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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1930:황병태議員(祝전장홍等3件/예천방문448)
예천의 자랑(1930) : 감천면 덕율리 출신 황병태 국회의원(附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 전장홍, 서예 도대회 최우수상...축하합니다/예천게이트볼연합회 한천분회, 도대회 1위...축하합니다/용문면 방송리 출신 김선도, 기술혁신기업 인증받아...축하합니다/예천방문 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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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黃秉泰) : 1935- , 감천면 덕율2리 덕밤 출신, 본관은 평해, 감천초등(19회), 대구농림중(41회), 54년 대구 영남고(3회), 58년 서울대 경제과(12회), 76년 미국 하바드대 행정대학원 졸업(行政學 碩士), 79년 미국 켈리포니아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 56년 제7회 고등고시 외교과(外交科) 합격, 57년 외무부 아주과(亞洲科) 사무관, 58년 동 3등 서기관, 상공부 공정과, 59년 동 수출과 사무관, 61년 경제기획원 공차관과장(公借款課長), 67년 동 경제협력국장, 69년 동 조사통계국장, 71년동 운영 차관보, 79년 한국개발연구원(KID) 연구위원, 81년 동 원장, 82년 경제기획원 자문위원, 82년 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84년 동 총장 등을 지내면서 일련의 연구 분야에서 책을 놓지 않고 계속 노력했다. 88년 통일민주당 부총재, 경우회회장, 88년 제13대 국회의원(서울 江南甲, 民主), 민주당 정책심의회 의장, 90년 민자당(民自黨) 국회의원, 민자당 강남갑지구당(江南甲地區黨) 위원장, 민자당 당무위원, 강남산악회(江南山岳會)와 강남여성산악회 고문, 92년 1.3정우회 부회장, 민주산악회 부회장, 93년 주중국 대사(駐中國大使), 민자당 당무위원, 93년 한국정치발전연구회 부이사장, 96-97년 제15대 국회의원(聞慶 醴泉, 新韓國黨), 국회재경위원장을 지냈다. 경산대 총장, 대구한의대 총장을 지냈다. 녹조근정훈장(綠條勤政勳章, 1973), 황조근정훈장(黃條勤政勳章), 홍조근정훈장(紅條勤政勳章), 2004년 미국 캔터기주 기사(Kentucky Colonel) 작위를 받았다. <유교문화(儒敎文化)와 근대화>라는 제목으로 박사 학위 논문(博士學位論文)을 제출하여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저서로 <자본주의와 민주정치>, <경제주의의 종언>, <민중과 경제(共)>, <유교와 현대화(韓中日比較, 中國語版)>, <유학여현대화(儒學與現代化)>(韓中日 儒學比較硏究) 등을 출판하였다.
[月刊朝鮮 1993年 11月號 414-415쪽] : 외무고시(外務高試)에 합격하기는 했으나 관리 생활은 주로 경제기획원에서 보냈다. 경제기획원 차관보(次官補)를 끝으로 그는 미국 유학을 떠났고, 귀국해서는 학자로 지냈다. 하지만 그는 학자로 일관하지도 않았다. 한국외국어대(韓國外國語大) 총장 시절 김영삼(金泳三) 야당 총재를 만나 총재의 정치외교 고문 역할을 하며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서울 강남구(江南區)에서 13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러던 그는 김영삼 정부가 탄생하면서 1993년 5월 말에 북경 주재(北京駐在) 한국대사(韓國大使)가 되었다. 그의 다양한 경력만큼 그에게는 소문도 많다. 경제기획원 차관보 시절이던 3공화국 시절 그는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정치 자금을 도맡아 요리한 사람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고문 역할을 하면서도 3당 통합의 아이디어를 김 대통령에게 제시한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다.(嶺友俱樂部 99號 1982, 每日年鑑 1984 1985 1986 1988, 醴泉文學 6輯 1992, 每日名鑑 1996 1997, 韓國을 움직이는 人物들 1997, 인터넷 每日名鑑 2001, 醴泉新聞 200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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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黃秉泰 駐中大使/ 3黨 統合企劃 YS 側近 參謀) [記事] : 87년 대선이후 측근에서 일해온 김영삼 대통령의 핵심 참모. 풍부한 지식과 일반의 예측을 뛰어넘는 아이디어로 3당 통합을 기획하고 성사시켰다. 김 대통령이 13대 대선에서 패배한 보름만에 그의 참모로 정계에 투신했을 만큼 과단성과 통찰력도 있다. 원외에 있을 때도 수시로 김 대통령이 불러 각종 조언을 들었다. ▲경북 예천·58세 ▲서울대 상대 ▲하버드대 대학원 행정학 석사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 ▲경제기획원 차관보 ▲외국어대 총장 ▲13대 의원 ▲통일민주당 부총재(朝鮮日報 1993-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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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黃秉泰 駐中大使 : 얼굴) [記事] : 정ㆍ관ㆍ학계를 두루 거쳤으며 순발력과 수완이 뛰어나다는 평.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으로 35세 때 경제기획원 운영차관보까지 지냈을 정도로 출세 가도를 달렸으나 해직되는 등 한 때 좌절을 겪기도. 87년 대선 직후 당시 민주당 총재였던 김영삼 대통령에게 발탁돼 정계에 들어온 이후 줄곧 김 대통령을 옆에서 도와왔다. △경북 예천 58세 △서울대 △경제기획원 차관보 △외국어대 총장 △13대 의원(東亞日報 1993-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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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黃秉泰 駐中 大使 오늘 歸國 ; 中 강택민 等 最高位 3人 訪韓 成事 "成果 ") [記事] : 황병태 주중 한국 대사가 1995년 12월 10일 임지를 떠나 귀국한다. 황 대사는 동년 11월 13일부터 17일까지 계속된 강택민(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일정이 끝난 직후 사임서를 냈다. 그는 1996년 총선에 고향인 경북 예천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하기 위해 사임했으며, 사임의 뜻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직접 밝혔다는 것이 본인의 말이다. 초대 로재원 대사에 이어 제2대 주중 한국대사로 지난 92년 5월에 부임 2년 반 동안 일해온 황 대사는 한일도 많았고 구설수에도 많이 올랐다. 북경에 도착한 그는 과거 3공화국 시절의 경제기획원 관료 출신답게 항공기 자동차 hdtv(고화질tv) tdx(전전자전화교환기) 원자력발전 등 5개 분야를 중심으로 한 한중 간 산업 협력이라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추진하는 열성을 보여주었다. 그는 1994년과 1995년 사이에는 리붕(리펑) 총리 교석(차오스)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등 중국의 현직 최고지도자 3명의 방한을 모조리 성사시켜 외교관으로서도 성공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황 대사는 그러나 1994년 3월 김 대통령의 방중 때 정종욱 대통령 외교안보수석과 불화를 빚어 말썽을 일으켰고, 평소 업무에도 김 대통령의 측근임을 과시 직접 청와대비서실에 전화를 걸어 일을 추진하는 등 외무부 당국자들의 머리를 아프게 하기도 했다. 그는 이 번 사임 때도 아직 후임이 채 결정되지 않았는데 1996년 4월에 출마하려면 시간이 모자란다며 막중한 주중 한국대사 자리를 최소한 1996년 1월 중순까지 1개월 이상 공석으로 만드는 매끄럽지 못한 일처리 모습을 보여주었다. 황 대사가 이임하게 되자 강택민 국가주석ㆍ리붕 총리ㆍ진기위 국방부장 등 최고위 지도자들이 이례적으로 황 대사에게 환송연을 베풀어 주는 등 극진한 대접을 했다. 특히 강 주석은 전례없이 황 대사에게 리백의 시를 친필로 써서 선물하기도 했다.(박승준 記者 朝鮮日報 199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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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聞慶·醴泉서 出師表 낸 黃秉泰 前 議員) [記事] : 황병태 전 주중대사(61)가 새로운 정치 도전의 테이프를 끊었다. 그는 1996년 3월 8일 신한국당 경북 문경·예천지구당 임시대회에서 신임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황 위원장은 정·관·학계를 두루 거치면서 다변에 수재형으로 순발력과 수완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35세의 젊은 나이에 경제기획원 운영차관보로 발탁, 60∼70년대 수출 실무를 주도했고, 84년에는 평교수 생활 2년만에 한국외대 총장으로 보임됐다. 그의 정계 입문은 87년 대선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의 권유로 부총재와 정책위의장·총재특보 등을 거치며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13대 총선 때 서울 강남갑에서 당선된 그는 14대 때 낙선의 고배를 마신 뒤 93년 5월 문민정부 초대 주중대사로 변신했다. 당시 폭넓은 식견과 타고난「끼」로 외교가에서「학자대사」「문화대사」로 불렸다. 이 번 공천에서 그는 선거구가 통합된 이 지역 현역 의원 2명을 제치고 정계에 복귀해 당내 민주계로서 변함없는 파워를 과시했다. 그는 15년 동안 날마다 1천 번의 줄넘기로 하루를 마감하면서,『난관을 뛰어넘는 의지의 도약』을 되새겨왔다. 화려한 조명 속에 숨돌릴 틈도 없이 달려온 그가 제2의 비상에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박찬구 記者 서울新聞 1996-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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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黃秉泰) [記事] : 국회의원 선거 문경ㆍ예천지구에서 황병태가 당선되었다. 황병태(61)는 감천면 덕율리 출신, 신한국당, 미국 버클리대학원 졸업, 한국외대 총장, 경제기획원 차관보를 지냈다. 황병태(신한, 30,651표), 황병호(黃丙鎬, 예천읍 노상리 출신, 국민, 2,046표), 안희대(安熙大, 용궁면 월오리 출신, 민주, 3,587표), 신국환(辛國煥, 개포면 이사리 출신, 자민, 14,919표), 이상원(李相源, 문경 출신, 무소속, 3,051표), 이승무(李昇茂, 문경 출신, 무소속, 29,987표), 최주영(崔周永, 유천면 사곡리 출신, 무소속, 3,904표)이다.(每日新聞 1996.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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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新韓國黨 黃秉泰 平統委員長) [記事] : 황병태 국회의원 당선자(문경ㆍ예천)는 남북 현안인 ''''4자회담'''' 성사 여부에 대해, "결국 북한이 수용할 것"이라며 낙관적인 견해를 밝히면서 북한 내부 사정에 대한 정보도 소개했다. 신한국당 평화통일위원장을 맡은 그는 지금 북한 체제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을 극심한 식량난으로 분석한 뒤, "북한이 미국, 일본 등에 식량 원조의 손길을 뻗치고 있지만, 결국 중국의 도움 유무가 체제 유지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김정일(金正日)은 ''''얼굴 마담''''에 지나지 않으며, 실권은 군부가 잡고 있기 때문에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않아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또 현재 한반도 주변국들 모두가 갑작스런 북한 체제 붕괴에 대해 대단히 우려를 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현체제 유지를 강하게 원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나라도 북한의 난민 유입을 수용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선통일 후통합''''보다는 ''''선통합 후통일'''' 입장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황 당선자는 최근 대권 후보들이 잇따라 완전 경선을 주장하고 있는데 대해, "결국 그렇게 되겠느냐"며 대통령의 의중이 중요함을 시사했다. 그는 이어 차기 정권 탄생에도 대구ㆍ경북 지역의 향배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면서 인구면에서 월등히 앞선 영남 지역에서 대권 후보가 나올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최근 당내 세대 교체 흐름과 관련, "청와대 당직 임명 때 보니 나같은 연배는 이홍구(李洪九) 대표 등 5명 정도 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 대다수는 젊은 사람들이어서 세대 교체를 실감했다"면서, "그러나 경륜도 필요한 것 아니냐"며 곱지않은 시선도 표출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문경ㆍ예천 지역의 지역 갈등과 관련, 몇 개의 시군 지역을 대표하는 현재 선거구제는 항상 지역 대결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국회의원 수가 다소 늘어나더라도 분리해야 하는 입장이다.(李憲泰 記者 每日新聞 1996.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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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黃秉泰 議員 누구인가/ 87年 상도동 캠프 合流 政治的 因緣 : 該博한 知識言辯 卓越 두터워) [記事] : 국회재경위원장인 신한국당 황병태 의원은 1997년 2월 12일 검찰출두를 앞두고 이날 아침에만 해도 검찰소환 사실을 부인했다. 황 의원은 이 날 아침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검찰로부터 연락을 받은 바 없다』며 소환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한 때는 가족을 통해『예천에 내려가 있다』고 연막을 피웠다. 그러면서 그는『재경위원장으로 한보로부터 로비를 받았느냐』는 물음에는『무엇이라고 말할 입장이 아니다』며,『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만 언급하는 등 적극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는 한보 정태수 총회장을 아느냐는 질문에는,『내가 지금 안다고 하든 모른다고 하든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했고, 재차 묻자,『그 것이 중요한가. 전화해 줘 고맙다. 미안하다』고 말을 끊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전 날 저녁 검찰로부터 소환을 통보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황 의원은 소환을 통보받은 뒤 측근에게 12일 아침 8시 예약했던 예천행 비행기표를 취소시키고 예천지역구 행사 일정도 무기 연기시키도록 지시했다. 그는 오전에 역삼동 자택에서 정계 요로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혐의 내용을 확인하는 등 분주했으며 수행비서만 대동한 채 강남 모처에서 지인 및 변호사 등과 만나 검찰 소환에 대비해 법률 자문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황 의원은 김영삼 대통령이 87년 대선에서 실패한 직후 외대 총장에서 통일민주당부 총재로「상도동캠프」에 합류하면서 당시 김 총재와 정치적 인연을 맺었다. 그는 88년 신정치 1번지인 강남갑에 출마해 당선된 뒤 정책위의장 등을 지내면서 해박한 지식과 언변 등으로 정계 입문 1년만에 김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부상하면서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전력을 쏟았다. 이를 위해 그는 88년부터「3당통합」이라는 당시에는 상상을 초월하는「작품」을 노태우 대통령 진영과 구상, 이를 관철시키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는 민주계 가신 그룹의 시기와 질시에다 92년 14대 총선에서 국민당 김동길 후보에게 낙선하는 바람에 김 대통령의 신임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해 마침내 현정권 출범과 함께 주중대사 자리를 맡아 2년 8개월 동안 권력 핵심에서 벗어난 생활을 해왔다. 황 의원은 15대 총선에서는 여권 핵심의 「외면」속에서도 자신의 고향인 문경예천에서 출마, 천신만고 끝에 당선돼 국회재경위원장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그는 재기가 넘치는 반면에「말이 앞서는 행태」로 여러 차례 설화를 겪기도 했다. 3당합당을 전후해 김 대통령이 그에게 특별함구령을 내리기도 했으며, 주중 대사 시절,『중국이 한반도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게 한반도 평화 유지를 위해 바람직하다』는「중국역할론」을 제기, 곤욕을 치렀다. 황 의원은 경제기획원 과장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 속에서 외자도입업무를 총괄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으며 37세 때 경제기획원 운영차관보에 발탁됐으나 유신 이후 73년 당시 김종필 총리의 눈밖에 나「부패공무원」이라는 낙인이 찍혀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마흔을 넘긴 나이에 학업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도미, 미 하버드대에서 석사를 마친 뒤 버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얻어와 학계로 진출했다. 외국어대 교수가 된 지 2년만에 총장 자리를 맡게 되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이재창 記者 世界日報 199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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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嶺南中.高 總同窓會 會長 就任) [記事] : 황병태(감천면 출생) 전 주중국대사는 2002년 3월 23일 오후 영남동창회관에서 열린 영남중고 총동창회 정기총회에서 총동창회장으로 취임했다.(醴泉新聞 2002-04-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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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黃秉泰 氏 慶山大 總長으로 選任) [記事] : 황병태(67·감천면 출생) 전 중국대사가 경산대 제4대 신임총장으로 선임됐다. 경산대 재단법인 제한학원(이사장 이육주)은 2002년 6월 26일 황 전 주중대사를 제4대 총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황 총장의 임기는 7월 1일부터 4년이다. 황 총장은 서울대 경제학과와 하바드대·버클리대에서 행정학 석사,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4년 한국외국어대 총장을 거쳐 제13대, 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醴泉新聞 2002-07-04 11: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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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黃秉泰 總長 騎士爵位 받아) [記事] : 황병태(감천면 출생) 대구한의대 총장은 한국과 미국 켄터키주 간의 교류 증진 및 주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켄터키주 기사(Kentucky Colonel) 작위를 받았다. 켄터키 기사 작위는 1932년부터 켄터키주 발전과 관련해 공헌이 있는 유명 인사에 수여해 오고 있다. 대구한의대는 2001년 2월 이스턴 켄터키대와 자매 결연을 맺은 이후 교환 학생과 교환 교수 등의 인적 교류는 물론 켄터키주 유학생 및 교포와 함께 문화 교류를 꾸준히 증진해 왔다.(醴泉新聞 2004-01-31 09: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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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韓醫學發展 功勞 感謝牌 받아) [記事] : 황병태(감천면 출생) 대구한의대 총장은 2005년 2월 23일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제25회 대구한의사회 정기대의원 총회에서 한의학육성법 제정 후원, 대구경북 한방산업육성 기반 조성 등 한의학 발전에 대한 공로로 감사패를 받았다.(醴泉新聞 2005-03-06 1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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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30日 退任 앞둔 黃秉泰 大邱韓醫大 總長 : "地域 發展 큰 그림 그리며 餘生을…" ) [記事] : 2006년 6월 30일 퇴임하는 대구한의대 총장 황병태(71). 2002년 6월까지만 해도‘정치인 황병태’였다. 한국외국어대 총장, 2선 국회의원, 주중 한국대사를 역임한 그가 2002년 7월 대구한의대 총장에 부임했을 때만 해도 주변에서는 정치 재개를 위한 일시적 행보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황 총장에게는 오랫동안 준비된‘낙향’이었다. 고향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일조의‘의무감’이었다.“45년만의 귀향이었지. 정치는 1년 동안 쉬면서 진작 접었어. 불과 4년 전이지만 이 학교에 왔을 때만 해도 학생 500명을 충원하지 못할 정도로 퇴출 직전이었어.”황 총장에게 변화의 대상이었던 대구한의대 구성원들은 그가 오지 않았다면 대구한의대가 존립조차 힘들었을 것으로 평가한다. 그는 투명한 경영, 믿음과 합의를 대학 운영 방침으로 삼고 부임하자 마자 큰 구상에 들어갔다. 대구경북 한방산업 육성 프로젝트였다. 대구·경북이 강점을 갖고 있고 대구한의대만이 역할할 수 있는 분야로 타깃을 잡았다. 한방산업 육성방안을 대선후보들의 주요 공약으로 채택케 했고 폭넓은 인맥을 활용해 구체화시켜 나갔다.“당초 그림보다는 축소됐지만 한방산업 발전을 위한 기틀은 다져놨지. 이를 바탕으로 대구한의대 특성화와 구조 조정도 착수했지.” 황 총장은 32개 학과 가운데 28개 학과를 구조 조정시켰다. 충분한 논의를 거치고 구성원들을 설득해 큰 충돌없이 구조 조정을 마무리해 냈다. 이같은 구조조정 성공 사례는 교육인적자원부가 황 총장을 전국 대학 기획처장회의에 초청, 구조 조정 모범사례로 발표케 할 정도였다. 과학기술부 지역협력연구센터(RRC) 선정, 교육부 특성화 우수대학, 한방임상시험센터(CTC) 설치, 안동· 문경시 등 7개 시군과의 한방지역전략산업화 프로젝트도 황 총장의 업적이다. 한방산업 국제화에도 기여했다. 일본 도야마의과약과학대, 중국 북경중의약대 등 일본과 중국의 주요 대학과 한의학(동방의학) 공동 발전 연구틀을 마련하고 용어도 통일시켰다. 학생들을 위해서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학생들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해 등록금을 인상하고 수 십억 원을 들여‘아름다운 캠퍼스 만들기’에 공을 들였다. 황 총장은 대구한의대가 확실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한방산업 중심 대학으로 더 특성화하고 국제 중심 대학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 총장은 명예총장으로 대구한의대와의 인연을 이어 가고 대구·경북 경제 통합과 지역 발전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면서 남은 여생을 보내겠다고 다짐했다.(이춘수 記者 每日新聞 2006.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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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황병태 前 大邱韓醫大 總長) [記事] : 황병태(黃秉泰·71) 전 대구한의대 총장. 2006년 7월 4년 임기의 대구한의대 총장에서 물러난 그는 요즘 서울 논현동 사무실로 출근하며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특히 부인 김문화(71) 씨와 함께 오랜만에 가져보는 여유가 만족스러워 보였다. 퇴임 후 가장 달라진 점을 묻자 그는 “대구에서 지낼 때는 외식을 주로 했지만 요즘은 따뜻한 밥을 먹고 다닌다.”며 넉넉한 웃음을 보였다. 최근에는 성남아트홀에서 부인과 함께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함께 관람했다는 그는 함께 영화 관람도 자주한다고 했다. 또 인근 양재천을 부인과 함께 산책하는 것도 황 전 총장의 중요한 일과. 금실이 좋은 것 같다고 하자 “나쁘지는 않죠.”라고 말했다. 또 결혼한 아들이 인근에 살고 있어 가족끼리 자주 외식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황 전 총장은 나이에 비해 젊어보였다. 술, 담배를 거의하지 않고 하루에 1시간 이상 꼭 운동을 한다고 했다. 또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배인 것도 기력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했다. 퇴임한 후에도 여전히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공무원, 연구원, 대학 교수, 정치인, 외교관, 대학 총장 등을 지낸 만큼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그는 지인도 폭넓게 분포돼 있다. 7년 전에 주도적으로 만든 화요포럼에는 꼭 참석한다고 했다. 당시 고 김윤환 전 국회의원, 김용환 전 국회의원, 박권상 전 KBS 사장, 김원기 전 국회의장,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등이 함께 만든 화요포럼은 사회 저명인사들끼리 시국에 대해 대화하고 의견을 주고 받는 친목 모임이다. 주도적으로 만든 탓에 애착도 남다르다는 것이 그의 설명. 그는 화요포럼을 함께 만들었던 고 김윤환 전 국회의원을 높이 평가했다. 뛰어난 정치 감각을 지녔고 세상을 보는 안목이 깊고 넓다고 했다. 그는 “허주가 있었으면 한국 정치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그가 고인이 됐을 때 많이 울었다.”고 털어놨다. 또 문경 출신으로 독립운동가이자 무정부주의자(아나키스트)였던 박열 의사 기념사업회 회장으로도 바쁘게 지내고 있다. 그는 잡지 탐독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한다. 홍콩의 아주주간(亞洲週刊), 일본의 문예춘추(文藝春秋), 영국의 The Economist, 미국의 TIME 등을 정기구독하고 있다. 그의 옆에는 몇 권의 사전이 놓여 있었다. 사전을 찾으면서 외국 잡지를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고 했다. 그는 조만간 중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한중수교 15주년을 기념해 양국 명사들의 친선 골프대회에 참석하기 위한 것. 장백발 전 북경시장과 위빈 전 중국대사 등이 그와 이한동 전 국회의원, 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을 초청했다고 말했다. 주중대사를 거친 황 전 총장은 “주중대사로 갔을 때에 비해 현재의 중국은 천지개벽했다.”고 말했다. 황 전 총장은 최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를 만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기 대통령이 갖춰야 할 리더십에 대해 말했다.“차기 대통령은 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인물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규율하는 시대가 아닌 시민 자치시대에 걸맞은 정치 패러다임을 창출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정부는 간섭을 줄이고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규율보다는 자율이 중시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헌법도 시대에 맞게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합치는 대동(大同)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패거리 문화, 배타적인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대구·경북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그는 “현재의 대구·경북 틀로는 발전에 한계가 있다. 지금의 행정구역은 일제시대 통치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행정구역 개편을 주장했다.“이를테면 대구, 경북, 울산, 강원 등을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만들고 부산, 목포 등도 합쳐 큰 행정구역으로 만들어 대형지방자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지역감정도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교육, 경찰, 조세 등도 모두 지방에 권한을 넘겨야 한다는 것. 일제시대의 낡은 유산인 현재의 행정구역을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완전히 바꾸자는 것이 황 전 총장의 소신이었다. 요즘도 한달에 한두 번은 대구를 방문한다고 했다. 특강 요청이 자주 들어온다고 했다. 최근에는 대구경북연구원에서 ‘지난 50년 앞으로 50년’이란 주제로 강의를 했다. 대구경북통합추진위원회포럼 회장도 맡고 있는 그는 “행정구역의 개편에 앞서 대구경북이 통합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향후 계획을 묻자 “시대에 맞는 비전을 가진 새 대통령이 나설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 참여는 하지 않고 뒤에서 조언하는 원로로 남고 싶다는 바람도 덧붙였다.(이창환 記者 每日新聞 2006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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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大邱廣域市 經濟顧問團 出帆 : 國內,外 政治 經濟界 專門家로 構成) [記事] : 침체된 지역경제의 회복과 신성장 동력 창출을 위해 김만제 전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국내,외 정치, 경제계의 전문가로 구성된 『대구 경제 고문단』이 2008년 12월 12일 대구은행 비즈니스 홀에서 출범식을 가졌다. 이날 출범식에는 김만제 전 경제부총리, 김범일 대구광역시장, 김영훈 대성그룹회장, 이인중 대구상공회의소 회장, 이화언 대구은행장, 이영탁 세계경제연구원 원장(전 국무조정실장),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 이석채 법무법인 유한태평양 고문(전 정통부 장관), 이진설 전 건설부장관, 황병태(黃秉泰, 1935- , 甘泉初 卒業, 國會議員) 전 대구한의대 총장을 비롯 알란 팀블릭 서울글로벌센터 관장, 피에토르 도란 캐피탈 파트너스 회장, 모세샤론 대구텍 사장 등 정치권과 기업을 아우르는 중량급 출향인사와 외국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이들 대구경제고문단은 성장을 주도했던 전통산업의 약화와 입지여건의 취약으로 인한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인한 지역경쟁력을 높이는 노력과 더불어 DGFEZ 지정, 국가첨단과학단지 조성 등 경제환경의 변화에 부응하여 지역내 숙원사업인 대기업 유치를 위한 정보의 교환, 연계, 지원 등 추진체계를 담당키로 하였다... 이날 출범식에 김범일 시장은 “대구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에 있지만, 2011 세계육상선수권 대회 개최, 국가과학산업단지 조성,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 지정, 2013 세계에너지 총회 유치 등을 통해 대구가 재도약하기 위한 중요한 전기를 맞고 있는 것이 사실이므로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와 역량을 갖춘 분들의 도움을 통하여 경제 회복에 가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대구시 경제고문단 출범식으로 고문단의 축적된 경험을 활용하여 지역내 투자유치를 활성화함으로써 침체된 지역경제 회복을 위한 신성장 동력이 창출되기를 기대해 본다.(김민수 記者 韓國地域인터넷新聞 2008-12-13 오전 11: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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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 [記事] : TrueFriend''''s 블로그/ 중국의 정치와 경제(黃秉泰, 1935- , 甘泉初 卒業, 國會議員, 大邱韓醫大 總長)/ 조회(296) / ☆China | 2004/05/17 (월) 08:37/ 2004년 3월 14일 폐막된 중국의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는 공산당체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변혁을 체제 속에 수용하였다. 사유재산 폐지에 바탕을 둔 공산당체제의 중국이 사유재산을 인정, 보호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일당독재 중국이 전 국민의 인권을 법으로 보호하는 헌법개정을 통과시켰다.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대변환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은 일당독재체제의 공산사회주의를 방기하고 자본주의적 자유민주체제로 전환하고 있는 것일까? 공산체제와 일당독재는 변함없이 유지시키면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접목시키고 있는 데서 오늘의 중국은 종래의 개념과 이론으로서는 이해될 수 없는 특이한 체제운영을 하고 있다. 중국 개혁개방의 창시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중국적 특색 사회주의 시장경제이론은 논리상으로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상반된 사상체제를 현실 속에 양립시키고 있는 데서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념과 명분보다는 실용과 실리를 택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문화전통 속에서 공산사회주의의 외의(外衣) 속에 자유자본주의의 몸집을 가꾸어 가고 있다. 사회주의와 시장경제의 혼합 속에 중국은 지난 25년간 연 9%의 세계 제일의 고도성장으로 세계의 공장으로서, 경제대국으로서, 미래의 충격으로 부상하고 있다. 연간 500억 달러 외자도입으로 총 1조 달러의 외자와 외국기술을 확보하면서 세계자본시장과 원자재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경제공룡으로 변모하고 있다. 세계 6위의 경제규모로 벌써 한국과 일본, 동남아 경제흐름을 좌우하는 중국경제가 2040년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 될 때 과연 이들 나라들이 중국경제의 변방으로 전락하지 않고 경쟁할 수 있을지가 걱정스럽다. 안정적인 정치체제와 고공성장의 경제가 결합된 중국을 설명하는 데는 정치경제학(Politicai Economy)적 설명이 필요하다. 공산정치체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두 이물질을 조화롭게 꾸려가는 중국은 몇가지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론은 공산이론의 경제하부구조론을 뒤집어 적절한 정치관리로서 경제개발을 기획하고 추진하면 정치의 상부구조와 충돌없이 시장경제체제와 운용이 가능할 뿐 아니라 선진시장경제국가를 이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덩은 수천년간 고착된 1인 지배의 황제정치문화를 하루 아침에 집단지도체제와 지도자 세대교체제도로 개발정착시켰다. 장쩌민(江澤民) 세대에 이어 등장한 제4대 집단지도체제는 후진타오(胡錦濤)를 중심한 철저한 권력공유의 집단체제로서 10년 뒤에는 제5대 집단지도체로 바뀌어지게 돼 있다. 일당지배의 공산체제이지만 권력의 집단화와 규칙적인 세대교체로 시장원리에 따른 유연한 경제발전을 관리하는 중국식 특색의 새로운 모델을 정착시키고 있다. 이 모델의 특징은 철저한 경제논리존중의 정치운용이다. 후진타오 세대는 수십년의 수련기간 동안 중국의 경제운영 논리를 익히면서 국가관리의 소질과 능력을 닦아온 기술관료집단 세대다. 일관된 경제운영을 13억 인구를 상대로 흔들림없이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놀라운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이같은 체제 속에서 경제발전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공산당정치체제를 안정적으로, 실리적으로 운용하는 실무형 국가관리전통이 정치바람을 타지 않고 국민의 공감대 속에 정착되고 있다. 경제관리를 위한 제도개혁은 정치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대에 맞게 변화시키고 있다. 지난 10기 전인대가 취한 일련의 헌법개정은 이를 표상하고 있다. 중국의 앞날에 걸림돌은 없을까? 급속한 자본주의 경제질서의 확대와 대외개방이 도시와 농촌, 지역과 계층 간의 빈부격차를 낳고, 국영기업 노동자의 실업이 늘고 있으며, 급속한 개발에 따른 환경파괴, 급속한 세계화 수용에 의한 대외갈등 등 중국사회는 상당한 진통에 휩싸이고 있다.
더 심각한 도전은 경제발전에 따른 국민의 참여욕구와 정치민주화 욕구, 홍콩의 대규모 직선제 선거 요구시위, 천수이볜(陳水扁)의 타이완(臺灣) 독립론이 중국체제의 한계를 실험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같은 도전에 직면해 중국은 ''''5대 계획(統籌)''''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 한가지 확실한 전망은 중국의 특색있는 제도가 외부 상식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온갖 변화를 소화하면서 전진해온 그간의 변화과정을 두고 볼 때 수용 못할 도전은 없지 않을까 관찰된다. 마르크스가 말한 경제하부구조의 변화에 따른 정치상부구조의 변화가 서구적 민주주의로 합류(Convergence)할지, 아니면 중국식 특수민주주의로 고정될지, 중국은 21세기 역사의 최대 실험대가 되고 있다. 중국의 특수화가 진행되어 서구 통용의 재래교과서 이론을 바꿔 써야 하는 이변의 역사가 시작될지 지켜볼 일이다. 황병태 대구한의대 총장 [*황병태(黃秉泰) 약력] = △1935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하버드 대학원(행정학 석사) △미국 버클리 대학원(정치학 박사) △경제기획원 운영차관보 △한국외국어대 총장 △제13대 국회의원 △주중 한국대사 △대구한의대 총장(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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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과 현대화(儒學과 現代化) [冊] : 감천면 덕율2리 덕밤 출신 황병태(黃秉泰, 1935- , 甘泉初 卒業, 國會議員, 大邱韓醫大 總長)의 저서로, 636쪽, A5, 우석에서 2001년 2월 12일에 출간하였다. [책 소개] : 한국, 중국, 일본의 유학사상을 비교 분석한 저서. 저자는 13,15대 국회의원, 주중대사를 거쳐 미국 버클리대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유학에 대한 일반론을 시작으로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의 유교가 어떠한 차이점을 가지고 전개되었는지를 비교 분석하고, 보편 문화로서의 유학이 현대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지 못한 이유와 각 나라의 유교가 현대화라는 외적 도전에 대해 서로 다른 반응과 적응력을 갖게 된 원인을 규명한 저서. [저자 소개] : 저자 황병태는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하버드대 행정학 석사, 미국 버클리대학원 정치학 박사, 제7회 고등고시 외교과 합격, 경제기획원 과장·국장 ·차관보,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한국외국어대 총장, 13·15대 국회의원, 경우회 회장, 주중대사, 미국 버클리대 초빙교수, 저서로는 <경제주의의 종언>, <자본주의와 민주정치>, <유학과 현대화>(중국어판)/ [목차] : 제1장 유학 일반론 / 1. 고전 유학 ...46 / 2. 맹자의 논쟁 유학 ...64 / 3. 전환기 유학 ...77 / 4. 관변적 한대 유학 ...83 / 5. 절충 유학 ...90 / 6. 복귀적 유학 ...104 / 7. 종합 유학 ...114 / 8. 육왕학파 대 정주 학파 ...176 / 제2장 중국의 유학 / 1. 총체적 특성 ...192 / 2. 명대의 유학 ...204 / 3. 청대의 유학 ...240 / 제3장 일본의 유학 / 1. 도쿠가와 유학 ...294 / 2. 오요메이 학파 ...329 / 3. 고가쿠파 ...342 / 4. 절충유학 ...378 / 5. 고쿠가쿠파 ...386 / 6. 신가쿠 학파 ...397 / 7. 계몽 학파 ...407 / 제4장 한국의 유학 / 1. 이데올로기 유학 ...430 / 2. 사회·정치적 환경 ...450 / 3. 한국 유교의 개화 ...464 / 4. 실용주의 학파 ...515 / 제5장 현대의 유학 / 1. 고전 유학 ...544 / 2. 송명리학 ...562 / 3. 일본의 유학 ...568 / 4. 한국 유학 ...573 / 5. 근대화 ...579 / 6. 근대화 속의 유학 ...592 / 7. 근대화 속의 유학의 공통적 본질과 특성 ...594 / 8. 근대화에 있어 국가별 유학의 차이점 ...603 / 9. 현재의 유학 ...616 / 10. 미래의 유학 ...625(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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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민주정치(資本主義와 民主政治) [冊] : 감천면 덕율2리 덕밤 출신 황병태(黃秉泰, 1935- , 甘泉初 卒業, 國會議員, 大邱韓醫大 總長)의 저서로, 514쪽, A5, 우석출판사에서 1988년 4월 1일에 출간하였다.(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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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향한 한·중 공동번영의 모색(21世紀를 向한 韓·中 共同繁榮의 摸索) [硏究報告書] : 감천면 덕율2리 덕밤 출신 황병태(黃秉泰, 1935- , 甘泉初 卒業, 國會議員, 大邱韓醫大 總長) 등(유장희, 서건명, 소령 ...)의 보고서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1996년 4월 3일에 발행한 책에 수록되어 있다. [본문 요약] : 오늘날 國際經濟는 世界化와 地域主義가 공존하는 兩面性을 띤 새로운 秩序를 형성해 가고 있다. WTO의 출범으로 상징되는 世界化의 현상과 함께, 세계 곳곳에서 地域統合이 진전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新秩序는 積極的으로 보면 國家間 競爭의 격화를 야기한다 하겠으나, 消極的으로 보면 國境을 超越하는 協力의 필요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이러한 視角에서 볼 때 최근 飛躍的으로 擴大되고 있는 韓. 中 交流는 매우 바람직한 것이라 하겠다. 韓國과 中國은 世界의 中心으로 떠오르고 있는 아시아에서 가장 力動的으로 成長하는 나라에 속하며, 兩國關係는 ''''92년 修交 이후 그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면에서 急速히 擴大되고 있다.특히 韓·中間의 經濟交流는 최근 빠르게 확대되어 兩國經濟의 構造的 連繫性이 심화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94년 産業協力協定의 체결로 양국의 經濟關係는 단순한 量的擴大의 관계를 넘어, 有望産業部門에서 相互連繫的인 새로운 협력관계를 추구하는 質的變化의 段階에 이르렀다. 즉 단순히 自國만의 利益 뿐만 아니라 21세기를 앞두고 共同繁榮을 摸索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양국 經濟關係에는 交流의 急增에 수반하여 일부 問題點도 있을 것이고, 長期的인 발전의 障碍要因도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韓·中 經濟關係를 長期的인 시각에서 成熟된 形態로 발전시키기 위해 준비하는 重要한 時點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本 硏究院이 21世紀를 향한 韓·中 共同繁榮의 摸索"이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中國政府의 核心 연구기관인 中國國家計委 巨視經濟硏究院과 공동으로 지난 ''''95년 10월 16일 北京에서 개최한 것은 큰 意味가 있다고 하겠다. 특히 이 세미나가 韓國이 2020까지의 長期政策을 構想中에 있고 中國은 ''''96년부터의 新 5個年計劃과 2010까지의 長期發展計劃을 한창 마련하는 시점에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時宜適切했다고 본다. 本 세미나에서는 양국의 業界, 學界, 官界의 專門家들이 다수 참가하여 양국의 經濟發展戰略을 展望하고 양국의 經濟協力의 新構圖를 摸索하는 데 있어서 활발하고 심도 있는 發表와 討論을 벌였다. 또한 本 세미나는 中國의 江澤民 主度의 ''''95년 11월 訪韓을 20여일 앞두고 개최됨으로써 양국 國民間의 理解와 信賴를 더욱 증진시키는 效果도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本 資料는 이 세미나에서 발표되었던 論文과 討論을 정리한 것이다. 이 자료의 編輯은 세미나의 개최를 주관하였던 本 硏究院 北京支院의 趙顯埈 調査役이 담당하였다. 이 자료가 中國經濟와 韓·中 經濟協力에 관심 있는 關係者들에게 參考資料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끝으로 本 세미나의 개최에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本 硏究院 北京支院의 駐在員과 現地職員 여러분께 감사를 표한다.(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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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전망(中國의 市場經濟體制의 現況과 展望) [學術저널] : 감천면 덕율2리 덕밤 출신 황병태(黃秉泰, 1935- , 甘泉初 卒業, 國會議員, 大邱韓醫大 總長)의 논문으로, 한국생산성학회에서 1996년에 발행한 책에 수록되어 있다.(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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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관계의 회고와 전망(韓·中 關係의 懷古와 展望) [專門記事] : 감천면 덕율2리 덕밤 출신 황병태(黃秉泰, 1935- , 甘泉初 卒業, 國會議員, 大邱韓醫大 總長)의 기사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발행한 책에 수록되어 있다. [본문 요약] : 지난 8월 24일로서 韓.中 양국은 수교 2주년을 맞이하였다. 수교 이후, 특히 金泳三 대통령 취임 이후 양국간에 진행된 각종 변화의 質과 幅은 기존에 중국과 오랫동안 외교관계를 유지하여 온 많은 국가들이 부러워할 만큼 놀라울 만한 것이었다. 韓.中 수교 2주년을 맞이하면서 對外經濟政策硏究院의 "지역경제" 지면을 통해 양국관계를 회고해 보는 한편, 앞으로의 방향을 전망해 볼 수 있는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 우선 韓.中 수교 이후 이룩한 가장 커다란 변화는 무엇보다도 경제방면의 활발한 교류였다고 할 수 있다. 금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했을 때 양국간 직교역은 60억 달러에 육박했으며,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는 경우 금년말까지는 12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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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된 한·중 관계 정립을 바라면서(成熟된 韓·中 關係 鼎立을 바라면서) [專門記事] : 감천면 덕율2리 덕밤 출신 황병태(黃秉泰, 1935- , 甘泉初 卒業, 國會議員, 大邱韓醫大 總長)의 기사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발행한 책에 수록되어 있다. [본문 요약] : 월 24일로서 韓·中 兩國이 國交正常化를 이룩한 지도 3년이 됩니다. 3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으면서도 韓·中關係는 그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政治·經濟面에서 급속히 발전·확대되고 있습니다.94년 3월의 金泳三 大統領, 94년 11월 李鵬 總理, 그리고 95년 5월 李洪九 總理의 상호 방문 등이 대변해 주듯이 兩國 頂上은 수시로 만나 兩國關係 增進 論議뿐 아니라 아시아 및 세계에서 양국간의 긴밀한 협력을 모색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특히 經濟關係는 交易·投資 등 단순히 평면적 협력에 의한 量的 擴大뿐 아니라 産業協力을 통해 이미 航空機, 電子交換機, 自動車, 高畵質 TV 등 방면에서 양국의 資本, 技術, 市場을 공동 활용하여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相互連繫的(interlocking) 새로운 협력관계를 추구하는 質的인 變化가 일어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습니다.(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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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13) : 덕밤마을 출신 대학교 총장(황병태)의 저서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3-07-30 照會 114)
→<예천의 자랑> 제3권(張炳昌 著 2004年) =411~4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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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면 상금곡리 출신 전장홍, 서예 도대회 최우수상...축하합니다.
전장홍(慶北道 書藝ㆍ文人畵大展 最優秀賞 : 龍門面 上金谷3里 전장홍 氏) [記事] :
용문면 상금곡3리 전장홍(67) 씨가 2009년 6월 8일 발표된 제36회 경상북도 서예·문인화 대전에서 최우수상(한문분야)에 입상했다.
“퇴직 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서예가 삶의 기쁨이 되고 있다”며 “먼저 스승인 한중섭 선생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더욱 정진해 후손들에게 모범이 되는 삶을 살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전장홍 씨는 명당 한중섭 선생의 문하생으로 예천농고(13회)를 졸업했다.
지난 70년 지방공무원 공채로 지보·용문면사무소에 근무했으며, 74년 용문단위농협에 입사, 지난 2000년 풍양농협 전무로 퇴직했다.
그 다음해인 2001년부터 명당서실에서 명당 한중섭 선생의 지도를 받고 있으며, 예천서예인연합회 2대·3대 사무국장을 맡아 예천서예인들의 권익향상에 앞장서 왔다.
그동안 경상북도 서예·문인화 대전에서 4회 입선했으며, 국제유교문화서예대전 3회 입선했다.
현재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용문 금당교회 시무장로로 부설 노인대학 및 주부대학 학사운영 및 서무를 맡아 지역봉사에 앞장서고 있다.
가족으로는 부인 이숙자(60) 씨와의 사이에 3남 2녀를 두고 있다.
한편 경북도는 2009년 5월 30일부터 이틀 동안 한글, 한문, 문인화, 전각·서각 등 4개 분야에서 접수된 5백15점을 심사해 대상, 최우수상 등을 비롯 모두 2백37점을 입상작으로 선정했다.
(백승학 記者 醴泉新聞 2009년 06월 11일 12: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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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게이트볼연합회 한천분회, 도대회 1위...축하합니다.
예천게이트볼연합회 한천분회(醴泉게이트볼聯合會 漢川分會 : 慶北道大會 男女混復 郡部 1位) [記事] :
2009년 6월 5일 상주에서 열린 2009 어르신 게이트볼 경상북도 대회에서 예천게이트볼연합회 한천분회(회장 진용선)가 남녀혼복 군부 1위를 차지했다.
이날 대회에는 선수 및 임원 10여 명이 참여해 우수한 기량으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 자리에서 진용선 회장은 “최선을 다해준 회원들에게 감사하며, 앞으로 게이트볼을 통해 회원간의 건강 증진과 친목을 다지는 일에 다함께 노력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한천분회는 2008년 김수남 예천군수와 안철모 예천읍장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회원 25명으로 창립했으며, 2009년 5월 30일 군내 10개 분회 2백여 명의 게이트볼 동호인들을 초청해 친선게이트볼 대회를 열어 위상을 과시했다.
이번 대회 우승으로 전국게이트볼대회 남녀혼복 경북도 대표 출전 자격을 획득했으며, 좋은 성적으로 예천게이트볼의 역량을 대내외에 알린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우고 있다.
(醴泉新聞 2009년 06월 11일 11: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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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면 방송리 출신 김선도, 기술혁신기업 인증받아...축하합니다.
김선도(경일산업(株) 김선도 代表 : 技術革新企業 認證 받아) [記事] :
용문면 방송리 태생의 김선도 경일산업(주) 대표가 2009년 5월 중기업청 및 기술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이노비즈(INNOBIZ) 기술혁신기업 및 벤처기업 인증을 받았다.
경일산업(주)은 야외체육시설 및 놀이시설 조달청 납품 국내 1위 기업이다.
연간 약 1백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 중소기업이다.
김선도 대표는 현재 재경예천군민회 수석부회장이다.
(醴泉新聞 2009년 06월 11일 11: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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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448
예천군산업곤충연구소 [記事] : 프로방스집꾸미기 카페/ 예천곤충연구소 다녀 왔어요/ 글쓴이: 살고싶은화초/ 2009.06.11 10:35/
우리가 서울서 예천까지 곤충을 보러간 이유가 뭐냐 하면요. 하교시간에 어떤 아줌마가 교회 나오면 애벌레 준다고 했나봐요. 실은 지금 장수풍뎅이가 두 마리 성충이라 한참 사랑놀음을 하고 있는데 또 벌레가 키우고 싶었나봐요.
교회 가자고 하면서 엄마 계속 안 다녀도 된데. 그냥 가보자. 하도 그래서 막 성질내고 검색하다 정말 좋은 곳이다 싶어서 갔지요.
이곳의 장점은 4층짜리 건물 전체가 곤충표본과 살아있는 곤충들이고, 그 외에 분수대랑 놀거리가 있고요.
구름다리를 건너면 산이 있어서 등산도 하지요. 공기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좋고요... 산중에 있어요.
온실체험이라고 온실 속에 벌, 장수풍뎅이, 나비들이 진짜 살아서 움직이고 만져볼 수도 있어요.
물론 조금이나마 화초들도 같이 어울리게 있고요. 의자는 앉을 수 있는 나무그늘이고요.
위에 조그마한 놀이터 그 뒤로 구름다리가 있어요. 엄마들은 원두막 같은 것이 있어서 거기서 자더라고요.
애들은 지들끼리 놀다가 계곡 밑으로 내려가서 올챙이도 잡고 그랬어요. 김밥은 장만하시고요...
물은 지하수 팡팡 나오니까 받아가세요(구멍가게 앞에 팡팡 나와요) 정말 애들 놀기는 딱입니다.
서울서 가는데 네비가 갈쳐준 데로 가다보니 4시간 넘게 걸렸어요. 올 때는 3시간에 왔지만요. 벌레 실컷 보다 왔어요.(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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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黃秉泰) : 1935- , 감천면 덕율2리 덕밤 출신, 본관은 평해, 감천초등(19회), 대구농림중(41회), 54년 대구 영남고(3회), 58년 서울대 경제과(12회), 76년 미국 하바드대 행정대학원 졸업(行政學 碩士), 79년 미국 켈리포니아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 56년 제7회 고등고시 외교과(外交科) 합격, 57년 외무부 아주과(亞洲科) 사무관, 58년 동 3등 서기관, 상공부 공정과, 59년 동 수출과 사무관, 61년 경제기획원 공차관과장(公借款課長), 67년 동 경제협력국장, 69년 동 조사통계국장, 71년동 운영 차관보, 79년 한국개발연구원(KID) 연구위원, 81년 동 원장, 82년 경제기획원 자문위원, 82년 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84년 동 총장 등을 지내면서 일련의 연구 분야에서 책을 놓지 않고 계속 노력했다. 88년 통일민주당 부총재, 경우회회장, 88년 제13대 국회의원(서울 江南甲, 民主), 민주당 정책심의회 의장, 90년 민자당(民自黨) 국회의원, 민자당 강남갑지구당(江南甲地區黨) 위원장, 민자당 당무위원, 강남산악회(江南山岳會)와 강남여성산악회 고문, 92년 1.3정우회 부회장, 민주산악회 부회장, 93년 주중국 대사(駐中國大使), 민자당 당무위원, 93년 한국정치발전연구회 부이사장, 96-97년 제15대 국회의원(聞慶 醴泉, 新韓國黨), 국회재경위원장을 지냈다. 경산대 총장, 대구한의대 총장을 지냈다. 녹조근정훈장(綠條勤政勳章, 1973), 황조근정훈장(黃條勤政勳章), 홍조근정훈장(紅條勤政勳章), 2004년 미국 캔터기주 기사(Kentucky Colonel) 작위를 받았다. <유교문화(儒敎文化)와 근대화>라는 제목으로 박사 학위 논문(博士學位論文)을 제출하여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저서로 <자본주의와 민주정치>, <경제주의의 종언>, <민중과 경제(共)>, <유교와 현대화(韓中日比較, 中國語版)>, <유학여현대화(儒學與現代化)>(韓中日 儒學比較硏究) 등을 출판하였다.
[月刊朝鮮 1993年 11月號 414-415쪽] : 외무고시(外務高試)에 합격하기는 했으나 관리 생활은 주로 경제기획원에서 보냈다. 경제기획원 차관보(次官補)를 끝으로 그는 미국 유학을 떠났고, 귀국해서는 학자로 지냈다. 하지만 그는 학자로 일관하지도 않았다. 한국외국어대(韓國外國語大) 총장 시절 김영삼(金泳三) 야당 총재를 만나 총재의 정치외교 고문 역할을 하며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서울 강남구(江南區)에서 13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러던 그는 김영삼 정부가 탄생하면서 1993년 5월 말에 북경 주재(北京駐在) 한국대사(韓國大使)가 되었다. 그의 다양한 경력만큼 그에게는 소문도 많다. 경제기획원 차관보 시절이던 3공화국 시절 그는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정치 자금을 도맡아 요리한 사람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고문 역할을 하면서도 3당 통합의 아이디어를 김 대통령에게 제시한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다.(嶺友俱樂部 99號 1982, 每日年鑑 1984 1985 1986 1988, 醴泉文學 6輯 1992, 每日名鑑 1996 1997, 韓國을 움직이는 人物들 1997, 인터넷 每日名鑑 2001, 醴泉新聞 200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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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黃秉泰 駐中大使/ 3黨 統合企劃 YS 側近 參謀) [記事] : 87년 대선이후 측근에서 일해온 김영삼 대통령의 핵심 참모. 풍부한 지식과 일반의 예측을 뛰어넘는 아이디어로 3당 통합을 기획하고 성사시켰다. 김 대통령이 13대 대선에서 패배한 보름만에 그의 참모로 정계에 투신했을 만큼 과단성과 통찰력도 있다. 원외에 있을 때도 수시로 김 대통령이 불러 각종 조언을 들었다. ▲경북 예천·58세 ▲서울대 상대 ▲하버드대 대학원 행정학 석사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 ▲경제기획원 차관보 ▲외국어대 총장 ▲13대 의원 ▲통일민주당 부총재(朝鮮日報 1993-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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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黃秉泰 駐中大使 : 얼굴) [記事] : 정ㆍ관ㆍ학계를 두루 거쳤으며 순발력과 수완이 뛰어나다는 평.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으로 35세 때 경제기획원 운영차관보까지 지냈을 정도로 출세 가도를 달렸으나 해직되는 등 한 때 좌절을 겪기도. 87년 대선 직후 당시 민주당 총재였던 김영삼 대통령에게 발탁돼 정계에 들어온 이후 줄곧 김 대통령을 옆에서 도와왔다. △경북 예천 58세 △서울대 △경제기획원 차관보 △외국어대 총장 △13대 의원(東亞日報 1993-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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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黃秉泰 駐中 大使 오늘 歸國 ; 中 강택민 等 最高位 3人 訪韓 成事 "成果 ") [記事] : 황병태 주중 한국 대사가 1995년 12월 10일 임지를 떠나 귀국한다. 황 대사는 동년 11월 13일부터 17일까지 계속된 강택민(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일정이 끝난 직후 사임서를 냈다. 그는 1996년 총선에 고향인 경북 예천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하기 위해 사임했으며, 사임의 뜻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직접 밝혔다는 것이 본인의 말이다. 초대 로재원 대사에 이어 제2대 주중 한국대사로 지난 92년 5월에 부임 2년 반 동안 일해온 황 대사는 한일도 많았고 구설수에도 많이 올랐다. 북경에 도착한 그는 과거 3공화국 시절의 경제기획원 관료 출신답게 항공기 자동차 hdtv(고화질tv) tdx(전전자전화교환기) 원자력발전 등 5개 분야를 중심으로 한 한중 간 산업 협력이라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추진하는 열성을 보여주었다. 그는 1994년과 1995년 사이에는 리붕(리펑) 총리 교석(차오스)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등 중국의 현직 최고지도자 3명의 방한을 모조리 성사시켜 외교관으로서도 성공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황 대사는 그러나 1994년 3월 김 대통령의 방중 때 정종욱 대통령 외교안보수석과 불화를 빚어 말썽을 일으켰고, 평소 업무에도 김 대통령의 측근임을 과시 직접 청와대비서실에 전화를 걸어 일을 추진하는 등 외무부 당국자들의 머리를 아프게 하기도 했다. 그는 이 번 사임 때도 아직 후임이 채 결정되지 않았는데 1996년 4월에 출마하려면 시간이 모자란다며 막중한 주중 한국대사 자리를 최소한 1996년 1월 중순까지 1개월 이상 공석으로 만드는 매끄럽지 못한 일처리 모습을 보여주었다. 황 대사가 이임하게 되자 강택민 국가주석ㆍ리붕 총리ㆍ진기위 국방부장 등 최고위 지도자들이 이례적으로 황 대사에게 환송연을 베풀어 주는 등 극진한 대접을 했다. 특히 강 주석은 전례없이 황 대사에게 리백의 시를 친필로 써서 선물하기도 했다.(박승준 記者 朝鮮日報 199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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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聞慶·醴泉서 出師表 낸 黃秉泰 前 議員) [記事] : 황병태 전 주중대사(61)가 새로운 정치 도전의 테이프를 끊었다. 그는 1996년 3월 8일 신한국당 경북 문경·예천지구당 임시대회에서 신임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황 위원장은 정·관·학계를 두루 거치면서 다변에 수재형으로 순발력과 수완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35세의 젊은 나이에 경제기획원 운영차관보로 발탁, 60∼70년대 수출 실무를 주도했고, 84년에는 평교수 생활 2년만에 한국외대 총장으로 보임됐다. 그의 정계 입문은 87년 대선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의 권유로 부총재와 정책위의장·총재특보 등을 거치며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13대 총선 때 서울 강남갑에서 당선된 그는 14대 때 낙선의 고배를 마신 뒤 93년 5월 문민정부 초대 주중대사로 변신했다. 당시 폭넓은 식견과 타고난「끼」로 외교가에서「학자대사」「문화대사」로 불렸다. 이 번 공천에서 그는 선거구가 통합된 이 지역 현역 의원 2명을 제치고 정계에 복귀해 당내 민주계로서 변함없는 파워를 과시했다. 그는 15년 동안 날마다 1천 번의 줄넘기로 하루를 마감하면서,『난관을 뛰어넘는 의지의 도약』을 되새겨왔다. 화려한 조명 속에 숨돌릴 틈도 없이 달려온 그가 제2의 비상에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박찬구 記者 서울新聞 1996-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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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黃秉泰) [記事] : 국회의원 선거 문경ㆍ예천지구에서 황병태가 당선되었다. 황병태(61)는 감천면 덕율리 출신, 신한국당, 미국 버클리대학원 졸업, 한국외대 총장, 경제기획원 차관보를 지냈다. 황병태(신한, 30,651표), 황병호(黃丙鎬, 예천읍 노상리 출신, 국민, 2,046표), 안희대(安熙大, 용궁면 월오리 출신, 민주, 3,587표), 신국환(辛國煥, 개포면 이사리 출신, 자민, 14,919표), 이상원(李相源, 문경 출신, 무소속, 3,051표), 이승무(李昇茂, 문경 출신, 무소속, 29,987표), 최주영(崔周永, 유천면 사곡리 출신, 무소속, 3,904표)이다.(每日新聞 1996.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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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新韓國黨 黃秉泰 平統委員長) [記事] : 황병태 국회의원 당선자(문경ㆍ예천)는 남북 현안인 ''''4자회담'''' 성사 여부에 대해, "결국 북한이 수용할 것"이라며 낙관적인 견해를 밝히면서 북한 내부 사정에 대한 정보도 소개했다. 신한국당 평화통일위원장을 맡은 그는 지금 북한 체제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을 극심한 식량난으로 분석한 뒤, "북한이 미국, 일본 등에 식량 원조의 손길을 뻗치고 있지만, 결국 중국의 도움 유무가 체제 유지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김정일(金正日)은 ''''얼굴 마담''''에 지나지 않으며, 실권은 군부가 잡고 있기 때문에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않아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또 현재 한반도 주변국들 모두가 갑작스런 북한 체제 붕괴에 대해 대단히 우려를 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현체제 유지를 강하게 원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나라도 북한의 난민 유입을 수용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선통일 후통합''''보다는 ''''선통합 후통일'''' 입장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황 당선자는 최근 대권 후보들이 잇따라 완전 경선을 주장하고 있는데 대해, "결국 그렇게 되겠느냐"며 대통령의 의중이 중요함을 시사했다. 그는 이어 차기 정권 탄생에도 대구ㆍ경북 지역의 향배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면서 인구면에서 월등히 앞선 영남 지역에서 대권 후보가 나올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최근 당내 세대 교체 흐름과 관련, "청와대 당직 임명 때 보니 나같은 연배는 이홍구(李洪九) 대표 등 5명 정도 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 대다수는 젊은 사람들이어서 세대 교체를 실감했다"면서, "그러나 경륜도 필요한 것 아니냐"며 곱지않은 시선도 표출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문경ㆍ예천 지역의 지역 갈등과 관련, 몇 개의 시군 지역을 대표하는 현재 선거구제는 항상 지역 대결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국회의원 수가 다소 늘어나더라도 분리해야 하는 입장이다.(李憲泰 記者 每日新聞 1996.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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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黃秉泰 議員 누구인가/ 87年 상도동 캠프 合流 政治的 因緣 : 該博한 知識言辯 卓越 두터워) [記事] : 국회재경위원장인 신한국당 황병태 의원은 1997년 2월 12일 검찰출두를 앞두고 이날 아침에만 해도 검찰소환 사실을 부인했다. 황 의원은 이 날 아침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검찰로부터 연락을 받은 바 없다』며 소환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한 때는 가족을 통해『예천에 내려가 있다』고 연막을 피웠다. 그러면서 그는『재경위원장으로 한보로부터 로비를 받았느냐』는 물음에는『무엇이라고 말할 입장이 아니다』며,『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만 언급하는 등 적극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는 한보 정태수 총회장을 아느냐는 질문에는,『내가 지금 안다고 하든 모른다고 하든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했고, 재차 묻자,『그 것이 중요한가. 전화해 줘 고맙다. 미안하다』고 말을 끊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전 날 저녁 검찰로부터 소환을 통보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황 의원은 소환을 통보받은 뒤 측근에게 12일 아침 8시 예약했던 예천행 비행기표를 취소시키고 예천지역구 행사 일정도 무기 연기시키도록 지시했다. 그는 오전에 역삼동 자택에서 정계 요로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혐의 내용을 확인하는 등 분주했으며 수행비서만 대동한 채 강남 모처에서 지인 및 변호사 등과 만나 검찰 소환에 대비해 법률 자문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황 의원은 김영삼 대통령이 87년 대선에서 실패한 직후 외대 총장에서 통일민주당부 총재로「상도동캠프」에 합류하면서 당시 김 총재와 정치적 인연을 맺었다. 그는 88년 신정치 1번지인 강남갑에 출마해 당선된 뒤 정책위의장 등을 지내면서 해박한 지식과 언변 등으로 정계 입문 1년만에 김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부상하면서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전력을 쏟았다. 이를 위해 그는 88년부터「3당통합」이라는 당시에는 상상을 초월하는「작품」을 노태우 대통령 진영과 구상, 이를 관철시키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는 민주계 가신 그룹의 시기와 질시에다 92년 14대 총선에서 국민당 김동길 후보에게 낙선하는 바람에 김 대통령의 신임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해 마침내 현정권 출범과 함께 주중대사 자리를 맡아 2년 8개월 동안 권력 핵심에서 벗어난 생활을 해왔다. 황 의원은 15대 총선에서는 여권 핵심의 「외면」속에서도 자신의 고향인 문경예천에서 출마, 천신만고 끝에 당선돼 국회재경위원장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그는 재기가 넘치는 반면에「말이 앞서는 행태」로 여러 차례 설화를 겪기도 했다. 3당합당을 전후해 김 대통령이 그에게 특별함구령을 내리기도 했으며, 주중 대사 시절,『중국이 한반도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게 한반도 평화 유지를 위해 바람직하다』는「중국역할론」을 제기, 곤욕을 치렀다. 황 의원은 경제기획원 과장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 속에서 외자도입업무를 총괄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으며 37세 때 경제기획원 운영차관보에 발탁됐으나 유신 이후 73년 당시 김종필 총리의 눈밖에 나「부패공무원」이라는 낙인이 찍혀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마흔을 넘긴 나이에 학업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도미, 미 하버드대에서 석사를 마친 뒤 버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얻어와 학계로 진출했다. 외국어대 교수가 된 지 2년만에 총장 자리를 맡게 되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이재창 記者 世界日報 199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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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嶺南中.高 總同窓會 會長 就任) [記事] : 황병태(감천면 출생) 전 주중국대사는 2002년 3월 23일 오후 영남동창회관에서 열린 영남중고 총동창회 정기총회에서 총동창회장으로 취임했다.(醴泉新聞 2002-04-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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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黃秉泰 氏 慶山大 總長으로 選任) [記事] : 황병태(67·감천면 출생) 전 중국대사가 경산대 제4대 신임총장으로 선임됐다. 경산대 재단법인 제한학원(이사장 이육주)은 2002년 6월 26일 황 전 주중대사를 제4대 총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황 총장의 임기는 7월 1일부터 4년이다. 황 총장은 서울대 경제학과와 하바드대·버클리대에서 행정학 석사,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4년 한국외국어대 총장을 거쳐 제13대, 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醴泉新聞 2002-07-04 11: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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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黃秉泰 總長 騎士爵位 받아) [記事] : 황병태(감천면 출생) 대구한의대 총장은 한국과 미국 켄터키주 간의 교류 증진 및 주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켄터키주 기사(Kentucky Colonel) 작위를 받았다. 켄터키 기사 작위는 1932년부터 켄터키주 발전과 관련해 공헌이 있는 유명 인사에 수여해 오고 있다. 대구한의대는 2001년 2월 이스턴 켄터키대와 자매 결연을 맺은 이후 교환 학생과 교환 교수 등의 인적 교류는 물론 켄터키주 유학생 및 교포와 함께 문화 교류를 꾸준히 증진해 왔다.(醴泉新聞 2004-01-31 09: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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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韓醫學發展 功勞 感謝牌 받아) [記事] : 황병태(감천면 출생) 대구한의대 총장은 2005년 2월 23일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제25회 대구한의사회 정기대의원 총회에서 한의학육성법 제정 후원, 대구경북 한방산업육성 기반 조성 등 한의학 발전에 대한 공로로 감사패를 받았다.(醴泉新聞 2005-03-06 1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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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30日 退任 앞둔 黃秉泰 大邱韓醫大 總長 : "地域 發展 큰 그림 그리며 餘生을…" ) [記事] : 2006년 6월 30일 퇴임하는 대구한의대 총장 황병태(71). 2002년 6월까지만 해도‘정치인 황병태’였다. 한국외국어대 총장, 2선 국회의원, 주중 한국대사를 역임한 그가 2002년 7월 대구한의대 총장에 부임했을 때만 해도 주변에서는 정치 재개를 위한 일시적 행보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황 총장에게는 오랫동안 준비된‘낙향’이었다. 고향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일조의‘의무감’이었다.“45년만의 귀향이었지. 정치는 1년 동안 쉬면서 진작 접었어. 불과 4년 전이지만 이 학교에 왔을 때만 해도 학생 500명을 충원하지 못할 정도로 퇴출 직전이었어.”황 총장에게 변화의 대상이었던 대구한의대 구성원들은 그가 오지 않았다면 대구한의대가 존립조차 힘들었을 것으로 평가한다. 그는 투명한 경영, 믿음과 합의를 대학 운영 방침으로 삼고 부임하자 마자 큰 구상에 들어갔다. 대구경북 한방산업 육성 프로젝트였다. 대구·경북이 강점을 갖고 있고 대구한의대만이 역할할 수 있는 분야로 타깃을 잡았다. 한방산업 육성방안을 대선후보들의 주요 공약으로 채택케 했고 폭넓은 인맥을 활용해 구체화시켜 나갔다.“당초 그림보다는 축소됐지만 한방산업 발전을 위한 기틀은 다져놨지. 이를 바탕으로 대구한의대 특성화와 구조 조정도 착수했지.” 황 총장은 32개 학과 가운데 28개 학과를 구조 조정시켰다. 충분한 논의를 거치고 구성원들을 설득해 큰 충돌없이 구조 조정을 마무리해 냈다. 이같은 구조조정 성공 사례는 교육인적자원부가 황 총장을 전국 대학 기획처장회의에 초청, 구조 조정 모범사례로 발표케 할 정도였다. 과학기술부 지역협력연구센터(RRC) 선정, 교육부 특성화 우수대학, 한방임상시험센터(CTC) 설치, 안동· 문경시 등 7개 시군과의 한방지역전략산업화 프로젝트도 황 총장의 업적이다. 한방산업 국제화에도 기여했다. 일본 도야마의과약과학대, 중국 북경중의약대 등 일본과 중국의 주요 대학과 한의학(동방의학) 공동 발전 연구틀을 마련하고 용어도 통일시켰다. 학생들을 위해서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학생들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해 등록금을 인상하고 수 십억 원을 들여‘아름다운 캠퍼스 만들기’에 공을 들였다. 황 총장은 대구한의대가 확실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한방산업 중심 대학으로 더 특성화하고 국제 중심 대학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 총장은 명예총장으로 대구한의대와의 인연을 이어 가고 대구·경북 경제 통합과 지역 발전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면서 남은 여생을 보내겠다고 다짐했다.(이춘수 記者 每日新聞 2006.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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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황병태 前 大邱韓醫大 總長) [記事] : 황병태(黃秉泰·71) 전 대구한의대 총장. 2006년 7월 4년 임기의 대구한의대 총장에서 물러난 그는 요즘 서울 논현동 사무실로 출근하며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특히 부인 김문화(71) 씨와 함께 오랜만에 가져보는 여유가 만족스러워 보였다. 퇴임 후 가장 달라진 점을 묻자 그는 “대구에서 지낼 때는 외식을 주로 했지만 요즘은 따뜻한 밥을 먹고 다닌다.”며 넉넉한 웃음을 보였다. 최근에는 성남아트홀에서 부인과 함께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함께 관람했다는 그는 함께 영화 관람도 자주한다고 했다. 또 인근 양재천을 부인과 함께 산책하는 것도 황 전 총장의 중요한 일과. 금실이 좋은 것 같다고 하자 “나쁘지는 않죠.”라고 말했다. 또 결혼한 아들이 인근에 살고 있어 가족끼리 자주 외식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황 전 총장은 나이에 비해 젊어보였다. 술, 담배를 거의하지 않고 하루에 1시간 이상 꼭 운동을 한다고 했다. 또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배인 것도 기력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했다. 퇴임한 후에도 여전히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공무원, 연구원, 대학 교수, 정치인, 외교관, 대학 총장 등을 지낸 만큼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그는 지인도 폭넓게 분포돼 있다. 7년 전에 주도적으로 만든 화요포럼에는 꼭 참석한다고 했다. 당시 고 김윤환 전 국회의원, 김용환 전 국회의원, 박권상 전 KBS 사장, 김원기 전 국회의장,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등이 함께 만든 화요포럼은 사회 저명인사들끼리 시국에 대해 대화하고 의견을 주고 받는 친목 모임이다. 주도적으로 만든 탓에 애착도 남다르다는 것이 그의 설명. 그는 화요포럼을 함께 만들었던 고 김윤환 전 국회의원을 높이 평가했다. 뛰어난 정치 감각을 지녔고 세상을 보는 안목이 깊고 넓다고 했다. 그는 “허주가 있었으면 한국 정치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그가 고인이 됐을 때 많이 울었다.”고 털어놨다. 또 문경 출신으로 독립운동가이자 무정부주의자(아나키스트)였던 박열 의사 기념사업회 회장으로도 바쁘게 지내고 있다. 그는 잡지 탐독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한다. 홍콩의 아주주간(亞洲週刊), 일본의 문예춘추(文藝春秋), 영국의 The Economist, 미국의 TIME 등을 정기구독하고 있다. 그의 옆에는 몇 권의 사전이 놓여 있었다. 사전을 찾으면서 외국 잡지를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고 했다. 그는 조만간 중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한중수교 15주년을 기념해 양국 명사들의 친선 골프대회에 참석하기 위한 것. 장백발 전 북경시장과 위빈 전 중국대사 등이 그와 이한동 전 국회의원, 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을 초청했다고 말했다. 주중대사를 거친 황 전 총장은 “주중대사로 갔을 때에 비해 현재의 중국은 천지개벽했다.”고 말했다. 황 전 총장은 최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를 만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기 대통령이 갖춰야 할 리더십에 대해 말했다.“차기 대통령은 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인물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규율하는 시대가 아닌 시민 자치시대에 걸맞은 정치 패러다임을 창출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정부는 간섭을 줄이고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규율보다는 자율이 중시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헌법도 시대에 맞게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합치는 대동(大同)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패거리 문화, 배타적인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대구·경북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그는 “현재의 대구·경북 틀로는 발전에 한계가 있다. 지금의 행정구역은 일제시대 통치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행정구역 개편을 주장했다.“이를테면 대구, 경북, 울산, 강원 등을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만들고 부산, 목포 등도 합쳐 큰 행정구역으로 만들어 대형지방자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지역감정도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교육, 경찰, 조세 등도 모두 지방에 권한을 넘겨야 한다는 것. 일제시대의 낡은 유산인 현재의 행정구역을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완전히 바꾸자는 것이 황 전 총장의 소신이었다. 요즘도 한달에 한두 번은 대구를 방문한다고 했다. 특강 요청이 자주 들어온다고 했다. 최근에는 대구경북연구원에서 ‘지난 50년 앞으로 50년’이란 주제로 강의를 했다. 대구경북통합추진위원회포럼 회장도 맡고 있는 그는 “행정구역의 개편에 앞서 대구경북이 통합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향후 계획을 묻자 “시대에 맞는 비전을 가진 새 대통령이 나설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 참여는 하지 않고 뒤에서 조언하는 원로로 남고 싶다는 바람도 덧붙였다.(이창환 記者 每日新聞 2006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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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大邱廣域市 經濟顧問團 出帆 : 國內,外 政治 經濟界 專門家로 構成) [記事] : 침체된 지역경제의 회복과 신성장 동력 창출을 위해 김만제 전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국내,외 정치, 경제계의 전문가로 구성된 『대구 경제 고문단』이 2008년 12월 12일 대구은행 비즈니스 홀에서 출범식을 가졌다. 이날 출범식에는 김만제 전 경제부총리, 김범일 대구광역시장, 김영훈 대성그룹회장, 이인중 대구상공회의소 회장, 이화언 대구은행장, 이영탁 세계경제연구원 원장(전 국무조정실장),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 이석채 법무법인 유한태평양 고문(전 정통부 장관), 이진설 전 건설부장관, 황병태(黃秉泰, 1935- , 甘泉初 卒業, 國會議員) 전 대구한의대 총장을 비롯 알란 팀블릭 서울글로벌센터 관장, 피에토르 도란 캐피탈 파트너스 회장, 모세샤론 대구텍 사장 등 정치권과 기업을 아우르는 중량급 출향인사와 외국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이들 대구경제고문단은 성장을 주도했던 전통산업의 약화와 입지여건의 취약으로 인한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인한 지역경쟁력을 높이는 노력과 더불어 DGFEZ 지정, 국가첨단과학단지 조성 등 경제환경의 변화에 부응하여 지역내 숙원사업인 대기업 유치를 위한 정보의 교환, 연계, 지원 등 추진체계를 담당키로 하였다... 이날 출범식에 김범일 시장은 “대구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에 있지만, 2011 세계육상선수권 대회 개최, 국가과학산업단지 조성,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 지정, 2013 세계에너지 총회 유치 등을 통해 대구가 재도약하기 위한 중요한 전기를 맞고 있는 것이 사실이므로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와 역량을 갖춘 분들의 도움을 통하여 경제 회복에 가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대구시 경제고문단 출범식으로 고문단의 축적된 경험을 활용하여 지역내 투자유치를 활성화함으로써 침체된 지역경제 회복을 위한 신성장 동력이 창출되기를 기대해 본다.(김민수 記者 韓國地域인터넷新聞 2008-12-13 오전 11: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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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태 [記事] : TrueFriend''''s 블로그/ 중국의 정치와 경제(黃秉泰, 1935- , 甘泉初 卒業, 國會議員, 大邱韓醫大 總長)/ 조회(296) / ☆China | 2004/05/17 (월) 08:37/ 2004년 3월 14일 폐막된 중국의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는 공산당체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변혁을 체제 속에 수용하였다. 사유재산 폐지에 바탕을 둔 공산당체제의 중국이 사유재산을 인정, 보호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일당독재 중국이 전 국민의 인권을 법으로 보호하는 헌법개정을 통과시켰다.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대변환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은 일당독재체제의 공산사회주의를 방기하고 자본주의적 자유민주체제로 전환하고 있는 것일까? 공산체제와 일당독재는 변함없이 유지시키면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접목시키고 있는 데서 오늘의 중국은 종래의 개념과 이론으로서는 이해될 수 없는 특이한 체제운영을 하고 있다. 중국 개혁개방의 창시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중국적 특색 사회주의 시장경제이론은 논리상으로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상반된 사상체제를 현실 속에 양립시키고 있는 데서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념과 명분보다는 실용과 실리를 택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문화전통 속에서 공산사회주의의 외의(外衣) 속에 자유자본주의의 몸집을 가꾸어 가고 있다. 사회주의와 시장경제의 혼합 속에 중국은 지난 25년간 연 9%의 세계 제일의 고도성장으로 세계의 공장으로서, 경제대국으로서, 미래의 충격으로 부상하고 있다. 연간 500억 달러 외자도입으로 총 1조 달러의 외자와 외국기술을 확보하면서 세계자본시장과 원자재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경제공룡으로 변모하고 있다. 세계 6위의 경제규모로 벌써 한국과 일본, 동남아 경제흐름을 좌우하는 중국경제가 2040년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 될 때 과연 이들 나라들이 중국경제의 변방으로 전락하지 않고 경쟁할 수 있을지가 걱정스럽다. 안정적인 정치체제와 고공성장의 경제가 결합된 중국을 설명하는 데는 정치경제학(Politicai Economy)적 설명이 필요하다. 공산정치체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두 이물질을 조화롭게 꾸려가는 중국은 몇가지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론은 공산이론의 경제하부구조론을 뒤집어 적절한 정치관리로서 경제개발을 기획하고 추진하면 정치의 상부구조와 충돌없이 시장경제체제와 운용이 가능할 뿐 아니라 선진시장경제국가를 이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덩은 수천년간 고착된 1인 지배의 황제정치문화를 하루 아침에 집단지도체제와 지도자 세대교체제도로 개발정착시켰다. 장쩌민(江澤民) 세대에 이어 등장한 제4대 집단지도체제는 후진타오(胡錦濤)를 중심한 철저한 권력공유의 집단체제로서 10년 뒤에는 제5대 집단지도체로 바뀌어지게 돼 있다. 일당지배의 공산체제이지만 권력의 집단화와 규칙적인 세대교체로 시장원리에 따른 유연한 경제발전을 관리하는 중국식 특색의 새로운 모델을 정착시키고 있다. 이 모델의 특징은 철저한 경제논리존중의 정치운용이다. 후진타오 세대는 수십년의 수련기간 동안 중국의 경제운영 논리를 익히면서 국가관리의 소질과 능력을 닦아온 기술관료집단 세대다. 일관된 경제운영을 13억 인구를 상대로 흔들림없이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놀라운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이같은 체제 속에서 경제발전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공산당정치체제를 안정적으로, 실리적으로 운용하는 실무형 국가관리전통이 정치바람을 타지 않고 국민의 공감대 속에 정착되고 있다. 경제관리를 위한 제도개혁은 정치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대에 맞게 변화시키고 있다. 지난 10기 전인대가 취한 일련의 헌법개정은 이를 표상하고 있다. 중국의 앞날에 걸림돌은 없을까? 급속한 자본주의 경제질서의 확대와 대외개방이 도시와 농촌, 지역과 계층 간의 빈부격차를 낳고, 국영기업 노동자의 실업이 늘고 있으며, 급속한 개발에 따른 환경파괴, 급속한 세계화 수용에 의한 대외갈등 등 중국사회는 상당한 진통에 휩싸이고 있다.
더 심각한 도전은 경제발전에 따른 국민의 참여욕구와 정치민주화 욕구, 홍콩의 대규모 직선제 선거 요구시위, 천수이볜(陳水扁)의 타이완(臺灣) 독립론이 중국체제의 한계를 실험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같은 도전에 직면해 중국은 ''''5대 계획(統籌)''''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 한가지 확실한 전망은 중국의 특색있는 제도가 외부 상식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온갖 변화를 소화하면서 전진해온 그간의 변화과정을 두고 볼 때 수용 못할 도전은 없지 않을까 관찰된다. 마르크스가 말한 경제하부구조의 변화에 따른 정치상부구조의 변화가 서구적 민주주의로 합류(Convergence)할지, 아니면 중국식 특수민주주의로 고정될지, 중국은 21세기 역사의 최대 실험대가 되고 있다. 중국의 특수화가 진행되어 서구 통용의 재래교과서 이론을 바꿔 써야 하는 이변의 역사가 시작될지 지켜볼 일이다. 황병태 대구한의대 총장 [*황병태(黃秉泰) 약력] = △1935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하버드 대학원(행정학 석사) △미국 버클리 대학원(정치학 박사) △경제기획원 운영차관보 △한국외국어대 총장 △제13대 국회의원 △주중 한국대사 △대구한의대 총장(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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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과 현대화(儒學과 現代化) [冊] : 감천면 덕율2리 덕밤 출신 황병태(黃秉泰, 1935- , 甘泉初 卒業, 國會議員, 大邱韓醫大 總長)의 저서로, 636쪽, A5, 우석에서 2001년 2월 12일에 출간하였다. [책 소개] : 한국, 중국, 일본의 유학사상을 비교 분석한 저서. 저자는 13,15대 국회의원, 주중대사를 거쳐 미국 버클리대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유학에 대한 일반론을 시작으로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의 유교가 어떠한 차이점을 가지고 전개되었는지를 비교 분석하고, 보편 문화로서의 유학이 현대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지 못한 이유와 각 나라의 유교가 현대화라는 외적 도전에 대해 서로 다른 반응과 적응력을 갖게 된 원인을 규명한 저서. [저자 소개] : 저자 황병태는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하버드대 행정학 석사, 미국 버클리대학원 정치학 박사, 제7회 고등고시 외교과 합격, 경제기획원 과장·국장 ·차관보,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한국외국어대 총장, 13·15대 국회의원, 경우회 회장, 주중대사, 미국 버클리대 초빙교수, 저서로는 <경제주의의 종언>, <자본주의와 민주정치>, <유학과 현대화>(중국어판)/ [목차] : 제1장 유학 일반론 / 1. 고전 유학 ...46 / 2. 맹자의 논쟁 유학 ...64 / 3. 전환기 유학 ...77 / 4. 관변적 한대 유학 ...83 / 5. 절충 유학 ...90 / 6. 복귀적 유학 ...104 / 7. 종합 유학 ...114 / 8. 육왕학파 대 정주 학파 ...176 / 제2장 중국의 유학 / 1. 총체적 특성 ...192 / 2. 명대의 유학 ...204 / 3. 청대의 유학 ...240 / 제3장 일본의 유학 / 1. 도쿠가와 유학 ...294 / 2. 오요메이 학파 ...329 / 3. 고가쿠파 ...342 / 4. 절충유학 ...378 / 5. 고쿠가쿠파 ...386 / 6. 신가쿠 학파 ...397 / 7. 계몽 학파 ...407 / 제4장 한국의 유학 / 1. 이데올로기 유학 ...430 / 2. 사회·정치적 환경 ...450 / 3. 한국 유교의 개화 ...464 / 4. 실용주의 학파 ...515 / 제5장 현대의 유학 / 1. 고전 유학 ...544 / 2. 송명리학 ...562 / 3. 일본의 유학 ...568 / 4. 한국 유학 ...573 / 5. 근대화 ...579 / 6. 근대화 속의 유학 ...592 / 7. 근대화 속의 유학의 공통적 본질과 특성 ...594 / 8. 근대화에 있어 국가별 유학의 차이점 ...603 / 9. 현재의 유학 ...616 / 10. 미래의 유학 ...625(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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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민주정치(資本主義와 民主政治) [冊] : 감천면 덕율2리 덕밤 출신 황병태(黃秉泰, 1935- , 甘泉初 卒業, 國會議員, 大邱韓醫大 總長)의 저서로, 514쪽, A5, 우석출판사에서 1988년 4월 1일에 출간하였다.(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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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향한 한·중 공동번영의 모색(21世紀를 向한 韓·中 共同繁榮의 摸索) [硏究報告書] : 감천면 덕율2리 덕밤 출신 황병태(黃秉泰, 1935- , 甘泉初 卒業, 國會議員, 大邱韓醫大 總長) 등(유장희, 서건명, 소령 ...)의 보고서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1996년 4월 3일에 발행한 책에 수록되어 있다. [본문 요약] : 오늘날 國際經濟는 世界化와 地域主義가 공존하는 兩面性을 띤 새로운 秩序를 형성해 가고 있다. WTO의 출범으로 상징되는 世界化의 현상과 함께, 세계 곳곳에서 地域統合이 진전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新秩序는 積極的으로 보면 國家間 競爭의 격화를 야기한다 하겠으나, 消極的으로 보면 國境을 超越하는 協力의 필요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이러한 視角에서 볼 때 최근 飛躍的으로 擴大되고 있는 韓. 中 交流는 매우 바람직한 것이라 하겠다. 韓國과 中國은 世界의 中心으로 떠오르고 있는 아시아에서 가장 力動的으로 成長하는 나라에 속하며, 兩國關係는 ''''92년 修交 이후 그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면에서 急速히 擴大되고 있다.특히 韓·中間의 經濟交流는 최근 빠르게 확대되어 兩國經濟의 構造的 連繫性이 심화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94년 産業協力協定의 체결로 양국의 經濟關係는 단순한 量的擴大의 관계를 넘어, 有望産業部門에서 相互連繫的인 새로운 협력관계를 추구하는 質的變化의 段階에 이르렀다. 즉 단순히 自國만의 利益 뿐만 아니라 21세기를 앞두고 共同繁榮을 摸索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양국 經濟關係에는 交流의 急增에 수반하여 일부 問題點도 있을 것이고, 長期的인 발전의 障碍要因도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韓·中 經濟關係를 長期的인 시각에서 成熟된 形態로 발전시키기 위해 준비하는 重要한 時點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本 硏究院이 21世紀를 향한 韓·中 共同繁榮의 摸索"이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中國政府의 核心 연구기관인 中國國家計委 巨視經濟硏究院과 공동으로 지난 ''''95년 10월 16일 北京에서 개최한 것은 큰 意味가 있다고 하겠다. 특히 이 세미나가 韓國이 2020까지의 長期政策을 構想中에 있고 中國은 ''''96년부터의 新 5個年計劃과 2010까지의 長期發展計劃을 한창 마련하는 시점에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時宜適切했다고 본다. 本 세미나에서는 양국의 業界, 學界, 官界의 專門家들이 다수 참가하여 양국의 經濟發展戰略을 展望하고 양국의 經濟協力의 新構圖를 摸索하는 데 있어서 활발하고 심도 있는 發表와 討論을 벌였다. 또한 本 세미나는 中國의 江澤民 主度의 ''''95년 11월 訪韓을 20여일 앞두고 개최됨으로써 양국 國民間의 理解와 信賴를 더욱 증진시키는 效果도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本 資料는 이 세미나에서 발표되었던 論文과 討論을 정리한 것이다. 이 자료의 編輯은 세미나의 개최를 주관하였던 本 硏究院 北京支院의 趙顯埈 調査役이 담당하였다. 이 자료가 中國經濟와 韓·中 經濟協力에 관심 있는 關係者들에게 參考資料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끝으로 本 세미나의 개최에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本 硏究院 北京支院의 駐在員과 現地職員 여러분께 감사를 표한다.(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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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전망(中國의 市場經濟體制의 現況과 展望) [學術저널] : 감천면 덕율2리 덕밤 출신 황병태(黃秉泰, 1935- , 甘泉初 卒業, 國會議員, 大邱韓醫大 總長)의 논문으로, 한국생산성학회에서 1996년에 발행한 책에 수록되어 있다.(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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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관계의 회고와 전망(韓·中 關係의 懷古와 展望) [專門記事] : 감천면 덕율2리 덕밤 출신 황병태(黃秉泰, 1935- , 甘泉初 卒業, 國會議員, 大邱韓醫大 總長)의 기사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발행한 책에 수록되어 있다. [본문 요약] : 지난 8월 24일로서 韓.中 양국은 수교 2주년을 맞이하였다. 수교 이후, 특히 金泳三 대통령 취임 이후 양국간에 진행된 각종 변화의 質과 幅은 기존에 중국과 오랫동안 외교관계를 유지하여 온 많은 국가들이 부러워할 만큼 놀라울 만한 것이었다. 韓.中 수교 2주년을 맞이하면서 對外經濟政策硏究院의 "지역경제" 지면을 통해 양국관계를 회고해 보는 한편, 앞으로의 방향을 전망해 볼 수 있는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 우선 韓.中 수교 이후 이룩한 가장 커다란 변화는 무엇보다도 경제방면의 활발한 교류였다고 할 수 있다. 금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했을 때 양국간 직교역은 60억 달러에 육박했으며,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는 경우 금년말까지는 12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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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된 한·중 관계 정립을 바라면서(成熟된 韓·中 關係 鼎立을 바라면서) [專門記事] : 감천면 덕율2리 덕밤 출신 황병태(黃秉泰, 1935- , 甘泉初 卒業, 國會議員, 大邱韓醫大 總長)의 기사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발행한 책에 수록되어 있다. [본문 요약] : 월 24일로서 韓·中 兩國이 國交正常化를 이룩한 지도 3년이 됩니다. 3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으면서도 韓·中關係는 그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政治·經濟面에서 급속히 발전·확대되고 있습니다.94년 3월의 金泳三 大統領, 94년 11월 李鵬 總理, 그리고 95년 5월 李洪九 總理의 상호 방문 등이 대변해 주듯이 兩國 頂上은 수시로 만나 兩國關係 增進 論議뿐 아니라 아시아 및 세계에서 양국간의 긴밀한 협력을 모색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특히 經濟關係는 交易·投資 등 단순히 평면적 협력에 의한 量的 擴大뿐 아니라 産業協力을 통해 이미 航空機, 電子交換機, 自動車, 高畵質 TV 등 방면에서 양국의 資本, 技術, 市場을 공동 활용하여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相互連繫的(interlocking) 새로운 협력관계를 추구하는 質的인 變化가 일어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습니다.(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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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13) : 덕밤마을 출신 대학교 총장(황병태)의 저서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3-07-30 照會 114)
→<예천의 자랑> 제3권(張炳昌 著 2004年) =411~4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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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면 상금곡리 출신 전장홍, 서예 도대회 최우수상...축하합니다.
전장홍(慶北道 書藝ㆍ文人畵大展 最優秀賞 : 龍門面 上金谷3里 전장홍 氏) [記事] :
용문면 상금곡3리 전장홍(67) 씨가 2009년 6월 8일 발표된 제36회 경상북도 서예·문인화 대전에서 최우수상(한문분야)에 입상했다.
“퇴직 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서예가 삶의 기쁨이 되고 있다”며 “먼저 스승인 한중섭 선생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더욱 정진해 후손들에게 모범이 되는 삶을 살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전장홍 씨는 명당 한중섭 선생의 문하생으로 예천농고(13회)를 졸업했다.
지난 70년 지방공무원 공채로 지보·용문면사무소에 근무했으며, 74년 용문단위농협에 입사, 지난 2000년 풍양농협 전무로 퇴직했다.
그 다음해인 2001년부터 명당서실에서 명당 한중섭 선생의 지도를 받고 있으며, 예천서예인연합회 2대·3대 사무국장을 맡아 예천서예인들의 권익향상에 앞장서 왔다.
그동안 경상북도 서예·문인화 대전에서 4회 입선했으며, 국제유교문화서예대전 3회 입선했다.
현재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용문 금당교회 시무장로로 부설 노인대학 및 주부대학 학사운영 및 서무를 맡아 지역봉사에 앞장서고 있다.
가족으로는 부인 이숙자(60) 씨와의 사이에 3남 2녀를 두고 있다.
한편 경북도는 2009년 5월 30일부터 이틀 동안 한글, 한문, 문인화, 전각·서각 등 4개 분야에서 접수된 5백15점을 심사해 대상, 최우수상 등을 비롯 모두 2백37점을 입상작으로 선정했다.
(백승학 記者 醴泉新聞 2009년 06월 11일 12: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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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게이트볼연합회 한천분회, 도대회 1위...축하합니다.
예천게이트볼연합회 한천분회(醴泉게이트볼聯合會 漢川分會 : 慶北道大會 男女混復 郡部 1位) [記事] :
2009년 6월 5일 상주에서 열린 2009 어르신 게이트볼 경상북도 대회에서 예천게이트볼연합회 한천분회(회장 진용선)가 남녀혼복 군부 1위를 차지했다.
이날 대회에는 선수 및 임원 10여 명이 참여해 우수한 기량으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 자리에서 진용선 회장은 “최선을 다해준 회원들에게 감사하며, 앞으로 게이트볼을 통해 회원간의 건강 증진과 친목을 다지는 일에 다함께 노력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한천분회는 2008년 김수남 예천군수와 안철모 예천읍장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회원 25명으로 창립했으며, 2009년 5월 30일 군내 10개 분회 2백여 명의 게이트볼 동호인들을 초청해 친선게이트볼 대회를 열어 위상을 과시했다.
이번 대회 우승으로 전국게이트볼대회 남녀혼복 경북도 대표 출전 자격을 획득했으며, 좋은 성적으로 예천게이트볼의 역량을 대내외에 알린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우고 있다.
(醴泉新聞 2009년 06월 11일 11: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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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면 방송리 출신 김선도, 기술혁신기업 인증받아...축하합니다.
김선도(경일산업(株) 김선도 代表 : 技術革新企業 認證 받아) [記事] :
용문면 방송리 태생의 김선도 경일산업(주) 대표가 2009년 5월 중기업청 및 기술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이노비즈(INNOBIZ) 기술혁신기업 및 벤처기업 인증을 받았다.
경일산업(주)은 야외체육시설 및 놀이시설 조달청 납품 국내 1위 기업이다.
연간 약 1백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 중소기업이다.
김선도 대표는 현재 재경예천군민회 수석부회장이다.
(醴泉新聞 2009년 06월 11일 11: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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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448
예천군산업곤충연구소 [記事] : 프로방스집꾸미기 카페/ 예천곤충연구소 다녀 왔어요/ 글쓴이: 살고싶은화초/ 2009.06.11 10:35/
우리가 서울서 예천까지 곤충을 보러간 이유가 뭐냐 하면요. 하교시간에 어떤 아줌마가 교회 나오면 애벌레 준다고 했나봐요. 실은 지금 장수풍뎅이가 두 마리 성충이라 한참 사랑놀음을 하고 있는데 또 벌레가 키우고 싶었나봐요.
교회 가자고 하면서 엄마 계속 안 다녀도 된데. 그냥 가보자. 하도 그래서 막 성질내고 검색하다 정말 좋은 곳이다 싶어서 갔지요.
이곳의 장점은 4층짜리 건물 전체가 곤충표본과 살아있는 곤충들이고, 그 외에 분수대랑 놀거리가 있고요.
구름다리를 건너면 산이 있어서 등산도 하지요. 공기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좋고요... 산중에 있어요.
온실체험이라고 온실 속에 벌, 장수풍뎅이, 나비들이 진짜 살아서 움직이고 만져볼 수도 있어요.
물론 조금이나마 화초들도 같이 어울리게 있고요. 의자는 앉을 수 있는 나무그늘이고요.
위에 조그마한 놀이터 그 뒤로 구름다리가 있어요. 엄마들은 원두막 같은 것이 있어서 거기서 자더라고요.
애들은 지들끼리 놀다가 계곡 밑으로 내려가서 올챙이도 잡고 그랬어요. 김밥은 장만하시고요...
물은 지하수 팡팡 나오니까 받아가세요(구멍가게 앞에 팡팡 나와요) 정말 애들 놀기는 딱입니다.
서울서 가는데 네비가 갈쳐준 데로 가다보니 4시간 넘게 걸렸어요. 올 때는 3시간에 왔지만요. 벌레 실컷 보다 왔어요.(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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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