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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1938:황씨CEO들(복분자)
예천의 자랑(1938) : 예천의 황씨 CEO들(예천 복분자, UCC특공대상의 주제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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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환(黃璟煥) : 예천 출신, 관계(官界)에 다년 간 봉무(奉務)하였고, 실업계로 전환하여 포항에서 선구(船具) 판매업을 경영하는 한편 연와(煉瓦) 제조공장, 건축 자재상을 겸영(兼營)하고 있다.(慶北大觀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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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섭(黃東燮) : 1934- , 예천읍 청복1리 409번지 출신, 예천초등, 예천중, 예천농고 졸업, 예천군농촌지도소 주재지도사(駐在指導師), 예천농협 참사(參事), 예천군축산협동조합(醴泉郡畜産協同組合) 수석이사(首席理事), 경북양돈협회(慶北養豚協會) 예천군지부장, 동 운영위원을 지냈다. 1981년 2월 11일 제12대 대통령선거인 선거에 예천읍선거구(醴泉邑選擧區)에서 무소속으로 입후보하여 당선되었다. 예천군정책자문위원회 농림분과위원장, 대구경북양돈협동조합 설립 발기인, 예천농협조합장(醴泉農協組合長), 농협중앙회 대의원, 예천문화원 운영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을 지냈다.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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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맹순 : 1922- , 예천 출신, 대구신명여학교 졸업, 인제요양원 원장이다.(다음 백과사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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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수("信用은 人間의 價値를 재는 거울" : 황병수 세진實業 代表) [記事] :“금전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 신용이란 말은 그래서 진리입니다. 신용있는 사람으로 평가되면 돈이 없어도 반드시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꽃꽂이 받침 `침봉''''을 30여년 제조하여 국내 시장과 일본, 유럽으로 수출하고 있는 세진실업 황병수 사장(57·상리면 두성리 출생)은 자신의 경영 철학을 이렇게 함축했다. 상리초등, 예천중, 예천농고를 졸업하고 젊은 꿈을 안고 혈혈단신 상경해 직업 전선에 뛰어 든 황 사장은 여러 회사를 전전하다 스물 아홉 살 때 침봉을 제조하는 세진실업을 차렸다.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과 적성에 따라 현명하게 천직을 선택했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기 때문에 황 사장은 열정적이며, 좋은 침봉 만드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 바친다. 일에 몰입하다 보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틈새 시장이 어디 있는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게 된다는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한다. 김상준 상리면민회 직전회장은,“그는 정직과 신용의 표본이며, 10여년 간 상리면민회 사무국장으로 봉사한 행동하는 애향인”이라고 했다. 인생에 대한 자기 책임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보통의 사람들이 얼마든지 세속적 성공을 거둘 수 있음을 황 사장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전문가란 다른 것은 못하지만 `한 분야에서는 탁월한 사람'''' 이라고 해석한다. 즉 신뢰하고 믿을 수 있다는 것을 파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 일을 아주 잘 하면 전문가라 불릴 수 있다. 단순히 어떤 일을 오랫동안 했다고 해서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전문가는 늘 표면 뒤에 숨어 있는 것을 파악하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애정과 관심을 쏟지 않고는 이면에 숨은 암호와 신호를 파악하고 해석할 수 없다. 우리 나라 제일의 침봉 제조 전문가 황병수 사장의 전문가 특화론이다.“일에서 즐거움이 떨어져 나가면 일은 고통스럽습니다. 인생을 몰고 다닐 수 있으려면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을 전문화시키는 방법이 현명합니다.” ■ 약력:상리초(23회) 예천중(13) 예천농고(16) 졸업. 인우실업(주) 자재담당, 건우섬유(주) 구매과장. 부인 이은숙(52·예천여고 15회) 씨와 1녀(지현·28·개성공단관리위원회) 1남(태규·25·동국대 재학 중)(醴泉新聞 2005-07-29 14: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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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원 : 1920- , 예천 출신, 예천공립보통학교, 대구공립고등학교, 1941년 경성약학전문학교 졸업, 해방 전 인천에서 위생재료 군수공장 일을 본 것과 해방 후 안동도립병원 약제과장, 한국전쟁 전 3년 간 안동사범학교 교사, 그 후 안동시내 경안약국을 40여 년 간 경영했다. 성소병원 이사, 기독교 교회학교연합회와 평신도회연합회장, 경안노회 회계를 거쳐 1984년 제115, 116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은퇴장로회 부회장이다. 또한 YMCA와 와이즈멘 부회장, 기드온 안동캠프회장, 안동시군 약사회장, 경북약사회 부회장, 대한약사회와 서울대약대 동문회 이사, 안동교육위원회 부회장, 로타리안동클럽 회장, 영문고 아사를 역임했고, 현재도 대구 영남고교, 안동재활원 이사로 재직 중이다.(www.kyungan.or.kr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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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종(黃秉琮) : 1954- , 예천 출신, 한솔CSN CS클럽 사업부장 상무보, 한국커머스넷코리아 부회장, 율천 대표이사, 세이브존 해외사업 고문이다.(朝鮮日報 DB 2003, people.chol.com 2004, people.naver.com 2004, 엠파스 人物檢索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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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중(黃秉中) : 1949- , 감천면 덕율2리 출신, 감천초등(33회), 예천중(14회), 예천농고(17회), 영남대 졸업, 대동건설 설립, (株)수산중공업(水産重工業), 수산무역(水産貿易) 대구경북지점장, 네덜란드와 독일 회사 건설 감독관(監督官), (株)두성주택, 두성종합건설(株) 대표이사(1993), (주)두성일반정비공업사 사장이다.(醴泉新聞 1994.1.20, 醴泉文學 9輯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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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호(黃柄琥) : 1936- , 예천 출신, 58년 서울대 행정학과 졸업, 58년 한국산업은행, 76년 동 외국영업부 차장, 80년 동 프랑크푸르트 사무소장, 82년 동 기획부장, 동 국제영업부장, 동 심사부장, 83년 동 부총재보, 93년 동 부총재, 95년 동 사장, 95년 한국산업증권 사장(현)이다.(韓國을 움직이는 人物들 1997, 每日名鑑 1999, 인터넷 每日名鑑 2001, 東亞닷컴 人物情報 2004)
황병호(産業證券社長 황병호 氏) [記事] : 한국산업증권은 1995년 6월 20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구속된 홍대식 전 사장 후임에 황병호(59) 산업은행 부총재를 선임했다. 황 신임 사장은 경북 예천 출신으로 58년 서울대 법대 졸업 이후 산업은행에 들어왔다.(한겨레新聞 1995-06-21)
황병호(“沈滯 雰圍氣 日新하겠다”/황병호 産業證券 新任 社長(인터뷰) : 地自制 選擧 以後 債券 發行 消化 注力) [記事] :『인사보다는 업무 강도를 높여 분위기를 쇄신하겠습니다』. 1995년 6월 20일자로 표류하던 산업증권호의 새 선장이 된 황병호 사장(59)은,『산업증권을 동업계에서 비교한다면 90점은 줄 수 있다』며,『직원들을 믿는만큼 바람몰이식 인사보다 업무에 집중하도록 유도해 전임 사장의 개인적 문제 때문에 침체된 회사 분위기를 일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국내 증시는 지나치게 주식 쪽에 편중돼 채권시장 발달을 저해하고 있는 상황인데, 산업증권은 공익성을 띤 기관인 만큼 자본시장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 주식보다는 채권 쪽으로 특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지자제 선거 이후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공약사업 추진을 위한 채권 발행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산업증권이 이를 소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세계화 작업과 관련해 황 사장은,『금융기관의 세계화는 개방에 대비해 업무의 국제화를 달성하는 것』이라며,『파생금융상품 전문가를 집중 양성하고 해외 거점을 추가로 확보해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아리랑본드 등 산업증권의 주요 사업에 대해서도 빠른 시일내에 정상화시킬 것을 다짐했다. 최근의 증시에 대해서 황 사장은,『기본적으로 경제 사정이 좋은 만큼 선거 후 장세를 밝게 본다』고 언급했다. 36년 경북 예천생인 황 사장은 서울법대 졸업 후 58년 산업은행에 입행, 기획 국제영업 심사부장 등을 거쳐 88년 부총재보, 93년 부총재로 승진했다.(정진건 記者 每日經濟 1995-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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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호(黃丙鎬) : 1940-2004, 예천읍 노상리 출신, 예천초등, 예천중, 59년 경북고, 64년 고려대 법학과 졸업, 총회신학교(總會神學校) 신학대학원 수료, 재경경북학우회 회장(在京慶北學友會會長), 재경예천학우회장(在京醴泉學友會長), 63년 고려대 경우회장(京友會長), 고려대농촌문제연구회(高麗大農村問題硏究會) 회장, 4.19의거에 참여, 예천중동창회 부회장, 한일신용조합(韓一信用組合) 이사, 예천궁도협회 이사, 한국JC예천사무국장, 대 상사 대표, 삼한상사(株) 대표, 71년 김대중 대통령후보 지구당 청년부장, 신민당(新民黨) 문경예천지구당부위원장, 73년 동 경북도당 운영위원, 75년 동 사무부총장, 동 당기위원, 동 인권옹호위원, 동 조직강화특위 위원, 민권당(民權黨) 문경예천지구당 위원장, 신민주공화당(新民主共和黨) 문경예천지구당 위원장, 87년 김대중 대통령후보 문경예천 선거대책위원장, 제10대, 11대, 13대, 14대, 14대 6.11 보선(補選), 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落選)하였다. 새정치국민회의 문경예천지구당 위원장이다. 95년 자민련 문경예천지구당 위원장, 96년 국민회의 문경예천지구당 위원장이었다. 저서로, <백두산의 정기받아 기름진 땅>이 있다.(每日名鑑 1999, 인터넷 每日名鑑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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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봉규(黃奉奎) : 호명면 종산리 4번지 출신, 본관은 평해, 무환(武煥)의 아들, 1995년 기술고시 합격, 종합건축사사무소 소장이다.(醴泉鄕校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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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黃錫永) : 1965- , 예천 출생, 영신고, 계명대 의예과, 동 대학원 의학과 졸업, 94년 공군강릉비행장 항공의무대 정형외과 군의관, 96년 예천비행장 항공의무대 병원장, 97년 안동병원 정형외과 과장, 99년 공군 의무자문관, 2000년 서문정형외과의원 원장, 2004년 계명대 의대 정형외과 부교수, 2005년 대구 서구 내당동 열린큰병원 원장(현)이다.(每日名鑑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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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주(黃鏞周) : 1935- , 예천 출신, 영남대 건축과 졸업, 대구시 건축과장, 대한건축사협회 대구시지부장, 대구건축사신용협동조합 이사장, 건축설계사무소를 개업하였다.(每日年鑑 1985 1986 1987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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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칠(黃鏞七) : 1923- , 예천 출신, 1938년 도일, 막노동판에서 일을 하는 등 온갖 고생을 겪은 끝에 1953년 수집한 고철을 가공해 되파는 고철 사업을 벌이면서 기업인으로서의 기반을 잡았다. 그가 경영하는 일본 나고야의 히라다공업주식회사는 현재 연간 매출액 20억 엔(200억 원)을 기록하는 튼튼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1998년 4월 18일 낮 부산 롯데백화점 면세점에 마련된 엔화표시 외국환 평형기금채권(外平債) 판매 장소에 나타나 1천만 엔(1억여 원) 어치를 구매했다. 황씨는 이 달 초 롯데가 재일 동포들을 상대로 ''''모국 사람 외화 모으기운동''''을 벌였을 때도 모국을 방문해 외평채 80만 엔 어치를 구입했었다. 그 때 고국의 경제난을 직접 본 황씨는 롯데측에 1천만 엔 어치를 사겠다고 약속했고, 이 번에 그 약속을 이행한 것이다.(朝鮮日報 1998.4.19)
황용칠(외평채 購入 앞장 在日僑胞 ''''母國 사랑'''' ; 황용칠 氏 1,000萬 엔어치 사 ; 日本 生活 60年… 中堅 企業 키워내) [記事] :『고난에 처한 고국을 돕기 위해 외화모으기운동에 참여했습니다. 』1998년 4월 18일 낮 부산 롯데백화점 면세점에 마련된 엔화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판매 장소에 나타난 재일교포 황용칠(75. 일본 나고야 히라다공업주식회사 대표) 씨. 수수한 옷차림의 황씨는 이 날 1천만 엔(1억여 원)어치를 구매했다. 황씨는 이 달 초 롯데가 재일동포들을 상대로「모국사랑 외화모으기운동」을 벌였을 때도 모국을 방문해 외평채 80만 엔어치를 구입했었다. 그 때 고국의 경제난을 직접 본 황씨는 롯데측에 1천만 엔어치를 사겠다고 약속했고,이 번에 그 약속을 이행한 것이다. 황씨가 일본에 건너간 것은 60년 전인 38년. 고향 경북 예천에서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내던 그는 15살되던 그 해 형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막노동판에서 일을 하는 등 온갖 고생을 겪은 끝에 53년 수집한 고철을 가공해 되파는 고철(古鐵)사업을 벌이면서 기업인으로서의 기반을 잡았다. 그가 경영하는 히라다공업주식회사는 현재 연간 매출액 20억 엔(2백억 원)을 기록하는 튼튼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황씨는,『한국의 기업인들도「이만하면 됐다」는 안이한 생각을 버리고 세계 최고의 품질을 추구하는 일본 기업인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朝鮮日報 1998-04-19 기자 : 정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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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홍 : 예천읍 출신, 봉화전화국장(奉化電話局長), 98년 문경전화국장(聞慶電話局長)이다.(醴泉鄕土新聞 1998.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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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기("信賴받는 企業, 尊敬받는 企業으로" : 황정기 나드리化粧品 代表理事) [記事] : 2005년으로 27번째 생일을 맞는 야쿠르트 그룹의 나드리화장품은 2005년 3월 28일 서울 본사 강당에서 임직원 2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황정기(56·상리면 도촌리 출생) 대표이사 사장의 취임식을 가졌다. 취임사를 통해 “나드리 화장품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급변하는 시장 환경 속에서 지켜내고 희망찬 조직, 미래의 비전을 찾을 수 있는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미인에 대한 가장 심한 욕은 `빨리 세월이 흘러라''''이라고 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람이라도 세월은 어찌 못한다. 고왔던 피부도 까칠해지고, 그리도 만지고 싶을 만치 뽀얗던 얼굴에도 여기저기 세월의 굴곡이 깊게 파여 간다. 그래도 우리는 아름다움으로 남고 싶어,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나간다. 그 세월을 어찌 살았는지 노년일수록 점점 더 중후한 멋과 아름다움이 풍겨나는 것은 화장품의 발달도 크게 한 몫하고 있다. 나드리화장품은 지난 90년대 연매출 1천억 원을 돌파, 중견 화장품으로 우뚝 올라섰으나, 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매출이 급감되어 `나드리의 부활''''의 해결사로 황정기 대표이사를 선택했다.“치열한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특화된 상품과 마케팅, 적극적인 변화와 행동 그리고 정도 경영입니다. 또한 경영 철학으로 미래를 스스로 도전하고 창조하는 프론티어 정신으로 화장품 업계에서 기업 가치가 가장 앞서는 신뢰받는 기업, 구성원들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기업. 사회에서 존경받는 기업으로 성장하고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2005년 3월 나드리 화장품의 사령탑에 오른 황정기 사장 취임 후 선보인 한방화장품 `상황''''이 브랜드 숍, 면세점 등에서 고급 브랜드로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 취미는 등산과 골프. 부인 이동현(53) 씨와 2남(용주·28·한의대 재학, 용진·25·한양공대 재학)을 두고 있다. △상리면 도촌리 출생(1948년) △상리초등·예천중(13회)·대구상고(39회)·영남대 경영학과·동아대 경영대학원(석사) △75년 (주)한국야쿠르트 공채 입사, (주)비락 이사, 나드리화장품 영업총괄상무, 재부산향우회 재무간사 4년 역임(醴泉新聞 2005-09-09 10: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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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식 : 은풍초등(殷豊初等) 제25회 졸업, 미도마크사 사장이다.
황정환(黃定煥) : 1945- , 예천읍 출신, 본관은 창원, 64년 서울사대부고, 70년 서강대 무역학과 졸업, 69년 벵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서울지점 입행, 73년 동 수출입부 과장, 75년 동 심사부 과장, 77년 동 심사부 차장, 79년 동 심사부장, 82년 동 심사부 지배인, 83년 한미은행 창립 멤버 심사1부장, 87년 동 심사2부장, 89년 동 심사관리부장, 89년 동 여의도지점장, 91년 동 연지동지점장, 93년 동 전산정보팀장, 96년 동 이사대우, 97년 동 상임이사, 98년 동 상무이사, 99년 축협중앙회 신용사업담당 부회장, 2002년 인천 제일상호신용금고 대표이사, 에이스상호저축은행 대표이사 사장이다.(醴泉新聞 1996.3.7, 韓國을 움직이는 人物들 1997, 每日經濟新聞 2002.1.21, 인터넷 每日名鑑 2001, people.chol.com 2004, people.naver.com 2004, 다음 百科事典 2004, 엠파스 人物檢索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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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환(’96 銀行株總 新任 任員 프로필 : 황정환 韓美銀行 理事待遇/電算業務 밝은 合理主義者) [記事] : 추진력있는 합리주의자로 심사와 전산 업무에 밝다. 69년 뱅크오브어메리카(BOA) 서울지점에 들어가 심사부장 심사부지배인을 거쳤다. 83년 한미은행 창립 멤버로 입행, 심사부장 심사관리부장 여의도지점장을 거쳐 전산부장을 역임했다. 오랜 기간 외국은행 근무 경험으로 매너가 좋다. 45년 경북 예천생. 서울사대부고 서강대 무역학과 졸. 유나 씨와 1남 2녀. 취미는 등산.(每日經濟 1996-02-23)
황정환(98 銀行株總 人事 新規/ 陞進 任員 프로필 : 韓美銀行 황정환 常務) [記事] : 일선 영업점 및 심사 전산 업무에 두루 밝다. 추진력이 강한 합리주의자라는 평. 45년 경북 예천 출생으로 서울사대부고, 서강대 무역학과를 졸업. 지난 70년 BOA(뱅크오브아메리카) 서울지점에 입행했다가 83년 한미은행 창립 멤버로 참여. 지난 97년 이사로 선임됐다. 등산을 즐기며 부인 유라 여사와 1남 2녀.(韓國經濟 1998-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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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범(黃周範) : 1953- , 예천 출신, 진명학원 원장이다.(朝鮮日報 DB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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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섭(황주섭 在京醴泉中 同門會奬學會 理事長) [記事] : “재능은 있으나 주변 여건이 여의치 못해 기량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동문 자녀들에게 조그마한 힘이 되고자 동문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병원 경영보다 매년 5월 동문체육대회에서 동문 자녀들이 밝고 건강하게 학업을 일구어 나가는 모습을 볼 때가 더 행복하다는 황주섭(예천읍 출생·제일방사선과 원장) 재경예천중동문회장학회 이사장. 황주섭 이사장은 부드러운 이미지와는 달리 치밀하고 깐깐한 일 처리가 돋보이는 방사선과 의원 25년 개원의 전문의 겸 경영자이다. 재경예천중동문장학회는 2000년 발족되어 2004년으로 5년째를 맞이해 그 간 장학금 수혜자가 50명에 이른다. 약력 : 예천초등(44회), 예천중(8회), 경북고, 부산의대, 연세대 의대 졸업. 종로5가 제일방사선과의원(각종 조기암 및 종합검진) 원장(醴泉新聞 2004-05-13 15: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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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성(黃學聲) : 1936- , 예천 출신, 성수양행 대표이다.(朝鮮日報 DB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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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화섭 : 1962- , 감천면 덕율리 출신, 75년 감천덕율초등, 78년 감천중, 81년 영주고, 93년 서울대 치의학과 졸업, 예천황치과의원 원장, 문경지구치과의사회 회장이다. ''''토종살리기모임'''' 창설 초대회장, 경도대 지방자치연구소 이사, 민속예술인총연합 예천지부 부지부장, 장애인협회후원회 위원, 예천청년회의소 감사 및 운영위원, 예천불교포교원 운영위원회 운영위원, 예천축구협회 이사, 예천마라톤클럽 부회장,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공동대표, 현암장학회 회장, 예천신문 후원장학회 운영위원이다. 2002년 1월 27일에는 예천읍 한천둔치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겨울가족놀이한마당'''' 행사를 개최하였다. 이 모임은 예천 지역의 잊혀져가는 전통놀이문화를 발굴 육성하여 건강한 놀이문화를 보급시켜 건강한 지역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지역 문화 운동 단체로써 매년 단오절 무렵에는 ''''토종닭싸움축제'''', 겨울철에는 ''''가족과 함께 하는 어린이 겨울놀이 한마당 축제''''를 열기도 하며, 야생화 기르기, 삽살개 살리기운동, 우리 것 우리 문화 살리기 운동 등을 전개하기도 한다.(選擧 팜프렛 2002, www.kda21.com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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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복분자, UCC특공대상의 주제로 선정
예천 복분자(聞慶大學 放送映像科 “UCC특공대상” 受賞) [記事] :
문경대학 방송영상과 1, 2학년 재학생들로 구성된 UCC제작팀은 2009년 6월 19일 대구 포항 안동 MBC 공동 제작 프로그램 「노소노소」중 UCC특공대 코너에 참가해 “UCC특공대상”을 수상했다.
농어촌 사랑 프로젝트인 이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은 지역 농산물 관련 주제(예천 복분자)로 주어진 시간 내에 프로그램을 기획, 연출, 촬영 및 편집까지 모두 일사분란하게 각자의 임무를 수행, 완성도 높은 작품을 제작, 우수작으로 선정되었다.
수상작품에 대해 MBC 관계자는 “UCC 특공대는 지역 농산물을 널리 알리고, 우리 농산물의 소중함을 일깨우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도인데, 수상 작품은 이를 잘 반영한 작품” 이라고 평했다.
이인아(2년) 학생은 수상소감으로 “무엇보다 프로그램 제작 현장에서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팀원들의 팀워크가 매우 중요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날 제작된 ''''UCC특공대'''' 프로그램은 오는 7월 3일 오후 6시 50분 대구 경북 전역에 방송될 예정이다.
한편, 방송영상과 학생들은 현재 단편영화를 제작 중에 있으며, 촬영을 모두 끝내고 후반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름방학 중 완성할 계획이다.
2010학년도부터 문경대학 방송영상과는 영상문화콘텐츠과로 거듭난다.
(박경노 記者 大韓放送 2009.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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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환(黃璟煥) : 예천 출신, 관계(官界)에 다년 간 봉무(奉務)하였고, 실업계로 전환하여 포항에서 선구(船具) 판매업을 경영하는 한편 연와(煉瓦) 제조공장, 건축 자재상을 겸영(兼營)하고 있다.(慶北大觀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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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섭(黃東燮) : 1934- , 예천읍 청복1리 409번지 출신, 예천초등, 예천중, 예천농고 졸업, 예천군농촌지도소 주재지도사(駐在指導師), 예천농협 참사(參事), 예천군축산협동조합(醴泉郡畜産協同組合) 수석이사(首席理事), 경북양돈협회(慶北養豚協會) 예천군지부장, 동 운영위원을 지냈다. 1981년 2월 11일 제12대 대통령선거인 선거에 예천읍선거구(醴泉邑選擧區)에서 무소속으로 입후보하여 당선되었다. 예천군정책자문위원회 농림분과위원장, 대구경북양돈협동조합 설립 발기인, 예천농협조합장(醴泉農協組合長), 농협중앙회 대의원, 예천문화원 운영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을 지냈다.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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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맹순 : 1922- , 예천 출신, 대구신명여학교 졸업, 인제요양원 원장이다.(다음 백과사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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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수("信用은 人間의 價値를 재는 거울" : 황병수 세진實業 代表) [記事] :“금전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 신용이란 말은 그래서 진리입니다. 신용있는 사람으로 평가되면 돈이 없어도 반드시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꽃꽂이 받침 `침봉''''을 30여년 제조하여 국내 시장과 일본, 유럽으로 수출하고 있는 세진실업 황병수 사장(57·상리면 두성리 출생)은 자신의 경영 철학을 이렇게 함축했다. 상리초등, 예천중, 예천농고를 졸업하고 젊은 꿈을 안고 혈혈단신 상경해 직업 전선에 뛰어 든 황 사장은 여러 회사를 전전하다 스물 아홉 살 때 침봉을 제조하는 세진실업을 차렸다.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과 적성에 따라 현명하게 천직을 선택했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기 때문에 황 사장은 열정적이며, 좋은 침봉 만드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 바친다. 일에 몰입하다 보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틈새 시장이 어디 있는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게 된다는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한다. 김상준 상리면민회 직전회장은,“그는 정직과 신용의 표본이며, 10여년 간 상리면민회 사무국장으로 봉사한 행동하는 애향인”이라고 했다. 인생에 대한 자기 책임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보통의 사람들이 얼마든지 세속적 성공을 거둘 수 있음을 황 사장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전문가란 다른 것은 못하지만 `한 분야에서는 탁월한 사람'''' 이라고 해석한다. 즉 신뢰하고 믿을 수 있다는 것을 파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 일을 아주 잘 하면 전문가라 불릴 수 있다. 단순히 어떤 일을 오랫동안 했다고 해서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전문가는 늘 표면 뒤에 숨어 있는 것을 파악하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애정과 관심을 쏟지 않고는 이면에 숨은 암호와 신호를 파악하고 해석할 수 없다. 우리 나라 제일의 침봉 제조 전문가 황병수 사장의 전문가 특화론이다.“일에서 즐거움이 떨어져 나가면 일은 고통스럽습니다. 인생을 몰고 다닐 수 있으려면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을 전문화시키는 방법이 현명합니다.” ■ 약력:상리초(23회) 예천중(13) 예천농고(16) 졸업. 인우실업(주) 자재담당, 건우섬유(주) 구매과장. 부인 이은숙(52·예천여고 15회) 씨와 1녀(지현·28·개성공단관리위원회) 1남(태규·25·동국대 재학 중)(醴泉新聞 2005-07-29 14: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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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원 : 1920- , 예천 출신, 예천공립보통학교, 대구공립고등학교, 1941년 경성약학전문학교 졸업, 해방 전 인천에서 위생재료 군수공장 일을 본 것과 해방 후 안동도립병원 약제과장, 한국전쟁 전 3년 간 안동사범학교 교사, 그 후 안동시내 경안약국을 40여 년 간 경영했다. 성소병원 이사, 기독교 교회학교연합회와 평신도회연합회장, 경안노회 회계를 거쳐 1984년 제115, 116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은퇴장로회 부회장이다. 또한 YMCA와 와이즈멘 부회장, 기드온 안동캠프회장, 안동시군 약사회장, 경북약사회 부회장, 대한약사회와 서울대약대 동문회 이사, 안동교육위원회 부회장, 로타리안동클럽 회장, 영문고 아사를 역임했고, 현재도 대구 영남고교, 안동재활원 이사로 재직 중이다.(www.kyungan.or.kr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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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종(黃秉琮) : 1954- , 예천 출신, 한솔CSN CS클럽 사업부장 상무보, 한국커머스넷코리아 부회장, 율천 대표이사, 세이브존 해외사업 고문이다.(朝鮮日報 DB 2003, people.chol.com 2004, people.naver.com 2004, 엠파스 人物檢索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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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중(黃秉中) : 1949- , 감천면 덕율2리 출신, 감천초등(33회), 예천중(14회), 예천농고(17회), 영남대 졸업, 대동건설 설립, (株)수산중공업(水産重工業), 수산무역(水産貿易) 대구경북지점장, 네덜란드와 독일 회사 건설 감독관(監督官), (株)두성주택, 두성종합건설(株) 대표이사(1993), (주)두성일반정비공업사 사장이다.(醴泉新聞 1994.1.20, 醴泉文學 9輯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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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호(黃柄琥) : 1936- , 예천 출신, 58년 서울대 행정학과 졸업, 58년 한국산업은행, 76년 동 외국영업부 차장, 80년 동 프랑크푸르트 사무소장, 82년 동 기획부장, 동 국제영업부장, 동 심사부장, 83년 동 부총재보, 93년 동 부총재, 95년 동 사장, 95년 한국산업증권 사장(현)이다.(韓國을 움직이는 人物들 1997, 每日名鑑 1999, 인터넷 每日名鑑 2001, 東亞닷컴 人物情報 2004)
황병호(産業證券社長 황병호 氏) [記事] : 한국산업증권은 1995년 6월 20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구속된 홍대식 전 사장 후임에 황병호(59) 산업은행 부총재를 선임했다. 황 신임 사장은 경북 예천 출신으로 58년 서울대 법대 졸업 이후 산업은행에 들어왔다.(한겨레新聞 1995-06-21)
황병호(“沈滯 雰圍氣 日新하겠다”/황병호 産業證券 新任 社長(인터뷰) : 地自制 選擧 以後 債券 發行 消化 注力) [記事] :『인사보다는 업무 강도를 높여 분위기를 쇄신하겠습니다』. 1995년 6월 20일자로 표류하던 산업증권호의 새 선장이 된 황병호 사장(59)은,『산업증권을 동업계에서 비교한다면 90점은 줄 수 있다』며,『직원들을 믿는만큼 바람몰이식 인사보다 업무에 집중하도록 유도해 전임 사장의 개인적 문제 때문에 침체된 회사 분위기를 일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국내 증시는 지나치게 주식 쪽에 편중돼 채권시장 발달을 저해하고 있는 상황인데, 산업증권은 공익성을 띤 기관인 만큼 자본시장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 주식보다는 채권 쪽으로 특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지자제 선거 이후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공약사업 추진을 위한 채권 발행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산업증권이 이를 소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세계화 작업과 관련해 황 사장은,『금융기관의 세계화는 개방에 대비해 업무의 국제화를 달성하는 것』이라며,『파생금융상품 전문가를 집중 양성하고 해외 거점을 추가로 확보해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아리랑본드 등 산업증권의 주요 사업에 대해서도 빠른 시일내에 정상화시킬 것을 다짐했다. 최근의 증시에 대해서 황 사장은,『기본적으로 경제 사정이 좋은 만큼 선거 후 장세를 밝게 본다』고 언급했다. 36년 경북 예천생인 황 사장은 서울법대 졸업 후 58년 산업은행에 입행, 기획 국제영업 심사부장 등을 거쳐 88년 부총재보, 93년 부총재로 승진했다.(정진건 記者 每日經濟 1995-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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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호(黃丙鎬) : 1940-2004, 예천읍 노상리 출신, 예천초등, 예천중, 59년 경북고, 64년 고려대 법학과 졸업, 총회신학교(總會神學校) 신학대학원 수료, 재경경북학우회 회장(在京慶北學友會會長), 재경예천학우회장(在京醴泉學友會長), 63년 고려대 경우회장(京友會長), 고려대농촌문제연구회(高麗大農村問題硏究會) 회장, 4.19의거에 참여, 예천중동창회 부회장, 한일신용조합(韓一信用組合) 이사, 예천궁도협회 이사, 한국JC예천사무국장, 대 상사 대표, 삼한상사(株) 대표, 71년 김대중 대통령후보 지구당 청년부장, 신민당(新民黨) 문경예천지구당부위원장, 73년 동 경북도당 운영위원, 75년 동 사무부총장, 동 당기위원, 동 인권옹호위원, 동 조직강화특위 위원, 민권당(民權黨) 문경예천지구당 위원장, 신민주공화당(新民主共和黨) 문경예천지구당 위원장, 87년 김대중 대통령후보 문경예천 선거대책위원장, 제10대, 11대, 13대, 14대, 14대 6.11 보선(補選), 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落選)하였다. 새정치국민회의 문경예천지구당 위원장이다. 95년 자민련 문경예천지구당 위원장, 96년 국민회의 문경예천지구당 위원장이었다. 저서로, <백두산의 정기받아 기름진 땅>이 있다.(每日名鑑 1999, 인터넷 每日名鑑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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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봉규(黃奉奎) : 호명면 종산리 4번지 출신, 본관은 평해, 무환(武煥)의 아들, 1995년 기술고시 합격, 종합건축사사무소 소장이다.(醴泉鄕校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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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黃錫永) : 1965- , 예천 출생, 영신고, 계명대 의예과, 동 대학원 의학과 졸업, 94년 공군강릉비행장 항공의무대 정형외과 군의관, 96년 예천비행장 항공의무대 병원장, 97년 안동병원 정형외과 과장, 99년 공군 의무자문관, 2000년 서문정형외과의원 원장, 2004년 계명대 의대 정형외과 부교수, 2005년 대구 서구 내당동 열린큰병원 원장(현)이다.(每日名鑑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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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주(黃鏞周) : 1935- , 예천 출신, 영남대 건축과 졸업, 대구시 건축과장, 대한건축사협회 대구시지부장, 대구건축사신용협동조합 이사장, 건축설계사무소를 개업하였다.(每日年鑑 1985 1986 1987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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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칠(黃鏞七) : 1923- , 예천 출신, 1938년 도일, 막노동판에서 일을 하는 등 온갖 고생을 겪은 끝에 1953년 수집한 고철을 가공해 되파는 고철 사업을 벌이면서 기업인으로서의 기반을 잡았다. 그가 경영하는 일본 나고야의 히라다공업주식회사는 현재 연간 매출액 20억 엔(200억 원)을 기록하는 튼튼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1998년 4월 18일 낮 부산 롯데백화점 면세점에 마련된 엔화표시 외국환 평형기금채권(外平債) 판매 장소에 나타나 1천만 엔(1억여 원) 어치를 구매했다. 황씨는 이 달 초 롯데가 재일 동포들을 상대로 ''''모국 사람 외화 모으기운동''''을 벌였을 때도 모국을 방문해 외평채 80만 엔 어치를 구입했었다. 그 때 고국의 경제난을 직접 본 황씨는 롯데측에 1천만 엔 어치를 사겠다고 약속했고, 이 번에 그 약속을 이행한 것이다.(朝鮮日報 1998.4.19)
황용칠(외평채 購入 앞장 在日僑胞 ''''母國 사랑'''' ; 황용칠 氏 1,000萬 엔어치 사 ; 日本 生活 60年… 中堅 企業 키워내) [記事] :『고난에 처한 고국을 돕기 위해 외화모으기운동에 참여했습니다. 』1998년 4월 18일 낮 부산 롯데백화점 면세점에 마련된 엔화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판매 장소에 나타난 재일교포 황용칠(75. 일본 나고야 히라다공업주식회사 대표) 씨. 수수한 옷차림의 황씨는 이 날 1천만 엔(1억여 원)어치를 구매했다. 황씨는 이 달 초 롯데가 재일동포들을 상대로「모국사랑 외화모으기운동」을 벌였을 때도 모국을 방문해 외평채 80만 엔어치를 구입했었다. 그 때 고국의 경제난을 직접 본 황씨는 롯데측에 1천만 엔어치를 사겠다고 약속했고,이 번에 그 약속을 이행한 것이다. 황씨가 일본에 건너간 것은 60년 전인 38년. 고향 경북 예천에서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내던 그는 15살되던 그 해 형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막노동판에서 일을 하는 등 온갖 고생을 겪은 끝에 53년 수집한 고철을 가공해 되파는 고철(古鐵)사업을 벌이면서 기업인으로서의 기반을 잡았다. 그가 경영하는 히라다공업주식회사는 현재 연간 매출액 20억 엔(2백억 원)을 기록하는 튼튼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황씨는,『한국의 기업인들도「이만하면 됐다」는 안이한 생각을 버리고 세계 최고의 품질을 추구하는 일본 기업인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朝鮮日報 1998-04-19 기자 : 정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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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홍 : 예천읍 출신, 봉화전화국장(奉化電話局長), 98년 문경전화국장(聞慶電話局長)이다.(醴泉鄕土新聞 1998.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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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기("信賴받는 企業, 尊敬받는 企業으로" : 황정기 나드리化粧品 代表理事) [記事] : 2005년으로 27번째 생일을 맞는 야쿠르트 그룹의 나드리화장품은 2005년 3월 28일 서울 본사 강당에서 임직원 2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황정기(56·상리면 도촌리 출생) 대표이사 사장의 취임식을 가졌다. 취임사를 통해 “나드리 화장품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급변하는 시장 환경 속에서 지켜내고 희망찬 조직, 미래의 비전을 찾을 수 있는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미인에 대한 가장 심한 욕은 `빨리 세월이 흘러라''''이라고 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람이라도 세월은 어찌 못한다. 고왔던 피부도 까칠해지고, 그리도 만지고 싶을 만치 뽀얗던 얼굴에도 여기저기 세월의 굴곡이 깊게 파여 간다. 그래도 우리는 아름다움으로 남고 싶어,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나간다. 그 세월을 어찌 살았는지 노년일수록 점점 더 중후한 멋과 아름다움이 풍겨나는 것은 화장품의 발달도 크게 한 몫하고 있다. 나드리화장품은 지난 90년대 연매출 1천억 원을 돌파, 중견 화장품으로 우뚝 올라섰으나, 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매출이 급감되어 `나드리의 부활''''의 해결사로 황정기 대표이사를 선택했다.“치열한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특화된 상품과 마케팅, 적극적인 변화와 행동 그리고 정도 경영입니다. 또한 경영 철학으로 미래를 스스로 도전하고 창조하는 프론티어 정신으로 화장품 업계에서 기업 가치가 가장 앞서는 신뢰받는 기업, 구성원들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기업. 사회에서 존경받는 기업으로 성장하고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2005년 3월 나드리 화장품의 사령탑에 오른 황정기 사장 취임 후 선보인 한방화장품 `상황''''이 브랜드 숍, 면세점 등에서 고급 브랜드로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 취미는 등산과 골프. 부인 이동현(53) 씨와 2남(용주·28·한의대 재학, 용진·25·한양공대 재학)을 두고 있다. △상리면 도촌리 출생(1948년) △상리초등·예천중(13회)·대구상고(39회)·영남대 경영학과·동아대 경영대학원(석사) △75년 (주)한국야쿠르트 공채 입사, (주)비락 이사, 나드리화장품 영업총괄상무, 재부산향우회 재무간사 4년 역임(醴泉新聞 2005-09-09 10: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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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식 : 은풍초등(殷豊初等) 제25회 졸업, 미도마크사 사장이다.
황정환(黃定煥) : 1945- , 예천읍 출신, 본관은 창원, 64년 서울사대부고, 70년 서강대 무역학과 졸업, 69년 벵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서울지점 입행, 73년 동 수출입부 과장, 75년 동 심사부 과장, 77년 동 심사부 차장, 79년 동 심사부장, 82년 동 심사부 지배인, 83년 한미은행 창립 멤버 심사1부장, 87년 동 심사2부장, 89년 동 심사관리부장, 89년 동 여의도지점장, 91년 동 연지동지점장, 93년 동 전산정보팀장, 96년 동 이사대우, 97년 동 상임이사, 98년 동 상무이사, 99년 축협중앙회 신용사업담당 부회장, 2002년 인천 제일상호신용금고 대표이사, 에이스상호저축은행 대표이사 사장이다.(醴泉新聞 1996.3.7, 韓國을 움직이는 人物들 1997, 每日經濟新聞 2002.1.21, 인터넷 每日名鑑 2001, people.chol.com 2004, people.naver.com 2004, 다음 百科事典 2004, 엠파스 人物檢索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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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환(’96 銀行株總 新任 任員 프로필 : 황정환 韓美銀行 理事待遇/電算業務 밝은 合理主義者) [記事] : 추진력있는 합리주의자로 심사와 전산 업무에 밝다. 69년 뱅크오브어메리카(BOA) 서울지점에 들어가 심사부장 심사부지배인을 거쳤다. 83년 한미은행 창립 멤버로 입행, 심사부장 심사관리부장 여의도지점장을 거쳐 전산부장을 역임했다. 오랜 기간 외국은행 근무 경험으로 매너가 좋다. 45년 경북 예천생. 서울사대부고 서강대 무역학과 졸. 유나 씨와 1남 2녀. 취미는 등산.(每日經濟 1996-02-23)
황정환(98 銀行株總 人事 新規/ 陞進 任員 프로필 : 韓美銀行 황정환 常務) [記事] : 일선 영업점 및 심사 전산 업무에 두루 밝다. 추진력이 강한 합리주의자라는 평. 45년 경북 예천 출생으로 서울사대부고, 서강대 무역학과를 졸업. 지난 70년 BOA(뱅크오브아메리카) 서울지점에 입행했다가 83년 한미은행 창립 멤버로 참여. 지난 97년 이사로 선임됐다. 등산을 즐기며 부인 유라 여사와 1남 2녀.(韓國經濟 1998-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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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범(黃周範) : 1953- , 예천 출신, 진명학원 원장이다.(朝鮮日報 DB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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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섭(황주섭 在京醴泉中 同門會奬學會 理事長) [記事] : “재능은 있으나 주변 여건이 여의치 못해 기량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동문 자녀들에게 조그마한 힘이 되고자 동문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병원 경영보다 매년 5월 동문체육대회에서 동문 자녀들이 밝고 건강하게 학업을 일구어 나가는 모습을 볼 때가 더 행복하다는 황주섭(예천읍 출생·제일방사선과 원장) 재경예천중동문회장학회 이사장. 황주섭 이사장은 부드러운 이미지와는 달리 치밀하고 깐깐한 일 처리가 돋보이는 방사선과 의원 25년 개원의 전문의 겸 경영자이다. 재경예천중동문장학회는 2000년 발족되어 2004년으로 5년째를 맞이해 그 간 장학금 수혜자가 50명에 이른다. 약력 : 예천초등(44회), 예천중(8회), 경북고, 부산의대, 연세대 의대 졸업. 종로5가 제일방사선과의원(각종 조기암 및 종합검진) 원장(醴泉新聞 2004-05-13 15: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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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성(黃學聲) : 1936- , 예천 출신, 성수양행 대표이다.(朝鮮日報 DB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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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화섭 : 1962- , 감천면 덕율리 출신, 75년 감천덕율초등, 78년 감천중, 81년 영주고, 93년 서울대 치의학과 졸업, 예천황치과의원 원장, 문경지구치과의사회 회장이다. ''''토종살리기모임'''' 창설 초대회장, 경도대 지방자치연구소 이사, 민속예술인총연합 예천지부 부지부장, 장애인협회후원회 위원, 예천청년회의소 감사 및 운영위원, 예천불교포교원 운영위원회 운영위원, 예천축구협회 이사, 예천마라톤클럽 부회장,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공동대표, 현암장학회 회장, 예천신문 후원장학회 운영위원이다. 2002년 1월 27일에는 예천읍 한천둔치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겨울가족놀이한마당'''' 행사를 개최하였다. 이 모임은 예천 지역의 잊혀져가는 전통놀이문화를 발굴 육성하여 건강한 놀이문화를 보급시켜 건강한 지역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지역 문화 운동 단체로써 매년 단오절 무렵에는 ''''토종닭싸움축제'''', 겨울철에는 ''''가족과 함께 하는 어린이 겨울놀이 한마당 축제''''를 열기도 하며, 야생화 기르기, 삽살개 살리기운동, 우리 것 우리 문화 살리기 운동 등을 전개하기도 한다.(選擧 팜프렛 2002, www.kda21.com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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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복분자, UCC특공대상의 주제로 선정
예천 복분자(聞慶大學 放送映像科 “UCC특공대상” 受賞) [記事] :
문경대학 방송영상과 1, 2학년 재학생들로 구성된 UCC제작팀은 2009년 6월 19일 대구 포항 안동 MBC 공동 제작 프로그램 「노소노소」중 UCC특공대 코너에 참가해 “UCC특공대상”을 수상했다.
농어촌 사랑 프로젝트인 이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은 지역 농산물 관련 주제(예천 복분자)로 주어진 시간 내에 프로그램을 기획, 연출, 촬영 및 편집까지 모두 일사분란하게 각자의 임무를 수행, 완성도 높은 작품을 제작, 우수작으로 선정되었다.
수상작품에 대해 MBC 관계자는 “UCC 특공대는 지역 농산물을 널리 알리고, 우리 농산물의 소중함을 일깨우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도인데, 수상 작품은 이를 잘 반영한 작품” 이라고 평했다.
이인아(2년) 학생은 수상소감으로 “무엇보다 프로그램 제작 현장에서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팀원들의 팀워크가 매우 중요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날 제작된 ''''UCC특공대'''' 프로그램은 오는 7월 3일 오후 6시 50분 대구 경북 전역에 방송될 예정이다.
한편, 방송영상과 학생들은 현재 단편영화를 제작 중에 있으며, 촬영을 모두 끝내고 후반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름방학 중 완성할 계획이다.
2010학년도부터 문경대학 방송영상과는 영상문화콘텐츠과로 거듭난다.
(박경노 記者 大韓放送 2009. 06.22)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