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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1937:고인계司藝(祝채윤호/예천방문454)
작성자장병창 @ 2009.06.22 07:46:29
  예천의 자랑(1937) : 용궁현 출신 고인계 司藝(附 대창중 채윤호, 시낭송 도대회 장려상...축하합니다/예천방문 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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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계(高仁繼) : 1564(명종 19)-1647(인조 25), 용궁현(龍宮縣) 출신, 자는 선승(善承), 호는 월봉(月峰), 본관은 개성, 사원(士原)의 6세손, 전력부위 경운(副尉慶雲)의 아들, 고성군수 흥운(郡守興雲)의 양자, 부모 사후(永感下)에 유학(幼學)으로서 1605년(선조 38) 증광 진사시에 2등 27위로 합격, 1606년(선조 39) 식년 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 8위로 급제, 학유(學諭)와 박사(博士)를 지내다가, 광해군 때 이이첨(李爾瞻)이 북인파(北人派)에 가담하기를 권유하자 이를 거절했다가 영서도 찰방(迎署道察訪)으로 좌천, 얼마 후 사직하고 낙향했다. 인조반정(仁祖反正, 1623) 후 전적(典籍), 형조 정랑(刑曹正郞), 충청도 도사(忠淸道都事), 예안 현감(禮安縣監), 사예(司藝) 등을 거쳐 용양위 부호군(龍 衛副護軍, 1645)에 승진했고, 상주(尙州)의 효곡서원(孝谷書院)에 제향되었다. <월봉집(月峯集)>이 있다.(國朝人物考, 竺山勝覽 1934, 龍宮縣邑誌 1780, 司馬榜目, 文科榜目, 醴泉郡誌 1939)


  [承政院日記] : 1626년(인조 4) 3월 10일에 예안 현감(禮安縣監)에 제수되었고, 동년 윤 6월 25일에는 정언(正言) 최혜길(崔惠吉)이 왕에게 아뢰기를, "고인계가 연로(年老)하여 하루라도 관직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으나, 윤허되지 않았다.(承政院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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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계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慶尙道 / 尙州 / 壇廟 / 社稷壇 在州西五里 文廟 在鄕校 城隍祠 在州北七里 ?壇 在州北五里 新增纛祠 在州西北三里 道南書院 在州東二十里萬曆丙午創建列享文忠公 鄭夢周 文敬公 金宏弼 文憲公 鄭汝昌 文元公李彦迪文純公 李滉配享文簡公 盧守愼 文忠公 柳成龍 文莊公 鄭經世 肅廟朝丁巳 賜額 興巖書院 在州西六里 肅廟朝壬午創建享文正公 宋浚吉丙申宣額同年又 賜 御書揭額 玉城書院 在州南二十五里崇禎壬申創建享政堂文學 金得培 牧使 申潛 縣監 金範 縣監 李? 副提學 李埈 近?書院 在州北六十里 顯廟朝甲辰創建享校理 洪彦忠 文翼公 李德馨 典翰 金弘敏 司諫 洪汝河 鳳山書院 在州西五十里 肅廟朝戊子創建享文簡公 盧守愼 文靖公 沈喜/ <하권0429-3>/ 壽 縣監 成允諧 西山書院 在州西四十里 肅廟朝癸巳創建享文忠公 金尙容 文正公 金尙憲 白玉洞書院 在州西六十里 肅廟朝甲午創建享翼成公 黃喜配享忠簡公 全湜 ?水書院 在州東六十里崇禎乙亥重建享牧使 孫仲暾 按廉使 申祐 副提學 金宇宏 奉常正 趙靖 淵嶽書院 在州南十五里 肅廟朝壬午創建享 贈監察 朴彦誠贈監察 金彦健 察訪 康應哲 孝谷書院 在州南三十里 肅廟朝乙丑創建享司成 金沖 主簿 宋亮 縣監 高仁繼 花巖書院 在州南二十里 肅廟朝壬申創建享贈參判 成?進士金安節 進善 申碩蕃 忠烈祠 在州三里 肅廟朝戊寅創建享判官 權吉 統制使 鄭起龍 察訪 金宗武傍有戶長朴傑廟(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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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계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慶尙道 / 尙州 / 人物 / 曺友仁 中進士登第光海政亂無意仕進嘗以迎詔使製述官被徵入直西宮時長秋錮門藏舊作六韻詩略曰蕭條物色同南內 陟降英靈泣夜臺爾?見而?之誣以護逆光海親鞠受訊但連呼念先王三語因繫獄三年逮 反政得釋卽 除承旨退歸洛濱而卒有?齋集行于世 高仁繼 中進土登第官至縣監見爾瞻亂國政棄職還鄕築室于瀕水之上賦詩自娛享孝谷書院 柳袗 成龍之子進士壯元以遺逸薦授持平資質謙沖踐履篤實歷典四邑有氷蘖聲享安東屛山書院 金安節 中進士孝行出天不求名利遊成允諧之門講明經旨踐履堅貞入享花巖書院 申碩蕃 中進士天資超卓學問精博以遺逸爲官至進善 贈吏曹參議享花巖書院 康應哲 中進士以學行薦察訪享淵嶽書院(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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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계 [記事] : 승정원일기/ 인조 4년 3월 10일 (계축) 원본12책/탈초본1책 (17/20) 1626년 天啓(明/熹宗) 6년/ 李敏求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吏曹, 以李敏求爲知製敎, 尹?爲通訓大夫行吏曹佐郞知製敎兼世子侍講院司書, 柳允昌爲通訓大夫行掌隷院司評, 通德郞行藝文館待敎兼春秋館記事官金光爀, 啓功郞行奉常寺參奉兼校書館正字金?, 高仁繼爲通訓大夫行禮安縣監者。(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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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계 [記事] : 승정원일기/ 인조 4년 윤6월 18일 (무오) 원본14책/탈초본1책 (25/25) 1626년 天啓(明/熹宗) 6년/ 申景祐가 超資된 것을 바로 잡아 줄 것과 貪虐한 安?의 罷職 등을 청하는 崔惠吉의 계/ ○ 正言崔惠吉來啓曰, 女壻連坐之律, 本非法典, 故适賊之壻, 不過投竄而止耳。張德一以明璉妻死之壻, 別無顯著同惡之跡, 而正刑之典, 獨未得免罪同罰異, 固已無謂矣。德一元非大?, 則景祐之?登頂玉之列者, 果何功耶? 若以爲功疑惟重, 不可全然不酬, 豈無相當可施之賞乎, 功微賞鉅, 物情益激, 改正之典, 不容已也。請加三思, ?賜一兪。安?貪虐之狀, 已盡昨日之啓, 聖念二字缺於棄瑕, 公議益激於嫉惡, ?帥重寄, 決四字缺請勿留難, ?命罷職。守令數遞, 臣等亦非不思, 而李喜熊·高仁繼年衰, 七字缺害不?迎送之弊而止耳。九字缺不可一日在官, 重貽民。以下缺批答缺。已上燼餘日記(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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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계 [記事] : 승정원일기/ 인조 4년 윤6월 21일 (신유) 원본14책/탈초본1책 (5/6) 1626년 天啓(明/熹宗) 6년/ 超資된 申景祐의 削資, 貪虐한 安?의 罷職, 연로한 李喜熊 등의 罷職을 청하는 崔惠吉의 계/ ○ 正言崔惠吉來啓曰, 臣等以申景祐削資之事, 逐日來叫, 未蒙允許, 臣等之惑, 滋甚焉。爵賞紊濫之狀, 論列已盡, 更無餘辭, 而女壻連坐之律, 於法本無, 故賊适之壻, 罪止投荒, 尙保首領, 韓賊妻死之壻, 獨不免顯戮之加者, 刑章之不均, 果何如哉? 況可以捕此之微勞, 至超堂上之重資, 而莫之惜乎? 物議之駭異, 愈往愈甚, 請勿留難, ?命改正。忠淸水使安?, 爲人泛濫, 曾在昏朝, 屢爲邊將守令, 貪虐自恣, 所在人民, 欲食其肉, 豈可復委專?之任其剝割乎? 除目一下, 物情駭憤, 請命罷職。結城縣監李喜熊, 年紀衰耗, 兩耳全聾, 禮安縣監高仁繼, 爲人迂拙, 聾病亦重, 到任以後, 政委下吏, 如此之人, 不可一日在官, 重貽民弊, 請竝命罷職, 其代各別擇送。答曰, 安?, ?時雖有所失, 到今〈不〉無改過之理, 今姑試可, 勿爲已甚之論, 可也。且守令數遞, 爲當今巨弊, 坐席未暖, 如是彈劾, 殊甚不當矣, 更爲詳聞論之, 姑勿煩瀆, 申景祐事, 不允。(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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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계 [記事] : 승정원일기/ 인조 4년 윤6월 22일 (임술) 원본14책/탈초본1책 (8/8) 1626년 天啓(明/熹宗) 6년/ 超資된 申景祐의 削資, 貪虐한 安?의 罷職, 연로한 李喜熊 등의 罷職을 청하는 崔惠吉의 계/ ○ 正言崔惠吉來啓曰, 以上缺一條也。臣等之痛惡憤七字缺淸明之日, 復見如此之弊乎? 七字缺死則景祐之超授堂上, 重七字缺功疑惟重, 固是聖意之所在, 而官三字缺實非治世之美事, 有識寒心, 公議益激, 請加三思, ?賜一允。安?爲人驕悖, 性又貪?, 曾前?歷, 唯以斂怨肥己爲事, 安有更爲試可之才耶? ?帥之任, 決不可以謬授, 改過自新, 非所望於此人, 請命罷職, 以快公議。事有輕重, 弊有大小, 以守令數遞之害, 較之於尸素病民之弊, 則得失所在, 灼然可見。此臣等所以請罷李喜熊·高仁繼字牧之任, 而不止者也。年衰耳病, 政委下吏之狀, 論列已盡, 請勿留難, ?賜允兪。答曰, 德一爲賊腹心, 終缺同惡云, 此非應死之賊而何哉? 今此加資, 實非濫缺勿煩, 可也。安?遞差。李喜熊等事, 已諭, 不允。已上燼餘日記(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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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계 [記事] : 승정원일기/ 인조 4년 윤6월 25일 (을축) 원본14책/탈초본1책 (9/18) 1626년 天啓(明/熹宗) 6년/ 金堉 등의 出仕, 申景祐의 削資, 李喜熊 등의 罷職을 청하는 崔惠吉의 계/ ○ 正言崔惠吉來啓曰, 王者之政, 必以保民爲本, 保民之道, 必以祛弊爲先。魚鹽以下數者之弊, 實爲當今第一痼弊, 則痛革勇改之擧, 固不容一日少緩, 而殿下特爲私意所蔽, 不念生民之失業, 公議之難?, 而論之愈切, 聽之愈邈。乃以祖宗朝賜與, 不可卒革等語, 爲拒塞言路之地, 此豈臣等所望於聖明者哉? 設令盡是祖宗朝賜與之物, 不可以一時之恩援, 比於金石之典, 六字缺矣, 況祖宗之所賜與者無多九字缺一日, 終至於今日而極矣, 十一字缺不知止者也。利入十四字缺關係於此弊五行餘缺儒生考講, 十四字缺兵曹隨補軍案九字缺如斯而止, 可也。今者旣九字缺而別遣御史嚴督各道七字缺入境, 相顧驚駭, 逃而避之, 則成籍六字缺得垂成之事, 或恐致誤, 且該曹與號四字缺相參, 則竊恐論議矛盾, 動輒牽?, 徒有二字缺事不着實。凡此兩事, 皆國家莫重之擧, 臣以此事論啓, 則方在郞僚之列, 有是非本廳之罪。以此爲嫌而不言, 則有含默苟容之失, 臣之?跡, 實爲狼狽。且昨日連山縣監曺文秀罷職事, 持平李景義, 以欲停之意, 簡通於臣, 臣以停之甚當答通, 而不爲更問於臣, 以罷職連啓, 此無非臣見輕同僚, 不能爲有無於其間之所致也。以此以彼, 不可?然仍冒。掌令姜大進, 以昨日城上所曺文秀罷職事, 欲停之意, 簡通於諸僚, 臣意以爲請罷蒙遞。公議已行, 事非大段, 不必累瀆以停似當答送矣。終不往復可否, 而直爲連啓, 無非臣見輕之致, 不敢偃然苟冒。執義李敬輿, 以今見持平金堉引避之辭, 一則號牌御史發送不便, 一則曺文秀論罷, 不爲歸一而連啓也。臣方四字缺與聞此論, 亦似涉嫌, 曺文秀停論, 簡通六字缺初以罷職爲請, 遞命?下, 旋九字缺體以仍啓似當之意答送, 十一字缺臣實當之。以此以彼, 十四字缺答以昨朝見五行餘缺謂無失, 而十四字缺府多官, 引嫌退待, 十一字缺持平金堉避辭, 其一款九字缺改送爲言, 臣亦?受御史之任者, 七字缺嫌, 何敢仍冒可否於其間乎? 竝引嫌而退。四字缺當觀事理之如何, 號牌御史之發送, 四字缺該曹之合廳, 亦恐論議矛盾, 則豈可以二字缺郞僚, 而不爲是非, 方爲御史, 而嫌於與聞乎? 曺文秀呈所志, 意在圖遞, 公議非之, 請以罷職, 遞差而止, 適遂其願, 則答以連啓者, 固其宜也。不能歸一, 直爲連啓, 責雖有歸, 遞命?下, 旋答停論, 若曲爲之地, 則亦非論事之體。請持平金堉, 掌令姜大進, 執義李敬輿, 大司憲朴東善, 司諫姜碩期, 竝命出仕。申景祐削資之論, 本非大段難從之事, 而爭之愈久, 拒之愈堅。此雖臣等言不見信之致, 實亦有累於聖明虛受之德耳。其功微賞濫之狀, 陳列已盡, 聖明其亦洞燭無餘矣。殿下何有於一景祐, 而不惜名器之混淆乎? 物議益激, 有難停止, 請命改正, 以杜倖門, 以淸仕路。臣等以李喜熊·高仁繼年衰耳病之狀, 論列已盡, 未蒙允兪, 臣等竊恐殿下於輕重之分, 猶有所未盡燭者, 迎送之弊, 一時之勞也。尸素之害, 闔境之病也。豈以一時之勞, 而莫恤闔境之病乎? 九字缺何大段不可, 而上下相持, 十一字缺命罷職, 擇。以下及批答缺(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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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창중 채윤호, 시낭송 도대회 장려상...축하합니다.

  채윤호(第19回 全國詩朗誦 慶北豫選大會 ''''中高等部 奬勵賞'''' : 최윤호 君(醴泉 大昌中 3) [記事] :

  소년한국일보와 재단법인 재능문화가 마련하고 교육과학기술부ㆍ문화체육관광부ㆍJEI재능TVㆍ경북도교육청이 후원한 제19회 전국시낭송 경북예선대회의 중고등부 장려상은 최윤호 군(예천 대창중 3)에게 돌아갔다.

  이 대회는 2009년 6월 20일 구미 올림픽기념생활관에서 열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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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454

  예천군 충효테마공원(醴泉, 忠孝테마公園 造成 拍車 : 올 年末께 完工) [記事] :

  경북 예천군이 추진 중인 충효테마공원조성사업이 충효관 건립 완공을 앞두고 주변 경관 조성과 민속놀이 마당을 비롯한 조각공원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예천군은 감천면 포리 일원 21만여㎡의 부지에 총 사업비 1천150억 원을 투입해 충효테마공원을 조성키로 하고, 지난 2000년부터 사업에 착수해 지난 2007년 23억8천만 원의 예산을 들여 1천300여m에 이르는 진입로 개설공사를 마무리한 뒤, 52억여 원의 사업비를 들여 충효관 건립공사에 들어가 2009년 연말 경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번에 예천군이 건립한 충효관에는 명심보감에 수록된 효자 도시복에 대한 설화는 물론 약포 정탁 대감을 비롯한 충과 효를 대표하는 지역 위인들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 영상물로 관람할 수 있는 최신 멀티비젼을 설치했다.

  특히 충효관 내부에는 충과 효 사상에 대한 각종 역사와 설화를 영상물로 관람할 수 있도록 한 데다 청소년들과 어린이들도 충과 효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게임 형식의 테마가 있는 공간으로 조성해 관람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張炳喆記者 慶北日報 200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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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마산(백두자구천부주마단맥 甘泉面 走馬山(508m)) [記事] :

  주마산(走馬山)은 백두대간 묘적봉(1,148m)에서 낙동강 방면으로 분기되는 자구지맥(묘적령~옥녀봉~자구산~부용봉~냉정산~남산~한천ㆍ내성천 합수지점(호명면 담암리) 39km) 줄기에 우뚝 솟은 산으로 천부산(天浮山 영주시 봉현면)과 함께 단맥을 이루고 있다.

  예천의 명산개발을 위한 주마산 탐방은 이인호 감천면장을 비롯한 직원, 감천 산악회(회장 김창일), 동서산악회(회장 정태국) 회원, 예천흑응산악회(회장 전재인) 허형범, 엄형수 회원, 증거리 조동진 이장을 비롯한 마을 주민 조동흠, 조승대, 송윤영 씨 등 많은 분들이 함께 했다.

  감천면 유, 돈산, 증거, 현내, 진평, 벌방리 등 6개리에 걸쳐 있는 주마산(일명 고방산)은 진입로인 현내리에서 바라보면 삼각형을 한 정상부가 주위의 산들을 압도하며 우뚝 솟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웅장함과 경외감을 갖게 한다.

  주마산 주 등산로는 증거리 한천사에서 시작되며 그동안 인근 주민과 지맥 종주 산악인들이 가끔 찾을 뿐 일반인들에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

  예천온천과 승용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 주마산(走馬山)은 말이 바람을 가르며 힘차게 달려가는 주마형국(走馬形局)으로 의상 대사가 부석사를 지을 때 기둥이 자꾸 넘어져 그 이유를 조사해 보니 소백산맥 남쪽 주마산의 지세가 달리는 말머리(馬頭) 형국인지라 그 지세를 누르기 위해 말의 눈에 해당하는 자리에 세웠다는 부석사의 비보사찰 한천사(寒天寺)가 있다.

  신라 문무왕 18년(678년)에 의상 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한 한천사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철불상이 있는 절로 보물 제677호 철조여래좌상, 유형문화재 제5호 한천사 삼층석탑 등 많은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주마산은 천연동굴과 금광굴 등 동굴 4개소, 암자터, 유래가 전해져 오는 약물탕 2개소 등 자연적인 조건과 감천지(현내지), 예천온천, 석송령, 예천천문우주과학공원, 충효테마공원 등 주변 환경이나 시설이 좋아 다른 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이색적인 동굴, 온천, 우주체험을 할 수 있어 근교 산행코스로 널리 홍보한다면 예천온천과 인접한 주마산은 지역주민을 비롯한 전국의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예천의 명산이 될 것이다.

  주마산 등산로 개설은 2009년 2월 7일~5월 14일 기간 동안 6차에 걸친 사전탐사에 이어 안전산행을 위한 등산로 정비와 이정표, 안내표지판 설치작업이 2009년 6월 15일 완료되어 한천사→금광굴→한천사 약물탕→지하금광굴→산불초소(전망대)→주마산 정상(508m)→구리바위굴→고방산 약물탕(암자터)→한천사(2.7km) 원점회귀 3시간 코스의 1차 등산로가 개발됐다.

  주마산 등산로는 한천사 입구 종합안내판에서 우측방향을 따라 시작되며 정상까지는 약 1.3km 1시간 20여분 정도 소요된다.

  묘 1기 지점을 지나 산행 시작 3분 정도 거리에 갈림길이 나오고 정상은 좌측방향 오르막길로 묘 3기 지점에 이르면 정면으로 펼쳐지는 학가산 조망이 일품이다.

  등산로는 울창한 솔숲 오르막길로 이어지며 경사가 다소 급해 초입부터 숨이 차오르지만 나무그늘 속을 걸어 0.5km 지점에 금광굴, 한천사 약물탕, 지하 금광굴 갈림길 이정표가 나타난다.

  금광굴은 이정표에서 좌측 내리막길 20여 미터 지점에 있다. 금광굴은 폐광 이후 방치로 좁아진 굴 입구를 엎드려 들어가면 서도 될 정도로 높고 깊이 들어 갈수록 넓으며 주민들에 의하면 굴 길이는 약 50여 미터로 박쥐가 살고 있다고 한다.

  증거리 일대는 예전에 땅만 파면 금이 나왔다고 할 정도로 일제시대 금광지대로 유명했으나 1945년 해방과 함께 모두 폐광됐다. 주마산의 구리바위굴, 금광굴은 한국전쟁 때 피난처 역할을 했지만 60년대 주마산 일대에 간첩이 출현 은거지로 사용된다 하여 입구를 막기도 했다.

  등산로는 갈림길 표지판으로 되돌아 걸어 우측 한천사 약물탕 방향 평탄한 길을 100여 미터 걸으면 등산로 옆에 토굴이 나온다. 이 굴 역시 금광굴로 한때 무속인들이 굿을 할 때 즐겨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이어 40여 미터 지점에 한천사 약물탕이 있다. 큰 암벽의 틈새로 물이 흐른 흔적이 있는 이 바위를 인근 마을 주민들은 생목이 오르는 데 좋다 하여 약물탕이라 부르고 있다.

  약물탕 주변에는 사람이 움막을 짓고 기거한 흔적이 있으며 오래된 참나무, 소나무 한 그루가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약물탕에서 지하 금광굴은 급경사 오르막을 60여 미터 올라 도착하게 되는데 이 구간은 암릉지역으로 참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면서 낙엽이 두텁게 쌓여 많이 미끄러웠으나 낙엽을 끌어내고 계단을 만드는 등 안전한 산행이 되도록 정비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지하 금광굴은 금광 개발시 직선으로 파내려간 탓에 물이 솟아나 아무리 가물어도 샘물이 마르지 않으며 마을 주민들은 가뭄시 지하 동굴에서 호스를 연결해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등산로는 지하 금광굴에서 약 10여 미터 되돌아 걸어 정상 산불초소 방향으로 이어진다. 산불초소까지는 약 0.1km 암릉지역으로 큰 암벽 밑을 지나면 고압선 철탑이 나오고 산불초소에 도착하게 된다.

  한천사에서 약 40여분 소요된다. 주마산 7부능선 해발 450m 지점에 위치한 산불감시초소는 인근마을 주민들이 해맞이 행사로 이용할 정도로 주변 전망이 아주 좋다.

  산불감시초소는 증거리 주민 김병철 씨가 10년째 지키며 주변 지형을 훤히 꿰고 있다. 전망대 바위에서의 조망은 정면으로 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학가산을 비롯한 구릉지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푸른 물을 가득 머금은 감천지(현내지)의 모습은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것처럼 조망이 아주 좋다.

  산불초소에서 주마산 정상까지는 약 0.43km로 오르막 솔숲 등산로를 따라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암릉지대와 묘 1기를 지나 구리바위굴, 정상 갈림길에서 우측방향 완만한 오르막길을 걸어 주마산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주마산(508m) 정상부는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볼거리를 제공하며 주변에는 묘 2기, 삼각점, 이정표와 함께 잡목을 제거하여 여러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도록 했다.

  주마산 정상은 울창한 나무에 가려 조망이 어려우나 남쪽으로 학가산, 동쪽으로 영주시가지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정상 표지석은 감천 산악회, 동서산악회에서 6월 29일 주마산 등산로 개방 첫 산행시 설치키로 했다.

  정상에서 북쪽 방향 장수면 성곡 채석장, 등지리봉(543m), 무릎재, 시루봉, 용암산(631m)을 거쳐 한티재(418m)까지 36봉이 연결되는 능선길은 약 2시간이 소요된다.

  서울의 우정산악회를 비롯한 산악인들이 수년 전에 이 구간을 종주산행 한 리본이 곳곳에 달려 있다. 한천사까지의 하산길은 체 2.0km가 되지 않는 완만한 내리막길로 약 1시간여 소요된다.

  왔던 길을 되돌아서 묘 1기 지점 이정표에서 우측 방향 0.17km 지점에 천연동굴인 구리바위굴이 있다. 동굴은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입구는 좁고 낮으나 굴 안으로 들어가면 2.5m 높이에 30여 평 정도의 넓은 공간이 나오고, 어두워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없지만 그 끝을 알 수 없는 입구가 좁은 토끼굴이 2곳 있다.

  굴 내부는 외풍이 전혀 없고 무더운 여름철에는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서늘하며 사람이 장기간 기거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천연동굴 형태를 갖추었고 불을 태워 검게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다.

  증거리 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이곳에서 불을 지피면 영주 봉현면 한티재(한천리)에서 연기가 나왔다고 한다. 또 옛날 땔감나무를 하기 위해 주마산에 올라 비가 오거나 날이 저물고 어두워지면 굴 안으로 피신을 했다고 한다.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먼 옛날 굴 안에 큰 못(沼)이 있었으며 구리(이무기)가 살았다 하여 마을에서는 동굴을 구리바위굴이라 부르고 있다. 구리바위굴에서 암릉지대 30여 미터를 내려와 완만한 오르막길을 걸으면 주마산 정상, 진평3리 갈림길 재에 도착한다.

  이곳은 주변이 넓고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능선을 따라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쐬며 잠시 쉬어가면 좋다. 이후 등산로는 주변 조망이 없는 평탄한 솔숲 내리막길을 따라 걸어 내려오다 좌측방향에 바위 전망대를 만나게 된다.

  예천천문우주과학공원, 예천온천을 비롯해 예천시가지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가로 20, 세로 50여 m의 큰 바위 전망대는 쉬어가는 장소로 안성맞춤이다.

  이어 묘 1기가 나오고 고방산 약물탕, 진평3리 갈림길 이정표에서 좌측 약물탕 방향으로 향한다. 등산로는 햇볕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울창한 솔숲이 0.3km 정도 평탄하게 이어진다.

  고방산 약물탕은 이정표에서 오르막 70여 미터 지점에 위치하며 급경사로 다소 숨이 차게 된다. 큰 자연석 바위 밑에 샘물이 솟아나는 고방산 약물탕은 피부병과 속병에 좋은 것으로 전해져 온다.

  약물탕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증거리 주민들의 구전에 의하면 환자들이 가마를 타고 와 이곳의 약물로 몸을 씻거나 마시면 병을 고쳐 걸어서 갔다고 하여 멀리서도 많이 찾아 왔으며 특히 더위를 먹거나 옻오른 데 특효라고 했다.

  병을 고친 사람은 이곳에 돈을 놓고 갔는데 그 돈을 가져간 사람은 죄를 받아 곱추가 되었다고 한다.

  약물탕은 암자가 있었던 곳으로 주마산에는 한천사 소속 암자가 9개소 있었으나 지금은 한곳도 남아 있지 않다. 약물탕 주변에는 묘 1기와 벚나무, 느티나무 고목이 자라며 부도기단석 등이 남아 있다. 증거리 마을 주민들은 암자터에 미륵불상을 세우면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등산로는 약물탕에서 되돌아 내려와 이정표에서 좌측방향이며 옛날 한천사에서 벌방리까지 말구루마(수레)가 다녔던 평탄한 길을 0.2km 걸어 한천사, 현내리(온천) 갈림길 이정표에 도착한다.

  앞으로 주마산 등산로 개발은 많은 등산객들이 찾을 수 있도록 7월경 관내 산악회에서 예천온천까지 연결되는 4시간 코스개발에 이어 연차적으로 등산로 주변 철쭉꽃 식재, 산나물 씨앗 뿌리기를 비롯해 5시간의 한티재 코스를 개발할 계획이다.

  이정표에서 우측은 헬기장이 나오고 현내리로 이어지며 한천사까지는 0.4km 완만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주마산 2.7km 원점회귀 등산로는 순수 산행시간이 2시간 20여분으로 중식, 휴식, 동굴체험 등을 포함 3시간 정도 소요되며 산행의 피로를 예천온천에서 풀 수 있는 가족 단위 산행지로 적합하다고 하겠다.

  주마산 등산로 개발은 6차에 걸친 탐사에 이어 등산로 정비, 종합 안내판 1개, 유래 안내판 5개소, 갈림길 이정표 12개소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이인호 감천면장을 비롯한 직원,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1차 탐사 때는 동굴을 못 찾아 숲 속을 1시간여 헤멨으며 코스 개발을 위해 영주 장수면 성곡 채석장까지 산행하면서 길을 잃기도 했다.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이인호 감천면장은 탐사대원들을 격려하며 등산로 정비, 이정표 설치를 위해 주마산을 수 차례 오르내렸으며 감천면사무소 직원들은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등산로 풀베기, 계단설치를 비롯해 30kg이 넘는 이정표를 산 정상까지 직접 운반하고 암반층 구덩이를 파는 등 등산로 개발에 구슬땀을 흘렸다.

  증거리 조동진 이장은 길 안내, 차량봉사, 식사접대 등 주마산 등산로 개발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증거리 주민 송윤영 씨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동굴을 찾는데 큰 일조를 했다.

  주마산 관련 자료가 전무한 상태에서 인근 주민들의 구전을 정리하고 예천군청 조동윤 시책과장으로부터 자문을 구하면서 비로소 주마산에 대한 자료가 정비됐다.

  또 2009년 연말 공로연수 예정인 감천면 주민생활지원담당 황건호(6급) 씨는 29년 공무원 재임 중 21년을 근무했을 정도로 남다른 애정이 깃든 감천면에서 마지막 공직을 마치면서 이번 주마산 등산로 개발에 적극 참여해 주위로부터 자자한 칭송을 듣고 있다.

  황씨는 98년 숲가꾸기 공공근로사업 우수군으로 선정돼 행자부 장관상을 수상했으며 전국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감천면을 찾았다. 이를 계기로 예천읍에 근무를 할 당시 군민의 휴식처인 흑응산(대창고~석정신리) 등산로 개발에도 남다른 애정을 갖고 등산로 보수를 비롯해 봉덕산 해맞이 장소 주변 정비 등 그의 손길이 닿은 곳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천사에서 온천까지는 지방도 931호선을 이용 약 10여분이 소요되며, 2009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인 현내리~증거리(한천사) 2차선 확포장공사가 완료되면 대형 버스 진입도 가능해 주마산 접근성이 한결 좋아질 것이다.

  금강산 온천을 닮을 정도로 수질이 뛰어난 예천온천은 인근 시군에 온천이 생기면서 입욕객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온천 이용객 증대를 위해선 등산객 유치가 필요하다고 보며 접근성이 뛰어나고 취나물, 고사리, 송이, 산초(약용)를 비롯한 금광굴, 천연동굴, 약물탕 등 자원의 보고(寶庫)인 주마산에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일부 미개통 구간인 군도 20호선(용문 대제리~관현리(온천)~현내리~돈산리~유리)을 조기 확포장 개통하여 온천 접근성을 높이고 주변의 천연기념물 294호 석송령, 태양과 별을 관측하며 우주를 체험할 수 있는 예천천문과학문화센터, 충효테마공원과 연계하면 많은 관광객들이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덕율3리 만맛교를 비롯한 주요 진입 도로변에 주마산(한천사) 이정표도 설치되어야 할 것이다. 근래 들어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을 찾는 전문산악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예천흑응산악회에서 2008년 5월 소백산 고항치~옥녀봉~자구산 구간의 등산로 정비, 정상 표지판 설치 후 인터넷에 홍보를 실시한 결과 성동산악회, 화랑산악회, 인천산악회, 산악랜드 등 전국에서 많은 등산객들이 이 구간을 찾고 있으며 정상 표지판 앞에서 사진을 찍어 예천을 널리 알리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

  따라서 관내 명산에 대한 등산로 정비, 표지판 설치 등 지속적인 관리와 함께 전국의 등산객들을 상대로 홍보활동을 병행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 산행 안내 : *한천사 우측→ 금광굴→ 한천사 약물탕→ 지하금광굴→ 산불초소(전망대) → 주마산 정상(508m)→ 구리바위굴→ 고방산 약물탕(암자터)→ 한천사 (3시간 소요) /

  *한천사 우측→ 금광굴→ 한천사 약물탕→ 지하금광굴→ 산불초소(전망대) → 주마산 정상(508m)→ 구리바위굴→ 고방산 약물탕(암자터)→ 헬기장→ 덕고개→ 예천온천(4시간 소요) /

  ○ 교통안내 : 중앙고속도로 풍기 IC에서 좌회전 지방도 931호선(예천방면)을 이용하거나 영주 IC에서 국도 28호선(예천방향)을 달리다 유1리 에서 군도 20호선 또는 국도 28호선 감천면 포리에서 지방도 931호선(풍기읍 방면)을 달려 현내리에서 군도 20호선을 이용한다. /

  국도 34호선의 경우 예천읍에서 영주방면 국도 28호선을 달려 감천면 덕율 삼거리에서 좌측 군도 15호선(예천온천방면)을 가다가 덕율 3리 만맛교에서 우회전 현내리를 거쳐 한천사까지 간다. /

  ○ 먹을거리 : 감천면 천향리 석송령 주변에 위치한 심마니 식당(흑염소 전골), 청포묵과 흑두부 식당(흑두부 전골), 소나무 식당(토종 닭백숙), 석송식당(추어탕)등이 유명하다. /

  ○ 예천군 주요 관광지로는 용문사, 금당실 전통체험마을, 초간정, 산업곤충연구소(곤충생태체험관), 효자 도시복 생가, 예천천문우주과학공원, 석송령, 선몽대, 육지속의 섬마을 회룡포, 삼강주막, 예천진호국제양궁장, 보문 천호예술원, 학가산 우래 자연휴양림 등이 있다. /

  ○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줄 예천온천은 한천사에서 승용차로 10여분 소요되며, 지하 806m에서 솟아나는 중탄산염 알칼리 온천수로 인체에 유익한 미네랄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여성 피부미용, 피로회복, 노화방지에 효과적이다. 또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허약체질, 생리불순 등에 예방효과가 있고 신경통, 관절염 치료에 아주 좋다. 입욕료는 4,500원(단체 4,000원)이다. /

  *예천여행 안내 : 예천군청 문화관광과

   [자료제공/감천면사무소 장광현씨](醴泉인터넷뉴스 2009-06-20 오전 9:4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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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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