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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1942:황씨高試者들(附예천방문457)
작성자장병창 @ 2009.06.29 06:35:46
  예천의 자랑(1942) : 예천의 황씨 국가고시 합격자들(附 예천방문 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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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성재(黃盛載) : 1953- , 감천면 덕율2리 634번지 덕밤 출신, 본관은 평해, 65년 감천초등(36회), 69년 경북대사대부중(慶北大師大附中), 72년 경북대사대부고, 76년 서울대 법학과, 78년 동 대학원 법학과 졸업, 78년 제20회 사법시험 합격, 80년 사법연수원 10기 수료, 공군 법무관(空軍法務官), 서울지방법원 영등포지원(永登浦支院) 판사, 83년 마산지법 판사, 86년 부산지법 판사, 89년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 판사, 91년 서울고등법원 판사, 94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95년 서울민사지방법원이 서울지방법원으로 변경,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장, 서울지방법원 판사이다(每日年鑑 1984 1985 1986 1987 1988, 在釜鄕友會報 1989, 韓國을 움직이는 人物들 1997).


  [예천군청 홈페이지] : 83-2002 서울 중앙지방법원, 서울남부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 서울고등법원, 의정부지방법원, 마산, 부산지방법원 등지에서 판사, 부장판사로 근무, 99년-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부장, 서울 서초구 서초동 1714-13 복빌딩 4층 교대역 사거리에 있는 변호사황성재법률사무소 변호사이다.(醴泉郡廳 홈페이지 2004.4.3, 醴泉文學 제29권 2004)

  황성재(黃盛載) : 주엽(周燁)의 아들, 1983년 사법고시 제24회 합격, 서울지방법원 판사를 거쳐 변호사이다.(醴泉鄕校誌 2004)

  황성재(황성재 判事, 辯護士 開業) [記事] : 서울지방법원 황성재(감천면 출생) 부장판사가 20년 간의 법관 생활을 마감(2002년 8월 20일)하고 변호사로서 새출발을 했다. 감천초등(36회), 경대사대부중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제20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부산·대구·인천·서울 등지에서 판사로 재직해 왔다. (醴泉新聞 2002-08-29 19: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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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정근(黃貞根) : 1961- , 하리면 송월리 출생, 예천동부초등, 대성고, 서울대 법학과 졸업(1984), 제25회 사법시험 합격(1983), 사법연수원 제15기 수료(1985), 해군 법무관(1986),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1989),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판사(1991),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 판사(1993),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 판사(1996), 대법원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1996), 서울고등법원 판사(1998),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 부장판사(2000), 대법원 재판연구관(2002)을 지냈다. 저서로 <민사소송법>(共編, 1996), <인신 구속과 인권>(1999)이 있다.(醴泉新聞 1996.10.10 2002.2.21, 韓國을 움직이는 人物들 1997, 每日名鑑 1999 2001, 醴泉文學 23號(2001) 24號(2001), people.naver.com 2004)

  황정근(黃貞根) : 하리면 송월리 출신, 본관은 창원, 1983년 사법고시 제25회 합격, 대법원 부장판사이다.(醴泉鄕校誌 2004)

  황정근(恒常 誠實히 硏究하는 法律人, 出鄕人 인터뷰 : 황정근(下里面 出生) 辯護士) [記事] :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었다. 막연한 선입견이었지만 법을 다루는 사람이라 딱딱하고 빈틈없는 분위기가 이어지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그러나 그 것은 기우였다.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주고받는 사이 벌써 긴장과 경계는 맥을 못추고 스르르 무너져 버렸다. 몇 년 전 부장판사 재직(진주) 때 만난 황정근 변호사의 첫인상이었다. 한 마디로 외모만큼이나 편안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다.“뭐 경직될 필요가 있나요? 법을 다루는 사람인데 오히려 무난해야죠. 나는 평소에도 인상을 쓰면서 일하는 스타일이 아니예요. 스트레스를 받아도 그 걸 하려고 하기보다는 사이좋게 같이 가려 합니다. 법사회에서는 스트레스가 없을 수 없으니까 공존 공생하자 그렇게 마음을 편하게 먹는 거죠.”2004년 봄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끝으로 판사 생활을 마감한 그는 변호사로 일한 지 1년이 되어간다. 우리나라 법률사무소 중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김&장 법률사무소''''(IP소송팀)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의 사무실 분위기는 산뜻했다. 가구의 디자인과 칼라도 감각적이고 벽에 걸어놓은 미술품도 한층 돋보였다. 황 변호사는 요즘 지적재산권, 공정거래에 관한 소송, 민사소송, 특허사건 등을 중심으로 일하고 있다. 항상 연구하는 법률인인 만큼 판사 근무 시절에 이 분야의 업무 처리와 실무 저서「민사소송법」「인신 구속과 인권」「선거부정방지법」이 든든한 재산이 되고 있다고 한다. 황정근 변호사는 1961년 하리면 송월리에서 태어났다. 부친 황순헌 씨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부친의 교육 열성에 어려서부터 3형제가 부모와 떨어져 유학을 하였다. 첫째인 황정근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1984)하고 사법시험을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을 수료(1985)한 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1989∼1991), 서울남부지원 판사,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1996∼1998), 서울고법 판사(1997∼2000), 창원지법 진주지원 부장판사(2000∼2002)를 거쳐 대법원 재판연구관(2002∼2004)을 끝으로 법관 생활을 마감했다. 부인 김용희 씨는 평택대학교 국문과 교수이며 저명한 문학평론가(동아일보에 자주 보도)이다. 둘째 황창근 변호사는 연세대 법대와 대학원 박사를 수료한 뒤, 군법무관 시험에 합격하여 고등군사법원 군 판사 겸 사무처장, 국방부 법무관리관, 5군단 법무참모(소령)로 예편했다. 셋째 황호근 씨는 장교로 군을 제대하고 지난해 세무사 시험에 합격했다. 사물에 대한 날카로운 판단과 특유의 부드러운 인격은 법조인으로서의 능력만 출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후배 법조인들에게도 닮고 싶은 역할과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황정근 변호사. 그래서 법조계의 많은 사람들이 황 변호사의 행보에 기대를 걸고 있다.(이태권 取材部長 出鄕人擔當 醴泉新聞 2005-01-08 10:53:02)

  →예천의 자랑(802) : 황정근(예천읍 출신 판사의 저술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5-06-20 照會 1089)

  →<예천의 자랑> 제7권(張炳昌 著 2006年) =1278~1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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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창근(黃彰根) : 1966- , 하리면 송월리 월감 출신, 본관은 창원, 순현의 아들, 부장판사 정근의 동생, 은풍초, 서울 인창중, 숭실고, 연세대 법대, 동 행정대학원 졸업, 동 대학원 행정법 전공 박사과정, 1990년 제9회 군법무관 임용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수료(法務 9期), 국방부 법무관리관실, 고등군사법원 군판사 겸 군무처장, 5군단 법무참모(소령) 등 전국 각지에서 군법무관을 10여 년 간 지냈다. 2001년 서울 서초구 서초동 1694-3 란빌딩 302호(법원 동문 건너편)에서 변호사 법률사무소(변호사황창근법률사무소 변호사)를 개업하였다.(醴泉新聞 2001.6.7, 2001.9.13, 朝鮮日報 DB 2003, people.chol.com 2004, 醴泉文學 제29권 2004)

  황창근(黃彰根) : 하리면 송월리 출신, 본관은 창원, 1990년 군법무고시 제6회 합격, 변호사이다.(醴泉鄕校誌 2004)

  황창근(새로운 財産, 知的 財産權 지킨다 : 황창근 辯護士) [記事] : 재산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지적 재산권이 현대 사회에서 중요해지고 있다. 지적 재산권이란 무형의 자산으로부터 그 확대 범위가 무궁무진하다. 이러한 지적 재산권이 중요시됨으로써 분쟁과 출원을 전담하여 서비스해 주는 일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을 해주는 황창근(하리면 출생) 변호사가 있다. 황 변호사는 1966년 하리면 송월리에서 황순헌(70) 박규옥(66) 씨의 3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창원.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 근무하는 황정근 부장판사의 동생이다. 부친은 농사를 짓고 있지만 세상(신문명)을 일찍 깨어 자식만은 일찌기 서울로 유학을 보냈다. 황 변호사는 은풍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누나와 형이 유학하고 있는 서울로 갔다. 14세 어린 나이로 부모와 떨어져 살자니 몸은 서울에 있지만 마음은 온통 시골 부모님의 품속이었다고 회상한다. 서울 인창중, 숭실고, 연세대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제9회 군법무관 임용시험에 합격해 고등군사법원 군판사 겸 사무처장과 국방부 법무관에서 근무하였고 5군단 법무참모(소령)로서 2001년 5월 제대했다. 동년 6월 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연세대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재원이기도 한 황 변호사는 변호사의 윤리 의식을 명심하고 법률 수요자의 요구에 맞게 비용을 적정화하고 일단 수임한 업무는 의뢰인의 고통을 분담하는 자세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한다. 황 변호사는 변론에 대한 마음가짐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요약해 말해주었다. 첫째,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겠단다. 그 동안 배운 지식과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민사, 형사, 가사, 지적 재산권에 대한 법률 자문 뿐 아니라 출원에서 관리 소멸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종래의 낡은 사고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21세기의 변화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젊은 직원으로 구성하여 신선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셋째, 민사·형사·가사·지적 재산권 등의 사건을 새로운 역사로 써간다는 정신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신속히 대처해 나갈 것이며 의뢰인이 최상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항상 공부하고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넷째, 의뢰한 사건에 대해 사건마다 직접 관리 처리함으로써 설정된 권리가 최대한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며 필요한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설정된 권리를 행사함으로써 지적 재산권에 대한 권리의 획득이 기업의 이윤과 직결될 수 있도록 책임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꿈을 가지고 삶을 영위해 나가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고자 항상 노력한다는 황창근 변호사는 부인 전숙경 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다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醴泉新聞 2002-01-06 11:5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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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457

  예천군산업곤충연구소(醴泉郡, 꿀벌育種硏究센터 26日 竣工 : 國內 環境에 適合한 優秀한 종봉, 全國 各 農家로 普及) [記事] :

  예천군은 2009년 6월 26일 오전 11시 김수남 예천군수, 정영광 군의장을 비롯 지역단체장, 관계 공무원 및 경북도농업기술원장,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생물부장, 양봉협회장, 양봉학회장, 전국 양봉지회장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꿀벌육종연구센터 준공식을 가졌다.

  전국 최초로 예천곤충연구소 내에 건립된 꿀벌육종센터는 기후 온난화와 꿀벌의 잡종화로 쇠퇴 일로에 있는 양봉산업을 중흥하고 국내 환경에 적합한 우수한 종봉을 전국 각 농가로 보급할 목적으로 사업비 11억 1천400만 원을 투입해 2008년 10월 1일에 착공해 이날 준공했다.

  꿀벌육종센터는 관리사, 연구동, 사육장, 저온창고 등의 부대시설과 꿀벌 육종을 위한 영상분석시스템, 인공수정기, 실체현미경 등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 장비를 갖추고 있다.

  또한, 세계적 수준의 꿀벌육종기술을 보유한 중국 길림성 양봉과학연구소 및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과 육종기술개발 협약을 체결하는 등 육종전문 연구원 2명과 길림성양봉과학연구소 소속 양봉연구원 1명이 상주하고 있다.

  예천군은 화분매개곤충인 호박벌과 머리뿔가위벌 대량증식에 이어 꿀벌 종봉까지 전국 각 농가로 보급하게 됨으로써 명실 공히 국내 최고의 산업곤충 연구소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한편, 이날 김수남 예천군수는 “향후 3~4년 내 꿀벌육종연구센터에서 병해충 저항성이 강하고 꿀과 로얄제리 생산성이 높은 농가보급형 종봉을 전국 각 농가로 보급하게 될 것”이라며 “농가소득 증대 및 수입대체효과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노 記者 大韓放送 2009.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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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동부초등 제38회동창회(醴泉東部初等 38回 創立總會 開催) [記事] :

  예천동부초등학교 제38회 총동창회 창립총회가 2009년 6월 20일 예천읍 임꺽정 숯불에서 열렸다.

  이날 총회에는 전국에서 53명의 동창회원이 참석했으며, 어린 시절의 추억담을 나누고 24년만의 만남을 자축하는 즐겁고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초대회장에 김태우 씨, 부회장에 윤한선·황영하 씨, 사무국장에 김성기·박영순 씨를 각각 선출했다.

  김태우 회장은 “어렵게 만난 자리인 만큼 우정과 화합을 다지는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며 “상부상조하며 서로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삼자”고 당부했다.

  (醴泉新聞 2009년 06월 25일 17:3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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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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