, 체육청소년부 장관상, 예천군문화대상 봉사상, 문화체육부 장관상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가족으로는 부인 이하자(54) 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백승학 記者 醴泉新聞 2006년 04월 20일 09:14:57)
→예천의 자랑(1049) : 금당실 출신 한중섭, 14일 한국미전 특선(附 예천인/교사 학생 13명, 어제 과기부장관 표창)....축하합니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6-04-20 照會 1164)
→예천의 자랑(1693) : 조용래 社長(祝김영진.한중섭/예천방문219)(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8-07-25 照會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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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 양궁 선수(洋弓選手), 예천초등, 예천여중, 예천여고, 안동대 체육학과 졸업, 1989년 8월 21일 여고생으로 제10회 화랑기양궁대회(花郞旗洋弓大會)에서 국가대표들을 물리치고 우승, 전미(全美)오픈대회 개인 3위와 단체 우승(1990), 종별선수권대회 대학부 개인 우승(1993), 남녀종별선수권대회에 실업팀 예천군청 소속으로 출전해 5관왕,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1994)에서 개인, 단체부문 동(銅)메달을 획득하였다.(嶺南日報 1989.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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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