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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1939:권광필縣監(祝권영학)
작성자장병창 @ 2009.06.24 06:47:56
  예천의 자랑(1939) : 용문면 출시 권광필 현감(附 예천 궁장 보유자 권영학, 도 무형문화재보존회 회장 선출...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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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광필(權光弼) : 1436(세종 18)-1507(중종 2), 용문면 출신, 자는 평보(平甫), 본관은 예천, 처검(處儉)의 장자, 1472년(성종 3)에 무과(武科)에 급제, 1486년(성종 17) 무과 중시(重試)에 급제하여 그 해 7월 20일에 영일 현감(迎日縣監)으로서 선정전(宣政殿)에서 사조(辭朝)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수령이 어질면 백성이 그 혜택을 받으나, 어질지 못하면 백성이 그 해를 받는다. 국가에 혜정(惠政)이 있을지라도 수령이 봉행하지 못한다면, 혜택이 어떻게 백성에게 미치겠는가. 그대는 내 말을 잊지 말고 가서 그대 마음껏 다하라."하였다. 1493년(성종 24) 6월 5일 충청도 경차관 정숙지(鄭叔지)의 아룀에 따라 봉상시주부 노모(盧瑁)의 죽음을 조사하게 하였는데, 그 아룀 중에, "충청도도사 정윤(鄭綸, 醴泉人)이 말하기를, ''''연원도찰방(連原道察訪) 권광필에게서 들었는데, 권광필은 바로 노모의 사촌형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봉상시의 종 고음금(古音金)을 붙잡아다가 물으니, 고음금이 공초(供招)하기를, ''''지난 1489년(성종 20) 7월에 노모가 봉상시 주부로 있을 때 신주목작벌 경차관(神主木斫伐敬差官)으로 경상도에 가게 되었는데, 제가 수행하였습니다. 본도에 이르자 예천기관(醴泉記官) 이세균(李世均), 풍기의 일수(日守) 백산(白山)도 노모의 행차를 따랐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1496년(연산군 2)에 연일 현감(延日縣監)을 지냈다. 묘는 하리면 율곡리 율곡 건좌(栗谷乾坐)에 있다.(族譜, 成宗實錄, 權錫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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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광필 [記事] : 성종실록 193권/ 성종 17년(1486 병오 / 명 성화(成化) 22년) 7월 20일(계해) 1번째 기사/ 영일 현감 권광필·안협 현감 이양현 등이 사조하다/ 영일 현감(迎日縣監) 권광필(權光弼)·안협 현감(安峽縣監) 이양현(李良鉉)·영춘 현감(永春縣監) 이전(李?)이 사조(辭朝)하니, 임금이 선정전(宣政殿)에 나아가 인견(引見)하고 말하기를, “수령(守令)이 어질면 백성이 그 혜택을 받으나, 어질지 못하면 백성이 그 해를 받는다. 국가에 혜정(惠政)이 있을 지라도 수령이 봉행하지 못한다면, 혜택이 어떻게 백성에게 미치겠는가? 너희들은 내 말을 잊지 말고 가서 너희 마음껏 다하라.”하였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임금이 늘 수령이 배사(拜辭)하는 날에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일을 물었으니, 그 백성을 아들처럼 사랑하는 것이 지극하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9책 193권 5장 A면/ 【영인본】 11책 13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역사-편사(編史)(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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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광필 [記事] : 성종실록 279권/ 성종 24년(1493 계축 / 명 홍치(弘治) 6년) 6월 5일(정묘) 2번째 기사/ 충청도 경차관 정숙지의 아룀에 따라 노모의 죽음을 조사하게 하다/ 충청도 경차관(忠淸道敬差官) 정숙지(鄭叔?)가 와서 복명(復命)하였다. 인하여 아뢰기를, “지난 기유년25844) 에 신과 봉상시 주부(奉常寺主簿) 노모(盧瑁)가 함께 경상도(慶尙道)에 가게 되었는데, 노모가 신보다 앞서 밀양(密陽)에 갔다가 얼마 안되어 병사(病死)하였습니다. 신이 근래에 청주(淸州)에 도착하여 도사(都事) 정윤(鄭綸)과 서로 이야기하다가 노모가 죽은 데에 말이 미치자, 정윤이 말하기를, ‘그 때 노모가 술에 취하여 기생과 같이 누웠는데,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노모의 음경(陰莖)을 베어 죽였습니다. 밀양 부사(密陽府使) 허혼(許混)이 듣고 면화(綿花)를 써서 시체를 두껍게 싸 피가 밖으로 보이지 않게 하고는, 노모가 데리고 간 봉상시 서리(奉常寺書吏)와 그 종에게 뇌물을 후하게 주어 탄로내지 말도록 주의하였다고 합니다.’ 하였습니다. 신이 묻기를, ‘이 말은 어디에서 들었습니까?’ 하니, 정윤이 말하기를, ‘연원도 찰방(連原道察訪) 권광필(權光弼)에게서 들었는데, 권광필은 바로 노모의 사촌형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또 충주 교수(忠州敎授) 김수현(金秀賢)을 보고 물었더니, 정윤이 말한 바와 같았습니다.”하니, 승정원(承政院)에 전교하기를, “ 노모는 봉명 사신(奉命使臣)으로서 원통함이 이와 같았으니, 비록 사유(赦宥)를 지났다 하더라도 다스리지 않을 수 없다. 승정원에서는 즉시 국문(鞫問)하도록 하라.”하였다. 이에 봉상시(奉常寺)의 종[奴] 고음금(古音金)을 붙잡아다가 물으니, 고음금이 공초(供招)하기를, “지난 기유년25845) 7월에 노모가 본시(本寺)의 주부(主簿)로 있을 때 신주목 작벌 경차관(神主木斫伐敬差官)으로 경상도에 가게 되었는데 종이 수행하였었습니다. 본도(本道)에 이르자 예천 기관(醴泉記官) 이세균(李世均)·풍기(豊基)의 일수(日守)25846) 백산(白山) 도 노모의 행차를 따랐습니다. 11월에 밀양부(密陽府)에 도착하여 7,8일 동안 머물렀는데, 노모가 상지관(相地官)25847) 손영(孫榮)과 율림(栗林)에 가자, 부사(府使) 허혼(許混)이 와서 술자리를 베풀고 종일토록 마셨습니다. 밤 2고(鼓)에 파하자 기생을 데리고 걸어가서 동쪽 상방(上房)에 이르렀는데, 부사가 다시 술자리를 베풀고자 하니, 노모가 몸이 불편하다고 말하고서 기생과 함께 방안에 들어왔으므로, 종은 잠자리를 펴고 물러나왔습니다. 다음날 장차 다른 고을로 향하려고 종이 전대를 차려 가지고 먼저 떠났는데, 겨우 5리(里)를 가자 어떤 역자(驛子)가 돌아오도록 불렀습니다. 종이 돌아와 노모를 뵈니, 노모가 두통(頭痛)이 있다고 하면서 방안에 누워 있었습니다. 병세가 점차 심해져 코에서 피가 나와 그치지 않다가 7,8일이 되어 죽었습니다.”하자, 전교하기를, “이 초사(招辭)를 보건대, 정숙지(鄭叔?)가 말한 바와 상당히 틀리니, 의금부(義禁府)에 회부하여 국문하도록 하라.”하였다./ 【태백산사고본】 44책 279권 3장 B면/ 【영인본】 12책 342면/ 【분류】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임면(任免) / *의약-의학(醫學)/ [註 25844]기유년 : 1489년 성종 20년. ☞ / [註 25845]기유년 : 1489년 성종 20년. ☞ / [註 25846]일수(日守) : 조선조 때 지방 관청에 딸려 천한 일을 하던 하인. 일수 양반(日守兩班)이라고도 부름. ☞ / [註 25847]상지관(相地官) : 관상감(觀象監) 소속의 지리학(地理學)을 전공한 관원으로서 대궐 자리·능자리 등의 지상(地相)을 보는 벼슬아치. ☞(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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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 궁장 보유자 권영학, 도 무형문화재보존회 회장 선출...축하합니다.

  권영학(慶尙北道 無形文化財 保存會 創立總會 開催) [記事] :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보존회는 2009년 6월 19일 김천시문화회관에서 지역의 전통문화를 계승보존하고, 무형문화재를 연구 발전 육성하기 위하여 전수자 양성과 국내외 전시 및 시연, 회원 상호간 친목도모를 통해서 고유문화 발전시키는 목적으로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보존회"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27명의 기능 보유자가 한자리에 모여서 정관 및 제 관련규정을 제정 및 임원 선임 및 각 분과별 위원회를 구성하고, 7월초 안동에서 임원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임원명단] : 회장 권영학(예천 궁장 보유자), 부회장 김일웅(김천 징장 보유자), 부회장 김연박(안동소주 이수자), 부회장 정순임(판소리 보유자), 이사 황규욱(문경 호산촌 교육조교), 이사 김삼식(문경 한지장), 이사 조석탑(제전농요 후보), 이사 이무남(청송 옹기 보유자), 이사 이면규(영풍 장도 후보),

  이사 양규석(예천 통명농요 후보), 이사 이자성(청송 한지 보유자), 감사 송강호(김천 과하주 보유자 후보), 조석탑(저전 동농요 후보).(최도철 取材部長 金泉新聞 2009-06-23 오후 4: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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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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